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평범한 일상
결혼식이 끝나고 두 사람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주말 동안 일어난 결혼식의 여파는 아직 있어서 정리할 것들이 많았다. 일과를 끝낸 도명과 퇴근을 한 도화는 같이 이층집에서 저녁을 해 먹고 각자 맡은 집안일을 했다.
요리는 도명이 주로 하기로 했고 설거지는 도화가 하기로 했다. 사실 이 부분에서는 역할 분담이 애매한 면이 있었다. 도화가 요리를 같이하고 싶으면 같이 요리를 했고 도명 역시 여유가 있으면 같이 식기 정리를 했다.
반면에 정확히 역할 분담된 부분이 있었는데 섬세한 기술이 요구되는 빨래와 옷 정리는 도명이 했고 힘이 많이 들어가는 청소는 도화가 하기로 했다.
또 두 사람은 일종의 법인 카드처럼 공용 카드를 만들어 그 계좌에 매달 서로 결정한 금액을 입금하고 그 카드에서 두 사람의 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결제했다. 그리고 그 카드로 나간 가계부를 정리하는 건 도화의 몫이었다.
도화가 설거지를 끝내고 거실 바닥을 힘주어 물걸레질한 후 뻐근한 허리를 폈다. 힘 좋은 도화가 청소하자 거실 바닥이 빙판처럼 번들거렸다. 도화는 청소를 끝내고 한숨을 돌리며 거실에 걸려있는 도명과 도화의 결혼식 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빙긋 웃었다.
두 사람의 결혼식 사진은 얼핏 보기에는 사이좋은 사람들과 근사한 파티를 한 것 같은 사진이었다. 다정다감한 붉은 색 벽돌 벽을 이국적인 식물들로 채워 놓은 건물의 뒷마당을 배경으로 분위기 좋은 오렌지빛 조명 아래서 사람들이 웃으며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사진 옆에는 두 사람의 초대장이 작은 액자에 정성스럽게 담겨 있었다.
도화는 그 풍경을 물끄러미 보다가 소파에 앉아 있는 토끼 인형의 머리를 괜히 쓰다듬었다. 진영이 부부가 선물해 준 커다란 토끼 인형에 도화가 도명이 비교적 잘 안 입는 조끼와 넥타이를 걸어 놓고 토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토끼 인형 이름이 토명인 건 아직 도명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들키는 건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그렇게 걱정스럽지는 않았다. 도명이 도화가 토끼 인형에 자신의 옷을 입히는 걸 가만히 보고 있었다. 도명은 자신이 또 토끼와 연결되는 게 내심 못마땅했지만 좋아하는 도화를 보며 그냥 대충 넘어가기로 한 모양이었다.
도화는 토명의 복슬복슬한 배에 입 방귀를 하고는 도명이 일하고 있는 드레스 룸에 갔다.
도명이 여러 가지 장르의 진득한 음악을 들으며 다림질을 하고 있었다.
“도명 씨 아직 안 끝났어요?”
“거의 다 끝났어요. 제 건 다 했고 도화 씨 것만 하면 됩니다.”
도명이 도화의 하얀 셔츠 끝자락이 찰랑거리도록 완벽하게 다려서 들어 올린 후 정말 완벽한지 점검하고 있었다. 어느새 도화의 셔츠는 주름이 없어야 할 곳은 완벽하게 없었고 날이 서 있어야 할 부분들은 칼 같이 세워져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도화가 저러면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명 씨, 대충 하라니까요.”
“도화 씨, 대충이 뭔데요?”
“네?”
“대충 다리는 건 대체 어떻게 하는 겁니까?”
도명이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셔츠를 든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역시 제 빨래는 제가 해야겠어요. 도명 씨 집안일만 늘어난 것 같고.”
“도화 씨는 섬유에 대해서 잘 모르잖아요.”
도명이 도화를 향해 혀를 차며 말했다.
“도명 씨는 너무 잘 알아서 문제라고요.”
