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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22화 (22/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22화

코다가 진효섭의 팔을 살짝 잡아당겼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하기도 전, 두 에스퍼가 크게 웃어댔다.

“무슨 뜻이긴. 말 그대로지.”

“저거 어떻게 봐도 S급 던전이야.”

처음으로 원하는 반응이 나와서일까. 두 에스퍼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당당한 그들의 태도에 진효섭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하, 하지만 규모가 작지 않습니까. 길드장님은 C급 던전이라고-”

“S급은 규모랑 관계없어. 누가 봐도 위험해 보이는 걸 작다고 C급이라 생각하는 게 이상하지.”

진효섭은 떨리는 손을 말아 쥐었다.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심 그 또한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갑작스럽게 생긴 게이트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가 봐도 무시무시했으니까. 다만 길드원들이 너무 평온해서 휩쓸리듯 보냈을 뿐이다. 만약 안단테와 단둘이 있었다면 위험하다고 붙잡았을 것이다.

‘설마…… 이대로 죽는 건 아니겠지.’

진효섭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리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이라곤 하지만 안단테는 그가 가이딩해 줘야 할 에스퍼였다. 가이딩이 싫다고 거절해도, 진효섭은 안단테의 길드 소속 가이드란 말이다. 그런데, 그 길드의 에스퍼가 죽을 수도 있다. 아니,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 가능성만으로 얼굴이 창백해졌다. 절대 에스퍼가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았는데. 겪고 싶지 않았는데. 그럴 위험이 없다고 생각해 여기를 선택한 거였는데. 다시는 그들이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 극한의 상황에 오는 게 싫어서…….

폭주로 괴로워하던 에스퍼의 비명이 진효섭의 머릿속에 울렸다. 절로 손끝이 덜덜 떨렸다. 안단테가 던전 안에서 그렇게 죽어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무서웠다.

“진효섭 가이드.”

잠자코 있던 코다가 다시 한번 진효섭의 팔을 잡아당겼다.

“진정하십시오.”

코다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아무 일 없습니다.”

“하, 지만…… S급 던전이라고…….”

“괜찮습니다.”

체르니가 진효섭에게 팔짱을 끼며 코다의 말에 동조했다.

“맞아. 제가 저번에 말했잖아요. 단장님을 걱정하는 건 정말 쓸데없는 일이라니까요? 제 말대로 한 시간 안에 나올 거예요.”

“지랄하네. 한 시간 안에 나오기는 무슨, 그 안에 죽겠지.”

조금 괜찮아지려던 진효섭의 표정이 곧장 따라붙은 두 에스퍼의 비웃음에 다시 어두워졌다. 체르니는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짜증스럽게 그들을 바라봤다.

“저 새끼들이…….”

귀엽기만 하던 얼굴에 살기가 섞여들었다. 그때, 플랫이 씨익 웃으며 두 에스퍼에게 말했다.

“야. 너희도 내기에 참여할래?”

“뭐?”

“아까 말했지. 단장님이 시체도 남기지 않고 죽는다에 1억 건다고.”

“……그런데?”

“1억 걸어. 그럼 나는 살아 있다에 1억 걸게.”

체르니가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나도 살아 있다에 1억.”

“그렇다는데. 어떻게, 내기할래?”

두 에스퍼 중 하나가 그들을 비웃었다.

“하, 좋아. 살아 있으면 내가 너희한테 10억도 준다.”

“나도.”

질세라 다른 하나도 동의하자 플랫이 흥미롭게 눈을 빛냈다.

“그럼 각각 10억씩이니까…… 모두 20억이네? 우리도 그만큼 걸어야겠다. 야, 쌍둥이. 너희가 나머지 걸래?”

쌍둥이는 환한 표정으로 냅다 참여했다.

“좋아. 내가 9억.”

“좋아. 나도 9억.”

“음, 딱 좋네. 이걸로 내기 마무리하자. 너희가 제일 많이 걸었으니까 알아서 받아. 우리는 1억씩만 챙겨 주고.”

플랫이 품에서 작은 녹음기 하나를 꺼내 들어 쌍둥이에게 넘겼다. 쌍둥이는 무척이나 기뻐하며 좋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신난다. 총알 잔뜩 사야지.”

“신난다. 새로운 총도 사야지.”

쌍둥이는 어떤 총을 살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치 결과가 이미 나왔다는 듯한 행동에 두 에스퍼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었다.

“진짜 뭘 모르는 새끼들이네.”

“무지하면 용감하다잖아. S급도 혼자서 타파하지 못하는 S급 던전을 어떻게 C급이 살아 나온다는 거야?”

“진짜 또라이들 아냐?”

그들은 큰소리치며 10억이든 뭐든 다 주겠다고 선언했다. 안단테의 죽음을 확신하는 그 태도에 진효섭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지려는 찰나, 게이트에서 다시 소름 끼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끼이이이이-

진효섭은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게이트가 생길 때와 같은 소리가 또 났다. 지금 당장에라도 게이트가 소멸할 거라는 뜻이다.

