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9/10)

2.

오늘도 평상시와 같다.

해가 중천에 걸렸을 때 일어나 늦은 점심을 먹는다. 그 후 진형이 일을 하러 나가기 전까지 소파나 침대에서 한가롭게 노닥거리는 게 둘의 일상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진형은 소파에 드러누워 있었다. 3인용 소파는 훤칠한 신장을 전부 받쳐 주지 못했다. 오른편 팔걸이에는 머리를, 왼편 팔걸이에는 종아리를 기댄 채 윤민을 담요 대신 덮었다. 고개를 옆으로 꺾고서 앞쪽의 대형 모니터를 응시하는 눈동자는 꽤 심드렁했다.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틀어 놓은 영화가 한창 흐르는 중이다. 윤민이 작업용으로 쓰는 모니터는 최근 둘이서 이런저런 영상을 함께 보는 것으로도 애용됐다.

윤민도 진형처럼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열연하는 배우들을 바라봤다. 안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 선명하게 보이진 않았다. 심지어 대사조차도 잘 안 들렸다. 널찍한 품에 잠겨 든 채 뺨을 묻고 있자니 심장 박동 소리가 고막을 휘어잡고 놓아주질 않는 탓이다. 온화한 고동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절로 귀를 기울이게 됐다.

처음에는 이 자세가 참으로 민망했다. 진형이 혹시 무겁지는 않을까 걱정도 됐다. ‘좀 창피해요.’라거나 ‘진형 씨 안 불편해요? 저 안 무거워요?’ 같은 말을 초반에는 꽤 했지만 요즘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불 노릇을 수행해 냈다.

등을 덮은 담요보다도 몸에 둘린 진형의 두 팔이 훨씬 따뜻한 감촉을 선사했다. 토닥토닥. 어깨와 허리를 가만히 두드리는 다정한 손길을 흠뻑 맛보는 이 시간이 무척이나 좋다. 감동이 물씬 차올랐다.

고동 소리가 마치 잠을 부추기는 듯했다. 몸이 조금씩 늘어질 때였다. 진형이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고 턱을 아래로 당겼다.

“형.”

스멀스멀 올라오던 잠기운이 단숨에 가셨다. 윤민은 부름에 곧장 응답하듯 얼굴을 쏙 올려 시선을 맞췄다.

“네?”

“나 어제 좀 웃긴 일이 있었어요.”

“어떤 건데요?”

“오픈 준비하면서 잡담할 때, 선호 형이 최근에 영화 하나를 재미있게 봤다고 하는 거예요. 나도 익숙한 제목이라 분명히 본 거 같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얘기를 하려니까 내용이…… 이게 전혀 생각 안 나는 거야. 선호 형이 ‘너 진짜 본 거 맞아?’라고 하는데 멍해지더라고요. 맞는데. 난 정말 본 거 같은데.”

진형이 키득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아까 시청했던 목록을 보니까 역시나 형이랑 본 거 맞더라고요. 그게 지금 이거예요, 형.”

그 말에 윤민이 살짝 놀라며 곁눈질했다.

모니터에서는 여전히 영화가 흐르고 있다. 유명한 배우들이기에 얼굴 자체는 낯익다. 다만, 그뿐이다. 그들이 치고받으며 싸움박질에 돌입했지만 참으로 생소한 장면이었다.

“저희 이거 본 거예요?”

얼떨떨한 목소리를 들으며 진형의 웃음이 한결 더 짙어졌다.

“네. ……형도 좀 그런가? 아까 시청 목록 보면서 생각해 봤는데, 난 형이랑 같이 본 건 대다수 내용을 모르겠더라고요. 까먹었다기보다, 애초에 안 본 것처럼.”

그와 똑같다는 게 순수하게 기뻤다. 윤민은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도 그래요. 아, 아니다. 전 더 심한 거죠. 타이틀조차도 잘 기억 못 하니까요.”

잠시간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웃어 주는 시간을 가졌다.

진형이 살짝 고개 숙여 입술로 이마를 이리저리 눌러 왔다. 애정 어린 입맞춤을 받고 있자니 뺨이 조금쯤 뜨거워졌다.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진 요즘은 농밀한 키스나 격정적인 섹스보다도 불시에 찾아오는 작은 스킨십에 가슴이 더 뛰는 듯했다. 강렬한 행위를 하면 머릿속이 단숨에 새하얗게 변하지만, 이런 소소한 접촉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부끄럽게 느껴지는 거 아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형.”

“네?”

입맞춤을 받으며 살짝 아래로 떨어졌던 고개가 들렸다. 어떤 얘기든 귀 기울여 들을 준비가 됐다고 말하는 듯한 시선을 바라보며 진형이 눈가를 찡긋거렸다.

“나 다음 주 오프 때 형이랑 가고 싶은 곳 있는데. 같이 가 줄래요?”

“좋아요.”

얘기를 듣자마자 윤민이 즉답했다. 진형은 해죽거리며 장난조로 속삭였다.

“내가 어디로 데려갈 줄 알고 바로 좋다고 하는 거예요?”

“어디든 상관없으니까요. 어디라도 갈 수 있고요. 진형 씨랑 가는 건데요.”

“아아, 정말 형은……!”

진형이 쥐방울만 한 몸을 꽉 부둥켜안았다. 갑작스레 거세게 안긴 윤민은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으로 눈을 뜨고 감았다.

진형은 기뻐하는 듯했다. 아주 당연한 것을 말했을 뿐이고, 지금 이 순간 드는 생각을 거르지 않고 표현한 것뿐이었다. 고작 이 정도로 그가 좋아한다니 오히려 자기야말로 행복해졌다.

진형 씨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건 역시 참 좋은 거구나. 앞으로도 계속, 좀 더 솔직해지자.

윤민은 다시 한번 굳게 다짐하며 널찍한 품에 파고들었다.

* * *

진형은 ‘자고 올 거니까 형도 작업 일정 잘 조율해요.’라고 말했다. 어디로 가는지는 당일의 즐거움으로 남겨 두자는 말에 윤민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알겠다고 말했다. 자고 올 정도니 제법 멀리 가는 게 아니겠냐는 추측만 조금 해 봤다.

드디어 그날이 됐다.

출발은 생각보다 늦었다. 저녁 먹을 시간이 가까워지자 드디어 진형과 집을 나설 수 있었다. 버스로 서너 정거장 이동한 끝에 도착한 장소는 생각보다 훨씬 가까웠다.

건물 앞에서 윤민은 얼어붙었다.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진형의 손에 이끌리듯 다리를 움직이게 됐다. 그가 프런트에서 직원과 대화를 주고받을 땐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남자 둘이라고 이상하게 쳐다보거나 싫은 소리를 하면 어쩌지. 이쪽은 여러 걱정으로 심장이 터질 거 같은데 정작 직원과 진형은 너무나도 담담하게 말을 주고받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도착하기까지. 짧은 사이에 복잡한 머릿속에서 온갖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순식간에 이런저런 것들을 떠올린 나머지 머리에서 김이 날 것만 같았다.

안내받은 호실 앞에 도착했다. 윤민은 진형이 열어 준 문 안쪽으로 천천히 발을 옮겼다.

“여기가, 어, 진형 씨가 저랑 오고 싶었던 곳이에요?”

진형이 키홀더에 카드키를 꽂자 어두웠던 방 안이 삽시간에 밝아졌다. 윤민이 안쪽을 조심스레 살피며 질문하자 웃음기 섞인 대답이 들렸다.

“네.”

그가 등 뒤에서 몸을 안아 왔다. 윤민은 허리에 둘린 팔을 마치 동아줄처럼 꼭 붙잡게 됐다. 가장 안심할 수 있는 체온이 느껴지자 전신을 들쑤셨던 긴장이 조금씩 사그라졌다.

윤민은 일단 시선을 굴려서 널찍한 실내를 살폈다. 그다지 눈길을 잡아끄는 건 없었다. 여러 가지를 떠올렸는데 많은 부분이 엇나갔다.

“뭔가, 생각했던 거랑 좀 달라요.”

“어떻게 다른데요?”

진형이 정수리에 턱 끝을 비비며 음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괜스레 뺨이 붉어졌다. 윤민은 천천히 호흡을 고르고서 우물우물 입을 열었다.

“펴, 평범하다고 해야 할지. 무난하네요.”

“형, 도대체 얼마나 과격하고 요란한 걸 상상한 거야.”

“어…….”

그의 말이 놀림인지 질문인지 감이 안 왔다. 윤민은 일단 대답하기로 했다.

“조명이 막, 화려하게 빙글빙글 돌아가는 그…… 그거 뭐라고 하더라.”

“사이키?”

“네, 맞아요! 전 그런 게 설치되어 있을 줄 알았어요.”

