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2/18)

11.

[버찌> 오랜만이네]

오늘은 윤정신이 일 때문에 만나지 못할 것 같다고 해서 간만에 낮부터 게임에 접속했다.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서진에게서 귓속말이 왔다. 와, 뭔가 굉장히 오랜만인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나는 반가운 마음에 얼른 답장을 했다.

[청혼> 버찌상]

[청혼> 얼굴 까먹겠음]

[버찌> ㅋㅋ 그러게 자기 차 샀다고 이젠]

[버찌> 몸종으로도 안 쓰더라]

[청혼> 그 인간이 글치 머 ㅋ]

[청혼> 나도 오늘 버려짐]

[버찌> 생일인데 집 안 왔다고 한소리 들었대]

[버찌> 오늘 뒤늦게 내려가는 거 같던데]

[청혼> 맞아 집 간다더라]

[청혼> 간만에 조용하니까 좋네]

[버찌> ㅋㅋㅋ외롭진 않아?]

[버찌> 난 요즘 일이 없어서 그런지 심심하기도 하고]

[버찌> 좀 외롭네]

[청혼> ㅋㅋㅋ 조만간 형도 같이 놀자고 해볼게]

서진 정도면 괜찮은 사람 많이 만날 수 있을 텐데, 이 사람은 왜 방구석 폐인일까?

[청혼> 형은 누구 안 만나?]

[버찌> 여전하지]

[청혼> 애인 만들어봐]

[청혼> 외롭진 않더라]

[버찌> 애인도 애인 나름이지...ㅋㅋ]

[버찌> 아무튼 너라도 간만에 보니까 좋네]

[청혼> 윤정신이 안 놀아 줘?]

[버찌> 응...ㅎㅎ]

[청혼> ㅋㅋㅋㅋㅋ 슬프네 ㅠㅠ]

[청혼> 소개팅 해줘야겠네~~]

[버찌> ㅋㅋㅋ아니야 지금은 생각 없어]

[버찌> 좋은 사람 만나면 어련히 알아서 할게]

[청혼> 그...래...]

[청혼> 오지랖 ㅈㅅ]

[버찌> 그런 뜻은 아니고]

[버찌> 아니 사실 너무 그런 말 많이 들어서 좀 지겹네 ㅠ]

[청혼> ㅋㅋㅋ 설마... 모태솔로?ㅋ]

[버찌> 그런 건 아닌데]

[버찌> 별로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없어서]

[버찌> 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들어]

[버찌> 한 3년 혼자만 지냈더니 부쩍 재촉하는 사람이 많네]

그런 생각을 하는구나.

나는 나 나름대로 조언을 해 주었다.

[청혼> 근데 만나다보면 장점이 보일 때도 있음]

[청혼> 나도 처음엔 윤정신 부담스럽고 짜증났었는데]

[청혼> 지내다보니까 사소한 게 좋아지더라 ㅋㅋㅋ 염장은 아닌데]

생각해 보면 정말 그렇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건 늘 우연한 포착에서 시작된다. 심지어는 첫인상이 썩 좋지 않았던 사람도 어느 날 우연히 달리 보이게 될 수 있다. 문득 그 사람의 몰랐던 매력이 눈에 띄는 거다.

그런 건 보통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사소한 부분들이었다. 처음 눈 마주친 순간에 깨달을 때도 있고, 어느 날 갑자기 깨달을 때도 있는데 윤정신 같은 경우에는 후자였다. 처음 인식한 그의 굵직굵직하고 투박한 이미지들을, 옅은 보조개나 손톱의 반달처럼 사소하고 섬세한 것들로 잘 다듬게 되면 그제야 보석이 된다.

[버찌> ㅋㅋㅋㅋㅋ정신이가 들으면 섭섭해 하겠다]

[청혼> 어쩌겠음 사실인데]

[청혼> 암튼 안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도 지내다보면 정 들지도]

[버찌> 그런가 ㅎㅎ...]

[버찌> 난 별로 연애 운은 없나봐]

[버찌> 항상 잘 안 되는 것 같아]

[청혼> 잘 되고 싶었던 사람이 있긴 했음?]

[버찌> 가끔 호감 느낄 때가 있는데]

[버찌> 잘 된 적이 없는 것 같아]

[청혼> ㅋㅋㅋ그 중 하나가 윤정신 때문이랬나]

[버찌> 그랬지]

[청혼> 그 형 자기가 좋아해서 사귄 사람 없다고 희대의 카사노바인 척하더니]

[청혼> 추했네]

[버찌> 한 사람 있잖아]

[청혼> 그 첫사랑?]

[청혼> 결혼했다던데]

[버찌> 지금도 만나는데]

[청혼> 그 사람이랑?? 정말?]

[버찌>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버찌> 이해가 안 돼]

[버찌> 아]

[버찌> 누구 얘기 하는지 모르겠는데 난 너 말하는 거야]

[청혼> 나 왜?]

[버찌> ㅋㅋ아니야...]

[버찌> 다음에 한번 보자]

[버찌> 나가야겠어]

[청혼> 갑자기?ㅋㅋ]

[청혼> 답지 않게 횡설수설이야]

[청혼> ㅃㅃㅃ]

[버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버찌> 그래 ㅋㅋㅋㅋㅋㅋ]

그는 그 대화를 끝으로 정말로 로그아웃을 해 버렸다.

왜 저래? 갑자기 이해 안 되는 말들만 늘어놓다가 나가고. 왠지 김새서 나도 그냥 게임을 끄고 침대 위에 늘어졌다.

심심해……. 나는 윤정신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번은 신호음이 가다가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됐고, 두 번째 시도에야 그는 전화를 받았다.

[어, 자기야.]

“뭐 하고 있었어?”

[자꾸 이거 저거 시켜서……. 가구 배치 다시 하는 거랑 다락에서 겨울옷 내리는 거 도와주고 있어. 못도 좀 박고. 생일 어쩌고 하더니 일 시키려고 불렀나 봐. 아, 힘들어 죽겠네.]

“바쁘네…….”

[왜? 무슨 일 있어?]

“그냥 심심해서. 근데 바쁘면 끊을게.”

[아니, 에어팟 꽂고 와서 상관없어. 나 몰래 도망쳐서 서울 갈까? 일하기도 싫은데.]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수화기에서 그에게 잔소리하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윤정신이 농담이라며 사죄하는 목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미안. 도망은 못 가겠다.]

“괜찮아.”

[많이 심심해? 친구라도 부르지.]

“다들 바쁠 것 같아서.”

[아니면……, 아니다. 그냥 나랑 계속 통화하자.]

“아니면 뭐?”

[서진이랑 놀라고 하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싫어서.]

“아……. 아까 게임 하다가 봤는데 일 있나 보더라. 나갔어.”

내가 별생각 없이 그렇게 말하자, 그가 불만스러운 듯 투덜거렸다.

[걔는 왜 남의 애인이랑 몰래 게임 하고 그런데? 둘이 뭐 했는데?]

“뭐 하긴. 그냥 이야기했지.”

[이서진 요즘 하나도 안 바쁠 텐데. 드디어 말을 좀 알아듣는 건가?]

……얼마나 사람을 볶아 댔으면. 윤정신이 흡족한 듯 그렇게 말했다. 진짜 그런 이유인가? 아닌 것 같은데. 아, 혹시 그거 때문인가?

“그러고 보니까 내가 듣기 싫은 소리해서 나간 걸지도 모르겠어. 애인 안 만드냐니까 그 소리 지겹다고 하더라고.”

[지겹겠지. 나만 해도 주마다 묻는 중인데.]

“왜 사람을 괴롭혀.”

[걔가 나를 괴롭히는 거겠지. 엄마, 그거 이리 줘.]

윤정신이 짐을 받아 드는 듯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역시 바쁜 것 같네. 나는 눈치껏 전화를 끊어 주기로 했다.

“낮잠이나 한숨 자야겠어. 형, 이따 또 전화할게.”

[어? 끊으려고? 통화 더 하고 싶은데…….]

