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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11화 (11/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1화

“뭐…….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야.”

기실 처음 그가 지원했을 때부터 의심했다. 너무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하지만 반대로 너무 말이 안 돼서 이상했다. 그래서 안단테는 일부러 집에 찾아가 보기도 했고, 친근함을 가장해 속마음을 떠보기도 했다. 실제로 수상한 점이 없잖아 있긴 했지만, 그 수상함은 스파이와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스파이면 평범함을 가장하는 게 보통 아닌가?”

“그건 또 그렇네요. S급 가이드가 C급 길드에 오는 건 이상하긴 하죠.”

진짜 스파이였다면 굳이 그렇게 눈에 띄는 짓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 오히려 수상한 척을 해서 수상하지 않게 보이려는 속셈은요?”

“그렇게 생각하면 끝도 없지.”

안단테는 덤덤한 표정으로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보기에 진효섭 씨는 스파이 같은 거 아니니까.”

“확실해요?”

“그래.”

확신하는 안단테에게 플랫이 재차 물었다. 쉽게 믿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숨기는 게 진짜 없다고요?”

“아니.”

플랫의 짙은 눈썹이 휘어졌다.

“뭐야. 아까는 걱정하지 마라면서요.”

“스파이는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거지. 하지만 숨기는 게 없다는 건 글쎄…….”

안단테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책상에 있는 종이 하나를 플랫 앞으로 던졌다. 진효섭의 인적 사항이었다. 그가 면접을 볼 때 냈던 서류가 아닌, 안단테가 직접 알아본 정보였다.

플랫이 종이를 받아 읽기 시작하자 주위에서도 호기심이 도는지 하나둘 흘끔거렸다.

“뭐예요, 이거?”

“보는 그대로. 한국에서 활동했던 기록이 없어. 검사를 받았던 기록도 없고.”

“역시…….”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안단테가 심드렁하게 대답하자 코다가 중얼거렸다. 플랫은 코다를 흘끔 보며 물었다.

“무슨 뜻이야?”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러니까 뭐가.”

“…….”

“뭐냐고!”

코다는 어중간하게만 대답하고 입을 다물었다. 플랫은 답답한 나머지 자신의 명치를 팍팍 쳐댔다.

“아오, 저거랑 말을 하려는 내가 등신이지. 단장. 뭔 소리예요, 저거?”

“이번에 진효섭 씨를 모임에 데리고 갔거든. 근데 아무도 진효섭 씨를 모르더라고.”

안단테가 ‘그렇지?’ 하는 눈빛으로 코다를 바라보자 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코다 역시 그 점을 이상하다 여기고 있었다.

“이상하지. 보통 S급이라면 그 모임에 한 명쯤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하기 마련이거든. 근데 국가안보국 놈들도 모르는 것 같더라.”

“그 S급에 미친놈들이 모르고 있다고요?”

한국에서 최상위라는 국가안보국은 S급 중에서도 꽤 이름 날린다는 사람들을 영입했다. 그들은 S급 가이드라면 얼굴부터 이름, 더하면 성향까지 다 꿰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놈들이 진효섭을 모른다니.

“외국인인가? 마스크는 완전 동양인이던데.”

“나나 체르니랑 비슷할 수도? 한국계 외국인.”

어느새 체르니가 가까이 다가와서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흐응, 어쩐지 정이 가더라.”

“근데 단장. 외국인이라고 하더라도 좀 이해가 안 된단 말이죠. 한국에 들어온 S급 가이드라면 국가안보국 놈들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들키지 않게 조용히 들어왔겠지. 사람들 눈길을 끌지 않고 들어오는 방법이야 한둘이 아니니까.”

“……뭔가 냄새가 나는데요?”

확실히 이상하긴 했다. 진효섭은 아무리 외국인이라고 하더라도 알아볼 수 있는 정보가 없었다. S급 가이드에 플랫이 칭찬할 정도의 능력이라면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졌을 텐데 말이다.

분명 수상한 일이었으나 안단테는 깊은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에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다고 해도 뭐, 별로 상관없지 않아? 우리한테 해될 것도 없는데.”

체르니가 옆에서 안단테의 말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맞아! 효섭 형 귀엽다고!”

“야, 귀여우면 다냐?”

“응.”

그의 단호한 대답과 동시에 안단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코다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미쳤어요?”

“플랫, 넌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사서 해서 걱정이야.”

“하지만 수상하잖아요.”

“네가 더 수상해.”

“맞아. 플랫, 네가 더 수상해.”

플랫의 표정이 구겨졌다.

“너희들한테 듣고 싶진 않거든요?”

“깊게 생각하지 마. 과거에 뭘 했는지, 뭘 숨기고 있는지 뭐가 중요해? 어차피 우리도 썩 좋은 과거를 가지고 있진 않은데. 내 생각에는 너희만큼 살벌한 과거는 아닐걸. 너희 범죄자잖아.”

“……다 알겠는데, 범죄자라고는 말하지 마시죠?”

“그럼 반범죄자?”

“아오.”

플랫이 툴툴대며 고개를 홱 돌렸다. 삐진 걸 드러내는 듯한 행동이었다.

“됐어요. 나중에 뒤통수 맞고 후회하지나 마요.”

“삐졌어?”

체르니가 플랫의 뺨을 쿡쿡 찌르자 그가 냉큼 이를 드러냈다. 그렇게 둘이서 아웅다웅하며 싸워대자 지켜보던 안단테가 작게 웃었다.

