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1/18)

10.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 나는 대충 밥을 챙겨 먹고 게임을 켰다.

공동의 관심사가 있다는 것은 이런 점에서 좋다. 특히 떨어져 있어도 만날 수 있는 게임이라면. 나는 윤정신이 접속하길 기다리며 평소처럼 캐릭터를 의자에 앉혀 놓고 친구들과 채팅을 하고 있었다.

<‘강감찬’ 님이 ‘청혼’ 님의 호감도를 내리셨습니다.>

나는 채팅들 사이로 스치듯 본 알림을 놓치지 않고 스크롤을 올려 다시 그것을 읽었다. 설마, 올렸다는 걸 잘못 본 거겠지?

<‘강감찬창고1’ 님이 ‘청혼’ 님의 호감도를 내리셨습니다.>

[청혼: 뭐야]

[청혼: 강감찬 미친 새끼야]

[현지: 미친 건 너 아니냐...?]

[보보: 애국심이 하늘을 찌르네; 왜 그러고 살아]

[청혼: 아니 ㅅㅂ;;; 닉네임이 강감찬임]

강감찬창고1 캐릭터가 사라진다 싶더니, 얼마 후 강감찬창고2 캐릭터가 필드에 나타났다. 나는 곧장 로그아웃을 해 버렸다. 캐릭터가 눈앞에 보이는 상태에서만 호감도를 올리고 내릴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을 진정시키고 부캐로 다시 그 장소에 갔다. 그놈이 도망갔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그놈은 친구들의 추궁을 받으며 아직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강감찬창고2: 장난 아닌데요]

[강감찬창고2: 저런 코알못 보고 내리라고 있는 시스템인데 뭐가 잘못 됐죠?]

[현지: ㅋㅋㅋㅋㅋㅋㅋ고거슨 ㅇㅈ이지만]

[기망: 최우기 머리털 서는 소리 들림]

[기망: 걔 자존심 아니냐? 맨날 스펙업 안 하고 그것만 하는데]

[쥬아: 호니 호감도 돈 주고 사는 아인데 ㅋㅋㅋㅋㅋㅋㅋ]

[현지: 지금 눈 시뻘개져서 부캐로 뛰어오는 중]

[보보: 야 진짜 왔다]

뭐? 코알못? 정말 기가 찼다.

[청혼검사캐: 저건 개소리도 아니고]

[청혼검사캐: 이라와디 돌고래 고주파음 급]

[강감찬창고2: 말하는 게 참 ㅎ]

[청혼검사캐: 곱게 나가게 생겼나ㅡㅡ 다시 올리라고요 호감도]

[강감찬창고2: 싫은데요? 제가 불법 행위 한 것도 아니고 잇는 기능 쓴 건데~]

[강감찬창고2: 호감도 얻고 싶으시면 코디 잘하든가요ㅎ]

[강감찬창고2: 캐릭터 성형 저딴 거 해 놓는 사람들 취존 불가ㅇㅂㅇ]

[청혼검사캐: 이게 뭐요?; 님이야 말로 키즈 민소매 개극혐임]

[청혼검사캐: 삼촌네 강아지가 그런 거 입고 있던데]

[청혼검사캐: 아니다 님은 어류엿죠 ㅋㅋ 돌고래]

화가 나서 쏘아붙이고 있는데, 눈치 없는 심현지가 태클을 걸었다.

[현지: ㄷㄷ... 개무식... 돌고래 포유류인데 ㅋㅋㅋㅋㅋㅋㅋ]

[현지: 상oJ는... 부레7r 없ㅇJ...]

[청혼검사캐: ㅡㅡ 닥쳐라]

[보보: ㅋㅋㅋㅋㅋㅋㅋ어류ㅋㅋㅋㅋㅋㅋㅋ]

[기망: 신기한 게 돌고래가 포유류인 건 모르면서 이라와디 돌고래라는 건 어떻게 아는데?;; 진짜 있는 거였네]

[현지: 어디서 주워들은 듯 ㅋ 아니면 본인이 어류(특: 포유류임)든지]

[강감찬창고2: 어휴...ㅋㅋ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호감도는 그냥 더 안 내리는 것에서 합의 보죠. 갑니다 이만]

[청혼검사캐: 아니]

돌아와!

친구들이 위로 차원에서 호감도를 복구해 주긴 했지만 이미 내 자존심은 너덜너덜해졌다.

생각할수록 화가 부글부글 끓었다. 강감찬이랑 싸우느라 윤정신이 접속한 것도 몰랐는데, 그에게서 귓속말이 와서 뒤늦게 알아챘다.

[토라> 자기얌 모햄]

[토라> 정시니 와떠염 뿌우]

[청혼> ㅡㅡ 어쩌라고]

[토라> ㅠ-ㅠ...]

[토라> 왜 또]

[청혼> 형 내 캐릭터 성형 이상함?]

[토라> ???? ㅋㅋㅋㅋㅋㅋㅋ]

윤정신이 나에게 대화방 초대 메시지를 보냈고, 나는 그것을 수락했다.

[토라: 흠]

흠?

흠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청혼: 아 뭔 흠이야]

[토라: 아니 넘 귀엽다고;;;]

[토라: 하려고 했는데]

[토라: 왜 이렇게 화 나 있음]

[청혼: ㅠㅠ 짜증나]

[청혼: 미안 짜증내서]

[토라: 솔직히 좀 빡쳤지만ㅋ]

[토라: ㄱㅊ^^ㅋㅋㅋㅋ 근데 그건 왜?]

[청혼: 누가 못생겼다고 함]

[토라: 누가;;]

[토라: 어차피 자기는 실제 얼굴이 잘생겼잖아]

[청혼: 그럼 내 캐릭터 얼굴은 못생겼다는 거임?]

집에 샌드백 같은 거라도 사 둬야 하나? 분을 풀 방법이 없다.

[토라: 아니...]

[토라: 나 너 화 풀리면 올까?]

[청혼: ㅇㅇ 나 지금 뭐든 뿌시고 싶음]

[토라: 근데 쟈기 캐릭터 귀여운데]

[토라: 걔가 뭘 모르네]

나는 반가운 소리에 울컥했다.

[청혼: 그치????]

[토라: 당연하지]

[청혼: 아 짜증나ㅠ 걔가 호감도 두 개나 내림]

[청혼: 저것도 더 내리려는 거 내가 피한 거;]

[청혼: 아 짜증나 완전 짜증나]

[청혼: 그리고 돌고래는 물에 사는데 왜 어류가 아니야 형]

[청혼: 그럼 육지에 살든가]

[청혼: 별스럽네 진짜 ㅅㅂ]

[토라: ㅋㅋㅋㅋ싸운 상대가 돌고래임?]

[토라: 최소한 인간일 줄... 자기야...]

[청혼: 아 ㅅㅂ 돌고래 얘기는 또 왜 해서 내가]

[청혼: 이게 다 나한테 포근 스웨터가 없어서임]

[청혼: 나 자시 갈 거야 이따 얘기해]

대화 창을 끄고 아이템을 사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어 보려 하는데, 그것마저 브레이크가 걸렸다.

