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10/11)

6.

바로 씻고 싶다는 하영진을 닦아주고 내가 새긴 것보다 뚜렷한 그것들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눈 계속 감고 있어.”

“네.”

“넌 다른 거 볼 필요 없어. 나만 보면 돼.”

“…네.”

내가 잠시 시간을 주는 게 맞을까, 오면서도 계속 고민해봤는데 하영진의 상태를 보면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차에서부터 계속 만지는 손목이 신경 쓰인다. 이 상처를 가려줄 무언가를 찾아서 둘러줘야겠다고 김한세에게 전부터 얘기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으면 좀 더 빨리 준비를 해놓을 걸 후회가 된다. 난 하영진 대신 손을 안고 몸을 닦아줬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계속 함께할 거라고 하기는 어려워.”

내가 질릴 수도 있고 하영진이 내게 질릴 수도 있을 것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후자의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다.

“헤어… 헤어지는 건가요?”

“아니. 말 끝까지 들어.”

눈을 있는 힘껏 감고 있어서 눈물을 짜내는 것처럼 보인다. 웃음이 나올까 봐 어금니를 악물었다.

“네가 부르면 언제든지 가줄게. 만약, 설마 우리가 헤어져도.”

“…….”

“힘들고 외로울 때 언제든지 찾아와.”

내가 앞으로 누구와 함께하든 하영진은 내 우선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헤어져도 가장 아끼는 사람이 되었다는 할아버지의 말을 이제야 믿게 되었다. 같은 마음이었다면 끝이 그렇게 허무하지 않았겠지만 난 홀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하영진만 괜찮다면 좋았다.

“그러니까 나를 이용해.”

“어, 떻게요? 지금도… 충분히 도움받고 있어요.”

“난 너에게 더 많은 걸 줄 수 있어.”

눈을 뜬 하영진이 내 눈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죽여달라고 말해. 이 세상에서 없애달라고.

“…원하는 건 다 들어주실 거예요?”

“응.”

“저에게 시간을 주세요. …한 달만… 한 달만 시간을 주세요.”

그건 안 되겠는데. 고개를 저으려다 하영진의 표정을 보고 말았다.

“저, 지금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요.”

이제 이 몸에 내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내가 샤워하는 시간을 아무리 늘여도 하영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보내고 싶지 않아. 하루도 생각할 시간을 주고 싶지 않다.

“혼자 있고 싶어?”

“아니요. 지금은 싫어도, 어쩔 수가 없어요. 혼자 있어야 할 것 같아요.”

“한 달이면 되겠어?”

하영진이 모든 걸 정리하고, 안정되면. 어딘가에 우리가 함께한 시간을 잘 보관해두고 다시 나를 찾아올 때, 그때는 같은 고집을 피워도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배려해주신 거 잊지 않을 거예요.”

손목 안쪽을 덧댄 손이 떨어져서 깊이 파인 상처가 드러났다.

“이제 이런 생각 안 할 테니까… 걱정 마세요. 돌아올게요.”

내 젖은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던 손가락이 떨어졌다.

“김한세가 내 시계를 가져올 거야. 그때까지만 기다려주면 안 돼?”

내가 바라는 게 큰 것은 아니잖아. 네 시계가 아니라 네가 찰 내 시계인걸. 말도 안 되는 억지라도 잠깐은 기다려줄 수 있잖아. 두세 마디 더 하고 싶다가도 하영진이 답지 않게 단호해서 나도 가만히 기다렸다.

“그럼 그때까지만 있을게요.”

* * *

계속 늘어지기만 하던 내 시간이 어떤 계기를 기점으로 정상적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찾아도 바로 사라져버린다고 합니다.”

“대단하네. 어차피 잡힐 텐데 뭘 그렇게 돌아다니는 거야?”

