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꿀 발린 S급 가이드-7화 (7/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7화

“저…… 그런데, 체르니 에스퍼는 괜찮습니까?”

“음? 체르니 얘기가 갑자기 왜 나와요?”

“보니까 세 명만 출입이 가능한 것 같아서요. 원래라면 체르니 에스퍼가 와야 할 자리를 제가 뺏은 게 아닌가 하고…….”

안단테는 별걸 다 걱정한다며 피식 웃었다.

“그런 걱정은 말아요. 진효섭 씨 없었으면 코다랑 둘이서만 왔을 테니까. 체르니는 여기 못 들어오거든요.”

“예? 어째서입니까?”

“그야, 여기는 미친놈 출입 금지니까요.”

뜬금없는 말에 진효섭은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전에 체르니가 여기서 했던 일을 들으면 아마 이해될 거예요.”

생각하기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안단테는 혀를 끌끌 차며 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1년 반 정도 전, 안단테는 코다, 체르니와 함께 길드 모임에 참여했었다. 보통 이런 모임에서 그들에게 다가오는 이는 없었는데, 그날은 처음 보는 가이드 한 명이 다가왔었다. 당시 말을 받아 줬던 게 체르니였다.

‘저, 실례해요. 여기 야외 정원이 어딘가요?’

‘여기에서 좀 떨어진 곳인데, 말로 설명하기에는 지리가 복잡해서 어렵네요.’

‘그런가요……. 그럼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중요한 볼일이에요?’

‘아뇨. 그건 아니고, 그냥 거기 소강당이 예쁘다는 소리를 들어서요. 모임에 처음 참여했던 터라…….’

‘어쩐지, 이렇게 예쁜 사람은 본 적 없어서 처음 오신 거라고 생각했어요.’

‘예, 예쁜 사람이요? 아, 그, 감사합니다.’

‘감사하긴요. 제 눈이 더 감사하지. 처음이면 제가 주위를 구경시켜 드릴까요?’

‘정말요? 좋아요!’

체르니는 그답지 않게 점잖은 척을 했고, 처음 보는 가이드와 같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소란이 인 곳에서 체르니는 피투성이인 채로 낄낄대며 웃고 있었다. 그 바로 옆, 덜덜 떠는 가이드의 목에 붉은 자국이 있는 걸로 봐서 굳이 묻지 않아도 상황이 이해됐다.

그날 모임은 치정 싸움으로 엉망이 되었다. 그 가이드에게는 본디지 파트너 겸 애인이 있었고, 불행스럽게도 그는 A급이었다. 폭발한 A급 에스퍼는 체르니와 함께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놨다. 그가 진정할 수 있었던 건 S급이 와서 힘으로 말렸을 때였다.

“그날 이후 체르니는 출입 금지가 됐고, 그런 문제를 일으킬 만한, 한마디로 미친놈 같은 길드원은 모임에 출입 금지한다는 규칙이 생겼어요. 덕분에 지루했던 모임이 유일하게 즐거웠던 날이었죠.”

안단테는 그 당시의 일을 아주 가볍게 취급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진효섭은 침묵한 채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를 기분에 휩싸였다.

“……체르니 에스퍼는 괜찮았습니까?”

침묵이 길어져 어색해지지 않도록 진효섭은 그나마 무난한 질문을 골랐다. C급 에스퍼가 A급 에스퍼의 분노를 감당하기엔 무척이나 힘들었을 테니까.

“당연히 괜찮지 않았죠. 얼굴이 다 터지고 팔 하나, 다리 두 개 다 부러졌거든요.”

“아…….”

진효섭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서렸을 때였다.

“근데 걱정할 필요 없어요. 체르니는 원래 괜찮았던 적이 없는 놈이거든요. 그, 정신 상태가 좀 별로라서.”

안단테가 검지를 귀 옆에 대고 빙빙 돌렸다. 그러곤 체르니의 몸 상태를 걱정한 진효섭에게 몸보다 정신 상태를 더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장을 보면 대충 어디 가이드인지, 연인이 있는지 없는지 뻔히 알 텐데도 데려가서는 그런 짓을 벌이지 않나. 화내는 에스퍼 새끼 앞에 두고 낄낄 웃어대질 않나.”

“…….”

“정말 우리 길드원에는 제대로 된 놈들이 없어서 큰일이에요.”

어쩐지 그 장면이 보지 않았는데도 떠올랐다. 화내는 A급 에스퍼와 맞으면서 낄낄대는 체르니. 진효섭이 보던 체르니는 미친놈까지는 아니었는데, 그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 바 은연중에 평범하진 않다고 생각한 것 같다. 체르니의 금안은 가끔 선득한 느낌을 주곤 했었으니 말이다.

진효섭은 입술을 달싹이다 처음부터 계속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도와주지는 않으셨습니까?”

“도와? 제가 왜 도와요. 그 새끼가 맞을 만한 짓을 한걸.”

안단테가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었다.

“애인도 있고, 본디지 파트너도 있는 남의 길드 소속 가이드는 건드리지 않는 게 예의잖아요.”

“……그래도요.”

진효섭은 우물쭈물하면서도 단호하게 제 생각을 전했다.

“비난은 다른 사람들한테 많이 받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같은 길드원이라도 걱정을 해 줘야죠.”