“아니 이왕이면 완벽하게 관리된 옷을 입고 있는 게 좋잖아요.”
“아니, 그게! 그게! 너무 완벽해서 내가 결혼한 티가 너무 나잖아요. 어제 출근하자마자 사장님이 이 대리 결혼이라도 했냐고 하는 거예요. 뭐가 이렇게 점점 부인 있는 사람처럼 옷차림이 완벽하냐고 하잖아요. 그 완벽한 애인이랑 살림 차렸냐고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들었다고요. 옷에서도 고급 섬유 유연제 향 나고 피부도 매끈해지고 뭔가 갑자기 잘 먹고 다니는 것 같대요.”
도화의 의도와는 달리 도명은 자신이 백구를 잘 챙기고 있다는 느낌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나 참. 그 말에 제 발 저린 겁니까? 그냥 지나가는 한마디에 개복치처럼 놀라면 그게 더 수상한 거 압니까?”
“어, 어쨌든 안 돼요! 너무 완벽한 관리는 너무 수상해요.”
“백구야, 그 말 들은 이후로 갑자기 유기견처럼 하고 다니면 더 수상하죠. 사람이 너무 개복치처럼 구니까 더 놀림 받는 거라고요. 하여간 사람이 매끄럽지 않다니까요.”
“유기견이요?!”
“네. 유기견.”
도명이 지지 않고 도화의 셔츠와 정장을 다리는 것을 마무리 지으며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말투로 말했다. 도명은 다림질을 끝낸 옷들을 들고 옷걸이에 하나씩 걸었다. 그러다가 도화의 옷장에서 자신에게 입혔던 토끼 옷이 걸린 것을 보고 인상을 팍 쓰며 도화를 노려보았다.
“지금, 이거 나하고 제2차 대전 벌이자고 하는 짓이죠?”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침대 옆 탁자 위에 걸린 사진 전쟁의 후속판 아니냐는 겁니다. 도화 씨는 내심 그 전쟁이 꽤 즐거웠나 봐요.”
제1차 대전의 시작은 도명이 도화의 사진이 귀엽다고 출력해서 침대 머리맡에 올려놓은 게 시작이었다. 하필이면 도명이 고른 사진이 도화가 초반에 도명을 수상한 사람으로 오해해서 그의 집에 무단침입을 한 그날 찍힌 사진이라는 것이었다.
도명의 SM 도구들이 담긴 캐비닛 안에서 이상한 무장을 하고 SM 용품들과 뒤섞인 채 겁먹은 표정을 짓고 있는 도화의 얼굴이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도명이 나중에 경찰서에 제출하려고 백업한 사진인데 이게 전혀 다른 의미가 되어서 그들이 같이 몸을 뒹구는 침대를 장식하게 될 줄은 도명 자신도 상상도 못 했다.
당연히 도화는 그 창피한 사진이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머리맡에서 보이는 것이 싫었고 도명은 이 겁먹고, 멍청한 표정이 너무 귀엽다며 치울 수 없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도화는 맞불을 놓으려고 도명이 싫어하는 토끼 털옷 분장 사진을 그 옆에 놓았다.
두 사람은 그걸로 아옹다옹하다가 일단 마지못해 휴전한 상태였다.
“도화 씨, 난 도화 씨가 나한테 잘 보이겠다며 로즈골드 팬티 입은 사진, 내 사무실에서 면접 보며 엉덩이로 내 정액 흘리고 있는 사진, 그리고.”
“으아. 그만 말해요!”
“그런데 지금 나한테 이런 싸움을 겁니까? 내가 지금 거실에 저 토끼 인형 보란 듯이 내 옷 입혀 놓고 앉혀 놓은 것도 모른 척 참고 있는 거 알죠? 자기야?”
도명이 도화의 옷장에 곱게 걸린 토끼 털 옷을 꺼내 흔들며 굳게 악다문 이사이로 소리를 냈다.
