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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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파티의 후유증

도화는 한참 급한 업무를 처리하고 기지개를 켰다. 2시간 동안 눈 깜빡이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모니터 화면만 들여다본 것 같았다. 급한 업무를 끝내고 나니 적어도 30분 동안은 뇌세포를 느슨하게 해도 될 것 같았다.

머리를 양쪽으로 움직여 보니 승모근이 굳어 있었다. 관자놀이도 지나치게 조여진 느낌이었다. 도화는 커피라도 타 먹기 위해 체온으로 눅눅해진 의자에서 일어났다.

의자에서 일어나자 신발 가죽에서 느껴지는 기분 좋은 감각이 발끝을 타고 올라왔다. 도화는 자신의 새 신발을 흐뭇한 미소로 쳐다보았다.

어제 도명과 생일 파티 뒤풀이로 침대에서 뜨겁게 놀고, 그의 침대에서 까무룩 잠들었다. 건물 안쪽에서 이어진 계단만 타고 올라가면 나오는 집인데도, 손가락 하나 까딱이기 싫었다.

단전 깊숙한 곳에 고이 아껴놨던 에너지까지 그와 몸을 섞는 데 쓴 것 같았다. 그렇게 모든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아붓고 난 후 기분 좋은 무력감이 찾아온 것이다.

그렇게 불성 사납게 입까지 크게 벌리며 잠이 들었고 우주가 정해 놓은 예정대로 그들의 머리 위에 햇볕이 내리쬈다. 그리고 그렇게 여지없이 출근 시간이 찾아왔다.

도화의 온몸은 출근을 거부했지만 눈꺼풀만은 벌어져 있었다. 이성이라는 것을 겨우 발동시키며 천근만큼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도명은 옆에 없었다.

식물의 주기와 생활 패턴을 맞추다 보니, 또 새벽같이 일어나 화원 일을 한 모양이었다. 도명이 옆자리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갑자기 그를 둘러싼 공기가 살짝 서늘하게 느껴졌다.

섭섭한 기분도 잠시, 다시 현실이 그에게 노크했다. 도화는 부은 눈을 겨우 뜨며 슬리퍼를 찾아 발을 바닥에 비비적댔다. 그러자 도화의 발끝에 닿은 건 새 가죽 신발이었다.

편한 캔버스 화와 고급스러운 정장 신발의 중간 형태를 띤 신발이었다. 가죽의 색은 잘 구운 빵의 색깔과 닮았고 부드러웠다. 신발을 빨간 리본이 크게 감싸고 있었다.

본질인 신발보다 3배는 큰 요란한 빨간 리본이었다. 혹시 도화가 못 볼까 봐 도명이 요란을 떨어댄 게 분명했다.

요란한 리본까지 감싸여 있는 새 신발, 누가 봐도, 도명이 도화에게 준 신발이었다. 도화는 그래도 혹시 몰라 신발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신발 바닥에 빨간 잉크로 쓴 손 글씨가 있는 작은 카드가 놓여 있었다.

「자기야, 잘 잤어?」

“네, 잘 잤어요.”

도화가 자리에도 없는 도명에게 대답하듯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정말 아무리 까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양파 같은 이벤트들의 연속이었다.

새 신발 옆에는 어제 도화를 고문시킨 빨간 하이힐이 놓여 있었다. 그 빨갛고 공격적인 신발을 쳐다보는 도화의 표정이 복잡 미묘했다.

빨간 하이힐 안에도 카드가 있었다. 그 카드에는 작은 손 그림 같은 것이 그려져 있었다. 도명이 서류 구석에다가 머리를 풀 때 그리는 손 그림과 같은 그림체였다.

카드 안에는 빨간 달이 그려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남성화 안에 있던 카드에도 작은 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쪽에는 빨간 태양이 그려져 있었다.

도화는 그 작은 그림이 주는 힌트로 빨간 하이힐은 밤의 신발이고 이 구두는 낮의 신발임을 깨달았다. 이 두 신발은 음과 양처럼 한 쌍의 신발이었다. 이미지는 이렇게 다를지라도 말이다.

