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방 안에는 딱딱한 기류가 흘렀다. 면접을 보는 중이라고는 믿기 힘든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니까…….”
연예인이라고 봐도 될 만큼 수려한 외모를 가진 남자가 눈을 가늘게 떴다.
“우리 길드에 지원하신다고요?”
의심이 가득한 것이 면접자를 향한 눈이라고는 보기 어려웠지만 정작 당사자는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S급 가이드가?”
“예.”
“여기 C급 에스퍼만 있는 길드에요?”
“……계속 물으실 겁니까?”
“믿어질 때까지는 그러려고요.”
C급 길드 ‘노아피’의 단장, 안단테는 턱을 괴며 면접자를 빤히 바라봤다. 그의 손끝이 남자가 가져온 이력서를 툭툭 건드렸다. 정확히 ‘S급 가이드’라고 적힌 활자 부분이었다.
“어째서죠?”
안단테는 본인의 C급 길드에 S급 가이드가 입단하러 왔음에도 쌍수 들고 환영하기는커녕 의심스러운 낯을 해 보였다.
“S급이라면 최상위 길드라고 불리는 국가안보국도 넘볼 수 있을 텐데. 왜 저희 길드입니까?”
사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물음이었다. 수능에서 올 1등급을 맞아 놓고, 지방 2년제 대학교에 가겠다고 면접을 본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으니까. 진효섭 역시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은 아니었다.
“조건이 하나 있어서 그렇습니다.”
“말해 보세요.”
“접촉 가이딩 이상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안단테의 눈매가 슬쩍 가늘어졌다. 그는 ‘이것 때문이었구나’ 하는 표정으로 진효섭을 훑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무례한 시선의 연속이었지만 진효섭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믿지 못할 테지만 그에게 이 면접은 절대 떨어지고 싶지 않은 중요한 면접이었다.
“그 조건 때문에 S급인데도 C급 길드에 지원하신 건가요?”
“예.”
“아하…… 뭐,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네요.”
아무리 S급이라고 해도 가이딩 수위를 못 박아 둔 가이드를 받을 수는 없을 테니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안단테는 여전히 모호한 기색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우리 길드입니까?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길드라고 불려도 길드다운 일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에 했던 업무가…… 그래, 고양이 찾기였죠.”
안단테는 그 고양이가 정말 사나웠다며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길드라기보단, 해결사라고 보는 게 더 나을 겁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면, 그쪽이 할 일도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겠네요?”
“그래도 가이드를 뽑고 있지 않습니까.”
“위험이 없더라도 일단 능력을 쓰면 몸에 독이 쌓이니까요.”
“그렇다면 손잡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이딩할 수 있을 듯합니다.”
“뭐, 그렇겠죠. 무려 S급이시니까.”
안단테는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제 길드에 굴러들어 온 S급이라는 행운을 움켜쥘 마음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진효섭은 괜스레 초조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근데 알죠? 저희는 S급이 받는 월급은 드릴 수가 없어요. 워낙에 바닥을 전전하는 길드라.”
“괜찮습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바라는 금액은 있지 않나요? 편하게 말해 봐요.”
편하게. 편하게란 말이지. 진효섭은 마른침을 삼키며 앞에 있는 남자의 눈치를 봤다. 심드렁한 눈빛에 어중간하게 끌어 올린 입꼬리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400만 원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순간, 안단테의 입꼬리가 멈칫 굳었다.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에 미간은 살짝 찌푸려진 채였다.
……너무 많았나?
“아니면, 350 어떻습니까.”
안단테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어느새 얼굴에 띤 미소도 사라졌다.
350도 너무 많구나.
“……310.”
남몰래 그어 두었던 마지노선이었다. 아니, 사실은 조심스럽게 10만 원을 올렸지만. 어쨌든 300만 원 밑으로는 받고 일할 수 없었다. 다달이 빠져나가는 월세도 있고, 대출도 갚아야 하므로. 원만한 생활을 위해서는 300 밑으로는 불가능했다.
그런데 이 길드의 단장이라는 사람은 영 오케이 사인을 보내지 않았다. 310도 너무 많은 걸까. 하긴. 하는 일이라고는 손잡기, 포옹하기, 더 해봤자 키스밖에 없을 텐데 310만 원은 너무한 것 같기도 했다.
그럼 더 내려야 하나. 아니면 이게 마지노선이라고 못 박아 얘기해 볼까, 진효섭이 그런 복잡한 생각을 이어가는 사이 안단테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하하. 310이요.”
“……예.”
“이거 참 합리적이신 숫자네.”
안단테는 어느새 재밌다는 듯이 진효섭을 바라보고 있었다.
“좋습니다. 내일부터 출근해요.”
“정말입니까?”
