꿀 발린 S급 가이드 37화
“어제 길드장님과 같이 계셨습니까?”
진효섭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자 유진은 아차 싶은 얼굴로 난감하게 웃었다.
“그냥,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대답하기 어려워하는 표정. 마치 어제 만나 무슨 일이라도 있었다는 듯한 묘한 어투. 몸이 안 좋아서 한동안 쉬는 줄 알았는데, 어제 저 가이드를 만난 건가 싶어 진효섭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해창아, 우리도 얼른 옷 찾아서 돌아가자. 나 조금 피곤한 것 같아.”
유진이 작은 손으로 신해창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애교스러운 말투에 말간 표정이 더해지자 더없이 매력적이었다. 신해창은 유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그는 다시금 진효섭과 체르니에게 인사를 건넸다. 만나서 반가웠다는 형식적인 인사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옷을 맞추러 온 게 아니라, 그저 받으러 왔던 것뿐이었는지 금방 밖으로 나섰다.
진효섭은 왠지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에 그들이 나간 문을 오랫동안 쳐다봤다.
“신경 쓰여요?”
체르니가 물어보고서야 진효섭은 겨우 고개를 돌렸다.
“……예?”
“아니, 신해창이랑 유…… 뭐였지? 아무튼 그 가이드가 같이 나가는 걸 빤히 보고 있길래요. 신경 쓰이나 해서.”
진효섭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신이 신경 쓸 일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근데 왜 그렇게 빤히 바라봐요?”
“제가 그랬습니까? 별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래요?”
체르니가 눈을 가늘게 뜨며 뺨을 긁적이는 진효섭을 살폈다.
“난 또. 신해창이 자기 길드 가이드를 데리고 와서 신경이라도 쓰이는 줄 알았네.”
“예? 그걸 제가 왜 신경 씁니까.”
“신해창에게 관심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왜, 신해창은 S급 에스퍼고, 제가 보기에는 재미없고 딱딱한 인간일 뿐이지만 가이드들한테는 인기가 많으니까요.”
확실히 신해창은 인기가 많을 법했다. 저번에 만났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그는 정중한 태도로 사람을 존중할 줄 알았다. 거기다 능력까지 있으니 인기가 없는 게 이상하리라. 진효섭도 그가 호감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관심 없습니다. 그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흠. 그럼 옆에 있던 가이드와 단장님의 사이가 신경 쓰이는 건가…….”
지나가듯이 중얼거리는 그의 말에 진효섭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그러나 체르니는 더 추궁하지 않았다.
“신해창한테 관심 없으면 됐어요.”
체르니는 진효섭을 이끌어 디자이너 앞에 세웠다.
“우리 아까 하던 얘기나 계속해요. 옷 골라야죠.”
진효섭은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향하려는 시선을 억지로 떼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러나 머릿속은 여전히 아까 봤던 유진이라는 가이드로 가득했다. 체르니와 디자이너가 옷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도, 진효섭은 다른 생각을 하며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긴 제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잘라야겠다고 하는데도 별생각 없었다. 유진이 했던 말이 머릿속을 점령한 탓이다.
‘어제, 상태가 별로 안 좋아 보이긴 했지.’
상태가 안 좋았다는 건 역시 가이딩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였을까. 그걸 가이드인 유진이 알고 있다. 즉, 그가 가이딩을 해 줬다는 뜻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불편했다. 자신이 제대로 가이딩을 하지 못해서 다른 가이드를 찾았다는 의미니까. 도움이 되질 못 하다니. 돈을 받으면서도 제대로 일하지 못하는 가이드. 정말 무력하기 그지없었다.
“형.”
“…….”
“형!”
“예?”
진효섭이 뒤늦게 고개를 들었다. 그의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 있다는 것을 알아챈 체르니가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밀고 있었다.
“머리카락 가볍게 다듬고, 몸 치수 재야죠.”
“아, 알겠습니다.”
체르니의 안내에 따라 진효섭은 머리카락을 자르고, 몸 치수를 재고, 옷을 예약한 뒤 건물을 나섰다. 그 과정 내내 진효섭은 묘하게 멍했다. 누가 봐도 신해창과 가이드를 만난 이후로 이상해진 기색이었지만, 체르니는 더 묻지 않았다.
10분과도 같은 한 시간이 지났다. 나온 김에 이리저리 끌고 다닐 것 같았던 체르니는 예상과 달리 바로 사무실로 향했다. 그 이유는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서 와. 빨리 왔네.”
“단장님이 빨리 안 오면 죽여 버린다면서요. 나간 김에 떡볶이도 먹고 커피도 마실 생각이었는데.”
너무하다며 체르니의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떡볶이는 무슨. 더 맛있는 걸 먹여 줘야지. 우리 진효섭 씨가 요즘 들어서 너희 가이딩에 힘내 주고 있잖아.”
안단테는 빙그레 웃으며 진효섭에게 손짓했다.
“잘 다녀왔어요?”
“예. 길드장님은 언제 오셨습니까?”
“전 얼마 안 됐어요. 아직 밥 안 먹었죠?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시켜 줄게요.”
진효섭이 가까이 다가가자 안단테가 자연스레 옆에 앉혔다. 그러곤 커다란 태블릿을 들어 고르라는 듯 여러 메뉴를 보여 주었다.
