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7/18)

6.

[현지: 얌ㅋ 근데]

[현지: 나 뭐 물어바도 됨?]

윤정신이 친구를 만나러 가서, 집에서 혼자 게임을 하던 날이었다.

[청혼: ㅁ?]

[현지: 초메 받아 보셈]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나는 심현지가 보내는 대화방 초대 메시지를 수락했다.

<‘청혼’ 님이 대화에 참여합니다.>

[청혼: 머 이 유인원아]

[현지: ㅋ뒤질?]

[현지: 니 있자나]

[청혼: ㅇㅇ]

[현지: 토라 오빠랑 사귐?]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티 났나? 너무 티 냈나?

[청혼: 개솔 ㄴ]

[현지: 아님 말거 ㅋ]

[현지: 걍 전에 미미 언니도 그런 소리 했고]

[현지: 너네 싸워서 분위기 살벌하게 만들었다가 지들끼리 화해하고 와서 깨 볶는 게 점ㅋ]

[청혼: ㅋㅋㅋㅋㅋㅋㅋㅋㅋ꼴사나워?]

[현지: ㅇㅇ;;; 어디서 많이 본 진풍경]

[청혼: 사귀면 뭐 니가 어쩔 건데]

[현지: 진짜 사귀냐?ㅋㅋㅋㅋㅋ]

……말할까. 말해도 되나?

나는 고민하다가 그냥 솔직하게 답하기로 했다. 전처럼 기한이 걸려 있었다면 구태여 이야기하지 않았겠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 난리를 쳐 놓고서 사귀지 않으면 이상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윤정신과 정식으로 사귀기로 한 것이다. 그로부터 2주가 넘는 시간이 흐른 후였다. 이제 빼도 박도 못하게 사귀는 사이였다.

[청혼: ㅇ]

[현지: 헐 싸럽충 ㅋ 둘이 만나는 봤냐]

[청혼: 맨날 보는데]

[현지: 그 오빠 잘생겼냐? 왜 사귀어; 혹시 협박당하고 있는 거면 당근송 불러 봐 도와줄게]

어떻게 협박당했다는 생각까지……. 그 정도로 안 믿기는 건가? 윤정신 이미지 관리 좀 해야겠는데.

[청혼: 아닌데ㅎㅎ 좀 늙어서 그렇지 톨앤핸섬리치야]

[현지: 미친ㅋ 거렁뱅이일 줄]

[현지: 가진 것도 많으면서 쫌생이 짓 좀 하지 말라 그래]

[현지: 그 오빠 내 망토 가져가서 안 줘 ㅡㅡ]

[청혼: 뭔데? 나중에 빼 줄게]

[청혼: 치매끼 있어서 그래]

[현지: 너 근데 게이였구나...]

[현지: 좀 놀랐다]

왠지 민망했다. 평소에는 이런 이야기를 굳이 할 일이 없으니까……. 면대면으로 대화하는 게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청혼: 아니고 양성애자임]

[청혼: 왜ㅋ 마음 품었냐ㅋㅋㅋ 접어라 넌 2천년 전에 이미 나가리였다]

[현지: 역겨운 소리는 하지 말고ㅋ 니 그래도 좀 생겻자나]

[현지: 진짜 그 오빠랑 왜 사귀는데?? 머라 해야 하지 주접 좀 심하잖아 아무리 돈 많대도]

[청혼: 주접ㅋㅋㅋㅋㅋㅋㅋㅋ너 토라한테 다 이른다]

[현지: 일러 봐ㅅㅂ 니가 그날 내가 얼마나 시달렷는지 알면ㅋ 절대 그 말 안 나옴]

[현지: 쌍욕할 뻔ㅋㅋ]

윤정신이 그날 어지간히 귀찮게 하긴 했던 모양이었다. 하긴, 가끔 고집이랄지 집착이랄지, 자기 원하는 대로 될 때까지 물고 늘어질 때가 있긴 하니까.

[청혼: 토라도 좀 생겼어]

[현지: 버찌도 잘생겼담서]

[청혼: ㅋㅋㅋㅋㅋ그럼 닌 버찌랑 사귀든가]

[청혼: 갑자기 뭔 버찌 얘기야]

[청혼: 암튼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같다 나는... 이제 와서 그런 소리 해봤자]

[현지: 헐...ㅋ 그래 이왕 사귄 거]

[현지: 그 주접떠는 거만 어떻게 하면 좋은데]

[청혼: 아님 적응 되면 은근 귀여움 ㅎㅎ]

[현지: 참사랑이네^^]

[현지: ㅗ]

[청혼: ㅗ]

[청혼: 너만 알아라]

[현지: 이런 소릴 어디 가서 함;; 글고 니한테 사람들 관심 없거든 착각 즐ㅋㅋ]

내가 부끄러운 건 둘째 치고 문제는 윤정신 쪽이었다. 저스티스 내에서의 화제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청혼: 토라는 유명하자나ㅡㅡ]

[현지: 그딴 아류 스트리머...]

[현지: 부숴 버릴 거야ㅋ]

[청혼: ㅋㅋㅋㅋㅋ토라 싫어하냐?]

[현지: ㅋ그런 건 아닌데 니가 사귄다면 말리고 싶은 그런 느낌^^;;]

윤정신 꽤 괜찮은 편인데. 내가 처음에 싫어했던 거랑 비슷한 느낌인 걸까?

[청혼: ㅋㅋㅋㅋㅋ아냐 근데 잘해줘서 괜찮아]

[청혼: 너 보면 또 욕 할 듯]

[현지: 왜 발이라도 씻겨주냐?]

