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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31화 (31/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31화

“제, 제게 주신단 말입니까?”

“네. 저번 가이딩에 대한 감사 인사라고 생각해요.”

안단테는 여전히 멍한 진효섭에게 이어 말했다.

“아니다. 위험수당이 나으려나. 아, 그냥 간단하게 보너스라고 받아들이면 편하겠네요.”

보너스라니. 월급이 310만 원인데, 9억이 보너스라니. 진효섭은 떨리는 손으로 가방을 그에게 내밀었다.

“아닙, 아닙니다. 받을 수 없습니다.”

한 백만 원 미만이었으면 받았겠지만 이건 아니었다. 너무 큰돈에 부정부터 떠올랐다.

“왜요. 그냥 받아 둬요.”

“저는…… 월급으로 충분합니다.”

“너무 그러지 마요. 진효섭 씨한테 월급 보내는데 내 마음이 다 아파서 안 되겠으니까.”

마음이 왜 아프지. 너무 많이 넘겨서 아픈 건가. 진효섭이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이, 안단테는 가방을 품에 고이 안겨 주었다.

“안 가져가면 계좌로 넘길 테니까 그렇게 알아요.”

“하, 하지만…….”

“정 부담스러우면 가불로 생각해도 좋고. 아, 아니다.”

안단테가 뒤늦게 떠올랐다는 듯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올해 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길드를 그만두지 않는다는 조건은 어때요?”

“…….”

“아니면 아까 말한 것처럼 월급을 선불로 받는 거라고 쳐도 좋고.”

진효섭은 난감한 표정으로 손톱을 매만졌다. 그가 제안하는 건 하나같이 9억이라는 돈을 받는 조건이 될 수 없었다. 하긴 9억이라는 돈의 대가가 될 수 있는 조건이 어디 그리 쉽게 있겠냐마는. 어쨌든 진효섭은 묵직한 가방을 내려다보다 고개를 저었다. 그가 감당할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저는 길드 소속 가이드로서 이미 대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건…… 너무 과합니다.”

“과하다고 생각할 필요 없어요. 나는 진효섭 씨가 마음에 들거든. 그러니까 내가 주는 뇌물이라고 생각하고 일단 받아 둬요.”

안단테는 이 이상은 더 듣지 않을 거라는 듯 손수 가방의 지퍼를 닫아 줬다. 진효섭의 표정은 9억을 받은 사람치고 어둡기만 했다. 돈이든 물건이든 주제에 맞지 않은 것은 언제나 탈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탓이었다.

결국 진효섭은 가방을 내려놨다. 언제나 흘러가듯 시키는 대로 하던 그였으나 이번만큼은 쉽사리 넘어가지 않았다.

“저는 받을 수 없습니다.”

“왜요?”

“……불안합니다.”

안단테는 진효섭의 마음을 이해해 보려는 듯 대답을 곱씹었다. 불안하다라……. 그러나 표정은 여전히 모호했다.

한참을 침묵하던 그가 입을 뗐다.

“진효섭 씨는 힘이 원상 복구되려면 어느 정도 쉬어야 하죠?”

뜬금없는 물음에 진효섭이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아마 하루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충전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네요.”

“예에…….”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묻는 걸까. 진효섭이 의아한 시선으로 안단테를 바라보자 그는 마침 잘됐다며 가볍게 어깨를 주물렀다.

“슬슬 컨디션을 올려놔야 했거든요. 겸사겸사 진효섭 씨한테 돈을 받아도 되는 정당한 이유라도 만들어 줘야겠어요.”

“……예?”

“불안해하지 않고 돈 받을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요.”

안단테는 티끌 하나 없이 해사하게 웃었다. 깨끗하고 하얀 피부 위로 선이 고운 이목구비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지금 집에 가서 내일까지 푹 쉬고, 그다음 날에 나와요. 그날은 제가 진효섭 씨한테 가이딩 받을 거니까 컨디션 관리 잘하고요.”

싱글싱글 웃는 낯의 그가 발치에 놓인 9억을 가리켰다.

“이건 여기 둘 테니까, 그 뒤에 가질지 말지 직접 판단하는 걸로. 됐죠?”

“…….”

진효섭은 차마 그것도 싫다 말하지는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움직임이었는데 목이 삐걱거리고, 손바닥에서는 땀이 배어났다.

어째서일까. 왜 자신은 그와 가이딩할 거라는 말에 이렇게나 긴장하는 걸까. 9억보다도 더 신경 쓰였다. 진효섭은 바싹 마르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지 않도록 온 신경을 쏟았다. 당황을 숨기는 데 급급했다. 안단테와의 가이딩. 이상하게 그 말만으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 * *

그날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비이상적일 정도의 긴장으로 진효섭은 휴가인 다음 날까지 틈만 나면 고장 난 로봇처럼 굴었다. 누가 봤다면 손가락질을 했을 만큼 멍청한 모습이었다.

“피곤하다.”

진효섭은 살짝 붉어진 눈을 비볐다. 세 시간밖에 못 잤던 터라 피로가 더해진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더 잠들지 못했던 건지, 아니면 다음 날 안단테의 가이딩을 해야 한다는 긴장 탓인 건지 알 수 없었다.

‘오늘만큼은 컨디션 좋게 출근해야 했는데…….’