[토라: 저기요...? 가시면 안 됩니다;;;]

[토라: 무슨 인형 사시겠다고 모으고 계셨던 거 아닌지]

[토라: 나한테 너 돈 쓰려 하면 말리라고 신신당부 했던 것 같은데]

[토라: 제가 꿈 꿨나요^^]

맞아, 나 그거 사야 해……. 또 잊을 뻔했네. 나는 조용히 스웨터를 사겠다는 마음을 접었다.

[청혼: 아니요]

[청혼: 하...]

[토라: ㅋㅋㅋㅋㅋ신경 ㄴㄴ 예쁜데 왜 그래]

[청혼: 형 나 속상해]

[토라: 왜ㅠㅠ 왜 속상해]

그래도 윤정신이 스웨터 아이템도 사 주고 기분이 풀릴 때까지 계속 달래 줘서 게임을 끌 때 즈음에는 그 일을 대충 잊을 수 있었다.

강감찬과의 2차 전쟁은, 그가 커뮤니티에 쓴 글에서 발발했다.

[심현지: (사진)]

[심현지: 야 이거 니 얘기 아님?ㅋㅋㅋㅋㅋ]

심현지가 카톡으로 보낸 사진 속에는 강감찬이 저스티스 자유 게시판에 쓴 글이 있었는데, 닉네임만 안 밝혔지 완전 내 얘기였다.

《제목: 코알못들이 코디 부심 있는 거 보면 좀 우스워요...

글쓴이: 강감찬

제곧내입니다만... 꼭 코디 뭣도 모르는 것들이...ㅎㅎ(참고로 본인 스펙... 예전에 코디 블로그로 꽤 조회수를 끌었었다죠... 킁... 자랑은 아닌)

어쭙잖게 코디 부심 부리는 것 보면 솔직히 가짢아요 ㅋ 매일 마을에서 전체 채팅으로 시끄럽게 이야기하는데 눈쌀이 찌뿌려졌네요;; 그래서 좀 따졌더니 제 말에 논리적으로 반박은 못 하고 저급하게 화만 내던ㅋㅋㅋㅋ 그래서 키이라쨩은 순진해 4권 언제 나오는지 -.,-(본론)》

나는 당장 그 사진을 저장해서 윤정신에게 보냈다.

[(사진)]

[아 형 얘 또 이래]

[부♡: 저게 너야?]

[앞구르기 하면서 봐도 뒷구르기 하면서 봐도 백덤블링 하면서 봐도 나임]

[부♡: 덤블링 할 줄 알아? 의왼데]

[ㅎㅎ 나 잘함]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나는 나름대로 심각한데 윤정신은 그냥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난 스트레스 받고 있는데!

[부♡: ㅋㅋㅋㅋㅋ덤블링 할 수 있으면 됐지]

[부♡: 왜 또 뭐가 속상해]

[부♡: 가서 때찌 해주까 ㅋ]

[됐음 형한테 얘기 안 할 거임 이제]

[부♡: 아 왜]

[부♡: 영통해요]

영통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정말 꿀밤 한 대만 쥐어박고 싶다.

[ㅗㅗㅗㅗㅗㅗㅗ]

[부♡: 속눈썹이겠지?]

[부♡: 설마 우기가 나한테 ㄷㄷ;;]

[凸凸凸]

[부♡: 오호]

[부♡: 나만 좀 요상한 모양으로 보이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쳤나]

[일상생활 가능?]

[부♡: 아니 뭐라고 구체적으로 얘기는 안 했는데]

[부♡: 나만 그렇게 보이는 건 아니었나봄 ㅎㅎ]

[어휴 fuck you 됐음???ㅡㅡ 이건 어떻게 피할래]

[부♡: 알겠다 알겠어 엿 먹을게 됐지?]

[부♡: ㅠㅠ 흑흑]

[부♡: 근데 저거 왜 신경 쓰는 거야 ㅋㅋㅋㅋㅋ 그냥 어그로잖아]

[부♡: 진짜 하나도 안 이상함 다들 그렇게 말하잖아 안 그래?]

이런 거에 발끈하는 내가 바보 같은 건 나도 아는데, 열 받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스트레스 받아]

[내가 날 욕하는 건 괜찮은데 남이;; 장난도 아니고 진지 빨고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여]

[부♡: 난 그렇게 진지한 줄 몰랐네]

[부♡: ㅋㅋㅋ근데 진짜 너가 훨씬 나은데]

[부♡: 내가 뭐 아는 게 있겠냐만은 그냥 내 눈엔 그럼]

[쟤랑 싸우면 스트레스만 더 받겠지?]

[부♡: ㅇㅇ당연]

[근데 무시가 잘 안 됨]

[부♡: ㄱㄷ 내가 악플 달고 옴]

[엥 그러다 욕 먹으면 어떡해]

[하지 마]

[부♡: 프로필 캐릭터 토라 아니라 ㄱㅊ]

[그래도 걍 하지 마]

그가 내 카톡을 읽지 않아서, 나는 다급하게 컴퓨터를 켜고 자유 게시판으로 들어가 강감찬이 쓴 글을 검색했다. 캡처 속 게시 글로 들어가 보니, 댓글에 윤정신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있었다.

《댓글 (9) 공감0  신고  공유

산돌2: 곧 나옵니다. 그런 건 구글에 치면 다 나오는데요... 손가락이 곱게 자라신 듯한;

브르뉴아: 위에 선비 ㅋㅋㅋㅋㅋ 종교 유교다 ㅇㅈ?

유머리노생각: 코디 블로그 한 것치곤 님 캐릭터 개못생겼는데요ㄷㄷ; 주작 의심ㅋㅋ 아니면 하긴 했는데 투데이 0

└강감찬: 모르면 닥쳐.

└유머리노생각: 왜 욕질이야ㅡㅡ 또라이네 이거

└강감찬: 너무 흥분해서 욕이 나왔네요. 하지만 그쪽도 욕하셧으니 쌤쌤 같네요.

└유머리노생각: 친구야 대가리 장식 아니면 생각하고 말하자 ㅋㅋㅋ 니 글부터가 남 욕인데?

└강감찬: 누구기에 이리 무례한가 했는데 본인인가 보네... 경고한다 너. 분명히 이유 설명했다. 너의 캐릭터가 미적 감각이 뛰어난 편인(어릴 때부터) 내가 봤을 때는 별로인데, 겸손하지 못했기에 조언한 거다;

└유머리노생각: ????;;;; 엥 누가 물어봤지ㅋ^^~ tmi 그리고 님 누군지도 모르고요~》

강감찬 나한테 무슨 열등감 같은 거 있는 것 아냐? 내가 옷 입히는 거로 시비 건 적 있나……. 나는 궁금해서 그의 블로그를 찾아보았다. 게임 이름과 강감찬의 닉네임을 함께 넣어 검색하니 그가 작성한 포스팅이 떴다.

《제목: (꾸벅 얼굴 혐오 5일차) 태오 서버 강감찬 32번째 포스팅☆

글쓴이: 강감찬

(image)

동기 님이 주신 명함! 감사합니다 ㅋㅋㅋ 작게 키이라 그려 주는 센스...ㄷ 놀랐습니다...