안단테가 들어간 지 삼십 분가량이 흘렀을까, 아직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그는 던전을 두고 바로 나와야만 했다. 게이트가 닫히면 영영 살아 나올 수 없을 테니까. 그러나 게이트에서는 그 누구도 나오지 않았다. 나올 기미가 도통 보이지 않았다.

“아하하, 내 그럴 줄 알았지. 어떻게 살아남겠어?”

“삼십 분도 안 돼서 죽었나 보네, 쯧쯧.”

진효섭이 안절부절못하며 코다와 체르니를 번갈아 봤다. 두 사람은 말없이 게이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를 분석하는 듯 진지한 표정이었다.

아까는 그렇게나 괜찮다 확신하더니. 초조한 마음에 진효섭이 그들의 팔을 잡아당겼다.

“어, 어떻게 합니까? 데리러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게이트가 닫히고 있는데 데리러 가는 건 안 좋아요. 게다가 단장님은 혼자 있으면 좀 거칠어서……. 갔다가 우리만 다칠걸요.”

코다 역시 동감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떻게 하냐는 물음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그사이,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던 게이트는 점차 줄어들었다. 아직 안단테는 나오지 않았는데 게이트가 닫히고 있었다.

“자, 잠깐…….”

어떻게든 그것을 막고 싶었다. 그러나 진효섭은 힘이 없었다. 자신이 무력하다는 사실이 가슴에 사무쳤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상황에 진효섭은 입술을 짓씹었다.

“안 돼…….”

죽게 놔둘 수는 없었다. 자신을 도와주던 사람이 또 죽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방법을 알 수가 없어서 초조하고 답답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안단테가 나왔을 때 가이딩을 해주는 것뿐. 살아 나오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조금이나마 게이트가 느리게 닫히기만을 바랐는데, 그런 바람이 무색하게도 게이트는 이미 손바닥보다 작아져 있었다.

“어떻, 어떻게 해야 합니까? 대체 어떻게…….”

진효섭은 패닉에 휩싸여 주위를 둘러봤다. 길드원 중 누구라도 방법이 없을까 했지만, 하나같이 미동 없이 게이트를 빤히 보고만 있었다. 그것이 그의 눈에는 체념으로 보였다. 죽으면 어쩔 수 없지, 같은 단념에 빠진 듯했다.

입구는 어느새 검은 점으로 보일 만큼 줄어들어 있었다. 진효섭은 차마 더 볼 수 없어 고개를 푹 숙였다. 목이 콱 막혔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회피뿐이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지나도 변한 것은 없었다.

“어, 나온다.”

그 순간 들려온 플랫의 나지막한 말에 진효섭이 번쩍 고개를 들어 올렸다.

검은 점밖에 보이지 않던 게이트가 사선으로 찢어졌다. 기기기긱, 하고 쇠가 갈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벌어진 틈 사이에서 사람 하나가 튀어나왔다.

“다녀왔어.”

멀끔하게 웃는 얼굴. 그가 안단테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진효섭은 풀썩 주저앉았다. 살아 있었구나.

“단장, 왔어요?”

“어땠어요? 장난 아니에요?”

“아, 뭐 별건 아니었는데…….”

안단테가 뭐라 더 말하려고 할 때였다. 가볍게 들어 올린 손바닥에서부터 살이 쩍 갈라지더니 팔꿈치까지 찢어졌다. 피가 홍수처럼 솟아났음에도 안단테는 작게 ‘쯧’ 하고 혀를 찰 뿐이었다.

“좀 까다롭긴 했지.”

“좀이 아닌 것 같은데요?”

안단테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피가 솟아나던 팔은 그가 몇 번 움직이자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상처는 벌겋게 남아 있었다.

“그것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어?”

“대략 25분 정도요.”

체르니가 혀를 내둘렀다.

“와, 적어도 한 시간은 걸릴 줄 알았는데. 단장은 진짜 괴물이네요.”

“칭찬 고마워.”

여상한 낯의 안단테가 길드원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두 에스퍼는 그런 안단테를 입을 쩍 벌린 채 보다 소리 질렀다. 안단테가 던전에서 무사히 나왔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마, 말도 안 돼!”

뒤늦게 안단테가 그들을 바라봤다. 익숙한 면면에 한쪽 눈썹이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뭐야. 너희 아직도 여기 있었어? 끈질기네.”

끈질긴 남자는 인기가 없다며 안단테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방금까지 던전 안에 있었던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온해 보였다.

두 에스퍼는 딱딱하게 굳어서 안단테를 빤히 바라봤다.

“대체 어떻게…….”

“설마, C급 에스퍼가 아니었나……?”

분명 길드원들은 길드장이 C급 에스퍼라고 말했다. 그러나 진짜 C급 에스퍼였다면, S급 던전에서 살아 나올 리 만무했다. 그렇다면 아까 그 던전이 S급이 아니었던 걸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두 에스퍼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S급 던전에서 혼자 살아남을 수 있는 에스퍼. 그건…….

“…….”

“…….”

둘은 서로를 흘끔 바라봤다. 시선을 교환하는 게 심상치 않았다. 아까까지는 당당하기 그지없던 그들이 주춤, 뒤로 물러났다. 표정에는 묘한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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