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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23화 (23/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23화

“어딜 가려고?”

그러나 그들이 도망치기 전, 쌍둥이는 이미 그들의 뒤를 점령하고 있었다.

“우리 정산해야 할 게 있잖아.”

“맞아. 10억 줘야지.”

쌍둥이는 즐겁게 웃으며 두 사람의 팔을 잡고 어딘가로 끌고 갔다. 그들이 당황해서 뭐라 소리쳤지만, 그보다 쌍둥이가 더 빨랐다. 그렇게 두 에스퍼는 쌍둥이와 함께 3초도 되지 않아 사라졌다.

체르니가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봤다.

“불쌍하게도……. 하필 저 열받는 쌍둥이한테 걸려서는.”

“멍청하면 인생이 고달파진다잖아. 어쩌겠어.”

플랫이 어깨를 으쓱거리곤 이어 말했다.

“그보다 단장. 원하는 건 얻었어요?”

“응. 자세한 건 내일 말해 줄게. 역시 혼자 던전에 가는 건 피곤해서.”

가볍게 목을 돌리며 대답하는 안단테에 플랫이 질린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혼자 던전에 들어갔다 나와서 고작 한다는 말이 피곤하다라니. 그 누구에게 말해도 믿지 않을 일이었다.

“자, 이만 들어가자.”

안단테가 길드원들을 이끌고 숙소로 들어가려던 때였다. 새파랗게 질린 진효섭이 안단테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안단테가 고개를 기울였다.

“왜 그런 표정이에요?”

“……왜냐고 물으셨습니까?”

어떻게 이유를 물을 수가 있을까. 진효섭은 떨리는 눈으로 그의 등을 바라봤다.

“길드장님, 등이…… 어, 엉망입니다.”

그냥 엉망이라는 말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그 이상 설명할 재주가 없었다. 갈라져 피를 쏟아냈던 팔보다 등이 더 심각했다. 파이고, 타고, 뼈가 드러나 있었다.

에스퍼는 다쳐도 몸이 저절로 회복하는데, 심한 상처를 입어서인지 아니면 오랜 가이딩의 부재 때문인지 심각한 상태 그대로였다. 하지만 안단테는 마치 남 일인 것처럼 제 등을 흘끔 보고 말 뿐이었다.

어느새 체르니와 플랫이 진효섭의 옆으로 와 안단테의 등을 구경했다.

“흐엑.”

“웩.”

두 사람이 인상을 찌푸리며 징그러워 죽겠다고 중얼거렸다. 더는 보기 힘든지 체르니가 잽싸게 안단테의 앞으로 갔다. 하긴 저렇게나 심한 상처인데 누구인들 계속 보고 있겠나. 플랫도 지나가듯이 한숨과 함께 말했다.

“단장님 가이딩 좀 받아요, 제발.”

“하하. 놔두면 금방 낫는 걸 뭐. 아, 맞다.”

아프지도 않은지 웃으며 대꾸하던 안단테가 등을 돌려 아직도 굳어 있는 진효섭을 바라봤다.

“아까 못다 한 말이 던전에 들어가니까 생각나더라고요. 부탁 들어준다는 거, 아직 유효하죠?”

‘그럼, 내 부탁 하나 들어줄래요?’

게이트가 생기기 전에 안단테가 했던 말을 기억해 낸 진효섭은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실 그는 안단테가 할 부탁이 대충 예상됐다. 그때는 어떤 것을 말하려고 했는지 몰라도, 지금이라면 한 가지밖에 없었다. 아무리 가이딩을 싫어한다고 해도 이번에는 부탁할 수밖에 없으리라.

가이딩. 분명히 수위가 다소 센 가이딩을 원할 것이다. 진효섭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해 주자고 마음을 먹었다.

‘끝까지만 가지 않으면 상관없어.’

저렇게나 다쳤는데, 그냥 물러날 수는 없었다. 아까 걱정했던 것을 떠올리면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진효섭은 결심한 듯 단단한 표정으로 안단테를 마주 봤다.

“말씀하십시오.”

“이번 일 비밀로 해 줄래요?”

“예, 해 드리겠…… 예?”

의외의 부탁에 진효섭이 눈을 느리게 끔뻑였다. 그러자 안단테가 예쁘게 눈매를 접으며 말했다.

“비밀로 해 달라고요. 방금 나타났던 게이트랑 내가 거기에 들어갔다가 나왔다는 것.”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기, 라며 안단테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아이들이 으레 그러듯 손가락을 걸고 약속해 달라는 의미였다. 진효섭은 그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안단테가 손가락을 흔들며 안 해 줄 거냐고 독촉했지만 도저히 응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째서 가이딩이 아닌, 그런 걸 부탁하십니까?”

“음?”

어렵사리 질문했으나 안단테는 오히려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 되물었다.

“왜 내가 가이딩을 부탁해야 하는데요? 진효섭 씨는 우리 길드의 가이드인데.”

“예? 아…… 그렇죠. 제가 길드의 가이드니까, 굳이 부탁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진효섭이 심각했던 표정을 조금 풀곤 약간 붉어진 목덜미를 쓸었다. 당연하게 수위가 센 가이딩을 원할 거라고 생각한 자신이 민망했다. 매번 안단테가 섹시하다는 둥 묘한 말을 해서 그 또한 생각이 이상해진 것 같았다.