이 두 신발 중 하나의 신발을 고르라고 하면 고를 수 있을까? 도화는 자신의 발볼을 부드럽게 감싸는 가죽 신발의 포근함을 맛보면서도 그건 단언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밤의 신발은 분명 꿈의 종류를 단 두 가지로만 나눌 수 있어서, 악몽이냐, 좋은 꿈이냐고 묻는다면 악몽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꿈은 묘한 구석이 있어서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도 내심 그 밤을 그리워하며 베개에 머리를 뉠 것이 분명했다.

어쨌든 도화는 낮의 신발은 포근해서 좋았다. 거기다가 결정적으로 도화가 신고 돌아다녀도 수상해 보이지 않았다. 물론 새 신발 특유의 어쩔 수 없는 빳빳함은 있지만 이내 곧 친해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도화의 발뒤꿈치에는 빨간 밤의 신발 때문에 물집이 제대로 잡혀 있었고, 그 부분이 더 이상 쓸리지 않도록 밴드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발뒤꿈치와 마찬가지로 양말 때문에 안 보이지만, 내내 예리한 신발 끝에 의해서 조여진 발 볼 역시 밴드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도화가 멍한 얼굴로 커피를 스푼으로 휘젓고 있는데 그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하이힐의 구두 굽이 바닥을 때리는 소리였다.

예전에는 그렇게 크게 신경 안 쓰였는데 갑자기 너무나도 선명하게 그의 고막을 구두 굽으로 두들기고 있었다.

오싹한 기분과 함께 도화의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도화가 고개를 돌렸을 때는 윤정 씨가 굽이 적당히 높은 구두를 신고, 활기차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회사 내 단짝인 정은 씨와 무슨 이야기로 그렇게 신났는지 굽이 있는 구두를 신고도 가볍게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정은의 어깨를 두들기고 있었다.

도화가 물끄러미 윤정의 구두를 쳐다보다가 급하게 시선을 돌렸다. 남자 동성애자인 도화가 윤정의 특정 신체 부위를 보고 성적으로 흥분할 리는 없지만 윤정이 노골적인 자신의 시선을 느끼면 기분 나빠 할 것이 분명했다.

도화는 유혹에 빠진 스님이 염불을 외우듯 이미 충분히 섞인 커피 믹스를 빠르게 휘저었다. 작은 머그컵 안에 세상에서는 유례없는 거센 풍랑이 일고 있었다.

‘나 지금 윤정 씨 하이힐 소리에 흥분한 거야? 아 젠장, 너무 변태 같잖아. 아니지, 정확히는 윤정 씨가 신은 하이힐에 흥분한 게 아니라 내가 어제 신었던 하이힐에 대한 기억 때문에 흥분한 거니까, 그렇게 변태는 아니지. 아닌가? 이게 더 변태 같나?’

도화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뜨거운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갑자기 목구멍 안으로 급하게 말려 들어간 커피 때문에 얼굴이 뜨거운 건지, 어제의 감각을 상상한 탓에 얼굴이 뜨거운 건지 알 수 없었다.

도화가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도화의 성정 상 엘리베이터 문이 자동으로 닫히기 전까지는 닫힘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그렇게 적당 시간이 흐르고 도화의 시야가 회색 엘리베이터 문으로 차오르는 찰나, 누군가 엘리베이터를 향해 빠르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맹렬한 하이힐 소리였다.

회사가 밀집된 건물 안에서 많이 있는 상황이었다. 도화는 빠르게 엘리베이터의 열림 버튼을 눌렀다. 다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 틈 사이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윤정이었다.

윤정이 급하게 달렸는지 그녀의 입가에 긴 머리카락이 달라붙어 있었다. 그녀는 그런 것 따위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듯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도화는 그것을 지적할까 말까 하다가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아, 이 대리님 너무 감사해요.”

“아닙니다.”

‘아니, 그렇게 무리해서 달려올 거면, 그냥 다음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게 인생 살기 더 편하지 않나.’