“갑자기 좀 졸려서. 형도 일 봐.”

[그래, 뭐. 이불 잘 덮고 자. 좋은 꿈 꾸고.]

“형도 일 열심히 해.”

[알겠어. 사랑해. 깨면 전화하고.]

“응.”

나는 통화를 끊고 핸드폰을 옆에다 내려놓으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가전제품 돌아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나는 것을 제외하곤 몹시도 조용하다. 따스한 햇살이 조용하게 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평화롭고 좋기는 한데, 왜 이렇게 심심하지. 저녁에는 그가 집에 돌아올까? 나는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리다가 친구 몇 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다들 바쁜 것 같았다. 차라리 주말에 내려갈 것이지, 하필 평일에 가서 사람을 이렇게 심심하게 하고.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서진에게 연락을 했다.

[형 바쁨?]

서진 형마저 바쁜 건가. 반쯤 포기하고 거실로 나가 리모컨을 집어 드는데 답장이 왔다.

[이서진: 아니]

[이서진: 왜?]

[심심하지 않음?]

[이서진: ㅋㅋㅋ 그러네]

[이서진: 심심해?]

[ㅇㅇ...]

[오늘따라 게임도 재미없음]

[이서진: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될까]

[이서진: 기프티콘 보내 줄 테니까 뭐라도 사 먹을래?]

[이서진: 그래도 먹을 거 있으면 덜 심심할 것 같은데]

[아니 별로 입맛 없음]

[놀자 같이]

[이서진: 어...ㅋㅋㅋㅋㅋ 좀 그런데]

[이서진: 윤정신이 기분 나빠 할 것 같아서]

[말 안 하면 됨]

[시름 말고...]

[이서진: 나랑 노는 게 근데 재미있을까]

[ㅎㅎ 존잼각]

[이서진: 괜히 나중에 비밀로 한 거 들키면 더 욕먹을 것 같아서]

[이서진: 그럼 걔한테 전화 한번 해볼게]

[안됨 나 낮잠 잔다고 했음]

[바쁜 거 같아서]

[이서진: 아...]

[좀 그런가]

[그럼 그냥 다음에 보자]

[이서진: 아니야 집 앞으로 갈게 그럼]

[아님 ㅋㅋ 진짜 낮잠이나 좀 자야겠음]

별로 내켜 하는 눈치도 아니고. 서진의 말마따나 윤정신이 알게 되면 바람난 남편 보듯 부들부들 떨 게 분명하니까 그냥 말자 싶었다. 

소파에 누워 TV를 보고 있는데, 얼마나 봤을까,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벌떡 일어나 인터폰으로 밖을 확인했다. 설마 윤정신, 진짜 도망쳤나?

“어?”

나는 실망 반, 의아함 반으로 현관문을 열어 주었다. 그냥 말기로 하지 않았나? 서진이었다.

“진짜 괜찮은데……. 뭘 여기까지 왔어.”

“나도 되게 되게 심심해서. 영화라도 보자.”

“말을 하지. 나 그럼 옷 좀 갈아입고 올게. 들어와 있어.”

서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를 TV 앞에 앉혀 놓고 내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서진이 윤정신 이야기를 해서 괜히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집 앞까지 온 사람을, 그것도 내가 먼저 놀자는 이야기 꺼내서 온 사람을 내치기도 뭐하고. 딱 봐도 내가 심심해하는 게 신경 쓰여서 와 준 것 같으니까…….

하여튼 사람이 너무 배려심이 많아도 문제란 말이지. 거실로 나왔을 때 그는 TV를 끄고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다.

“형.”

내가 그를 부르자, 서진이 나를 돌아보았다. 매초 매 순간이 화보네. 존재 자체가 이기적이다. 저 옆에 서 있으면 괜히 비교되는 거 아니야?

갑자기 걱정이 됐다. 윤정신은 이런 사람을 옆에 두고 어떻게 안 좋아했대? 그런 생각을 했다가, 문득 윤정신이 왜 자꾸 서진과의 사이를 의심하는 건지 이해가 되었다.

같은 생각을 하는구나. 내가 서진이 아닌 윤정신을 좋아하게 된 것처럼, 그도 마찬가지인 거겠지. 내가 좀 뚫어지게 쳐다보았는지 서진이 머쓱해하며 현관문을 가리켰다.

“아. 나가도 되지, 이제?”

“형. 진짜 윤정신한테 비밀이야. 형이랑 사이 이상하다고 엄청 의심해 대서.”

“이쪽도 마찬가지라서 구태여 말할 이유가……. 알지? 내 쪽이 더 심하게 갈굼 받는 거.”

나는 조금 시무룩하게 그런 말을 하는 서진이 웃겼다. 나라면 내 쪽에서 더 화냈을 것 같은데…….

아무튼, 그와 영화관으로 가 가까운 시간대의 표를 사고, 카페에 가서 시간을 때웠다. 아무래도 우리 사이의 공통된 화제 중 가장 이야깃거리가 많은 게 윤정신이다 보니 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와, 그럼 되게 오래 봤네. 그래서 그렇게 친했구나.”

“그냥 게임 친구였는데 걔가 만나서 술 한잔하자 그래서. 알고 보니까 집도 가깝고, 그래서 자주 만나 놀면서 더 친해졌던 것 같아. 걔나 나나 한가하잖아.”

“형은 실제로 처음 만났을 때 어땠어?”

“뭐가?”

“윤정신 말이야. 생각했던 거랑 달랐다든지. 난 좀 당황스러웠었거든. 생각보다 더, 뭐라 해야 하지……. 날티가 난다? 불건전하다? 그런 느낌이 있어서.”

“아아. 아니, 나한텐 뭐 항상 대하는 게 비슷해서. 너랑 엮일 때 유독 짜증 내는 거 아니면 그냥 평범한 친구 사이라. 그날은 걔가 좀 짓궂긴 했어.”

“좀 왔다 갔다 하더라. 기분파 같아. 의외로 착하다 싶다가도 가끔 보면 또 저건 좀 아닌데 싶고. 아무튼, 개성 있는 성격이야.”

“윤정신이 좀 종잡을 수 없는 성격 같긴 해. 그래도 너한테는 잘해 주잖아?”

“그렇지…….”

“난 보고 있으면 좀 신기해. 그렇게나 좋을까 싶어서. 걔가 그러는 거 처음 보는 건 당연한 거고, 살면서 사람이 가족 이외의 사람을 그렇게 좋아하는 건 처음 본 것 같아.”

“나도 느끼는데, 솔직히 이유는 모르겠어. 그냥 그 형 좀 특이해.”

“가끔 부럽지 않아? 난 그렇던데.”

“속 편하게 산다 싶어서 부럽지. 나름대로 고충은 있겠지만 그냥 자유로워 보여서 좀 부럽기도 하고, 좋고 그래.”

별로 특별할 것도 없던 내 삶에 평생 기억에 남을 일이 생긴 거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좋은 게 사실이다.

“둘이 사이좋네.”

“좋다고 해야 하나? 요즘은 별로 안 싸우긴 해.”

“눈빛이 많이 변한 것 같아.”

내 눈빛이? 잘은 몰라도 윤정신의 그 바보 같은 눈빛을 닮아 가나 보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데, 테이블에 올려 둔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윤정신에게서 도착한 카톡이었다.

[부♡: 자기 아직도 자는 거야?]

[부♡: 나 이제 서울 올라가는데 오랜만에 고기 구워 먹을까]

[부♡: 너 좋아하는 곱창하고]

확인하면 티가 나니까 미리 보기로 내용을 보았다.

하루 자고 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일찍 오네? 영화를 보고 나면 얼추 저녁 시간이 맞을 것 같았다.

그런데 서진은 어떡하지? 이렇게 보내면 마음이 안 좋을 것 같았다. 심심할 때만 찾았다가 놀 사람 오자마자 버리는 그런 느낌…….

나는 조심스럽게 서진을 떠보았다.

“형. 윤정신 곧 서울 온다는데, 저녁에 같이 고기 안 먹을래? 내가 오랜만에 보자고 불렀다 할게.”

