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2화
“반가워요. 저는 체르니라고 해요.”
“예. 반갑습니다. 그런데, 얼굴을 좀 뒤로-”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체르니는 그의 말을 완전히 잘라먹고 본인이 궁금한 것만 물었다. 진효섭은 체념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렇게나 부르십시오.”
“효섭 형, 진짜 S급 가이드예요? 정말로?”
“원하신다면 등급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와, 대박.”
체르니가 눈을 반짝였다. 사방팔방으로 흩어진 머리카락과 개구쟁이 같은 표정이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듯했다.
“믿기질 않네. 사실 저는 우리 길드장이 2년 동안 가이드를 안 구하길래, 구할 생각 자체가 없는 줄 알았거든요.”
“……그러셨습니까.”
“네. 그런데 구해 왔다 싶었더니 S급이래요. 이러니까 믿어지겠어요?”
체르니가 안단테를 흘끔 바라봤다.
“단장님, 감히 우리 길드 따위가 이런 인재를 데리고 있어도 돼요?”
“본인이 있고 싶다는데 내가 뭐라고 거절해.”
체르니는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떴다.
“형이 여기 있고 싶다고 한 거예요? 스카우트 아니고요?”
“예.”
“왜요? S급이 뭐가 모자라서 이런 개죽도 못 쒀 먹을 길드에 와요?”
“체르니.”
원색적인 말에 뒤쪽 길드원 중 단정한 용모의 남자가 작게 그를 불렀다. 그러나 체르니의 입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체르니는 황금색 눈을 가늘게 뜨며 은근하게 진효섭을 훑었다.
“혹시 스파이?”
“체르니. 개죽도 못 쒀 먹을 길드에 스파이가 왜 오겠어.”
안단테는 체르니의 노골적인 표현이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히죽거렸다.
“아, 그건 단장님 말이 맞긴 한데……. 아니, 그럼 이유가 뭐예요?”
모두의 시선이 진효섭을 향했다. 길드원들에게 이유를 말하지 않았던 걸까. 진효섭이 안단테를 흘끔 바라봤지만, 그는 여전히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말씀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조건이 있었습니다.”
“조건? 뭔데요?”
“접촉 가이딩 이상은 하지 않는다는 조건입니다.”
그 말에 체르니의 미소가 짓궂어졌다.
“아하, 키스 이상은 하기 싫어서였구나?”
괜스레 목덜미가 붉어지는 것 같았다. 아무리 가이딩이 일이라고 하지만, ‘접촉 가이딩 이상은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결국, ‘깊은 관계를 맺기 싫다’라는 말과 동급으로 들린다는 게 다소 수치스러웠다.
“근데 왜 하기 싫어요? 에스퍼랑 가이딩하면서 관계 맺으면 가이드들은 대부분 좋아죽던데.”
“…….”
진효섭이 입술을 꾹 닫았다. 무뚝뚝한 표정 위로 난감함이 떠오르자 안단테가 작게 혀를 차며 체르니를 말렸다.
“체르니. 첫날부터 무례한 질문은 그만해.”
“뭐 어때요. 같은 남자끼리.”
“같은 남자라도 에스퍼와 가이드는 다르지.”
“다르기는 뭐가 달라요. 가이드는 남자도 아닌가? 남자가 하는 생각이 다 거기서 거기지.”
“그건 너 같이 까진 에스퍼나 하는 생각이고.”
“치.”
체르니가 입술을 삐죽였다. 그러나 안단테의 말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그럼, 다른 질문! 왜 C급 길드 중에서도 우리 길드를 선택한 거예요? 대부분 가이드는 우리 길드 싫어하잖아요. 발전 가능성이 없다고.”
그는 아주 순수한 소년처럼 눈을 깜빡였다.
“물론, 그 짓만을 원하고 호감을 가진 사람들은 있었어요. 보다시피 우리 길드 사람들, 대체로 다 잘생겼으니까.”
근데 그쪽은 그런 케이스도 아니지 않냐며 체르니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이유가 대체 뭐예요? 아, 궁금해.”
“……딱히 큰 이유가 있는 건 아닙니다.”
진효섭은 그들의 시선을 피해 바닥을 바라보며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그저, 위험한 곳이 싫어서 그럽니다.”
“네?”
체르니를 포함한 모두가 눈만 깜빡였다. 그의 대답을 누구 하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걸 말해도 되나. 진효섭은 조심스럽게 설명을 덧붙였다.
“여기가 편할 것 같았습니다. 극한의 상황에 부딪혀서 가이딩을 해야 할 일도 없을 테니까…… 위험할 것도 없고요.”
그 말에 길드원 모두의 눈이 위험하게 반짝였다.
“그 뜻은, 여기가 가이딩하기에 가장 안전할 것 같았다?”
안단테의 물음에 진효섭은 시선을 여전히 아래로 고정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하.”
안단테는 작게 웃었다. 어쩐지 즐거운 듯한 웃음소리였다.
혹시 이런 대답이 실례가 된 건 아닐까, 진효섭은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다행히 걱정과 달리 안단테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특별히 문제 될 대답은 아닌 듯했다.