(image)

꾸벅 쓰는 애들은 걍 다 알못; 모에 포인트를 전혀 몰름 이런 게 귀엽나

너무 꼴보기 싫어서 호내튀... 뭔가 느낀 게 있길;;

여러분 꾸벅 얼굴은 메이저 성형이 아닙니다... 진또배기는 쿨쿨 잘래 얼굴

실제로 히로인들이 자는 모습은 이쪽에 가깝습니다

……(후략)》

《제목: 강감찬의 코디 참견!☆-시크 비니, 일명 골무 모자라고 불리는 아이템을 활용한 코디

글쓴이: 강감찬

코알못들이 흔히 하는 실수가 바로, 이런 아이템 하나하나가 요소가 되는 건데 모르고 넘어간다는 점. 얼핏 별로인 것 같은 아이템도 조합만 잘하면 살아 날 수 있죠. 오늘은 극혐 템이라고 알못들에 의해 저평가 당한(...) 시크 비니의 진가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image)

(image)

이렇게 활용하니 요즘 유행하는 아메카지룩 느낌이 나면서 캐릭터가 살아납니다... 개성 있는 코디가 가능한 좋은 아이템인데... 여론에 휩쓸리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워요ㅎ 》

아니, 꾸벅 얼굴한테 사기당한 적 있나? 왜 저렇게 싫어하는 거야? 아무리 취향 차이가 있다지만 저렇게까지 싫어하는 게 이해가 안 됐다.

내가 기망처럼 기본 성형하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뚱한 게 나와 닮았다고 해서 트레이드 마크처럼 하고 다녔던 거라 어쩐지 내 얼굴까지 모욕당한 기분이었다.

칭찬을 들으면 들었지 저렇게 싫어하는 사람은 단연코 처음이었다. 코알못이라는 말의 기준도 모르겠고……. 자기는 패션이라도 전공했나? 난해하다는 점에서는 패션쇼 옷들과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강감찬의 골무 비니 게시글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 심현지에게 보냈다.

[(사진)]

[야 어때]

[심현지: thumb 같음]

[심현지: 댁알이를 ㅋ 골무비니 쓰려고 들고 다니는 것 같은데]

[심현지: 제발 저 아이템 끼는 애들 신고 합법 좀 ㅅㅂ 저 모자 세상에서 제일 싫음]

[심현지: 구라 안 치고 ㅋㅋ 얼마 전에 엄마가 보던 1997년 드라마 나오던 패션보다 촌스러움]

[ㅇㅋ 내가 이상한 줄]

그런 건 아니었구나. 블로그를 계속 둘러보며 강감찬의 심리 상태를 파악해 보려 하는데, 윤정신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왜 카톡 안 봐.]

“뭐라고 했는데? 나 지금 강감찬 블로그 보고 있어.”

[그걸 왜? 내가 혼쭐내 놨어, 이제 신경 쓰지 마.]

“아니야, 형. 걔 혼쭐 안 났어. 기세등등해, 아직. 걔랑 결판을 봐야겠어.”

[무슨 결판?]

……그러게? 뭐로 결판을 지어야 하지? 내가 이겨야 하는데.

“……오목?”

[그게 걔랑 무슨 상관인데?]

“현피 뜰까?”

[안 돼. 네가 져.]

“그렇지? 그냥 해 본 소리야.”

어떻게 복수를 해 주지? 어떻게? 나는 한참 고민을 하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을 조용히 실행에 옮겼다. 나는 조용히 부캐로 접속해서 강감찬의 위치를 찾았다.

<‘옥이’ 님이 ‘강감찬’ 님의 호감도를 내리셨습니다.>

[강감찬: ?]

<‘강감찬’ 님이 ‘옥이’ 님의 호감도를 내리셨습니다.>

[강감찬: 왜 내리고 지랄이냐?]

진짜 또라이 같은 놈……. 바로 내 것도 내리는 거 봐.

[옥이: 그거 그렇게 입는 거 아닌데 ㅋ]

[옥이: 글고 님도 내렸으니까 쌤쌤 같네요...]

[옥이: 초면에 왜 저급하게 반말+욕질이신지?...ㄷ]

딱 보아하니 저쪽도 프라이드가 강한 것 같은데 똑같이 갚아 줄 생각이었다. 딱 저처럼 재수 없는 말투로 성질 건드리는 말 들어 보라지, 욕이 안 나오나.

[강감찬: 먼저 시비 걸었으니까^^ 모르면 닥치렴]

[옥이: 말하는 수준이 참... 고급지십니다;]

[옥이: 제가 이용약관 어긴 것도 아니고. 잇는 시스템 취지에 맞게 이용한 것이 죄가 됩니까???]

[옥이: 왜 욕설을 사용하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옥이: 일단 캡쳐했고, 제가 알기로는 블로그나 커뮤니티 활동을 좀 하시는 분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옥이: 신고는 물론 박제까지 생각하고 잇네요 몹시 화가 납니다]

딱히 그럴 생각은 없지만 괜히 겁을 주자, 강감찬이 금세 꼬리를 말았다.

[강감찬: 원래 말투가 좀 센 편인지라 ㅋ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강감찬: 그런데 신고는 점 그렇지 않나요... 평소 본인은 얼마나 청렴결백하게 한치의 티끌도 없이 사십니까?;]

[강감찬: 먼저 시비를 거셔서 화가 나서 욱하는 마음에 저도 욕이 나왓네요]

[옥이: 중요한 건 제가 욕 먹엇다는 거 아닌가요??;; 반성의 기미가 없으신 것 같은데]

[강감찬: 근데 혹시 여자신가요??]

나는 뜬금없는 질문에 어리둥절해졌다.

그게 뭐가 중요한지는 모르겠지만, 묻는 이유를 모르겠으니 대답하지 않기로 했다. 여캐라서 저러는 건가, 설마?

[옥이: 그건 왜 묻는지 몰겠네요... 중요한 건 제가 님한테 화났다는 건데;]

[강감찬: 아 ㅋㅋㅋ 화내지 마세요 ㅎ 제가 실수한 것 같네요 기분 나빳다면 죄송하니 화 푸세요]

갑자기? 방금까지 나한테 욕하던 놈 맞아? 나는 강감찬의 태세 전환에 얼떨떨해졌다. 이게 아닌데…….

[옥이: ???...;;]

[강감찬: 실례가 안 된다면...]

[강감찬: 머가 마음에 안 드셨는지 여쭈워도 될른지요?]

[옥이: ;; 걍 다 별론데]

[옥이: 특히 성형 심각한데요 ㅋㅋ 꾸벅 얼굴 미만 잡인데]

[옥이: 멀 좀 모르시는 듯 ㅇㅇ 전 더 얘기도 나누기 싫어서 이만]

나는 그냥 부캐에서 로그아웃을 해 버렸다.

뭐야, 쟤? 설마 여자인 줄 알고 저러나. 진짜 사고방식 저질이네. 이쯤 되니 대충 복수도 한 것 같고, 더 상대할 전의도 상실한 듯하여 그에게서 신경을 끄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 뒤, 나는 심현지를 통해 그의 근황을 들을 수 있었다.

[심현지: (사진)]

[심현지: ㅋㅋㅋ 그의 근황.jpg]

[너 그 사람 좋아하지]

[스토킹을 해라 아주]

[심현지: 뭐래;;; 요즘도 니 얘기 하나 궁금해서 본 건데]

그러게, 어떠려나. 괜히 스트레스 받을 것 같아서 보지도 않으려다, 궁금해서 사진을 한번 클릭해 보았다.