“후회를 왜 하겠어. 진효섭 씨는 지금 우리가 딱 원하던 인재인데.”

솔직히 뒤통수를 맞더라도 옆에 두고 싶을 만큼 진효섭은 마음에 드는 인간이었다.

“그렇잖아. 일도 잘하고, 감언이설에 쉽게 넘어오고, 잘 속고, 멍청하고.”

“…….”

“직접 가이딩하고서도 우리가 S급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던데. 그런 놈이 또 어디 있겠어. 이 정도면 우리한테 딱 제격 아닌가?”

“……신랄한 비판이네요. 단장은 그 가이드를 좋게 본 줄 알았는데.”

플랫은 저도 모르게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좋게 봤어. 그래서 칭찬하고 있잖아. 인재라고.”

조금도 칭찬 같지 않은 말을 해대면서 진심이라는 표정이 전형적인 사기꾼 같았다. 플랫이 들으라는 듯 ‘……사기꾼’ 하고 중얼거렸지만 안단테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니까 너희들 모두 의심 같은 거 하지 말고 잘해 줘. 도망치지 않게.”

“저 잘할 수 있어요!”

체르니가 번쩍 손을 들었다.

“형 마음에 들거든요. 내가 진짜 잘해 줄게요.”

“으음, 나는 네가 제일 걱정되는데.”

“엑. 왜요?”

“진효섭이 못 박아 둔 조건을 못 지킬 것 같거든.”

접촉 가이딩 이상은 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본인이 생각해도 자신 없는지 체르니가 난감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였다.

“어…… 으음, 그건 좀 어렵긴 하죠.”

“잘 지켜. 진효섭 씨, 그런 쪽으로 트라우마 같은 거 있어 보이니까. 만약 너 때문에 진효섭 씨가 나간다 어쩐다 하면-”

안단테가 손을 총 모양처럼 만들어 체르니의 미간을 겨눴다.

“죽일 거야.”

“와, 꼭 그렇게 살벌하게 말해야 해요? 우리가 얼마나 오래 알았는데. 사람이 정도 없나.”

“넌 이 정도는 말해 줘야 할 것 같아서.”

언제 협박했냐는 듯 안단테가 빙그레 웃었다.

“다들 우리 하나뿐인 가이드를 아껴 주자고. 썩어 빠진 너희 몸을 이렇게 단번에 고쳐 줄 사람이 흔하진 않잖아?”

* * *

게이트가 열리는 당일. 플랫은 여전히 뚱했고, 안단테는 대충 정리를 끝낸 뒤 상쾌한 얼굴로 진효섭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진효섭 씨, 우리 갔다 올게요.”

반면, 느긋한 그들과는 달리 진효섭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문 앞을 서성였다.

“정말 제가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정말 괜찮다니까요.”

“그래도…….”

안단테는 걱정이 너무 많아서 큰일이라며 진효섭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헤집었다.

“꼭 꼬리 떨어진 강아지 같네요.”

“예?”

“귀엽다고요.”

이해할 수 없는 비유에 진효섭이 눈을 끔뻑였다. 순해 보이는 눈매가 성정을 그대로 내보였다.

“걱정 말고 기다려요.”

안단테와 플랫은 평소와는 다른 복장으로 사무실을 나섰다. 몸에 적당히 달라붙는 옷은 기동성을 최대한 살린 모양이었다.

그들을 내보내며 진효섭은 다소 불안함을 느꼈다. 보통은 가이드가 던전에 함께 들어가지 않는다. 다만, 급한 일에 대처해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기에 게이트 앞에서 기다린다.

하지만 안단테는 단호하게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물론 진효섭 입장에서는 그게 더 편했지만,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려 A급 던전에 들어가는 C급 에스퍼. 무리를 할 게 분명한데 사무실까지 잘 돌아올 수 있을지.

“효섭 형, 걱정 마요. 단장님을 걱정한다는 건 진짜 쓸모없는 짓이라고요.”

“그건 어째서입니까?”

“능력이 살아남는 데 특화되어 있거든요.”

체르니는 씩 웃으며 말했다.

“디버프라고 알고 있어요?”

“예. 알고 있습니다. 대상을 약화하는 능력 아닙니까?”

“맞아요. 디버프에는 꽤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리 단장님이 그 디버프의 대부분을 쓸 수 있는 특별한 케이스거든요.”

진효섭이 느릿하게 눈을 끔뻑였다.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에 체르니는 더 자세하게 그의 능력에 관해 설명했다.

디버프. 대상을 약화하는 능력. 던전에 들어가면 여러 종류의 괴물이 나타나는데, 디버프 계열의 초능력을 가진 에스퍼는 그들을 죽이기 좋게끔 약화한다.

괴물들의 이동속도를 줄이거나 제대로 힘을 내지 못하게, 혹은 특성이 드러나지 못하도록 만든다. 독 속성의 괴물들이 독을 내뿜지 못하게 한다거나, 칼로 썰어도 죽지 않고 아메바처럼 나뉘는 괴물들을 분열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단장님은 원하는 곳에 인조 하늘을 만들어서 각종 자연현상을 내릴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자연현상은 여러 가지인데, 각각 다른 디버프를 가지고 있죠. 엄청난 거예요. 보통은 한 명에 한 가지 꼴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럴 수도 있습니까?”

“처음에는 저도 믿지 못했는데, 가능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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