세계 일주라도 꿈꾸는 건가. 오늘도 파랗게 번져가는 진 회장의 사업은 언제쯤 다시 상승세를 보이게 될까. 진우한의 빈자리는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진준희가 차지했다. 김한세는 오늘도 내 주위를 돌고 돌며 하영진과 관련된 말을 꺼내 보려고 애썼다.

“집을 지금 빼시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한 달이 지났잖아.”

하영진의 번호를 없애고, 다시 찾아서 차단했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한 달을 준 건지는 알까. 이제 그만 망설이고 나를 찾아와. 난 끈기도 없고, 인내심도 없고, 네가 좋아할 구석이라곤 얼굴밖에 없는 그런 인간이다.

“큰일 당한 사람한테 이렇게 잔인하게 구실 겁니까.”

“…….”

“한 달 있다 만나자고 약속한 건 압니다. 하지만 영진 씨는 시간이 더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해력이 딸리는 사람이셨습니까?”

“어. 이해력이 딸리는 인간이었어.”

약속을 안 지켜서? 그런 게 아니다. 매일 보고 받는 건 하영진이 밥을 굶은 것 같다. 마른 것 같다. 배전호를 만나고 표정이 안 좋았다. 집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 많은 사람을 깔아놓았던 것도 김한진 한 명만 남기고 모두 치웠다. 듣는 것마다 듣기 싫은 소식뿐이다. 또 시작된 나의 일상을 방해하는 것을 남김없이 버리고자? 그럴 리가. 정신 차리고 돌아오길 바라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뿐이다.

그런 내가 그 집에서 짐을 뺀 건 하영진이 편리하게 나를 찾길 바라서가 아니다. 어렵고, 회사를 몰라서 어떻게든 찾아와서 나를 보려는 노력이 이젠 필요했다. 처음부터 고민할 시간 따위 주지 말걸. 하영진이 배전호의 일을 계속 모를 거라고 여겼지만 그건 내 오산이었다.

“보험금 전달했다고 합니다.”

“돈 생겼으니까 안 찾아도 이해해줄 거야.”

“어린애처럼 구실 겁니까?”

“어. 너보다 어리니까 어린애처럼 굴 거야. 나가.”

처음은 하영진이 지금쯤 밥을 먹을 테니 입맛이 없어도 먹어야지로 내 식습관도 이어갔었다. 잠도 오지 않았지만 하영진이 잘 테니까 같은 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게 좋겠지로 어떻게든 잠을 잤다. 사실 여러 번 찾아갔고, 2층에서 잠도 자봤고, 생활도 하면서 나갔다가 들어갔다가 모든 짓을 다 해도 한번 마주치지 못했다. 매일 새벽 한 시에 현관문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짓을 하는 내가 싫었다. 기다리지도 못할 거면 왜 받아줬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언제부터 그렇게 다 들어주고 살았다고. 주먹 쥔 손에서 또 필기구가 부러졌다. USB에는 하영진의 생일로 이루어진 비밀번호가 걸려 있다.

아직 모르는 게 많은 사이라서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오늘은 달이 아니라 별이 쏟아지는 공간에 누워 밤을 바라봤다. 하영진의 천장엔 야광별이 있어서 매일 이곳에서 잠이 들었다. 허리가 아픈 지 오늘로써 40일이다.

“…후회되네.”

시계가 위치추적이 된다는 말을 해줄 걸 그랬나. ‘헤어져도’라는 미약한 가능성의 끈을 너무 길게 늘였을까.

“보고 싶다.”

아침부터 김한세가 나를 찾느라 땀을 흘리는 날이다. 에어컨이 망가졌다고 저 정도면 일은 줄이고 운동을 하는 게 낫지 않나.

“운동할 돈이 없냐?”

“무슨 말씀이십니까?”

“돼지야?”

“누구와는 다르게 바빠서 땀을 흘리는 겁니다.”

“땀 냄새 나.”