《제목: 아무래도 꾸벅 병 걸린 듯한...

글쓴이: 강감찬

얼마 전 미모의 여성분을 만났는데... 제가 무심한 탓에 그녀를 조금 화나게 해 버렸습니다...

그때 아마 우린 미쳣었죠... 그녀가 화를 내며 가 버렸고, 이후 다시는 접속을 하지 않아 사과를 하지 못한 상태... 이후 꾸벅 얼굴만 보면 울컥하며... 외로움이 사무치는 상태입니다.

다음에 꾸벅 얼굴 출시되면 정말 할까 봐요...-ㅂ- 그렇게라도 그녀를 떠올려야겠는》

……역시, 괜히 본 것 같다. 

나는 조용히 이 일을 덮기로 했다.

눈치 없는 심현지가 윤정신에게 보여 주고 싸움 구경 좀 해도 되냐고 묻는 걸 겨우 말려 놓고, 아까부터 계속 의미 없는 짧은 말들을 도배해 알림 폭탄을 보내고 있는 윤정신의 카톡을 확인했다.

[아ㅡㅡ]

[부♡: ㅁㄴㅇㄹ]

[부♡: ㅇㅇㅇㄴ]

[부♡: ㅡㅡ뭐하냐고]

[형 생각]

[부♡: 또 야밤에 발딱 세우네]

[부♡: 섹 함 뜰까]

[부♡: 뭐했어 아까 메시지 안 보고ㅋ 솔직하게 말해]

[ㅋㅋㅋㅋㅋ 형 생각]

[부♡: 대답 안 하면 딸친 거로 안다]

이걸 솔직하게 말할 수도 없고, 저딴 오해 받기는 싫고……. 나는 하는 수 없이 대충 둘러댔다.

[내가 형인 줄 알아?; 심현지가 뭐 물어봐서 대답 해 줬어 그냥]

[부♡: ㅇㅋ 통과]

[부♡: 자기 같이 겜 할까요ㅎㅎ]

[부♡: 기분 전환할 겸 나랑 신혼집 꾸미기 하자]

[신혼집(투명)]

[부♡: 너 여캐도 있잖아]

[부♡: 장비 맞춰 줄게 본캐 바꿔]

[그럼 형이 새 거 키워]

[부♡: 아ㅠ 알겠어 그럼 결혼만 해]

[부♡: 토라 노총각이야 ㅋ 쉰내나]

[씻으면 될 텐데ㅎㅎ 안타깝다 쉰내가 나서 결혼을 못한 게 아닐까?]

[부♡: ㅠㅠ진짜 안 해줘?]

[ㅋㅋㅋ 반지 사 봐]

[부♡: ㅎㅎㅎ♡ 역시 자기 뿐 ㅎㅎ 청첩도 돌려야디]

[부♡: 동네 사람 다 불러~!]

또 저렇게 소란을……. 새벽반 아니면 슬슬 다들 게임 끌 시간 같은데.

[시간 좀 늦어서 별로 안 올 걸? 걍 조용히 우리끼리 해]

[부♡: 잉잉 ㅠㅠ 싫어 축하 받을 거야]

[부♡: 전 서버에 메가폰으로 우기 내 남자니까 열창할 건데ㅋㅋ?]

[제발요 ㅋㅋ 그 계획 철회 좀]

[부♡: 장가 다 갔다 이제]

곧 길드 카톡 방에 그가 주접을 떠는 것이 화면 상단 알림으로 떴다.

[부♡: 정시니♡우기 달빛 아래서 웨딩 마치^^ 곧 시작 안 오면 니 손해(책임 안 짐~ㅋ)]

[심현지: ㄷㄷ... 괄호까지 완벽하게 극혐ㅋ 삼진아웃 드려요]

[유정: 어그로 점수 10점 만점에 1경 쥰다ㅋ 옛따]

[이권민: 진짜 함? 나 구경 갈래]

[심현지: 진짜겠냐 ㅋㅋㅋ 둘 다 남캐임]

다들 윤정신의 헛소리로 치부하는 것 같았다. 그러게 평소에 거짓말 좀 작작 치지.

[ㅋㅋ... 놀랍게도 진짜 한다 내 부캐랑 토라랑]

[올 사람 와 별 거 없겠지만]

[신혼집 필요하대서 하는 거]

[부♡: ㅋㅋㅋㅋㅋ ^^]

[부♡: 별 거 있을 거야 놀러와 ㅎㅎㅋ]

[부♡: 올 사람 말해봐 청첩장 줄게]

[심현지: ㄴ]

[심현지: 나나]

또 무슨 짓을 하려고……. 난 왜 항상 저지르고 후회할까? 나는 뭉그적거리며 일어나 컴퓨터를 켰다.

아, 근데 생각해 보니까 여자 캐릭터 중에 결혼 가능한 레벨 되는 거 옥이밖에 없는데……. 설마 강감찬 만나는 거 아니겠지? 혼자 있으면 그냥 무시하면 되지만, 윤정신이 알게 되면 거기서 안 끝날 것 같은데.

찝찝하긴 했지만 시간도 시간이고 설마 하는 마음이었다. 다행히 별 탈 없이 옥이 캐릭터에 로그인을 하고 예식 준비를 하고 있는데 불현듯 귓속말이 왔다.

[토라> 사랑해]

[토라> 속닥속닥]

아, 씨. 놀라라……. 같은 필드에 있으면서 웬 귓속말?

윤정신이 내 캐릭터 옆에 서서 뽀뽀하는 감정 표현을 계속 사용했다. 대충 답장을 해 주려는데, 그 짧은 사이 불청객으로부터 귓속말이 도착해서 귓속말이 잘못 가 버렸다.

[강감찬> 오늘은 계시네요 ㅎ 뵙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사랑(...?)과 유사한 감정일지도]

[옥이> 나두 사랑해ㅎㅎ 그 표정 왜 이렇게 귀여워ㅋㅋㅋ]

헐, 씨발.

안 되는데……. 머리에서 종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윤정신 뽀뽀하는 표정이 귀여워서 같이 해 주려고 했는데 이게 왜 하필 지금, 왜! 내가 무어라 정정하기도 전에 이미 강감찬은 착각의 늪에 푹 빠진 것 같았다. 세상에……. 진짜 좆됐다.

[강감찬> ....심장이 터질 것 같군요]

[강감찬> 안 되겠어요... 옥이씨를 만나야겠어요]

[강감찬> 제가 그리로 가겠습니다.]

[옥이> 아니요 잘못 보냈어요;;;]

[옥이> 저기요 제발 오지 마세요]

말이 안 통하네. 하긴, 기대하는 내가 잘못이지.

나는 빠르게 윤정신 쪽을 공략해 보았다.

[옥이: 형 내일 할까 ㅎㅎ... 결혼]

[옥이: 아니면 빨리 웨딩 빌리지 입장 좀]

[토라: 청첩장 덜 돌려서 아직 안 돼]

[옥이: 아무나 줘 그냥 ㅠ 빨리 결혼해 제발]

[토라: 헐 ㅎㅎ 설레는데]

[토라: 그렇게 내 여보가 되고 싶은 거야?ㅋ]

[토라: 내일 진짜 신혼여행 어때 ㅎㅎ 10박 11일 정도]

[토라: 떡을 떡으로 치는 거야]

그냥 대충 길드원하고 친한 애들 몇 명한테 돌리면 되는 걸 뭘 저렇게 고민하냐고! 나는 조급함에 그를 보챘다.

