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19화
“너희 능력이 모자라서 눈치채지 못한 걸, 왜 시끄럽게 짖어대고 그래?”
그의 말에 두 에스퍼가 사납게 미간을 구겼다.
“이게 미쳤나…….”
“너 우리가 어떤 사람인 줄 알아?”
“음, 아까 얘기 들어 보니까 나라에 등록되지 않은 길드니 뭐니 하던데…… 알겠다. 능력이 없어서 등록을 못 했구나? 하하, 그런 주제에 예쁜 가이드만 탐내고. 정말 손쓸 도리 없는 쓰레기들이네.”
안단테가 그들을 보며 히죽거렸다. 같은 편인 진효섭이 들어도 얄미운 말투와 웃음소리였다. 꽤 열이 받았는지 두 에스퍼는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이 새끼가……. 너 그러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목이 분리되는 수가 있어.”
“입조심해. 여기서 너 하나 죽인다고 해도, 우리 같은 어둠의 길드 소속은 난감한 것 없으니까.”
“어둠의 길드?”
가만 듣던 안단테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자고로 에스퍼라면 어둠의 길드원들을 꺼리기 마련이다. 아무리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음지로 숨어들면 찾을 방법이 쉽지 않아 웬만하면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안단테 또한 그럴 거라 생각해 승리감에 도취한 두 에스퍼가 의기양양 무어라 말하려고 했을 때였다.
“풋.”
노골적인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대놓고 그들을 비웃은 건 당연히, 안단테였다.
“아, 미안. 자기가 직접 소개하는 게 너무 웃겨서. 그렇잖아. 어둠의 길드라니. 그 이름 쪽팔리지 않아? 나라면 쪽팔려서라도 입 밖으로 못 뱉었을 텐데.”
“이 새끼가 진짜……!”
안단테가 약 올리듯 혀를 끌끌 차자 두 에스퍼의 기운이 흉흉해졌다. 당장에라도 싸움이 일 것만 같은 상황. 자욱한 수증기 속에서 안단테는 홀로 나른하게 웃었다.
“내가 예언 하나 할까?”
그의 입꼬리가 살짝 뒤틀렸다. 아주 미세한 차이였는데, 그것만으로 그의 웃음은 결을 달리했다. 얄미울 정도로 평온해 보이던 미소가 온탕 안에서도 소름이 돋을 만큼 서늘해졌다.
“너희가 진짜 어둠의 길드 소속이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팔다리가 모두 개 먹이로 쓰이게 될 거야. 몸통은 뱃가죽이 갈라진 채 동대문에 박제당하겠지. 시간이 지나 썩은 육신은 던전 안 괴물을 모으기 위한 밑밥으로 쓰일 테고, 동료들에게 안 좋은 본보기로서 입에 오르내릴걸.”
예언이라기보다는 저주에 가까웠다. 듣고 있던 진효섭조차도 몸을 움츠릴 정도로 소름이 끼쳤다.
“너 그게 무슨…….”
“그게 다일까. 아마 너희 가족 전체가 너 하나 때문에 감금당해 온종일 에스퍼를 위한 약을 만들며 죽어 갈지도 몰라. 가족이 없다면 네 가이드, 네 애인 등등. 너랑 관련된 놈들이 전부 다 얽힐 테고.”
“……이거 완전히 미친 새끼잖아?”
“헛소리하지 마.”
“헛소리? 이게 정말 헛소리 같아?”
고개를 갸웃거린 안단테가 낄낄거렸다. 나쁜 놈이 어느 쪽인지 순간 헷갈릴 정도로 악당 같은 웃음소리였다.
평소에 진효섭이 알던 안단테가 아닌 것 같았다. 얼굴을 볼 수 없어서인지는 몰라도 정말 미친놈 같았다. 자신에게 하는 말이 아닌데도 긴장할 정도로 말이다. 미친놈 같다는 건 두 에스퍼 역시 마찬가지로 느꼈는지, 그들은 서로를 흘끔 바라봤다.
결국 두 사람은 주춤하다 물러났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뒷걸음치는 몸짓이 누가 봐도 꼬리 내린 개X끼 그 자체라 우스웠으나, 그들은 끝까지 한 번만 봐준다는 것처럼 말했다. 안단테는 굳이 그들을 잡지 않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목욕탕에는 어느새 진효섭과 안단테 두 사람만이 남았다. 그제야 안단테는 진효섭을 껴안은 손에서 힘을 풀었다. 방금까지 섬뜩한 말을 뱉었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가벼운 태도였다. 그렇다면 아까 그 모습은 연기였던 걸까.
잠시 생각에 잠긴 진효섭에게 안단테가 부드러이 웃으며 말했다.
“별문제 없이 해결됐네요. 그쵸?”
“이걸 예상하시고 미친 척하신 겁니까?”
“응? 내가 언제 미친 척을 했어요?”
정말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빡이는 모습이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소년 같아 진효섭은 제 눈을 의심해야 했다. 미친 척 연기한 게 아니라, 진짜 미친 거였나.
“아, 설마 예언한 걸 두고 하는 말이에요?”
안단테가 작게 웃곤 말을 이었다.
“그건 진짜 사실을 말한 거예요. 저렇게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놈들은 하나같이 빨리 죽거든요.”
“……어째서 그렇습니까?”
“어둠의 길드가 왜 어둠의 길드 같은 부끄러운 이름으로 불리는 줄 알아요?”
진효섭이 말없이 고개를 젓자 동글동글한 그의 눈을 가만 보던 안단테가 묘하게 웃었다.
