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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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단편 1 - 도도의 정신과

도명은 고풍스러운 월넛 웨인스코팅이 둘린 복도를 걷고 있었다. 

복도 자체는 어두침침했고 복도 끝에 환기창이 나 있어서 그 창문을 통해 붉은 노을이 지는 것이 어스름하게 보였다.

도명이 로즈 골드 색 문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도명이 문을 열자 약 20평짜리 방이 나왔다. 방 한가운데는 여러 소가구들과 함께 안락의자 두 개가 배치되어 있었다.

“상담 신청하셨죠? 이리 와서 앉아요.”

도명은 이곳을 처음 와 봤음에도 불구하고 안락의자에 앉은 존재의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이 여기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왔음을 깨달았다. 도명이 경직된 자세로 안락의자에 반쯤 걸터앉았다.

“이런 상담 처음이죠?”

정신과 의사가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 있는 도명을 향해 펜의 끝부분을 달칵거리며 사무적인 말투로 말했다. 의사가 들고 있는 도명의 차트는 공백이었다. 도명이 의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정열적인 붉은 색 정장을 입은 도도였다.

도도, 도명이 고등학교 때 키우던 강아지였다. 도도는 안락사 직전에 도명의 동생, 도희가 데리고 온 강아지로서 종은 알 수 없었다. 

다만 하얀색 털을 배경으로 카푸치노 색 무늬가 있고 눈이 부드러운 갈색인 사랑스러운 강아지였다. 도명은 정장을 입은 사람의 몸에 도도의 얼굴을 한 그 의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불편한가요?”

“편하진 않네요.”

도도는 손으로 털북숭이 턱을 쓰다듬다가 내선 전화기를 들었다. 도도가 간호사와 통화하는 사이 도명은 상담실 내부를 훑어보았다. 북유럽풍 인테리어에 가로로 넓은 벽에 사람보다 큰 액자 하나가 달려 있었다.

그 액자는 어떤 토네이도 사진을 예술 작품인 것처럼 걸어놓고 있었다. 도명의 심미안엔 촌스럽기 짝이 없는 사진이었다. 그 정신 사납고 촌스러운 사진이 너무 커다랗게 걸려 있는 통에 상담실 내부 전체 인테리어가 천박해 보일 정도였다.

도명은 도도의 취향에 얼굴을 찡그렸다. 도명은 마음에 안 드는 사진을 구경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번에는 도명의 시선이 도도의 집무 책상 위에 머물렀다. 

그 책상 위에는 그가 마시다 만 커피가 있었는데 그 커피잔 모서리에 하얀 나비가 겁도 없이 내려앉아 있었다.

전화 통화를 끝낸 도도가 안락의자에 앉았다. 그는 다리를 꼰 채 그 무릎 위에 깍지를 낀 손을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편하게 앉아요.”

도도의 말에 도명이 한쪽 눈썹을 슥 올렸다. 편하지 않은데 편하게 앉으라니. 이행하기 힘든 말을 하고 있었다. 도명의 고집에 도도는 말없이 문을 응시했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간호사가 들어오고 도도는 반가운 표정으로 손가락을 튕겼다.

도도가 여전히 어정쩡한 자세로 안락의자 모서리에 걸터앉은 도명에게 어떤 쿠션을 안겨 주었다.

도명이 쿠션을 내려다보자 백구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도도가 이번엔 방금 탄 코코아가 들어간 머그잔을 건네주었다. 머그잔에는 이번에도 백구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코코아 위에는 강아지 발자국 모양 마시멜로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지금 누구를 어린애 취급하는 것도 아니고.”

도명은 그렇게 불평했지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도명은 백구 쿠션을 꽉 끌어안으면 안락의자에 누웠다.

“그 옷 답답해 보이는데, 셔츠도 풀고요.”

도도가 도명의 꽉 조여진 가늘고 검은 넥타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반은 명령조로 말했다. 도명이 싫다는 듯이 빠르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도도는 단호했다.

도명은 투덜거리면서 꽉 조여진 넥타이를 풀고 셔츠 단추도 한두 개 풀었다. 드레스 셔츠 단추를 풀자 드레스 셔츠 안에 그가 받쳐 입은 티셔츠가 보였다. 그 티셔츠에도 가슴 부분에 해맑은 백구 얼굴이 박혀 있었다.

“이제 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아까부터 신경 쓰이는데 환자를 상담하기엔 선생님 슈트 색이 지나치게 눈에 띄지 않나요?”

“아,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도도가 어깨를 으쓱했다. 도도는 자신의 슈트 색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듯이 손가락을 휘저었다.

“일단 도명 씨가 무서워하는 것들을 말해 볼까요? 조금 두서없이 말해도 상관없어요. 아니 오히려 두서없이 이야기하는 게 더 좋아요.”

“일단 도화 씨와 공포영화 보러 가는 게 두렵군요.”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겠어요?”

“공포영화 자체도 조금 두렵고 같이 영화 보는 것도 두렵고.”

“아, 그렇군요. 다른 것들은요?”

도도는 수첩에 부지런히 무언가를 적었다.

“무질서, 무규칙. 아니, 어떤 면에서는 갑자기 규칙이 무서운 것 같습니다.”

“더, 이야기해 봐요. 자잘한 것들까지.”

계속되는 도도의 요구에 도명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어머니의 눈빛.”

“정확히 어머니의 어떤 눈빛이요?”

“두려움. 슬픔 같은 거?”

“그렇군요. 계속해 봐요.”