[옥이: 뭘 어쩌든 일단 빨리]

[토라: 넘 야한데?;; 토크 수위 ㅈㄴ 바람직]

[옥이: 아니;;; 제발 입장하라고]

[토라: 왜 ㅋ 너 아무도 안 부르고 싶어서 그러지ㅡㅡ 이미 하객 10명 대기 중이다 꿈 접어]

윤정신이 오히려 보란 듯 느긋하게 입장을 미루자, 짜증이 나서 으름장을 놓았다.

[옥이: 여행 안 간다 나]

[토라: 응 어차피 안 갈 거 알아ㅋㅋ]

아오, 진짜! 그냥 나가? 그게 낫나?

그냥 로그아웃을 하려는데, 강감찬이 그보다 빠르게 필드에 도착했다.

[강감찬: 옥이 씨! 아니, 나의 반려...]

……좆됐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계속 식이 시작되지 않자 지친 하객들이 우리가 있는 필드까지 쫓아와 재촉하기 시작했다.

[현지: 아 관종 진짜ㅡㅡ 언제 시작하냐고]

[토라: ??? 방금 쟤가 너 부른 거 맞지]

[토라: 뭔데 ㅋㅋ 씨발]

[토라: 너 누군데 미친 새끼야]

빠르게 채팅을 쳐서 강감찬의 채팅을 밀어 버릴까 생각하는 찰나에 윤정신의 채팅이 올라왔다. 이미 봤구나……. 이제는 돌이킬 수 없었다.

[강감찬: ? 댁이야말로 뉘신지]

[강감찬: 당신이랑 할 말 없으니 자리 비켜주었으면 합니다]

[토라: 난 너랑 할 말 많은데?ㅋㅋㅋ 가지 말고 거기 있어 봐]

[토라: 누구냐고? ㅆㅂ 쟤 약혼남이다 왜?]

[토라: 최우기 대답해 봐 쟤 알아? 네가 말하는 대로 믿을 테니까]

[토라: 뭔데 저 버러지가 반려니 어쩌니 하는지 말해봐]

아이고, 화났다……. 평소 윤정신이 화를 자주 내는 편이 아니라서, 가끔 화난 모습을 보이면 조금 낯설고 무서웠다.

미안하지만 내 통제 밖인 것이다. 괜히 불똥이 튀지 않았으면 해서 나는 최대한 몸을 사렸다.

[옥이: 몰라 나는]

[옥이: 갑자기 여자냐고 치근덕거려서 무시했었는데]

[옥이: 아까 갑자기 귓말 와서 형한테 보내려던 귓말이 저 사람한테 잘못 갔거든 근데 그거 보고 갑자기 이리로 오겠다고]

[토라: 그러니까 쟤 혼자 이러는 거네 지금?]

[토라: 아 ㅋㅋ 맞네 닉네임 익숙하다 했더니 너 전에 우기 욕했던 애 아니냐?]

[토라: 너 그거도 개수작 부린 거지 씨발아]

[토라: ㅆㅂ 어이없네 여자면 니가 뭐 ㅋㅋㅋ 어떻게 해보려 그랬냐? 더러운 새끼네 진짜]

[강감찬: 스트리머면 말 가려서 하세요; 커뮤니티에 박제하겠습니다. 욕설 사용한 부분에 잇어 고소도 진행할 거고요. 법정에서 봅시다]

[토라: 해봐 어디]

[토라: 근데 그럼 니 신상도 내가 알게 되는 건 알지?ㅋㅋㅋㅋ]

저러다 진짜 어디 박제되면 어떡하지……? 욕먹을 것 같은데……. 나는 점점 초조해졌다. 갑자기 강감찬이 조용해진 거 보면 캡처 뜨러 간 거 같은데.

심란해 죽겠는 와중에 채팅 창이 조용해지자, 길드원들이 하나둘 입을 떼기 시작했다. 

[현지: ㄷㄷ... 갑분싸...]

[기망: 분위기 왜 이러냐 ㄷ...]

[유징: 먼 상황인데 ㅋ 꿀잼]

[기망: 아 전에 걔네 최우기 호감도 깎은 ㅋㅋㅋㅋㅋ 와 그거로 아직까지 싸우는 거냐]

[현지: 최우기가 쟤랑 뒤로 바람피우다 딱 걸림]

[옥이: 아 씨발 아님 ㅡㅡ 뭔 바람이야]

[기망: 아니 웨딩마치 한다며; 이게 웨딩이냐]

그딴 거 하게 생겼냐, 지금! 

나는 덩달아 조용해진 윤정신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옥이> 형]

[옥이> 형형]

[토라> 왜]

[옥이> 미안 화내지 마 일단 좋게 풀자 이러다 진짜 박제 되겠어]

[토라> 니가 왜 미안해]

[토라> 괜찮으니까 가 있어 봐 쟤랑 둘이 얘기해볼 테니까]

[옥이> 진짜 아무 사이 아닌 거 알지; 화 안 내도 돼]

[옥이> 나 무서워]

[토라> 에휴 알겠다]

[토라> 고만 할게 미안해 무섭게 해서ㅠㅠ]

[토라> 왜 니가 무서워하고 그래 너랑 싸우는 것도 아닌데]

[토라> 괜찮아]

이제 좀 괜찮아진 건가……? 안심하려는데, 조용하던 강감찬이 다시금 불을 질렀다.

[강감찬: 옥이 씨... 왜 저에게 이렇케 상처를 주는 겁니까... 저를 만날 수 없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거죠...? 그래서 정 떼려고...]

[옥이: 아니;; 님 저 님이 코알못이라고 호감도 내려서 싸웠던 청혼임 기억 안 나요?]

[강감찬: 그때부터 인연이 잇었군요... 중요한 것은... 우리는 사랑했었잖아요]

저건 분명 기억 못하는 거다. 답답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옥이: 내가 언제요ㅋㅋㅋㅋㅋ 와 미치겠네]

[옥이: 님 저 남자예요;;; 정신 차려요]

[옥이: 여자 아니라고요ㅡㅡ]

[강감찬: 이제는 그런 거짓말까지. 확실히 좋은 선택이네요/... 정 떼기에는../.]

[현지: 님아 쟤 남자 맞아요 ㅋㅋㅋㅋㅋㅋㅋ]

[기망: 아니 대체 플로우가 뭔데?ㅋㅋㅋㅋㅋ나만 다 무슨 얘기인지 이해 안 되냐?]

[토라: 감찬아 전화번호 불러 봐]

[토라: 그리고 닉네임 바꿔라 그따구로 하고 다닐 거면]

[현지: ㅇㅈㅋㅋㅋㅋㅋ]

[유징: ㅋㅋㅋㅋㅋㅋㅋㅅㅂ 미첫나 싸우다 닉네임 타령]

[옥이: 아니 형 하지 마;]

[옥이> 진짜 신고하면 어쩌려고]

[토라: ㄱㅊ]

[토라: 부르라고 번호]

괜찮고 자시고 이제 제발 그만 싸웠으면 했다. 마음도 별로 편치 않고…….