“사이키가 돌아가는 러브호텔이라. 있나? 아, 파티 룸이라면 가능할 것도 같고.”

러브호텔.

진형에게 직접적으로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잠시 식었던 열이 훅 올라왔다.

이런 곳에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이 러브호텔은 연애와 비슷하다. 평생 연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걸 진형 덕분에 경험할 수 있게 됐다.

워낙 생소한 장소인 탓에 몰려들었던 긴장감이 서서히 가셨다. 이제야 비로소 여유를 가지고 방을 둘러보게 됐다.

윤민이 생각하기에 러브호텔을 가장 자주 찾는 건 커플일 듯했다. 연인을 위한 장소라고 말하면 좋을까. 그런 곳에 진형과 온 거다. 이런 사실이 새삼 기쁘다.

“조명 말고 다른 건 없어요?”

“으음……. 침대?”

침대는 현관 쪽에서 멀찍이 떨어진, 안쪽 끝에 위치했다. 새하얀 시트와 베개로 무장한 곳에 시선을 고정하며 윤민이 조금 수줍게 중얼거렸다.

“혹시 하트 모양이지 않을까 했어요.”

“하하하!”

진형이 시원스레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정말 재미있다는 듯 웃었기 때문에 윤민은 남몰래 뿌듯함을 누렸다. 오늘도 그를 웃게 했다. 다소 엉뚱한가 싶은 말을 해도 진형은 언제나 눈을 접어 가며 활짝 웃어 준다. 그게 가슴 벅찰 정도로 참 좋았다.

진형이 웃음기가 뒤섞인 목소리로 재잘거렸다.

“형 그런 걸 기대했으면 다음에는 하트 침대가 있는 곳으로 갈까요? 사이키 조명보다는 찾기 쉬울 거 같은데.”

딱히 하트 모양의 침대를 기대하진 않았다. 오히려 그런 게 튀어나올까 봐 긴장했을 정도니까. 그렇다고 딱 잘라 싫다고 말하기에도 애매했다.

윤민은 말을 돌리듯 허겁지겁 입을 열었다.

“방도 제 예상보다 훨씬 커요. 벽걸이 티브이에, 소파까지…….”

“그건 특실이라서 그래요.”

“특실……. 그러고 보니 컴퓨터도 있네요? 왜 두 대나 있죠?”

“커플끼리 사이좋게 게임하라고?”

“아아.”

겨울바람에 노출됐던 몸은 이제 완전히 따뜻해졌다. 진형이 안아 준 덕분이기도 하고, 방 안의 훈훈한 온도 때문이기도 했다.

윤민의 겉옷을 벗겨 자기 겉옷과 같이 옷걸이에 정리한 진형이 발 빠르게 슬리퍼를 놓아 주었다. 감사 인사를 하며 바로 앞 소파에 엉거주춤 몸을 앉혔다. 윤민이 아직은 생소한 공간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진형은 백팩을 들고서 구석에 위치한 미니 냉장고 쪽으로 몸을 숙였다.

“짠.”

“어!”

진형이 가방을 열고 그 안에서 꺼낸 것들을 보여 주자 윤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기가 좋아하는 과일 맥주였다. 술은 가리지 않고 전부 잘 마셨지만 최근에는 진형이 손에 든 자몽 맥주와 딸기 맥주에 마음을 빼앗긴 상태다.

“혹시 아까 편의점 들렀을 때 그거 산 거예요?”

“네, 형 이거 엄청 좋아하잖아.”

“고마워요, 진형 씨.”

“형이 이 정도로도 매번 고마워하니까, 우쭐대는 내 어깨가 내려올 생각을 안 하는 거라고요.”

진형이 맥주를 넣어 두고서 곧장 윤민 옆자리에 몸을 앉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정적이 흘렀다.

집에서 멍하니 있을 때도 바깥 소음이 들리고는 했는데 이 방은 무척 조용하다. 그걸 이제야 눈치챘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옆자리에 앉은 진형의 존재감이 지나치게 의식됐다.

그와 옆에 꼭 붙어 앉는 건 여태껏 집에서 골백번은 했을 일이다. 집이 아닌 다른 곳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장소가 장소라서 그럴까. 조용하고 낯선 공간에 단둘만 존재한다는 게 이상하리만치 긴장감과 설렘을 부추겼다.

기다란 팔이 마른 어깨를 감싸며 살짝 힘을 넣었다.

“형.”

“네?”

고개를 올리자마자 장난스럽게 웃는 진형과 눈이 마주쳤다.

“벌써부터 떨지 마요. 당연히 잡아먹긴 할 건데 아직은 아니니까.”

“…….”

어떻게 대꾸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생각나는 말이 없어서 입술만 뻐끔거렸다.

단숨에 붉어진 뺨을 흡족하게 바라보던 진형이 휴대폰을 꺼냈다.

“우리 일단 밥부터 좀 먹을까요.”

“그러고 보니 저녁 어떡하죠? 다시 나가나요?”

“그럴 거면 애초에 먹고 들어왔겠죠. 시킬 거예요.”

“시켜요? 어, 배달이 돼요?”

“그럼요.”

윤민은 단단한 어깨에 고개를 기댄 채 그가 조작하는 휴대폰을 바라봤다. 처음엔 피자였다. 자기가 좋아하는 슈림프 토핑이 잔뜩 들어간 피자를 선택하는 손가락을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진형과 함께 지내며 육류를 기피하는 것이 다소 나아지긴 했지만 역시 고기보다는 해산물이 더 좋았다.

“어…….”

윤민이 슬쩍 신음했다. 진형의 손가락은 피자를 주문하고서도 바삐 움직였다. 치킨까지는 그냥 넘겼지만, 떡볶이를 시작으로 온갖 분식을 선택하는 걸 보고 있자니 입 밖으로 앓는 소리가 절로 나갔다.

“진형 씨, 배 많이 고팠어요? 저희가 다 먹을 수 있을 양이 아닌 거 같아서요.”

“물론 한 번에 다 먹진 못하겠죠? 그러니까 야식으로도 먹고, 간식으로도 먹어요.”

나한테 밤새 시달릴 테니 새벽엔 형도 배가 많이 고파질 텐데?

귓가로 바싹 다가온 입술이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머리털까지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표범 앞에 놓인 토끼가 된 심정으로 살짝 고개를 돌리자 그가 기습하듯 입술에 쪽 입을 맞추며 능청스럽게 중얼거렸다.

“너무 조용해서 형이 긴장하나?”

네, 맞아요. 바로 그거 같아요.

자기 마음을 읽어 준 게 굉장히 반갑다. 몹시 기뻤던 나머지 대답 대신 고갯짓이 먼저 나갔다. 윤민이 힘차게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자 진형이 키득 웃어 보였다.

티브이가 켜졌다. 들썩거리던 심장이 이제야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 간다. 예능 프로에서 들리는 박장대소하는 소리와 시끌벅적한 말소리가 조용한 공간에 울리는 것만으로도 어깨까지 굳어지던 긴장감이 누그러졌다.

진형이 윤민의 어깨를 한쪽 팔로 감싸 안은 채 반대편 손으로 리모컨을 조작했다. 이리저리 채널을 바꾸던 손가락이 ‘오늘의 날씨’라고 적힌 글씨를 보고 동작을 멈췄다.

“내일 눈 엄청 오나 보네요. 우리 나가면 쌓여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게요.”

눈 소식을 보고 있자니 떠오르는 게 있다.

그간 진형에게 ‘고윤민’에 관한 거라면 어떤 거라도 전부 알고 싶고, 모조리 듣고 싶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왔다. 그게 이 순간에도 효과를 발휘했다.

윤민이 우물우물 입을 열었다.

“진형 씨, 저요. 여태까지는 눈 내리는 거 별생각 없었는데, 진형 씨 덕분에 좋아졌…….”

말을 다 마칠 수 없었다.

무언가가 이상했다.

브라운관에서 시선을 떼고 옆으로 시선을 옮겼을 뿐이다. 소파 옆쪽에 존재하는 욕실을 본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어서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도 잊었다. 입실할 때 별생각 없이 넘겼던 것을, 막상 가까이에서 확인하자 바로 위화감을 느낀 듯했다.

처음에는 자기가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콧등에 걸린 안경도 한 번 추켜올렸고, 눈도 여러 번 뜨고 감았다. 그런데도 놀라운 광경은 바뀌지 않았다.

진형이 갑작스레 말을 멈춘 윤민을 의아한 듯 바라봤다.

“형?”

“지, 진형 씨!”

윤민은 저도 모르게 가깝게 있던 팔을 덥석 잡았다. 진형이 옷소매를 꼭 쥔 손을 부드럽게 토닥거리며 바로 대꾸했다.

