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29화
쌍둥이의 표정이 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그들은 날강도를 바라보듯 안단테를 째렸다.
“미쳤어요?”
“돌았어요?”
“아니.”
단호하게 고개를 저은 안단테가 재촉하듯 손을 흔들었다.
“이건 받아야겠어. 내기 당사자인 내가 힘낸 거잖아.”
“돈은 우리가 걸었거든요?”
“맞아. 우리한테는 위험수당이라는 게 있었어요.”
안단테가 바람 빠진 비웃음을 내뱉었다.
“위험수당 같은 소리 하네. 내가 던전에서 못 나올 거라고 1%도 생각하지 않았으면서.”
“그건…….”
“…….”
쌍둥이는 차마 그렇지 않다고 거짓말도 하지 못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어떻게든 돈을 나눠 주고 싶지 않은 기색이 선명했다. 그러나 안단테는 단호했다.
“얼른 내놔.”
“이 악덕 사장!”
“맞아! 악덕 사장!”
리디안과 도리안이 어떻게든 돈을 주지 않기 위해 머리를 굴렸으나 안단테와의 눈싸움에서 그들은 결국 승리하지 못했다. 둘은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민 채 휴대폰을 두드렸다. 중간중간 누가 봐도 안단테 욕을 하는 듯 수군거리기까지 했다.
“다 들린다.”
안단테의 나지막한 말을 듣고서야 그들은 숙덕거리는 것을 멈췄다.
“……보냈어요.”
“……이씨. 총 사려고 했는데.”
“총도 많으면서 뭘 또 사. 그냥 쓰던 거 써.”
“지금 그게 길드장이 할 말이에요? 우리한테 총이 던전에서 어떤 의미인지 알면서?”
안단테는 쌍둥이의 투덜거림을 가볍게 무시하고 본인의 휴대폰을 꺼내 입금된 돈을 확인했다. 쌍둥이는 눈을 세모나게 뜨고 그런 안단테를 흘겼다.
그 모든 것을 옆에서 바라보던 체르니가 낄낄대며 쌍둥이를 비웃었다.
“후후. 꼴 좋다.”
쌍둥이가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체르니를 쏘아보자 그가 진효섭의 팔에 더 찰싹 달라붙었다. 그러곤 팔뚝에 얼굴을 비비며 가증스럽게 고자질을 해댔다.
“혀엉, 쟤들이 째려봐요.”
무섭다며 앓는 소리를 냈지만, 진효섭도 믿지 않을 거짓말이었다. 제삼자처럼 심드렁히 보던 플랫이 작게 혀를 찼다.
“쌍둥이 너희는 대체 왜 그렇게 돈에 집착하냐?”
“그야 돈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세상이 아무리 달라져도 돈의 힘은 달라지지 않잖아.”
“맞아. 세상에서는 돈이 최고야. 권력 따위는 시간 앞에 무용지물이니까.”
그들은 확고한 본인들의 생각을 어필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플랫은 또다시 혀를 찼지만, 반박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말에 어느 정도 동조를 하는 건지, 아니면 이해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럼 쌍둥이 너희가 신디를 도우러 갈래?”
그때껏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던 안단테가 쌍둥이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저번 던전에서 좀 재밌는 물건을 얻었거든. 그걸 신디한테 알아보라고 시켰는데…… 아무래도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서.”
안단테는 휴대폰을 집어넣으며 싱긋 웃었다.
“리디안, 도리안. 너희가 갔다 와.”
“얼마 줄 건데요?”
“얼마 줄 건데요?”
그들은 자신들의 돈을 가져간 안단테에게서 두 배는 넘게 뜯어먹겠다는 듯 사나운 눈을 했다. 웬만한 제안으로는 절대 움직이지 않을 기세였다.
“0원.”
“……단장님 혹시 개X끼예요?”
“……단장님 혹시 양아치예요?”
“아하하하.”
안단테는 쌍둥이의 사나운 말에도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너무 그러지 마. 대신 이번에는 너희가 무슨 짓을 하든 입 대지 않을 테니까.”
진효섭이 듣기에는 오묘한 말이었다. 정확히는 몰라도, 오가는 대화를 들어 보면 그날 얻었던 물건에 대해 알아보러 가는 것뿐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무슨 짓을 하든 입 대지 않겠다니. 그 제안이 과연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돈이 아니라면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쌍둥이였는데.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쌍둥이가 동시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돈 얘기할 때와는 다른 위험한 눈이었다.
“진심이에요?”
“두말하지 않기예요.”
“당연하지.”
쌍둥이는 환한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 바로 출발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가기 전에 가이딩이라도 받고 가든가.”
“가이딩이요?”
둘의 시선이 진효섭에게 박혔다. 어쩐지 묘한 표정이었다.
“좋아요.”
“저도요.”
긍정한 쌍둥이가 냉큼 진효섭에게로 다가왔다. 안단테와 체르니가 양옆에 있어서인지 소파가 아닌 앞 탁자에 대충 걸터앉았다. 그들은 뚱한 표정으로 각각 오른손과 왼손을 내밀었다. 무척이나 똑같은 외모의 두 사람이 정면에 있자 데칼코마니를 보는 듯했다.
“해 줘요.”
“해 줘요.”
“예.”
