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8화
“쟤들 노아피 맞지?”
“그럴걸. 노아피 길드장이랑 있었잖아. 게다가 저 옆에 있는 놈은 저번에 미친 새끼 하나가 지랄할 때 봤었어.”
“미친 새끼? 아아, 저번 모임 때 A급한테 개처맞고 출입 금지당한 놈? 아하하, 그거 완전 골 때렸지.”
“노아피 놈들은 하나같이 또라이라니까.”
그들은 대놓고 뒷담을 하기 시작했다. 듣는다고 해도 너 따위가 어떻게 하겠냐는 듯한 태도였다.
“저런 새끼들이 모인 길드는 해체시켜야 하는 거 아니야? 능력도 없는 주제에 사고나 치고. 도움이 되는 게 없잖아.”
“맞아. 활동도 안 할 거면 그냥 번지르르한 얼굴이나 팔아먹고 사는 게 더 낫지 않냐?”
두 사람의 웃음이 아까보다 더 뒤틀렸다.
“내 말이. 저렇게 말라서는, 저게 무슨 에스퍼냐? 난 가이드랑 착각할 뻔.”
“옆에 있는 가이드가 오히려 더 에스퍼 같네.”
“푸핫. 저 새끼들은 어떻게 제대로 된 게 한 놈도 없냐? 가이드 같은 에스퍼에 에스퍼 같은 가이드라니.”
대놓고 깎아내리는 말에 진효섭이 당황해서 코다를 올려다봤다. 자신은 저런 비난이 아무렇지 않다지만, 그는 화가 날지도 몰랐다. 하지만 코다는 처음과 변함없는 표정이었다. 심지어 그들을 보고 있지도 않았다. 애써 무시하는 게 아니라, 저들 자체에 신경 쓰지 않는 듯 철저한 무관심이었다.
아무런 제재가 없으니 그들은 어깨에 한층 더 힘이 들어간 상태로 비난에 박차를 가했다.
“역시 이번에도 던전 안 들어가겠지?”
“야, 대답하는 것도 입 아프다. 쟤들이 언제 한 번 던전을 가기나 했어?”
“하긴. 능력이 없어서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거겠지. 그렇다고 D급처럼 밖에서 정리하고 떨어지는 쓰레기를 줍기는 쪽팔리고.”
남을 조롱하는 것이 뭐 그리 재밌는지, 낄낄대며 즐거워하는 그들을 진효섭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비난하지 못해서 안달이 나 있는 건지 말이다.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자 어느새 주위에 있는 이들도 그들을 흘끔거렸다. 그러나 누구도 제재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들과 같은 생각인지 진효섭과 코다를 바라보는 시선에 한심함이 섞였다. 바닥이라는 노아피의 위치를 새삼 상기시키는 반응이었다.
“그러고 보니, 쟤들 전부 고아랬나?”
“어. 맞아.”
“아하. 저러니까 부모에게도 버림받았나 보네. 능력도 없고 한심하니까.”
그 어떤 비난에도 아무 말 하지 않던 진효섭이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말이 너무 심하신 것 아닙니까?”
그들과 말을 섞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는데, 순간 치솟는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진효섭은 눈을 부릅뜨고 그들을 노려봤다. 그러나 그들은 사과는커녕 어이없어하며 진효섭을 훑어 내렸다.
“고아를 고아라고 부르는데 뭐가 심해?”
뱀눈의 에스퍼가 날 선 얼굴로 삐딱하게 섰다.
“너희 노아피가 능력 없는 것도 사실이고, 하나같이 부모한테 버림받은 것도 사실이잖아. 사실을 말한 게 너무 심한 거냐? 어이가 없네.”
“듣는 사람도 생각하셔야 하는 거잖습니까.”
“뭐? 고작 C급 따위가 뭐라고 나한테 훈계질이야?”
“훈계가 아니라, 이건 상식이자 예의입니다.”
언성이 높아져서인지, 시선이 한데 모였다. 뱀눈 에스퍼는 짜증 난다는 듯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대답 대신 손을 뻗어 진효섭의 멱살을 틀어쥐려고 했다.
하지만 그 손이 멱살을 잡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언제 다가온 건지 코다가 에스퍼의 손목을 쥐고 있었다. 진효섭은 눈을 조금 크게 뜨고 코다를 바라봤다. 그는 변함없는 표정으로 단조롭게 말했다.
“에스퍼와 싸움이 붙어서 좋을 것 없습니다.”
그가 말을 건 것은 처음이었다. 가까이에서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 본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 예. 그렇긴…… 한데…….”
진효섭은 조금 놀란 상태였다. 코다의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순간 자신이 뭘 듣고 있는 건가 멍해졌다.
코다는 잠시 진효섭을 살피다가 어깨를 감싸 가볍게 끌었다. 진효섭은 졸지에 그의 품에 쏙 들어가게 됐다. 마치 지켜주는 듯한 모양새였다.
“제 옆에서 떨어지지 마십시오.”
“……예.”
비로소 코다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2주 정도 함께 있었지만 처음 듣는 목소리와 표정 변화였다. 진효섭이 멍한 표정으로 연신 눈을 끔뻑이고 있자, 에스퍼가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하.”
잊고 있었던 에스퍼를 뒤늦게 쳐다보자, 그는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것들이 사람을 앞에 두고 연애질을 하네. X발. 어이가 없어서.”