“응? 아니, 그냥 둘이 놀아. 커플 노는 데 눈치 없이 껴 있기 좀 그렇지.”

“그래도. 나온 김에 같이 저녁 먹지?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으음. 걔한테 추궁 듣기도 지겹고…….”

그런가. 그냥 내 욕심인가……. 난 둘 다 잘 지내고 싶은데 말이다. 

“점심은 먹었어?”

“아침도 먹었는데.”

“형 꽤 많이 먹지 않나? 저녁 되면 배고플 텐데. 혼자 밥 먹게?”

“원래 혼자 자주 먹어서……. 단골 식당도 있어. 혼자 먹기 딱 좋아.”

“생각해 봐, 형. 고기 굽는 냄새. 먹고 싶지 않아? 소금 조금 쳐서, 크……. 너무 맛있겠다.”

내가 계속 그를 회유하려 하자, 냉정한 듯 이래저래 빠져나가던 서진이 못 이기겠다는 듯 웃었다.

“알겠어. 잔소리 좀 듣지, 뭐. 얌전히 있으면 그래도 낫겠지.”

“아싸. 약속한 거야.”

그렇게, 간만에 셋이서 만나게 되었다.

* * *

[부♡: 밖이라고?]

[ㅇㅇ]

[외출 좀 해보려고]

[부♡: 혼자?]

[응]

[그러니까 바로 이쪽으로 와]

[부♡: ㅇㅋ]

[부♡: 금방 갈게]

[형 그리고 내가]

[몰래 온 손님 준비해뒀거든]

[리액션 준비 좀 ㅋㅋ]

[부♡: ㅋㅋㅋ누구?]

[부♡: 어머님? ㅎ]

[아님 ㅎ]

[부♡: 네 친구?]

[친구긴 하지]

[부♡: 이서진이네]

[부♡: 아 걔는 왜ㅡㅡ]

와, 눈치가 백 단이네. 소름이 끼쳤다.

[그냥 오랜만에 얼굴 좀 보려고]

[형이랑 친하잖아 ㅋㅋ 둘이 있는 거 보면 재밌기도 하고]

[싫음?]

[부♡: 싫지만 참을게 ㅋ]

[부♡: 걔 취직 시켜야겠다 매일 야근하는 곳으로]

[ㅋㅋㅋㅋㅋㅋㅋㅋ]

[쓸데없이 질투하지 말고 빨리 오셈]

[부♡: 알겠워요 ^~^]

대충 이 정도면 됐겠지. 나는 서진과 식당 앞까지 갔다가, 윤정신에겐 먼저 들어가 있겠다는 연락을 남긴 뒤 미리 주문을 해 두었다.

기본 상차림이 나오고 조금 뒤, 윤정신이 도착했다.

“야, 도둑.”

“도둑이라니……. 너 뒤끝 너무 긴 거 아니야?”

그러고 보니 윤정신 처음 만났을 때, 그러니까 게임에서 처음 만났을 때도 서진을 저렇게 불렀었지? 이후로는 딱히 그렇게 부르는 걸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아서 까먹고 있었다.

“근데 왜 도둑이야? 그, 무슨 교환 창 돈 따먹기 그거 때문에?”

“그게 뭔데?”

윤정신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며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았다. 그가 내 손을 잡으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투덜거리듯 늘어놓았다.

“허드렛일 다 하고 왔어. 무슨 벼른 사람들처럼……. 무섭더라니까. 처음에는 시키니까 그냥 했다? 하다가, 어느 순간 해도 해도 잔뜩 쌓여 있는 일거리들을 딱 보는데, 뭔가 나를 향한 악의가 느껴지는 거야. 일부러 일거리 만들어 놓은 거 아니야? 이러면서.”

“고생했어.”

기특하다, 그래. 나는 그에게 상차림으로 나온 도토리묵을 떠먹여 주었다. 도토리묵을 잘 받아먹곤, 윤정신이 이번엔 서진을 삿대질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얘가 왜 도둑이냐면, 너 모르는구나?”

“나는 그거 때문인 줄 알았는데. 그 교환 창에 돈 올려서 막 수락 빨리해서 돈 가져가는…….”

“아, 아. 맞다. 그거로도 많이 털렸지. 야, 그게 문제가 아니야. 쟤 장사할 때 사기 얼마나 쳐 댔는지 아냐?”

“사기는 아니지. 쳐 댄 것도 아니고.”

“내가 얘 처음 알게 된 게 그거거든? 들어 봐. 물건 팔려고 하는데, 얘가 자꾸 선 제시를 하래. 나는 시세 잘 모르니까 그냥 시세만 쳐 달라고 했어. 그랬더니 얘가 얼마를 부르는 거야. 나는 당연히 믿었지. 근데 나중에 보니까 이 도둑놈이 딱 시세 반값을 불렀던 거야. 그거 알고 환불해 달라고 개 진상 짓 했는데 그 캐릭터 매크로 돌려 놨는지 답도 안 하고. 내가 기를 쓰고 누구 부캐인지 알아내서 얘 맨날 카톡으로 현금 거래하니까 거기로 연락했는데, 그래도 돈 안 돌려주더라. 독한 새끼…….”

“그러게 네가 시세 잘 알아보고 팔았어야지.”

서진이 자기가 말해 놓고도 뻔뻔한 발언인 걸 알았는지 피식피식 웃었다. 와, 그랬었구나. 양심 장사꾼이 아니었구나……. 유저들 고혈 잘 빨아먹고 있다는 게 그냥 한 소리가 아니었다. 윤정신도 그중 하나였고…….

“또 있어.”

“그만해, 이제. 다 지난 이야기인데.”

“훔쳐 간 걸 돌려줬어야 지난 이야기지, 도둑놈아. 얘가 내 캐시 아이템 가져간 적도 있거든? 와, 진짜 골때렸는데.”

“시세 오른 거 모르는 것 같아서. 팔고 나서 돈 줬잖아.”

“수수료라면서 엄청 떼 갔잖아. 팔기 전에 나한테 물어보기라도 하든가.”

“와, 그건 너무했다. 뭐였는데?”

“별건 아니고, 예전에 나온 토끼 머리띠 있잖아.”

“아아. 뭔지 알겠다. 근데 그거 상점에 풀리고 시세 완전 내려갔는데. 그때 터는 게 나았을걸? 결과적으론 잘됐네.”

“그러니까. 도와준 건데 뭘 몰라, 얘는. 수수료 떼 봤자 너한테도 이득이야. 힘들게 최고가로 팔아 준 건데.”

“내 펫 가져간 건?”

“그건 사과했잖아.”

“와, 미치겠네? 너 왜 이렇게 뻔뻔하냐?”

“그래서 너 많이 도와줬잖아.”

이러니저러니 해도 친해서 한 일 같았다. 처음에 시세 속인 건 그렇다 치고……. 윤정신이 이때다 싶었던 듯 그간의 불만을 늘어놓았다.

윤정신의 뒤끝은 고기가 나오고 노릇하게 익어 갈 때까지 계속됐다. 묵묵히 고기를 굽던 서진이 더는 못 들어 주겠다고 생각했는지, 자신도 할 말이 있다는 듯 불만스럽게 얘기했다.

“네가 자꾸 뭐 구해다 달라고 생떼 쓰고 돈 안 줬잖아. 그거 복수한 거야.”

와, 그랬단 말이지. 이래서 양쪽 말을 들어 봐야 한다니까. 나는 윤정신의 뻔뻔스러움에 고개를 저었다.

“양아치네.”

“아니, 모함이야! 나 돈 줬어.”

“달라고 한 3번 말하면 가끔 줬잖아. 너 내가 떼먹힌 돈 다 정리해서 오면 어쩔래? 그때도 할 말 있어? 내가 도둑이면 넌 깡패야.”

“야, 그걸 일일이 기억하냐……. 쪼잔하다, 너.”

“누가 할 소리를.”

“그래. 다 됐고, 우기만 안 훔쳐 가면 돼. 난 그럼 더 바랄 게 없다.”