두 사람 중 누구를 먼저 가이딩해야 할지 진효섭이 고민하는 사이, 쌍둥이가 동시에 손을 잡아챘다. 놀란 진효섭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쌍둥이들이 똑같은 말을 했다.
“동시에 해도 돼요.”
“동시에 해도 돼요.”
“……동시에 말입니까?”
“네.”
“네.”
이런 일이 빈번한 건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었다.
‘원래 가이딩은 한 번 할 때 한 명만 하는 것이 원칙인 줄 알았는데.’
진효섭은 쌍둥이의 손을 마주 잡은 채 머뭇거리며 조심스레 힘을 끌어 올렸다. 오른손과 왼손으로 힘이 빠져나갔다. 한 명을 가이딩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힘이 사라졌지만, 안단테의 가이딩보다는 덜했다. 한마디로, 할 만했다.
진효섭이 어렵지 않게 가이딩을 시작하자, 쌍둥이의 눈이 반짝였다.
“와, 진짜 되네.”
“와, 신기하다.”
그들은 흥미가 가득한 눈으로 진효섭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동물원에 있는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이 된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동시에 가이딩하는 게 빈번한 일은 아닌데, 한번 해 보고 싶었던 듯했다.
어쩐지 속은 기분.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티를 낸 것 같아 괜스레 기분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가이딩 중인 터라 진효섭은 자리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고개만 떨어뜨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들의 흥미가 오래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선은 금방 떨어져 나갔다. 진효섭은 그들이 무어라 속닥거리기 시작하고서야 고개를 들었다.
옆에 있던 체르니는 가이딩을 시작하자마자 멀리에 있는 침대로 갔고, 주위 에스퍼들은 별반 관심이 없었다. 다들 남의 가이딩에는 신경 쓰지 않는데, 안단테만큼은 달랐다. 그는 진효섭 옆에 여전히 남아서 부담스러울 정도로 빤히 쳐다봤다.
그 시선이 얼마나 집요하던지.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는 수준이라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자신이 가이딩하고 있는 게, 쌍둥이가 아니라 옆에 있는 안단테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결국 진효섭은 참지 못하고 안단테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그냥요. 좀 궁금한 게 있어서.”
그는 여전히 진효섭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핥는 듯한 시선이 얼굴에서 무언가를 찾고자 하는 듯했다. 어쩐지 난감한 기분에 진효섭이 손을 움찔거리자, 쌍둥이 역시 하던 얘기를 멈추고 안단테와 진효섭을 바라봤다.
안단테는 진효섭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은 채 쌍둥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희는 진효섭 씨한테 가이딩 받을 때 어떤 기분이야?”
“그건 또 무슨 질문이에요?”
리디안이 어이없어 되물었으나 안단테는 말없이 대답을 기다렸다. 시선은 여전히 진효섭에게 박혀 있었다. 잠깐 시선을 교환한 쌍둥이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가이딩이 가이딩이지, 뭐가 있어요. 그냥 몸이 개운해지고 편해져요.”
“맞아. 청량한 느낌이 드는 정도. 근데 그건 왜 물어요? 꼭 가이딩 한 번도 안 받아 본 사람처럼.”
“맞아. 얼마 전에 우리 앞에서 키스 쇼까지 벌였잖아요. 엄청 진하게.”
“단장은 이상해.”
“단장은 원래 이상했어.”
“그건 그래.”
도리안과 리디안이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단테는 원래 이상했으니 지금도 이해가 간다는 결론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안단테는 여전히 턱을 괸 채로 진효섭을 빤히 바라봤다. 끈질기고도 질척거리는 시선이었다.
“그렇지……. 청량한 느낌. 가이딩을 받으면 원래 그래.”
에스퍼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안단테 역시 에스퍼이기에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진효섭 씨는 어때요.”
“뭐가 말입니까.”
“가이딩을 할 때 어떤 기분이냐고요. 아니면, 가이딩을 하고 나서라든가.”
마치 자신의 가이딩 부작용을 알면서 묻는 듯한 질문에 진효섭은 목덜미가 뻣뻣해지는 것 같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진효섭은 마른침을 삼키며 최대한 수상해 보이지 않게끔 대답했다.
“그냥, 진이 빠지는 정도입니다.”
“그래요?”
안단테는 가만히 진효섭을 향해 손을 뻗었다. 가이딩 중이었기에 접촉은 하지 않았지만, 손끝이 지척에서 머리카락을 덧그리듯 움직였다.
“그럼 나랑 할 때 야한 얼굴을 했었던 건, 입안이 약해서 그런가?”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모르면 됐고요.”
묘하게 끈적거리던 시선이 눈 한 번 깜빡이자 사라졌다. 안단테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하곤 다시금 휴대폰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막혔던 숨이 트이는 듯했다.
“저 변태.”
바로 앞에서 리디안이 대놓고 안단테를 욕하기 시작했다.
“저러니까 가이드들이 피하지.”
“저번에도 우리 길드에 들어오려던 가이드가 단장님 성희롱 때문에 3일 만에 나갔잖아.”
“맞아. 그래서 난 일부러 그러는 줄 알았어. 며칠만 데리고 있다가 그만두게 할…… 아.”
“아.”
서로 눈을 마주치던 쌍둥이가 동시에 안단테를 바라봤다. 몰랐던 사실을 깨달은 듯 눈이 동그랬다. 그러거나 말거나 안단테는 그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 모습에 쌍둥이의 눈이 가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