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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10화 (10/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0화

“진효섭 씨 몸 상태만 괜찮으면 해 줘요. 기왕이면 오늘 온 네 명 전부 다.”

“예. 알겠습니다.”

동시에 체르니가 벌떡 일어났다.

“나는 안 된다고 하더니, 왜 저 새끼들은 된다고 해요?”

“열심히 놀다 와서 힘들어 보이잖아.”

“나는 일하다가 와서 더 힘들었거든요?!”

“너랑은 또 다르지.”

체르니의 얼굴이 머리 색과 똑같아질 정도로 불그죽죽해지자 플랫이 낄낄 웃었다.

“야, 너는 어쩔 수 없잖아. 거슬리는 게 없으면 능력 남용이 심하니까.”

“아무리 그래도 나도 좀 편할 때가 있어야지!”

“어쩌겠냐. 언젠가는 제약이 풀리겠지.”

진효섭만이 그들의 대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가만히 눈을 깜빡이며 가이딩하기 위해 앉은 그의 앞으로 플랫이 손을 내밀었다.

“가이딩이요.”

무뚝뚝한 말이었다. 다른 길드원들을 대할 때와는 확연히 차이 나는 태도기도 했다.

진효섭은 작게 ‘예’ 하고 대답하며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닿은 손을 통해 사람의 온기가 느껴졌다. 꽤 오랜만의 가이딩이었다. 노아피 길드에서는 처음 하는 가이딩이었기에, 익숙한 가이딩이 테스트받는 것처럼 긴장됐다.

작게 숨을 내뱉으며 힘을 끌어 올리자, 몸 안에 있는 신비한 기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치 상대의 몸에 가고 싶다는 듯 부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진효섭은 그것을 플랫에게 조심스레 흘려 넣었다. 오랜만인 것치고는 부드러운 시작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진효섭은 예상과는 다른 느낌에 고개를 갸웃했다.

“……?”

뭘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힘을 불어 넣는 족족 몸에 흡수됐다. 메마른 땅이 물을 흡수하는 속도와 비슷했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힘이 빠져나가서 당혹스러웠다.

놀다 온 C급이 맞는 걸까. 플랫이라는 에스퍼의 몸에는 말도 안 되는 양의 독이 퍼져 있었다. 이 상태로 어떻게 웃으며 농담했던 건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진효섭은 조금 당황해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놀란 그와 달리 플랫은 매우 만족스러워 보였다. 조금 수척했던 얼굴에 금세 생기가 돌았다.

“아, 이제 좀 살 것 같다.”

플랫이 목뒤를 매만지며 오른쪽, 왼쪽 번갈아 가며 목을 가볍게 돌렸다. 그러곤 심드렁했던 처음과는 다른 시선으로 진효섭을 빤히 바라봤다.

“확실히 S급이 다르긴 하네요. 고작 접촉 정도로 청량하다 못해 심장까지 시큰한 느낌이라 좀 놀랐어요.”

청량하다 못해 시큰할 정도. 그 말에 진효섭이 눈에 띄게 위축됐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난데없는 사과에 플랫은 저도 모르게 한쪽 눈썹을 치켰다.

“불쾌하다고 한 적은 없는데요. 묵혀 뒀던 때가 다 벗겨지는 기분이라 좋아요. 가끔은 그럴 때가 있잖아요. 피가 나도록 밀고 싶을 때.”

옆에 있던 체르니가 어떻게 저런 더러운 비유를 다하냐며 툴툴댔다.

“뭐, 아무튼 나쁘지 않다고요.”

짧은 시간 안에 완벽히 몸을 회복한 듯 플랫은 몸을 쭈욱 펴며 가볍게 팔을 돌려 봤다.

“이제 충분해요.”

“아, 예.”

진효섭은 머뭇대며 그와 잡았던 손을 떼어냈다. 고작 C급의 가이딩을 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손끝에 남은 찬기가 강했다. 그만큼 많은 힘을 썼다는 의미였기에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가득했다.

‘원래 C급이 이 정도의 가이딩을 필요로 했나……?’

그가 멍하니 손을 보고 있자 안단테가 다가왔다.

“왜 그래요. 몸 상태가 안 좋아요?”

“예? 아, 아뇨. 그건 아니고…….”

진효섭이 조금 복잡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플랫 에스퍼께서 조금 몸이 안 좋으셨던 듯합니다.”

“아아. 아마 그럴 거예요. 듣기로, 놀러 가서 번지점프 하다가 실수해서 다리가 부러졌다더라고요. 겉은 금방 나았지만 속은 그대로겠죠. 그렇지?”

안단테가 플랫을 보며 물었다. 진효섭 또한 자연스레 플랫을 쳐다보자 그는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뭐…….”

그런 거라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갔기에 진효섭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걸 감안해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아마 오랜만의 가이딩이라서 감이 오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도 해 줄 수 있겠어요?”

“예. 문제없습니다.”

진효섭은 바로 또 다른 에스퍼의 손을 잡았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사람들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역시 대단하네.”

* * *

진효섭은 그대로 침대 위에 뛰어들었다.

“피곤하다.”

오랜만의 가이딩이라서 그런지 몸이 피로했다. 힘을 너무 많이 썼다는 것을 알려 주듯 몸에 열이 올랐다. 가이딩을 너무 많이 했을 때나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진효섭은 멍하니 제 손가락 끝을 주시했다.

