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화 (2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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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 씨를 다치게 하지 말아요.

도화는 도명에게 회식이 있다고 문자 했고, 도명은 도화에게 오늘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할 거라고 문자를 했다. 가족과의 식사라는 말에 도화는 호기심이 일었지만, 어차피 나중에 어땠는지 도명이 미주알고주알 말할 게 빤해서 식사 잘 하라고 간단하게 문자 했다.

지금쯤 분명 더 완벽한 식사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도화는 그의 곤두선 신경을 분산시키고 싶지 않았다. 도명은 도화를 옆구리에 끼고 있으면 그 점잖은 얼굴로 수다스러운 편이었다. 특히 가족과 겪은 일이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사소한 일이든 줄줄 뱉어냈다.

도화에게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하는 그는 마치 무인도에 갇혀 있다가 풀려나서 사람과 간만에 이야기하는 사람 같았다. 그렇다고 도명이 가족에게 각별한 사람이냐 묻는다면 대답이 좀 애매해졌다.

굳이 한마디로 정의를 내려야 한다면 애증이고 영원히 채울 수 없는 결핍일 것이다.

도명 같이 모든 인간관계에 전투적이고 진취적이며, 성공의 기억을 차곡차곡 쌓은 사람도 극복 못 하는 영원한 구멍, 그래서 그답지 않은 수다스러움으로 구멍을 채우려는 것 같았다. 가족 이야기에 한에서는 도화의 귓가에서만 속삭이느라 더욱 수다스러워지는 그가 어쩐지 짠했다.

대학교 1학년 때 이후로 부모와 연을 완벽히 끊은 도화가 도명에게 줄 연민치고는 사치스러운 감이 있지만, 마음을 준 사람에게는 사치스럽든, 주제넘든 무슨 상관이랴.

도화는 술에 취해서 살짝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도화가 술이 아무리 세도 굳이 망가진 모습을 보겠다고 악의적으로 들이붓는 술에는 장사가 없었다. 도화는 사람들이 2차를 가자는 걸 거절하고 나왔다. 눈치가 도우미를 불러서 노래방에 가고 싶은 것이다.

여자 동료들이 있는 앞에서는 말 못 하고 자기들끼리 담배 피우러 나갔을 때 입을 맞춘 모양이었다.

그리고 때마침 도화가 술 좀 깨려고 가게 앞에 서 있다가 그 모든 모의를 들었다. 도화가 자기들 말을 들은 것 같으니 도화에게도 사회생활의 일부라며 질 낮은 유흥을 권했다.

도화는 여자친구가 있어서 안 된다고 했다. 사람들은 도화의 그런 태도를 바보 같은 순애보 취급했다. 남자 동료들은 악착같이 2차를 외쳤고 결국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러 큰길 쪽으로 나온 건 윤정과 정은 그리고 도화뿐이었다.

큰길을 가다가 나오는 포장마차 행렬에서 맛있는 음식들이 내는 김들이 유혹적이었다. 도화가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순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 대리님 왜요? 순대 먹고 싶어요?”

“네.”

“먹고 싶으면 먹고 가면 되죠. 그렇지 않아도 적당히 눈치 보고 빠지느라 후식 필요했는데. 안주는 안 시키고 뭘 그렇게 술만 잔뜩 시키나 몰라. 센스 없이.”

정은이 투덜거렸다.

“아, 내가 먹고 싶기도 하고, 또, 음. 아닙니다.”

“여자친구 먹이고 싶구나.”

“아. 네.”

“사 가요. 뭘 고민해요.”

“흠. 살찐다고 싫어할 겁니다. 늦은 시간에 뭐 안 먹습니다. 저번에 갑자기 스트레스받는다고 케이크 구워 먹은 것 빼고는. 그건 아주 예외적인 겁니다. 그래도 아 저거 참 맛있는데, 좋아할까요? 주로 파스타라든지, 샌드위치 같은 외국 음식 계열을 좋아해서요.”

“에이, 이미지 관리하는 거죠. 여자들도 순대 엄청 좋아해요. 오히려 남자들이 곱창 같은 거 잘 못 먹던데.”

“아, 취향 아닐 것 같은데. 근데, 저거 참 맛있는데.”

적당히 술 취한 사람답게 도화가 고장 난 사람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런 도화가 답답해서 빨리 옆에서 결론을 내려 주기로 했다.

“일단 사 주고, 안 먹는다고 하면 저 맛을 아는 이 대리님이 다 먹으면 되죠.”

“일단 사 갈까요?”

“아니, 근데 남자친구가 늦은 시간에 갑작스럽게 사 들고 오는 게 순대인 건 좀 낭만 없다. 거기다가 술 냄새 이렇게 풍기면서. 아버지야 뭐야. 저번에 선물 보낸 거 보니까 감각 좋은 분 같던데.”

“아, 센스 없나…….”

도화가 흔들리는 동공으로 말했다.