어쩐지 우울한 음성이었다. 본래 감정 표현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던지라 그 차이는 평소에 비해 아주 미미했다. 하지만 변화에 예민한 안단테와 코다는 단번에 느꼈다. 둘은 동시에 진효섭을 빤히 응시했다.

안단테가 모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진효섭 씨는 참 착하네요.”

“……그렇지 않습니다.”

세 명 사이에 묘한 기운이 흘렀다. 진효섭은 그것이 본인 때문인 같아 괜스레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어떻게 말을 돌려야 하나, 걱정하고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다른 쪽에서 시선을 끌어 줬다.

어떤 남자 하나가 멀리서도 확실하게 느껴질 만큼 존재감을 뿜어내며 단상에 올랐다. 주위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마치 공기가 바뀐 듯한 느낌이었다. 남자는 좌중을 훑는 것만으로 단번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모든 길드가 모여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번 일의 주체를 맡은 국가안보국 길드장, 신해창입니다.”

신해창이라 자기소개 한 남자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분명 자신을 낮추는 인사를 했음에도, 서슬 퍼런 두 눈은 조금도 낮아져 있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대표 길드이자 유일한 S급 길드 ‘국가안보국’.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국가안보국은 현 정부도 한 수 먹고 들어간다는 어마어마한 길드였다. 당연하게도 그 길드의 길드장은 모든 에스퍼의 선망이자 존경의 대상이고, 가이드에게는 파트너로 삼고 싶은 최고의 에스퍼였다.

“여러분들을 급하게 소집한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그의 뒤로 하얀 벽에 빔이 쏘아졌다. 우리나라의 지도에 점이 열한 개나 찍혀 있었다.

“4일 전 열린 던전의 게이트 사진입니다. 이러한 규모의 던전은 이전에도 많았기에 걱정 없지만, 문제는 이것들이 전부 동시에 생겼다는 겁니다.”

그는 지도에 있는 커다란 점부터 하나하나 짚어 나갔다.

“S급 던전 하나, A급 던전 둘, B급 던전 다섯, C급 던전 세 개로 총 열한 개입니다. 정부에서는 길드가 한쪽 던전에 몰릴 것을 걱정하여 이렇게 긴급 집합 명령을 내렸습니다.”

집합 이유는 안단테가 말했던 것과 똑같았다.

“S급 던전은 우선권이 없기에 미국 S급 길드로 넘어갔고, 나머지는 한국에서 생긴 게이트이기에 나라 우선권으로 한국이 거의 다 챙겼습니다. 오늘은 여기 모인 길드들이 어느 던전에 참여할지 분배할 예정이니 각 길드의 길드장은 안내를 따라, 안쪽 방으로 모여 주시길 바랍니다.”

주위를 훑던 신해창의 시선이 진효섭이 있는 곳에서 멈춰 섰다. 정확히는 안단테가 있는 쪽이었다.

“……모임에 참여하지 않을 시 불이익이 있을 겁니다.”

신해창은 그 말을 끝으로 단상에서 내려갔다.

조용했던 주위는 다시 시끌시끌해졌다. 길드장으로 보이는 이가 하나둘 움직였고, 안단테는 깊은 한숨을 쉬어댔다. 잔뜩 기대하는 얼굴인 다른 길드장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아, 무서워라. 에스퍼들은 너무 야만적이라니까.”

마치 자신은 에스퍼가 아닌 것 같은 말이었다.

“길드에 불이익이 있을 거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가 봐야겠네요. 코다, 너는 진효섭 씨 잘 챙기고. 진효섭 씨는…….”

안단테가 디저트 접시를 진효섭의 손에 꼭 쥐여 줬다.

“먹으면서 기다리고 있어요. 코다가 지루한 놈이기는 해도, 여차할 때 도움이 될 테니까 웬만하면 떨어지지 말고요.”

그러곤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사람들이 모이는 방향으로 사라졌다. 자리에는 코다와 진효섭, 단둘만이 남았다. 손바닥에 얹어진 디저트 접시에 진효섭은 아이가 된 기분이 됐다.

“……드시겠습니까?”

진효섭이 코다에게 디저트를 내밀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어쩔 수 없이 제 몫이 된 디저트를 진효섭은 묵묵히 집어 먹었다.

한국에는 수많은 길드가 있고, C급 길드는 그 안에서 존재감이 없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시선을 받아서 긴장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들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어마어마한 안도감이 들었다. 진효섭은 자신도 마치 같은 C급이 된 것 같은 편안한 마음으로 디저트를 즐겼다.

기다림의 시간은 생각보다 느리게 흘렀다. 디저트로 배가 가득 찼다. 이제 생크림이든 달콤한 빵이든 물려서 못 먹을 정도였다. 덕분에 진효섭은 화려한 건물을 두리번거리는 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

‘확실히 C급이랑은 대우가 다르긴 하네.’

15평짜리 사무실과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는데, 어디선가 작은 비웃음이 들렸다.

“진짜 촌티 내는 것도 아니고. 왜 저렇게 두리번거려?”

명백히 자신을 두고 하는 말에 진효섭이 옆을 돌아봤다. 누가 봐도 에스퍼 같은 남자 둘은 눈이 마주쳤는데도 빈정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