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복사뼈(2)
“어딜, 어딜, 어딜 가요?”
제인에게 전화를 받은 우영은 그 자리에서 눈을 까뒤집고 기절할 뻔했다. 사현이 경찰에, 아니, 검찰에 잡혀가다니. 대체 왜. 무엇 때문에.
비록 성격엔 모가 많으나, 법에 위촉될 만큼 나쁜 짓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 작고 마른 사람이 뭘 그리 잘못했다고 잡아갔단 말인가.
-B께서 많이 늦을 것 같으니 기다리지 말라 하셨습니다.
“저는 뭐, 뭘 하죠? 제가 뭘 해야 하죠?”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는 게 가장 좋아요.
“아무⋯⋯것도요?”
-네.
우영이 볼 안쪽을 세게 짓씹었다. 사현이 위험에 처했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니. 맞는 말이었다. 우영은 지나치게 무능력했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권위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인맥도 없었다. 붓을 잘 놀리는 것 따위로는 사현을 구할 수가 없었다.
제인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우영 씨.”라며 단조로이 우영을 위로하곤 곧 전화를 끊었다.
우영은 끊긴 핸드폰을 들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분명 가만히 있는데, 몸이 쪼그라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갈비뼈와 척추뼈가 우드득 우드득 안으로 말리고, 흉통과 기도가 확 좁아졌다. 눈알은 터질 것 같았고, 콧구멍은 시큰거렸다.
그렇게 한참이나 멍하니 있던 우영이 붓을 내려놓고 후다닥 작업실을 나섰다.
자정이 훌쩍 넘은 새벽. 우영은 빌딩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그렇다고 집에 있자니 답답해 죽어 버릴 것 같고. 그래서 이렇게 밖에 나와 목이 빠지라 사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영이 다가오는 택시에 고개를 쭉 앞으로 내밀었다. 지금까지 몇 대의 택시가 지나갔는지 모른다. 회색과 주황색, 또 검은색의 택시들은 우영이 원하는 사람을 태우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검은 창문 너머로 어렴풋이 보이는 인영에 등줄기가 선득해지는 걸 보니, 기다리는 사람인 듯했다. 택시 문이 열리고 동그란 머리통이 드러나는 순간, 쭈뼛거리던 우영이 부리나케 달려갔다.
“형!”
막 택시에서 내린 사현이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크게 떴다. 그가 흘깃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새벽 1시 48분. 야행성인 우영이 잘 시간은 아니다만, 이렇게 바깥을 나돌아 다닐 시간 역시 아니었다.
“왜 나와 있어?”
사현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걸 느꼈다. 대뜸 찾아온 검사가 법을 위반했느니, 체포라느니 별별 말을 지껄일 때보다 더 놀랐다. 우영은 언제부터 나와 있던 걸까. 대체 언제부터, 이 황량한 도시를 등진 채 저를 기다린 걸까.
사현이 무어라 캐물으려 할 때였다. 우영이 두 팔 가득 사현을 껴안았다.
“보고 싶었어요⋯⋯.”
“너⋯⋯.”
“진짜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
우영이 사현의 머리칼에 코를 묻었다. 그러고는 수년쯤 떨어져 있던 연인처럼 애절한 그리움을 토해 냈다. 흠칫 굳었던 사현이 곧 그를 껴안았다. 따뜻하고 넓고, 또 단단한 우영의 품에 차게 식은 몸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그래. 나도 너무너무 보고 싶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런 말 없이 껴안고만 있었다. 우영이 사현의 양 볼을 감싸 쥐고 눈을 맞췄다. 그의 눈동자 안에 주홍빛 가로등이 촛불처럼 일렁였다. 그것을 가만히 보던 사현이 물었다.
“언제부터 나와 있었어? 쌀쌀한데 옷도 안 입고,”
“괜찮아요?”
질문이 엇나갔다. 사현이 꾹 입을 다물었다. 어디 감히 내 말을 무시하냐, 그런 꽉 막힌 말을 할 수도 있었는데, 구태여 그러지 않았다. 하얗게 질린 우영의 얼굴에 걱정이 콸콸 범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괜찮아.”
사현이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밥은요? 먹었어요?”
“아니.”
“나쁜 새끼들. 이렇게 오래 잡아 둬 놓고 밥도 안 줬어요?”
우영이 한껏 눈을 부라렸다. 사현이 ‘응, 밥도 안 주더라. 진짜 나쁜 놈들이지?’라며 칭얼거리면 냅다 달려가서 불이라도 지를 기세였다. 사현은 그게 나쁘지 않았다.
“아니야. 내가 안 먹는다고 했어.”
“왜요? 무서웠어요? 먹으면 체할 것 같고 그랬어요? 아니면 설마⋯⋯ 그 사람들이 때리고 그런 건 아니죠?”
우영이 이제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캐물었다. 그가 사현의 사지를 샅샅이 훑었다. 사현이 입술을 말아 물며 웃음을 삼켰다.