“왜 다정하고 좋잖아. 난 남자친구가 야밤에 떡, 튀, 순 들고 찾아오면 완전 좋을 것 같은데. 영혼이 토실토실 차오르는 기분이 들 것 같아.”

“그런가요?”

도화의 귀가 쫑긋거렸다.

“아, 그런데 이 대리님 촌스러운 거 애인한테 들켰어요?”

“야, 들켰지, 갑자기 이 대리님 옷 잘 입고 다니는 거 보면 몰라? 이미 감각 수선 들어간 거야.”

정은이 윤정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툭 치며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도화는 술 취한 와중에도 그건 다 들었다.

“이왕 촌스러운 거 들킨 거 그 콘셉트로 밀고 가요. 알고도 사귀었으면 나름 코드가 맞겠죠.”

“사 갈 겁니다. 안 먹으면 나 혼자 다 먹을 겁니다.”

그렇게 순대와. 떡볶이, 튀김을 포장할 동안 세 사람은 그 자리에 서서 어묵과 떡볶이 국물을 묻힌 오징어 튀김을 먹었다.

“근데 이 대리님은 여자친구 때문에 2차 안 간 거예요?”

정은의 찌르듯이 들어온 질문에 이번에는 윤정이 그녀의 옆구리를 쿡 찔렸다.

“왜, 빤하지 뭐. 만날 사무실의 분위기 메이커들이라고 쓸데없이 추켜세우면서 회사 행사에는 반드시 참석하라는 사람들이 서로 묘한 눈치 보며, 갑자기 2차 안 가도 된다고 에둘러 말하는 거 보면 빤하지. 안 그래요? 이 대리님? 아까 남자들 담배 피우러 나갔을 때 공모한 거죠? 오늘 사장 기분 좋았잖아. 기분 좋은 날엔 카드 잘 긁으니까.”

“……아. 네. 뭐.”

도화는 괜히 어색함에 어묵을 오물오물 진득하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부인 없고 애인 없어서 안 갔나? 이 대리님 전에도 안 갔어요?”

“원래 안 해요. 그런 거.”

“맞다. 이 대리님 원래 회식 자체를 안 나왔잖아.”

“아 맞다. 이 대리님 남자들 사이에서 왕따죠? 담배도 안 피우고, 그런 2차도 안 가고.”

윤정이 급기야 정은의 손등을 꼬집었다.

“저는 원래 자발적 왕따입니다.”

“우리하고는 왜 안 놀아요? 우리 억지로 담배도 안 권하고 술도 안 먹이는데!”

“네? 아니, 직장이 놀려고 나오는 것도 아니고요.”

“아니, 그렇다고, 일부러 성격 싸늘한 척할 필요는 없잖아요. 요즘 표정관리 안 되는 거 다 보여요.”

정은도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도화처럼 술에 취한 모양이었다. 평소에 하지 못한 이야기가 줄줄 나오는 것 보면 말이다.

“아무튼 해치지 않을 테니까 일부러 표정 굳히지 말아요! 그러지 말아요.”

“아, 네.”

“그러면 귀엽잖아요!”

“네??”

윤정은 내일 아침 정은이 도화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거라 생각하며 한숨을 푹 쉬었다. 지금은 술에 적당히 취해서 그렇지, 언제나 도화를 어려워하던 그녀였으니까.

윤정은 정은이 더 실수할까 봐 마지막 남은 오징어 튀김을 급하게 입안에 밀어 넣으며 인사를 했다. 도화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포장이 다 된 분식을 받아 들었다.

도화가 집 앞에 도착했을 땐 도명의 가게에 여전히 노란 빛이 부드럽게 스며들어 있었다. 유리창에는 안과 밖의 온도 차 때문인지 뿌옇게 김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집중할 일이 있는지 블라인드도 쳐져 있었다. 도화는 분식들을 들고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가게 문을 밀며 혀가 반쯤 꼬인 말투로 말했다.

“도명 씨~ 백구가 야식을 사 왔습니다. 살찐다는 소리는 단호히 거절하겠습니다. 거절을 거절해요.”

“아. 네 그렇군요.”

도명은 손에 형형색색의 카나페가 담긴 접시를 들고 멀뚱히 도화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분위기가 이상했다. 도화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테이블에 두 여성분이 앉아 있었는데 묘하게 도명의 얼굴이 묻어 나오는 게 이들의 정체를 바로 알 수 있었다.

도화는 급하게 시계를 보았다. 저녁 10시였다. 당연히 지금쯤이면 저녁 식사를 끝내고 집에 갔을 거라고 생각한 도명의 가족이 그대로 그림처럼 앉아 있었다. 도화는 뱀 앞의 쥐처럼 사지가 굳었다.

‘저녁을 먹었으면 과일이라도 깎아 먹고 집에 갈 거라는 생각은 왜 못 한 거지!’

