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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18화 (18/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8화

‘……괜찮아. 수상해 보이지 않게 타이밍을 봐서 밖으로 나가면 돼.’

진효섭은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러나 그런 그의 생각을 비웃듯 그들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저기요. 그쪽도 여기 들어온 거 보면 같은 로열층인가 봐요?”

“아까 보니까 야외 수영장에서 놀고 있던 것 같은데. 길드 맞죠?”

“……예.”

“아,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우리는 외국에서 왔어요. 한국에서 노는 건 처음인데 여기 되게 좋네요.”

진효섭은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빨리 나가기 위해 최단 경로를 가늠했다. 그때, 앞을 막듯이 두 남자가 옆으로 다가왔다. 몸이 더 딱딱하게 굳었다. 어색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A급 맞죠?”

“물어볼 것도 없겠지. 여기가 얼마짜린데. 그 밑으로는 예약도 불가능할걸?”

“하긴.”

남자 하나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진효섭과 눈을 맞추려 들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눈을 피해요? 보니까 같은 에스퍼 같은데. 얘기나 좀 나누죠.”

“아뇨. 전 오래 있어서 이제 나가 볼 생각입니다.”

“에이, 너무 그러지 말고요.”

남자가 진효섭의 팔을 잡았다. 진효섭이 깜짝 놀라 손을 뿌리치고 몸을 뒤로 물렸다. 동시에 끝까지 피했던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조금 놀란 듯 진효섭을 바라봤다. 이윽고 그의 시선에 미묘한 빛이 감돌았다.

“뭐야. 같은 에스퍼가 아니었네?”

진효섭의 얼굴색이 변했다. 역시 알아차릴 줄 알았다. 이래서 눈을 피하고 빨리 나가려던 건데.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어쩐지 감이 좋지 않았다. 진효섭은 손을 뻗어 가져온 수건을 집곤 상체를 가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남자는 진효섭을 순순히 보내 주지 않았다. 그가 강제로 진효섭의 손목을 잡고 자리에 앉혔다. 뿌리치려고 했지만, 가이드가 에스퍼를 힘으로 이기기는 무리였다. 무력하다 싶을 만큼 반항 한번 못 하고 주저앉자 남자들의 표정이 아까와는 다르게 바뀌었다. 그들은 어느새 진효섭의 가까이에 있었다.

“가이드인가 봐?”

“응. 확실히.”

그들이 약간 붉어진 얼굴로 피식 웃었다. 술 냄새가 나는 걸 미루어 따뜻한 물에 들어와 취기가 돈 듯했다. 초조함이 몸을 지배했으나 진효섭은 애써 차갑고 무뚝뚝한 표정을 지었다.

“놓으십시오.”

“왜요? 좀 얘기하다 가요. 우리가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남자가 은근하게 웃었다.

“근데 왜 혼자예요? 그쪽 길드 에스퍼들은 가이드가 혼자 목욕탕 가는데 그냥 놔두나 봐요? 위험하게.”

“맞아. 갑자기 미친놈이라도 나타나면 어쩌려고. 가이드들은 몸 자체가 유혹이잖아. 우리가 콱 덮칠 수도 있는데.”

“……지금 위협하는 겁니까?”

남자들이 짐짓 놀란 척 손을 들어 보였다.

“말이 왜 그렇게 튈까.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네.”

“가이드를 위협할 리 없잖아요. 그랬다가 국가안보국한테 어떤 징계를 받을 줄 알고.”

“그럼 자꾸 붙잡지 말고 보내 주십시오.”

딱딱한 진효섭의 태도에 그들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알겠어요. 진짜 그냥 얘기하고 싶은 것뿐이었는데, 너무 경계하네.”

“……가 보겠습니다.”

진효섭이 손가락이 햐얗게 질릴 정도로 수건을 꽉 쥔 채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려고 했다. 남자들이 또다시 팔을 잡아채지만 않았어도.

“뭐 하는-”

인상을 찌푸리고 두 사람을 돌아봤을 때였다. 그들이 각각 진효섭의 어깨를 잡아 눌러 앉혔다. 비웃는 듯한 서늘함이 눈에 서려 있었다. 평범한 에스퍼와는 다른 눈빛이었다.

“근데 그 징계라는 거, 정상적인 길드만 받는 거 알아요?”

“……그건 또 무슨 뜻입니까.”

덤덤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떨렸다. 눈을 피하려고만 들었을 때는 몰랐던 것들이 보인 탓이다. 그들의 허리부터 다리까지, 전부 검은 전갈 문신이 가득했다.

“아니, 뭐. 우리는 국가에 제대로 등록된 길드가 아니라는 걸 말해 주고 싶어서.”

“고로 징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거?”

그들이 히죽 웃었다. 뒤늦게 진효섭의 머릿속에 정보 하나가 스쳤다. 외국에서 온, 문신을 새긴 에스퍼. 정상적으로 등록되지 않은 길드. 그것들은 모두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둠의 길드’.

하나같이 대책 없는 놈들이 모여서 범죄다 싶으면 모두 가담하는, 국가에서도 제재하지 못하는 길드였다. 국가안보국을 비롯한 타 길드에서 그들을 잡으려고 했으나 쉽지 않았다. 어둠의 길드에는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난다 긴다 하는 인재가 많았기 때문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국가안보국처럼 정부의 힘을 등에 업고 사람들 앞에 서는 길드가 있으면, 더러운 일들을 도맡아서 하는 어둠의 길드도 존재한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이들은 그 어둠의 길드 소속 에스퍼 같았다.

