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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13화 (13/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3화

“무서웠어요?”

“아니, 아닙니다. 가이딩하겠습니다.”

솔직히 아직도 플랫이 무서웠기에 진효섭은 더 말을 잇지 않았다. 떨리는 손으로 플랫을 잡고 힘을 불어 넣었다. 저번보다 더한 찬기가 손끝에서 느껴졌다. 플랫은 낮게 한숨을 쉬며 진효섭의 목덜미에 이마를 댔다.

저번보다 훨씬 더 심한 상태였다. 계속 힘을 전하고는 있는데, 쉽지 않았다. 상대 역시 느꼈는지, 플랫이 진효섭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수위는 어디까지?”

“예, 예?”

“가이딩 수위 말이에요. 접촉 이상은 싫다고 말했는데, 그 접촉이 어디까지냐고요. 제일 높은 수위를 말해요.”

생각해 둔 수위는 키스까지였다. 하지만 어쩐지 지금 키스라고 말하면 그대로 입술을 빼앗길 것만 같았다. 마치 키스해 달라 먼저 요청해야 하는 듯한 묘한 상황. 진효섭이 뭐라 말하지 못하고 연신 입술을 움찔거리자 플랫은 접촉하지 않은 반대 손으로 그의 허리를 잡아당겼다.

놀란 진효섭이 딱딱하게 굳었으나 플랫은 아랑곳하지 않고 너덜너덜한 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거친 손끝이 골반을 느릿하게 문질렀다.

“빨리 말해요.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있으니까. 끝까지만 안 가면 뭘 해도 되는 거예요?”

플랫의 거칠어진 숨이 목덜미에서 흩어졌다. 너무 가까이 붙은 몸과 목덜미에 닿았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입술 탓에 숨이 자꾸만 가빠졌다.

“아, 니…… 요.”

“그럼?”

입을 열 때마다 허리를 눌러 오는 손길 탓에 진효섭은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었다. 손길이 너무 은근했다. 당장에라도 손을 떼고 일어나고 싶었으나 다리에 힘이 풀려서 쉽지 않았다. 어느새 진효섭은 귀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읏…….”

“하. 뭐야. 꽤 섹시한 소리네.”

플랫은 재밌다는 듯이 살짝 웃었다. 상처에 절어 있었던 게 진짜인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아직 몸에 쌓인 독을 10%도 정화하지 못했을 텐데 말이다.

“진짜 가이딩 수위를 못 박은 사람 맞아? 아무리 봐도 몸은 아닌 것 같은데.”

허리 부근을 더듬던 플랫이 갈비뼈 사이사이를 문지르자 절로 몸이 움찔거렸다.

“이것 봐, 반응하는 게 익숙해 보이는-”

“플랫.”

가까이에서 안단테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효섭은 몸을 떠느라 차마 고개를 들어 올리지 못했지만, 플랫은 안단테를 바라봤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플랫은 ‘칫’ 하고 혀를 차며 손을 떼어냈다. 그제야 진효섭은 가쁜 숨을 뱉어냈다. 얼마나 긴장을 한 건지 숨이 차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하아……. 하아…….”

격한 키스라도 나눈 듯 진효섭이 숨을 몰아쉬자 플랫이 사과했다.

“미안. 나도 모르게 흥분했네요.”

전혀 미안하게 들리지 않은 사과였다.

안단테는 그들을 스쳐 항상 앉던 자리로 걸어갔다. 진효섭은 비로소 고개를 들어 주위를 훑어볼 수 있었다. 아까까지는 짐승의 우리처럼 느껴졌던 사무실이 평소와 같아졌다.

플랫에게 깔렸을 때는 그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도 있다고 인식하게 되니 숨이 트였다. 안단테가 도와주듯 주시하는 것도 한몫한 듯했다. 이제 위험이 없어졌다는 생각에 안도감마저 생겼다.

그렇지만, 역시 방금은 위험했다. 잠깐 수위 말하는 걸 망설였을 뿐인데 큰일 날 뻔했다. 안단테가 말리지 않았다면 그대로 잡아먹혔을 게 분명했다.

진효섭은 혹시 플랫이 또 달려들세라 아까 못다 한 대답을 다급히 입에 올렸다. 어영부영하다 끝까지 갈 바에야 키스로 빨리 그를 진정시키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키, 키스까지입니다.”

“뭐가요?”

“아까…… 가이딩 수위를 물어보셨잖습니까.”

“아.”

플랫은 새파랗게 질린 진효섭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됐어요. 이걸로 충분해요.”

“예?”

“보니까 표정 별로 안 좋은데, 됐다고요.”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으니까 더 묻지 마요. 한 번 더 물으면 그대로 입술 물어뜯고 싶어질 것 같으니까.”

진효섭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키스가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 주는 행동에 플랫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큰 상처를 낫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플랫과 진효섭은 오랫동안 붙어 있었고, 안단테는 그동안 아무 말도 없이 벽에 기대어 모니터만 바라봤다.

처음으로 새벽까지 있어 본 사무실의 분위기는 오전과는 다소 차이가 났다. 밤이 가져온 공기는 조금 눅눅하고, 우울했다. 거의 한 시간을 같은 자세로 있고서야 안단테가 입을 열었다.

“벌써 새벽 세 시야. 이 정도만 해.”

플랫은 불만족스러운 얼굴을 했지만 싫다고 하진 않았다. 그는 진효섭의 손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분간 좀 쉬어도 되죠?”

“그래.”

“앗싸.”