에스퍼가 코다에게 잡힌 손을 뿌리치기 위해 강하게 휘둘렀다. 하지만 상황은 그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남자치고 가는 손목과 마른 몸을 가진 코다는 그보다 훨씬 더 두껍고 튼튼해 보이는 에스퍼를 쉽게 제압했다. 에스퍼가 아무리 흔들어도 붙들린 손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야, 안 놔? 놓으라고! 새끼야!”
그가 한껏 당황스러워하며 윽박질렀으나 코다는 여전히 말간 얼굴이었다.
“이런 씹……!”
그리고 에스퍼가 머리에 열이 올라 있는 힘을 다해 손목을 당겼을 때, 코다가 손에 힘을 풀었다. 쿠당탕! 에스퍼가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한심한 꼴이었다. 옆에 있던 동료로 보이는 에스퍼가 어이없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너 지금 뭐 하냐?”
“아니, 저 새끼 힘이……!”
뱀눈의 남자가 당황한 듯 입술을 짓씹었다. 그 순간 풋, 어디선가 비웃음이 들렸다. 동시에 그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시한폭탄과도 같은 얼굴이었다.
“개X끼가……. 넌 뒈졌어.”
에스퍼의 손아귀 안에서 초록빛이 일렁였다. 능력을 끌어 올리고 있는 것이다. 진효섭은 떨리는 손으로 코다의 소매를 부여잡았다.
“코, 코다 에스퍼.”
“괜찮습니다.”
코다는 진효섭을 제 뒤로 물린 후 안심시키려는 듯 가볍게 손을 잡았다. 우습게도 그 온기에 진효섭은 조금 안도했다. 상대가 최소 B급 이상으로 보이는데도 이상하게 위험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상하게도 말이다.
“괜찮다고? 하.”
그사이 이름 모를 에스퍼는 분노를 차곡차곡 쌓고 있었다.
“맹세하는데, 너 오늘 안 괜찮을걸.”
뱀눈 에스퍼가 손에 초록빛을 두른 채 그들을 바라봤다. 일촉즉발의 상황에 주위의 시선이 죄다 그들에게 모인 찰나-
“뭐 해?”
화가 잔뜩 난 에스퍼의 뒤에서 익숙한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인기척 하나 없이 다가온 탓에, 에스퍼가 깜짝 놀라 능력을 두른 손을 그대로 휘둘렀다.
“잠깐……!”
진효섭이 놀라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초록색으로 물든 손은 안단테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아야.”
“노, 노아피 길드장?”
반사적인 행동이었던 듯 정작 손을 휘두른 에스퍼가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안단테는 제 광대뼈를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맞은 곳이 무척이나 아픈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아, 아파라. 이거 광대뼈가 부러진 것 같은데.”
물론 말과는 달리 뺨은 멀쩡했다. 살짝 붉어진 것 같지만, 정말 자세히 봐야 티가 날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는 아파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전치 한 달은 나올 것 같지?”
“뭐, 뭐라는 거야.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데.”
“그럴 리가 있나. C급이 B급한테 무방비 상태에서 맞았는데.”
안단테는 한쪽을 흘끔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후유증이 세게 올 것 같아. 너희 길드장과 얘기를 나눠 봐야겠는데, 너 B급인 체스(CHESS) 길드 소속 맞지?”
에스퍼의 얼굴색이 순식간에 새파래졌다. 안단테가 길드를 알아보자 그는 눈에 띄게 초초해하기 시작했다. 안단테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길드원과 싸움이 나는 것과 길드장과 싸움이 나는 건 천지 차이라는 걸 알아서였다.
길드장과의 문제는 대부분 득보다 실이 많았다. C급이든 B급이든, 등급과 관계없이 길드장은 일반 길드원보다 타 길드의 길드장과 인맥을 많이 쌓아두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체스의 길드장은 원리·원칙주의자여서 이런 문제를 싫어한다고 들었는데…… 아, 역시 표정이 별로 좋지 않네.”
그 말대로 방금 이쪽을 발견한 듯 보이는 체스의 길드장은 잔뜩 굳은 표정이었다. 에스퍼는 한층 더 초조해졌다.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는 게 뻔히 보일 정도였다. 그것을 바라보던 안단테가 피식 웃었다.
“기회 줄게. 지금 꽁지 빠지게 도망치면 문제 삼지 않을 거야. 어쩔래?”
도망친다는 말에 에스퍼가 눈썹을 꿈틀거렸지만, 길드장이 쳐다보고 있었기에 충동적인 행동을 더 이어 나가진 않았다.
“……젠장. 두고 보자.”
그는 이를 벅벅 갈며 밖으로 나갔다. 함께 있던 동료도 뒤따라 나가자 안단테는 혀를 끌끌 찼다.
“이대로 넘어가 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 줄 모르네. 아무튼 멍청한 것도 죄라니까.”
그러곤 코다와 진효섭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코다, 별일 없었어?”
코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다행이네. 역시 코다는 일을 잘해.”
진효섭은 여전히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있는데, 그들은 방금 일이 기억나지 않는 듯한 태도였다. 그 정도는 문제라고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길드장님, 뺨은 괜찮으십니까?”
“절 걱정해 주는 거예요?”
“세게 맞지 않았습니까.”
분명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어째서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B급에게 맞았는데 C급 에스퍼가 괜찮을 리 없었다.
“하하, 걱정해 줘서 기쁘네요. 근데 괜찮아요. 모기 물린 것 같은 정도라서.”
“정말입니까?”
“네.”
안단테를 면밀히 살폈지만 특별히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