[강감찬: 댁이랑은 할 말 없구요]

[토라: 우기는 니랑 할 말 없어ㅡㅡ 그러니까 걍 나랑 하자고]

[강감찬: 당신들 말대로 옥이 씨가 남자라면 이 사람은 왜 이러는 겁니까?]

[토라: 남자인 거랑 뭔 상관인데 ㅋㅋ]

[토라: 민증이라도 까야 믿냐;; 아니면 우기도 니 마음 훔친 절도죄로 신고해 봐 ㅋㅋㅋ 직접 보면 알겠네]

[옥이: 아 뭔]

[옥이: 저기요 님 계속 이러시면 제가 님 박제할게요 작작하고 이제 가세요]

[옥이: 저 남자 맞고 님이ㅡㅡ 꾸벅 얼굴 못생겼다고 호내튀 해서 님이랑 싸운 이후에]

[옥이: 빡쳐서 복수하려고 부캐 아무거나 들어와서 말 걸었던 거예요; 님 그때 저랑 싸우고 커뮤니티에 글도 쌌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내가 자세하게 설명을 하자, 그제야 강감찬은 명확하게 그때 일이 기억이 난 것 같았다. 그가 금세 태세 전환을 했다.

[강감찬: 아 ㅋ 씨발. 너네 진짜 뒤짋? 하...]

[강감찬: 사람 갖고 노니까 좋냐? 재밌었냐 쓰레기 새끼들아? 응?]

[BOBI: 뭐야 왜 시작 안 해]

[현지: 극대노 ㅋㅋㅋㅋ]

[현지: 제가 그렇게 얀데레로 보이나요?]

[유징: 아 언니 와바 지금 꿀잼]

[기망: 와 ㅅㅂ ㅋㅋㅋㅋㅋ 쟤 저러는 와중에 방금 내 호감도 내림]

[현지: 아 썅ㅋㅋㅋㅋㅋ못생긴 죄ㅋㅋㅋ 그때는 살아 남았던 게 용하다 ㄷㄷ]

[현지: 감찬이 너는...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 널 너무나 많이 그리워 한 죄...]

[현지: 오빠 저 쟤 블로그 주소 있음ㅋㅋㅋ 쟤가 우기 글 쓴 거 캡쳐한 거 있어요]

[옥이: 장작 넣지 마라]

[옥이: 너넨 이게 재밌냐;]

[토라: 뭐라고 했는데? 보내 봐]

[옥이: 아 형도 좀 그만해 ㅅㅂ 빡치려 그래 결혼하자며]

[토라: 참 그랬지]

[토라: 현지 이따 나 그거 보내줘 ㅋㅋㅋ 일단 쟤 정신 차렸으니까 예식 ㄱㄱ]

[강감찬: 도망가냐?? 하...ㅋ 이 쉐끼들 봐라 너네 다 몇 살이냐?]

[현지: 서른마흔다섯살 ^-^]

[유징: 아 응애예요 ㅋ]

[강감찬: 너희 다 신고한다. 특히 스트리머 너.]

[토라: ㅇ ㅋㅋ]

[토라: 으앙 무서워~~~~ㅠㅠ]

[토라: 도망가!!! 웨딩 빌리지로!!]

윤정신이 아까 내가 그렇게 애원해도 입장해 주지 않던 웨딩 빌리지로 입장을 했고, 바로 식이 시작됐다.

[유징: 갑분 예식 ㅋ 재밌었는데]

[보보: 드디어 하네; 봉봉이 갔잖아ㅡㅡ기다리다가]

[현지: 음청난 일 있었구요 ㅋ]

[기망: 저 형 조만간 박제 될 듯]

[으앙: 무슨 일 있었어요??]

[현지: ㅋㅋㅋㅋㅋ말도 마셈]

[토라: 야 축하합니다 평생 가세요 말고 아무 말도 하지 마 ㅋ]

윤정신이 결혼 전문 NPC에게 대화를 걸었고, 곧 8비트로 멘델스존의 결혼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박수갈채 효과음까지 있었다.

[버찌: 기껏 와 줬는데 안 감사한가 봐]

[토라: 넌 거기서 똑똑히 봐라 우리 결혼하는 거ㅡㅡ]

[버찌: ㅎㅎ; 우기야 다시 생각해 봐]

[옥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토라: 아???]

[옥이: 다시 태어나도 윤정신^^;;;]

[토라: ㅎㅎ 사랑해요 여보얌]

[유징: 우웩 ㅋ]

[BOBI: 토 나온다 진짜루 ㅋㅋㅋ]

[토라: ㅋㅋㅋㅋㅋㅋㅋ 사랑해♡♡♡]

[현지: 아까 욕하던 사람이랑 다른 자아 아닌지ㅋ]

그렇게 소란스러운 와중에 행진까지 끝이 났고, 나는 낯부끄러운 메가폰 세례를 받으며 신혼집을 얻게 되었다. 결혼한 게 서버 전체 알림으로 떠서 그런지 윤정신의 시청자인지 친구인지 모를 사람도 몇몇 끼어 있었다.

[죳스바: 토라야 결혼하냐 게이 새끼야]

[왕진: 헐ㅋㅋㅋ 진짜 토라 결혼했네 방송 안 켜냐 청자 왕따 시켜?]

[현지: 청혼♡토라 전국 서열0위 그놈과 커플에서 결혼까지?! 5천만원만 주면 결혼해주는 놈 ‘청혼’ 닉값 못 하고 보쌈 돼 가는 꼴 잘 보고 갑니다]

[유징: 혼아 ㅋ 돈이 그렇게 좋니? 나도 그래 ㅋ 근데 그래도 저 사람은 안 만날 듯 일단 결혼 축하^^]

[토라: 까부는 애들 닉네임 다 기억해 둔다]

[나냐너녀: 아 ㅅㅂ 좆목겜 또 메가폰 좆목질 시작이네 다 닥쳐라 결혼 할 거면 조용히 해 싸럽충들아]

[고냥이좋아: 토라 님 욕하지 마세요 나냐너녀 님^^ 님이 친구 없는 걸 왜 남한테 화풀이 하시나요?? 이제부터는 님이 친구를 사귀세요 아시겟죠?]

정말이지 난장판이네.

나는 조용히 컴퓨터를 끄고 나와 윤정신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화는 다 풀린 것 같은데……. 뭐, 잘된 건가. 나는 그와 한참 동안 통화를 하다가 잠에 들었다.

그리고 며칠 뒤, 토라는 정지를 당했다.

3일 채팅 정지를…….

[현지: ㅋㅋㅋ 정신아 내가 여기 있는 게 좋아?]

채팅을 칠 수 없는 윤정신이 캐릭터를 좌우로 움직이며 도리질을 쳤다.

[현지: 어머... 좋아서 날뛰는 거 봐 ㅋ]

[청혼: 너 형이 카톡 보래]

[현지: 음^^? 그게 뭐지 ㅎ]

그래도 이 정도에서 끝났으니 다행이지. 좀 조용히 살아 보는 것도 그에게 나쁘지 않은 경험일 것이다.

* * *

뭘 해 줄까 고민하는 사이 그의 생일이 다가왔다.