“아니, 이게 왜 도명 씨한테 싸움을 건 거예요.”
“나를 놀릴 작정이 아니면 뭡니까? 나는 아니지만, 도화 씨에게 좋은 추억이라서 버리지를 못하겠으면 내 눈에 안 보이는 곳에 잘 놔둬야겠다는 생각은 안 듭니까?”
“아니, 그게…….”
“그게 뭐요? 말 뭉개지 말아요. 사실은 말 잘하는 거 아니까.”
도명의 추궁에 도화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아니 진짜 별 뜻은 없고요. 놀리지 말아요.”
“안 놀릴 테니까 사람 답답하게 만들지 말아요.”
“도명 씨는 그 옷을 항상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입어서 모르겠지만 그거 입는 느낌 엄청 좋아요. 보들보들하고 이제 벌써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했는데 수면 바지 이상으로 따뜻하다고요.”
“그러니까.”
“아니, 그냥 홈웨어로 입는다고요.”
“거짓말. 이제 거짓말을 제법 그럴듯하게 표정 연기까지 하며 잘하네요.”
“진짜예요.”
“그런데 왜 도화 씨가 이걸 입은 걸 본 적이 없는 겁니까?”
“아니, 이렇게 크고 귀엽지 않은 남자가 저걸 홈웨어로 입고 다니는 거 보고 지랄한다고 생각할까 봐요. 도명 씨 출장 가고 없을 때 입고 있었죠.”
“도화 씨.”
“네.”
“도화 씨는 크고 귀여워요. 그리고 도화 씨가 집에서 홈웨어로 뭘 입든 잔소리 안 해요. 지금 나한테 중요한 건 도화 씨가 이 빌어먹을 옷을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할 의도로 걸어놓은 게 아니었으면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증명해요.”
“네?”
“아니 홈웨어인데 왜 이렇게 모셔두고 있냐고요.”
“아. 네. 대신 약속해요. 놀리지 않기로. 심지어 속으로라도 그러기만 해 봐요.”
“알았다니까요.”
“아, 그리고…….”
도화가 별안간 얼굴이 다시 빨개진 채 눈동자를 옆으로 굴리며 말했다.
“이게, 안에 옷 입고 집에 있기에는 더워서요. 그리고 이게 옷감이 좋아서…… 그 몽글몽글한 감촉이 좋아서 입는 거니까.”
“네. 누가 뭐래요. 나 참. 아니면 알아달란 겁니까? 이 지퍼 내리면 도화 씨 야한 살 나온다는 걸 어필하는 거예요?”
“아니요! 그냥. 저는 방금 도명 씨가 말한 그런 나쁜 이유로 안에 아무것도 안 입고 입는다는 게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하는 거죠.”
“알겠습니다.”
도명이 깔끔한 어조로 말했다. 도명은 어서 백구 네가 가장 좋아하는 그 홈웨어로 갈아입고 나오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도화는 도명이 집에 없을 때 했던 것처럼 토끼 털 옷을 입고 주춤주춤 거실로 나왔다. 도명이 없을 땐 정말 너무나도 완벽하게 편안한 홈웨어였는데 도명이 있으니 마음이 불편했다.
도명은 민망함을 겨우 참고 나온 도화를 아랑곳하지 않고 오늘 그와 하기로 한 결혼식 사진 정리를 하고 있었다.
도화가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도명의 옆에 슬며시 앉았다. 그리고 토끼털 옷 후드를 내리고 고개를 기울이며 도명의 옆에 푹 기댔다. 도명은 크고 하얗고 복슬복슬한 것이 옆에 앉아 있자 기분 좋은 티를 감추기 위해 심각한 척 턱을 손바닥으로 가린 채 마우스를 딸깍거렸다.
“우리가 선물 열어 보고 있을 때 사진들이네요.”
도명이 쓸데없이 도화도 눈구멍이 뚫려 있어서 보고 있는 사진에 관해서 부연 설명을 했다.