그렇게 단 거 좋아하다가 당뇨나 걸리지. 직원들이 불편해한다고 다 들어주면 욕먹는 윗사람이 없어서 갈등이 일어난다. 분명히. 밑층으로 이어진 계단은 오른쪽으로 조금만 틀면 거대한 유리창을 혼자 누릴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내가 여기 자주 있다는 소문이 나서 아무도 오지 않는다고 김한세가 재차 올라갈 것을 종용했다. 높으니까 이곳을 좋아할 것이다.

“영진 씨가 여권을 만드셨다고 합니다.”

“여권?”

“네. 출국하시려는 걸까요?”

수억의 보험금을 받고 해외로 출국. 뉴스에 나올 것 같은 헤드라인이다.

“단순히 만들기만 했을 가능성은?”

“여권 만드실 때 단순한 상황에서 만드셨습니까?”

나가려고 만들었지. 혹시 엄마하고 여행가는 건…. 그럼 엄마와 함께 여권을 만들러 갔겠지.

“출국 날짜는 잡혔어?”

“아니요. 아직 조회되는 건 없습니다.”

“김한진한테 똑바로 보고 있으라고 해. 이번엔 무슨 사정이 있어도 안 봐줄 거라고.”

엄마가 바쁘니까 나중에 만들려는 걸 수도 있나. 혹시… 아니겠지. 가려는 김한세를 불러세웠다.

“배전호가 같이 가나?”

“…희박합니다.”

그 빌어먹을 새끼. 아무리 숨기는 게 많고 양심이 찔려도 하영진을 위해서는 입 닥치고 있어야 했던 거 아닌가. 나도 숨기는 게 많다. 알지 말아야 할 것이고, 알면 힘들어할 거니까. 내가 떳떳하고 싶어서 털어놓는 고백이 과연 상대를 위한 선택인가 한 번쯤 고민했다면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나라면’으로 시작하는 가설 끝엔 결국 내가 왜 복잡한 생각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왜 내가 하영진의 부재를 변명하고, 사정을 봐주고 있는지, 그 이유들을 찾다가도 결론은 나에게 돌아온다. 허리가 배기는 내 잠자리가 하영진과의 거리를 넓혀주나. 집이 너무 좁아서 하영진밖에 볼 게 없어서 내가 그렇게 됐나.

문자를 보고 화들짝 놀라서 입을 헹구며 전화를 걸었다.

“그게 뭔 소리야?”

― 지금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타셨습니다.

“지금? 여권 얼마 전에 만들었다며.”

― 어디로 가는지 파악이 안 되고 있습니다. 따라가고는 있는데 김한세가 연락이 안 닿아서 본부장님께 연락드렸습니다.

“…갈 테니까 잡고 있어.”

화장실에서 나와 내 책상 서랍을 다 뒤집어 열었다. 시끄러운 소리가 김한세를 불러들인 건지 내 시야에 검은 구두가 걸쳐졌다.

“하영진이 공항에 간대.”

“여권은 여기 있습니다.”

그걸 네가 왜 들고 있어. 어깨를 한번 으쓱하는 김한세를 지나치다가 돌아가서 한 대 후려치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바쁜데 옆에서 약 올리고 있어. 주차장에서 빠져나오려 한 바퀴 돌다가 다른 차를 치고 벽에 쾅쾅 맞으니 정신이 든다. 또 인천이야. 빌어먹을 인천. 김한진에게 시시각각 오는 문자들도 가관이다. 미국으로 간다. 몇 시인 걸로 확인된다. 티켓을 구매한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30분 전. 하영진은 떠나고 싶다고 언제든지 떠나지 않는다.

[잡았습니다.]

여권을 뺏어야지. 잡는 게 다가 아니잖아. 거의 도착했을 때 다른 문자가 하나 더 와 있었다. 시간은 출국 한 시간 전.

[B21 앞 의자에 앉아있겠습니다.]

“…….”

역시 하영진이 산 것이 아니다. 차를 아무렇게나 대고 자동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자주 와보던 곳이라 눈감고도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길도 자주 잃었고, 어릴 땐 뭣도 모르고 이 공항을 내 것처럼 누비고 다니곤 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 못 해.”