“응? 왜 그래요. 뭐에 놀란 거야.”

“요, 요, 욕실이 좀 이, 이상하지 않아요?”

너무 놀란 나머지 심하게 말을 더듬게 됐다. 아무리 당황해도 말을 좀 또박또박 했으면 좋겠다고, 늘 반성하는 시간조차 지금은 가질 수 없었다.

부들부들, 떨림을 머금은 고사리 같은 손가락이 욕실을 가리켰다. 곧장 그쪽으로 시선을 가져간 진형이 천천히 되물어 왔다.

“이상해요? 어디가.”

생각보다 아주 담담한 반응에 한 번 더 놀랐다. 자기한테만 이상하게 보이는 걸까. 윤민은 불안정한 음성으로 진형에게 질문했다.

“안이 보이잖아요. 왜 벽이 유리로 돼 있죠?”

“아…….”

그제야 놀라움의 원인을 알았다는 듯, 진형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보였다.

“유리 벽에 놀란 거예요?”

“네! 왜 유리로 해 놔요? 이런 곳은 다 저렇게 해 두나요?”

“글쎄요. 다 저러진 않을 텐데.”

윤민의 질문에 진형도 난데없이 고민의 시간을 갖게 됐다. 여태까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형 때문에 나도 궁금해지네. 욕실에 유리 벽을 왜 설치하는지.”

진형은 등받이에서 허리를 떼고 니은 자 형태의 유리 벽을 바라봤다. 대충 공간을 가늠한 뒤, 당혹감과 궁금증이 뒤섞인 작은 얼굴을 응시했다.

“일단, 두 가지 정도의 추측이 드네요.”

“그게 뭔데요?”

“하나는 욕조에서 티브이를 볼 수 있게끔 하려고?”

“아!”

윤민도 몸을 기울여서 욕조와 티브이 위치를 번갈아 확인했다. 진형의 말대로 욕조에 앉으면 바로 영상을 시청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역시 진형 씨는 천재야.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드는 생각 중 하나였다. 진형이 생각보다 훨씬 명쾌한 답을 준 덕분에 오늘도 거르지 않고 하게 됐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가장 뻔한 거. 애인이 옷을 벗거나 샤워하는 걸 대놓고 훔쳐보며 즐기라고.”

이번 대답은 쉽사리 이해 가지 않았다.

“훔쳐봐요? 그게 어, 뻔한 건가요……?”

윤민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진형은 눈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아마도? 이 이유가 티브이보다 더 정답에 가깝지 않을까요.”

“그거 좀 이상하지 않나요? 그러려면 욕실에 따로따로 들어간다는 건데…… 왜요? 같이 씻는 게 아니라요?”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을 바라보며 진형도 들은 말 자체에는 동의했다. 그가 옷을 벗는 걸 보기보다 벗겨 주는 게 취향이다. 자기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하면 더더욱. 이건 그에게조차도 양보하기 싫었다.

훔쳐보는 행위 역시 영 성미에 맞지 않는다. 그냥 쳐다만 보고 있어야 한다니. 자기 성격상 셀프 고문이 따로 없을 거였다. 그럴 시간에 욕실로 뛰어 들어가서 윤민의 피부 감촉을 누리는 게 훨씬 좋다.

하지만.

“형.”

“네?”

윤민의 의아함은 자기와 비슷한 이유로 생겨난 게 아니다. 지금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알 것 같다. 그의 머릿속에 깔려 있을 전제가 흡족하면서도 귀엽다.

진형의 입매에 웃음이 내려앉았다.

“한집에 살아도, 모든 커플이 우리처럼 매일같이 함께 샤워하진 않아요.”

“정말요?”

“네.”

“그, 그렇구나.”

윤민은 창피함을 감추려는 듯 고개를 슬쩍 숙였다. 꾸물꾸물 어깨를 움츠리는 작은 몸을 얼싸안고서, 진형이 밝은 어투로 속닥거렸다.

“사실 내가 이 방을 선택한 이유가 있거든요? 대놓고 보이기는 하는데, 의식하고 보지 않으면 잘 모르는. 그런 비밀스러운 게 있죠.”

“대놓고 보여요? 어, 이 유리 벽처럼요?”

“네, 그렇죠. 난 형이 놀라니까 생각보다 빨리 눈치챘나 싶어서 아쉬웠는데 그게 아니라서 안심했어요.”

“어떤 건지 궁금해요. 제가 찾을 수 있을까요?”

“딱히 찾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알게 돼요.”

진형이 동그란 이마에 쪽 입 맞추며 눈을 찡긋거렸다.

그러는 사이 속속 음식들이 도착했다. 초인종 소리에 눈을 휘둥그렇게 뜬 윤민이 음식 봉투를 들고 소파로 돌아오는 진형을 보며 “대놓고 보이는 비밀이 설마 초인종은 아니겠죠?”라고 물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형은 왈칵 웃음을 터트리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땡. 초인종 소리 듣자고 여기까지 왔겠어요? 그냥 우리 집에서 들으면 되지.”

그건 그랬다.

윤민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다시 한번 널따란 실내를 두리번거렸다. 역시 모르겠다. 하지만 아까처럼 기겁하진 않을 듯했다. 욕실 유리 벽이 너무나 충격적이었기에 이젠 뭘 봐도 놀라지 않을 거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 * *

진형이 미리 준비한 과일 맥주를 마시며 느긋하게 식사를 즐겼다. 윤민은 피자를 오물거리다가도 진형이 입 안에 넣어 주는 순살 치킨을 배시시 웃으며 받아먹었다.

고기에는 좀처럼 손을 가져가지 않는 연인을 보다 못한 진형은 동거하면서부터 아예 직접 먹여 주는 쪽을 택하곤 했다. 윤민은 애인이 주는 거라면 그게 무엇이든 절대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진형이 장난스럽게 아, 하는 추임새를 넣으며 입 앞으로 고기를 내밀면 그는 부끄러움과 기쁨이 동시에 드러나는 미소를 짓곤 했다.

진형은 윤민의 식사에 무척 신경을 기울였다. 좋아하는 음식을 물으면 산채 비빔밥이니 양상추 샐러드 같은 걸 거론하는 그의 입에 자기라도 기름진 것을 넣어 주고 싶었다. 어떻게든 삼시세끼를 사수하는 것은 덤이다. 애인이 바빠서 밥을 걸렀다는 소리만 들어도 불같이 짜증을 내는 사장님을 보며 저렇게까지 화낼 일인가 생각했던 과거가 참으로 우스워졌다. 이젠 누구보다 사장님을 이해할 수 있다. 애인이 말랐다는 고충을 함께 공유하는 사이가 된 것이다.

원래 살이 잘 붙지 않는다는 윤민의 말은 지극히 사실이었다. 함께 지내며 그의 옷을 벗길 수 있는 권리를 누릴 때마다 실감하게 됐다. 심지어 가뜩이나 핼쑥한 애인을 하루가 멀다 하고 격렬한 행위에 동참시키고 있다. 오늘은 참아 보자 결심해도 좀처럼 주체가 안 됐다. 그러니 먹는 거라도 곁에서 항상 잘 챙길 생각이다.

튀김과 순대를 열심히 받아먹던 윤민이 더는 들어갈 배가 없다며 포기를 선언했다. 진형도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새벽까지 이어질 열량 소모를 생각하면 아쉽긴 했으나 순순히 물러나기로 했다. 자기가 권하면 윤민이 얼마간 무리를 하면서까지 받아 준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 연인 입에서 못 먹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면 이미 한계치를 훌쩍 넘은 거였다.

윤민은 진형과 함께 먹은 것을 대강 정리했다. 배불리 먹었기에 몸이 절로 나른해졌다. 몇 시나 됐을까. 창문을 힐끗거렸지만 가리개 때문에 바깥 풍경이 보이질 않았다. 아직 잠들기에는 이른 시간이겠거니 싶던 때였다.

“그럼 우리 이제 씻을까요.”

진형이 씩 웃으며 눈짓해 왔다. 윤민은 단숨에 야릇한 기운을 풍기는 미형의 얼굴을 보며 숨을 집어삼켰다. 완전히 풀어졌던 긴장이 다시금 되살아나며 가슴 부근을 조여 왔다.

소파를 훌쩍 벗어난 진형이 화장대 위에 올려 둔 가방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들었다. 한쪽 면이 얇은 비닐로 되어 있어 내용물이 보이긴 했지만 이렇다 할 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게 뭐예요?”

“입욕제요. 형이랑 한번 해 보고 싶더라고. 말로만 듣던 거품 목욕.”

“거품 목욕…….”

윤민은 들은 단어를 고대로 따라 하며 눈을 깜빡거렸다.