테마파크에 가기로 해서 도시락 재료까지 다 샀는데 웬걸. 아침부터 비가 내리질 않겠나? 테마파크는 글렀고, 일단 싸기로 한 거니까 도시락은 마저 쌌다.

윤정신에게 줄 선물과 도시락 가방을 챙기자, 때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어, 형.”

[어쩌지, 비가 오네. 테마파크는 못 가겠다.]

“그러게…….”

[일단 너희 집으로 가고 있거든? 한 20분 뒤에 도착할 것 같아.]

“알겠어.”

이럴 줄 알았으면 작정하고 생일상 차려 줄걸. 미역국만 대충 했고 나머진 완전 소풍용인데. 케이크라도 사야 하나…….

나는 고민하다가 우산을 들고 근처 빵집으로 달려갔다. 우산을 푹 숙이고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가는데, 주변을 오가는 사람이 있을 때마다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

……형 깨울걸 그랬나? 그냥 윤정신이랑 같이 사러 올 걸. 나는 겨우겨우 케이크를 한 상자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손이 덜덜 떨렸다. 역시 아직 혼자서는 무리구나. 그래도 임무를 완수한 내 자신이 대견했다.

비에 조금 젖은 옷을 갈아입고 현관 앞에 앉아 윤정신의 연락을 기다렸다. 올 때가 됐는데……. 빗길에 사고라도 난 건 아니겠지.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바로 받네.]

“어디야?”

[나 집 앞에 왔어.]

“응. 지금 나갈게.”

나는 챙겨 둔 것들을 가지고 후다닥 집 밖으로 나갔다. 우산을 들 손이 마땅치 않아 힘겹게 걸어 나가자,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가 황급히 짐을 받아 들었다.

“뭘 이렇게 바리바리……. 이리 줘.”

“앗, 차가워.”

윤정신이 짐을 차 뒷좌석에 싣고 조수석 문을 열어 주었다. 나는 그가 받쳐 주는 우산 아래로 가 무사히 조수석에 탑승했고, 그는 내 우산을 접어 마찬가지로 뒷좌석에 실은 뒤 운전석에 올랐다.

“차 사길 잘했다. 비 온다는 말 없었던 것 같은데……. 재수가 없으려나 봐.”

“형 생일인데 날씨가 구질구질하네.”

“오랜만에 비 오니까 좋긴 한데, 하필 오늘인 게 참…….”

“아침은 먹었어?”

“아니. 아침에 눈을 좀 늦게 떠서.”

그럼 생일상도 못 받았다는 거네. 일기 예보 좀 더 꼼꼼히 볼걸 그랬다. 왠지 내가 준비한 것들이 부끄러울 정도로 보잘것없게 느껴졌다.

“어디 가지? 비 와서 거추장스러운데, 그냥 우리 집 갈래?”

“형 기껏 준비하고 나왔는데 다시 집 가는 것도 그렇잖아.”

“난 상관없어. 너 비 오는 날 외출하는 거 싫어하잖아.”

그렇긴 한데……. 결국, 또 시시하게 윤정신의 집으로 가게 됐다.

뭔가 풀리는 일이 없는 느낌……. 밖이 어둑해서 형광등이 켜진 실내가 유독 이질적으로 보였다. 정작 윤정신은 별생각 없는 것 같은데, 나는 옷을 갈아입으러 방으로 들어가는 그를 보며 혼자 좀 속상했다.

그래도 생일인데 이렇게 보내게 하다니. 나는 보온병에 담아 온 미역국을 냄비에 옮겨 데우고 도시락을 식탁 위에 올려 두었다.

“오, 미역국도 했어? 안 그래도 되는데.”

“미안……. 뭐 해 줄 게 없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신경 써서 왔을 텐데.”

“나 생일 같은 거 별로 신경 안 써. 마음 쓰지 마. 그리고 이 정도면 충분하고도 넘치지, 뭐. 미역국 있으면 된 거 아니야? 끓인다고 고생했겠다.”

“이거 육뚜기 즉석…….”

“……아, 아. 아무튼, 준비한 게 어디야. 나 공복이라 배고프다. 너도 앉아서 먹어.”

“되게 구질구질해 보여. 미안해 죽겠네, 정말.”

나는 미역국을 국그릇에 담아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참, 케이크. 나는 그의 눈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형. 눈 가리고 있어 봐, 이렇게.”

“키스하는 거야?”

“됐으니까 눈 좀 감고 있어 봐.”

나는 불을 끄고, 그가 방 안에 내려 둔 내 종이 가방에서 생일 선물과 케이크 상자를 꺼내 왔다.

케이크 사길 잘했다……. 좀 더 화려하고 그럴싸한 이벤트를 준비해 놨다면 좋았을 텐데. 윤정신이 실망하면 어쩌나 싶었다. 나는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을 붙인 뒤,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이제 눈 떠도 돼.”

“음. 사실 실눈으로 다 봤는데. 그래도 놀라는 척해야겠지?”

아오, 진짜. 내가 윤정신의 손등을 가볍게 때리며 눈을 흘기자, 그가 개구쟁이처럼 웃었다.

“뭘 이렇게 준비했어, 그냥 오지. 내가 생일인 거 괜히 말했나 보다. 감동인데…….”

“다음 생일 땐 진짜 제대로 준비해 올게. 좀 허접하지만……, 그래도 생일 축하해.”

“너 약속했어, 다음 생일도 챙겨 주기로.”

“또 시작이네, 그놈의 구두 계약.”

“그게 제일 큰 생일 선물이야.”

촛불 빛에 물든 윤정신의 얼굴이 평소보다 따뜻해 보였다.

그가 초를 불어 끄자, 식탁에 어둑함이 내려앉았다. 잠깐 정적이 일고 비 내리는 소리만이 들렸는데, 그게 너무 어색해서 나는 황급히 분위기를 깼다.

“참, 선물도 있는데.”

“선물?”

내가 넥타이와 넥타이핀이 담긴 상자를 건네자,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 형광등을 켰다. 그러곤 박스를 열어 보더니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어? 너 아버지한테 다 이른다.”

“아니라니까.”

“고마워……. 네가 돈이 어디 있다고. 너 사고 싶은 거나 사지.”

“용돈 모아 둔 거 털어서 샀어.”

“그랬어?”

윤정신이 케이크의 초를 뽑고 빵 칼을 꺼내 케이크를 반으로 갈랐다.

“먹어. 아침부터 준비하느라 고생했겠다. 넥타이 잘 쓸게.”

윤정신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래도 마음에 든 건가? 나는 찬장에서 앞 접시를 꺼내 왔다. 그가 내 접시에 먼저 조각 낸 케이크를 덜어 주고 자신의 접시에도 케이크를 덜었다.

“형. 나 질리면 다음엔 부자 애인 만나.”

“한 100년 후 즈음에 생각해 볼게.”

“내가 해 줄 게 너무 없다.”

내가 시무룩하게 얘기하자, 윤정신이 참고 있던 웃음을 터뜨렸다.

“왜? 난 좋은데. 아 진짜 너무 귀엽다, 너. 혼자 생각한 거야? 도시락 야무지게도 쌌네.”

“열심히 했어. 비 와서 그냥 안 쌀까 하다가 약속한 거기도 하고, 재료 산 것도 아깝고.”