“내가 맞으면, 가서 복수해 줄 거야?”
“그럼요! 당연하죠! 진짜 맞았어요? 어디요? 어디요?”
우영이 이번에는 사현의 팔을 들었다가 놓고, 코트를 펄럭이며 혹 사현의 몸에 상처가 생겼나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사현은 그저 가만히 그에게 몸을 내어주고 있었다. 코끝에서 살랑거리는 우영의 머리칼이 참으로 분주했다.
그 모습을 보자니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벅차올랐다. 등줄기가 간지럽고, 혀뿌리가 알싸하게 당겼다. 그리고 뜬금없이 눈알이 홧홧해졌다.
맹목적인 나의 편. 내가 무슨 일을 저질러도 내 편에 서 줄 사람. 나를 걱정하고, 나를 위하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 엄마 이후로는 없었는데. 그게 이토록 감동적일 줄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울음이 터질 것 같다니. 담담한 척하고 있었으나 오늘 있었던 일이 제법 혹독했던 모양이다.
한참 우영의 체온을 만끽하던 사현이 번뜩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고는 검지로 우영의 안경을 부드럽게 벗겨 냈다. 그것은 곧 사현의 재킷 안으로 들어갔다. 우영이 그 일련의 행동들을 멍하니 응시했다.
“자기야.”
“네?”
단단한 가슴팍에 턱을 댄 사현이 지그시 우영을 쳐다봤다.
“나 섹스 하고 싶어.”
“⋯⋯네?”
“지금. 당장.”
사현이 야하게 입술을 벌리며 웃었다.
사현의 뒤통수가 확 뒤로 내밀렸다. 그걸 귀신같이 알아챈 우영이 손을 넣어 사현의 예쁜 뒤통수가 엘리베이터 벽에 처박히는 걸 막아냈다.
두 사람은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를 활개 치며 격렬하게 입술을 비볐다. 커다란 손으로 사현의 허리를 거머쥔 우영이 사현을 자기 쪽으로 당기고, 또 당겼다. 어찌나 센 힘인지 사현의 발끝이 바닥에서 뜰 정도였다. 코끝이 닿을 만큼 깊게 입술을 붙이고 있으면서도 부족한 모양이다.
물론 사현도 지지 않았다. 우영의 목덜미를 옴팡지게 움켜쥐고 쪽쪽 열렬히 입술을 빨아 댔다. 혀가 얽힐 때마다 따닥, 딱 앞니가 부딪쳤다. 막 연애를 시작한 스무 살처럼 저돌적이고 열성적인 키스였다.
“하아⋯⋯.”
“우응, 음⋯⋯.”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두툼하게 부푼 아랫도리는 바지에 짓눌려 갑갑했다. 우영도 마찬가지인지 하체를 바짝 붙여 왔다. 그의 얇은 운동복 아래로 저처럼 딱딱하고 뜨겁게 발기한 성기가 느껴졌다.
온몸의 혈관이 터질 것 같았다. 당장 이 걸리적거리는 옷들을 벗어 던지고 우영의 성기를 받고 싶었다.
때마침, 땡. 경쾌한 알람이 울렸다.
사현이 우영에게서 떨어지려 하는데, 우영이 사현의 허벅지 아래를 받쳐 들고 번쩍 들어올렸다. 아빠 품에 안긴 다섯 살짜리 애 같은 자세였다.
사현이 헛웃음을 흘렸다. 하여튼, 힘은 장사지. 그러고 보니 저번 섹스 때도 저를 호떡 뒤집듯 엎었다가 뒤집었다가 멋대로 체위를 바꿨던 것 같다.
사현은 반항하지 않고 우영에게 몸을 맡겼다. 그와 함께 있으면 어린아이가 된 듯할 때가 있다. 지금처럼 그의 크고 단단한 몸에 얽혀 있을 때 말이다.
도어 록을 연 우영이 용케 한 손으로 사현의 구두를 벗겨 냈다. 자기 운동화는 뒤꿈치를 맞대어 슥슥 벗더니 성큼성큼 바쁜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질렀다.
“네 방으로 가?”
사현이 우영의 귓바퀴를 주무르며 물었다. 우영이 거센 콧김을 내뿜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장한 표정을 보아하니, 2층까지 올라갈 만큼의 인내심이 없는 듯했다.
사현이 흐음, 목으로 신음했다. 저도 급하긴 하다만, 이대로 몸을 섞을 순 없었다. 종일 바깥에 있었는데. 더군다나 오늘은 예상치 못하게 활동량도 많았단 말이다. 씻어야 했다. 우영이 제 온몸을 물고 빨 것이 뻔한데 그가 혀를 댈 때마다 땀 냄새가 나면 어쩌나, 불쾌하면 어쩌나 안절부절못하고 싶지 않았다.
“자기야.”
“네.”
“욕실부터.”
사현이 우영의 침실 옆에 있는 욕실을 가리켰다. 우영의 눈썹이 대번에 아래로 흘러내렸다.