도화는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하고 괜히 짧아서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귀밑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윤정이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을 끝내고 너무 맹렬히 뛰어서 힐이 부러지진 않았는지 신발을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다행이다! 튼튼하게 고쳐졌나 봐요. 이게 저번에 전력질주하다가 굽이 부러진 신발이거든요.”

“네. 그렇군요.”

“네!”

‘대단하다, 저걸 신고 달리기를 해? 아 젠장, 너무 존경스럽다.’

도화는 내내 윤정에게 진심을 담아 ‘존경스럽습니다!’라고 외치고 싶었다.

“윤정 씨.”

“네. 이 대리님.”

“……아닙니다.”

“이 대리님답지 않게 싱겁기는요.”

‘아. 존경한다고 말할 뻔했어!’

***

도명과 저녁 식사를 한 후 설거지를 하고 있는 도화에게 도명이 넌지시 말했다.

“도화 씨, 오늘 나랑 같이 할 거 있습니다.”

“아, 네. 그런데 뭔데요?”

“사진 정리 좀 합시다. 생각보다 작업량이 많기도 하고 혼자 정하기엔 뭔가 좀 아닌 것 같아서요.”

“무슨 사진 정리…… 아. 설마?”

“설마라니요. 어제 그렇게 둘이서 작품 활동을 열심히 했는데, 그냥 놔둡니까?”

“사진 수위가 다……”

“수위가 뭐요?”

“사진 수위가 다, 포르노 수준 아닙니까?”

“지금 내 작품을, 그리고 도화 씨 작품을 그저 그런 포르노 취급한 겁니까?”

“으아, 그걸 굳이 정리해야 해요?”

“네.”

도명이 도화를 향해 힘주어 말했다. 거의 도화에게 명령을 내린 것과 같은 수준의 단호함이었다.

도화는 낑낑대다가 난감한 표정으로 도명의 뒤를 따랐다. 도명은 도화가 오기 전부터 이미 작업 중이었는지 소파 티 테이블 위에 카메라 메모리가 꽂힌 노트북이 있었고, 그 옆에는 블루투스로 연결된 사진 인화기가 있었다.

도명이 도화에게 자랑하듯 두꺼운 앨범 두 개를 보여 주었다.

“앨범 디자인 어떻습니까?”

검은 가죽 케이스로 된 앨범이었다.

“설마 이것도 생일 이벤트의 연장은 아니죠? 왜…… 내 생일 파티가 안 끝나죠?”

도화가 괴로워하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 넘겼다.

“도화 씨, 제가 이걸 원래 계획에 넣었으면 더 완벽한 앨범을 구했겠죠. 가령, 이 가죽 케이스에 로즈 골드 색으로 금박을 입힌 레터링을 했겠죠. 앨범 타이틀까지 심사숙고하며 말입니다. 급한 대로 산 앨범이라서 아쉽습니다.”

“아, 다행이다. 원래 계획에 없어서, 다행이다.”

“도화 씨, 내 열정이 싫습니까?”

도명이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런 도명의 표정에 도화는 온순한 표정으로 티 테이블 앞에 앉았다. 그제야 도명은 도화의 태도 불량을 봐 줬다는 듯이 아무 말 안 하며 옆에 앉았다.

“일단 사진들부터 고릅시다.”

“네.”

도명이 폴더를 열자마자 도화의 얼굴을 화끈하게 하는 장면들이 펼쳐졌다.

발가벗은 채 하이힐 하나만 신고 소파에 앉아 있는 모습, 성기를 드러내며 부끄러움 없이 무대에 서 있는 모습, 몸의 음란한 굴곡들이 집요하게 찍힌 사진들, 밀랍을 입혀서 묘한 우유색을 띠는 엉덩이, 음부에 고드름처럼 맺힌 촛농의 무성함, 엉덩이 안 로터에 의해 떨리는 둔부의 잔상까지 담은 사진, 너무 빨갛게 달아올라 피부 가죽이 투명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달아오른 뺨, 젖어 있으면서도 날 선 도화의 눈동자, 고통을 참느라 도드라진 혈관, 쾌락에 울먹이는 얼굴, 곧 터질 것 같은 상태에서 구속된 페니스, 도명의 정장에 밀착된 도화의 발가벗은 하체, 윗니의 자국이 남은 아랫입술, 자세를 제대로 못 잡아서 매질을 당한 빨간 선 자국들.