되묻는 진효섭의 뺨이 발그레했다. 누가 봐도 기쁜 얼굴이어서 안단테는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C급 길드에 들어왔다고 기뻐하는 S급 가이드라니. 어이가 없어서 원.
“계약서는 지금 바로 작성하죠. 우리 길드 소속 에스퍼는 내일 출근하자마자 소개해 드릴게요.”
“예. 감사합니다.”
“본디지 파트너는 정하고 왔습니까?”
“본디지 파트너요?”
“가이드를 보호해 줄 에스퍼 말입니다.”
대부분의 길드 소속 가이드는 자신을 보호해 줄 에스퍼를 파트너로 지정한다는 설명이 덧붙었다.
“아…….”
그런 것도 있었나. 몰랐던 사실이었지만, 진효섭은 아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들키면 호구가 된다는 걸, 이곳 생활을 통해 톡톡히 느꼈었기 때문이다. 물론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딱히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아무나 괜찮으니 골라 봐요. 우리 길드 에스퍼들은 죄다 전속 가이드도 없고, 각인한 사람도 없거든요. 아마 그쪽이 파트너 하자고 하면 접촉 가이딩까지든 뭐든 쌍수 들고 환영할걸요.”
안단테가 너저분하게 쌓인 문서를 뒤적거리며 이어 말했다.
“우리 길드원에 대한 인적 사항이라도 줄 테니까 보면서 골라요.”
잠깐 고민하던 진효섭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괜찮아? 뭐가요?”
“안 주셔도 괜찮습니다. 본디지 파트너는 없어도 될 것 같아서요.”
순간 문서를 뒤적거리던 손이 멈칫했다. 안단테는 배속을 줄인 영상처럼 천천히 고개를 돌려 진효섭을 바라봤다.
“없어도 된다고요?”
“예. 보호해 주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보호해 줄 필요가 없어?”
안단테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일자로 꾹 닫힌 입술은 그 이상의 말을 만들어 내지 않았다. 덕분에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채도 낮은 눈동자가 진득하게 진효섭을 응시했다. 마치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려는 듯 날카로운 시선이었다.
갑작스러운 침묵과 찌르르한 분위기에 진효섭은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뭔가 잘못한 걸까. 분위기를 보아선 그런 것 같은데, 아무리 다시 생각해 봐도 알 수가 없었다. 고양이 찾기나 하는 해결사 C급 길드, 이런 곳에서 몸을 보호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저 길드장의 표정을 보고 있으려니 제 생각이 잘못됐나 싶기도 하고……. 그냥 대충 파트너를 고를 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들었다. 그때, 안단테가 ‘하’ 하고 비웃음과 닮은 중얼거림을 내뱉었다.
“새롭네요. 그런 닳아 빠진 마인드라니.”
순간 말문이 막혔다.
“……예?”
“뭐, 됐습니다. 그럼 그렇게 해요. 우리 길드의 가이드 진효섭 씨.”
안단테는 처음과 같은 웃는 낯으로 손을 내밀었다.
“다시 한번 인사하겠습니다. 전 ‘노아피’ C급 길드장, 안단테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죠.”
“예에…….”
어쩐지 썩 깔끔하지 않은 마무리에 뒷맛이 영 씁쓸했다. 닳았다니. 자신이 무슨 신발 뒤꿈치도 아니고, 본디지 파트너가 대체 무엇이기에 저런 말이 나오는 걸까. 그냥 넘기기에는 그리 좋지 않은 말이 분명했지만, 진효섭은 애써 무시했다. 아쉬운 사람은 그였으므로.
‘아는 척하려면 이렇게 넘어가는 수밖에 없겠지. ……그래, 일단 취업은 했잖아.’
이로써 자신을 따라다니던 돈 문제는 일단락 해결될 것이다. 진효섭은 두 손을 마주 잡으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급한 불을 끄고 나니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 * *
“자, 여기는 어제 말했던 S급 가이드 진효섭 씨.”
안단테는 미사여구 없이 깔끔하게 진효섭을 소개했다.
“어제부로 우리 길드 소속 가이드가 됐으니까 잘해드려.”
눈앞에 모인 길드원은 여섯 명. 노아피는 길드장인 안단테까지 합해서 총 일곱 명인 소규모 길드였다. 하나같이 준수한 얼굴을 한 게 특이하다면 특이했다. 진효섭은 그들을 향해 허리를 깊이 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의 반듯한 인사에 길드원들의 시선이 한데 모였다. 그중 유독 흥분한 기색이 뚜렷한 남자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말도 안 돼. 단장이 했던 말이 진짜였어요?”
“그렇다고 했잖아.”
“아니, 솔직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요. 우리 길드에 S급 가이드라니.”
새빨간 머리를 한 남자가 진효섭 앞으로 순식간에 다가왔다. 금색 눈동자가 복슬복슬한 머리카락 사이로 부담스러울 만큼 진효섭을 빤히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