“⋯⋯씻게요?”
씻는다고? 지금? 꼭 그래야겠어? 나 급한데? 되게, 급한데? 우영은 울먹거리는 눈으로 아주 많은 불만을 토해 냈다. 그 얼굴이 어찌나 귀여운지, 사현이 우영의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가 놨다.
“응. 씻어야지.”
“왜, 왜요. 그냥 해요. 저 아까 씻었어요.”
“그래도 안 돼.”
사현이 자신의 코트와 재킷을 한 번에 벗어 아래로 떨어트렸다. 우영이 땅이 꺼지라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사현을 바닥에 내려놓으려는데, 사현이 우영의 허리를 다리로 감았다.
“왜?”
“네?”
“왜 내려 놔.”
“어⋯⋯ 형 씻는다면서요.”
“나만? 너도 씻어야지.”
“⋯⋯.”
사현의 말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한 우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사현이 그런 우영의 볼을 감싸 쥐고 입술을 가볍게 부딪쳤다. 그리고 그 채로 조곤조곤 속삭였다.
“같이 씻자.”
사현이 샤워기에 달린 수도꼭지를 꽈악 세게 움켜쥐었다. 그러잖아도 마른 팔뚝과 손목이 부들부들 힘없이 떨렸다. 우영이 아랫도리를 쭉쭉 물고 빨아 대는 통에 힘은 물론 혼까지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천장을 보며 신음을 삼키던 사현이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발치에 무릎을 꿇고 앉아 성기를 빨던 우영과 눈이 마주쳤다.
오늘 알게 된 우영의 버릇인데, 그는 섹스 할 때 눈을 잘 깜빡이질 않는다. 저를 잡아먹기라도 할 듯, 뚫어지라 응시했다. 찰나 방심하면 성기를 물어뜯어다가 질겅질겅 고기처럼 씹어 먹는 게 아닐까, 섬뜩한 상상이 들 정도였다.
“아, 으응⋯⋯. 우영아, 흣, 그만⋯⋯.”
사현의 허벅지가 부들부들 경련했다. 이미 두 번이나 쌌는데. 쾌락에 나약한 몸뚱이가 또 절정을 넘봤다. 발가락이 꼼질꼼질 욕실 바닥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우영은 물러날 줄 몰랐다. 잦은 마찰로 붉어진 사현의 엉덩이를 꽉 움켜쥔 채 성기를 목구멍까지 머금고 첩첩거리며 빨아 댔다.
우영의 입 안은 정말 황홀하다. 처음엔 좀 어색해했던 것 같은데. 몇 번이나 했다고 이제는 뿌리를 입술로 조이고, 목구멍으로 귀두를 쥐어짤 줄도 알았다. 볼에 힘을 주면 입 안이 확 단단해졌는데, 그 채로 혀를 놀려 요도를 쑤시거나 기둥을 핥아 대서 눈앞이 다 가물가물했다.
지속적이다 못해 잔인하기까지 한 우영의 애무에 사현의 몸이 확 앞으로 쏠렸다. 팔꿈치가 뒤로 솟으며 수도꼭지를 올려 버렸다. 쏴아아- 수압 좋은 물이 몸 위로 세차게 쏟아졌다. 목덜미를 두드리는 물이 묘하게 자극적이었다.
사현이 어금니를 아득 씹었다.
빌어먹을. 얘는 대체 뭐가 좋다고 이렇게까지 사람 몸을 물고 빠는 건지 모르겠다. 느껴지는 거라곤 보디 워시 특유의 냄새뿐일 텐데.
욕실에 들어와 입술을 부딪치며 허둥지둥 씻고, 몸을 만지고, 뒤를 풀고, 한 번. 고작 한 번 우영의 것을 받았다. 근데 이미 팔뚝이며 어깨며 등이며 우영의 입술 자국이 가득했다. 저번 정사의 흔적이 이제 막 옅어지고 있었는데. 이래서야 원⋯⋯.
“으으응!”
절정을 참고 참던 사현이 끝내는 패배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우영의 입 안에 싸지르는 걸 막았다. 아랫배가 찌르르 울리고 고환이 단단해지는 순간, 우영의 얼굴을 냅다 밀어 버렸기 때문이다.
“아흐으⋯⋯.”
사현이 우영의 침으로 축축한 성기를 아래위로 쓸어내리며 미약하게 남은 정액을 모두 짜냈다. 윌리엄 터너의 「노햄 성, 일출」 작품처럼 희뿌옇게 번지던 시야가 한결 멀끔해졌다.
사현이 흐르는 물에 정액을 대충 씻어 냈다. 그리고 물을 잠갔다. 그 후 우영을 돌아보는데,
“⋯⋯.”
“⋯⋯.”
숨이 뚝, 멎었다. 사현의 입술이 벙긋벙긋 아래위로 괴이하게 움직였다.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우영의 얼굴에 사현의 하얀 정액이 잔뜩 들러붙어 있었다. 오른쪽 눈썹부터 사선으로 볼까지 하얀 선이 쭉 이어진 게, 질 낮은 영상에서나 보던 그 모습이었다.