발목에 걸린 사슬의 팽팽함.

“이게 어떻게 그냥 포르노입니까? 예술이지.”

“진짜, 이 중에서 골라서 출력할 겁니까? 그걸 무슨 가족 앨범이라도 되는 양 앨범에 정리해서 꽂고요?”

“아, 역시 퀄리티가 조잡할까요?”

도명이 심각한 표정으로 아래턱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도명은 도화의 가족 앨범이라는 말에 그 특유의 촌스러움과 두서없음이 생각난 모양이었다.

“내가, 그래도 잡지 편집장인데요. 역시 제대로 편집해서 책자로 내는 게 좋겠어요.”

도명의 말에 도화는 등골이 사늘했다. 도화가 도명의 얼굴을 쳐다보니 저건 정말 진지한 게 맞았다.

“아. 음.”

“걱정 말아요. 설마 내가 아무리 미친놈이라도 직원 시키겠어요? 내가 직접 하지.”

‘아, 그건 좀 덜 미친 거지, 그렇다고 미친 게 아닌 게 아닌데.’

도화는 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가족 앨범! 여기에 사진들을 꽂으면 진짜 가족 앨범 같겠다.”

“그 특유의 조잡함이……”

“우리가 가족 같고 참, 좋겠죠? 아…… 그, 피는 안 섞였지만 몸의 연결로 이어진 가족. 마치, 네! 부부 기념 앨범 같고!”

‘어떤 미친 부부가 이런 부끄러운 걸 출력해서 앨범에 꽂겠어.’

“음, 그럴까요?”

“그럼요. 그 나름의 정서가 있는 거라니까요. 도명 씨는 다 좋은데, 그런 정서를 잘 몰라요.”

“음……, 도화 씨는 그런 정서가 좋은 겁니까?”

‘아니, 그럴 리가! 이걸 진짜 프로페셔널하게 정리할 도명 씨가 무서운 거지. 진짜 전문가라 무섭다고.’

“그래요. 도화 씨가 좋은 걸로 해야죠.”

도명이 도화의 이마에 입을 부드럽게 맞추며 말했다.

“저는 이 사진은 꼭 넣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 한 컷 때문에 도화 씨를 얼마나 몰아붙였는데요.”

도명이 말한 사진은, 도화가 역광을 받은 채 하이힐을 신고 온몸을 강렬하게 펼치고 있는 사진이었다. 허리와, 팔다리는 물론이고 손끝까지 굽은 면이 없었다. 그의 등줄기부터 엉덩이 사이까지 하얀 촛농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어때요? 도화 씨가 봐도 멋지죠?”

“아, 네.”

‘아, 뭔가 분위기 있고 멋지긴 한데, 나, 변태 중급에서 레벨 업해서 우화하고 있는 사진 같아. 난 이제 부끄럼 없는 프로 변태다. 난 모든 것을 해탈했어, 이런 사진이야.’

도화의 사진이 끝나자, 이제 본격적으로 도명도 나오기 시작했다. 도명이 도화에 의해서 거칠게 벗겨진 채, 빨간 입술을 하고, 몸에는 도화가 립스틱으로 쓴 커다란 글씨가 색정적으로 몸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도명은 사진기를 들이대는 도화의 렌즈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도화는 정신없이 찍었을 때는 몰랐는데, 사진이 너무 멋지고 야해서 넋을 잃고 보았다. 역시 피사체가 좋으면 똥 손으로 황금 사진이 나오는 건가 싶었다.

도명의 사진을 보면서 애인의 변태성에 대해서 내심 혀를 찼는데, 그 뒷부분은 도화의 지분이 지대하게 많아서 민망해졌다.

어젯밤 기억으로는 그다지 안 찍은 것 같은데 뭘 이렇게 샅샅이 찍었나 싶었다. 사진을 넘기고 넘겨도 나오는 도명의 사진들에 도화의 어깨가 민망함으로 굽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눈은 야한 도명을 쳐다보는 데 여념이 없었다.