그러니까 내 말투가 이런 건 이곳이 인천이라서라기보다, 하영진의 비루하게 말라버린 몸뚱이와 나를 두고 거길 가기로 한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검은 모자를 깊이 눌러써서 옆에 김한진이 서 있지 않았다면 몰라보고 지나칠 뻔했다.

“어디 가?”

“…미국이요.”

“거긴 왜?”

“바람 좀 쐬려고요.”

“가서 언제 오려고?”

“일주일이요. 어디, 가시나 봐요?”

“일주일 동안 뭐 할 거야?”

“…….”

“어디 갈지는 정했어?”

조금 떨어진 거리를 좁히려 한 걸음 다가갔다. 멀어지지 않고 고개를 더욱 떨군 채 주먹을 움켜쥔다. 이럴 때 양심적으로 굴면 안 되지.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좋아한다니까 마음이 더 가?”

“아니요.”

“해보니까 걔가 더 나은 것 같아? 역시 한번 해봐서 뭐가 다른가?”

“…….”

“그럼 너 거기 왜 가?”

뒤에서 다가온 김한진에게 여권을 받고 표를 끊으러 갔다. 어차피 여기서 하영진이 도망갈 수는 없다.

“나 출국해.”

― 언제쯤 오십니까?

“모르겠어.”

― 주차장에서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내가 처리하고 올 거야.”

― 필요한 건 다 준비해놓겠습니다.

누군가를 시키지 않고 내 손으로 끝을 보고 올 것이다. 이렇게까지 길어질 일이 아니었어. 김한진이 떨어지고 난 손을 내밀었다.

“잡아.”

“…….”

“아니면 402호로 돌아가.”

하영진은 멀어지는 김한진을 쭉 보다가 다시 내게 시선을 올렸다. 나를 뿌리치고 진우한한테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면 어떡하지.

“안 가시면 안 돼요?”

“너 혼자 즐기려고?”

“그게, 아니라….”

울컥한 표정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서 손목을 잡아 일으켰다. 내가 채워준 시계도 다 버리고 갈 생각이었구나. 나는 그 새끼를 죽이러 가는 건데 하영진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죽을 생각일지도 몰라. 난 그동안을 겪지 못했으니까, 아무것도 몰라도 되는 인간이니까 나한테 말도 안 할 예정이었을지도.

“이러지 마세요.”

“우리 아직 안 헤어졌어.”

“…….”

“잠자코 끌려와. 네가 그렇게도 원하는 미국에 보내줄 테니까.”

“그래서 가는 거 아니에요. 진짜 아닌….”

내 손을 맞잡은 하영진이 손을 완전히 떼어냈다.

“왜… 가시는 거예요?”

“너 딴짓 하나 감시하려고.”

“우한이한테 가는 거 아니에요.”

끝까지 우한이라고. 수속을 통과하고 라운지에 도착할 때까지 힘이 빠진 손목을 잡고 있었다. 빨갛게 부어서 무척 마음에 든다.

“왜 연락 안 받으셨어요?”

“안 했잖아.”

“했어요. 엄청 많이 했는데….”

“안 받아서 찾아왔어?”

“아니요, 제가 너무 느려서 이젠 싫어지셨나… 집도 다 비우셨고 그래서, 끝난 줄 알았어요.”

검은색 바지에 방울이 툭툭 떨어졌다.

“댁으로 돌아가시면 안 돼요?”

“응. 싫어.”

“사실 저 우한이 만나러 가는 거 맞아요. 가서, 얘기를 먼저 해볼 거예요. 그리고, 그리고….”

“무슨 얘기? 얘기로 끝날까?”

“그렇게 하기로, 후… 그렇게 약속했, 어요.”

심호흡이 불안해서 물을 한 통 가져다줬다. 약속. 약속…

“…그래서 혹시 모르니까 혼자 가겠다는 거예요. 우리, 여기서 헤어져요.”