“먹고 싶은 거 다 시켜요.”
메뉴를 들여다보려 했으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진효섭은 안단테를 몰래 흘끔거렸다. 어쩐지 일주일 전보다 훨씬 몸 상태가 좋아 보였다. 정말 어제 유진 가이드를 만나서 가이딩을 받은 걸까.
그런 복잡한 생각을 이어 가고 있을 때였다. 안단테가 진효섭의 목덜미 쪽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문질렀다.
“짧게 잘랐네요. 까슬까슬해서 기분 좋다.”
그 손길에 진효섭은 저도 모르게 몸을 긴장시켰다.
“예. 아까…… 잘랐습니다.”
“잘 어울려요.”
“……감사합니다.”
긴장한 기색이 눈에 띄게 드러났다. 그걸 안단테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그는 손을 떼지 않았다. 진효섭의 귀가 끝부터 조금씩 빨갛게 변했다.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그 순간, 두 사람을 면밀히 살펴보던 체르니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대놓고 섭섭함을 담아 크게 외쳤다.
“내 그럴 줄 알았어. 둘이 잤죠?!”
사무실 안에 있던 플랫과 코다도 두 사람을 바라봤다. 시선이 한데 모이자 진효섭의 얼굴이 불타올랐다.
“그, 그, 그게 무슨…….”
“이것 봐. 더듬거리잖아.”
체르니가 뾰로통하게 이어 말했다.
“뭐예요. 접촉 가이딩 이상은 하지 않겠다고 하더니, 왜 단장님한테는 홀랑 넘어가요? 이제 그런 제한 같은 거 없애기로 했어요?”
“그, 그렇지 않습니다.”
“진짜예요?”
“……진짜입니다.”
진효섭은 왜 이런 변명을 체르니에게 하고 있나 의문을 지우지 못하면서도 성실하게 대답했다. 그에 안단테가 혀를 차며 진효섭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왜 진효섭 씨한테 추궁하고 그래. 나랑 너는 다르잖아.”
“다르긴 뭐가 달라요? 형한테 가이딩 받는 똑같은 에스퍼인데. 솔직히 단장보다는 내가 낫지 않아요?”
체르니가 진효섭에게 다가가 두 손을 잡아 들었다.
“나도 잘해요, 형.”
뭘 잘한다는 건지 진효섭은 차마 묻지도 못하고 침묵했다. 그를 대변하듯 안단테가 체르니의 손을 떨쳐냈다.
“네가 잘하긴 뭘 잘해. 맨날 가이드 울리면서.”
“좋아서 우는 거거든요?”
“힘들어서 우는 거겠지. 변태 같은 취향 때문에.”
체르니가 어이없어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와, 단장님한테만큼은 변태라는 말 듣고 싶지 않거든요?”
안단테가 재밌다는 듯 키득키득 웃어댔다. 대낮에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건만, 그들은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아무튼, 나랑 비교해서 갖다 붙이지 마.”
“그러니까 왜-”
“난 진효섭 씨 본디지 파트너잖아.”
“아.”
잊고 있었는지 체르니가 미간을 찌푸렸다. 몇 번이고 입술을 달싹였지만, 그는 더 우기지 못했다. 본디지 파트너라는 말의 효능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진효섭이 안단테를 보자 그는 작게 ‘쉿’ 하며 검지를 입술 위에 대었다. 길드원들은 여전히 두 사람을 본디지 파트너로 알고 있는 듯 보였다.
‘본디지 파트너…….’
길드 안에서 가이드를 지켜 주는 에스퍼. 각인만큼의 강렬한 효력은 없지만, 상대와 더 긴밀하고 깊은 관계를 맺자는 약속. 그것은 마치, 애인이라는 이름과도 닮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어쩐지 가슴께가 또 간지러웠다. 정말 요즘 들어 이상한 심장이었다.
* * *
“매번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가까운데 뭘요.”
안단테는 빙그레 웃으며 직접 차 문을 열어 줬다. 진효섭은 그의 매너에 어색하게 차에서 내렸다.
“조심히 들어가고. 내일 봐요.”
“저기, 길드장님.”
“왜요?”
진효섭은 온종일 머릿속에 맴돌던 것을 겨우 입 밖으로 꺼냈다.
“그…… 여쭤볼 게…… 있습니다.”
“아, 맞아. 그거 설명해 준다는 걸 잊었네.”
“예?”
“코다한테 들었다면서요? 나랑 하는 가이딩이 위험하다는 거.”
“아, 예.”
“미리 말해 주지 않아서 미안해요. 원래는 진효섭 씨한테 가이딩 받을 생각 없었거든요.”
진효섭이 멈칫하며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가이딩을 받을 생각이 없으셨습니까?”
“네. 다른 길드원들만 도와 달라고 할 생각이었어요. 저도 제 체질을 잘 알고 있어서 위험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뭐, 결국은 이렇게 됐지만.”
그랬었구나. 진효섭은 왜 처음에 가이딩하려고 들었을 때 그가 그토록 날카롭게 반응했는지 알게 됐다. 자신이 싫었던 게 아니라, 위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거다. 안단테는 처음부터 자신을 생각해 주고 있었다. 그 사실에 섭섭하게만 생각했던 것들이 눈 녹듯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