얼추 괜찮아졌는지 플랫이 씩 웃었다.

“그럼, 전 가 볼게요. 그쪽도 수고했어요.”

“아……. 예.”

진효섭은 일어서지도 앉지도 못한 어정쩡한 자세로 그가 나가는 모습을 바라봤다. 상처가 옅어진 게 보였으나 진효섭은 알 수 있었다. 그의 몸이 온전히 괜찮아진 건 아니란 걸.

괜스레 미안해졌다. S급이니까 손잡는 걸로도 충분할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해 놓고, 실제로는 미치지 않을 정도로만 간당간당하게 가이딩을 해뒀으니 말이다. 순간 그냥 키스 가이딩 정도는 해 줄 걸 그랬나, 하고 약간의 후회가 들었다.

“진효섭 씨는 지금 집에 돌아갈 거죠?”

안단테의 물음에 진효섭이 고개를 돌려 그를 봤다.

“예. 그럴 예정입니다.”

“그럼 제가 데려다줄게요. 짐 챙겨요.”

“감사합니다.”

진효섭은 거절하지 않고 호의를 받아들였다. 옷도 찢어져서 마침 집까지 가기 난감했던 터였다. 변태로 오인당해 경찰서에 가는 것보다는 하루 정도 폐를 끼치는 게 나았다.

안단테는 피에 젖은 전투복 상의를 대충 벗어 던졌다. 형광등 아래에 드러난 안단테의 몸을 보고 진효섭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옷을 입고 있었을 땐 몰랐는데, 그의 몸은 꽤 탄탄했다.

다만 그의 가슴팍에는 살이 파이다 못해 지져진 상처가 가득했다. 너무 아파 보여서 눈 둘 데를 찾지 못할 정도였다. 팔은 깨끗한데 몸 중앙이 심각했다. 이번에 생긴 상처 같진 않았다.

어째서 에스퍼인데 저렇게 상처가 많은 걸까. 보통 에스퍼들은 상처를 입어도 평범한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몸이기에 쉽게 회복한다. 물론 심한 상처를 입으면 쉬이 낫지 않지만, 가이딩을 제때 받기만 해도 상처는 없어지는 편이다. 그런데 어째서…….

“길드장님.”

몸에 있는 피를 대충 닦아 내던 안단테가 진효섭을 흘끔 돌아봤다. 어쩐지 평소와는 달리 눈 밑이 깊은 게, 다소 피곤해 보였다.

“가이딩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괜찮아요. 아까 플랫에게 가이딩하느라 힘이 많이 빠졌잖아요. 돌아가서 얼른 쉬어요.”

“그래도 조금이나마 해 드리겠습니다.”

안단테도 플랫과 함께 던전을 다녀온 에스퍼였다. 플랫이 어쩌다 그렇게 다쳤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또한 꽤 힘들었을 터. 그러나 안단테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힘이 있으면 내일 다른 길드원이나 해 주세요.”

“하지만-”

“얼른 가도록 하죠.”

안단테는 가볍게 진효섭의 말을 잘라먹고 사무실을 나섰다.

차를 운전하는 동안 안단테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진효섭은 말을 걸기 어려운 분위기를 뿜어내는 안단테를 흘끔 쳐다보기만 했다. 방금 던전을 다녀와서 그런지 분위기가 무척이나 차가웠다. 웃고 있는데도 묘하게 눈이 날카로웠다. 가짜 표정이란 걸 눈치 없는 자신도 알 수 있을 만큼 티가 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단테는 진효섭의 빌라 앞에서 차를 세웠다.

“도착했어요. 얼른 들어가서 쉬어요.”

그는 여전히 가면을 쓴 것 같은 표정으로 상냥하게 말했다.

“피곤하면 내일까지 휴무로 쳐요. 어차피 플랫도 안 올 테고.”

“길드장님은 어쩌실 생각입니까?”

“저요?”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듯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진효섭은 그가 이대로 아예 가이딩을 받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집에 들어가기 전이라도 조금 해 줘야 하지 않을까. 이러다가 폭주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자꾸만 그 몸에 새겨진 수많은 상처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결국 진효섭은 고민하다 안전벨트를 풀고 안단테에게로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을 마주 잡으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안단테는 진효섭의 손목을 틀어쥐었다.

“이건 무슨 짓일까요?”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차게 식어 있었다. 이렇게나 싸늘한 반응이 돌아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진효섭은 당황했다.

“예? 그…… 가이딩을 받으시는 게 좋을 것 같…… 아서…….”

목소리가 갈수록 작아졌다. 진효섭은 큰 잘못이라도 한 사람처럼 고개를 숙였다. 좁은 차 안에서 서슬 퍼런 안단테의 시선을 마주하는 게 쉽지 않았다.

“괜찮다고 여러 번 말했을 텐데요.”

“하지만…… 아픈 걸 참고 있지 않습니까.”

진효섭은 그를 위해서 가이딩해 주려고 했던 것뿐이라 말하고 싶었다.

기실 그는 안단테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아까도 두려움에 떨던 그를 도와줬고, 생활난을 겪는 걸 눈치채고 월급을 미리 주었다. 지금도 이렇게 데려다주지 않았나. 그러니 조금 힘들다는 이유로 가이딩을 미루고 싶지 않았다. 노아피 길드의 가이드가 됐으니, 그 또한 안단테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구차한 변명 같아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그사이 안단테의 표정은 더없이 싸늘하게 식었다.

“진효섭 씨, 선 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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