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24화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
“아까 오, 온천에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제가 아래에 깔려 준다면…… 또 모르겠다고.”
진효섭이 듣기에 그 말은 결국 가이딩을 인식하지 못할 다른 자극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몸에 흘러들어 오는 타인의 기운이 싫어서, 자신을 헤집는 게 싫어서 가이딩이 싫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것을 상회할 만한 강한 자극이 있으면 괜찮다는 의미기도 했다.
“만약 가이딩을 인식하지 못할, 그러니까, 집중할 다른 자극이 필요한 거라면…….”
꿀꺽, 마른침을 삼킨 진효섭이 말을 이었다. 덤덤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입안으로 하는 점막 가이딩 정도는…….”
얼굴이 터질 듯이 달아올랐다. 평생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말이었다. 기실 그는 살면서 이런 말을 하는 날이 올 거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것도 한 사람도 아니고, 여러 사람 앞에서. 아무리 일이라지만 수치심에 눈물이 찔끔 날 것 같았다.
안단테가 ‘하’ 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목소리였다.
“너, 그게 무슨 뜻인지나 알고 말하는 거야?”
먼저 제안한 것이 무색하게 집효섭은 몸을 움츠렸다. 안단테는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다 몸을 가까이 붙여 진효섭의 턱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어느새 두 사람은 숨이 닿을 정도로 밀착해 있었다.
“내가 그 입안에 뭘 처박을 줄 알고.”
비릿한 피 냄새. 방금 던전에 다녀온 탓인지 은연중에 풍기는 살기. 고작 턱을 잡힌 정도로 진효섭은 거대한 짐승의 아가리 안에 처박힌 기분이 들어 갑자기 변한 그의 말투 같은 건 신경 쓸 새도 없었다.
“진효섭 씨. 그쪽이 한 말이 나한테는 어떻게 들리는지 알아요?”
안단테가 느리면서도 확실한 어조로 한 자 한 자 끊어서 말했다.
“내 밑에 깔려서 입안을 내주고 싶다.”
분명 말뜻은 같으나 안단테의 입을 거치니 어감이 좋지 않았다. 진정 까질 대로 까진 가이드가 된 것만 같았다.
“뭐, 대충 그런 의미로 들리는데. 그렇게 해석해도 되나?”
“…….”
“응? 그렇게 생각해도 되냐고요.”
안단테가 계속해서 대답을 재촉했으나 진효섭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입술만 달싹였다. 다른 에스퍼들이 주위에서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진효섭은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기실 안단테는 그가 뭘 말하는지 대충 알아들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부득부득 대답을 듣겠다고 진효섭을 빤히 내려다봤다. 결국 진효섭이 새빨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안단테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내 밑에 깔려서 입안을 내주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된다고?”
“이, 입 정도는…… 예.”
“괜찮아요? 정말?”
“저도 가이드입니다. 이 정도는…… 익숙합니다.”
“하하.”
안단테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는 신기한 동물이라도 구경하듯 진효섭의 얼굴을 샅샅이 훑어봤다.
“저도 나름 사람 볼 줄 안다고 자부했는데…… 와, 진효섭 씨는 좀 어렵네요.”
“…….”
“본디지 파트너가 필요 없다길래 걸레인가 싶었더니 숫총각처럼 굴고, 순결을 지키는 수도사처럼 굴더니 말은 걸레같이 하잖아요.”
안단테가 손에 힘주어 진효섭의 턱을 더 들어 올렸다. 시선을 마주하고자 했으나 진효섭의 눈은 안단테를 보고 있지 않았다. 아래로 늘어진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정말 애처롭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깔려 준다고 한 게 어느 쪽인지 원.’
턱을 잡은 손의 엄지가 진효섭의 아랫입술을 꾹 눌렀다. 자연스레 입술이 벌어지고 붉은 입안이 드러났다. 안단테는 그곳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더욱 잡아 눌러 벌렸다. 마치 입안 크기를 가늠하는 듯한 손길이었다.
“근데 어쩌죠. 저번에도 생각했지만, 그쪽은 입이 작아서 잘못하면 찢어질 것 같은데.”
손끝이 입가를 부드럽게 쓸었다.
“그럼 좋아하는 문어 모양 소시지도 못 먹을 텐데 괜찮아요?”
“……그건 관계없습니다.”
“아냐. 진짜 못 먹을 거예요. 소시지도 겨우 먹는 입으로는 분명 어려울 거거든.”
진효섭이 입술을 달싹이며 어렵사리 대답했다.
“상관, 없습니다.”
“그래요? 흠, 그래도 괜찮다니……. 이것 참,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이네요.”
난감하다는 투였지만 얼굴은 빙그레 웃고 있었다. 속내를 조금도 들여다볼 수 없는 기계적인 미소였다. 안단테는 진효섭의 입술을 빤히 바라보며 이어 말했다.
“진효섭 씨는 나한테 가이딩이 되게 하고 싶은가 봐.”
“……위험하신 상태지 않습니까.”
“단지 그 이유?”
“예.”
“그래……. 그렇단 말이지.”
덤덤하게 중얼거린 안단테의 눈빛이 순간 가라앉았다. 전장에 선 상대를 눈앞에 둔 듯, 자신을 위해 주는 사람을 향한 시선이라곤 보기 어려웠다.
“좋아요. 그럼 도움을 좀 받아 볼까요? 요즘 위험하다 싶기도 했고, 워낙 유혹이 수준급이라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네.”
그는 여전히 건조하기 짝이 없는 눈빛으로 빙그레 웃었다.
“아, 하지만 그쪽 입에 넣는 건 다른 걸로 할게요. 그래도 내가 길드장인데, 길드원 입을 찢을 수는 없잖아요.”
