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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34화 (34/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34화

“와. 야해라.”

안단테는 탁자에 널브러진 진효섭을 빤히 내려다보다 복근을 지그시 눌렀다. 손바닥 아래에서 근육이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어느새 진효섭은 온몸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것을 보는 안단테의 눈이 위험하게 번들거렸다.

“귀나 뺨이 잘 붉어지는 편이라고는 생각했는데…… 몸 역시 마찬가지였네요.”

몸이 어디까지 붉어져 있는지 궁금하다는 듯 복근을 누른 손끝이 천천히 움직였다. 시선은 진효섭을 발라 먹을 듯이 훑어내리고 있었는데, 당장에라도 상대를 제압하고 강제로 취하고 싶다는 욕구가 드러났다. 안단테는 눈매를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흐음. 고소하라는 말을 괜히 했나.”

질척한 음심이 드러나는 말에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진효섭은 몸을 간헐적으로 떨며 안단테를 밀었다. 밀어낸다고 하기엔 미약한 힘이었지만, 확실한 거절이었다. 안단테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 향을 천천히 거둬들였다.

엄청난 스모크 향이 물러나자 진효섭은 막혔던 숨을 토해냈다. 콜록대며 가쁘게 숨을 내쉬는 그를 안단테가 잡아 일으켰다.

“괜찮아요?”

진효섭이 대답도 못 하고 연신 콜록대자 안단테가 작게 혀를 찼다. 그의 향이 옅어지며 압박감이 사라졌다. 그제야 진효섭은 콜록거림을 멈췄다. 가쁘던 숨도 차차 안정됐다.

“이제 좀 괜찮아요?”

“으, 예, 예에…….”

“너무 괴롭힌 것 같아서 미안하네. 이 정도로 힘겨워할지는 몰랐어요. 사실 나도 처음 마주해 보거든요. 그쪽 같은 타입.”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진효섭은 멍하니 안단테를 바라봤다. 간헐적으로 헐떡거리는 탓에 입안 붉은 살이 빼꼼 드러난 채였다. 안단테는 그것에 시선을 잠깐 빼앗겼다.

“저 같은…… 타입이라면…….”

뒤늦게 시선을 거둔 안단테가 여전히 황금빛 눈을 하고는 평소처럼 웃었다.

“저처럼 흥분하면 향을 내뿜는 사람이요. 뭐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네. 저도 진효섭 씨가 처음이라.”

“아…….”

진효섭이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길드장님도 그렇습니까?”

“네. 나한테서 나는 향, 맡았잖아요. 내 향이 짙어질 때마다 흥분하는 것 같았는데.”

진효섭은 다시금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향이 짙어질수록 몽롱해졌으니 그가 모를 리 없었다.

“그랬습니까. 길드장님도…….”

“신기하네요. 이런 체질은 저 하나뿐인 줄 알았거든요.”

안단테가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 역시 잔뜩 흐트러진 모습이었다. 향에 취한 건 진효섭뿐만이 아니었다는 증거였다.

“주위 사람들은 아무리 말해도 맡지 못하고, 저만 맡을 수 있는 향이었어요. 게다가 어떤 시기가 오면 그 향이 강해지면서 흥분하는 바람에 여간 곤란한 게 아니더란 말이죠.”

“아……! 저, 저도 그렇습니다.”

진효섭이 눈을 크게 떴다. 직접 맡고도 믿어지지 않았던 사실이 확실하게 와닿았다. 향은 달랐지만, 증상이 아주 유사한 걸 미루어 그 역시 자신과 비슷했다.

“가이딩을 하면 유난히 그게 심해져서…….”

“맞아. 가이딩을 받으면 유독 그 욕구가 심해진단 말이죠.”

“그래서 가이딩을 피하셨구나, 저처럼…….”

진효섭은 동질감으로 범벅이 된 눈으로 안단테를 바라봤다. 안단테의 표정은 모호해졌지만, 그는 곧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것도 크죠. 제 의지가 아닌 감각은 기분이 더럽거든요.”

“예. 공감합니다.”

진효섭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껏 그는 한 번도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왜 제 몸만 이렇게 다른 사람과 다른 건지. 잠들기 전 눈물을 훔친 적도 많았다. 어쩐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를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고생…… 많으셨겠네요.”

“그렇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나보다는 진효섭 씨가 더 힘들었을 것 같네요.”

“네, 좀…….”

작게 긍정했으나 사실 진효섭은 체질 때문에 제 몸이 증오스러울 정도였다.

“몸을 보이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도 그거 때문이죠?”

진효섭이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다 알게 된 상황이니 더는 숨길 필요가 없었다.

“흐음, 이제야 좀 이해가 가네. 좋아요. 그럼 앞으로 가이딩을 한 날은 바로 퇴근하는 걸로 해요. 괜찮죠?”

“그, 그래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같은 체질을 가졌는데, 제가 이해해 주지 않으면 누가 이해하겠어요.”

진효섭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그보다…….”

안단테가 나른한 시선으로 진효섭을 가볍게 훑었다. 그의 표정이 문득 짓궂어졌다.

“옷을 좀 여미는 게 좋지 않을까요? 날 흥분시킬 생각이었다면 성공적이긴 한데.”