사현이 어쩔 줄 모르고 더듬더듬 우영의 얼굴을 매만졌다.
“아, 어, 아우⋯⋯. 이게, 왜⋯⋯.”
“⋯⋯.”
“내가,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고⋯⋯. 나는 막 다른 사람 얼굴에 싸면서 정복감이라느니, 성취감이라느니 그런 거 느끼는⋯⋯ 등신이 아니거든?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괜찮냐?”
“안 괜찮을 건 없죠.”
우영이 한쪽 눈을 감은 채 씨익 웃었다. 그 모습이 정말, 정말⋯⋯ 야했다. 물과 정액에 젖은 우영이라니, 황홀할 정도였다. 저런 걸 그려야 하는데. 사진을 찍든, 영상 촬영하든. 아무튼 기록으로 남겨서 보관해야 하는데. 그럴 가치가 충분한데.
사현이 넋을 잃고 우영의 얼굴을 감상하는 사이, 우영이 손바닥으로 사현의 정액을 닦아냈다. 그러더니 혀를 내어 그것을 낼름, 핥는다. 방금까지 사현의 것을 물고 빨아 붉게 달아오른 입술 사이로 더 붉은 혀가 나왔다.
순간, 사현은 시야가 시뻘겋게 물드는 걸 느꼈다. 당장이라도 우영을 어떻게 해 버리고 싶었다. 우영이 제 온몸을 물고 빨고 잘근거리던 게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토록 강렬한 성욕이라니. 아니, 식욕 같기도 하고. 파괴욕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하아아⋯⋯. 사현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 숨에 이성이 섞여 나갔다. 남은 건 본성과 육욕뿐이었다.
사현이 그대로 우영의 어깨를 밀어트렸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우영이 무너지는 성벽처럼 느릿하게 뒤로 넘어갔다. 큰 충격은 아니었으나, 아무래도 욕실 바닥인지라 팔꿈치와 날개뼈가 아렸다. 근데 그건 아무런 문제도 아니었다.
“혀, 형.”
우영의 위로 훌쩍 올라탄 사현이 자신의 뒷구멍에다 우영의 성기를 맞췄기 때문이다. 우영이 미처 말릴 새도 없었다. 우영의 귀두가 그대로 사현의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흐윽⋯⋯.”
사현의 어깨가 확 움츠러들었다. 우영의 예쁜 얼굴에 홀려 패기 있게 덤비긴 했는데, 패기로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의 크기가 아니었다.
“윽⋯⋯.”
덩달아 우영의 어깨도 들썩였다. 그의 길고 두껍게 빠진 쇄골이 한껏 도드라졌다. 고여 있던 물들이 일사불란하게 쇄골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사현은 뒤가 발겨지는 듯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그 풍경을 꾸역꾸역 눈에 담았다. 근래 느끼는 거지만, 저가 우영의 얼굴과 몸뚱이에 지나치게 홀린 것 같다.
“안 아파요?”
사현의 골반을 바투 쥔 우영이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사현이 꾸욱 입술 끝에 힘을 준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더니 고집스레 아래위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읏, 윽, 흐⋯⋯, 으읏⋯⋯.”
우영이 그런 사현을 못마땅하다는 듯 쳐다봤다. 그가 도드라진 사현의 유두를 엄지로 살살 매만졌다.
“제가 할게요.”
“됐, 어. 가만히, 흐우⋯⋯ 있어⋯⋯.”
사현이 결단코 거부했다. 우영의 입술이 비죽 심술 맞게 뒤틀렸다. 구겨진 미간에 아픔이 가득하거늘. 일그러진 눈가에 말간 눈물이 어롱어롱 매달려 있거늘. 또 고집을 부린다.
심통 난 우영을 알 리 없는 사현이 허리를 아래로 내렸다. 그 순간, 우영이 허리를 훅 쳐올렸다. 철퍽, 젖은 살과 살이 틈 없이 맞물리며 끈끈한 마찰음을 만들었다.
“아으응!”
사현이 간드러진 교성을 내지르며 풀썩 우영의 위로 쓰러졌다. 예고 없이 할퀴어진 전립선에 전신에 소름이 돋아났다. 귓가에는 이명이 몰아쳤고, 손가락과 발가락은 안으로 말렸다. 뻑뻑했던 뒷구멍이 확 조이더니 이내 전과 비교할 수 없이 사르르 풀렸다.
그것을 선연히 느낀 우영이 두꺼운 팔로 사현의 등을 껴안았다. 올가미 같은 힘에 사현이 우영의 위로 납작하게 달라붙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등줄기가 서늘했다.
“후우⋯⋯ 형.”
아니나 다를까. 우영이 콱콱 허리를 쳐올리기 시작했다. 그의 두툼한 성기가 쑤욱, 쑥 구멍에 들어왔다가 나감을 반복했다. 팽팽하게 벌어진 주름부터, 자극에 도드라진 전립선과 내벽 깊은 곳이 마구 후벼 파였다.
