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진하게 녹아내리다
겨울과 봄의 경계에서 만난 도화와 도명은 어느덧 겨울을 맞았다. 겨울은 둘이기에 함께하는 날에는 견딜 만큼 춥거나 혹은 따뜻했다.
그리고 그해 겨울, 도화의 인생에도 한파가 찾아왔다. 두 사람이 만든 벽돌집 안의 세상에서는 그들의 사랑은 그저 평범한 사랑이었고 그렇기에 타인 앞에서 사랑을 표현하는 데 의식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다행히 그들의 집 주변에 사는 이웃들은 웃는 얼굴을 경계로 적당히 그들과 거리를 두거나 아니면 평범한 이웃의 일상이기에 섞여 살았다. 문제는 텃밭 가꾸듯 만들어낸 그 완벽한 균형이 조금이라도 다른 공간에 가면 일그러지기에 십상이라는 점이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리고 습관적으로 자신의 관점에서 타인을 보기에 타인도 자신과 같은 줄 안다. 그 본능적인 습관은 사람들과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장점이 되기도 단점이 되기도 한다.
이웃 게이 커플을 평범한 일상으로 받아들인 이웃 중 하나가 도화를 도화의 회사에서 만났다. 그리고 그의 자연스러운 말 건넴이 도화를 강제 아웃팅하게 만든 것이다. 악의가 아닌 것에서 비롯된 일이기에 너무 황당하고 서글프고 놀랐다.
도화가 오랫동안 두려워했던 일은 그가 방심한 순간, 그렇게 코앞에서 갑자기 나타나 얼굴을 이리저리 사악하게 흔들어 대고 있었다. 언제나 정해진 업무 외에도 가족 같은 분위기를 도화에게 강요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도화를 전혀 다른 사람처럼 대했다.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도화가 지켜온 출근 시간, 약속된 업무의 완벽한 이행 같은 건 허무할 정도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도화가 그 사람들에게 한 마지막 소심한 발악은 회식 자리에 보란 듯이 도명이 마중 나오게 하는 것이었다. 도화는 그제야 한이라면 한이었던 완벽한 연인을, 아니 반려자를 자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도화는 회사에서 해고 통지를 받았다.
그렇게 도화는 백수가 되었다. 그리고 2개월 동안 자발적으로 화원의 마당쇠로 활약했던 도화에게 면접 기회가 찾아왔다. 그를 소개해 준 건 그가 담당했던 고객이었다. 딱히 그 사람과 살가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가 맡은 일을 성실히 했을 뿐이었다.
도화는 세무사가 아닌 큰 기업의 회계 팀에 들어갔다. 도화를 면접 본 팀장은 그가 왜 전 회사에서 잘렸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장점 또한 알고 있었다.
그는 이성애자에게 하지 않을 무례한 질문을 했고, 도화는 오래간만에 찾아온 기회가 이미 날아갔다는 생각에 하고 싶은 말을 차분히 하고 나왔다.
결과는 의외였다. 도화는 면접에 합격했고 그는 그게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입사 조건으로 무례하고 무지한 조건이 붙었다. 사내에서 연애하지 말 것. 어차피 임자 있는 몸, 그리고 도명 외에는 다른 남자는 다 해산물같이 생기고 뭔지 모를 퀴퀴한 냄새도 나서 싫었다.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도화에게 도명이 없었다 하더라도 회사에서, 그것도 이성애자들을 상대로 연심을 표현할 리 없었다. 그렇기에 그 조건을 이행하는 것에는 문제랄 것은 전혀 없었지만 말 그대로 그 조건 자체가 무지하고 무례했다.
솔직히, 도명의 화원 마당쇠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몸을 쓰며 식물들을 돌보는 것은 정신 건강에도 좋았다. 그리고 도명이 살던 지하 집에 들어선 작업실에서 식물 세밀화가들의 작업과 표본 작업을 지켜보는 건 확실히 향기로운 일상이었다. 사방이 향기로운 숲이었다.
도명도 딱히 도화의 취직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은 듯했다. 그는 여유로워지고 또, 부드러워졌지만 그가 오랫동안 많이 쓴 감정이 퇴화기관처럼 완벽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내심 도화가 자신에게 경제적으로도 귀속되자 더 깊은 안정감을 느꼈으니까.
그리고 도화는 정말 화원에서 여러모로 일을 수월하게 해 줬다. 무거운 짐도 잘 들고 하라는 대로 말도 잘 알아들었다. 그리고는 화원의 재정 정리도 더 효율적인 양식까지 만들어 가며 해 줬다. 직원 면접을 정식으로 봤어도 빠지지 않았다.
