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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3화 (3/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3화

“단장님, 우리 길드 가이드가 심심하대요. 뭐라도 해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자, 잠깐만요. 안 그러셔도 됩니다.”

진효섭은 조금 당황해서 체르니의 팔을 잡아당겼다. 이러라고 심심하다 말한 게 아니었는데. 설마 이게 바로 인터넷에서 말하던 길드 내 괴롭힘인가.

“이런.”

모니터만 바라보던 안단테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진효섭 씨, 많이 심심해요? 우리 소중한 가이드가 심심하면 안 되는데.”

“……아닙니다. 그냥 가만히 있겠습니다.”

그냥 할 일이 없어서 청소한 것뿐인데, 일이 좀 이상하게 돌아가 버렸다. 진효섭이 가만히 자리에 앉자 안단테가 작게 웃었다.

“마침 딱 할 일이 들어왔는데. 진효섭 씨, 같이 갈래요?”

“할 일 말입니까?”

“네. 심심하다고 했으니까.”

진효섭은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도 하고 집에 들어가면 훨씬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돕겠습니다.”

“그럼 본인 물건 챙겨요. 바로 출발하게.”

“예.”

한 게 없으니 따로 챙길 것도 없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가방을 어깨에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안단테가 그를 귀엽다는 듯 웃으며 바라봤다. 그리고 사무실을 나서기 위해 걸음을 옮기려다 말고 뒤늦게 생각났는지 체르니에게 말했다.

“아, 맞다. 체르니. 최근에 했던 고양이 찾기. 다시 하러 가야겠더라.”

“예?! 아니, 왜요? 그때 완벽하게 찾아 줬잖아요!”

“철조망에 틈이라도 있었나 봐. 다시 도망쳤다더라고.”

“아니, 이 미친 진짜.”

질겁하는 체르니의 반응에 안단테가 어깨를 으쓱했다.

“어쩌겠어. 주인이 무능한걸.”

“아, 저 말고 다른 사람 시키면 안 돼요? 저기 쉬고 있는 놈 하나 더 있잖아요.”

체르니가 소파에서 책을 읽고 있는 또 한 명의 길드원을 가리켰다.

“코다에겐 이미 다른 일 맡겨 놨으니까 그냥 네가 해. 그런 거 제격이잖아.”

“저 고양이 알레르기 있거든요?”

“약 먹고 하든가. 자, 그럼 우리는 갈 테니까 수고.”

안단테는 빙그레 웃으며 진효섭을 이끌었다. 사무실 안에서 짜증스러운 체르니의 욕설이 이어졌지만, 안단테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진효섭은 안단테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괜찮습니까?”

“뭐가요?”

“체르니 에스퍼가 고양이를 많이 싫어하시는 것 같으셔서…….”

“아아, 그건 걱정 마요. 고양이는 쟤를 좋아하거든요.”

“예?”

“그러니까 딱 제격이지 뭐예요. 고양이 찾기.”

안단테는 체르니 일에는 신경 쓸 필요 없다며 빙긋 웃었다.

“항상 하는 일인데 어려운 것도 없어요. 그보다, 우리도 이제 일 가야죠.”

그러곤 매끈하게 빠진 차를 턱으로 가리켰다.

“타요.”

“이 차입니까?”

“네. 왜, 마음에 안 들어요?”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라……. 아닙니다.”

너무 비싸 보이는 차라서 놀랐다는 말을 삼키며 진효섭은 차에 올라탔다. 처음 타 보는 고급스러운 차에 내부를 둘러보고 있자니 안단테가 운전석에 올라탔다.

“출발할게요.”

“예. 그런데 저희 어디로 갑니까?”

“유치원이요.”

……유치원?

* * *

얼이 빠진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진효섭은 차마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며 엉거주춤 섰다. 눈앞에 벌어진 풍경이 영 현실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딱딱하게 서 있는 그를 보다 못한 안단테가 직접적으로 요구했다.

“효섭 씨, 더 흔들어 봐요.”

“……흔들고 있습니다.”

“좀 더 세게 쥐고 흔들어요.”

“……예. 알겠습니다.”

진효섭은 하라는 대로 손에 쥔 것을 더 강하게 흔들었다.

딸랑! 딸랑딸랑! 손에 쥔 두 개의 장난감이 세찬 소리를 냈다. 그러자 유치원에 다니기엔 다소 어려 보이는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진효섭을 바라봤다.

찰칵-

“아, 됐어요. 딱 좋네요.”

안단테는 카메라를 놓고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옆에서 아이들을 챙기던 선생님을 향해 물었다.

“선생님, 이게 마지막이죠?”

“네. 이걸로 끝이에요. 이번에도 정말 감사했습니다.”

“별말씀을요.”

안단테는 카메라를 가방에 챙기고 진효섭에게 다가갔다.

“이제 끝이에요. 수고 많았어요.”

“……아닙니다.”

“잘 흔들던데요. 많이 해 본 솜씨예요.”

그가 손을 가볍게 말아 쥐고 다소 저질스러운 움직임을 취했다. 진효섭이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며 그의 손짓을 막았다. 양손에 든 장난감이 딸랑딸랑 소리를 냈다.

“유, 유치원에서 무슨 행동이십니까.”

“장난인데 뭐 어때요.”

“애들이 보지 않습니까.”

“어차피 모르잖아요.”

“그래도 안 됩니다.”

진효섭의 단호한 태도에 안단테가 작게 웃었다.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다행히도 더 이상의 이상행동은 하지 않았다.

저번에도 생각했던 거지만, 체르니도 그렇고 이 남자도 그렇고 모럴이라는 게 없는 듯했다. 이 사람들이 이상한 건지, 원래 에스퍼들은 다 이 모양인지.