“가끔은,”
“히윽, 아! 우, 우영아!”
“내 말을,”
“아, 잠깐, 만! 아앙, 응, 읏!”
“들을, 필요가, 있어요.”
우영이 잘근잘근 말을 짓씹었다. 사현은 정신이 홀라당 날아간다는 게 어떠한 기분을 뜻하는 건지 절실히 통감했다. 몰아치는 쾌감에 구역질이 다 올라왔다. 우영의 동그란 귀두가 배 속을 찌르고, 두툼한 기둥이 내벽을 벌리고, 그 기둥 위에 울룩불룩하게 곤두선 핏줄이 주름을 긁어 대니 버텨 낼 방도가 없었다.
“아응, 아, 흣! 우영아, 너무⋯⋯ 아! 너무⋯⋯.”
우영의 목덜미에 코를 처박은 사현이 끙끙 망아지처럼 앓았다. 그러나 우영은 봐주지 않았다. 심통에 시작하긴 했으나, 사현이 바르르 떨 때마다 함께 경련하는 구멍에 그 역시 여유가 없어졌다.
“하아⋯⋯. 형, 너무 좁, 아요⋯⋯.”
우영이 사현의 엉덩이를 세게 움켜쥐었다. 옆으로 벌어지는 주름에 사현이 움찔 어깨를 떨었다. 우영의 목소리, 맞닿은 체온, 그의 손길, 그리고 그의 성기. 하물며 습윤한 욕실 공기와 이따금 어디에 맺혀 있던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까지 모든 게 지나치게 야하고 자극적이었다.
“하으, 응, 아, 아! 후응, 읏, 좋아⋯⋯.”
사현이 가쁘게 숨을 토해 냈다. 그러면서도 더듬더듬 좋다고 말하는 게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우영이 휙 몸을 뒤집었다. 그의 위에 엎어져 있던 사현이 자연히 바닥에 눕게 됐다. 우영이 길게 팔을 뻗어 수건 하나를 집어왔다. 그것을 사현의 아래에 깔고, 본격적으로 움직일 준비를 했다.
사현이 그런 우영을 올려다보며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되는 건 흔치 않은데. 우영은 다른 방면으로 대단한 게 참 많다.
우영이 적당히 탄탄하면서도 말랑말랑한 사현의 다리를 어깨에 올렸다. 그리고 살짝 빠졌던 성기를 꾸우욱 깊숙이 욱여넣었다. 사현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우영은 빠르진 않으나 깊숙이, 몹시 깊숙이 들어왔다 나감을 반복했다. 마음 같아선 사현의 엉덩이가 터질 때까지 멋대로 쑤셔 박고 싶었으나 오늘은 그럴 날이 아니었다.
“읏, 하응, 아, 흐읏, 거기⋯⋯.”
사현이 보기 좋게 허리를 뒤틀었다. 배 속이 더부룩하고, 명치가 아렸지만, 조금 전보다는 편안한 오르가슴이 올라왔다.
우영이 그 모습을 집요하게 내려다봤다. 열락에 달아오른 얼굴과 물에 젖어 자르르 윤기가 흐르는 피부. 맛깔스럽게 익은 유두와 털 하나 없는 분홍빛 성기가 말도 못 하게 아름다웠다.
찰박찰박 움직이던 우영이 좌우로 골반을 비틀며 사현의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참던 절정을 토해 냈다. 그 후끈한 자극에 사현 역시 픽, 정액을 싸질렀다.
“윽⋯⋯.”
“으으응⋯⋯!”
우영은 몇 번 허리 짓을 왕복하며 여운을 즐겼다. 그 간질간질한 쾌감에 사현이 간헐적으로 경련했다. 우영이 사현의 이마에 꾸욱 입술을 눌렀다가 뗐다.
“사랑해요, 형.”
감탄처럼 터져 나오는 고백은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우영의 말에 사현이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두 팔을 벌렸다. 우영이 힘껏 사현을 마주 안았다.
우영과 사현은 욕조의 끝과 끝에 등을 댄 채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2층 욕실에는 널따란 욕조가 있었는데, 사현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뜨끈한 물에 몸을 풀며 아트 매거진을 본다고 했다. 우영은 처음 안 사실이었다. 애당초 2층에 발을 들인 적이 다섯 번도 안 되니 알 리가 없었다.
욕조는 흔히 생각하는 하얀 욕조가 아니라 검은색이었는데, 바닥을 파서 웅덩이를 만들어 놓은 듯한 생김새였다. 사현과 우영이 함께 들어가 있어도 충분할 만큼 컸다.
위치도 죽여줬다. 뒤쪽으로는 욕실 문이었고, 앞으로는 우영의 작업실에서 보는 풍경과 비슷한 서울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우영이 넋을 잃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좋아?”