가르칠 게 많았지만 몇 개월, 1년 일하다가 갑자기 이직할 일도 없으니 시간 투자하기도 나쁘지 않았다. 편리함을 알게 되니 도화 같은 직원을 추가로 진지하게 두고 싶어질 정도였다. 정신과 몸이 어찌나 편하던지.
도화가 매일 밤 남모르게 사회에 대한 공포와 자괴감에 빠지지만 않았다면 도화와 도명은 그 생활이 나름 나쁘지 않았다.
결국 도화는 무례한 조건이 딸린 합격 문자를 받고도 고민을 하다가 다음날 도명의 도움으로 최대한 세련되고 멀끔하게 차려입고 출근을 했다. 주눅 들기 싫어서 비싼 시계도 손목에 건틀렛처럼 찼다. 키 크고 허우대 좋은 도화가 세련되게 차려입으니 첫인상에서 그를 무시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똑같이 컴퓨터 앞에서 숫자를 다루는 일이었지만 낯선 업무들이었다. 거의 6년 동안 뼈에 박힌 일을 하면서 겪어 보지 않은 무능력, 그리고 끊임없이 올라오는 자격지심과 싸움. 역시 입사 후에도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낯선 일이, 심지어 더 길게 늘어난 파티션조차 신선한 자극인 건 사실이었다. 회사가 큰 만큼 연봉은 올랐고 도화는 자기가 어떤 톱니바퀴인지 모를 만큼 파편화된 역할을 맡았다. 사람들은 살가운 표정을 연기했지만, 사실 업무 관계 외에는 서로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런 업무 환경에 대해서 권태와 외로움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도화는 그게 오히려 좋았다. 알아서 적당한 깊이로 들어오는 업무상 만난 사람들과의 인간관계. 어차피 회사에서는 무미건조하게 해도 집에 들어오면 영혼은 보슬보슬하게 재충전되니까. 쓸데없는 인간관계에 지치는 것보다는 그게 좋았다.
그리고 도화는 그사이, 사람을 대하는 것이 늘었고, 적당히 관계에 발을 담그는 것을 익혔다. 도화가 예전보다 커밍아웃하지 않으면서 사람과 대화하는 것에 능숙해진 건 어깨너머로 지켜본 도명의 영향이 컸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결국 도화와 도명이 만났던 날로 한 바퀴 돌아왔다. 도화와 도명이 만났던 봄과 겨울의 그 경계선이었다.
도화는 보너스를 받고 기분이 좋아져 꽃집에서 빨간 장미꽃을 샀다. 도화는 향기로운 장미꽃을 한 아름 들고 버스를 타고 도시의 풍경을 쳐다보았다.
버스의 차창 너머로 그가 예전에 다녔던 회사의 풍경이 지나갔다. 버스를 타고 내리는 목적지는 다르지만 같은 버스를 타고 있었기 때문에 매일 보는 풍경이었다.
빨간 장미꽃을 한 아름 들고 있는 도화의 앞에 익숙한 얼굴들이 지나갔다. 예전 회사 동료들이었다. 언제나 같은 얼굴들. 버스가 도화에게 너무나도 익숙했던 정류장에 멈췄다. 그리고 멈춰선 버스 창을 경계로 마주치는 눈빛들.
도화는 깨끗하고 완벽한 정장을 입고 한 팔에 장미꽃을 한 아름 안고 있었다. 서로를 지나치는 눈빛들이 묘했다. 도명이라면 이 묘한 눈빛들의 감정들을 정확히 읽었을까.
버스가 정류장에 멈추는 시간은 짧았고 그렇게 사람들은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도 도화는 여전히 안고 있는 장미꽃 때문인지 코끝이 향기로웠다.
도화가 버스에서 내리고 익숙한 골목에 들어섰다. 그리고 도명의 화원을 가득 채운 익숙한 얼굴들을 향해 인사했다.
“어 웬 꽃이에요? 아, 반려 주려고요?”
그녀의 질문에 도화가 쑥스럽게 웃었다.
“어머, 대표님, 꽃 받을 거 알고 있었나 보다. 15분 전에 갑자기 분위기 잡고 피아노 치고 있어요.”
“설마요. 길 가다가 충동적으로 산 건데요. 아 맞다. 그리고 임신 축하드려요.”
도화가 그녀에게 초록색 아기 신발을 내밀었다.
“진짜 도화 씨밖에 없다니까. 대표님, 연습 끝나기 전에 빨리 전해 줘요. 완전 낭만적인 분위기에서.”
“네.”
도화가 장미꽃을 들고 식물들로 우거진 화원의 작은 숲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 숲 한가운데서 잔잔한 피아노곡을 치고 있는 도명을 향해 다가갔다. 도명같이 예리한 사람은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게 도화라는 것조차.