도화는 갑자기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도화는 괜히 짧은 머리를 가다듬고 공손히 인사를 올린 다음 조심스럽게 분식이 담긴 검은 비닐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뒤로 조심스럽게 후퇴했다.

도화가 뒷걸음질 치다가 그의 등이 다시 현관문에 닿았을 때 도명의 어머니가 입술을 열었다.

“온 김에 먹고 가지 그래요?”

잘 갈린 칼날처럼 선명하면서 점잖은 말투였다.

“아, 저.”

“먹고 가요.”

그녀가 다시 힘주어 말했다. 도화가 울먹울먹한 얼굴로 도명을 쳐다보았다. 도명이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며 도화를 향해 일단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때 그녀의 목소리가 도화를 향해 다시 한번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어른이 이 정도로 권하면 먹고 가는 게 예의입니다.”

“어머니, 도화 씨는 불편한 모양인데요. 도화 씨한테 애인 부모님 만나는 게 너무 갑작스럽잖아요.”

“네 애인인데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어 하는 게 그렇게 잘못된 거니?”

“언제부터, 제가 남자랑 사귀는 데 관심 많았다고 그래요.”

“관심 많았다. 그런데 네가 애인이 통 안 생겨서 관심 있는 걸 티 내지 못했을 뿐이지.”

“나중에 따로 자리 만들게요.”

“번거롭게 그럴 거 뭐가 있니? 그리고 그렇게 말하고 안 만들 거 다 안다.”

도명과 그의 어머니가 실랑이를 벌이자 자신이 자리에 안 앉으면 싸움이라도 날 것 같아서 도화는 일단 자리에 앉았다. 도화의 등줄기가 면접이라도 보는 것처럼 빳빳했다. 그러다가 이내 자신이 싸 온 분식 봉투를 펼치는데 그 모양새가 영 안 좋았다. 

미에 대한 결벽증이 있는 도명이 준비한 카나페와 찰랑거리는 와인 사이에 있어서 더 초라해 보였다. 도화는 접시라도 꺼내 와서 어떻게든 그럴듯하게 담아야 하나 고민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저, 도명 씨, 접시 좀.”

“아. 네.”

여전히 아무렇게나 펼쳐져 있는 비닐 입구들이 나부끼고 있을 때, 도명의 어머니가 우아하게 포크를 들더니 순대 간을 푹 찍었다. 그리고는 입속에 쏙 넣었다.

“접시에 담아 드릴게요.”

도명이 말했다.

“설거짓거리를 뭐 하러 만드니? 도화 씨라고 했나요?”

“네.”

“소금, 어디 있어요? 안 챙겼어요?”

“챙겼습니다. 순대는 중간에 고춧가루 섞인 꼭 그 소금이어야 하잖아요. 아, 저, 도명 씨 소금 담을 접시 좀.”

“네. 여기 있습니다.”

“도명아, 설거짓거리를 뭐 하러 만드니? 도화 씨 여기 한 구석에 예쁘게 잘 털어 봐요.”

도명의 어머니가 검은 비닐봉지 한구석을 판판하게 펴더니 도화를 향해 날카롭게 눈짓했다. 그녀의 말에 도화가 벌떡 일어나 고급 레스토랑 웨이터처럼 조심스럽게 소금을 탈탈 털었다.

“저, 도화 씨는 쌀떡인가 봐요. 저는 밀떡인데.”

도희가 음미하듯 떡볶이 떡을 콕 찍더니 입으로 가져가 맛을 음미하고는 새침하게 말했다.

“아, 제가 그런 줄 모르고. 바보같이 쌀떡을 사 왔네요.”

도화가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그리고 떡볶이 양념을 튀김에 이미 부어 온 걸 보니, 부먹파인가 봐요. 아 저는, 튀김은 역시 바삭한 게 좋거든요.”

“아. 그냥 저는 아주머니가 부어 주시기에 아무 생각 없이 가져온 게…… 잘못됐네요.”

“오빠, 도화 씨 어떡해,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어. 뭔 말을 못 하겠어.”

도명이 웃으며 도희의 어깨를 주물러 주는 척 다가와서 그녀의 귓가에서 속삭였다.

‘야, 즐기지 마.’

‘아니, 근데 귀여워.’

‘네가 남의 애인 귀여움을 왜 느껴?’

도명이 결국 도희의 이마를 쥐어박았다.

“도명아, 너는 다 커서 늙어가는 여동생 머리를 왜 때리니? 우리 집안이 뭐라고 생각하겠니?”

‘뭐라고 생각하긴요. 우리 집안은 이미 이미지 관리 망했어요.’

“근데 어머니, 집에 안 가세요? 도희 너도.”

“하지만 음식이 이렇게나 많은걸. 오빠, 여기 너무 좋아!”

“도명아, 밥을 안 해도 음식이 끊임없이 나오니 나도 행복하구나. 도화 씨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봅시다.”

“아. 네, 뭐든 물어보십시오.”