집에 욕조가 있긴 하지만 상당히 좁디좁다. 한 사람만 들어가도 반신욕으로 만족해야 할 비좁은 공간이니 함께 앉아서 몸을 데우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마음이 슬슬 들떴다. 진형이 자기와 무언가를 해 보고 싶다고 말해 주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진형이 욕조에 물을 받고 입욕제를 푸는 동안 윤민은 얌전히 앉아 기다렸다. 그가 조금 전 빼 놓은 장신구들이 테이블 위에서 반짝거렸다. 그 가운데에는 윤민이 사 준 피어스도 있었다. 항상 몸에 지닐 수 있는 게 좋다며 진형이 생일 선물로 받고 싶다고 했던 것이다.

그가 출근하며 착용하는 장신구는 그때그때 달라졌지만, 자기가 선물한 피어스만큼은 언제나 그의 왼쪽 귀를 장식했다. 기쁘면서도 뿌듯한 마음으로 남보랏빛의 피어스를 빤히 들여다보게 됐다.

옷을 먼저 벗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스스로 옷을 벗으면 그가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티를 냈기에 연애 초부터 일찌감치 포기했던 것 중 하나다.

어느 사이엔가 진형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윤민은 가까워지는 기척에 자연스레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난 형이 나한테 벗겨지는 걸 기다릴 때 짓는 표정이 참 좋아요.”

그렇게 말하며 윤민의 바지 버클을 푸는 진형은 이미 나신이었다. 매번 그렇지만 오늘은 유독 시선 둘 데를 모르겠다. 지퍼가 내려가고 바지와 속옷을 자연스레 벗겨 내는 손끝에서 평소보다 성마른 기색이 느껴지자 괜스레 온몸 이곳저곳이 화끈거렸다.

안경이 떠나갔고 티셔츠가 아래로 떨어졌다. 순식간에 알몸이 된 윤민은 지금 막 떠오른 생각을 반쯤 열기에 들뜬 채로 고백했다.

“진형 씨가 좋다고 말해 줄 때…… 제가 뭘 하든 괜찮다고 말해 줄 때마다 늘 마음 놓여요. 저는 제 표정을 못 보니까, 가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몰라서 불안할 때가 있거든요.”

“그런 생각 할 필요 없어요. 아주 예쁘니까.”

다정한 목소리가 건네는 칭찬 때문에 더더욱 열이 올랐다. 창피함에 입술만 우물대는 윤민을 보며 진형이 살짝 웃었다.

부드러운 손길에 이끌려 욕조로 들어섰다. 따스한 온수 덕분에 신체가 흐물흐물 풀어졌다. 풍성한 거품에서 피어오르는 향도 참 좋았다.

“바닐라 냄새가 나네요.”

“입욕제 향이 여러 가지 있던데 이게 평이 꽤 좋더라고요. 형이랑 딱 어울리기도 하고. 달달하니.”

귓가로 바싹 다가붙은 입술이 말을 마치며 귓불을 건드려 왔다. 허벅지와 허리를 만지작대던 손끝도 점차 외설스러운 기운을 띠었다.

“거, 거품 목욕을 하는 게 아니었어요?”

“하고 있죠.”

“흐, 흐으…….”

큼지막한 손이 단숨에 위로 올라와 젖꼭지를 비틀었다. 갑자기 주어지는 강한 자극에 거품 아래로 고개를 처박을 것 같았다.

“하아, 아…… 아아…….”

허벅지에서 노닐던 기다란 손가락이 망설임 없이 성기를 거머쥐었다. 가장 자극이 필요했던 곳에 손끝이 닿아 오자 속수무책으로 신음이 터져 나갔다. 창피하지만 멈출 수가 없다. 자신이 뱉은 비음에 지레 놀라 몸이 여러 번 움찔거렸다.

지금 무척이나 음란한 행위를 하고 있다고.

욕실에 울리는 신음이 마치 그렇게 말해 오는 것만 같아서 더더욱 참을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지, 으, 응, 진형, 아…… 진형 씨, 하아아…….”

몸이 들썩거렸다. 주어지는 쾌감에 어쩔 줄 모르고 허리를 뒤틀 때마다 욕조 물이 첨벙거렸다.

“우리 민이 형은 여길 긁어 주는 걸 좋아하잖아. 그렇죠?”

대답할 수 없었다. 지금 입을 열면 볼썽사나운 소리를 할 것만 같았다.

“갑자기 왜 이렇게 조용할까.”

손톱 끝이 유두와 귀두를 동시에 긁어내렸다. 이젠 정말 고꾸라질 것만 같았다. 부들거리는 팔을 들어 올려 욕조를 힘겹게 붙잡는 것밖엔 할 수 없었다.

“형이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귓가 근처에서 움직이는 입술이 낮은 속삭임을 중얼거렸다. 웃음기 스민 음성과는 다르게 뒤에서 느껴지는 성기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띠었다. 바짝 선 그것이 엉덩이 사이를 건드려 올 때마다 입 안이 바싹바싹 말랐다.

“싫어하면 어쩔 수 없죠. 그만둬야겠다.”

성기를 주무르던 손이 삽시간에 멀어졌다. 윤민이 눈을 번쩍 뜨며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안, 아니지 않…… 좋아, 요……. 진형 씨, 좋아…….”

“내가 좋아요?”

손이 다시금 다가왔다. 기둥을 살살 매만지며 일정한 자극을 주는 손끝이 매우 반가웠다. 윤민은 절실한 음성을 마구 뱉었다.

“네, 좋아요, 후, 흐으, 좋아, 너무 좋, 정말 좋아…….”

“이렇게 심술궂게 구는데도?”

“좋아요, 좋아해요, 진형 씨를, 으, 지, 진형 씨만…… 읏, 아아!”

위아래로 여러 번 바삐 쓸어내리는 손길에 아찔함이 차올랐다. 더는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하자마자 곧장 절정을 맞이했다.

움찔움찔하며 사정하는 윤민의 목덜미를 맵시 좋은 입술이 강하게 빨아 당겼다. 그 감촉에 어깨마저 부르르 떨렸다. 아직 가시지 않은 여운이 배 속을 괴롭혔다.

손길에 이끌려서 몸을 돌렸다. 즐거운 듯 미소 띤 예쁜 얼굴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허벅지 안쪽을 꾹꾹 눌러 오는 성기가 지금 얼마만큼 흥분해 있을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윤민이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 저도 진형 씨 거, 소, 손으로 할까요? 서툴겠지만.”

“아니.”

딱 자른 거절에 무어라 반응할 틈이 없다. 욕정 어린 눈동자가 이쪽을 직시했다.

“난 오늘 형 안에서만 갈 거야.”

한쪽 팔이 허리를 꽉 끌어안아 왔다. 가슴과 가슴이 밀착되자 지금 서로의 몸이 얼마만큼 뜨거운지 바로 알 수 있었다.

“형 구멍에 내 좆을 물리고 몇 번이고 잔뜩 싸지를 거라고.”

“으, 흐읍……!”

노골적인 말을 쏟아 낸 입술이 단숨에 들이닥쳤다. 거침없는 움직임에 심장이 뜯겨 나가는 듯했다. 혀끝을 쪽쪽 빨아 대며 입 안을 장악하는 두툼한 혓바닥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후으…… 응, 흐읏!”

놓을 듯 굴다가 다시금 몰아쳐 오고. 틈을 주다가도 삽시간에 밀려들고. 떨어졌다 붙어 오는 입술의 움직임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우으……!”

손가락이 아래로 파고들었다.

저도 모르게 뱉은 탄식마저도 진형은 전부 먹어 치웠다. 입 안을 부유하는 혓바닥의 움직임에 맞춘 듯 손끝이 은밀한 곳을 집요하게 눌러 댔다. 아찔함이 여러 번 찾아왔다. 이러다 몸이 뒤로 넘어가는 게 아닐까 싶었다. 가뜩이나 열기로 부예진 머릿속이 이젠 너무나도 흐릿했다.

입 안의 여린 살들을 잔뜩 괴롭히던 혀끝이 아쉽게 떠나갔다. 비로소 숨을 좀 편하게 쉴 수 있었다. 가쁘게 호흡하는 입술을 빤히 바라보며 진형이 속삭였다.

“형, 힘들어요? 어지러워?”

침대로 이동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윤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얼른 대답했다.

“네…… 조금…….”

“미안, 근데 나 한계야. 잠깐만 버텨 줘요.”

목소리가 울리는 것도 창피하고, 이 자세도 상당히 부끄럽다고.

생각나는 말들을 꺼낼 겨를이 없었다. 아래를 잔뜩 괴롭히던 손가락이 쑥 빠져나가자 한껏 부드러워진 곳에서 어마어마한 묵직함이 바로 느껴졌다.