윤정신이 지난날의 과오는 잊자는 듯 말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

“서진이 형은 오히려 우리가 잘되게 도와준 편 아닌가?”

“이서진이?”

“서진이 형 없었으면 형이랑 나, 아는 건 둘째 치고 절대 못 친해졌을걸.”

“얘가 그런 거 생각하고 소개해 준 것도 아니잖아.”

“애초에 형 신용의 50퍼센트는 서진이 형 친구여서였고……. 형이랑 내가 싸웠을 때도 형 걱정해 줬었어.”

“싸운 원인이 얜데? 그래, 참. 잊고 있었다. 넌 남의 애인한테 그런 소리는 왜 했냐?”

“보호 차원에서?”

그 얘기도 서진이 형이 한 거 아닌데……. 괜히 미안하네.

“사람을 뭘로 보는 거야……. 내가 너 애인 생겼는데 너한테 변태 같은 취향 있다고 까발리면 좋냐?”

“첫째, 난 그런 취향 없어. 둘째, 그런 건 당연히 상대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어휴, 그래. 너 잘났다.”

“네가 변태인 건 사실이잖아. 난 솔직히 너 애인으로서는 별로라고 생각했어서 그래. 진지하게 만난 적 없었잖아.”

“알겠다고.”

“넌 갱생 좀 해야 해. 말이 나와서 하는 건데, 너희 진도도 너무 빨라.”

“근데 내가 이상한 건가, 그게 왜? 너도 저렇게 생각하지? 나쁜 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조심스러워야 하는 거야?”

서진이 내 앞 접시에 익은 고기를 놓아 주었다.

저렇게 물으면 왠지 할 말이 없단 말이지……. 윤정신이 육체적 관계만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믿지 못할 사람도 아닌 것 같아서. 그가 유난히 밝히는 것도, 그런 게 늘 나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지만은 않는다는 것도 모두 사실이지만, 진실은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거다. 그걸 알기 때문에 마냥 뭐라고 할 수 없는 거고.

서진은 잠깐 생각하는 듯하다가, 역시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런 얘기 밖에서 하긴 좀 그러니까, 일단 다음에 이야기해.”

“그러든지.”

우리는 다시 고기 먹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먹는 돼지고기였다. 소고기도 좋긴 하지만 가끔 삼겹살이 당기는 날이 있지 않은가? 나는 열심히 노릇하게 익은 고기를 쌈장에 찍어 구운 마늘과 함께 쌈을 싸 먹었다.

내가 먹는 것에 열중하는 동안, 그들은 소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러고 있으니까 꼭 가족 외식 따라 나온 외동아들이 된 기분인걸.

나는 서진에게서 바통을 넘겨받아 열심히 고기를 굽고 있던 윤정신에게 쌈을 하나 싸 주었다.

“어? 응, 고마워.”

윤정신이 보답하듯 내 앞 접시에 버섯을 놓아 주었다. 스테이크 써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테이블에 둘러앉아 고기를 구워 먹는 것도 정겹고 좋았다.

윤정신이 마지막 고기를 가위로 썰며 슬쩍 메뉴판을 보았다.

“주문 더 해야 할 것 같은데. 뭐 더 먹을래?”

“양념 갈비 시키자.”

“우기 버섯 잘 먹네. 이것도 더 달라고 해야겠다.”

윤정신이 추가로 주문을 하고, 내가 마실 몫으로 맥주도 시켜 주었다.

“어우, 일하다 와서 그런지 더 맛있네. 소주가 달다.”

“형, 그거 안 좋은 거래.”

“그래? 안 좋은 거야? 그럼 네가 한잔할래?”

“난 소주 별로 안 좋아해.”

“그럼 맥주 한잔. 짠!”

나는 그의 건배 제의에 응했다. 둘이서만 하면 섭섭하니까 서진의 잔에도 가볍게 잔을 가져다 댔다.

나는 중간중간 고기를 구우며 정신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윤정신의 입에 고기를 넣어 주었다. 윤정신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술잔을 비우던 서진이,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다가 피식 웃었다.

“너희 염장 지르려고 불렀지?”

“그러는 너는 나 짜증 나게 하려고 왔지?”

“그렇다면 어쩔래?”

모이니까 좋은데 뭘. 나만 좋은 건가? 나는 티격태격하는 그들을 보며 조용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신년 이벤트2 : 새해에도 혜택이 팡! 기쁨도 팡! PC방으로 드루와 드루와! 새해 복(福) 가~득 PC방 코인 샵 개점!>

꼬꼬댁~! 새해가 밝았어요! 이번 해도 저스티스와 함께 즐거운 모험을 즐겨 주실 용사님들께 드리는 두 번째 새해 이벤트!

STEP 1! 프리미엄 PC방에서 저스티스에 접속하면, 접속 시간에 따라 푸짐한 보상이!?

(PC방에서 접속 시, PC방 전용 타이머 창이 활성화됩니다.)

TODAY: 30분, 60분, 100분 달성 시 단계 보상 지급

TOTAL: 10시간, 30시간, 50시간 달성 시 단계 보상 지급

⚫누적 시간은 하루 최대 10시간까지 쌓을 수 있습니다.

STEP 2! 내 출석부는 소중하니까~ 이번엔 두 배!?

출석 일수 1/3/5/10일 달성 시 단계 보상 지급

100분 이상 접속 1/3/5/10일 달성 시 단계 보상 지급 

⚫해당 이벤트 페이지의 하단에서 수령 가능합니다.

STEP 3! 늘 똑같은 맵, 지겨워T.T 이럴 땐 PC방 이벤트 필드에서 아르바이트를!

PC방에서만 이동할 수 있는 이벤트 필드가 활성화됩니다. 각 마을에 생성된 이벤트 NPC ‘울지 않는 닭’을 통해 파티 상태로 입장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복주머니 도둑] 몬스터를 잡을 시, 몬스터가 확률적으로 PC방 코인을 떨어뜨립니다…….(후략)

나의 생일과 크리스마스가 연달아 지나고, ‘해가 바뀌기 전에 얼굴 한번 보자’ 모임을 여러 곳 바쁘게 나가다 보니 어느덧 새해가 밝았다.

연말에는 정신없을 정도로 바빴던 것 같은데, 연초는 꽤 한가했다. 요즘 신년 이벤트로 피시방 코인 상점이 열려 있어서, 윤정신과 거의 매일 피시방에 가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코인은 피시방 접속 시간에 따른 보상으로 획득하거나, 피시방에서만 입장할 수 있는 이벤트용 필드에서의 몬스터 드랍 아이템으로 획득할 수 있었다. 코인 상점에 내가 가지고 싶었던 아이템의 교환권이 있어서 열심히 참여하는 중이었다.

이벤트 필드가 꽤 넓은 편이라서, 윤정신과 구역을 반씩 나누고 각자 코인을 모으기로 했다. 다행히 공용 필드가 아니라 파티로 입장을 신청하면 딱 파티원들만 사용할 수 있는 구조였다. 밤을 모을 때처럼 스틸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아니, 형.”

“응?”

“음산 쓰지 마, 구역 넘어오잖아.”

[음산]은 혼령술사 스킬로 조그만 영혼들이 맵 곳곳으로 흩어지며 유도탄처럼 몬스터를 죽이고 다니는 광범위 공격기였다. 저딴 걸 왜 자꾸 구역 경계에서 쓰는 건지.

윤정신이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계속 몬스터를 잡았다. 이번에는 자기한테 필요한 신발이 코인 숍에 있다며 제법 열심히 참여하고 있었다.

한참 눈알이 빠질 정도로 몬스터를 잡다가 8시간이 흘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하루 최대 누적 시간인 10시간을 찍기로 하고 남은 2시간 동안은 쉬기로 했다.

윤정신은 피곤했는지 엎드려서 잠을 청했고, 나는 잠깐 일어나 스트레칭을 했다. 종일 피시방에 앉아 있었더니 온몸이 뻐근하고 피곤했다. 내일부터는 적당히 코인 털고 빠지든가 해야지…….