“도명이 얼굴 때문에 사귀는 겁니까?”

“네? 아니, 네. 아니… 네…… 아 그게.”

도화는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테이블 밑에서 도명의 소맷자락을 잡았다.

“자기야, 나 얼굴 보고 사귀는 거야?”

하지만 도명은 도화의 SOS 요청을 받아 주기는커녕, 그사이 장난기가 돌았다.

“아니요. 약간. 네. 아주 약간.”

“제 얼굴이 겨우 아주 약간 잘생겼다는 뜻입니까?”

“아니요. 아주 잘생겼죠.”

대화를 하는 내내 도화는 도명의 어머니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여사님, 이모님, 어머님, 선생님, 등등. 그나마 가장 나은 건 어머님 정도인 것 같았다. 친구 집 놀러 갔을 때 친구 어머니를 그렇게 부르곤 하니까.

하지만 여기서 어머님이라고 부르면 왠지 자신과 도명이 특별한 사이니까, 어머님이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마치 두 사람 사이를 정식으로 인정해달라고 압박을 넣는 모양새였다.

혹은 주제를 모르고 오버를 하는 것이거나. 한두 번은 어떻게든 넘어가겠는데 계속 주어를 생략하고 대화를 하려다 보니까 쉬운 말도 어려웠다.

거기다가 이 집 분위기가 다 묘하게 도명과 닮아 있었다. 도명의 여동생인 도희는 말투가 쾌활하고 살가웠으나 묘하게 고압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도화는 유씨 일가에 둘러싸여 있는 내내 어느 누구 하나 편한 사람이 없었다.

“아. 저기.”

“도화 씨가 술을 먹어서 그런가, 저를 자꾸 저기라고 지칭하는 면이 있네요.”

도명의 어머니가 날카롭게 말했다.

“도화 씨 원래 말 또박또박 잘해요. 여기가 불편한 자리라서 그렇죠.”

도명이 귀엽다는 듯이 도화의 땀에 젖은 이마를 손수건으로 닦아 주었다.

“저, 이만 집에 들어가죠?”

“얘는 한참 재미있는데, 아까부터 섭섭하게 구는구나.”

“그래 도화 씨는 오빠 어떨 때가 제일 좋아요?”

“네? 아. 네. 다 좋습니다. 다 좋아요.”

“오빠! 대답 똑바로 못 하잖아. 특별히 좋은 게 없나 봐.”

도명이 도희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백구를 놀릴 수 있는 건 자신뿐이라는 표정이었다.

“그나저나 내 피아노는 잘 쓰고 있습니까? 그거 시집 올 때 어머니가 주신 거거든요. 어머니의 몇 없는 유품 중 하나입니다.”

‘아, 그런 거였나!! 그냥 피아노가 아니었냐!!’

“아이고, 그렇게 귀한 건지도 모르고. 어서 돌려드려야……”

“잘 쓰고 있어요. 어머니. 아주.”

도명이 뻔뻔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우리가 쓸 건데 우리가 직접 사야죠.”

“도화 씨, 피아노 사는 데 돈 쓰지 말자고 했잖아요. 돈 아끼라고요.”

평소 눈치 좋은 도명이 갑자기 왜 이러나 모르겠다. 도화는 당황하자 몸이 달아올랐다. 당황한 뇌세포가 도화의 머릿속을 여기저기 횡단하다가 꼬였다.

“엄마, 오해해요! 제가 사주한 게 아닙니다.”

“엄마요?”

“네?”

“방금 우리 엄마한테 엄마라고 불렀잖아요.”

“아…… 이, 이건 제가 감히 귀한 도명 씨를 달라는 뜻이 아니라…… 아 잘못했습니다.”

‘이거 SM 플레이보다 긴장되고 힘들어!’

***

도명은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었고 도화는 한숨 돌리려 도명의 가게 앞 벤치에 앉았다. 저 안에 있다가 밖에 나오는 내내 더웠던 몸이 적당히 식는 기분이었다.

도화가 숨을 돌리려는 찰나 커피를 타온 도명의 어머니가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도화는 다시 등을 빳빳하게 하고 그녀가 건네준 커피를 두 손으로 받았다.

“너무 긴장하지 말아요.”

“아. 네.”

“도화 씨, 아까 손목 보니까, 결박 자국 있던데, 그거 혹시 우리 도명이가 그랬어요?”

“네?”

도명의 어머니, 숙영의 말에 도화가 급하게 걷어 올린 팔뚝을 쳐다보았다. 전날 도명과 침대에서 가벼운 결박 플레이를 했었다. 붉은 밧줄이 뱀처럼 몸을 감은 상태였다. 

그렇게 유두와 허벅지 윗부분까지 조여진 상태로 침대 헤드에 묶여서 삽입 섹스를 했다. 비교적 가벼운 강도의 SM 플레이이었다. 그날 도명이 도화를 때린 것도, 좋아서 우는 도화가 너무 귀여워 손바닥으로 엉덩이를 때린 정도였다.