도명은 도화가 자신의 바로 옆까지 다가올 때까지도 연주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시선을 여전히 건반 끝에 두면서 말했다.
“장미꽃 샀어요?”
도명의 코끝에 거부할 수 없는 진한 장미꽃 향이 진득하게 달라붙었다. 보지 않아도 도화가 들고 온 선물을 코로 완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네.”
도명이 살포시 웃었다. 그리고는 연주를 아까보다는 느리고 더디게 치며 고개를 돌려 도화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도명은 도화와 입을 맞추면서도 피아노 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나 말고 다른 사람 위해 산 거면, 아주 큰일 날 거예요. 도화 씨.”
“다행이네요. 도명 씨, 주려고 산 거니까요.”
“식탁 위에 꽂으면 딱이네.”
도명은 더는 절화의 찬란한 순간 너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찬란한 순간은 그저 찬란한 순간이었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샀어요?”
“아니, 그냥…… 음, 날씨도 좋고, 아 뜻밖의 보너스도 나왔고, 또 장미꽃 보니까 괜히 도명 씨 생각나고 그래서요.”
“그냥이 아닐 텐데요. 내가 꽃같이 예쁘니까. 당연히 내가 생각나죠. 안 그래요?”
도화는 도명의 자화자찬에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틀린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냥 이왕 오늘 잘 보이기로 한 거 틱틱대지 않기로 했다.
“네. 도명 씨처럼 향기롭고 예쁘고 또 야한 색이니까.”
“우리 변태, 오늘 밤, 장미 가시 맛 좀 보여 줘야겠네.”
도명이 악보의 마지막 부분을 치고, 손가락을 깔끔하게 떼며 도화의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우리, 자기 오늘 뭐, 먹고 싶어요? 고기 구워 먹을까?”
“아. 저, 오늘은 자극적인 국물 요리 먹고 싶은데요. 햄도 먹고 싶고. 아! 부대찌개 해 먹어요.”
“그래요. 마침 수제 햄도 선물로 잔뜩 받았으니까요.”
“아. 그런데요. 부대찌개는 다 같이 먹을수록 맛있어요. 작업실 가서 오늘 저녁 먹고 갈 사람들 물어보면 안 될까요?”
“그래요. 도화 씨 하고 싶은 거 다 해요.”
결국 그들의 일상적인 저녁 식사는 어느새 대가족 저녁 식사가 되어 있었다. 각자 일찍 퇴근하고 집에서 밥 먹을 줄 알았던 직원들은 반이나 집에 안 가고 화원의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저기, 도화 씨, 햄 너무 많이 썰고 있습니다.”
도명이 햄을 썰고 있는 도화를 향해 넌지시 말했다.
“도명 씨, 부대찌개는 햄 맛이죠.”
“음식은 뭐든 균형입니다. 햄 많아요. 찌개 짜져요. 내가 경고했어요.”
도명의 말에도 도화는 도명의 눈치를 살살 보며 햄을 계속 썰었다. 그걸 가만히 보던 도명은 보다 못해서 도화의 엉덩이를 빵 밀대로 빡 때렸다. 도화는 급하게 얼얼한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주변을 급하게 살펴보았다.
지금 그들이 있는 주방은 이층집 주방이 아니라 탁 트인 화원의 주방이었다. 도화는 SM을 연상시키는 도명의 행동에 사람 많은 데서 이러지 말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무언의 항의를 했다. 도명은 그런 도화의 엉덩이를 다시 한번 때리며 말했다.
“햄 내가 그만 썰라고 했죠. 아니 도화 씨 아직 주방 보조예요. 어떻게 메인 요리장 말을 아직 설거지나 하는 주방 보조가 말을 안 들어먹어요.”
“도명 씨, 나도 도명 씨 밑에서 충분히 굴렀어요.”
“얼씨구.”
도명이 도화를 가소롭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도명 씨, 부대찌개는 햄 맛이라니까요. 도명 씨는 고급요리 감성은 잘 아는데 이런 쪽 음식 감성을 도무지 모른다니까요. 너무- 너무- 완벽한 도명 씨지만 우리 완벽한 도명 씨도 약점이 하나 있어요. 아니, 아직도 인스턴트 컵라면 맛을 모르는 분이 부대찌개 감성을 어떻게 알아요.”
“헛소리 그만하고. 백구야. 음식은 뭐든 밸런스가 중요하다니까요. 기본 중의 기본은 장르가 바뀌어도 유효합니다.”
“아니, 여러분, 부대찌개 하면 햄 많이 들어가는 게 좋죠!”