길드 룸으로 향하니 우리와 같은 피시방 접속 이벤트의 노예들이 잠수하고 있는 게 보였다. 살아 있는 사람은 뭐, 언제나 특정인들뿐이다.

도전 정신이 뛰어난 심현지는 올해에는 나를 누르고 오목 챔피언이 되겠다며 나에게 오목 대결을 신청했다. 길드 룸에서는 미니 게임이 불가능해서 함께 마을로 나왔다.

지는 사람이 신년에는 달라지겠다는 마음으로 닉네임 변경을 하기로 하며 게임이 시작됐는데, 당연하지만 내가 이겼다. 저렇게 허무하게 질 거면 대체 왜 하자고 한 걸까? 사실 닉네임 바꾸고 싶었던 거 아니야?

결국, 심현지는 내가 골라 준 닉네임을 하게 되었는데…….

[청혼의발톱때> 아 시]

[청혼의발톱때> 발 ㅡㅡ]

[청혼> ??????]

[청혼> 설마]

[청혼의발톱때> 아 ㅅㅂ 좆됐다]

설마 쟤 원래 닉네임 못 먹은 거야? 투컴 해서 부캐로 먹는다 했는데. 심현지에게서 대화방 초대 메시지가 왔고, 나는 그것을 곧장 수락했다.

<‘청혼’ 님이 대화에 참여합니다.>

[청혼: 뭔데?]

[청혼의발톱때: 아 돌았네 진심 ㅡㅡ]

[청혼의발톱때: 등가교환 실화?????????]

[청혼의발톱때: 이 거지 같은 닉vs내 씹레어닉]

[청혼의발톱때: 와 ㅆㅂ 이딴 닉 얻고 현지 잃은 거 실화냐 다른 거면 이렇게 좆빡치진 않았을 거 같은데]

[청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 그사이에 그게 먹히네]

마을에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전체 채팅으로 잠깐 닉네임 변경 이야기를, 정말 말 그대로 잠깐 했는데…….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가 [현지] 닉네임을 선점한 모양이었다.

[청혼: 귓말 해봤어?]

[청혼의발톱때: 받겠냐]

[청혼의발톱때: 야 나 진짜 겜 접고 싶음 지금]

[청혼: 안 돼]

[청혼: ㄱㄷ려바 나도 귓말 해볼게]

나는 대화 창을 잠시 접어 두고 현지의 닉네임으로 귓속말을 보내 보았다.

[청혼> .]

귓말 가지는데? 쟨 해 보지도 않고.

[현지> ?]

[청혼> 그 닉 어케 먹었어요?]

[현지> 닉 주인임?]

[현지> 20 이상 ㅍ]

와, 얘 작정하고 먹은 거네.

나는 바로 심현지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청혼: ㅋㅋㅋㅋㅋ 야 20 이상 판대]

[청혼의발톱때: 엥 제건데요;;;]

[청혼의발톱때: 12만원에 산 건데 ㅋㅋㅋㅋ 와중에 불리네]

[청혼의발톱때: 저주인형 사러 간다 어떤 새끼냐]

[청혼의발톱때: 아 닉네임 이따구여서 따져도 가오 안 살잖아]

[청혼의발톱때: 짜증나 ㅅㅂ 나 진짜 접을래 존나 현타 와]

[청혼: 야 진정하셈...]

[청혼: 형한테 부탁해볼까?]

[청혼의발톱때: 뭐라고]

[청혼: 유×브 박제하면 좀 낫지 않아?]

[청혼의발톱때: 화 나서 더 안 주면 어케 ㅠ]

[청혼의발톱때: 아 개짜증나ㅠㅠㅠㅠㅠ]

[청혼의발톱때: 닉변빵 또 하면 인간 아니다]

[청혼: ㅋㅋㅋ 왜 그 닉 소중함?;;]

[청혼: 윤정신 아니면 아무도 탐 안 내]

[청혼의발톱때: 내 닉 찾는다는 전제 하에 ㅎㅎ]

[청혼의발톱때: 그 오빠한테 20에 이 닉 팔고 현지 20에 사 올까??]

저게 누구한테 바가지를 씌우려고…….

그나저나, 작정하고 먹은 거면 닉네임 찾기 어려울 것 같은데. 하지만 포기하자니 상대가 좀 괘씸하고…….

나는 다시 그 사람에게 귓속말을 보내 보았다.

[청혼> 님]

[현지> ?]

[청혼> 닉네임 돌려주면 안 돼요?]

[현지> 내가 먹은 건데 ㅋㅋ 먼 돌려 달라 말라]

[현지> 닉네임이 니 거임? 지리겟네 ㅋㅋ]

[청혼> 안 주면 안 주는 거지 말을 좆싸가지 없게 하시네]

[청혼> 그거 팔아서 인성 계발 책이나 사라 그지 새끼야]

[현지> 응 꽁돈 개꿀~~]

[청혼> ㅇㅋㅋ]

괜히 스트레스만 받았다. 아무래도 난 도움 주긴 그른 것 같고…….

[청혼: 야 나 다시 말 걸어 봤는데]

[청혼의발톱때: ㅇㅇ]

[청혼: 발렸어 그리고 걔 괜히 화 나게 함 ㅈㅅ]

[청혼의발톱때: 아ㅡㅡ]

[청혼의발톱때: ㄱㄷ 나 대화 해 볼게]

<‘청혼의발톱때’ 님이 대화에서 퇴장합니다.>

현지가 대화방을 나갔고, 나는 도움을 구할 만한 사람이 있나 생각해 보았다.

[으앙: 룰 루 랄 라~^0^]

[버찌: ㅋㅋㅋ 뭐가 그렇게 신나]

[으앙: 앗 ㅋㅋㅋ 업 했어요 하항]

버찌? 왠지 그라면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친창으로 서진에게 말을 걸었다.

[청혼: 버찌]

[버찌: 이리로 워프 올래?]

[버찌: 응??]

[청혼: 대화 가능?]

[버찌: 왜?]

[청혼: 현지한테 끔찍한 일 생김]

[버찌: 어... 난 왜 교훈으로 남겨 두고 싶지...ㅋㅋㅋ]

[버찌: 무슨 일인데?]

[으앙: 헐 현지 님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청혼: 일단 초메 받아 봐]

왠지는 모르겠지만 저 두 사람 요즘 세트로 붙어 다니니까 으앙 님도 함께 초대했다. 심현지는 아직도 걔랑 싸우고 있으려나? 나는 일단 초대 메시지를 보내고, 그들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버찌: 아하...]

[으앙: 헐 어떡해요?? 돈 주고 사신 거 아니에요?]

[청혼: 12만원 주고 샀다던데 ㅋㅋㅋ]

[버찌: 그럼 이제 32만원인가]

[청혼: ㄷㄷ... 뭔 무서운 소리를 하는 거임]

[으앙: 형도 누군지 못 찾아요??]

[으앙: 알아 낼 수 있는 방법 없나...]

[으앙: 어... 제가 설득해 볼까요?ㅠ 불쌍한 척 연기해서]

[청혼: ㄴㄴ... 님은 일단 진정해 봐요]

으앙 님은 도리어 사기당하고 올 것 같다. 패스. 그나저나 서진이 형이 생각보다 시큰둥하네. 역시 윤정신한테 부탁해야 하나?

[으앙: ㅠㅠ 어떡해요 20만원... 너무 비싼데]

[으앙: 기부 좀 해 드릴까요...? 제가 다 속상ㅠㅠ]

[버찌: 보니까 아는 앤데]

[버찌: 원래 어그로 좀 심하거든]

[버찌: 잘못 걸렸네]

나는 그 말에 눈이 번뜩 뜨였다. 와, 뭐지. 어떻게 알아낸 거야?

[청혼: 와 어떻게 알아냈어?]