도화는 애인의 그것도 남자 애인의 어머니한테 자신의 성벽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새빨갛게 익었다. 겨우 식었던 몸이 빠르게 뜨거워지고 있었다.

“아. 저, 그.”

“도명이가 그랬군요.”

숙영이 심각한 표정으로 손바닥으로 콧등을 감싸며 허공을 응시했다.

“자주 그래요?”

“아. 그, 그게.”

‘우리가 지금 한창 뜨거울 때니까.’

“도명이가 도화 씨 잘 챙겨 주고 그러죠? 다정하고…….”

“네! 네!”

“그거 길들이는 거예요. 흔히 말하는 그루밍이죠. 보통 도명이를 만나는 사람들은 그 다정한 부분에 중점을 둬요. 강압적이지만, 사실은 다정한 사람이다. 그는 나를 좋아하고 다정한 게 본모습이고 이렇게 괴롭혀대는 건, 그냥, 스쳐 가는 그의 성미다.”

도화는 점점 대화의 흐름이 이상한 반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녀가 도화를 사랑을 볼모로 그루밍 당하는 피해자인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이번엔 도명이가 진짜 사랑을 하는 줄 알았어요. 오늘 도화 씨를 쳐다보는 눈빛이나 그 애답지 않게 설레는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번엔 진짜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오늘이 진짜 행복인 줄 알고 웃고 떠들고 그랬는데 도화 씨 팔목을 본 순간 이 모든 게 그 아이가 만들어 놓은 정교한 판타지임을 깨달았어요.”

숙영이 결국 괴로운 듯 고개를 푹 숙였다.

도화는 도명의 어머니가 말을 살갑게 하거나 편하게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심 이 자리를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도화는 도명의 가족들한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내심 좋았다. 아들의 남자 애인인 자신이 어느 정도는 이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중간 이후부터 그녀의 얼굴이 차갑게 식은 것을 보고 자신이 크게 말실수를 했나 싶어 조마조마했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손목의 작은 결박 자국 때문이라니.

“도명 씨는 절 사랑하고 있는 거 맞아요.”

“정신 차려요. 누가 사랑하는 사람 몸을 이렇게 만드나요?”

“이건 내일이면 사라져요. 진짜 별거 아니에요. 언제나 이런 건 사라져요. 도명 씨는 진짜 심각한 상처를 만들지 않아요. 그건, 이쪽의 중요한 규칙 중 하나입니다.”

도화가 급하게 두 손을 흔들며 말했다.

“몸의 상처가 사라지면 그 애가 도화 씨를 학대하며 즐거워한 게 없는 날이 되는 건가요?”

“이건 그냥, 도명 씨하고 제가 벼, 변태라서 그래요.”

“도화 씨는 원래부터 이런 것을 즐겼나요? 도명이를 만나기 전에 말입니다.”

“네? 아. 그건 아닌데요…… 그, 그게.”

“도명이가 당신을 길들이게 가만히 두었어요? 그것도 사랑을 명분 삼아서? 도화 씨, 도망가요. 아까 처음 만난 이야기 들어 보니, 집 때문에 계약이 걸려 있는 모양이던데, 보증금 얼마예요? 내가 대신 줄게요.”

“그런 거 진짜 아니에요. 도명 씨 만나고 제가 이상한 변태가 된 것도 사실인데 이 사랑은 가짜가 아니에요. 자꾸 그렇게 단정 짓지 마세요. 다정한 도명 씨도 가짜가 아니에요.”

“도화 씨를 길들이는 거라니까요. 왜 자꾸 답답한 말을 하고 그래요.”

“우리가 겪은 일들을 모르시잖아요. 다정한 도명 씨도 절 괴롭히며 즐거워하는 도명 씨도 모두 그냥 도명 씨에요. 절 괴롭히며 즐거워하는 도명 씨를 부정할 순 없어요.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란 말이에요. 우리가 이해받기 어려운 사람들이란 거 알아요. 이상해 보이는 관계라는 것도. 도명 씨를 만나기로 하면서 제가 도명 씨한테 한 말이, 왜 지옥에 떨어지면 안 되냐고까지 했었으니까요.”

***

“저기, 이 정도면 우리 최선을 다한 거 아닙니까?”

도명은 도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단숨에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들었다. 너무 한 번에 알아들어서 신비로울 지경이었다.

“불나방의 기분을 알 것 같습니다.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말입니다.”

도명은 도화의 말에도 아무 말 없이 소주를 단숨에 비웠다. 도명은 왠지 목이 타서 견딜 수가 없었다. 도화의 손이 갑자기 도명의 눈앞에 휙 달려들었다. 그리고 곧이어 빠르게 도화의 손이 도명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도화의 얼굴이 도명의 얼굴에 가까워졌다. 도화의 입술이 도명의 입술 위로 거칠게 문대졌다. 도화가 방금 까드득 깨문 마늘 향이 입안에 확 번졌다. 테크닉이라고는 전혀 없는 입맞춤이었다.