“이제 어떤 상황인지 좀 알아들었나, 가이드 씨?”

“알아들었겠지.”

그들의 앞에서 진효섭은 피식자에 불과했다. 그저 얌전히 짓밟혀야 하는 존재. 이대로 그들이 깔아뭉개고 유린한다 해도 진효섭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상대는 어둠의 길드고, 뒷세계에 숨어들면 진효섭 따위는 찾지 못할 테니까.

그제야 이제까지는 알지 못했던 두려움이 차올랐다. 진효섭은 비로소 본디지 파트너를 만드는 이유를 알아챘다. 이렇게 위험에 닥쳐야 알아차리다니. 스스로가 멍청해도 너무 멍청하게 느껴졌다. 오랜 감금 생활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이렇듯 여전히 큰 영향을 미쳤다.

진효섭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자 남자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한 명이 진효섭의 어깨를 손끝으로 가볍게 쓸어내렸다.

“나, 이렇게 건장하고 몸 좋은 가이드를 깔아 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여기서 그걸 이루네.”

“취향하고는.”

“네가 뭘 몰라서 그래. 커다란 놈들이 울면 그게 끝내준다고.”

“뭐가 끝내주냐. 기왕이면 여자나 가느다란 남자가 좋잖아.”

“직접 해보고 말해, 새꺄.”

두 사람의 진득한 시선이 진효섭을 향했다. 진효섭은 손끝 하나 까딱이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도망치고 싶었으나 몸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소리를 칠 수도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몸을 조종하고 있는 듯했다.

남자 하나가 피식 웃으며 진효섭의 목을 잡아챘다. 내려다보는 남자의 눈에 희미한 문양이 떠올랐다. 타인의 정신을 조종하는 정신계 능력자임을 의미했다. 이윽고 진효섭의 머릿속에 반항하지도 못하고 희롱당하는 제 모습이 그려졌다.

어떻게 이 상황을 타개해야 할지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도움을 청할 상대는 없다. 그렇다고 무력하게 손 놓고 있자니 닥쳐올 상황이 두려웠다. 마치 뇌 안에 표백제를 부은 듯했다. 정신계 능력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 아무것도 못 하고 굳어 버린 것 같았다.

비틀린 웃음을 지은 남자가 천천히 진효섭의 몸을 쓸어내리려고 할 때였다. 뒤에서 뻗어 나온 손이 남자들의 손을 떨쳐냈다.

“자기야, 아직도 여기 있었어요?”

커다란 품이 등 뒤에 닿자 먹구름이 가득했던 머릿속에 햇빛이 새어 든 기분이 들었다. 세포 하나하나가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살이 부대낄수록 언제 그랬냐는 듯 머리가 상쾌해졌다. 진효섭은 멍하니 고개를 틀어 자신을 안은 상대를 올려다봤다.

그였다. 진효섭이 속한 길드의 길드장. 안단테. 익숙한 목소리에 그일 거라 생각했지만, 직접 얼굴을 보고 나니 엄청난 안도감이 들었다.

타인의 몸에 닿는다는 건 언제나 불편한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정신계 에스퍼의 능력에서 벗어났기에 느끼는 감각이라지만, 상대와의 접촉과 동시에 편안해졌다는 게 신기했다.

안단테는 멍한 진효섭의 관자놀이를 가볍게 매만졌다.

“아직 정신이 안 들어요?”

“……아뇨.”

진효섭은 이제 괜찮다고 중얼거리며 속눈썹을 늘어뜨렸다. 안단테는 더 강하게 진효섭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아직도 정신계 에스퍼에게 당했던 것이 몸 안에 남아 있는 걸까. 그와 닿는 것이 편안했다.

“아까는 술도 안 마시더니. 혼자 목욕탕 오려고 그런 거였어요? 그런 거면 나한테 말하지. 내가 같이 와 줬을 텐데.”

안단테가 다정하게 진효섭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진작 말했다면 이런 일도 없지 않았겠냐는 묘한 어투에 진효섭은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어쨌든 내가 타이밍을 잘 맞춘 것 같으니까.”

빙그레 웃은 안단테가 진효섭의 정수리에 뺨을 비볐다. 그러곤 시선을 옮겨 앞을 바라봤다.

“우리 가이드가 많이 매력적이지? 그래서 별별 파리 새끼들이 다 꼬여.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안단테는 가이드가 예쁜 것도 문제라며 한숨을 쉬었다. 진효섭으로서는 민망하고 부끄러운 말이었다. 자신은 어떻게 봐도 예쁘다는 말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그러나 두 에스퍼는 비웃거나 반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굳은 얼굴로 벌떡 일어나 안단테를 노려봤다. 그들에게 진효섭은 이미 관심 밖이었다.

“언제 들어왔지?”

노골적일 정도로 적대적인 기운이 뿜어 나왔다. 나쁜 일을 하다 들킨 건 본인들이면서 안단테가 나쁜 놈인 것처럼 노려봤다.

“순간이동?”

“아니야. 능력을 쓴 기색은 없었어.”

남자들의 시선이 날카롭게 벼려졌다.

“너 뭐야? 어떻게 여기 들어왔지?”

“걸어서 들어왔지.”

“누가 그딴 걸 물었어? 어떻게 우리가 기척도 느끼지 못하게 들어왔냐고 묻잖아.”

“글쎄, 걸어서 들어왔대도.”

안단테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귀를 후벼 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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