와인을 마시던 사현이 물었다. 우영이 신기하게 생긴 수도꼭지를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현이 웃음을 흘렸다. 저럴 땐 순진한 소년 같다. 시골에서 잎으로 피리를 불고, 다슬기를 잡으며 노는 소년 말이다.
우영은 한참이나 욕실 여기저기를 둘러봤다. 색색의 입욕제, 쓰임새 모를 바디 용품들, 가지런히 정리된 아트 매거진. 그리고 한쪽 구석에 있는 대리석 조각상, 기하학 형태의 조명들이 참 사현다웠다.
그때, 사현이 몸을 뒤척였다. 그의 하얀 발이 거품 위로 퐁 올라왔다. 우영이 그 발목을 부드럽게 낚아챘다. 그러고는 뜨거운 물에 익어 분홍빛인 복사뼈를 엄지로 살살 매만졌다.
“저 형 복사뼈 엄청 좋아해요.”
“⋯⋯알아.”
“어떻게 알아요?”
“네가 그렇게 물고 빠는데 어떻게 몰라.”
사현이 보란 듯이 다리를 흔들었다. 복사뼈를 중심으로 우영이 남겨 놓은 붉은 자국이 꽃처럼 피어나 있었다. 그 덕에 내일도 길고 답답한 정장용 양말을 신고 출근하게 생겼다. 그런데도 짜증이나 신경질이 나지 않으니, 그게 제일 큰 문제다.
우영이 민망하다는 듯이 헤벌쭉 입을 쨌다. 사현이 그를 따라 물 아래로 풍덩 손을 넣어 우영의 발목을 쥐었다. 제 것과 달리 훨씬 커다랗고 탐스러운 복사뼈가 만져졌다.
“나도 네 복사뼈 좋아해.”
“정말요?”
“어. 네가 구두 신었을 때, 그때마다 네 복사뼈 훔쳐봤었어.”
“와⋯⋯.”
우영이 뻐끔 턱을 떨어트렸다. 몹시 놀란 낯이었다.
“왜?”
“형도 변태 같을 수가 있구나, 싶어서요.”
“⋯⋯욕이니?”
“아니요. 뭐랄까⋯⋯. 음⋯⋯. 아, 동질감이랄까.”
우영은 진지했다. 사현이 코웃음을 치며 와인을 머금었다. 동질감은 무슨. 나는 너처럼 인간을 조랭이떡으로 보지 않아. 그리 말해 주려다 말았다. 너무 유치한 것 같아서.
우영과 대화하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 문맥도 없고, 생산성도 없는 대화라. 이렇게 시답잖고 쓸모없는 말을 주고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근데 그래서 좋았다. 그래서 평화로웠고, 여유로웠고, 또 편했다.
우영이 사현의 복사뼈에다 입술을 비볐다.
“형.”
“응.”
“나중에, 나중에요.”
“응.”
“형 안 바쁠 때요.”
“응.”
“여기 종일 빨아 보고 싶어요.”
사현은 하마터면 와인을 우영의 얼굴에다 뿜을 뻔했다. 떡이니 복숭아니 할 때부터 알아봤다만, 우영은 정말 독특한 페티쉬를 가지고 있었다. 사현이 대강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라.”
“진짜요?”
“뜯어먹지만 않으면 되지 뭐.”
심드렁한 사현의 말에 우영의 광대가 볼록 위로 솟아올랐다. 사현의 허락이 못내 기쁜 듯했다.
그 후로 잠시간 정적이 흘렀다. 우영이 흘끔흘끔 사현의 눈치를 봤다. 사현은 그 시선을 느끼면서도 무감히 와인만 들이켰다. 묻고 싶은 게 있겠지. 헌데 물어도 되나, 저에게 그럴 권리가 있나, 괜히 물었다가 상처를 헤집는 꼴이 되면 어쩌나.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게 뻔했다.
사현이 벌떡 일어났다.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물이 촤르륵 아래로 떨어졌다. 우영이 덩달아 일어나려는데, 금세 다가온 사현이 그의 어깨를 아래로 눌렀다. 그는 우영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너른 가슴팍에 등을 기댔다. 단단하면서도 적당히 푹신한 게, 명품 소파보다 훨씬 안락했다.
흠칫, 놀랐던 우영이 곧 사현의 허리를 감싸고 미끈한 목덜미에 코를 묻었다.
“묻고 싶은 거 물어. 대답해 줄게.”
나른한 표정의 사현이 말했다. 우영의 도톰한 목울대가 아래위로 크게 움직였다. 잠깐 숨을 고르던 그가 넌지시 물었다.
“검사가 형을 왜 잡아갔어요?”
“야. 잡아간 건 아니야. 그냥⋯⋯ 짧은 연행이었던 거지.”
뭐가 다른진 모르겠지만, 우영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사현이 그렇다면 그런 거였다.
“특정 경제 범죄 가중 처벌법이라고 들어 봤어?”
사현의 말에 우영이 데구루루 눈을 굴렸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법이었다. 무슨 이름이 그렇게 긴가. 방금 들었는데도 기억이 안 났다.
