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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5화 (5/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5화

‘지루하다…….’

정말 많이 지루했다. 전에는 체르니가 있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고 이렇게까지 지루하지 않았는데, 안타깝게도 오늘은 사무실에 혼자뿐이었다. 진효섭은 다시는 청소하겠다고 나서지 않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사무실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지루한 시간을 죽이기에 적당했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가 지나고 청소를 다 끝냈을 즈음 세 남자가 함께 사무실에 들어왔다.

“으어…….”

체르니가 수척해진 얼굴로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몸을 던졌다. 피곤을 온몸에 덕지덕지 붙인 느낌이었다. 그 뒤를 안단테가 웃는 표정으로 들어왔다.

“좋은 아침이에요, 진효섭 씨.”

“예. 좋은 아침입니다.”

마지막으로 늘 단정한 차림의 코다가 들어왔다. 그는 언제나 그랬듯 말없이 고개를 까딱거렸다. 진효섭 역시 그에게 고개인사를 했다. 한 번도 말을 섞어 본 적이 없어서 자신을 싫어하나 생각한 적도 있지만, 인사만큼은 잊지 않는 걸 미루어 그건 또 아닌 것 같았다.

그때, 옆에서 체르니의 앓는 소리가 들렸다.

“아…… 진짜 죽겠다…….”

자연스레 고개가 돌아갔다.

“괜찮습니까?”

“아뇨. 안 괜찮아요. 저 힘들어 죽을 것 같아요, 형.”

체르니는 아랫입술을 쭉 내밀었다. 안 그래도 어려 보이는 얼굴이 한층 더 아이 같아졌다. 어제의 고양이 찾기 때문인 걸까.

“힘드십니까?”

“네. 저 좀 위로해 주세요, 형.”

그가 애처롭게 진효섭을 바라봤다. 진효섭은 ‘위로’라는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가이딩해 드릴까요.”

고작 고양이 찾기지만 분명히 능력은 썼을 것이다. 어느 정도 피로감이 쌓였을 테니 가이딩을 하면 몸 상태는 훨씬 나아지리라. 진효섭은 체르니 역시 그걸 염두에 두고 위로해 달라 말했다 생각했다.

역시 그 생각이 맞았는지, 체르니가 활짝 웃으며 벌떡 침대에서 일어났다.

“네! 해 주세-”

“안 돼.”

안단테가 단호하게 체르니의 말을 잘랐다. 평소에는 항상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오늘은 무슨 생각인지 진효섭이 앉아 있는 소파 옆에 자리 잡은 그였다.

“고작 고양이 찾기로 무슨 가이딩이야. 그냥 참아.”

“아니, 단장님 진짜 사람이 너무한 거 아니에요? 오늘 아침까지 굴려 먹어 놓고 그딴 말이 나오는-”

“그러고 보니 우체국에서 물건 하나 받아 와야 하는데, 체르니 네가 갔다 와.”

“……내가 가라고요?”

“응.”

“지금 나보고 가라는 말이 나와요?”

“얼른.”

안단테가 싱긋 웃자 체르니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조금만 더 진해지면 머리 색과 똑같아질 기세였다.

“와, 단장님 진짜, 와! 왁!!”

쿵쾅쿵쾅 소리가 날 정도로 거칠게 발을 옮기며 문을 향해 걸어간 체르니가 뒤를 돌아보더니 꽥 소리를 질렀다.

“내가 이놈의 길드 관두고 말지!”

쾅! 문이 부서질 듯한 소리를 내며 닫히자 안단테가 혀를 끌끌 찼다.

“어쩐지 문이 자주 고장 난다 했어. 업체를 불러서 철문으로 바꿔 버릴까.”

아, 그럼 벽이 부서지려나. 안단테의 진지한 고민이 이어졌다. 관둔다고 소리를 지른 체르니는 이미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진효섭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러셨습니까?”

“음? 뭐가요?”

안단테는 여전히 순진무구한 표정이었다.

“가이딩이 필요해서 가이드를 뽑으신 거 아닙니까?”

“그렇죠.”

“그런데 왜…….”

“필요 없으니까요. 고작 고양이 찾기 정도로 무슨 가이딩이에요.”

“하지만 가이드가 있는데 굳이 불편함을 참을 이유가 있습니까?”

“사소한 독은 쌓여 있는 편이 좋아요. 항상 쾌적한 상태로만 있으면 몸이 평화에 찌들어 버리거든요.”

“예……?”

그가 하는 말은 수수께끼처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자신이 보기에 노아피 길드는 평화에 찌든 지 오래였다. 그런데 왜 굳이 힘든 길을 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진효섭은 본인이 평범한 사람에 비해 지식이 부족해서 이해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그가 하는 말은 너무 어려웠다.

안단테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진효섭과 눈을 마주했다.

“왜요. 가이딩이 하고 싶어 죽겠어요?”

“그렇게 말하진 않았습니다. 그저, 가이드가 있는데 굳이 참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이런 식이면…… 제가 할 일도 없고요.”

“그건 걱정하지 마요. 곧 지겹도록 하게 될 테니까.”

나른하게 웃은 안단테가 탁자의 정리된 한 부분을 가리켰다.

“그보다, 일찍 와서 청소라도 한 거예요? 사무실이 깨끗하네요.”

“일찍 온 건 아닙니다. 정확히 여덟 시 오십 분에 출근해서 앉아 있다가 한 시간 뒤에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요?”

