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화 (2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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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인터뷰

“언제나 마음껏 나비를 쫓고 싶어 했죠. 하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전 주인하고 살 때는 주인을 놓칠까 봐, 주인이 외국 간다고 저를 상자에 담아 버릴 땐 주인의 점점 희미해지는 냄새를 쫓느라 또 동물 보호소에서는 철창 안에 갇혀 있어서 나비를 못 쫓았습니다.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하필이면 당신이 내 목줄을 쥐고 있을 때 오랫동안 미뤄왔던 걸 하고 싶어 했던 걸 말입니다. 그냥 그런 생각을 했어요. 언제나 미뤄 와서 못 했다고. 이번에는 해도 되지 않을까? 안전한 당신의 품이라면 이번엔 괜찮지 않을까? 안전한 당신은 그걸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도도가 그리 말하고는 도명을 지그시 쳐다봤다.

“지금 그런 생각 하고 있죠? 이건 본인을 위한 변명이다. 도도의 목줄을 놓기 전 조금이라도 죄책감을 덜기 위해 이야기를 지어낸 거라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꿈속이고 여기 서 있는 도도는 내 머릿속이 만들어 낸 존재니까.”

“그래. 지금 네가 지어낸 이야기는 나를 위한 변명이야. 내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도명은 도도가 곧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존댓말을 쓰는 것이 우스워졌다.

“그런 상상 단 한 번도 한 적 없어요? 아직 세상 모든 일을 설명하기에는 심리학이니 뭐니 하는 과학은 충분치 않다고.”

“이것도 변명이야. 문에 거는 이중 잠금장치 같은 거지.”

도명의 말에 도도는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주둥이 끝을 씩 올렸다.

“도명 씨, 다시 만나서 반가웠어요.”

***

‘도도 씨 드디어 환생할 준비를 마쳤네요. 인터뷰 내용은 모두 녹음됩니다.’

‘네.’

‘서류에 도장 찍기 전에 정말 준비가 됐는지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할 겁니다.’

‘네.’

‘도도 씨는 죽은 지 꽤 됐어요. 대기 기간이 꽤 길었죠. 인간 기준의 삶에서는 그다지 안 길지만 개 기준에서는 이미 환생을 한 번 하고 조금 남는 수준입니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이렇게 마지막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도도 씨가 환생을 유예한 이유는 전 주인인 도명 씨 때문이죠. 이제 그 유예 이유가 사라진 겁니까? 도명 씨가 행복해졌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요.’

‘네, 말 그대로 어느 정도는이죠. 모든 삶은 각 존재들에게 충분히 길고 또, 굴곡이 많죠. 도도 씨는 도명 씨가 불행하기 때문에 환생을 유예했어요. 하지만 정말 확신할 수 있습니까? 그들은 음, 7개월 된, 정확히는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지 겨우 7개월 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행복이 견고하다고 확언하기엔 너무 설익은 시간 아닙니까? 뭐, 영원이라는 표현은 세상사의 흐름 안에서 부질없기는 합니다.’

‘저는 제 상담실에서 저를 기다리는 도명의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그의 꿈속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습니까? 그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잖아요.’

‘당연히 다시 들어가고 싶죠. 하지만, 죽은 내가 그러면 도명의 삶이 나에게 묶이잖아요. 나는 묶여 있는 게 싫었습니다. 첫 번째 주인은 나를 마당에 묶어놓고 그에게 달려가고 싶을 때 못 달려가게 했어요. 내가 싫은 걸 도명에게 해 줄 수는 없어요.’

‘그렇다면 아예 지켜보지 않은 편이 좋지 않나요? 도도 씨만 괴롭잖아요.’

‘네, 괴롭지만 지켜봐야만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뭐죠?’

‘내가 안심하고 떠날 때를 재기 위해서이지요.’

‘그래서 지켜보니 이제 도도 씨가 안심하고 떠날 때가 됐던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 기준이 궁금하군요.’

‘도명은 꿈속에서 여전히 절 기다립니다. 하지만 절 기다리면서 비로소 슬픈 기억 말고 좋았던 기억의 앨범을 들춰 보기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그가 잊었던 그 기억의 앨범을 드디어 보기 시작했어요.’

‘그게 정확히 어떤 의미이죠?’