[버찌: 음]

[버찌: 계정 고유 번호 같은 게 있는데]

[버찌: 저런 애들은 번호 따 놓거든]

[버찌: 찾아보니까 걔 계정이어서]

[으앙: 와 대박 ㄷㄷ... 역시 형... 왠지 찾으실 것 같았어요 진짜 대박ㅋㅋ]

[버찌: ㅎㅎ... 뭐 어떻게 도와줄까]

[버찌: 나 8시에는 꺼야 하는데]

[청혼: 잠시만]

나는 바로 심현지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청혼> 야 버찌가 그 사람 누군지 안대]

[청혼의발톱때> 니 머리카락 다 뽑은 다음에 목공풀로 다시 심어 줄 거임 한 올 한 올 아주 간지럽게]

[청혼> ㅋㅋㅋㅋㅋ 예???]

[청혼의발톱때> 아 뭐야]

[청혼의발톱때> 아오 망겜 진짜 귓말 시스템 개선 좀 해라 뜯어버릴라 맨날 잘못 가]

[청혼의발톱때> ㅁㅊ 안다고? 저 새끼랑 현피 뜬다 버찌 어디 있어]

[청혼> 초메 받아 봐]

곧 분노한 상태의 현지가 대화방에 입장했다.

<‘청혼의발톱때’ 님이 대화에 참여합니다.>

[청혼의발톱때: 이 씨발]

[버찌: ;;;]

[청혼의발톱때: 저 지금 극대노 상태]

[청혼의발톱때: 저 새끼 주소 빨리 알려 주셈 현기증 나요]

[버찌: 당연히 주소는 모르고]

[버찌: 번호는 알아요]

[청혼: ㅋㅋㅋ 형 무섭다 진짜]

[청혼: 대체 그걸 왜...? 어떻게 아는 거야]

[버찌: 좀 그럴 일이 있었어]

[버찌: ㅋㅋㅋ 그냥 우연히 아는 거야... 나도 좀 안 좋게 엮인 적이 있어서]

[버찌: 다행히 원만하게 해결을 보긴 했는데]

[으앙: 막 깡패 같은 사람이면 어떻게 해요...]

[청혼의발톱때: 상관 없어요ㅡㅡ]

[버찌: 그렇지는 않은데 직접 만나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고]

[버찌: 그냥 제가 대신 전화해 볼게요 잠시만요]

그리고 잠시 후, 정말로 그 자식이 먼저 귓말을 보내서 닉네임을 돌려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현지는 다행히 자신의 닉네임을 되찾을 수 있었다.

[현지: 하 씨발 ㅠ]

[현지: 다신 이딴 거 안 해]

[현지: 버찌 사마 집 어느 방향이신지... 매일 절 하게요;;]

[버찌: ㅋㅋㅋ 무슨 내가 메카도 아니고...]

[버찌: 됐어요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버찌: 고마우면 이제 장난은 적당히 ^^]

[현지: 네ㅠㅠ]

[으앙: ㅠㅠ 다행이에요]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 * *

“음?”

<‘반휘혈’ 님이 친구를 요청합니다.>

누구지? 나는 친구 신청을 거절하고 막 화장실에 갔다 돌아온 윤정신에게 어제 있었던 일들을 가볍게 이야기해 주었다.

“현지 걔가 못되게 사니까 적이 많아서 그래. 뭐 좀 먹을래?”

“나 떡 라면. 근데 진짜 신기하지 않아? 어떻게 그걸 찾지? 전화로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바로 돌려주더라니까.”

“변호사 불렀나 보지. 빨리 19채 자시로 와 봐.”

“잠시만.”

자시, 자시……. 포탈로 향하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아까 친구 요청을 거절한 사람에게서 귓말이 도착했다.

[반휘혈> ?ㅋ 쫄?]

[반휘혈> 쫄앗냐 ㅋㅋ 아 ㅋㅋ]

[청혼> ?]

뭐야?

스크롤을 올려 보니까 윤정신과 대화하는 동안 귓말이 몇 개 도착해 있었다.

[반휘혈> 야 ㅋ 하... 씨발ㅋ]

[반휘혈> 이르니까 좋냐? ㅋㅋㅋ]

[반휘혈> 니 땜에 엄마한테 연락 가서]

[반휘혈> 혼낫는데 ㅋㅋ 좋냐??]

[반휘혈> 비겁한 넘]

[반휘혈> 닉네임 자기가 못 먹어놓고ㄷㄷ 엄마한테 이르는 클라스 지리구요~~;]

[반휘혈> 인성 오졋죠?ㅋㅋㅋ]

[반휘혈> ㅅㅂ 형 빡쳐서 담배 말고 온다 기다려라]

[반휘혈> 시발 피우고 왓다 찐따쉐키야 ㅋ]

그리고 지금의 상황이 된 것이었다.

누군가 했더니 그때 그 닉네임 훔쳐 갔던 걔였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청혼> 혹시 정신 연령 초등학생?ㅋㅋㅋ]

[청혼> 구몬이나 해라]

[반휘혈> 야 전번 까봐]

[반휘혈> 너 몇 살이냐? 하... 성질 건드네 ㅋ]

[청혼> ㅈㄹ한다]

내가 채팅을 치느라 약속한 장소로 계속 오지 않자, 윤정신이 답답하다는 듯 내 화면을 보았다.

“왜 안 와? 자시 오라니까.”

“잠시만. 누가 귓말로 자꾸 욕을 해서.”

“뭐? 누가?”

그 말에 윤정신이 심각한 표정으로 마우스를 뺏어 내 채팅 창을 올려 보다가 미묘한 표정으로 제자리로 돌아갔다.

“……초등학생이랑 싸웠어?”

“아니. 아까 말한 걔 같은데. 서진이 형이 처리해 줬다던…….”

“아아. 그래서 닉네임 어쩌고 한 거구나. 야, 그러면 이서진이 얘 엄마한테 전화를 한 거냐? 미친 놈.”

윤정신이 우습다는 듯 낄낄 웃어 댔다.

아아, 그런 건가? 나는 또 무슨 소리를 하나 했네. 그냥 엄마한테 혼나서 흥분한 초등학생이었다.

“우기야. 초딩이랑 진지하게 싸우면 안 돼. 아직 아가들이잖아.”

“안 싸웠는데? 일방적으로 욕 오는 거야.”

“형이 성숙한 대응이 뭔지 알려 줄게.”

뭐든 부모님께 이르는 것만 하겠느냐만은. 근데 정말 초등학생인가?

[청혼> 너 몇 살이냐]

[반휘혈> 18살이다 개~~~~븅~~쉐~끼야]

[반휘혈> 닌 몇 학년인데 깝치냐?]

[청혼> ㄷㄷ ㅋ 초3요]

[청혼> 봐주세요 형님]

우리나라의 미래가 어둡구나……. 경이로운 지능 수준인데. 아무튼, 초등학생은 아니라는 건가?

“형. 초등학생 아니고 자기 18살이라는데?”

“너 걔한테 대답해 주지 마, 이제. 닉네임이 뭐라고?”

“반휘…… 휘혈. 왜 이렇게 어려워, 발음이.”

윤정신이 성숙한 대처를 재차 강조하며 반휘혈과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나는 마침 도착한 떡 라면을 한참 열심히 먹다가, 대화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지는 것 같아서 그의 화면을 확인하려 했다.

“……우기야, 가서 음료수 한 캔만 사 올래?”

“응? 알았어.”

뭐 하는 거지? 음료수를 사 와서 건네자, 윤정신이 숨을 고르며 벌컥벌컥 음료수를 들이켰다.

“왜 그래?”

“아냐, 아냐.”

“뭐 해? 나 자시 왔는데.”

“아니야. 잠깐 너 할 거 하고 있어 봐.”

이거 왠지 딱 보아하니…….

그의 화면을 보자 반휘혈과 나누고 있는 육두문자 섞인 수많은 귓속말이 보였다. 키배 뜨고 있었네. 그러면 그렇지…….

“성숙하게 대처하겠다며? 뭘 상대해 주고 있어, 그냥 무시하지.”

“이 새끼 오늘도 엄마한테 혼나 봐야 정신을 차리지. 가만 안 둔다, 내가.”

