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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16화 (16/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6화

* * *

안단테는 저녁을 포장해 오겠다며 플랫과 함께 나갔다. 왜 굳이 배달을 놔두고 포장을 해야 하냐고 플랫이 소리쳤지만, 결국은 질질 끌려 나갔다. 이상할 정도로 확실한 상하 관계였다.

진효섭은 물에 몸 한번 담그지 않고 방으로 돌아왔다. 수영을 끝낸 체르니는 바로 샤워를 하러 들어갔기에, 숙소에는 네 명의 에스퍼가 남았다.

언제나 입을 여는 사람이 모두 사라져서 그런지 조용했다. 코다는 항상 그렇듯 책을 읽고 있었고, 한 번도 말을 나눠 본 적 없는 두 에스퍼는 달라붙어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많이 봐줘야 스무 살 정도일 둘은 언제나 함께 붙어 있었다. 똑 닮은 외관에 이름도 각각 리디안, 도리안이라고 했으니 쌍둥이가 확실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은 구석에서 웅크려 자고 있었다.

‘이름이 뭐였더라.’

기억이 날 듯 말 듯 했다. 진효섭이 그의 이름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쯤, 샤워하고 나온 체르니가 뒤에서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형, 무슨 생각 중이에요?”

향긋한 샴푸 냄새가 쏟아지듯 풍겼다.

“이름을 좀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이름? 아, 쟤들 이름이요?”

체르니는 진효섭의 머리카락에 뺨을 비비며 길드원들을 차례대로 가리켰다.

“코다는 알고 있을 거고. 옆에 있는 저 쌍둥이는 왼쪽이 리디안, 오른쪽이 도리안이에요. 둘 다 인간 불신이 큰 놈들이라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쌍둥이가 체르니를 흘끔거렸다. 분명 체르니가 한 말을 들었을 텐데 무표정이었다. 코다도 무표정이었지만, 어쩐지 느낌이 달랐다. 코다는 정적이고 단정한데 반면, 쌍둥이는 칼같이 싸늘했다. 상대를 밑으로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이 인간 불신이라는 말에 힘을 실어 줬다.

“그리고 저 구석에서 자고 있는 놈은 신디. 평소에는 조용한데, 시기가 오면 약간 또라이 같아지는 놈이에요.”

“시기요?”

“네. 저놈 체질이 좀 이상하거든요. 한 달 정도 있었으니 알겠지만, 우리 길드에는 평범한 놈들이 없어요.”

그 말에는 진효섭도 동의하는 바였다. 아무리 봐도 노아피 길드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특이했다.

“근데 왜 갑자기 쟤들한테 관심을 가져요? 혹시 마음에 드는 놈이라도 있어요?”

“그런 것 아닙니다.”

“그럼요?”

“같은 길드원이니 이름 정도는 외워 두는 게 좋겠다 싶었습니다.”

체르니가 그대로 진효섭의 옆에 앉아 착 달라붙었다.

“와, 형은 진짜 성실하네요. 저렇게 형 무시하는 놈들은 똑같이 무시해도 될 텐데.”

저게 무시하는 거였나. 몰랐던 사실에 진효섭이 눈만 끔뻑이자 체르니가 화사하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뺨을 댔다.

“그보다, 저나 예뻐해 주세요. 저런 차갑고 말 없는 놈들보다 내가 더 예쁜 짓 하잖아요.”

“……어떻게 예뻐해 주면 됩니까?”

“뭐, 원하는 대로?”

동그란 눈이 가까이에서 반짝였다.

진효섭은 곰곰이 고민하다가 조심스레 그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젖은 머리카락이 손 틈 사이로 흐트러졌다. 부스스해 보였는데 직접 만져 보니 결이 좋았다. 약간 물기가 배어나는 것까지도 나쁘지 않았다. 언젠가 만져 본 적이 있는 고양이도 딱 이런 느낌이어서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형은 머리 만지는 거 좋아하나 봐요. 저번에도 만지던데.”