“지, 어, 진형, 으, 흐, 아아……!”

두 팔이 작은 신체를 부둥켜안고서 구멍에 성기를 꽂아 넣었다. 몸이 위로 살짝 들렸다가 아래로 내려앉는 순간, 내벽이 밀려 올라가는 질량감에 눈이 부릅떠졌다. 열이 잔뜩 고인 입에서 온갖 소리가 터져 나갔다.

“민이 형.”

묵직한 선단이 안을 파고들며 깊숙이 좀먹어 왔다. 허, 허으, 아찔한 탄식만이 쏟아졌다. 배 속에 열이 가득가득 차오르며 전신이 후끈거렸다.

“느껴져요? 내가 형 안에 쑤셔 박고 있는 거?”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이 할 수 있는 몸짓의 전부였다.

큼지막한 손이 허리를 단단히 붙잡고서 위아래로 연달아 움직여 댔다. 들렸다가, 내려오고. 다시금 들어 올려지고. 콱콱 치대는 굵직한 살덩이가 안을 사정없이 벌려 댔고 느끼는 곳을 집요히 눌러 왔다.

윤민의 작은 몸이 상하로 오르내릴 때마다 욕조의 물이 찰박찰박 거세게 출렁거렸다. 물소리와 신음으로 가득 찬 욕실의 울림이 수치심을 부채질하면 할수록 아찔한 쾌감이 느껴졌다. 창피한 것마저도 쾌락의 일부분이 되었다.

“하, 하아…… 아아…… 지, 진형 씨…… 으, 흣, 우흣!”

열이 잔뜩 고인 입술 사이로 흐르는 숨결이 점점 더 가쁘게 변했다. 어떻게 숨을 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감각이 그러모아지듯 하반신에 집중됐다. 짓이겨지고 파헤쳐지는 느낌이 매서울 정도로 몸을 장악해 왔다.

윤민은 벌벌 떨리는 팔을 들어 진형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나뿐이죠?”

쉰 목소리가 귓가 가까이에서 들렸다.

축 늘어져 있던 몸이 감전된 것처럼 바르르 떨렸다. 한쪽 팔에 허리를 꽉 감긴 채 성기가 매만져졌다. 등줄기에 연거푸 흐르는 전율 탓에 눈물이 줄줄 흘렀다.

“형을 독차지하는 건, 형 안에 처박을 수 있는 사람은 앞으로도 나밖에 없다고 말해요. 말해 줘요.”

그랬다. 대답해야 했다.

윤민은 푹 젖어 버린 눈가를 널따란 어깨에 처박고서 되는대로 입을 열었다.

“지, 진형 씨뿐, 아, 전 언제나 진형 씨밖에는 없, 아! 아, 아아!”

“계속 내 거잖아, 응?”

“네, 마, 맞아요, 진형 씨 거 맞, 흐으, 아, 읏!”

안쪽과 성기를 동시에 자극당하며 분출했다. 애액을 토하는 선단을 집게손가락으로 어여쁘다는 듯 매만지던 진형도 함께 절정에 도달하며 뜨거운 숨을 몰아쉬었다.

안쪽을 뜨겁게 적신 정액이 내부에서 꿀렁거렸다. 진형의 것은 방금 배출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흉포한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내며 안을 그득 채웠다.

“흐, 흐음…….”

뜨거운 입술이 다가왔다. 민감해진 안쪽을 보듬고 어루만지는 듯한 혀끝이 기분 좋았다. 한껏 신음하느라 쩍쩍 갈라졌던 입 안이 그가 넘겨주는 타액으로 천천히 촉촉함을 머금었다. 사정의 여운에 취해, 단단한 팔에 푹 안겨서 입맞춤을 받는 이 순간이 너무나도 다디달았다.

입술이 타액으로 허공에 실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윤민은 눈을 여러 번 뜨고 감으며 초점이 흐리멍덩해진 눈으로 앞의 얼굴을 확인했다. 조금 전까지 한껏 누렸던 예쁜 입술을 찬찬히 바라보다가 슬쩍 시선을 들어 올렸다.

주춤주춤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가만히 감싸 쥐었다. 매끈한 피부와 뜨거운 체온을 손바닥으로 느끼며 윤민이 조심스레 질문했다.

“지, 진형 씨도…… 제 거죠?”

진형이 눈썹을 모으며, 말해 뭐 하냐고 전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한 소리를. 전부 형 거지.”

딱 잘라 말해 주는 목소리에 벙싯 웃음이 흘렀다. 마음이 행복감으로 꽉 채워졌다.

그가 슬쩍 턱을 내밀었다. 무엇을 조르는지 모를 수가 없다. 윤민은 양 엄지로 매끄러운 뺨을 매만지며 서툴게 입을 맞댔다. 살짝 닿고 떨어지는 입맞춤에 눈을 찡긋거리며, 진형이 나직이 속삭였다.

“형, 내 목 단단히 붙잡고 있어요.”

“네? 어, 흐흣, 읏……!”

몸이 훌쩍 들렸다.

진형이 성기를 빼내지 않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교접된 곳이 흔들리며 아래를 자극하는 통에 잠시간 누렸던 평온이 순식간에 열기로 얼룩졌다.

“내 거 잘 품어야 해요. 안 그러면 흐를 테니까.”

내벽을 가득 적셨던 이물감이 이 순간 생생히 되살아났다. 배 속에서 존재감을 뿜어내던 진형의 것이 안을 터트릴 듯 한층 더 부풀어 올랐다.

“아, 흐…… 우으…….”

침대까지 가는 여정이 참으로 험난했다.

둔부에 그의 성기를 꽂은 채로 매달려 있는 거였다.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을 때마다 아래에도 절로 힘이 들어가고야 말았다. 그러면 진형은 “하, 형…… 너무 조이면, 박고 싶어지잖아.”라고 말하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끌어안은 몸을 위아래로 흔들어 댔다.

아찔했다. 의지할 데라고는 진형뿐이었다. 안간힘을 다해 그를 바싹 부둥켜안으면 안을수록 그게 오히려 더한 허리 짓을 불러일으켰다. 공중에 뜬 채 구멍이 강하게 쑤셔질 때마다 울음보가 터질 거 같았다. 주체할 수 없는 신음이 마구 쏟아졌다.

허공에서 몇 번을 쑤셔 박힌 뒤에야, 드디어 침대 시트를 등으로 느낄 수 있었다.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힘이 풀렸다. 진형이 살며시 빠져나가자 안에서 일렁거리던 것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 느낌을 신호 삼아, 꽉 감고 있던 눈꺼풀을 천천히 떠 올렸다.

“흐읏……!”

전신이 크게 요동쳤다.

갑작스레 놀라운 광경과 직면한 윤민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서 쇳소리 섞인 탄식을 토해 냈다.

“허, 어으, 지, 진형 씨……!”

목덜미를 세차게 빨아 당겨 울긋불긋한 흔적을 새긴 입술이 만족스럽다는 듯 호를 그리며 아래로 내려갔다. 어깨를 가볍게 깨물고서 본격적으로 젖꼭지를 맛보는 혀끝의 움직임에 자동으로 허리가 들썩거렸다. 그러면서도 눈앞에 펼쳐진, 믿기지 않는 사실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지, 진형 씨! 으, 흐으, 처, 천장! 천장에, 아! 아아……!”

진형이 큭큭 웃으며 야릇하게 속닥거렸다.

“눈치챘어요?”

“설마…… 이게 이 방, 비, 비밀 맞……?”

“네, 맞아요.”

이제 어떤 게 튀어 나와도 욕실의 유리 벽을 보고 놀랐던 것만큼은 충격적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천장을 바라본 순간, 일순 숨이 멎을 정도로 깜짝 놀랐다. 입실하고서 진형과 내내 소파에서 노닥거리느라 여기는 유심히 살피지 못했다. 이제 보니 침대 부근의 천장만 유독 낮았다.

그리고 거울이 보였다.

정확하게는, 천장에 거울이 붙어 있었다. 침대 전체가 고스란히 담기는 초대형 거울은 지금 자기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까지 아주 고스란히 보여 줬다. 안경을 쓰지 않았음에도 이토록 선명하게 보이는 건 거울 천장이 몹시 가까운 탓이다.

윤민이 놀라는 사이에도 작은 몸을 착실하게 혓바닥으로 감아 대던 진형이 중심부에 자리 잡았다. 푹 젖은 음모를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반쯤 선 성기를 거침없이 입으로 머금었다.

“아, 아아…… 흣, 우으, 지, 진형 씨, 잠깐, 잠…… 아! 흐아앗!”

머리가 녹는 기분이었다. 열이 펄펄 끓었다. 귀두에서 느껴지는 감각과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 정확히 일치할 때마다 아찔한 나머지 눈물이 핑 돌았다.