윤정신이 분을 참지 못하며 이를 갈았다. 나는 애써 그를 말린 뒤, 일단은 반휘혈 캐릭터를 차단하는 방법으로 회피를 했다. 했는데……. 이상하게 불안하단 말이지.

윤정신에게서 아이템 발생률 상승 포션을 건네받고 슬슬 이벤트 필드로 가 볼까 하는데, 갑자기 길드 채팅 채팅이 어수선해졌다.

{유징: ?}

{유징: 야 ㅋ 청혼 너 먼짓했늬 ㅋㅋㅋㅋㅋㅋㅋ}

{BOBI: ?????}

{유징: ㅋㅋㅋㅋ이제 하다하다 저런 무서운 사람이랑도 싸우는 거야? ? ?}

뭐지, 이 반응은?

불안한 마음으로 채팅 창을 올려 보니, 역시는 역시였다. 메가폰에 내 닉네임이 올라와 있었다.

[반휘혈: 청혼<쫄튀 ㅋㅋㅋㅋ 쫄리면 자꾸 친구 부르는 찐다 ㅋㅋㅉㅉ]

[반휘혈: 청혼<전번 까라니까 아무 말도 못함 ㅋㅋ쫄아서 ㅋㅋ글고 얘 초딩 3학년;; 으]

{유징: 호니 너... 초등학생이었니?ㅋ}

{유징: 내가 한 살까진 이해해 줬는데 ㅋ 최대 6학년이라고 쳐 줘도 몇 살 차이냐??}

{유징: 도저히 못참겟따 ㅋ~! 이제부터 공손히 누나라고 부르도록 하렴^^}

{유징: 라떼는 말이야...~ㅋ 어딜 핏덩이가... 건방지게...ㅋ}

{토라: 우기가 아메리칸 스타일이라 그래ㅡㅡ}

{토라: 이 핏덩이야}

{유징: 이보쇼... 스트리머 양반ㅋ 잘 모르나 본데 지랄도 그 정도면 범죄로 성립 된다~!~!}

{청혼: 아 쟤 뭐임}

{청혼: 쟤가 걔임 심현지 닉 강탈했던 애}

{현지: 헐 시발 누구ㅡㅡ}

{현지: 김창정부띠끄<얘임?}

{청혼: 아니 반휘혈이라는 닉네임이던데}

{현지: 헐 썅놈ㅋ 넌 뒤짐}

{현지: ㅋㅋㅋㅋㅋ야 근데 니 좆 된 듯}

이번엔 또 왜…….

[류진아S2: 청혼이라는 사람 조심하세요 비매너입니다 스틸 당햇어요]

[건들면삭전: 누가 휘혈이 형 건드림?ㅋ 정신 나갓나 ㅋㅋ]

“아, 형. 뭐라고 한 거야. 얘네 더 화났잖아!”

“뭐라고 하는데?”

윤정신이 인상을 찌푸리며 메가폰을 확인하더니, 조용히 분노의 채팅을 치기 시작했다.

[토라: 유언비어 퍼뜨리지 마세요 ㅋㅋ 청혼 비매 아닙니다]

[정즨: 헐 토라다]

[토라: 다 캡처 했고 신고할게요 보시는 분들도 신고 한 번씩만 넣어 주세요 부탁합니다]

[현지: 야 반휘혈 이 xx놈아 내 전화 받아라]

[반휘혈: ^^ 엄마 폰에서 니 번호 차단함 ㅗ 비겁한 넘들 ㅋㅋㅋ사생활치매로 고소할라다가 참는다 ㅉㅉ]

근데 생각해 보니까 어이없네? 내 닉네임이 털린 것도 아니었고, 해결한 것도 나 아닌데 왜 나한테만 난리야. 갑자기 억울했다.

“쟤 나한테 왜 저래.”

“야, 야. 상대하지 마. 괜찮아.”

결국, 무시하고 윤정신과 이벤트 필드에서 사냥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문득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나는 움칠 몸을 떨며 뒤를 돌아보았다.

“……어?”

“멀리서 보고 혹시 했는데 진짜 우기 맞네.”

서진의 목소리를 듣고 윤정신도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윤정신이 얼떨떨한 얼굴로 서진을 올려다보았다.

“뭐냐?”

“이벤트 하려고 왔는데.”

이런 데서 만나다니. 엄청난 우연 아닌가? 일행이 있었는지, 내 또래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그에게 말을 하며 안쪽으로 사라졌다.

“형. 저 자리 잡고 있을게요.”

“응.”

“이서진 너 왜 여기 있어?”

윤정신이 이해 안 된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서진이 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심상하게 답했다.

“그야, 너랑 나랑 같이 오던 곳이니까? 내가 올 법도 하지. 나야말로 묻고 싶은데.”

“누구랑 왔냐? 같이해, 옆에 비는데.”

“너 같으면 네 옆에서 하겠어? 또 무슨 악담을 들으려고. 아무튼, 신기하네. 난 그럼 가 볼게.”

서진이 빙그레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하긴, 같이 온 사람도 있는데 우리랑 있으면 괜히 민망하겠지. 나는 대충 인사를 해 두고 막간을 활용해 코인이 얼마나 모였는지 확인해 보았다. 아직 멀었네……. 잠깐 쉬기로 윤정신과 합의를 보고 이벤트 필드를 나왔다.

<‘으앙’ 님께서 로그인하셨습니다.>

<‘버찌’ 님께서 로그인하셨습니다.>

[청혼: ㅎㅇ]

어떻게 둘이 같이 오지? 어느 날부터인가 둘이 자꾸 붙어 다니는데, 저렇게 친했던가.

[청혼: 둘이 짜고 들어오는 거임?]

[청혼: 어떻게 같이 옴]

[으앙: 혼하~~]

[으앙: 엥 아니요 같이 있어요 ㅋㅋㅋㅋㅋ]

[으앙: 이벤트 하러 피씨방 간다니까 같이 가자고 하셔서]

[청혼: ????]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까 서진이 사라졌던 방향으로 향했다. 익숙한 목소리가 조곤조곤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이 들렸다.

“그러니까 스킬은 이거 올리고…….”

“형!”

서진과 옆에 앉아 있던 남자가 동시에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그 남자를 가리키며 반갑게 아는 척을 했다.

“으앙 님?”

“……네?”

“맞죠? 나, 나 청혼인데.”

주변에 들리면 창피할 것 같아서 소곤소곤 이야기하자, 그도 화들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네? 정말요?”

“우와, 같이 있대서 혹시 했는데. 형은 왜 말을 안 해?”

“깜빡했네.”

서진이 나의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피웠다.

으앙 님이 작게 박수를 치며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옆자리로 갈걸. 저는 그냥 형 친구분인 줄 알고……. 자리 옮길까요?”

“귀찮게 굳이 뭘…….”

“제 옆에 있던 사람은 토라였는데. 얼굴 못 봤어요?”

“아, 헐. 그랬구나. 왜 못 봤지?”

결국, 으앙 님과 서진이 자리를 옮겨서 넷이서 나란히 한 줄에 앉게 되었다. 윤정신은 뭘 하는지 무언가에 빠져선 성의 없게 인사를 건네고 모니터에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나는 현지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청혼> 야 나 으앙 님 만남;;]

[현지> ??ㅋㅋㅋㅋㅋ 설마 토라 오빠 때문?]

[현지> 그걸 찾아가나ㄷㄷ 으앙쓰 의외로 저돌적ㅋ]

[청혼> 뭔 개소리? 버찌 만났는데 우연히 같이 있더라 ㅋㅋ 개신기]

[현지> 아 나는 토라 오빠 메가폰 때문인 줄]

[청혼> 웬 메가폰]

[현지> 너 못 봄?ㅋㅋㅋㅋㅋ 아까 걔네랑 싸우다 빡쳐서 피씨방 알려 주고 오라고 했음]

[현지> 그 오빠 메가폰 모자란지 지금 조용하던데]

[현지> 현질 못 하게 막으삼;;]

아니, 무시하자니까…….

나는 그 말을 듣고 불안해져서 윤정신이 뭘 하고 있나 확인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핸드폰으로 인증 번호를 받고 있었다.