“원래 시장 경제를 무시하고 싼 걸 비싸게 판다거나, 뇌물을 주고받는다거나, 돈세탁을 한다거나, 뭐 그런 거.”
“형이 그랬어요?”
우영의 낯에 경악이 서렸다. 대충 가늠해도 보통 일은 아니었다. 혹, 사십만 원짜리였던 제 그림을 일억이나 주고 팔아서, 그래서 잡혀갔던 걸까.
“그러긴 했지.”
사현이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고요?”
“사업하려면 뇌물, 돈세탁. 그런 거 너무 당연한 거야. 몸집이 큰 기업이면 기업일수록 필수고. 그래도 나는 괜찮아.”
“형이 했다면서요. 근데 뭐가 괜찮아요?”
우영은 사현이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범죄를 저질렀고, 그것이 발각됐다. 검사에게 잡혀가기도 했다. 그 말인즉슨, 감옥에 갈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근데 괜찮다니. 대체 뭐가 괜찮은데.
사현이 살짝 상체를 옆으로 틀어 앉았다. 그러고는 걱정으로 점철된 우영의 얼굴을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내가 세금 꼬박꼬박 낸다고 했던 거 기억하니?”
“네.”
“그게 그냥 국민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하는 건 아니거든.”
“네⋯⋯?”
“너 나쁜 놈들이 세금 내는 거 본 적 있어? 드라마든 영화든. 밀수입하는 애들이, 마약 파는 애들이, 사람 사고파는 애들이 세금 내는 거 봤냐고.”
“어⋯⋯ 아니요⋯⋯.”
“그거야. 나는 세금을 지나치게 잘 내. 현금으로 주고받은 것도 칼같이 신고하거든. 네 그림. 프랑스에서 사 온 것처럼 꾸몄던 네 그림도 세금 다 냈어. 내가 가져다 둔 건데, 어쨌든 겉보기에는 내가 사서, 한국으로 가져온 거니까 다 신고하고 세금도 냈다고.”
“⋯⋯.”
“왜 그렇게 등신 같은 짓을 했겠니?”
사현의 가느다란 손이 우영의 쇄골을 쓰다듬었다. 오늘 안 건데, 우영은 복사뼈만 예쁜 게 아니라 쇄골도 참 예쁘다. 항상 옷에 가려져 있어서 몰랐다. 가끔 벗은 걸 보더라도 탄탄한 가슴이나 너른 어깨, 적당히 도드라진 복근에 시선이 팔려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
아아, 깨물고 싶다. 사현이 입술을 우물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세금을 내면, 내가 어디서 무엇을 샀고, 그것을 어떻게 팔았고, 얼마나 이득을 봤고, 또 그 돈으로 무엇을 했는지 기록이 남아.”
“⋯⋯.”
“그 기록에는 내가 프랑스 작은 마을에서 네 그림을 샀고, 사 와서 경매에 부쳤고, 얼마의 이득을 봐서, 또 얼마의 세금을 냈다. 그런 게 적혀 있겠지.”
“아⋯⋯.”
“그게 다 증거야. 내가 결백하다는 증거이자, 내가 범법을 행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라고.”
우영은 비로소 사현이 ‘괜찮다’고 말한 까닭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걸리는 게 있었다. 우영이 사현의 귓불을 조물거리며 말했다.
“그래도 제 그림 값이 말도 안 되게 뛰었잖아요.”
“그건 예술 시장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거야. 내 탁월한 안목이 위법은 아니잖니?”
낯부끄러움이라곤 하등 없는 어투였다. 우영이 소리 없이 웃었다. 사현의 자신감은 놀라울 정도다. 근데 그게 밉지 않으니 신기했다. 절대 따라갈 수 없는 경지에 올라있는지라 질투도 나지 않았다. 그런 사현이 좋았다. 어른스럽고, 프로페셔널한 그가 멋졌다.
‘나 어쭙잖게 일 안 해.’
사현이 자주 하던 말을 떠올린 우영이 그 몰래 고개를 끄덕였다. 다 예상하고 준비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사현이 뒤를 돌아 우영의 허벅지 위에 걸터앉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직선으로 맞닿았다.
“물론, 네 그림이 대단하기도 하지. 그 어떤 평론가도 네 그림에 감히 부정적인 단어를 선택하지 못하는 거 보면.”
사현의 눈이 사르르 예쁘게 휘어졌다. 우영이 꽉 세게 주먹을 쥐었다. 가끔 사현이 이렇게 애교 아닌 애교를 뿌릴 때면 정수리가 뻥 하고 터져 버릴 것 같다. 발바닥이 간지럽고, 정강이가 쑤셨다.
우영이 사현의 볼에 쪽쪽 입술을 붙였다가 뗐다. 그 간지러운 설렘에 사현이 어깨를 뒤틀며 웃었다. 덩달아 웃던 우영이 문득 표정을 굳혔다.