“절대 눈 감으면 안 돼.”

갑작스러운 명령조에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슬며시 감기려던 눈꺼풀에 바싹 힘이 들어갔다.

“똑똑히 보면서 느껴요. 내가 어떻게 형 걸 빠는지 제대로 봐.”

진형이 말을 마치며 쿠퍼액이 흐르는 선단을 다시금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거울에 잘 비치게끔 각도를 맞추고서 쪽쪽 흠빠는 움직임이 너무나도 막힘없었다. 꼿꼿이 세운 혀끝이 귀두를 괴롭혀 댔고, 큼지막한 손이 기둥을 문지르며 예민해진 곳을 한층 더 자극해 왔다.

진형이 성심성의껏 봉사하는 모습이 시야에 가득 담긴다. 잠시도 쾌감에서 벗어날 새가 없었다.

“하아, 아, 흐으응…… 아, 앗, 아아!”

더 이상 참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윤민이 허리를 여러 번 뒤틀며 사정했다. 거친 호흡을 가다듬기도 전, 다시금 숨이 멎어 왔다. 자기가 배출한 것을 진형이 손바닥 위에 뱉으며 뿌듯하게 웃었다. 그 얼굴만 봐도 아래에 다시금 열이 고였다. 희뿌연 액이 달라붙은 입술을 혓바닥이 날름 핥는 순간 머리털마저 곤두섰다.

온몸이 잔뜩 예민해졌다. 사정의 여운이 남기고 간 노곤함도 어느 사이엔가 사라졌다. 이제 곧 닥쳐올 강렬한 쾌감을 예감하자 피부 곳곳이 저릿저릿했다.

진형은 가쁘게 호흡하는 애인의 나신을 탐닉했다. 열이 조금만 올라도 발긋발긋 물드는 피부가 참 보기 좋았다. 평소에는 다소 창백하게 느껴지는 하얀 얼굴도 볼그스름 상기된 채다. 굉장히 귀여웠다.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자 자기가 오갔던 구멍 입구도 여전히 발그레한 빛이 감돌았다. 그곳에 윤민이 방출한 애액을 덧칠하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흡, 흐읏…… 우, 웃, 아, 아아…….”

액을 머금은 채 벌름거리는 구멍으로 진형의 것이 천천히 진입했다. 느릿느릿, 살덩이가 안을 조금씩 파헤치는 것을 거울이 매우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턱이 덜덜 떨렸다. 성기가 빈틈없이 내벽에 끼워지는 감각을 하반신과 시각으로 동시에 느끼는 거였다.

“하…… 으으, 흐응, 후으읏…….”

안쪽이 한계까지 늘여졌다. 배 속에 품은 열기가 더없이 뜨겁고 커다랗다. 아릿아릿하면서도 달콤한 통증이 하반신에서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아, 하아, 아, 읏, 흐읏, 아, 아!”

진형은 옆으로 활짝 벌어진 양 허벅지를 단단히 붙잡고서 허리를 움직였다. 그윽한 눈동자가 눈꺼풀 한번 깜빡 않고 자기 것이 드나드는 정경을 직시했다.

그가 고개 숙여 바라보는 것을, 윤민 역시 거울을 통해 멍하니 응시하게 됐다. 크고 단단한 것이 안을 쑥 파헤쳤다가, 뽑혔다가, 다시금 콱콱 소리를 내며 강하게 치대고 있었다.

퍽, 퍽, 퍼억!

한 번 자리를 잡으니 진형의 움직임이 더더욱 거침없어졌다. 강하게 처박힐 때마다 작은 몸이 침대에서 이리저리 뒤흔들렸다.

“하, 하으, 으, 아, 아아, 앗, 아으읏!”

성기가 내부를 거세게 후벼 팠다. 정말이지 눈을 감고 싶다. 성기가 안쪽을 힘차게 왕복하는 풍경이 바로 보이는 상황에서 잠깐만이라도 도망치고 싶어졌지만 죽을힘을 다해 인내했다.

시트를 움켜쥔 손에도 힘이 꾹 들어갔다. 제멋대로 신음을 쏟아 내는 입을 손바닥으로 가릴 것만 같아서 의식적으로 참는 중이다. 진형이 싫어할 것을 알기에 어떻게든 견뎌 낼 뿐이다.

“하, 하아…….”

윤민은 천장 위 거울에서 시선을 살짝 내렸다. 앞을 응시하자 잔 근육으로 잘 조각된 미려한 상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단숨에 눈길을 사로잡힌다. 전신이 심장이 된 것처럼 두근거렸다.

물기가 흐르는 단단한 가슴에서 조금 더 고개를 올리자 쾌감을 음미하는 나른한 얼굴이 바로 보였다. 그 무엇보다도 선정적이다. 눈을 가늘게 뜬 진형의 욕정 어린 눈가가 머릿속에 아로새겨졌다.

성기가 오가는 구멍을 빤히 바라보던 진형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보고 있는 것을 들켰다는 창피함을 맛볼 겨를이 없다. 진형은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곧장 눈웃음을 치며 낮게 속삭였다.

“오늘만큼은 내 얼굴 보지 말고, 나한테 박히고 있는 형 얼굴을 한번 봐 봐요.”

그 말에 홀린 것처럼 고개를 끄덕하고서 시선을 올렸다.

“하아…… 하아아…….”

이런 표정일 줄은 몰랐다.

흐리멍덩한 시야로 바라보는 자기 얼굴이 참으로 낯설고 기이하다. 쾌감 어린 소리를 여러 번 내뱉으며, 당장 터질 거 같은 울음을 애써 참아 내는 얼굴이 무척이나 엉망이었다.

“저, 항상, 이, 이런 얼, 읏, 이런 얼굴, 했어요?”

신음 섞인 목소리에서 상심이 묻어났다. 진형이 의아하다는 듯 턱을 치켰다.

“왜 그래요, 형.”

“표, 표정이 너무, 아, 이, 이상, 아아, 이상해서…….”

진형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미간을 좁혔다.

“어디가 이상해. 형이 봐도 정말 귀엽지 않아요?”

“저, 저는 별, 별로…… 아, 흐읏, 오, 오히려, 너무 모, 못생…… 아!”

윤민이 말을 끝맺지 못하게끔 강하게 때려 박으며, 진형이 능청스럽게 중얼거렸다.

“왜 그럴까. 엄청 예쁜데.”

예쁜 건 진형 씨가 아니냐고. 굉장히 예쁘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목소리로 옮길 수 없었다. 점점 더 속도를 붙여 오는 허리 짓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하려던 말을 모조리 까먹은 채 뒤끓는 열기에 흠뻑 취했다.

그런데 아래에서 연달아 느껴지는 쾌감과는 별개로 무언가가 허전했다. 이유는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가슴을 기분 좋게 짓눌러 주던 그의 상체가 가까이에 없다. 어깨와 허리를 꽉 안아 주는 팔도 느낄 수가 없었다. 얼굴 곳곳에 입 맞춰 주던 입술도 멀찍이서 바라보아야만 했다.

아래로만 진형의 열기를 느껴야 하는 게 점점 서글퍼졌다. 허전함이 서운함으로 바뀌는 게 순식간이다.

윤민이 자그맣게 애원했다.

“진형 씨, 멀, 아, 으…….”

“형? 방금 뭐라고 했어요?”

윤민은 시트만 꼭 움켜쥐던 두 손을 있는 힘껏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지, 진형 씨가, 너무, 아, 멀, 너무 멀…… 멀어요…….”

진형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내려앉았다. 윤민이 애처롭게 팔을 뻗으며 가냘프게 속삭이자 이제 더는 견딜 수 없는 듯했다.

“흐, 우으흣!”

확 치밀어 오른 시선이 순식간에 바로 가까워졌다. 윤민이 흐어, 하고 헛숨을 크게 뱉었다. 연접된 곳이 꺾이며 성기가 들입다 안을 쑤셔 왔다.

“이번에는 좀 느긋하게 하고 싶었는데.”

“네……?”

“안 되겠다. 우리 일단 한 번 가요.”

구멍을 는질는질 희롱하던 진형의 것이 단숨에 안쪽을 푹푹 찔러 댔다. 매서운 움직임에 숨넘어가는 소리가 절로 튀어 나갔다.

“읏, 우읏, 아, 하아, 아아!”

“어쩔, 수 없어. 형이, 부추겨서 그래.”

진형이 한쪽 팔로 몸을 지탱하며 반대편 손으로 윤민의 성기를 그러쥐었다.

“아, 아, 읏, 흑, 흐으, 아아……!”