“진짜 말 그대로 어둠 아래에서 움직이니까 그렇게 불리는 거예요. 길드 이름도 없고, 따로 설명할 말도 없거든요.”
어둠의 길드. 누구도 그들을 알지 못하고, 찾을 수 없다. 그렇기에 비밀리에 일을 수행하기 적합하다고 안단테가 덧붙였다.
“그래서 그들은 튀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자신을 알려 봤자 좋을 게 없거든요. 그런데 저놈들은 딱 보니까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안단테의 입꼬리는 분명히 올라가 있었다. 다만 눈이 조금도 웃지 않아서 그 간극이 싸하게 느껴졌다. 목욕탕에 심어 둔 나무 아래 그늘에서 그는 입술만 끌어 올린 채 눈을 빛냈다.
“그놈들, 진효섭 씨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덮치려고 했죠? 그건 양지에서 범죄를 저질러도 음지로 숨어들면 괜찮다고 생각해서 그래요. 뒷일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죠.”
정말 멍청하고 양아치 같은 발상이라며 안단테가 혀를 찼다.
“그런 놈들은 빨리 죽어요. 그걸 알려 준 것뿐이에요.”
“……그랬습니까.”
“네. 그런 거예요.”
방긋, 싸했던 미소가 순식간에 결을 달리했다. 안단테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진효섭을 살폈다.
“그나저나 어디 다친 곳은 없어요? 해코지당한 곳이 있다거나.”
진효섭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큰일이 나기 전에 길드장님께서 도와주셔서 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뭘요. 가이드를 돕는 건 당연한 건데.”
안단테는 당연하다고 말했지만 진효섭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는 것 같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미안하면서도 고맙고,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폐만 끼친 것 같아서…….”
“뭘 미안해하고 그래요. 그쪽 잘못도 아닌데. 게다가 도와준 대가는 톡톡히 받았는걸요.”
대가? 진효섭이 이해하지 못하고 멀뚱히 쳐다보자 안단테가 한 발짝 뒤로 떨어졌다. 그러고는 양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눈앞에 갖다 댔다. 마치 망원경을 들여다보는 듯한 행동이었다.
“좋은 눈요깃거리가 됐거든요.”
“아……!”
그제야 그가 말한 대가가 뭔지 이해한 진효섭이 수건을 더 꽉 쥐었다. 민망함과 당황이 뒤섞여 얼굴이 발그스레해졌다.
진효섭은 목욕을 하고 있었으니 옷을 벗고 있는 건 당연했다. 아무리 수건으로 상체를 가리고 있었다고는 하나 대놓고 빤히 바라보자 부끄러워졌다. 같은 남자라지만, 에스퍼와 가이드 사이였기에 아무렇지 않게 넘기기 어려웠다.
“사실 말이죠. 그냥 있었으면 아무 생각도 없었을 것 같은데, 괜히 그렇게 수건으로 가슴을 가리고 있으니까 더 야하게 느껴지지 뭐예요.”
안단테의 시선이 나른하게 진효섭의 상체를 훑어 내렸다.
“보면 안 될 걸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미술품이라도 관람하는 듯한 눈빛에 진효섭이 어깨를 작게 움찔했다.
“부, 부끄러워서 그럽니다. 살을 드러내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요. 그럴 수 있죠.”
안단테는 충분히 이해한다며 웃는 낯으로 셔츠 단추를 끌렀다. 하나하나 풀어 내리자 셔츠 아래로 섬뜩한 상처가 드러났다. 진효섭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움직여 상처를 살폈다. 어쩐지 상처가 조금 옅어진 것 같았다.
“그럼, 그냥 남자끼리 목욕한 걸로 칠래요? 그래야 진효섭 씨가 덜 부끄러워할 것 같네.”
“예? 아…… 예.”
안단테는 흥얼거리기까지 하며 탕에 들어와 머리에 물을 적셨다. 온천이 기분 좋은 듯했다.
진효섭은 이미 오랫동안 물속에 있었던 터라 손발이 퉁퉁 불어서 나가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손에 쥔 수건이 그리 크지 않아 상체를 가리게 되면 하체가 드러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상체를 안 가릴 수는 없는데…….’
대개 하체를 가릴 상황에서 상체를 택한다면 이상하다 생각할 것이다. 게다가 그가 본 안단테는 매너 있게 고개를 돌려 줄 인간이 아니었다. 결국 진효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물속 깊이 몸을 집어넣었다.
아까의 살벌했던 일은 없었던 것처럼 나른한 목욕이 이어졌다. 진효섭은 편해 보이는 안단테를 흘끔거리다가 쭉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저, 길드장님.”
“왜요?”
“본디지…… 파트너 말입니다.”
다소 뜬금없는 주제에 안단테가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말했다.
“갑자기 본디지 파트너는 왜요? 혹시 만들고 싶은 생각이 생겼어요?”
역시 오늘 일이 좀 충격적이긴 했을 거라며 안단테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 그렇긴 한데…….”
진효섭이 손톱을 매만지며 모호하게 웅얼거렸다. 본디지 파트너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맞다. 그러나 그가 묻고 싶었던 건 그게 아니었다.
“길드원들이 제게 본디지 파트너가 있다고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길드장님이라고 다들 알고 있던데…….”
사실 진효섭으로서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안단테에게는 분명 본디지 파트너를 만들지 않겠다고 말했으므로.
“아, 그거요? 일부러 그렇게 말해 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