진효섭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허리 밑이 영 뻐근하고 무거웠다. 그와의 가이딩 당일에 이런 몸 상태라니. 몸뚱이는 마치 다른 것을 기대하고 있는 듯해 기분이 착잡했다.

생각해 보면 그날 안단테와의 접촉 이후로 몸이 좀 예민해진 것도 같았다. 이러다가는 안단테에게 비밀을 들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웬만하면 그곳에서 계속 일하고 싶은데…….”

아무리 자신의 의지가 그렇다고 해도, 비밀을 들킨다면 도망치듯 길드를 관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진효섭은 그런 일만큼은 일어나지 않기를 빌며 몸을 일으켰다.

출근 준비는 평소와 같았지만 발걸음은 유난히 무거웠다. 최대한 꾸물거렸는데도 진효섭은 결국 제시간에 도착했다. 습관이라는 건 참 무서운 거였다.

진정하자. 진효섭은 애써 표정을 가다듬고 되새겼다. 안단테는 신해창이 다녀간 후 길드원들에게 오전에도 사람이 있어야겠으니 일찍 출근하라 말했었다. 그러니 그와 단둘이 있는 게 아닐 것이다. 긴장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 조금이라도 몸이 이상해질 기미가 보이면 조퇴라도 하면 돼.’

가이딩 때문에 힘들다고 하면 충분하니 평소처럼 굴면 된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긴장 따위는 하지 않았다는 듯이.

진효섭은 길게 숨을 내뱉고 사무실 문을 열어젖혔다.

“안녕하십니까.”

“어서 와요.”

안단테는 진효섭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깔끔하게 정리해 넘긴 머리카락과 밝은 베이지색 정장이 잘 어울렸다. 느낌 탓인지는 몰라도 평소보다 신경을 쓴 기색이었다.

“혼자 계십니까?”

“네. 오늘은 다들 늦게 출근하라고 전해 뒀어요.”

“……그러셨습니까.”

대답이 조금 늘어지자 안단테가 작게 웃었다.

“왜요. 단둘이라고 생각하니까 긴장돼요?”

“긴장할 게 뭐가 있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아직 문 앞에서 들어오지도 못하고 있는데?”

“……이제 들어갈 예정이었습니다.”

아무리 돌이켜 봐도 멍청한 대답이었다. 그러나 진효섭은 최대한 덤덤한 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긴장한 게 뻔히 보인다고 해도 말이다.

“이리 와요.”

안단테가 나른한 어조로 옆자리를 툭툭 쳤다. 진효섭은 홀린 듯이 걸음을 옮겼다. 그의 앞에 서자, 안단테가 물끄러미 자신을 올려다봤다.

처음에도 생각했지만 정말 예쁘고 고운 얼굴이었다. 큰 키와 넓은 어깨만 아니라면 가이드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반달로 휘어지는 눈매, 그 사이에 걸리는 부드러운 옅은 갈색 눈동자. 하얀 피부와 잿빛 금갈색 머리카락이 묘한 배덕감을 불러일으켰다. 안단테는 자세히 뜯어볼수록 더 매력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꿀꺽. 조용한 사무실 안에 진효섭의 침 삼키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안단테는 눈매를 더 가늘게 접었다.

“긴장한 거 티 많이 나네요.”

“……죄송합니다.”

“뭘 또 사과하고 있어요. 이것도 정말 습관이라니까.”

안단테는 소파에 앉은 채 진효섭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부드러운 힘에 이끌려 그의 두 다리 사이에 진효섭이 멀뚱히 섰다.

“우리 진효섭 씨는 좀 더 자신감을 가져야 해요. S급 가이드면 모든 에스퍼를 내려다봐도 되는 위치잖아요. 너는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는 거예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못할 게 뭐가 있어요. 결국은 가이드가 에스퍼의 목줄을 쥐고 있는데.”

안단테가 두 손으로 진효섭의 손목을 쥐더니 그의 목을 틀어잡게 했다. 마치 제 목줄은 진효섭이 쥐고 있다는 것처럼.

손바닥 안에서 맥박이 둥둥 울렸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얼굴과 달리 안단테의 심장 소리는 시끄러웠다. 자신의 것과 비슷할 만큼 세차게 요동치고 있었다.

“좀 더 자신감을 가져 봐요.”

안단테는 고개를 기울이며 진효섭을 비스듬히 올려다봤다.

“그쪽은 대단한 사람이니까.”

다시금 그의 얼굴에 시선이 뺏겼다. 아까까지는 예쁘고 곱다고 생각한 얼굴이 방향을 약간 달리한 것만으로 야해 빠진 얼굴이 되었다. 휘어진 눈매는 상대를 유혹하듯 선정적인 느낌을 풍겼다. 진효섭은 어쩐지 긴장이 돼 그 어떤 반응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때, 안단테가 진효섭의 손바닥에 애교라도 부리는 것처럼 뺨을 비볐다. 거친 손끝과 달리 뺨은 부드럽기 짝이 없었다. 언제나 우위에 있는 느낌을 주던 남자가, 가이딩을 받기 직전만큼은 발바닥이라도 핥을 것같이 몸을 낮췄다.

지금의 안단테는 봐서는 안 될 선정적인 영상 같았다. 진효섭은 손 틈 사이로 그를 몰래 훔쳐보는 기분이 들어 아찔했다.

“진효섭 씨.”

안단테의 눈동자 안에서 미미한 황금빛이 일렁였다.

“가이딩, 해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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