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30화
“근데, 그렇게 되면 장기적으로 안 좋지 않아? 소문이 더럽게 나면 진짜 필요할 때 가이드가 구해지지 않을 거 아니야.”
“맞아. 역시 단장님은 그냥 변태라서 그런 게 분명해.”
“맞아. 난 예전부터 우리 길드에 가이드를 안 들이는 게 아니라, 못 들이는 거라고 생각했어.”
“그치. 가이드들이 적은 만큼 소문은 무서우니까.”
“멍청이가 아니면 우리 길드에 들어오지 않을 거야.”
“그래. 멍청이가 아니면…….”
“멍청이가 아니면…….”
“…….”
“…….”
쌍둥이가 말하다 말고 진효섭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순간, 침묵이 흘렀다. 멍청이라고 말했던 말꼬리가 메아리처럼 주위를 울리는 듯했다. 묘하게 측은한 빛을 띤 그들의 눈이 진효섭을 응시했다.
“……그러고 보니, 진효섭 가이드가 들어왔네.”
“응. 심지어 S급이야.”
“나는 착하고 멍청한 애들 보면 안쓰럽더라.”
“나도.”
무뚝뚝했던 눈빛이 조금 달라지더니 이윽고 그들은 진효섭의 손을 꽉 쥐며 말했다.
“누가 해코지하면 말해요. 특별히 도와줄게요.”
“나도 도와줄게요.”
이걸 감사하다고 말해야 하는 걸까. 그 길드장에 그 길드원이라고.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속말을 그대로 내뱉는, 어린아이 같은 쌍둥이는 안단테와 썩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진효섭은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에게 자신을 향한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서였다. 싫어서 욕을 한다기보다, 그냥 본인의 생각을 가감 없이 말하는 느낌. 그러다 보니 그들이 밉지 않았다.
물론 기분이 나쁠 수는 있지만…… 애초에 진효섭은 그런 취급에 화가 나지 않았다. 자기가 뭐라고. 더한 취급도 덤덤하게 넘어갔던 그였다. 이 정도로는 생채기도 낼 수 없었다. S급이라고 해도 그는 하자가 있는 S급이니까.
“다 됐습니다.”
진효섭은 손끝에 맴도는 찬기를 느끼며 잡은 손을 떼어냈다. 오랜만에 완벽하게 가이딩을 했다는 확신이 돌았다. 쌍둥이는 상쾌한 표정으로 가볍게 어깨를 돌렸다.
“다 됐으면 바로 출발해.”
그들 역시 그럴 생각이었는지, 두말하지 않고 밖으로 나섰다.
“진효섭 씨는 몸 상태 괜찮아요?”
“네. 괜찮습니다.”
전에는 여기에다가 플랫과 지금은 없는 신디라는 길드원까지 가이딩을 하고도 집에 걸어 들어갔었다. 집에 도착한 후 부작용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다행이네요. 그럼, 잠깐 심부름 좀 해 줄래요?”
안단테가 품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 쪽지를 붙이곤 진효섭에게 건넸다. 그리고 카드에 있는 돈을 전부 꺼내서 가져와 달라고 말했다.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기에 진효섭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지금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네. 조심해서 다녀와요. 오다가 그 돈으로 맛있는 거 사 먹어도 되고.”
“……다녀오겠습니다.”
진효섭은 절대 돈을 쓸 것 같지 않은 비장한 얼굴로 사무실을 나섰다. 안단테는 그런 진효섭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봤다. 노골적인 그 시선에 플랫이 안단테에게 지나가듯 슬쩍 말했다.
“왜 또 그렇게 발라 먹을 듯이 바라봐요? 가이딩 한 번 하더니, 갑자기 진효섭이 달라 보이기라도 해요? 욕정이 치솟나?”
“응.”
“……예?”
예상치 못한 답에 플랫은 본인이 물어봐 놓고도 어이가 없어 반문했다.
“아니, 진심이에요?”
“왜. 내가 이러니까 이상해?”
“이상하죠. 가이딩을 죽어라 기피하던 사람이 저 가이드한테는 유난히 관심을 보이잖아요.”
“음. 그렇긴 하지.”
“저번에 가이딩을 받길래 몸 상태가 많이 안 좋나 했는데. 그건 아닌가 봐요? 저 가이드는 뭔가 달라요?”
“그렇지. 달라. 아주 많이.”
문제는 그 다르다는 부분이 좋은 방향이냐 묻는다면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할 거라는 점이다. 안단테가 가이딩을 꺼리는 이유로 본다면, 진효섭은 가장 피해야 할 존재였다. C급 가이드에게 가이딩을 받으면 받았지, 진효섭만큼은 안 된다.
그런데 그가 숨기고 있는 것에는 궁금증이 도졌다. 가슴에 있는 상처나 S급임에도 C급 길드에 있을 만큼 성관계가 싫은 이유 등. 타인에게 별반 관심이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진효섭의 비밀은 파헤쳐 보고 싶었다.
‘아마 생각이 변한 이유는 저번 가이딩 때문이겠지.’
가이딩 때 받았던 그 느낌. 그 느낌의 정체를 다시 알고 싶었다. 무엇보다 코를 마비시키던 그 향이 가장 궁금했다.
“흠, 벗겨 보면 알 것 같은데.”
진지한 안단테의 중얼거림에 플랫이 질색하며 말했다.
“진효섭 가이드, 조만간 그만두는 거 아니죠?”