“딱히 그렇진 않았는데…….”

진효섭이 체르니의 머리카락 끝을 가볍게 만지며 ‘이제 좀 좋아질 것 같습니다’ 하고 중얼거렸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손끝이 귀를 살짝 스쳤다.

그 순간, 체르니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까만 동공이 가늘게 찢어지고, 붉은 입술이 비틀렸다. 선홍빛의 긴 혀가 입술을 가볍게 쓸었다.

“아, 이거 못 참겠네.”

체르니가 진효섭의 목덜미를 덥석 잡았다. 고작 목을 잡힌 것뿐인데, 온몸이 꽁꽁 묶인 듯한 착각이 일었다.

“형. 단장님이 잘해 줘요?”

“예?”

“분명 접촉 이상은 하지 않을 거라고 했으면서 목덜미는 이빨 자국으로 너덜너덜하잖아요. 가이딩 흔적은 아닌 것 같은데……. 혹시 본디지 파트너한테는 접촉 이상도 허락하는 건가요?”

그게 무슨 뜻인지 묻기도 전에 체르니의 손톱이 목덜미를 긁어내렸다. 플랫이 씹었던 부위였다.

“그런 거라면 본디지 파트너 나 하게 해 주면 안 되나. 단장님보다 잘해 줄 텐데.”

본디지 파트너라니 그게 무슨 말이지. 진효섭은 목덜미에 남은 자국에 관해 설명도 하고, 본디지 파트너에 대해서도 묻고 싶었다. 그러나 체르니는 그가 입을 열기도 전, 대뜸 얼굴을 들이밀고 요구했다.

“형. 나, 가이딩해 줘요. 키스로.”

그는 틈을 주지 않고 곧바로 진효섭을 밀어 넘어뜨려 소파에 눕혔다. 그러곤 앗, 하는 사이 코앞까지 얼굴을 재차 들이밀었다. 체르니가 살짝 웃자 유난히 뾰족한 송곳니가 빛났다. 그 송곳니가 그대로 진효섭의 입술을 꿰뚫을 듯 다가왔다. 금방이라도 입술이 겹쳐질 것 같았다.

그때, 처음 듣는 목소리가 바로 귀 옆에서 들려왔다.

“그건 안 되는데.”

진효섭은 헉 소리가 나올 정도로 놀라 몸을 움찔거렸다.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이에 얼굴이 두 개나 있었다. 체르니는 불쑥 끼어든 남자에게 짜증스레 말했다.

“뭐야, 리디안.”

“단장이 부탁했거든. 너 가이딩 마음대로 못 하게 하라고.”

체르니의 표정이 구겨지자 소파 뒤에서 똑같은 얼굴의 남자가 턱을 괸 채 동조했다.

“맞아. 가이딩 마음대로 하면 너 바로 밤바다로 보내 버릴 거랬어.”

쌍둥이가 양쪽에서 압박하자 체르니는 천년의 사랑도 식는다는 얼굴로 몸을 물렸다. 그에 반해 리디안은 여전히 몸을 작게 만 채 체르니를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근데 있잖아. 체르니, 너 알고 있지?”

“뭘.”

가이딩을 하려다가 못해서인지 체르니는 한껏 날카로워진 기색이었다. 하지만 리디안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진효섭을 향했다.

“진효섭 가이드 건드리면 안 되는 거.”

“안 건드렸잖아.”

“건드리려고 했잖아.”

“안 건드렸다니까?”

소파 뒤에 있던 도리안이 리디안의 말을 받았다.

“아닌데? 분명히 건드리려고 했는데? 리디안이 안 말렸으면 건드렸을 건데?”

“아, 안 건드렸으면 됐잖아! 너희들이 무슨 효섭 형의 본디지 파트너야? 아니면서 왜 이렇게 짜증 나게 굴어?”