아까보다 더한 눈물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뭘 하자고?

“제가 잘, 흑, 윽… 잘 돌아오면, 다시 여쭤볼게요. 그때도, 흐, 그때도 마음이… 제가 괜, 찮으시면 저를… 받아주시면 안 돼요?”

“내가 괜찮지 않으면?”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려갔다. 눈 밑이 빨개지면 잘 때 약을 발라줬었다. 혹시나 심한 말을 한 건 아닌가, 토해도 내버려둘까, 매번 고민했었다.

“미안하지만 난 너한테 그런 약속을 해줄 수가 없어.”

“이미, 마음이… 떠났나요?”

난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갈등을 하고 있었다. 공항에 간다는 소리에 눈이 돌아 여기까지 오게 됐지만 하영진이 딱히 반가운 것도 아니었다.

“너는? 아니야?”

“저는… 아니에요.”

“시간이 얼마나 필요해?”

하영진은 얼굴을 잔뜩 꾸기고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어 소리 없이 울음을 삼켰다. 왜 이렇게 웃기지. 또 하루면 나 따위는 털어낼 수 있다는 말을 들을까 봐 하영진을 안아줬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어요. 제가 죄송해요.”

“울지 마.”

집안일을 시작할 때쯤이었나. 급하다고 수돗물을 찾아 마시다가 내게 걸렸던 적이 있었다. 지금 와서 그 사소한 기억이 왜 생각나는지는 모르겠지만…. 마른 볼을 움켜쥐고 입술을 가까이 가져갔다. 달콤한 향이 올라온다. 눈을 꾹 감고 나를 기다리는 하영진에게 내 입술을 건네줬다. 젖은 손이 내 무릎을 짚고 점점 위로 올라오다가 떨어졌다.

“뭐 먹었어?”

“입이 말라서… 새콤달콤이요. 드실래요?”

레몬색이네. 나중에 먹겠다고 하나를 챙겨뒀다.

“제가 지금 정리를 하면, 같이 안 가실 건가요?”

“할 수 있어?”

“아니요….”

사람이 주위에 하나도 없어서 다행이지. 이렇게 못생기게 울 줄 전혀 몰랐다. 간절한 찐빵 같아.

“못생겼으니까 그만 울어.”

“보지 않으시면 되잖아요.”

“보지 않을 수가 없어서 여기까지 왔잖아.”

눈물을 멈추는 줄 알았는데 딸꾹질이 시작됐다. 휴지를 잡아다가 콧물을 풀어주고 물티슈를 가져와서 얼굴을 말끔히 닦아줬다.

“난 네가 내 앞에 있었으면 좋겠어.”

통 튀어 오른 하영진이 내 주먹을 펴고 자신의 손을 꼼꼼히 집어넣었다.

“왜… 왜 살이 빠졌어요? 저한테 밥 잘 챙겨 먹으라고 하셨잖아요.”

다시 울먹이기 시작한 눈이 나를 흘겨봤다. 김한세도 모르는 걸 하영진이 어떻게 알았지.

“네 얼굴은 어떤지 알아? 이건 대체 뭐야?”

여권 사진도 이 꼴을 하고 찍은 건가. 사람을 불러 물었더니 갈비탕이 있다고 했다. 하영진도 딱히 싫어하는 눈치가 아니라서 그걸 시키고 안내받은 곳으로 이동했다.

벽이 낮게 쳐져 있고 작지만 문도 있어서 밥 먹을 때 조용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와봤던 것 같은데 누구와 왔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보는 하영진의 턱을 만지작대며 엄지로 볼을 문질렀다.

“한 달 기른 건데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거야?”

“네.”

“왜 기른 건데?”

“강해 보이고 싶어서요.”

야무지게 쥔 양손을 풀어 뒀다. 테이블에 엎드려 하영진의 턱을 마저 만지작댔다. 까슬해.