그래. 길드의 가이드니까 부탁할 필요 없이 접촉 가이딩은 충분히 할 수 있겠지. 안단테는 적당한 수위로 가이딩을 받을 생각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 부탁, 들어드리겠습니다.”

“정말요?”

“예.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고마워요. 역시 우리 가이드.”

안단테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호텔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제 진짜 들어가요. 내일 아침에 돌아가야 하니까 얼른 자야죠.”

“예. 그런데 가이딩은 언제 하실 겁니까? 내일은 너무 늦을 듯한데…….”

“가이딩? 뭔 가이딩이요?”

“가이딩 받을 생각이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는데요?”

어쩐지 말이 헛도는 느낌이 일었다. 진효섭은 다소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말끝을 늘였다.

“아까 가이딩을 부탁할 필요가 없다고…….”

“그랬죠? 난 가이딩 받을 필요가 없으니까.”

안단테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진효섭을 바라봤다.

“온천에서 말하지 않았나요? 전 가이딩 받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요.”

“그, 렇긴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않습니까.”

진효섭이 안단테의 흉측한 등을 흘끗거리며 어두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렇게나…… 심한데.”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는 건 상당히 심하게 다쳤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안단테는 급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조금 짜증스러워 보이는 게, 말귀 못 알아듣는 사람을 두고 답답해하는 것도 같았다.

“이미 여러 번 얘기한 것 같은데, 신경 쓰지 마요.”

그러나 진효섭은 쉽게 물러날 수가 없었다.

“……가이딩을 받지 못하면 에스퍼는 폭주합니다.”

“알아요.”

“폭주하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대로 죽습니다.”

“그것도 알아요.”

“그런데도 가이딩을 받지 않을 생각이십니까?”

“진효섭 씨.”

안단테가 진효섭 앞에 마주 본 채 섰다. 언제나 머금던 다정한 표정은 없었다. 그는 진효섭을 업고 바닷가를 걸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봤다. 그의 바랜 눈동자에서 위험해 보이는 황금빛이 일렁였다.

“대체 우리 진효섭 씨는 몇 번을 더 말해야 알아들을까.”

“…….”

“가이딩, 필요 없어요. 그게 어떤 상황이든 어떤 상대이든 중요치 않아요. 나는 가이딩 받는 게 X같고, 그건 S급인 진효섭 씨라고 다를 바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딱 여기까지만 하죠. 더 말하면 진짜 화낼 것 같으니까.”

“…….”

정말 단호한 거절이었다. 이렇게까지 에스퍼가 거절하는 이상, 가이드는 더 권유할 수가 없다. 사실 이제껏 에스퍼가 가이드에게 가이딩을 강요한 적은 있어도 그 반대는 들어 본 적도 없었다.

진효섭은 흔들리는 눈으로 안단테를 바라봤다. 그는 너무나도 확고했다. 차가운 시선 속에서 일렁이는 황금빛이 질책하는 것 같았다. 네가 뭔데 자꾸 강요하냐고. 너 역시 깊은 가이딩이 싫다고 여기 들어와 놓고.

결국 진효섭은 차마 더 권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관여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였다. 그렇게 포기하려던 순간, 언젠가 들었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너 그거 알아? 에스퍼가 극한으로 독이 쌓이면 눈에서 황금빛이 나와. 그리고 X발. 내가 이렇게 된 건 네가 날 버려서고.’

진효섭이 멍한 표정으로 다시 안단테를 바라봤다. 그의 눈동자 안에는 여전히 황금빛이 선명했다. 언젠가 자신이 봤던 색이었다.

처음부터 어딘가 모르게 익숙하다고는 생각했었다. 워낙 묻어 두고 있던 사람이었기에 바로 떠올리지 못했을 뿐. 하지만 이제는 기억나 버렸다. 체르니에게서 봤던 황금빛과 안단테에게서 보이는 황금빛. 모두 에스퍼에게 쌓인 독이 극에 달했다는 의미다. 즉, 폭주에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체르니는 눈동자 자체가 황금색이라 선명하게 보인다고는 하지만, 안단테는 바랜 갈색 눈동자인데도 선명한 황금색이 보였다. 지금 몸 상태가 심하다는 말이다. 그 상태가 지속되면 어떻게 되는지 진효섭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감히 각인한 상대를 두고 다른 새끼랑 눈이 맞아?’

일렁이는 황금빛. 터지는 핏줄. 눈과 코, 입에서 새어 나오는 피. 지옥을 연상케 하는 비명. 그것은 죽어 가는 자의 모습이었다.

“……니까?”

진효섭이 웅얼거리듯 작게 입술을 달싹였다. 앞쪽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부정확한 발음이었다.

“뭐라고요?”

“제가…… 그러니까, 제가…….”

진효섭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체르니 머리카락보다도 새빨갛게 변한 그가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까, 깔리면 되는 겁니까?”

안단테가 멈칫 굳었다. 그는 눈매를 가늘게 뜨며 의도를 살피기라도 하듯 진효섭을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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