“힘이 약해졌나?”

예전에는 죽어 가는 S급을 살려도 조금 허할 뿐이었는데, 지금은 고작 휴가를 다녀온 C급 네 명을 가이딩했다고 몸 안이 텅텅 빈 것 같았다.

“읏.”

꼬리뼈가 욱신거렸다. 열이 오르면서 오는 익숙한 증상이었다. 진효섭은 저도 모르게 몸을 배배 꼬았다. 온몸에 개미가 기어가는 듯 간질간질한 열이 퍼지자, 진효섭은 착잡한 얼굴로 입술을 짓씹었다.

보통 에스퍼는 강대한 힘을 사용하는 데 걸맞은 대가가 필요하다. 가이드의 존재가 그것이다. 하지만 가이드는 가이딩을 하는 데 대가가 필요 없다. 단지 하루에 가이딩할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을 뿐.

하지만 가이드도 S급이 되면 그 ‘대가’라는 것이 생긴다. S급 가이드가 워낙 적어서 대다수가 모를 뿐이다.

진효섭의 경우는 힘을 일정 이상 사용하게 되면 몸에 열이 오르는데, 그 열은 점차 다른 열로 변질된다. 어떨 때는 몸살감기와도 같은 열이 되고, 또 어떨 때는 미칠 것 같은 성욕이 된다.

오늘은 안타깝게도 후자였다.

진효섭은 연신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발가락 하나하나가 굽어들고 더운 숨이 베개에 스며들었다. 가이딩으로 인한 부작용은 평소와는 다른 느낌의 흥분을 자아냈다. 남자라면 몰라야 할 감각을 알게 된 기분. 평소라면 배출구로만 쓰일 곳이 욱신거리는 기묘한 감각이었다.

“흐, 으…….”

애써 숨을 가라앉혀 봤지만 소용없었다. 일정 이상의 욕구를 해소하기 전까지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진효섭은 조금이라도 빨리 야릇한 열감이 사라지기를 바라며 더운 숨을 내뱉었다. 발긋한 얼굴이 베개에 비벼지고 발끝은 바짝 서서 이불을 밀어냈다. 발그레 변했던 귀 끝은 어느새 목까지 번져 있었다.

끙끙 앓던 소리가 극에 달하고서야 마침내 배배 꼬이던 몸이 활처럼 휘었다. 격한 운동을 한 것처럼 온몸이 축축하게 젖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부작용이었다.

진효섭은 힘을 잃고 그대로 이불을 안은 채 널브러졌다. 전력으로 달리기를 한 것처럼 숨이 가쁘고 배 안이 움찔움찔 떨렸다. 부족한 건지, 만족스러운 건지 모를 반응이었다.

부작용이 한차례 몰아닥쳐다가 빠져나가자 몸의 열기는 빠르게 가라앉았다. 이불 빨래와 청소할 거리가 생겼는데 손 하나 까딱하기가 싫었다. 나른한 피로감이 몸을 점령했다.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이 들면 얼마나 좋을까. 일어났을 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깨끗하면 좋을 텐데.

“하아…….”

부작용을 앓고 난 직후에는 힘이 없는 편이었다. 하루 정도 자고 일어나면 금방 돌아오지만 지금은 조금 힘겨웠다.

진효섭은 이부자리를 대충 옆으로 밀어 두고 누워 이불에 묻은 얼룩을 멍하니 바라봤다. 벌꿀 집에서나 날 법한 묘한 단 향이 흘렀다.

부작용도 모자라 이런 향까지. 정말 흉측하기 그지없는 몸이었다. 진효섭은 밤꽃 향에 섞인 단 향을 없애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이불을 끌어모아 세탁기에 집어넣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향이 집 안에서 죄다 빠져나가고 나서야 진효섭은 조금 편안해졌다.

* * *

진효섭이 퇴근한 사무실. 여전히 나른한 분위기를 풍기는 에스퍼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플랫은 한참 생각을 이어 가다 말문을 열었다.

“단장님. 새로 온 우리 가이드 말이에요.”

안단테는 모니터를 보다 말고 플랫을 흘끔 바라봤다.

“진효섭 씨?”

“네. 그 사람 능력이 생각보다 대단하던데.”

“S급이니까.”

“하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솔직히 S급이라고 해도 어딘가 하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벗겨 보니까 하자는커녕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하던데요?”

“그래? 좋은 가이드가 우리 길드라서 다행이네.”

조금도 진심이 담기지 않은 안단테의 대답에 플랫이 탁자를 치며 단장의 주의를 끌었다.

“아니, 단장님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잖아요. 말도 안 되지 않아요? 저 정도 능력을 가진 S급이 왜 C급 길드에 들어와요? 미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지.”

“그럼 미쳤나 보지.”

“자꾸 말 돌릴래요?”

안단테는 하던 것을 그만두고 플랫을 마주했다.

“너야말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나 바쁘니까 확실하게 말해.”

“접촉 가이딩 이상을 하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C급 길드를 선택했다는 건 이상해요.”

플랫은 확신하고 있었다. 저 정도 능력이면 A급 길드에서 손잡는 가이딩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제발 와 달라고 무릎을 꿇었을 거라고. 그런데 어째서 C급 길드를 택했단 말인가.

“체르니 말대로 진짜 스파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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