안단테가 소파 등받이에 팔꿈치를 걸친 채 진효섭의 뒷머리를 가볍게 문질렀다.

“청소 좋아하나 보네요. 어쩐지 집도 깨끗하다 싶더니.”

진효섭이 딱히 그건 아니라고 대답하려 할 때였다. 맞은편에 앉은 코다가 책장을 넘기다 말고 고개를 들어서 그들을 빤히 보았다. 진효섭과 안단테를 번갈아 보는 시선이 어쩐지 묘했다.

집에 다녀갔다는 얘기 때문인 걸까. 소파에 앉아 책을 펼치고 읽기 시작하면 누가 뭐라 하든 움직이지 않았던 남자였는데, 저렇게 쳐다보자 왠지 이상한 오해를 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문득, 진효섭은 안단테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눈 돌아간 에스퍼한테 가이드는 그저 맛 좋은 먹잇감이거든요. 함부로 들였다가는 큰일 날 수도 있어요.’

가이드인 진효섭이 에스퍼인 안단테를 집에 들였다. 사실만 놓고 보자면 코다라는 에스퍼가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맛 좋은 먹잇감과 그걸 탐하는 짐승이 한집에 있었다는 건 오해의 요지가 되기 충분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안단테가 눈 돌아간 에스퍼라는 뜻은 아니지만 말이다.

“저……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코다는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진효섭을 빤히 바라봤다. 일자로 닫은 입술과 정갈해 보이는 차림이 수도사 같아 죄를 고해야만 할 것 같았다.

“하하, 갑자기 코다에게 왜 그런 걸 말하고 그래요? 누가 보면 둘이 사귀는 줄 알겠네.”

안단테가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아마 쟤도 알 거예요. 어제 나랑 그쪽이랑 무슨 일이 있었으면, 이렇게 걸어 다닐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렇지, 코다?”

“…….”

코다는 비로소 다시 책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 긍정인지 부정인지 모를 반응이었다.

“그보다 진효섭 씨, 이제 곧 열두 시인데 점심 먹어야죠.”

“아, 예.”

진효섭은 출근한 지 세 시간 만에 찾아온 점심시간에 가방을 가져왔다. 그가 주섬주섬 꺼내 든 건 하늘색 도시락이었다. 도시락을 꺼내자마자 안단테가 웃는 낯으로 물었다.

“오늘은 뭐 싸 왔어요?”

“소시지 볶음이랑 주먹밥을 좀 해 왔습니다.”

말한 대로, 그의 도시락에는 맨밥을 뭉친 주먹밥과 칼집이 난 소시지 볶음이 정갈하게 담겨 있었다. 안단테는 도시락을 유난하다 싶을 정도로 빤히 쳐다봤다. 그것이 마치 먹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여 진효섭은 조심스레 그 앞으로 주먹밥을 내밀었다.

“드시겠습니까?”

“매번 물어보네요. 언제나 안 먹겠다고 대답했는데도.”

“쳐다보고 계시니까요.”

“그건 신경 쓰지 마요.”

그렇게 말하니 한층 더 신경이 쓰였지만 보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다. 길드에 든 지 10일. 길드장이 하고 싶은 건 꼭 하는 스타일이라는 걸 알아차리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진효섭은 그에게 내밀었던 주먹밥의 랩을 조심스레 뜯어 꼭꼭 씹어 먹었다. 커다란 덩치의 남자가 조그만 주먹밥을 작게 베어 무는 모습이 뭐 그리 보기 좋은지, 안단테는 입꼬리를 끌어 올린 채 진효섭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입이 작네요.”

“예? 아, 예. 그런 편입니다.”

오물거리느라 작게 대답하자 그를 느릿하게 훑은 안단테가 모호하게 웃었다.

“한입에 담기는 어렵겠네.”

“뭐가 말입니까?”

“소시지요.”

진효섭은 도시락에 담긴 소시지를 내려다봤다. 칼집이 난 소시지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이 정도는 가능합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안단테가 실실 웃어댔다. 웃음소리가 유난히 음흉했다.

“그런데 진효섭 씨, 이 정도만 먹고서 배 안 고프겠어요?”

“괜찮습니다.”

“하지만 영양분이 부족해 보이는걸요. 제 기억엔 분명 첫날, 반찬 가짓수가 네 개였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점점 줄어들어 가는 것 같단 말이죠.”

젓가락이 소시지를 집으려다 말고 멈췄다. 첫날부터 계속 컴퓨터만 빤히 쳐다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언제 그걸 확인하고 있었던 건지.

“……준비하기 귀찮아서 그랬습니다.”

어수룩한 거짓말이었지만 안단테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아침마다 일어나서 도시락 준비하는 게 보통 일은 아니죠.”

그러곤 돌연 잠자코 앉아 있는 코다를 향해 카드를 내밀었다.

“코다, 나가서 고기반찬 몇 가지만 사 와. 우리 가이드가 영양실조에 걸리면 곤란하잖아.”

코다는 진효섭을 흘끔 보고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이 많은 체르니와는 정반대인 사람이었다. 안단테는 코다가 나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진효섭에게 물었다.

“혹시 생활비가 부족해요?”

“아…… 그게…….”

진효섭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이를 물어보기 위해 일부러 코다 에스퍼를 내보낸 거구나. 거짓말이 그대로 티가 났다는 것이 조금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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