“아. 이때. 너무 무서웠어요.”
“선물 상자 여니까 살아 있는 장어 나왔을 때 솔직히 저도 당황했습니다.”
도명은 장어가 팔딱이며 완벽하게 맞춘 예복 정장에 물을 튀긴 순간을 생각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우아하고 아름다운 저녁 식사가 될 거로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순간을 생각하자 저절로 얼굴 근육이 굳어졌다.
“장어 눈앞에서 죽을 때 너무 무서웠어요.”
도명은 민망하다고 내내 자신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다가 즉석 장어요리가 시작되자 도명의 품 안으로 이 커다란 몸을 구기고 구기며 쏙 들어오던 모습이 생각나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정말 신기했다.
공포 영화 속 끔찍한 장면은 슬러시를 들고 쪽쪽 빨며 잘도 보더니 고작 지느러미 달린 거 죽이는 거는 못 보다니. 그러면서 도명 씨는 충분히 그쪽으로 건강하다며 꼭 우리가 이 장어를 기어코 먹어야겠냐며 울부짖던 그 목소리도 생각났다. 정말 이때 난장판도 그런 난장판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때는 마음에 안 들었던 것들도 그저 기분 좋은 웃음거리였다.
“아니 그런데 도화 씨 막상 숯불로 구워 주니까 다른 의미로 눈물 흘렸잖아요. 아니 진짜 먹으며 울어서 얼마나 황당했는데요.”
“아니에요. 맛있어서 운 거 아닙니다. 참아서 눈가에 고여 있던 눈물이 하필 입속에 장어 들어갔을 때 넘쳐흘러서 그런 거라고요.”
“아니 그래서 맛없었어요?”
“맛있긴 했어요. 사실 진짜 그렇게 맛있는 장어는 처음이었어요.”
“너무 맛있어서 운 거 맞네. 감히 다른 남자가 해 준 음식을 먹으며 내가 해 준 음식을 먹는 것보다 격하게 반응해요?”
도명이 진심으로 질투 어린 시선과 말투로 도화를 옥죄였다.
“아니 맛있긴 했는데 그 눈물이 그런 눈물이 아니었다니까요.”
두 사람은 이 문제로 한동안 입씨름을 하다가 다음 사진으로 넘어갔다. 그다음 사진은 지금 이들과 거실에 앉아 있는 토명이를 진영에게서 받은 사진이었다. 정확히는 토명이의 가슴을 누르자 나오는 도명의 음성을 듣는 도화의 표정이 담긴 사진이었다.
[내 마음의 작은 정원인 그 사람에게 좋은 정원사가 돼 주고 싶습니다. 내 마음과 당신의 마음에는 서툴지만, 정원은 비교적 잘 만듭니다. 숲의 언어와 몸짓을 배웠던 것처럼 오늘부터는 다른 외국어를 배우고 싶은 하루입니다. 청취자 여러분들도 우연히 들어간 골목에서 아름다운 정원을 만나는 하루가 되기를 빌겠습니다.]
“도화 씨, 아주 좋아 죽네요.”
도명이 사진 속 토끼 인형을 안고 있는 도화를 향해 중얼거리다가 그 정도는 아니라고 또 귀엽게 시치미를 떼서 그의 볼에 입술을 문댔다. 그리고는 자신의 머리를 넘기며 속삭이듯 말했다.
“그 정도잖아요? 안 그래요?”
“그래요. 네. 그렇습니다.”
다음 사진은 서윤의 선물이었다. 서윤의 선물을 받아든 도명의 표정이 아주 똥 씹은 표정이었다. 도화는 그게 또 너무 좋다고 웃음을 터뜨렸다.
“적당히 웃어요. 안 그럼 지금 들고 있는 그 머그잔 다음날 사라집니다.”
도화가 들고 있는 머그잔에는 도명의 사진이 박혀 있었다. 서윤의 선물이었다. 서윤은 도명이 도화에게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만든 그 사진을 포스터 크기로 출력해서 한 부 주었다.