“그럴 리가. 그만둔다고 해도 못 가게 잘 잡고 있어야지. 이제 슬슬 일도 본격적으로 돌아가는데.”
싱긋 웃으며 안단테가 단호히 말하자 체르니가 귀를 쫑긋하며 침대에서 몸을 바로 했다.
“일 얘기해서 말인데, 신디가 며칠 전부터 안 보여서요. 새로운 고양이 찾기라도 있어요?”
“아니. 이제 그건 의미 없어.”
고양이는 ‘움직이는 석판’을 뜻하는, 그들만의 은어였다. 오랫동안 게이트가 열려 있는 던전에서나 볼 수 있는 신비한 석판. 거기에는 보통 사람이라면 읽을 수 없는 문장이 적혀 있는데, 의미 있는 것과 없는 게 뒤섞여 있었다.
노아피는 그중 의미 없는 글이 적힌 석판을 찾아 던전을 전전했다. 그것을 이제까지 도맡아 하던 것은 체르니였다. 석판을 찾기에 딱 제격인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모두 끝이었다. 석판은 모두 찾았고, 그 속에 담긴 내용도 확인했다. 이제 신디나 쌍둥이가 가져올 결과를 기다리는 일만이 남았다.
“고양이 찾기는 끝이야. 남은 건 석판 안에 담긴 내용이 진짜라는 걸 확인하는 것뿐이지.”
“아하, 다행히도 제가 죽어라 찾아다닌 값은 하네요. 그럼 신디는 그 내용을 확인하러 간 거예요?”
“그래.”
안단테는 품에서 작은 결정 하나를 꺼내 들었다. 가공되지 않은 투명한 원석이었다.
“그때 바다 앞에 생겼던 던전은 S급이었어. 그리고 이런 보석이 떨어져 있었지. 모두 석판에서 쓰인 대로야. 만약 미국에서 나타날 S급 던전에도 이게 있다면…….”
“…….”
“현재 얻은 건 다섯 개. 석판에는 도깨비불을 여섯 개 모으면 던전 안 시간이 가속된다고 했어. 한마디로 ‘그곳’이 열린다는 뜻이지.”
항상 말이 많았던 플랫이나 체르니는 침묵했다. 드물게 차분한 표정이었다. 반대로 코다는 묘한 흥분이 서린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예상 일은 언제입니까.”
“적어도 올해 안.”
“올해…….”
지금이 8월 말이니 이제 4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코다의 얼굴에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스쳤다. 동시에 그의 주위로 위험한 아지랑이가 피어났다.
“절 보내 주십시오.”
“걱정하지 마. 한 명도 빠짐없이 들어가게 해 줄 테니까.”
조금의 웃음기도 없이 안단테가 말을 끝내자마자 노아피 길드원들의 눈이 흉흉하게 빛났다. 이 순간만을 기다려 왔다는 듯이.
각자 생각에 빠져 있느라 사무실 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그들은 드디어 그날이 다가옴을 느꼈다. S급인 자신들 역시 긴장해 마지않던 대규모의 던전. 한 발 한 발 걸을 때마다 달라붙던 핏덩이. 그 어떤 곳보다도 중력이 강했던 곳. 절규 어린 목소리가 귀를 때리던 그곳.
드디어 ‘그곳’으로 다시 가는 길이 열린다.
* * *
“기, 길드장님.”
진효섭은 땀을 뻘뻘 흘리며 사무실로 돌아왔다. 품에 소중하게 가방을 안은 채 두 손은 발발 떨고 있었다. 무척이나 안타까워 보여 안단테는 혀를 차며 진효섭에게 다가갔다.
“왜 그래요.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그, 그게…….”
그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가방 안을 살짝 보였다.
“돈을 빼냈더니…… 이렇게나 많이…….”
가방 안에는 노란 지폐가 가득했다. 눈대중으로만 봐도 몇억은 돼 보였다.
하필 은행이 좀 먼 곳에 있어 사무실까지 걸어오며 다리에 힘이 풀릴 뻔한 것을 몇 번이나 다잡았었다. 혹시라도 멍청하게 있다 소매치기라도 당할까 봐 자꾸만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그럴수록 더 수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하, 귀엽긴. 요즘 세상이 어떤데 소매치기예요.”
별걸 다 걱정한다며 안단테가 여상스럽게 웃었다.
“그래도 잘 갔다 왔으니 됐네요.”
“예에…….”
진효섭은 작게 한숨을 쉬며 그에게 가방을 내밀었다.
“여기, 받으십시오.”
이렇게 많은 현금이 왜 필요한지는 몰라도, 앞으로 이런 심부름은 두 번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안단테가 가방을 밀었다.
“이거, 진효섭 씨 주려고 뽑아 오라던 거였어요.”
“……예?”
진효섭은 순박한 눈을 끔뻑였다. 그에 안단테가 미소를 지으며 또박또박 다시 말해 줬다.
“그 돈. 진효섭 씨 주는 거라고요. 왜, 아까 쌍둥이한테 수수료로 받았잖아요. 그거예요.”
그가 기억하는 대로라면 쌍둥이는 각각 9억씩 걸었다. 그냥 장난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돈을 받았다면 그들은 총 20억을 받았을 터. 체르니와 플랫에게 1억씩 줬으니까 남은 건 18억이다. 거기에 50퍼센트. 즉, 9억이라는 뜻이다.
진효섭은 멍하니 가방을 내려다봤다. 다시 보니 정말 9억 정도는 족히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