“그런데요. 검사도 다 조사하고, 형한테 해코지할 수 없다는 거 알았을 텐데. 형을 왜 불렀대요? 시간이 남아도나?”
검사라는 사람이 아무런 증거도 없이 사람을 데리고 가다니. 왜 그랬을까. 우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말에 사현이 코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회장님이 시켰을 거야. 그 사람 정도 되면 검사 한둘 멋대로 움직이는 거야 일도 아니거든.”
“회장님이요? 그 사모님의 남편분? 화 그룹 회장님?”
그리고, 형 아버지 되는 사람이요? 우영이 뒷말을 꿀꺽 삼켰다. 사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우영의 목덜미에 볼을 파묻었다. ‘오늘 밤은 고생 좀 해라.’ 굵직한 명현의 음성이 여즉 뇌리에 박혀 있었다.
“경고하는 거야. 더 이상 자기 가족 건드리지 말라고.”
“⋯⋯형도 가족이잖아요.”
“나는 가족이 아닌 모양이지.”
사현이 고저 없이 말했다. 가족에게 버림받은 사실을 토로하는 것치고는 너무나 상투적인 목소리였다. 덕분에 애꿎은 우영이 말을 잃었다.
“나가자. 덥다.”
우영의 품에서 빠져나온 사현이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런데도 우영은 느낄 수 있었다. 사현이 많이, 아주 많이 슬퍼하고 있다는 걸.
* * *
두 사람은 멀리 가지 않고 사현의 침실에서 함께 자기로 했다. 사현을 품에 안은 우영이 그의 가느다란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종일 마음을 졸이다, 거하게 섹스도 하고, 뜨끈한 물로 샤워까지 했더니 사지가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는 듯했다. 지금 이대로 사현을 껴안고 자면, 일주일 내내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사현도 가물가물 눈을 끔뻑이는 게, 우영과 비슷한 상태인 모양이었다. 느긋하게 팔랑거리는 사현의 속눈썹을 보던 우영이 아, 짧은 탁음을 냈다.
“그런데요, 형.”
“⋯⋯응.”
“저는 세금 안 내는데. 한 번도 내 본 적 없어요. 저 탈세로 잡혀 가는 거 아니에요? 내일 얼른 국세청 가서 내고 올까요?”
그 말에 사현이 푸흐흐 웃음을 흘렸다. 자욱하게 몰려오던 잠기운이 한층 옅어졌다. 멍청한 게 귀여워 보일 수 있다니. 우영은 독특한 능력이 참 많다.
사현이 고개를 들고 우영과 눈을 맞췄다.
“너는 기록상,”
“기록상?”
“무직이야.”
“⋯⋯.”
우영의 눈썹이 꿈틀, 경련했다. 무직이라니. 내가 하루에 그림을 몇 시간이나 그리는데, 무직이라니. 말이 좋아 무직이지, 백수라는 뜻 아닌가. 우영은 저 통장에 2억이나 있어요! 라고 빽 소리치고 싶었다.
잔뜩 일그러진 우영의 만면에 사현이 큭큭 익살맞게 웃었다. 남을 놀리는 유치한 취미는 없었는데. 왜 이리 즐거운지 모르겠다. 사현이 검지로 우영의 잘생긴 턱을 살살 쓰다듬었다.
“그림으로 거둬들인 수입의 세금은 다 내가 냈거든. 그러니까 너는 그냥,”
“그냥?”
“내 돈 야금야금 떼먹는, 어리고 잘생겼지만, 능력은 없는 애인 정도.”
사현의 검지가 이번엔 우영의 높다란 코를 쓸어내렸다. 툭 튀어나온 눈썹 뼈 가운데로 길게 뻗은 코가 예술이다. 종일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듯했다.
우영이 장난기가 득실거리는 사현을 보며 그의 말을 곱씹었다. 애인이란다. 사현이 저를 애인이라 칭해 줬다. 이제 백수고 무직이고 다 상관없어졌다. 뭐든 어떤가. 사현이 돈이 많고 잘났는데. 저는 그런 사현의 돈을 야금야금 떼어먹을 수 있는 애인인데.
우영이 두 팔로 사현의 허리를 야무지게 감싸 안았다.
“그럼 저 형한테 되게 잘 보여야겠네요. 형을 계속 야금야금 떼먹고 싶으니까.”
“아무렴.”
능청맞은 사현의 긍정에 우영이 참지 못하고 그의 통통한 볼과 가녀린 턱을 마구 깨물었다. 물론, 가장 좋아하는 귓불도 잊지 않았다.
“내가 다 떼먹을 거예요. 아무도 안 줄 거야.”
쏟아지는 입술 세례에 사현이 어린아이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우영과 함께하는 밤이 점점 더 좋아졌다. 그와 함께 있으면, 괴롭고 지독한 과거도, 머리 아픈 현실도, 언제 발발할지 모르는 전쟁도 다 상관없어졌다.
우영의 손을 잡고, 그의 품에 안겨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