낭만도 없고 뭉툭한 입맞춤이었다. 도명은 이렇게 우아하지 못한 입맞춤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자극적이었다. 도화는 사고를 쳐 놓고 도명을 향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도명 씨, 지옥에 떨어지면 왜 안 되나요?”

***

“저도 도명 씨도 서로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어요. 도명 씨가 언제나 사랑에 대해서 경고했으니까요.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저보다 도명 씨가 그런 것에 대해 공포가 더 심했던 것 같아요. 도명 씨는 언제나 이성적인 척을 했지만 겁먹은 아이처럼 거리를 두고 뒷짐을 지고 있었다고요. 어쨌든 우리 관계가 그루밍이니 뭐니 하는 걸로 보이는 것도 완전히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에요. 어느 정도는 약간 그런 면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그런데요. 그런데요.”

도화는 그녀에게 할 말이 너무나도 많은데 말로 설명이 안 돼서 괴로워서 두 손을 쥐었다 피었다만 반복했다.

“저는 또 겁이 너무 많은 사람이고, 또 의심도 많은데, 처음으로 나는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결박되어 있고 그는 날카로운 물건을 들고 나에게 다가와요. 그렇게 그 끝이 단단한 구둣발로 터벅터벅 다가와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사실은 하나도 두렵지 않아요. 오히려 깊은 안도감을 느껴요. 그는 끝내 나를 해치지 못해요. 저는 언제나 그 사실을 확인해요. 그 시간들은 도명 씨 어머님이 이 손목의 빨간 선 하나로 알 수 있는 사실 하나보다 더 두꺼운 날들로 채워졌어요. 저는 상처받을 게 두려워서 모든 관계에서 도망만 친 사람이에요. 하지만 처음으로 도망치지 않은 사람이 도명 씨에요. 도명 씨에게 나는요, 저는 유일하게 그에게 안전한 사람이에요. 그의 눈을 똑바로 볼 때마다 나는 언제나 그걸 확인받아요. 저는 유일하게 도명 씨에게 어떤 순간에도 그의 애정을 의심할 수 없는 사람이고 언제나 그의 무릎 가로 돌아올 사람이에요. 내가 도명 씨 마음의 집이란 말이에요.”

도화가 말을 하다가 갑자기 목이 메는지 잠긴 목을 애써 풀고 아무렇지 않은 척 눈을 끔뻑였다. 하지만 그의 눈가는 이미 빨갛게 되어 있었다.

도화가 올라오는 감정을 참으려고 코끝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하지만 결국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도화는 굵은 눈물을 뺨으로 흘려보냈다.

“도화 씨 난, 우리 애가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힐까 봐.”

“도명 씨를 더 이상 상처 주지 말아요. 남의 자식 귀한 걸 신경 쓰는 분이면 도명 씨를 또 울려서 남의 귀한 자식인 제 눈에서 눈물 펑펑 쏟게 하지 말아요.”

“아, 잘못했어요. 그만 울어요.”

숙영이 당황하며 도화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도화는 코끝에 힘을 주고, 우느라 주책없이 흘러내리는 콧물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녀가 도화에게 코를 풀라고 손수건을 건넸지만 도명의 어머니 손수건을 더러운 콧물로 적실 수는 없었다.

“아니, 그냥 코 풀어요. 버린 셈 칠 테니까.”

“지, 진짜요? 전 진짜 코 푼다면 푸는 남자예요.”

“아. 네 그러든가요.”

도화가 비장한 표정으로 그녀의 깨끗한 손수건에 코를 시원하게 풀었다. 숨을 어느 정도 시원스럽게 쉴 수 있게 되자 뇌에 산소가 원활하게 올려보내지는 기분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어색한 분위기에 도화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있잖아요, 도명 씨 울보예요.”

“아 그렇군요.”

숙영은 자신의 아들인 도명이 우는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도명은 어릴 때부터 조숙한 면이 있어서 유치원 때에도 보채느라 우는 일이 또래에 비해서 많이 없었다. 머리가 크고 나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네. 내 품에서 나 끌어안고 많이 울었어요.”

“아. 네.”

도명이 울었다는 말에 겨우 진정됐던 도화의 코끝이 다시 찡해져 왔다. 도화가 서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도명 씨는 보기완 달리 울보란 말이에요!”

“아. 네 알았어요. 진정해요. 도화 씨.”

“도명 씨는 진짜 착한 아들이에요.”

“도명이가요……?”

도화의 말에 숙영은 공감 못 하겠다는 듯이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자 도화가 젖은 눈을 부릅뜨고 숙영을 쳐다보았다.

“……도명이 착하죠.”

그녀가 도화의 반응에 마지못해 답했다.