‘감정의 사계절을 도명이가 다 겪어 봤다는 이야기죠. 관리자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도명에게 다시 인생의 겨울이 여러 번 찾아오겠죠. 하지만 이제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것을 직접 겪었고, 또 그 봄을 기다리는 법도 알았으니까요. 그러니, 그는 이제 겨울을 잘 버틸 겁니다.’

‘그렇군요.’

‘또, 도명이가 자신에게 가하는 벌을 멈췄어요.’

‘벌이라면?’

‘오랜 습관 하나가 사라졌습니다. 넥타이로 목을 강하게 조이는 그 습관 말입니다. 이제는 넥타이를 편하게 맵니다. 목줄에 대한 죄책감이 사라졌다는 뜻이죠. 본인은 그 습관이 사라진 줄도 모르겠죠. 왜 생긴 줄도 모르는 것처럼.’

‘왜, 진작, 그의 꿈에 나타나지 않았죠? 물론 허가가 쉽지 않아 도도 씨가 꽤 진상을 부리긴 했죠. 그쪽 부서에서는 진상으로 소문이 자자한 건 알고 있습니까? 어쨌든 이왕 진상 부릴 거면 도명 씨가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게 빨리 꿈에 나타날 수 있지 않았나요?’

‘저는 기다리는 걸 잘합니다. 기다리는 이유는 언제나 적당한 때를 만나기 위해서이죠.’

‘도도 씨가 생각한 적당한 때라는 것이 무엇이지요?’

‘그가 마음을 온전히 줘도 안전할 상대를 만나는 것이요. 어설프게 아문 상태에서 딱지를 벗겨 내는 건 너무 위험했습니다. 도명의 주변에는 이미 충분히 좋은 사람들이 많았고, 혹은 좋은 사람들이 될 사람 역시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걸 제대로 볼 수 있고 관계를 이어나가는 건,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만 아픈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래서 저는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도도 씨의 윤회가 한 바퀴 이상 돌 수 있을 정도로 말이죠.’

‘네.’

‘마지막 질문입니다. 정말 이번 생에 대한 미련이 없습니까?’

‘……네.’

‘대답이 애매하군요. 다들 그렇긴 합니다만. 도도 씨는 내내 죄책감을 호소했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죽어 버려서 도명 씨가 큰 상처를 받았다고요. 전에도 드린 말씀입니다만 모든 인과 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일이고, 또, 원래 죽은 자에 대한 마음의 짐은 원래 세상에 남의 자의 몫입니다. 어쨌든 도도 씨는 그날 죽었기 때문에 가장 많은 걸 잃은 존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고요.’

‘네.’

‘대답은 이렇게 하지만 여전히 마음속 죄책감이 남아 있군요.’

‘처음 올 때보다는 그 무게가 가벼워지긴 했습니다.’

‘이런 마음들은 환생하기 전에 최대한 덜고 가는 게 좋습니다. 전에도 설명드렸다시피 환생 전에 남은 감정의 복합물이 다음 생에도 이어집니다. 지금은 내가 이런 감정을 왜 느끼는지 알지만 환생 후엔 그 이유조차 알 수가 없죠. 이유는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어떤 것에 집착한다거나, 무언가를 보면 남들보다 더 슬픈 감정, 혹은 기쁜 감정 등을 느낍니다. 그렇게 천성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우리는 이왕이면 당신들이 영원히 같은 생을 반복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물론 어디서 어떻게 어떤 존재로 태어나는지에 따라 많은 변환점이 있긴 합니다만, 지나치게 그 천성이 같은 선택을 많이 하면 그 수많은 변환점에도 불구하고 같은 생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존재들을 바로 환생 안 시키고 이런 시간 걸리고 복잡한 절차를 진행하는 겁니다.’

‘관리자님, 저는 이 죄책감을 아주 없는 것으로 만드는 건 불가능합니다.’

‘흠, 도도 씨는 이미 시간을 많이 썼지만 조금만 더 가지는 건 어때요? 도도 씨의 말대로 전보다는 가벼워지긴 한 것 같습니다만, 이왕 할 수 있다면 더 덜면 좋지 않겠어요?’

‘아니요.’

‘왜요?’

‘여기서 시간을 더 쓰다가는 도명이의 꿈에 뛰어들어가고 싶어지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여기에 도장 찍으세요. 이제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 겁니다.’

도도는 관리자가 내미는 서류에 검고 말랑말랑한 발바닥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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