도화가 도명에게 밀릴 것 같아서 식탁에 앉아 저녁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햄을 울부짖었다. 도명은 대중의 어리석음을 보며 혀를 찼다.
결국 도명은 도화가 썬 햄의 3분의 2만 넣고 부대찌개를 완성했다. 그렇게 도명이 가운데 휴대용 버너를 놓고 커다란 전골냄비를 내려놓았을 때 윤정이 화원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러자 도화가 반가운 표정으로 어서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윤정 씨 너무 늦을까 봐 초조했어요.”
“아, 이 대리님! 오래간만이에요. 퇴근 준비하는데 갑자기 급하지도 않은 잔업을 던져 줘서요. 이 대리님 없으니까 회사가 아주 비효율적이라니까요.”
“그렇게 말 안 해도 나 이제 괜찮으니까 그만 애써요.”
“아니 진짜, 그래요. 그나저나 오늘 회사 사람들이 이 대리님 커다란 장미 꽃다발 들고 집에 가는 거 봤다고 하던데요.”
윤정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도화를 쳐다보았다. 도명이 자랑하듯 윤정을 향해 장미 꽃다발을 보여 주었다.
“아. 역시. 오늘 두 분 기념일이에요?”
“기념일이죠.”
“아 진짜요?”
“햇빛이 좋은 날이잖아요. 얼마나 특별해요.”
“으아. 닭살.”
“그나저나 사람들이 엄청나게 욕했겠네요. 남자랑 살면서 엄청 유난 떤다고.”
도화가 머쓱한 표정으로 젓가락을 괜히 가지런히 놓으며 말했다.
“아.”
“욕했네.”
“그 사람들은 언제나 그러잖아요. 그래도 제가 이 대리님 행복해 보인다고 하니까, 다들 거기선 별말 없던데요. 이러니저러니 욕해도 그건 부정할 수 없는 거죠. 그리고 솔직히 그게 다 시기 질투지.”
“솔직히, 행복하긴 합니다.”
두 사람과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테이블 위가 꽉 찼다. 도명이 끓인 부대찌개는 역시나 맛이 좋았다. 사람들은 그것을 맛있게 먹으면서도 계속 햄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조금씩 투덜거렸다. 도화가 아까 한 말의 여파가 계속되고 있었다.
인간들이란 이렇다. 지금의 상태에 만족하면서도 언제나 그 이상이 있지 않을까를 상상한다. 도명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 도화가 도명이 전골냄비에 담지 않은 햄들을 주방에서 꺼내왔다. 그사이 머리가 커 버린 주방 보조의 반란이었다.
사람들은 도화가 벌인 쿠데타에 환호했다. 도명이 도화를 노려보았다. 호기롭게 쿠데타를 벌이려던 도화는 도명의 눈빛에 움찔거렸다.
“하아, 넣어요.”
도명이 포기하듯 말했다.
“아. 진짜요?”
“네. 그런데 여러분, 육수 더는 없습니다. 감당할 수 있어요?”
도명의 경고에도 사람들은 부대찌개에는 햄이라며 울부짖었다. 도명은 사악하게 두 손바닥을 모으며 도화에게 허락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도화가 기뻐하며 자신이 잔뜩 썬 햄을 들이부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좋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수제 햄에서 빠져나온 염분이 국물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점점 냉수를 들이켜는 시간이 많아졌다. 자신들이 벌인 일이 있으니 차마 대놓고 짜다고는 말 못 하고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특히 도화가 그랬다. 도명 같은 완벽주의자가 자신의 완벽했던 요리가 망가진 걸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싶었다. 묘하게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도명이 내내 참고 있던 웃음을 터뜨렸다.
“아, 물이라도 넣을까요?”
도화가 안절부절못하며 주방 쪽으로 갔다.
“요리 못하는 사람들이 꼭 요리 망치면 물부터 넣더라. 백구야.”
“아니, 그게.”
“다들 감당한다고 했잖아요. 맛있게들 먹어요.”
그리고 도명이 소금 찌개가 된 부대찌개를 한 술 더 먹고는 다시 뭐가 그리 웃긴지 웃음을 터뜨렸다. 사람들은 소금 찌개를 먹으며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맛없어진 음식을 앞에 두고 사람들은 떠들고 웃었다.
도명은 완벽하지 않은 완벽한 인생을 즐기게 됐고 또 웃음이 전보다 많이 헤프게 됐으며 표정 관리를 조금 못 하게 됐다. 그리고 사람들을 대하는 것에 덜 능숙하게 됐다.
도화는 전보다 더 세련된 사람이 됐고 거짓말을 전보다 더 능숙하게 하게 됐다. 도명다운 것도 도화다운 것도 햇살 아래에서 녹진하게 녹아내린 모양새였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