“내가 여기서부터 난감한 겁니다. 뭐, 이렇게 많이 찍었어요? 정리할 엄두가 안 나서요.”

“아, 잘못했습니다.”

“잘못하긴요. 도화 씨가 욕심이 많은 걸 어떻게 합니까? 몸이 카메라 플래시에 닳아 없어질 때까지 찍혀 줘야지.”

도명이 도화를 뒤에서 껴안고 귓바퀴를 이 사이에 집어넣고 잘근잘근 씹으며 말했다. 사진은 계속 이어졌다. 두 사람이 두서없이 침대에서 서로 물어뜯은 와중에도 서로가 질 안 좋고 집요한 파파라치인 것처럼 찍어댔다.

도화의 온몸에 남은 립스틱 자국, 도명에게 뒤가 꿰뚫린 채 바들바들 떠는 도화의 등줄기, 내내 벗지 못한 하이힐이 침대 이불보를 긁어 대는 모습.

도명이 도화의 몸을 내리누르며 쳐다보는 시선, 평소에 점잔 떠는 그가 보기 드물게 드러내는 송곳니,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욕정 어린 도명의 눈.

“어제 도화 씨 참 바빴네요. 뒤가 박히면서도 소중한 장난감이라도 되는 양 그 무거운 카메라는 안 놓고.”

“으아, 아니에요!”

“아니긴요.”

도명이 사진들을 빠르게 넘기며 취조하듯이 말했다.

“책임지고 출력할 사진 골라내요. 이 변태야.”

“잘못했어요.”

“변태야, 그래서 무슨 사진이 좋으냐고?” 

“앗, 은근슬쩍 말 놓네요.”

“싫어?”

“아뇨. 그냥 뭐든 선택해요. 반말이든, 존댓말이든 하나만요. 그냥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지 헷갈려서요.”

“싫습니다. 내 마음대로 할 겁니다.”

“저 그런데 도명 씨, 사실대로 말해 봐요. 어제 플레이 계획이고 뭐고 없이 그냥 도명 씨 하고 싶은 거 막 섞은 거죠? 어제는 도무지 무슨 콘셉트인지 모르겠어서요.”

“그래 보입니까?”

도명이 도화의 말에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네. 하이힐을 신은 내가 여자 같기도 하고 남자 같기도 하고, 도명 씨가 여자 같기도 하다가, 남자 같고, 전형적인 사디스트처럼 하다가 갑자기 마조히스트처럼 저한테 물리면서…… 사정도 하고요. 너무 뒤죽박죽이라서 저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뭐.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요.”

“무슨 대답이 그래요?”

“내가 꼴리는 대로 넣기도 했고요, 그렇다고 콘셉트가 정확히 없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무슨 콘셉트인데요?”

도화가 ‘어디 한번 입 잘 털어 봐라.’ 하는 얼굴로 도명을 쳐다보았다.

“음, 그러니까, 우린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서 그냥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고 싶었어요. 정형적이고 고착화된 사회적인 코드를 뒤죽박죽으로 섞으면 오히려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거 알아요? 우린 어제 그냥 사랑하는 사람들인 거죠.”

“도명 씨가 마조히스트처럼 군 건요?”

“원래, 마조히스트랑 사디스트는 한 끝 차이인 거 알죠? 내 안에도 마조히스트 기질이 적지만 어느 정도 있기도 하고, 그냥 짧은 순간이지만 나도 도화 씨처럼 느끼고 싶었어요. 궤변 같지만 그러면 몸이 더욱 깊숙이 섞이는 느낌이잖아요. 내가 도화 씨가 되고 도화 씨가 내가 되고, 뭐, 그런 기분 알아요?”

“대충요.”

“대충이라도 알았으니까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변태야, 내 사진 보면서 왜 섰어? 내가 모를 줄 알았지?”

도명의 말에 도화가 부풀어 오른 앞섬을 급하게 가렸지만 이미 늦었다. 생일 파티의 후유증은 아직 끝나지 않아서 두 사람은 소파 위에서 다시 몸을 섞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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