살과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일순 거세졌다. 안을 맹렬히 꿰뚫던 성기가 움직임을 멈추는 순간, 안쪽 가득 뜨거움이 번졌다. 젖어 드는 내벽을 느끼며 윤민도 큼지막한 손에 토정했다. 색이 무척 연해진 애액이 진형의 손가락을 타고 주룩 흘러내렸다.

윤민이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전신을 쥐어뜯는 듯한 감각이 발가락까지 내려왔다. 전율이 가시지를 않았다.

“흐읏……? 자, 잠깐……!”

그가 상체를 숙여 가슴을 밀착해 왔다. 드디어 진형을 부둥켜안을 수 있게 됐다며 윤민이 기뻐하던 것도 아주 잠시였다. 단단한 팔이 어깨를 감았고 엉덩이를 우악스럽게 붙잡았다. 귓가에 바싹 닿은 입술에서 흐릿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 앞에 기다리고 있을 행위를 예감한 덕분에 숨이 절로 가빠졌다.

“진형, 진형 씨! 아, 저 아, 아직 가는, 중, 잠, 잠깐, 흣, 아, 아으윽……!”

진형이 허리를 크게 올려붙이며 깊숙이 파고들었다. 쾌감으로 경련하던 안쪽이 강하게 들쑤셔지자 눈앞이 번쩍거렸다. 지금껏 꿋꿋이 참아 냈던 울음이 기어코 터져 버렸다.

“흑……! 으읏, 흐윽…… 흐으…….”

“예뻐요, 진짜. 난 형처럼 예쁘게 우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후으으…….”

진형이 발개진 뺨을 사랑스럽다는 듯 내려다보더니 곧장 입 맞춰 왔다. 안을 사납게 콱콱 짓찧는 것과는 달리 땀으로 범벅된 얼굴을 누비는 입술은 더할 나위 없이 정겨웠다. 애정 잠뿍 담긴 입맞춤이 건네질 때면 피부가 흐물흐물 녹는 듯했다.

거울 속, 두 사람의 육신이 한데 뒤엉켰다.

가슴을 짓누른 단단한 상체는 약간의 움직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의 무게감이 더할 나위 없이 안락했다. 진형과 피부를 빈틈없이 맞댄 채 아래에서 피어오르는 쾌감에만 몰입하는 시간이 눈물 날 만큼 좋다.

“형, 어때요? 우리 형은 천천히 박아 주는 걸 좋아하잖아.”

“네…… 조, 좋아요…… 좋아, 하, 흐으읏…….”

“몰아세우는 건, 싫어?”

진형이 능글맞게 속삭이며 안쪽을 콱 찍어 올렸다.

“읏! 으응, 으, 아, 아니에요…… 다 좋…… 후우, 좋아요…….”

“나랑 하니까?”

“네, 진형 씨랑, 하는 건 다…… 전부 좋…… 아아……!”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럴 때마저도 진형이 웃어 주는 게 좋아서 눈가가 기쁨으로 풀썩 주저앉았다.

이건 시간이 지나도 고쳐지지 않겠지. 그가 자기로 말미암아 웃어 주면, 언제까지고 행복할 거였다.

“하, 하아, 아, 아…….”

진형에게 꼭 안긴 채 위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거울을 통해 신체를 덮어 누른 늘씬한 나신이 바로 보였다. 아주 근사했다. 맨몸인 뒷모습을 이토록 오래 눈에 담아 본 건 처음이지 싶다. 오직 엉덩잇짓만으로 안을 헤집는 육체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탄력 있는 엉덩이가 잘팍잘팍, 새김질하듯 위아래로 움직일 때마다 안쪽에서 느껴지는 쾌감도 점점 배가됐다.

눈길을 올려 자기 얼굴을 바라봤다.

여전히 이상하다. 진형이 속삭여 준, 예쁘다는 말에는 역시 동의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몸에서 흐르는 땀방울을 접착제 삼아 그밖에 없는 것처럼, 진형 외에는 필요 없다는 것처럼 단단한 어깨를 꼭 끌어안은 자신의 모습은. 두 다리를 필사적으로 그의 허리에 감은 채, 아래에서 치밀어 오르는 열기를 만끽하는 자기 얼굴은.

참 행복해 보였다.

“아, 아, 하아, 아, 아앗……!”

부드럽게 안을 박아 주던 성기가 조금씩 성마른 기색을 띠었다. 두툼한 선단이 느끼는 곳을 집요하게 문질러 왔다.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상접된 곳에서 나던 물소리가 한껏 더 거세질 때마다 윤민은 통사정을 하듯 비음을 내질렀다. 고막에 들러붙어 오는 노골적인 소리만으로도 아래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짐작 갔다. 진형의 것이 줄기차게 내벽을 들이박을 때마다 오만소리를 내며 자지러졌다.

열락의 너울이 최고조였다.

윤민은 머릿속을 터트릴 것만 같은 열기에 매몰된 채 외마디 비명처럼 이름을 불렀다.

“진형 씨, 진형, 아, 윽! 지, 진형 씨……!”

마치 보채는 듯한 음성에 진형도 다급히 화답했다.

입술이 잡아 뜯기는 듯한 키스가 이어졌다. 물샐틈없이 겹쳐진 입으로 뜨거운 타액을 주고받았다. 뜨거움에 흐늘흐늘 풀어진 입 안에서 그의 혀끝이 바쁘게 움직였다. 여린 점막을 강하게 훑어 내리며 입천장을 긁어내릴 때마다 목구멍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것조차도 탐욕스럽게 먹어 치운 입술이 한층 더 깊숙하게 혓바닥을 얽어 왔다.

“흐읍, 흐……! 흐으응, 읍, 으읍……!”

머릿속이 확 탁해졌다.

안에 내뿜어지는 애액을 느끼며 윤민의 몸도 부르르 떨렸다. 단단한 배에 성기가 문질리며 오늘 몇 번째인지 모를 사정을 끝마쳤다.

“하…… 하아…….”

신체에 가득가득 차오르는 사정의 여운마저 몸을 지치게 했다. 시야가 몽롱했다. 숨을 하르르 토해 내며 눈을 두어 번 깜빡거렸다. 오늘은 기절하지 않았다는 게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뺨에 쪽 입 맞춘 진형이 부드럽게 속삭였다.

“고생했어요, 형,”

전혀 기운이 없었음에도 바로 고갯짓이 나갔다. 윤민은 머리를 좌우로 저으며 쉰 음성을 흘렸다.

“고생 아니에요……. 고생한 적 없…….”

“자꾸 예쁜 소리 할 거예요?”

진형이 눈을 가늘게 뜨며 허리를 은근히 치댔다. 흐무러진 내벽이 크게 진동했다.

“읏……! 우으…….”

쩔쩔매며 올려다보는 눈빛에 진형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천천히 몸을 뒤로 빼냈다. 좁다란 곳을 꽉 채우던 것이 물러나자 바로 밀려오는 상실감 탓에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잠깐 자리를 벗어났던 진형이 냉장고에서 물병을 가지고 침대로 돌아왔다. 뚜껑을 열어 병을 내미는 그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며 주춤주춤 상체를 일으켰다. 찬물의 시원함이 뜨끈뜨끈한 목구멍을 다소 식혀 주었다.

윤민이 물을 마시자마자 다시금 맥없이 몸을 눕혔다. 그 모습을 진형이 조용히 응시했다.

붉게 물크러진 곳에 희끄무레한 정액이 엉겨 붙어 있다. 성기를 빼내지 않고 계속 안에다 토정했기에 그가 무의식적으로 구멍을 벌름거릴 때마다 꿀쩍꿀쩍 액이 새어 나왔다. 색색 숨만 내쉬는 가녀린 신체가 흥분을 잔뜩 돋우는 듯했다. 과격한 섹스의 여파로 울긋불긋 물든 얼굴 역시 너무나 귀여웠다.

진형이 짧게 탄식하며 슬그머니 질문했다.

“형, 많이 힘들어요?”

윤민은 잠시간 갈등했다. 저도 모르게 진형의 사타구니 쪽을 힐끗거리게 됐다. 변함없이 흉흉한 기세를 드러내는 성기에 화들짝 놀라며 서둘러 시선을 뗐다.

괜찮다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래가 지잉 울렸다. 이러니 차마 아니라고 대답할 수가 없다.

애매하게 미소 짓는 입술을 바라보며 진형이 재차 입을 열었다.

“딱 한 번만 더 해도 될까요.”

“딱 한 번……?”

한 번이라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진형이 잽싸게 말을 고쳐 왔다.

“두 번?”

“…….”

달싹거리던 입술을 앙다문 채 눈알만 굴리는 연인을 바라보며 진형이 킥 웃음을 터트렸다. 윤민도 힘없이 따라 웃으며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럴 때 진형 씨가 스물넷이라는 게 실감 나요.”

“곧 스물다섯이지만요.”