“아……!”

진효섭이 뒤늦게 흐트러진 옷차림을 매만졌다. 배를 다 드러낸 모습으로 얘기를 나눴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안단테는 피식 웃으며 몸을 소파에 대충 늘어뜨렸다. 진효섭의 향 때문인지 평소보다 훨씬 더 나른해 보였다.

“저, 그런데, 오늘 가이딩은…….”

“됐어요. 더 하면 위험할 것 같아서.”

“……예.”

아무리 눈치가 없는 진효섭이라고 해도, 안단테가 말한 위험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충분히 알았다. 사실 그도 조금 위험한 상태였다. 아랫배가 욱신거리는 게, 안단테가 한 번만 더 향을 뿜어내면 그대로 이성을 잃을 것만 같았다.

본능에 충실하면 결국 남는 것은 자괴감뿐이라는 것을 알기에 진효섭은 잽싸게 옷을 정리하고 가방을 어깨에 멨다.

“저는 이만 퇴근해도 되겠습니까?”

“네. 다른 짓 하지 말고 얼른 돌아가요.”

“예. 그, 길드장님도…….”

“저도?”

안단테가 늘어진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진효섭을 바라봤다. 진효섭은 새빨간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닙니다.”

“싱겁긴. 내일도 쉬고, 이틀 뒤에 출근해요.”

어쩐지 연속으로 쉬는 게 되어 버렸지만 진효섭은 거절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몸 상태를 미루어 내일까지도 여파가 남을 것 같아서였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진효섭은 괜스레 부끄러워져 도망치듯이 문을 향해 걸었다. 욱신거리는 몸 탓에 조금이라도 빨리 집에 도착하고 싶었다. 이 상태로 버스를 탔다가는 분명 변태 취급을 받을 테니, 평소에 사치라고 여기던 택시를 타고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다급하게 사무실 문을 열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코다 에스퍼?”

헐떡이는 숨을 진정시키는 것도 잊고 진효섭이 멍하니 그를 불렀다. 코다는 벽에 대고 있던 등을 떼어냈다.

“집에 돌아가십니까.”

“예? 아, 예. 그렇, 긴 한데…….”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그는 손에 차 키를 든 채 먼저 걸음을 옮겼다. 진효섭은 멍하니 코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허겁지겁 뒤따랐다.

코다가 모는 차는 저번에 안단테와 함께 탔던 차와 똑같았다. 택시비는 굳어서 이득이었지만, 차를 타고 가는 내내 머리에 수많은 물음표가 자리 잡았다.

“저기…… 코다 에스퍼. 계속 앞에 계셨습니까?”

“…….”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음에도 진효섭은 어쩐지 그가 전부 들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선정적인 대화와 신음들을 말이다. 물론 전에도 길드원들 앞에서 대놓고 키스를 했지만, 지금과는 또 달랐다.

“왜 들어오시지 않고 기다리셨습니까?”

이번에도 역시 말이 없으려나 생각했지만, 의외로 코다는 대답해 주었다.

“원래부터 들어갈 생각이 없었습니다.”

“출근하러 오신 게 아니었습니까?”

“전 진효섭 씨를 집까지 데려다주기 위해 왔습니다.”

“아.”

밖에서 대기하던 코다. 그리고 안단테의 차. 둘을 조합하니 어떤 상황인지 대충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안단테가 코다를 불러 가이딩이 끝나면 진효섭을 데려다주라고 미리 말한 듯했다.

보통 매너 있는 에스퍼는 타인이 가이딩을 할 때 간단한 접촉이라고 해도 어지간해선 같은 공간에 있지 않는다고들 했다. 코다는 명령을 받았지만 그런 매너를 지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노아피 길드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인 예의를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진효섭이 아직도 조금 붉은 목덜미를 문질렀다. 코다는 여전히 앞만 보고 운전 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코다가 익숙하게 진효섭 집 앞에 차를 세웠다. 제집엔 처음 오는 것이었을 텐데 단 한 번도 헤매지 않았다.

“도착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코다는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예. 저…… 길드장님께도 고맙다고 말씀드려 주십시오. 제가 집에 가는 것까지 신경 써서 코다 에스퍼에게 부탁드릴 줄은 몰랐습니다.”

진효섭은 대답이 없을 거라 예상하고 곧장 차 문을 열고 내리려 했다. 하지만 몸을 돌린 순간, 코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단장님은 진효섭 가이드를 집에 데려다주라고 말씀하신 적 없습니다.”

“예?”

문손잡이를 잡다 말고 다시 코다를 돌아봤다.

“그게 무슨…….”

“단장님과 가이딩했는데도 아직 모르고 계십니까? ……분명 오늘 말할 줄 알았는데.”

“뭘 말입니까?”

코다는 말할까 말까 고민하는 표정으로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 사실만큼은 진효섭이 빨리 알아야 한다고 판단한 듯 보였다.

“진효섭 가이드. 단장님과의 가이딩은 위험합니다. 단장님도 그걸 알기에 절 부르신 겁니다.”

이어지는 말에 진효섭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혹시 모를 일이 있다면 진효섭 씨를 구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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