“그런 이유로 여기를 선택한 거라면, 아주 잘 찾아왔어요.”
안단테가 진효섭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힘을 주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길드 중에서 여기가 가장 안전할 겁니다. 제가 보장하죠.”
* * *
에스퍼. 초능력을 가진 존재. 그들은 능력의 강력함에 따라 S, A, B, C, D, F. 총 여섯 등급으로 나뉜다.
F급은 말이 초능력자이지, 실제로는 일상생활을 조금 더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예를 들면 음식을 손바닥으로 따듯하게 데우기, 근력 대비 뛰어난 체력 등이 있다. 말 그대로 평범한 사람들에게 편리함과 유용함을 한 방울 떨어뜨린 듯한 에스퍼들이기에 당연하게도 던전은 들어갈 수 없다.
그 위의 D급은 F급보다는 훨씬 더 초능력다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던전에 들어갈 수는 없고, 대부분이 클리어한 던전의 잔해를 치우거나 정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C급부터 S급까지는 던전에 들어갈 수 있는 진정한 에스퍼라고 불린다. 다만, 그 던전을 혼자서 처치할 수는 없기에 에스퍼들이 모여 ‘길드’가 만들어졌다.
길드는 S, A, B, C급으로 나뉜다.
S급 길드는 세계에서 인정하는 유명 S급과 독특한 능력의 A급들로 구성되었다 보니 극소수에 불과하며, 그 능력에 걸맞은 상위 던전에 투입된다.
다음으로 A급 길드. 길드장이 S급이지만 구성원 대다수가 A급으로 이뤄져 있으며, 몇 없는 S급만큼이나 대단한 길드도 많이 존재한다.
그다음은 S등급 없이 주로 A~ B급 에스퍼로 구성돼 특정 나라 안에서만 활동하는 특징을 띤 B급 길드가 있다.
그리고 제일 바닥에 있는 C급 길드. 주로 지방에서 활동하는 길드로서, B~ C급 에스퍼로 구성된다.
C급 길드는 상위 길드와는 달리 길드 수도 어마어마하게 많았는데, 수가 많은 만큼 하는 일도 실력도 능력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B급에 가까운 활동을 이어 가면서 낮은 등급의 던전을 공략하는 길드가 있는가 하면, 길드만 세워 두고 던전은 드나들지도 않는 C급도 있었다.
지금 진효섭이 들어온 ‘노아피’ 길드가 딱 후자였다. 바닥 중 바닥이라 불리는 C급 길드.
“…….”
진효섭은 소파에 덩그러니 앉아 사무실에 늘어져 있는 에스퍼들을 바라봤다. 몸에 밴 나태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세상에 있는 모든 길드 중에서 가장 안전할 거라고 하더니, 정말 말 그대로였다. 첫 출근 날 일곱 명의 에스퍼와 한차례 인사를 끝낸 후, 일주일이 지난 오늘까지. 진효섭은 늘 할 일이 없었다.
함께 있는 에스퍼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곱 명 중 네 명은 외국 여행을 간다며 첫날 소개가 끝나자마자 하와이 티셔츠에 밀짚모자를 쓴 채 밖으로 나섰고, 나머지 세 명은 일주일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사무실에 널브러져 있었다.
한 명은 구석에 있는 침대에 드러누워 온종일 낮잠을 즐기고, 한 명은 벌써 네 시간째 움직이지 않고 책만 봤다.
그들을 관리해야 할 길드장은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진지한 얼굴이길래 첫날에는 중요한 업무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상하이 마작 게임을 하느라 짝 맞추기에 열중이었다는 건 얼마 전에 알았다.
그들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아무것도 안 하고 지냈다. 한낱 백수도 이것보다는 열심히 살겠다 싶은 모습들에 진효섭은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2년 동안 가이드를 들이지 않았던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는 광경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에스퍼에게 독이 쌓일 리는 없으니까. 다시 말해, 노아피는 월급을 주면서까지 가이드를 고용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건 안 되는데.’
이렇게 가만히 있다가는 한 달이 채 되지 않아서 쓸모가 없다며 잘릴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결국 진효섭은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주변을 조심스럽게 치우기 시작했다.
그가 사부작거리자 널브러져 있던 에스퍼들이 하나둘 진효섭을 쳐다봤다.
“형, 뭐 해요?”
낮잠을 자고 있었던 게 분명한 체르니가 턱을 베개에 괴고 진효섭이 하는 짓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주위를 좀 치우고 있었습니다.”
“왜요? 아, 혹시 형 결벽증 있어요?”
“그건 아닙니다.”
“그럼 형이 왜 해요?”
진효섭은 이대로 있다가는 잘릴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겠어서 입술을 우물거렸다.
“그냥…… 심심해서 하는 겁니다.”
“심심해서?”
체르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럼 나가서 저랑 데이트할래요? 저 맛집부터 카페까지 이 주위는 확실하게 꿰고 있는데.”
“하지만 지금은 근무 중입니다.”
“에이, 다들 쉬는데요 뭐.”
“그래도 그럴 수는 없습니다.”
생각보다 단호한 태도에 체르니는 재미없다는 듯 입술을 삐죽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