“다른 거라면 어떤…….”
“이거요.”
안단테가 혀를 빼꼼 내밀곤 검지로 가리켰다.
“잘 한번 빨아 봐요.”
그러곤 진효섭이 뭐라 말할 새도 없이 그대로 입술을 겹쳤다. 부드러운 입술의 온기가 입술을 통해 전해졌다. 그것에 익숙해질 틈도 없이 혀가 입술을 가르고 들어왔다.
예상했던 것보다 낮은 수위에 다행이라는 생각은 10초도 가지 않았다. 긴 혀가 느릿하게 입천장을 훑어 내리자 허리가 움찔거렸다. 진효섭은 저도 모르게 그의 어깨를 잡았다. 끈적이는 피부가 손안에 착 달라붙었다.
안단테는 진효섭의 턱을 들고 더 깊이 입술을 겹쳤다. 고개가 저절로 치켜 올라가 입이 벌어졌다. 말랑한 입술이 진효섭의 입술을 덮고 부드럽게 오물거렸다. 느낌이 무척이나 이상했다. 잘근잘근 물고 있는 건 입술인데, 자꾸만 머리끝이 쭈뼛 서는 듯했다.
게다가 안단테에게서는 땀 냄새도 아닌, 묘한 향이 났다. 그것을 맡을수록 머리가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아니, 이상해져 버렸다. 고작 키스만으로 숨이 가빠지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진효섭은 정신을 차리고자 몸속 힘을 끌어 올렸다. 안에서 요동치던 힘은 몽롱한 와중에도 쉽사리 안단테에게로 흘러들어 갔다. 마치 자신이 힘을 전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제힘을 뺏어가는 것처럼. 빨아 주겠다고 말한 건 자신이었는데, 어쩐지 빨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두 입술이 미세한 공기도 출입하지 못하도록 꽉 맞물렸다. 신음 한 번 낼 틈이 없었다. 혀가 가이딩보다는 다른 것을 바라듯 자꾸만 입천장을 스쳐 몸이 연신 떨렸다.
입술을 깊게 겹칠수록 힘이 쭉쭉 빨려 나갔다. 물기 어린 소리가 귓가를 점령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는지도 모른 채 진효섭은 계속 키스를 이어 갔다. 얼마나 힘을 많이 썼는지, 온몸이 차갑게 굳은 데다 손끝은 얼음장이 됐다. 반면, 단전에선 뜨거운 열이 올라왔다.
길드원 네 명을 연이어 가이딩했을 때조차도 부작용은 집에 돌아온 뒤에야 생겼다. 그런데 지금은 가이딩하는 도중에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그때보다 훨씬 더 많은 힘을 쓰고 있다는 의미였다.
역시나 몸은 금방 한계에 다다랐다. 진효섭은 이제 힘이 들어 그만하고 싶다 생각했지만, 안단테는 놔줄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였다. 그는 가이딩을 받으면 진정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흥분하는 것 같았다.
안단테가 진효섭의 뒷머리를 거칠게 쥐고는 더 깊이 입술을 맞대었다. 그러곤 부족하다는 듯 혀를 깊숙이 들이밀었다. 목구멍까지 가득 차는 것 같았는데도 침입자는 만족하지 않았다.
혀로 밀어내려 했으나 어색했던 탓인지 오히려 난잡하게 얽히는 데 동조한 게 되었다. 입안을 핥던 혀가 흥분한 건지 꾸역꾸역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진효섭은 저도 모르게 안단테를 살짝 밀었다.
그러나 그 손짓은 그를 더 난폭하게 만들었다. 아까의 입맞춤이 부드러웠다고 느낄 정도로 거칠어졌다. 가이딩을 거부하던 게 무색하게 안단테는 진효섭을 잡아먹을 듯 굴었다. 치아가 닿아서 딱딱 소리가 나는데도 굴하지 않았다. 입술이 치아에 짓눌려 잔뜩 뭉그러졌다.
“흣…….”
가쁜 숨과 함께 목 안에서 흩어지던 신음이 새어 나왔다. 동시에 안단테의 시선이 더 가라앉았다. 입술은 델 정도로 뜨거웠는데, 눈은 의아할 정도로 차게 식어 있었다. 게다가 눈동자의 황금빛은 더 선명한 빛을 띠었다. 가이딩을 받는데도 선명해진 색이 이상했다.
그러나 이유를 생각할 겨를 따윈 없었다. 뒷머리를 고정하던 손이 내려가더니 목덜미를 잡았다. 살갗이 닿자 몸이 절로 떨렸다.
진효섭이 헉, 하는 숨을 뱉자마자 안단테가 그 숨을 먹으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어느새 그의 반대 손은 허리를 문지르고 있었다. 은근한 손길이 허리에 묶인 바지 끈을 덧그리듯 쓸었다.
“하, 미치겠네.”
안단테가 입술을 떼자마자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눈이 아까보다 훨씬 더 진한 황금빛으로 일렁거렸다. 마치 폭주 직전 같았다.
어째서. 가이딩을 이렇게나 많이 했는데. 왜. 토막 난 말이 진효섭의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녔다. 안단테는 풀린 눈으로 가쁘게 숨을 내쉬는 진효섭을 바라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X발.”
안단테가 다시 입을 맞춰 왔다. 진효섭은 이 이상 힘을 낼 수 없다 생각했으나 몸은 저변의 기운까지 쥐어짜 그에게로 넘겼다. 자의적인 가이딩이 아니었다. 안단테는 놀랍게도 스스로 가이드의 힘을 끌어내서 흡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