“꼭 깎자.”

“별로예요?”

“응.”

지금 깎고 온다는 성급한 엉덩이를 앉힌 뒤 작은 손가락을 하나하나 만졌다. 이런 지루한 재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시간이 흘러가는 줄 모르는 낭비가 그리웠다.

“같이 드시는 거죠?”

“응. 아까 두 개 시켰어.”

“내일도 같이 있는 건가요?”

마침 갈비탕이 나와서 하영진의 손을 건져 숟가락을 쥐여줬다.

“모레도 같이 있을 거야.”

밥을 먹고 바로 국물을 떠먹은 하영진은 내게 뜨거우니까 조심하라고 일러줬다. 저 검은 그릇은 무조건 뜨거운 것만 넣는 건가. 고기가 별로 없어서 하영진에게 건네는 양이 초라하다. 감사합니다. 우물우물한 발음을 들으며 나를 한 번씩 봐줄 때마다 숟가락을 가까이했다.

“면도할 수 있는 곳이 이쓰까요?”

“응. 다 먹고 데려가 줄게.”

“거긴 면도기도 있을까요?”

“응. 없으면 사서라도 밀어줄게.”

사실 이런 곳은 처음이라며 신기하다고 조잘대다가 큰 비밀을 얘기하듯 고개를 숙였다.

“저요, 사실 비행기 처음 타봐요.”

“앞으로 자주 타게 될 거야.”

내 감시하에 국과 밥을 모두 비운 하영진을 끌고 샤워실로 갔다. 휙휙 두리번거리더니 갖고 온 건 일회용 면도기였다. 내가 밀어줄 테니까 가만히 좀 있으라고 오늘따라 산만한 하영진을 세면대에 앉혀두고 폼을 묻혔다.

“저 일회용으로 하다가 턱에서 피난 적 많아요.”

“어릴 때?”

“네.”

“비행기 타기 전에 한 번 하고 갈까?”

“예?”

세면대에서 미끄러진 하영진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벌써 빨아주려고?”

“네? 아니,”

“턱 다칠 뻔했잖아. 일어나.”

세면대에 도로 앉은 하영진은 아까처럼 눈을 감지 않고 나를 보고 있었다. 재밌지만 하영진과 어울리지 않는다. 강해 보이기는커녕 모자까지 써서 젊은 노숙자 같았다.

“이런 것도 다른 사람한테 해준 적 있으세요?”

“응.”

산타. 흰 수염을 주렁주렁 길은 할아버지. 귀여워. 옆에 있는 수건에 물을 묻혀 하영진의 턱을 말끔히 닦아줬다.

“절대로 기르지 마.”

뭐지. 이거 입술 왜 이렇게 나와 있는 거야. 하영진은 대뜸 내 입술에 콩 제 것을 박고 떨어졌다.

“왜 이러는 거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못생겼다고 자꾸 놀려서 그런가.

“네가 전에 그랬잖아. 길 가다가 만나면 인사해줄 수 있냐고. 너도 아마 이번에 알았겠지.”

혹시라도 반대쪽에 있을까 싶었던 시계는 정말 어디에도 없었다. 아마 내가 그 골목을 이용하지 않았다면, 술이 깼을 시간이 그때가 아니었다면. 매일 취해 있는 나를 두고 욕지거리를 하던 기사가 마지막 날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넌 결국 내가 찾기 전까지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을 거야.”

혼내려는 게 아니니까 얼굴을 좀 보여줘. 내가 그렇게 만든 거라 누군가를 탓할 일도 아니었다. 어떻게든 내게 맞추려는 노력에 기대어 안주하고 있던 것도 사실이니까.

“내 말이 맞지?”

시무룩해하지 마. 손목을 안고 있던 손이 내려갔다. 처음 만났던 그 순간부터 나는 조금이라는 분량에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곧 넌 나에게 더 많은 걸, 점점 더 어려운 걸 바라게 될 거야.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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