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워드 : 현대물, 첫사랑, 미인공, 무심공, 까칠공, 초딩공, 연하공, 절륜공, 존댓말공, 문란공, 자뻑공, 입덕부정공, 다정수, 소심수, 평범수, 호구수, 연상수, 순정수, 짝사랑수, 얼빠수, 오해/착각, 달달물, 삽질물, 잔잔물, 3인칭시점 사람으로 미어터지던 크리스마스이브. 접점조차 없던 둘이 마주 앉아 나누던 술잔. 역시 그날은 그날로 끝냈어야 했다. 누군가를 사귀어 본 적도 없다 하고, 말을 놓는 것조차 시간이 필요하다는 ‘촌스러움’의 대명사, 고윤민. 평소라면 절대 엮이지 않았을 부류였지만 이브의 분위기에 휩쓸려 버린 걸까. 어쩌다 합석해 바의 한구석에 함께 앉아서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연신 들으면서도 즐거워서 윤민과 계속 대화를 나눴다. 그러고 나니 바의 단골이라는데도 전혀 존재감 없었던 그 남자가 조금씩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형, 지금 안경에 신경 쓸 때가 아닐 텐데. 부탁, 어떻게 된 거야? 그냥 침대로 갈까요?” “너, 너무해요.” “……형이 붙잡았잖아, 가려는 나를.” ……아무래도 지금, 좀 제정신이 아닌 거 같다. ▶잠깐 맛보기 “제가 좋아하는 분도 그래요.” 윤민이 부끄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전 그분이랑 딱히 뭘 해야겠다, 하고 싶다…… 이런 게 아니라…… 말로 조리 있게 설명할 수 없지만, 그냥 그분이 행복한 걸 보는 게 좋아요.” “하아.” 진형은 이번에야말로 터지는 한숨을 참을 수 없었다. 윤민이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제가 그분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생각한 계기도 그런 거였어요. 남들 행복한 모습을 볼 때보다 그분 웃는 걸 볼 때 제 마음이 더, 아주 많이 환해진 기분이 들었거든요.” “그 사람이 형 눈앞에서 다른 사람이랑 하하 호호 온갖 스킨십을 해 댈 때도?” 황당함을 숨기지 못한 목소리에 주눅이라도 든 걸까. 윤민은 어깨를 움츠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네, 전 보기 좋던데요.”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형이 확 잘라 말했다. “그거 사랑 아니야, 형.” “읏.” “미쳐 돌아야지.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아야죠. 어떻게 웃으면서 볼 수 있어요? 행복하다고? 와, 절로 쌍욕 나오는, 아주 개 같은 상황인데.” “그, 그래요?” “네. 당연하죠. 처돌아서 깽판을 치든, 아니면 빨리 그 자리를 피하든. 하여간 제정신으로 절대 가만 볼 수 없어요. 정말 좋아하면 그렇게 돼요.” “그런 건가요?” 정말 모르는 걸 묻는 어조에 진형이 맥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아는 사랑은 그런 건데 말이죠.” “역시 어렵네요.” 윤민이 수줍게 입술을 달싹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가게 안은 한결 한산해졌다. 이젠 폐점 시간이 코앞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