“그보다 우리 이제 돌아갈 건데, 딸랑이는 계속 들고 있을 거예요?”

“딸랑이……? 아.”

진효섭은 아직도 손에 들고 있는 일명, 딸랑이라는 장난감을 내려놨다.

“원한다면 가져가도 돼요. 내가 선생님한테 얘기해 볼 테니까.”

“원하지 않습니다.”

“아쉽네요. 흔드는 거 멋졌는데.”

“…….”

진심인지 장난인지 모를 말을 하며 혼자 즐거워하던 안단테에게 유치원 선생님 중 가장 젊어 보이던 여자 선생님이 다가왔다.

“이제 가시게요?”

“예. 할 일은 다 끝났으니까요.”

“이렇게 와 주셨는데 식사라도 하고 가세요. 우리 유치원 밥이 상당히 괜찮거든요.”

유치원 선생님이 안단테의 팔을 조심스레 잡았다. 볼이 발그레한 것이, 누가 봐도 호감이 서린 얼굴이었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이미 선약이 있어서.”

하지만 안단테는 보란 듯이 진효섭을 잡아당겼다. 진효섭은 갑작스러운 힘에 휘청했지만 다행히 넘어지진 않았다. 안단테의 탄탄한 가슴팍에 뺨이 닿았을 뿐.

“이번에 새로 들어온 우리 길드의 가이드인데, 기념으로 같이 데이트라도 하려던 참이거든요.”

“가이드요?”

의외라는 시선이 진효섭에게로 향했다.

“그러셨구나. 전 같은 에스퍼인 줄만 알았는데…….”

보통 에스퍼는 많이 움직이는 편이라 몸이 탄탄하고 좋았으며, 가이드는 내부 일을 해서 하얗고 마른 몸을 가졌다. 그래서 에스퍼와 가이드가 함께 다니면 그 관계가 딱 눈에 들어왔다. 다만 진효섭은 그런 보통의 기준과 맞지 않아서인지, 일반 사람은 대부분 착각하곤 했다.

의외는 곧 부러움으로 바뀌었다. 가이드라는 게 부러운 건지, 아니면 안단테와 데이트를 한다는 게 부러운 건지 모를 시선이었다.

“그럼 사진은 내일까지 메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저희는 이만.”

안단테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진효섭을 이끌었다. 진효섭은 그에게 한 손에 잡힌 제 팔뚝을 흘끔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튼튼한 팔이건만, 한 손으로 휘어잡은 것이 신기했다. 손이 엄청나게 크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어디 갈까요?”

“예?”

뒤늦게 고개를 들자, 안단테가 즐거운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데이트 말이에요. 맛있는 거 먹으러 가고 싶은데. 좋아하는 음식 있어요?”

“저녁 식사 말입니까.”

진효섭은 손목시계를 흘끔 바라보곤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그냥 집에 가서 먹겠습니다.”

“왜요? 같이 먹고 들어가면 집에서 안 챙겨 먹어도 되고 편하잖아요.”

“저녁에 먹을 걸 만들어 둬서 괜찮습니다.”

안단테의 눈매가 슬쩍 가늘어졌다.

“혹시 집에 같이 먹을 사람이라도 있어요?”

“아뇨. 혼자 먹습니다.”

“흠, 근데 왜 그렇게 철벽을 치실까.”

“……예?”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로 진효섭이 눈을 깜빡이자 안단테가 그를 가만히 훑다가 작게 한숨을 쉬며 눈을 내리깔았다. 유난히 긴 속눈썹이 하얀 뺨에 드리우고, 색소가 옅은 눈에 씁쓸함이 배어났다.

“사실 제가 혼자 밥 먹은 지 오래됐거든요. 매일 집에서 혼자서 밥을 먹으려니 조금 외로워지더라고요.”

“어…… 하지만 길드원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놈들은 저랑 같이 밥 먹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아무리 그래도 제가 길드장이잖아요. 불편하겠죠.”

그런가. 진효섭은 곰곰이 생각해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겠네요.”

“그래서 매일같이 혼자 밥 먹고 있는데…… 영 우울하고 외롭네요. 아, 알아보니 저녁에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은 우울증이 걸릴 확률도 높아진대요.”

“저, 정말입니까?”

“네.”

진효섭의 눈에 안타까움이 번졌다.

“길드원분들 말고는 함께하실 분이 없으십니까?”

“네. 제가 타지에서 왔거든요. 딱히 친구를 만들지도 못하는 타입이라.”

안단테는 처연한 표정으로 웃었다. 옅은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 탓일까, 사연이 있는 듯한 묘한 느낌을 자아냈다.

누가 봐도 청초한 미인인 남자가 시무룩해 있자 진효섭은 괜스레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복잡한 기분을 안단테 또한 느꼈는지 그는 애써 씁쓸히 웃으며 손을 저었다.

“아, 진효섭 씨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생각해 보니까 너무 실례였네요.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사가 같이 밥 먹자고 하다니. 불편하셨죠? 미안합니다.”

“예? 아, 아닙니다. 전혀 사과하실 게…….”

진효섭이 당황하며 팔을 저었다.

“저는 그저, 오늘 저녁을 준비해 뒀던 게 생각나서 거절했을 뿐입니다. 그…… 혼자 식사하는 게 적적하시다면…….”

그러곤 뒷머리를 긁적이며 덧붙였다.

“저녁 같이하시겠습니까?”

“정말요?”

“예.”

진효섭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안단테가 타지에서 왔다는 사실에 조금은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고.

“같이 저녁 드시죠.”

쐐기를 박듯 다시 한번 말하는 진효섭을 향해 안단테가 화사하게 웃었다. 정말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라 진효섭 또한 제 결정이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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