“그리고, 음, 진짜 애정을 주는 것.”

도명의 말에 도도가 탁 소리 나게 수첩을 접었다. 사실 도도가 쓰고 있던 수첩에는 ‘멍멍’이라는 말만 반복되고 있었다.

“우리는 그걸 찾아야 돼요.”

“뭘요?”

“당신 어머니가 숨겨 놓은 저주요.”

“저주요?”

도명은 갑작스럽게 진행되는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 전개에 미심쩍어하는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그다지 이 의사를 신뢰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에 대한 일말의 신뢰마저 요동치고 있었다.

“네. 저주요.”

도도는 도명의 무례한 표정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는 어조로 답했다. 도도의 말에 도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머니가 저를 두려워하긴 해도 미워하지는 않아요. 그건 알 수 있어요. 자기 아들에게 저주를 거는 어머니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맙소사. 세상의 나쁜 일들이 다 나쁜 의도에서만 왔다고 생각하세요? 그렇지 않아요. 거기다가 자식의 마음에 가장 저주를 많이 거는 존재들이 바로 부모란 작자들이라고요. 선한 의도건 나쁜 의도건 중요치 않아요. 당신이 저주에 걸렸다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서 그 저주란 게 대체 뭔데요?”

도명이 그다지 이어가고 싶지 않은 대화 주제지만 상대방 기분에 맞춰 일단 질문을 했다.

“단서를 좀 더 줘요. 당신은 도무지 담당 의사에 대한 일말의 믿음이나 존경심도 없이 딴죽이나 걸고 있잖아요! 언제나 그런 식이지!”

도도가 참고 있던 불만을 터뜨리며 말했다. 지금 이 순간만 본다면 히스테릭하게 말하는 그가 더욱 정신과 치료가 필요해 보였다. 도도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들고 있던 볼펜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도명은 흥분한 자신의 정신과 의사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가 아무렇게나 떨어뜨린 볼펜을 줍기 위해 등을 구부렸다. 그리고 그의 시야에 도도가 입은 정장 바지의 끝단이 보였다. 와인 색과 같이 검붉은 색의 바지 밑단만은 밝은 회색이었다.

도명의 코끝에 기억 저편에 자리 잡고 있던 피의 비린내가 올라왔다. 비와 피비린내가 역하게 섞여 있었다. 그제야 도도가 입은 정장이 원래 검붉은 색이 아니라 밝은 회색의 차분한 정장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 지금 피 흘리고 있어요?”

“잊었어요?”

도도가 낮은 목소리로 덤덤하게 말했다. 도명은 갑자기 그날 내렸던 비처럼 눈물을 뚝뚝 흘렸다.

도도가 산책 중에 교통사고 당했던 그 순간의 감정이 도명의 온몸에 내려앉았다. 충격으로 확장된 도명의 눈동자와 안구에서 눈물이 누수된 하수관처럼 질척질척하게 흘렀고 그의 심장은 고통스럽게 짓눌려 있었다.

도명이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자 그의 입술이 저절로 벌려졌다.

도도가 바닥에 주저앉는 도명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도명이 손끝을 바들바들 떨며 도도가 내민 손을 잡았다. 도도가 도명이 제일 좋아하던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맹목적이고 순수한 애정을 담는 눈을 하고 입은 살짝 벌리고 있었다. 도도가 말했다.

“그래도 당신들과 함께였던 순간들은 아주 행복했습니다.”

“내가 완벽했으면. 내가 조금 더 너를 통제할 수 있었으면.”

“네, 물론 그렇죠. 당신이 좀 더 완벽했더라면 나는 관절염과 백내장을 거쳐 당신들 곁에서 헤어짐의 시간을 세며 죽었겠죠. 조금 더 차분하게 이별을 준비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의 주치의로서 한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원래 인생이란 그런 거예요.”

도도가 ‘원래 인생이란 그런 거예요.’라고 말하는 순간 그들이 있던 공간이 모래성처럼 흘러내기 시작했다.

“생이란 행복을 얻고 손가락 사이에서 그 행복이 변질되거나 빠져나가는 일들의 반복이죠. 저라고 상상할 수 있었겠어요? 가장 좋아하던 산책길 중에 사고를 당해서 당신의 가장 불행한 얼굴을 보면서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을 말이에요. 당신에게 울지 말라고 이야기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죠. 병원으로 저를 들고 뛰는 당신에게 부질없는 일 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숨이 붙어 있을 때 내 눈을 되도록 오랫동안 봐 줘요, 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뭐, 어쨌든 인생은 그런 식으로 흘러가기도 하는 겁니다.”

도명이 디디고 서 있는 바닥마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도명이 간절한 표정으로 도도의 바짓단을 잡았다. 도도는 여전히 그가 가장 좋아했던 표정으로 말했다.

“주치의로서 조언을 주자면, 발버둥 치지 말아요. 일단은 밑으로 가만히 떨어져요. 당신에게 필요한 진단은 이거예요.”

도도가 마지막으로 손가락을 아래로 내린 후 손뼉을 치자 도명의 발밑에는 모래 한 줌 없었다. 도명이 순식간에 심연의 아래로 떨어졌다.

***

안락의자에 누워 잠을 자고 있는 도명의 눈 주위로 눈물이 가득 흘러넘쳤다. 

도명은 잠에 빠진 와중에도 꿈을 이런 식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도명은 다시 잠에 빠져들기 위해 떠오르는 의식을 다시 잠기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가 가장 안정감을 느끼는 장소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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