진형이 옆으로 바싹 다가가 가는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윤민도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맨가슴에 이마를 기댔다.

“전 곧 서른넷이 되고요. 30대예요, 진형 씨……. 체력의 차이는 어쩔 수가 없나 봐요.”

“아니야. 내가 장담하는데 난 형 나이 돼도, 형 나이를 넘어서도 계속 형 앞에서 이렇게 될 거예요. 언제나 발정 난 애새끼처럼 굴 거라고.”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듣게 됐다.

갑작스레 눈시울이 확 뜨거워졌다. 불가항력이었다.

진형 씨 머릿속에서 우리는 꽤 오랜 시간 같이 있구나. 진형 씨가 내 나이가 될 때까지, 되고 나서도 함께할 수 있겠구나.

아무 말도 못 하는 윤민의 얼굴을 진형이 고개 숙여 내려다봤다. 붉디붉어진 눈가에 깜짝 놀라며 진형이 걱정스레 질문했다.

“응? 형 왜 갑자기 눈물을 글썽거려요. 아파요?”

“아니에요, 그냥…… 감동받아서…….”

“방금 내 말에? 어디서 감동받은 거야. 내가 계속 발정 난 애새끼처럼 굴 거라는 말?”

윤민이 희끄무레 웃으며 대꾸했다.

“네…… 좋아서요…….”

“나한테 시달릴 생각 하니까 눈앞이 깜깜해지는 건 아니고요?”

“아니에요……. 참 좋아요. 진형 씨랑 하는 건 다 좋으니까요.”

진형의 표정이 급변했다. 당장 달려들 거 같은 남자를 바라보며 윤민이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그, 그렇지만!”

소리를 크게 낸 탓에 음성이 확 갈라졌다. 윤민은 헛기침을 하고서 다시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은 잠깐 쉬면 좋겠어요. 30분만이라도…….”

호소하는 목소리에 진형이 눈매를 풀썩 떨어뜨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았어요. 30분 동안 얌전히 있을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진형은 도담한 엉덩이 쪽으로 슬금슬금 손바닥을 가져갔다. 젖은 살갗을 쓸어내리는 감촉에 윤민의 어깨가 불쑥 튀어 올랐다.

“얌전하게 있어 주는, 거, 읏, 아니었어요?”

“이 정도면 정말 얌전하지 않아요? 형 옆에 있는데 만지지 말라는 건 고문이지.”

“그, 그래도…… 아, 하아…….”

“이 정도는 봐줘요. 만지기만 할 거니까.”

엉덩이를 가볍게 주무르던 손바닥이 이번에는 허리 위로 올라왔다. 장난치는 것처럼 움직이던 손끝이 이윽고 부드럽게 피부를 문질러 왔다. 오늘 여러 번 한계까지 휘어진 곳을 마사지하듯 찬찬히 어루만지는 그의 손가락이 기분 좋았다.

“고, 마워요. 진형 씨.”

“그거, 내가 이따 잔뜩 괴롭히고 나서도 한 번 더 말해 줘요. 안심할 수 있게.”

“으음, 꼭 그러고 싶은데, 그, 진형 씨가 많이 괴롭히면…… 아마 말 못 하고 기절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하하하!”

진형이 왈칵 웃음을 터트리며 작은 몸을 꼭 끌어안았다. 윤민 역시 헤실헤실 미소 지으며 널찍한 품으로 뛰어들었다.

* * *

엉거주춤 걷는 윤민을 미안하게 바라보던 진형이 슬쩍 입을 열었다.

“형 많이 힘들어요?”

“아니에요. 저 멀쩡해요.”

곧이곧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저도 모르게 허리에 손을 짚는 윤민을 보며 진형이 속으로 쓰게 웃었다.

다음 날, 둘은 점심을 먹고자 이른 퇴실을 감행했다.

따듯한 국물 요리를 먹을 생각이었다. 하루에 한 번 정도는 국을 먹어야 하는 진형의 식성 때문이었지만, 윤민 역시 밤새 소리 질러 쉬어 빠진 목구멍 탓인지 뜨끈한 국물이 마시고 싶었다.

흐느적거리는 윤민을 곁눈질하며 진형이 다시금 말을 걸었다.

“나한테 업힐래요?”

“그, 그건, 어…….”

진형에게는 언제나 싫다는 말이 제대로 나가질 않았다. 아니, 정말 싫은 건가 고민하게 된다. 단순히 부끄러운 마음이 앞서는 것뿐이지 않을까.

그렇지만 일단 대답해야 했다. 기다리고 있을 진형을 위해 서둘러 목소리를 쥐어짰다.

“진형 씨랑 하는 건 저, 다 좋은데…… 하지만 여기서는 좀 아닌 거 같아요.”

윤민이 눈치 보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평일 오후임에도 시가지는 사람들로 붐볐다. 연말연시니 지금은 어딜 가도 비슷하게 인파가 가득할 거였다.

“뭐 어때.”

재차 권할 거 같은 진형을 막고 싶었다. 윤민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진형 씨, 저희 뭐 먹어요?”

“아. 이 근처는 나도 잘 몰라서 아까 검색으로 찾아봤는데, 전골 유명한 집이 바로 코앞에 있더라고요. 어때요?”

“전 좋아요.”

별 고민 없이 즉각 대답이 나갔다.

진형과 먹는 거라면 무엇이든 좋다. 한때는 혹시 이런 모습이 성의 없어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됐었다.

<그런 걱정 할 필요 없어요. 형이 좋다고 말하면, 나도 좋으니까.>

고민을 털어놓자마자 바로 다정한 속삭임을 들을 수 있었다. 근심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 후부터 그가 무엇을 권할 때마다 냉큼 좋다고 말하는 게 한결 쉬워졌다.

윤민의 즉답에 진형이 눈을 찡긋거렸다.

“형은 나랑 먹는 건 다 좋겠지.”

설핏 웃음이 났다. 윤민은 진형을 빤히 응시했다. 이쪽이 할 대답을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표정이 무척 보기 좋았다.

“네, 맞아요. 진형 씨랑은 뭘 먹어도 맛있으니까요.”

“고기도 좀 그렇게 먹어 줘 봐요.”

얼굴이 뜨거워졌다. 윤민은 손바닥으로 뺨을 두어 번 비비며 애써 대꾸했다.

“머, 먹잖아요. 진형 씨 덕분에 많이 는 거예요. 정말이에요.”

“알긴 아는데, 그래도 부족해요. 두고 봐. 난 언젠가 형이 삼겹살 먼저 먹자고 꼭 말하게 할 거니까.”

“어, 그거 기다렸던 거예요? 그럼 내일 말할까요?”

진형이 싱글거리며 이쪽을 내려다봤다. 미소 섞인 눈동자가 너무 부드러워서 가뜩이나 후끈거리던 뺨에 더더욱 열이 올랐다.

“그건 재미없지. 형이 정말 먹고 싶어서 말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요.”

“저 먹고 싶어요. 진형 씨랑 먹는 건 다 좋으니까요.”

진형이 팔을 쭉 뻗더니, 뺨을 비비던 작은 손을 낚아채듯 붙잡고서 새끼손가락을 살짝 깨물었다. 이쪽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어깨마저 푸드득거리는 걸 그는 아주 즐겁다는 듯 바라봤다. 이러다 진짜 얼굴이 터지면 어쩌지. 이런 걱정까지 들 정도다.

손을 놓아 주며 진형이 눈가를 찡긋거렸다.

“우리 얘기가 빙빙 돌지 않아요? 이건 집에 가서 다시 말하는 거로 하고, 일단 먹으러 가요.”

“조, 좋아요.”

그가 또 업어 주겠다고 말하지 않게끔 최대한 바르게 걸으려 노력했다. 다만 느릴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점이 밀집된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윤민의 보폭에 맞춰 천천히 걸어 주던 진형이 콧등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에 고개를 올렸다.

“어? 이제야 오네.”

“아…….”

작디작은 흰색 덩어리가 하늘하늘 떨어져 내렸다.

그러고 보니 어제 일기 예보에서 눈이 온다고 했었다. 그 예보를 보던 중에 일어났던 해프닝이 떠올라서 슬쩍 웃음이 났다.

유리 벽에 놀란 나머지 미처 전하지 못했던 말이 있다.

진형 씨 덕분에 눈이 좋아졌다고. 눈을 맞으며 서로 고백했던 그날이 잊히질 않는다고. 아마 언제까지고 뇌리에서 머물 것 같다고.

잊지 말고, 집에 가서 꼭 마저 말하자.

윤민이 굳게 결심했다.

진형 씨가 반드시 웃어 줄 말이니까.

기쁘다고 말하며 자기를 힘껏 끌어안아 줄 테니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