도명이 영화관으로 데이트하러 가는 도화와 서윤을 가게 안에서 지켜보며 도화를 서윤에게 뺏길까 봐 전전긍긍하는 그 애절한 눈빛이 담긴 사진이었다.
문제는 포스터는 전문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답게 한 편의 영화 장면 같고 아름다운데 머그잔에 박아 놓은 사진이 문제였다. 같은 사진이긴 한데 사진 속 두 사람의 상대적인 크기 그대로 박아 넣어서 도화는 크고 선명하게 나왔고 비교적 멀리 있던 도명의 모습은 개미만 하게 박아 넣었다는 것이었다.
사진 전문가인 서윤이 사진 편집을 잘못할 리는 없고, 일부러 도명의 사진을 편집 프로그램 초보자가 하는 것처럼 어설프고 우툴두툴하게 대충 훅 딴 것이 느껴졌다. 펜 툴을 쓰는 것조차 귀찮아서 대충 매직 봉으로 클릭해서 주변 픽셀을 지운 티가 확 났다. 그래서 도화가 들고 있는 머그잔 속 도명은 부스러기 같았다.
“도명 씨 후배가 선물해 준 건데 진짜 버리는 거 아니죠?”
“이게 선물입니까? 엿 먹으라고 준 거지. 진짜 이 컵이 예뻐서 만날 그걸로 커피 타오는 겁니까?”
“아니, 도명 씨 사진이 박혀 있는데 당연히 이 컵이 언제나 손이 가죠.”
“여기에 대체 내가 어떻게 보입니까? 개미만 한데. 아 주변 픽셀 더러운 거 다 보이네.”
“도명 씨! 이건 마음의 눈으로 봐야죠. 저는 이 머그잔에서 도명 씨의 눈빛 하나하나까지 다 보여요.”
“지랄하지 맙시다.”
“도명 씨, 이 고상하고 잘생긴 얼굴로 천박한 말 쓰지 말아요. 아니 내가 서윤 씨랑 영화 보는 게 그렇게 싫었으면 손목 훅 잡고 끌고 뭐 그런 거 막. 네, 뭐, 그런 거 있잖아요.”
“백구야. 사람 말을 합시다. 막 뭐요. 짖으랄 땐 사람 말 하고 사람 말 해야 할 땐 짖고, 사람이 참 청개구리가 따로 없습니다.”
“아니, 좀 예쁘다고 만져 주고…….”
“엉덩이도 손바닥이 얼얼할 때까지 때리고.”
“네. 뭐. 그런 거요.”
“엉덩이가 아주 빨갛게 익었으면 구멍에 페니스도 좀 푹 찔러 주고.”
“악, 너무 갔다. 거기까지요.”
도화가 자신의 허리에 팔을 감으며 얼굴을 들이미는 도명의 가슴을 손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도명은 자신의 가슴을 치는 도화의 손목을 잡고 입안에 집어넣고 빨았다.
“백구야, 그 지퍼 좀 쭉 내려 봐.”
“안 돼요. 사진마저 보고요. 한참 재밌는데 왜 그래요. 대체.”
“다 보면 지퍼 내릴 겁니까?”
“몰라요.”
“모르긴. 변태 새끼가.”
“그나저나 엄마하고 도희 씨 이번에 이 예물 맞춰 준다고 무리 많이 한 거 아니에요?”
도화가 손목에 걸린 팔찌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아들 장가보내는 것치고는 싸게 먹혔죠. 도화 씨 지퍼 내리기 전에 할 말 있습니다. 솔직히 그냥 당장 지퍼 내리고 여러모로 예뻐해 주고 싶은데.”
도명이 가운데 두 손가락을 도화의 사타구니 사이에서 훑다가 그 끝을 접으며 말했다.
“이날 도화 씨 아버님 왔었습니다.”
“네?”