“저는요, 제가 상처받을 거 두려워서 20살에 가출했어요. 그냥 남자가 좋다는 애매한 쪽지 하나 남기고요. 그리고 지금까지 부모님께 연락 한 번 안 드렸어요. 저는 제가 화가 나서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제가 고등학교 때 남자한테 고백하고, 학교에 소문날까 무서워서 빨리 전학 가야 한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거든요. 그때, 두 분 다 괜찮다, 네가 쫓기듯 도망갈 일이 아니다, 라고 안 해 주셨어요. 저보다 더 무서운 얼굴로 야반도주하는 것처럼 우리 집은 이사 갔어요. 그게 내내 섭섭하고 화가 나서 가출했다고 변명했어요.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어요. 나는, 무서웠어요. 부모님이 나한테 상처 줄까 봐. 내가 받을 상처가 두려워서 자식이 쪽지 한 장만 남기고 사라졌어요. 그런데 도명 씨는 그 오랜 시간 내내 어머님한테 상처 하나하나 다 받으면서, 어떻게든 좋은 아들로 있고 싶어서, 계속 연락하고, 온갖 권모술수를 다 쓰잖아요. 왜 도명 씨 비열한 건 아시면서,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한 번도 안 알아 주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도명 씨가 울보죠. 보세요. 도명 씨가 저에 비해서 얼마나 착한 아들이에요.”

“네. 착한 아들이 맞네요.”

“그냥 우리, 도명 씨는요. 세밀한 모래알 같은 사람이에요. 남들보다 세밀해서 특별한 사람이라 너무 작은 바람에도 마음이 바람과 함께 흩어진단 말이에요. 그게 너무 견디기 힘들어서 단단히 뭉쳐서 유리가 된 사람이에요. 아무리 밖에서 두들겨도 흠집 하나 나기 싫어서 마음의 강도를 높이고, 또 자기가 깨지면 너무 날카로워 위험할 것을 아니까, 그렇게 단련된 마음이 오히려 흉기가 될까 봐 마음의 강도를 해마다 또 높이고, 높이고. 그러니까, 도명 씨, 아니 날 울리지 말아요.”

“네. 알았으니까 그만 울어요.”

“자꾸 눈물이 나요. 아 도명 씨 나 운 거 알면 안 되는데. 저 눈 부었어요?”

도화가 그녀를 향해 눈을 크게 끔뻑이며 말했다.

“아직까진 괜찮아요.”

“저, 그리고 죄송해요.”

“네? 뭐가요?”

“제가 변태가 돼서 쓸데없는 걱정 끼쳐서 죄송해요.”

숙영과 도화는 어느 정도 감정이 진정된 후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도화가 최대한 운 티를 안 내기 위해 애쓰고 들어온 후였다. 하지만 도명은 도화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가 울었다는 것을 알았다. 도명이 표정을 싸늘하게 굳히며 도화의 얼굴을 쥐고 이리저리 훑어 보였다.

“어머니, 밖에서 도화 씨한테 무슨 이야기를 했기에 애를 울렸어요?”

“안 울었어요.”

도화가 도명을 향해 급히 말했다.

“내가 도화 씨 운 후의 얼굴을 모릅니까?”

“엄마, 잘난 내 아들과 헤어지라며 돈다발이라도 준 거야? 뭐야.”

‘내 무서운 아들에게서 도망치라고 돈을 준다고는 했지.’

“……아니다.”

“엄마, 정말 돈 줄 테니 헤어지라고 한 거야?”

“아니다. 그런 맥락은 아니었다.”

“아니면 도화 씨가 오해해서 운 거야? 아니. 엄마, 뭐라 했기에, 사람을 진짜 울려.”

“어머니.”

도명마저 화난 얼굴로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아니야! 도명이, 네 욕을 했더니 운 거다!”

“내 욕이요?”

도화는 대화가 이렇게 흘러가기를 바라지 않았다. 도화는 운 흔적이 남은 자신의 얼굴을 원망했다. 하지만 이내 서러운 기분이 또 올라와 코끝이 찡해졌다. 도화는 밀려오는 감정을 필사적으로 버텼지만, 참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도명이 도화의 그런 얼굴을 보더니 말했다.

“진짜 어머니가 내 욕해서 울었나 보네.”

도명이 도화의 뺨을 두 손으로 감싸고 엄지로 울락 말락 하는 눈가를 닦아 주며 푸시시 웃었다.

“아니, 도화 씨가 이렇게 제 몫까지 다 화를 내면 제가 어머니한테 어떻게 내 욕했다고 뭐라 합니까?”

“화난 거 아닙니다. 그냥, 아무것도 아닙니다.”

결국, 오늘, 도명의 가족 저녁 식사는 유씨 일가 세 사람이 도화의 기분을 달래 주기 위해 애쓰는 모습으로 끝이 났다.

***

도명은 시간이 너무 늦어서 콜택시를 불러서 동생과 어머니를 태웠다. 도명은 혹시 몰라 택시의 번호판을 핸드폰에 적었다.