“뭐 해, 그거 이리 내.”

“잠깐만. 나 뭐 살 게 있어서 그래.”

“사지 마. 형, 메가폰 사려고 그러지? 나한테 뭐라 뭐라 하더니 자기가 더 하네. 초등학생이랑 진심으로 맞짱을 떠, 왜?”

“아니, 나 진심 아니야. 나 하나도 안 진심이야. 그냥 훈계 좀 하려는 거야.”

나는 억지로 그의 손에서 핸드폰을 뺏고 내 바지 주머니에 넣어 버렸다. 윤정신이 잠깐 화를 삭이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진의 자리로 갔다.

“야, 너 그 번호 내놔 봐.”

“무슨 번호?”

“어제 현지 닉네임 가져갔었다는 애 엄마 번호! 있잖아, 너.”

“그걸 네가 왜?”

“안 되겠어. 저 새끼 다시는 게임 못하게 혼쭐 내 줘야지.”

“그런 걸 어떻게 알려 줘. 어지간한 일 아니면 네가 참아.”

“무슨 일 있어요?”

으앙 님이 어리둥절한 눈치로 나를 보았다. 내가 대충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자,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탄식했다.

“독하네요, 정말. 그 사람 근데, 어제 형이 처리했었잖아요?”

“쟤랑 해결을 본 게 아니고 쟤 엄마한테 전화했나 보던데요. 자꾸 왜 일렀느냐 어쨌냐 하는 거 보니까.”

“우와. 형, 무섭네요……. 그걸 본인도 아니고 가족한테…….”

으앙 님이 얼떨떨하게 말했다.

서진이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어린애라서……. 돈 관련된 문제라 그리로 연락했어서 그런 거야. 쟤 번호는 몰라.”

“몇 살인데요?”

“그때 초등학생이었으니까 지금은 아마 중학생……?”

“그리고 그 중학생 상대로 진심으로 싸우고 있는 2학년 8반 윤정신?”

“진심 아니라니까.”

윤정신이 툴툴거리며 조용히 자리로 돌아갔다. 서진이 심상하게 채팅을 조금 살피는 것 같더니, 불쑥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김현수? 게임 중이야? 잠깐 채팅 좀 봐. 그건 이따 먹고…….”

그리고 조금 뒤, 이벤트 필드에 다시 입장해서 열심히 피시방 코인을 모으는데 [노이지 메가폰]이 연달아 터지며 채팅 창이 도배되기 시작했다.

[신랑탈: 반휘혈<<< 전설의 일진 짱 ㄷㄷ 패드립 하네ㅋㅋ 사기 치고 경찰서 불려 와서 울어 놓고 아직도 정신 못 차리는 초딩 일진 처형함]

일반 메가폰은 캐시 확률성 상자 등에서 잡템으로 드랍 되는데, 저 [노이지 메가폰]은 캐시 숍에서 사는 방법으로만 얻을 수 있어서 어지간한 호갱이 아니면 잘 쓰지 않는 아이템이었다. 일반 메가폰보다 색이 튀고 글씨가 크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기망: ㄷㄷ... 뭔데 들어오자마자}

{기망: 우리 섭 쌈 났냐}

{현지: 니 형이 깝치다가 싸맞는 중}

{기망: ??? 나 외동인디}

{기망: 와 ㅋㅋㅋ 노이지 오랜만에 보네 저 돈으로 주문서 사지 ㅉ...}

{BOBI: 망아 그 소리 안 지겹니;}

{나도: 아까 청혼 욕하던 애 아니야?}

{청혼: ㅇㅇ... 맞는데}

무슨 일이지.

윤정신도 그것을 보았는지 옆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야, 이거 킹이냐? 진지한 거 봐. 완전 화났네, 얘.”

“걔 아니면 누가 그런 유치한 짓을 해. 이제 이 얘기 그만해도 되는 거지?”

나는 새삼 서진이 무서워졌다. 저 형이랑은 웬만하면 척지지 말아야지……. 굉장히 지능적으로 싸운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부들부들 떨며 노이지 메가폰을 사 온 반휘혈이 신랑탈의 공격에 대응을 나섰고, 외치기로 피 튀기는 싸움이 이어졌다. 그들의 치열한 전쟁은, 반휘혈이 셧다운제로 인해 튕기면서 조용히 마무리가 되었다.

허무한 끝이었다.

* * *

“만난 것도 신기한데, 뭐 먹으러 갈까요?”

“헉, 좋아요!”

으앙 님이 성인이 되었다는 것을 명목 삼아, 피시방을 나오고 나서는 넷이 모여서 술을 마셨다.

가볍게 한잔한 뒤 해산을 하고 윤정신과 둘이서 우리 집으로 가는 길에 그가 골목으로 뛰어 들어가 전을 부쳤다. 좀 과하게 마신다 싶더니…….

결국, 우리는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들고 근처의 한적한 놀이터에서 취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쉬어 가기로 했다.

낮에는 여기도 아이들이 많겠지? 지금은 밤바람에 차갑게 식은 철과 나무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그네에 앉아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며 손에 들린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의 시선은 어디에 가 있었을까? 나는 놀이터 입구 앞 골목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 우기야. 저거 봐.”

“뭐?”

“낙서. 서진 하트 민주래.”

윤정신이 키득거리며 낮은 담에 꽤 크게 쓰인 낙서를 가리켰다. 이름 가지고 놀리는 게 제일 유치하다던데.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여기 하교할 때 늘 지나오던 길인데……. 실은 늘 이렇게 평화로웠던 걸까? 나의 나쁜 기억과 결부되어 늘 섬뜩하게만 느껴졌던 곳이 오늘은 퍽 정겹게 느껴졌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웠던 감정 이입이라는 것이 문득 떠올랐다. 중학교 때였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장소는 늘 이렇게 평화로웠던 거다. 그 객관적인 것에 나의 감정이 묻었을 뿐. 여기 이 그네에, 윤정신이 이렇게 앉아 웃는 모습을 상상하면 왠지 나 혼자 이곳을 지나가도 더는 무섭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취해서 눈이 풀린 채 제목 모를 노래를 신나게 부르고 있는 윤정신을 보며 생각했다.

정말이지, 무드라는 게 없다니까. 게임에서 만나 얼굴도 모르던 사람한테 막무가내로 들이대는 윤정신이나, 구질구질한 나나. 어디 가서 우리 연애담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겠는가? ‘인터넷에서 만났어요.’ 그런 소리는 또 어떻게 하고.

윤정신이 3일만 사귀어 달라고 조른 거나, 그걸 또 받아 준 나나, 그가 자연스럽게 즐기는 품격 있는 문화생활에 늘 미숙했던 나의 모습들이나, 못 먹겠으면 그렇다고 말하면 되지 나한테 맞춰 꾸역꾸역 순대 먹다가 토했던 윤정신이나……. 이런 얘기를 어딜 가서 할 수 있을까? 굳이 얘기하고 싶지 않은 맨얼굴 같은 기억이 많았다.

그런데, 지나온 기억이라 미화가 돼서 그런지, 그런 것들마저 다 추억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추억처럼 남았다, 내 안에. 어쩌면 지금 속을 진정시키려 쭈쭈바를 열심히 빨고 있는 저 남자의 모습도 훗날에 소중한 추억이 되지 않을까.

다들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 이런 날것 그대로인 삶에서 예쁜 부분만 예쁘게 포착해 SNS 같은 곳에 올리면 남들이 보기엔 마냥 아름다운 것처럼 보일까?

어쩌면 SNS는 시간을 앞당겨 주는 타임머신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우리 안에는 저마다 SNS가 하나씩 있어서 추억이라는 피드가 만들어지는 거다.

사실은 좀 구질구질했던 것도 정방형으로, 잘 나온 사진을 골라 예쁜 필터를 씌우면 그럴싸해지니까. 기억이 추억으로 변하는 미화 과정을 미리 수행해 주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꾸벅꾸벅 졸고 있는 윤정신의 얼굴과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아이스크림을 조용히 눈이라는 렌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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