도화는 도명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도화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을 야하게 자극하는 도명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갔다. 하지만, 도명의 체온을 뿌리치고 싶지도 않았다. 도화는 떨리는 심장을 쓰다듬듯 도명의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얽고 꽉 조였다.
“난 도화 씨의 노래를 들으며 달콤하게 젖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 가지 의미로 젖어 있었다니까요. 그렇게 제가 최고로 행복한 순간, 그분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내가 계속 무언가 불안하다고 했잖아요. 내가 내내 못 찾았던 그 변수가 그분이 우리 결혼식에 오는 것이었습니다. 나 참, 도화 씨의 30년 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니까요.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전 정말 너무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일단 첫 번째, 그분이 도화 씨의 아버지라는 것. 두 번째, 그분이 행복에 젖은 내 품에서 도화 씨를 뺏으러 왔다는 것.”
“그걸 도명 씨가 어떻게 알아요. 축하해 주러 오신 것일 수도.”
“도화 씨, 그건 착각할 수 없다는 걸 알잖아요.”
도명의 말에 도화가 입술만 달싹이다가 이내 도명의 품에서 눈을 감았다.
“그분은 내 품에서 도화 씨를 뺏으러 왔어요. 그게 마치 정의인 것 마냥. 그게 아버지가 아들을 지키는 것인 것 마냥.”
“네. 내가 이웃사촌이자 친구인 성우에게 고백하고 이사를 했을 때처럼.”
“그리고 세 번째로 알게 된 사실은, 그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무슨 혼란이요?”
“우리 둘이 만든 완벽한 세계에서 자신이 오히려 이방인이라는 것. 우리가 평생 느꼈던 그 이방인이 가진 혼란을 느끼고 있었어요. 그분에게는 이상할 만도 했겠죠. 남자 둘이 사랑한다고 하고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즐겁게 마시고 웃고, 또 축복하고. 도화 씨, 솔직하게 말할게요. 내 성격 나쁨에 도화 씨가 질려 버릴 수도 있지만 내 솔직한 감정과 그날 한 행동에 대해서 말해야겠어요. 난 그분의 그런 혼란스러운 얼굴을 보고 통쾌했어요. 나는 연주를 마친 도화 씨를 달콤하게 끌어안고 그분의 얼빠진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게 웃었어요. 그리고 뺏길 수 없다는 듯이 고집스럽게 도화 씨의 등허리를 내 쪽을 향해 당겼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우리가 항상 받았던 그 시선 말이에요. 그 시선을 보냈어요. 우리가 정석이고 당신이 틀렸어. 언제나 맞았던 당신이 틀린 세상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그분은 정말 그날 완벽하게 이방인이었어요. 아무도 그날 그분이 왔다는 걸 몰랐으니까요. 애석하게 그 사실을 알고 있던 건 당신의 아들을 뺏어간 악마 같은 저뿐이었습니다. 몇 센티 문지방과 얇디얇은 유리 사이에서 그는 우리처럼 방황하고 또 두려워했습니다. 이 행복한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이 이방인이 될까 봐. 그토록 견고했던 세상의 상식이란 고작 잠깐 머릿수가 밀린 상황만으로도 흔들릴 수 있는 겁니다. 도화 씨, 내가 밉습니까? 내 아버지에게 했듯 도화 씨 아버지한테도 악마같이 굴어서? 그분을 그런 식으로 돌려보내서 화가 납니까?”
“진짜,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했네요.”
“네. 도화 씨같이 착한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미워요?”
“복잡합니다.”
“어떻게 복잡합니까?”
“아버지가 당한 일이니 가슴이 아픕니다. 내 완벽한 행복을 망치러 오셨음에도 말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못돼먹은 당신이 나를 지켜 줘서 좋아요. 나도 사실은 나쁜 새끼인가 봐요. 사실 나는 당신의 그 못돼먹은 면을 동경합니다. 나는 결코 할 수 없는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당신이 너무 관능적이고 또, 너무 아득해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