“잘 들어가세요.”

“아, 어머님, 잘 들어가세요.”

“도화 씨 말본새가 그게 뭐예요?”

숙영이 도화를 향해 그녀 특유의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

“어머님이 뭡니까?”

“아, 죄송합니다!”

‘아 역시 어머님은 도명 씨가 내 거라는 걸 인정해 달라는 것 같나! 그것도 첫 만남에! 그것도 온갖 진상 다 부려놓고!’

“엄마라고 불러야죠.”

숙영의 말에 딸, 도희가 엄마의 어깨를 탁 치며 웃음을 참는 게 보였다.

“네? 아. 아. 네. 엄마, 잘 들어가세요. 동생분도 잘 들어가세요.”

두 사람을 태운 택시가 도명의 가게 앞을 떠났다. 도명이 푸시시 웃으며 도화에게 말했다.

“도화 씨 뭡니까? 나도 어머니라 부르는데 이제 아주 엄마라 부르깁니까?”

“아. 네? 아니 그렇게 하라고 하셔서. 아 혹시 돌려 말하신 건데 제가 눈치 없이!”

도명이 얼굴이 파랗게 질린 도화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비비적대며 말했다.

“아니요. 비꼬신 거 아니에요. 잘했습니다.”

“정말요?”

“네.”

***

숙영이 집에 들어갔을 땐, 거실에서 남편이 TV를 보고 있었다. 숙영의 시선이 습관적으로 주방 쪽으로 향했다. 식사의 흔적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숙영이 나갈 때 분명 반찬 통이 어디 있는지 다 말했는데 말이다.

“식사 안 했나 보네요.”

남편은 그저 시선을 TV에 고정시키며 헛기침을 할 뿐이었다. 그가 지금까지 식사를 안 한 것은 그녀에게 시위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심 그녀가 잔뜩 미안한 표정으로 부랴부랴 지금이라도 밥을 차리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숙영은 주방으로 갔다. 그리고 전기 주전자에 물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의 바람과는 달리 주방으로 들어가 자신이 마실 허브차를 타 왔을 뿐이었다. 남편은 헛기침을 다시 한번 했다. 하지만 그녀는 식물의 잎 색이 맑게 우려 나온 물의 파동만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남편을 향해 독백 조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도명이는 요리 실력이 더 늘었어요. 철들고 나서부터 자기 밥은 물론 도희 밥까지 곧장 차려 내더니. 홍합 스튜하고, 크림 새우 스파게티란 걸 해 줬어요. 이름이 어려운 샐러드도 해 줬는데, 계절 채소로 만들었단 것밖에 기억이 안 나네. 신경 안 쓴 게 하나도 없더라. 접시 디자인이며, 테이블 보 색 하며, 포크, 수저까지. 아들이 해 주는 밥도 좋았는데, 도희가 너무 좋아했어요. 오빠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어렸을 때 이 집에서 같이 살았던 때처럼 응석도 부리고, 뭐가 그렇게 좋은지 별 것 아닌 거에도 잘 웃고. 우연히 도명이 애인도 봤어요. 회식하느라 술 잔뜩 먹은 모양이던데 술 취한 와중에도 자세 곧고, 실례 안 저지르려고 아등바등하는 게 사람이 참 바르더라고요. 그리고 또, 사람이 너무 착했어요. 도명이가 그런 사람한테 마음 준 거 보면, 이 집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구나, 싶더라고. 너무 상처를 많이 받아서 그런 좋은 사람 아니면 마음을 온전히 줄 수가 없었던 거지. 이번에 도명이가 당신 안 올 거 알면서 가족 초대한 거 알고 있죠?”

“내가 거길 왜 가? 그것도 당신 말 들어 보니 그놈 남자 애인이랑 식사할 뻔했는데.”

“도명이가 복수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 자기가 당한 왕따 말이에요. 도명이가 좋아하는 복수를 해서 그런지 즐거워 보이더라고요. 내가 아는 도명이는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당신이 안 바뀌면, 가족 모임에서 언제나 당신이 제외되는 걸로. 아버지가 자기한테 한 것처럼 말이죠. 도명이가 우리가 원하는 모양으로 바뀌어야 가족 모임에 허락을 받을 수 있는 티켓을 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그런데 말이에요, 여보, 난, 그런 도명이 속내 알아도, 도명이를 못 버릴 것 같아.”

“잘한다. 오냐오냐해서 자식 버릇 망치려고 작정했어! 난 가장이야! 난 언제나 가족의 중심이야. 그놈은 그게 좋대?! 꼭 사이좋은 자기 부모 사이를 이렇게 만들어야 속이 시원하다고 하던.”

“여보, 우리 가족 누구도, 당신과 사이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내 딸 도희는 오빠가 그렇게 못돼먹은 거 알면 아빠 편을 들 거야.”

숙영이 그의 말에 그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여보, 아무도 없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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