“27년 살면서 이번 생일이 제일 행복해. 고마워. 너 없었으면 어차피 집에서 혼자 보냈을 거야.”

“거짓말.”

“아니야, 진짜로.”

윤정신과 함께 소박한 생일상을 나누어 먹은 뒤, 우리는 소파에 앉아 베란다 창으로 흘러내리는 빗물을 구경하며 시답잖은 대화들을 나누었다.

둘이서 뒹굴뒹굴하며 붙어 있으니, 슬슬 윤정신은 또 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내 배나 등허리를 손바닥으로 쓸어 대더니 입과 볼에 쪽쪽거리며 뽀뽀를 해 댔다.

“아우, 형. 그만 좀 지분거려.”

“예쁜아. 침대로 안 갈래?”

“대낮부터 무슨…….”

“언젠 낮이라고 안 했나. 나 생일인데……. 진짜 안 돼?”

시무룩한 척은.

윤정신이 포기하지 않고 내 입꼬리에 입을 맞추다가 일순 입술을 포갰다. 나는 내 입안의 침을 다 삼켜 버릴 태세로 달려드는 것에 주춤주춤 밀려나다가 겨우 그를 떼어 놓았다. 윤정신이 삐친 척 입을 툭 내밀었다.

“날도 어둑하니 별로 낮 같지도 않은데.”

“내가 보기에 형 본체는 뇌가 아니고 이거야, 이거.”

“그렇게 가리키면 부끄럽잖아.”

윤정신이 조용히 바지 버클을 푸는 시늉을 했다. 내가 질색을 하자, 그가 웃으며 내게 볼을 기댔다.

“진짜 최고의 생일이야.”

“맛있는 것도 못 먹고, 테마파크도 못 가고. 뭐가 최고야?”

“너랑 있으니까.”

윤정신이 예쁜 접시에 담아 온 케이크 조각에 검지를 푹 찍더니 내 볼에 하얀 생크림을 묻혔다. 유치원 때 이후로 나한테 이런 짓을 한 인간은 처음이었다. 꼭 저렇게 정색하게 만든다니까.

“아이 씨.”

“아이 씨?”

“아이 씨 유.”

윤정신이 기가 찬다는 듯 웃으며 제 손가락에 묻은 크림을 빨아 먹었다.

이런 얘기하면 무슨 대답 돌아올지 뻔하니까 입 밖으로는 안 내려 하는데, 언제 봐도 손이 정말 예쁘다. 생긴 건 꼭 제 성격처럼 개구지게 생겼는데, 손만 이상하게 섬세했다.

“자기야, 오늘 자고 가.”

“집에 가려고 했는데.”

“가지 마. 나 생일인데 혼자 있기 싫단 말이야.”

별로 신경도 안 쓴다면서 생일 핑계는. 그래도 생일이니까 이 정도 소원은 들어주기로 했다.

“알겠어.”

“속옷도 네 사이즈로 다 사 뒀다, 나. 잠옷도 있어.”

“징하다, 정말.”

정말 들어와서 살까? 가족들이랑 떨어지는 건 좀 그렇지만, 그 사건 이후 이사한 적이 없어서 사실 조금은 불안한 집보다야 다른 곳에 있는 게 덜 불안하기도 하고.

나도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슬슬 밖으로 나가고 단체 생활도 할 수 있게 연습을 좀 해야 하지 않을까? 일단 괜히 생각이 있는 듯 말을 꺼내면 윤정신이 또 난리에 고집을 피워 댈 게 뻔해서 조용히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비 많이 오네.”

“그러게. 빗소리 들으니까 졸려.”

“한숨 잘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냉큼 그의 한쪽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음, 별로 안 푹신하네. 나는 손으로 그의 반대쪽 허벅지를 만져 보였다. 그러자 윤정신이 소파가 들썩거릴 정도로 몸을 움츠리며 당황했다.

“야, 어딜 만져……. 참고 있는데.”

“허벅지가 성감대야?”

“아니, 허벅지가 문제가 아니고……. 아니, 됐다. 아무튼, 거기 만지지 마.”

아, 설마 그건가.

“형, 여기에 두는구나. 그렇지?”

“알면서 그런 거냐, 설마.”

“와……. 아니? 난 그냥 위로 둬서 별생각 없었지.”

전에 옷을 골라 주러 백화점 갔을 때도 바지만큼은 유난히 까다롭다고 느꼈었는데 이런 이유였나 보다. 그러니까, 내가 만진 게 허벅지가 아니고 거기에 수납되어 있던 페니스였다 이거지.

큰 실수를 했다. 의식하고 봐서 그런가, 발기한 거 되게 티 나는 것 같은데……. 나는 장난기가 동해서 슬쩍 그의 허벅지를 다시 쓰다듬었다. 그가 참는 듯 입매를 굳히더니, 얼마 못 가 제 바지 버클을 풀어헤쳐 트렁크 안에 갇힌 제 것을 꺼내 들었다.

나는 곧장 싹 입을 닦았다. 그러곤 소파에서 슬쩍 일어서려 하자, 그가 내 손을 잡았다.

“해 주려던 거 아니었어? 책임은 지고 가야지.”

“난 그냥 허벅지 만진 건데.”

“선 것만 어떻게 하자. 응?”

“형은 자위라는 개념을 몰라? 욕실 다녀와.”

윤정신이 내 손을 만지작거리며 만져 달라 조르기 시작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한 발을 빼 주고, 결국 소파에서 그와 한바탕을 했다.

* * *

나는 나른한 듯 늘어진 그를 뒤로한 채 욕실로 가서 찝찝해진 몸을 씻었다. 그런 게 왜 거기 있어 가지곤……. 괜한 장난을 친 것 같다.

나는 윤정신이 구비해 두었다는 속옷과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침대에 가 누웠다. 윤정신도 욕실로 들어가 씻기 시작한 건지 물소리가 났다. 한참 후에 그는 훈훈한 열기와 함께 젖은 머리칼로 가운을 걸치며 나타났다.

“아, 괜히 두 번 씻었네. 건조한 것 같아. 보습, 보습.”

윤정신이 크림들을 얼굴에 펴 발랐다. 딱 보니까 또 머리카락을 제대로 안 말릴 것 같아서 드라이어를 가져와 거울 앞에 앉은 그의 머리카락을 말려 주었다.

그는 좋다고 얼굴에 마스크 팩을 붙이고, 발 크림을 바르며 부산을 떨다가 할 것이 떨어지니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머리숱이 많아서 말리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머리를 만져 주니 좋은 모양이었다.

하여튼, 자기가 무슨 개인 줄 알아.

나는 적당히 머리카락을 말려 놓고 드라이어를 제자리에 꽂아 두었다. 정신을 차린 윤정신은 바닥을 쓸고 닦고 하더니 속옷을 꺼내 입고 침실 행거에 걸린 제 잠옷을 꺼냈다.

“생일인데 별거 없네. 평소랑 똑같은 것 같아.”

“왜? 난 특별했는데. 미역국도 먹고, 케이크도 먹고, 선물도 받고, 너랑 이렇게 있고.”

“형이 좋았으면 됐고, 뭐…….”

나도 나중에 나이를 먹으면, 그처럼 좀 더 여유롭게 행동할 수 있을까? 어서 그랬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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