“본디지 파트너는 아니지만, 본디지 파트너가 부탁했는걸. 자기 없을 때 키스 이상 하려는 길드원이 있으면 말려 달래. 한 번 말릴 때마다 천만 원 준다고 했어.”

“…….”

“나 단장한테 말해도 돼? 본디지 파트너가 없는데 키스 이상 하려고 했다고.”

“아, 좋겠다. 천만 원 받겠네.”

“응. 신난다. 나 천만 원 받으면 새로운 총알 살까?”

“좋아.”

“근데 체르니. 네가 이천만 원 주면 말 안 할게. 어때?”

“단장이 화내는 건 무서우니까 그게 낫겠다. 어차피 너 돈 많잖아. 보석 하나 팔아.”

말을 주고받던 리디안과 도리안이 체르니를 빤히 바라봤다.

“적당히 해라, 애새끼들아.”

체르니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데도 쌍둥이는 신경 쓰지 않았다.

“왜? 이천만 원 줘.”

“맞아. 이천만 원 줘.”

결국 체르니가 폭발했다.

“이 거지 같은 애새끼들이 진짜!”

체르니의 주위로 붉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동시에 손끝에서부터 팔꿈치까지 핏줄 같은 선이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생겼다. 송곳니가 날카로워지더니 입술 밖으로 삐져나왔고, 황금색 눈동자는 사나웠다.

하지만 쌍둥이도 지지 않았다. 체르니의 양쪽을 압박한 그들은 언제 가져왔는지 자기 팔뚝보다 굵은 총을 손가락에 걸고 있었다.

“싸울 거야? 우린 좋아.”

“맞아. 요즘 쌓여 있었거든.”

쌍둥이가 무표정으로 체르니를 바라봤다. 눈가에선 살기가 풀풀 풍겼다. 느긋했던 공기가 순식간에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 중앙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만해.”

결국 잠자코 있던 코다가 끼어들었다. 쉽게 입을 열지 않는 코다가 말리는데도, 누구 하나 힘을 풀지 않았다.

코다는 작게 한숨을 쉬며 그사이에 낀 진효섭의 팔을 잡아당겼다. 숨도 쉬지 못하고 굳어 있던 진효섭은 코다의 품에 안기자 급하게 ‘허억’ 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곧 있으면 단장님이 돌아올 거야. 이 정도만 해.”

체르니는 눈을 빛내며 욕설을 내뱉었고, 리디안과 도리안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손에 든 총은 내려갈 생각을 안 했다.

“우리가 왜?”

“맞아. 우리가 왜?”

여전히 싸울 태세를 갖춘 쌍둥이들을 향해 코다가 단호하게 말했다.

“너희가 먼저 시비를 걸었으니까.”

“우린 있는 사실을 말한 것뿐이야.”

“체르니가 저 가이드를 덮치려고 했잖아.”

코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거였다면 여기서 했을 리가 없지.”

“하지만 그건 모르는 거잖아? 체르니는 장소 따위 신경 안 쓰니까.”

“아니. 결국 아무 일도 없었어. 오히려 너희의 살기 때문에 진효섭 가이드는 호흡곤란이 올 뻔했지.”

“…….”

“단장님이 내게 부탁했던 건, 진효섭 가이드를 위협하는 놈이 있으면 말하라던 거였는데.”

코다는 숨을 가쁘게 쉬는 진효섭의 등을 느릿하게 두드렸다. 다정한 손길과는 달리 두 사람을 향한 시선은 차가웠다.

“이것도 위협으로 보고하면 되는 건가?”

“…….”

“…….”

쌍둥이는 말이 없었다. 그러나 손에 들고 있던 총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칫.”

짜증스럽게 혀를 찬 쌍둥이는 다시 원래 있던 소파로 돌아가 아까처럼 휴대폰을 함께 들여다봤다. 체르니는 흥분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다 씩씩대며 나가 버렸다.

안 그래도 조용했던 숙소가 다른 의미로 고요해졌다. 이런 소란에도 끝까지 일어나지 않는 신디라는 남자가 부러울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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