[청혼: 못 해줄 거 같냐]

[현지: 으 너네 연애담 다신 얘기하지 마셈]

그래도 현지가 생각보다 스스럼없이 받아들여 줘서 다행이었다. 이런 거로 좀 어색해지거나 사이가 멀어지면 어쩌나 고민돼서 먼저 얘기 못했던 건데, 오히려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 * *

친구를 만나고 저녁 즈음에야 돌아온 윤정신은 보고 싶었다고 칭얼거리며 내 옆에 철썩 붙어 다녔다.

[현지: 아니 좀 떨어져]

[현지: 귀찮아 죽으려하네]

[토라: 이종족은 조용히 하자!]

[토라: 사람끼리 사랑 중♡]

[현지: 아;;;;;;;;;;;;; 쌉극혐]

[청혼: ㅋㅋ]

[토라: 자기얌 쪽♡♡]

[청혼: 쪽쪽]

[토라: 이번엔 키쭈33]

[청혼: 적당히 하자]

[토라: 응]

[토라: 현지야 웃기냐?]

[토라: 치아 숨기자ㅋㅋ^^]

[현지: 아무 말도 안 했는디요;;]

[토라: 내가 우습니?ㅋ]

[토라: 저기 가서 뒤돌아 앉고 눈을 감아봐]

[토라: 그것이 너의 미래...~]

[현지: ㅗ]

[청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둘이 싫은 척하면서 은근 즐기는 것 같단 말이지. 나는 그들이 티격태격하는 것을 지켜보며 웃다가 윤정신에게 물었다.

[청혼: 오늘 머하구 놀았는데??]

[토라: 그냥ㅎㅎ 노잼 새끼들이랑 밥 먹고 당구 쳤음]

[토라: 에효효]

[청혼: 형 친구들은 뭐하는 사람들이야]

[현지: 뭐곗냐 양아치지]

[토라: 헐 정답 ㅋ]

[토라: 그냥 양아취예염^.^]

[청혼: ㅋㅋㅋㅋㅋ왜 양아치하구 놀아...]

[토라: 친구가... 없어서...]

[토라: 알잖아 우리 학교 양아치밖에 없는 거 ㅋㅋㅋ 고등학교 때 사귄 친구들은 다 거기서 거기]

나도 같은 고등학교인데. 졸지에 같이 묶여서 양아치가 됐다.

[청혼: 나랑 내 친구들은 양아치 아닌데]

[현지: 이건 다른 사람들 얘기도 들어봐야 한다]

[토라: 나 사진 본 적 있는데]

[토라: 솔직히 아니잖아 우기야 인정하자]

[청혼: 아닌데 양아치는 아님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토라: 그럼... 일진?ㅋ]

[현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ㅇㅈ]

하긴, 공부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 결석도 많이 했어서 친구들도 다 공부 안 하는 애들뿐이긴 했다.

근데 정말 양아치 같은 건 아닌데. 윤정신이 다닐 때 즈음에는 입결이 많이 낮아서 좀 그런 애들이 많았다 듣긴 했는데, 내가 다닐 때는 학교가 꽤 좋아져서 평범하고 얌전한 애들도 많았었다. 그래서 1지망 넣었던 거기도 하고. 하지만 이렇게 구구절절 해명해 봤자 놀림만 심해질 것 같아서 관두었다.

[청혼: 아무튼 난 아니잖아]

[현지: 내가 보기엔 너도 ㅋ]

[청혼: 공부 안 하면 다 양아치냐?]

[토라: 이종족 친구... 드디어 미친 거야?]

[토라: 우리 우기가 어딜 봐서]

[현지: ㄷㄷ; ㅋ ㅈㅅ염]

[현지: 와타시는 모범생이라 ^-^ 저 새럼 아무렇지 않게 학교 째는 거 좀 이해불가였음ㅎㅎ]

그건 사정이 있으니까 그런 거고……. 그런 일이 생기기 전에도 가끔 학교를 빠진 건 사실이지만 끽해야 1년에 두 번? 그것도 아파서였다.

[토라: 이렇게 순수하고 귀여운 양아치 봤냐]

[청혼: 그러니까]

[토라: ㅋㅋㅋㅋㅋㅋㅋ 오구오구><]

[토라: 너 우기 얼굴 보긴 봤냐 ㅋ]

[토라: 얼굴이 때 묻지 않았다고]

[청혼: 뭐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현지: ㅎㅎ...미친]

[토라: 얘도 니 얼굴 알아?]

[청혼: ㅇㅇ]

[토라: 왜??????????]

현지랑은 꽤 예전에 연락처를 텄었다.

[청혼: 번호 있어서]

[토라: 우리 자기 번호 삭제해줄래]

[토라: 널 삭제하기 전에??]

[현지: 오빠 주접 좀 떨지 마요]

[현지: 진상이야 진짜 ㅋㅋㅋ]

[토라: 주...접...?]

[현지: 아저씨 같아요ㅡㅡ]

[청혼: ㅇㅈ]

[토라: ㅠ자기야 인정한다고??]

[토라: 넌 내가 얼마나 정정한지 알잖아...]

[청혼: 아 알지알지]

모른다고 하면 또 주절주절 자기 정력이 어쩌니 낯부끄러운 소리를 해 댈 것 같아서 나는 다급하게 수긍했다. 정말이지, 시한폭탄을 떠안고 있는 기분이다.

[현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현지: 오빠 근데 진짜 돈 많아요??]

[토라: 응 갑부야 ㅎㅎ]

[토라: 집에 엘리베이터도 있어]

[현지: 헐 ㄹㅇ??]

[청혼: 아님 걍 아파트 살아서 저렇게 말하는 거]

[현지: 아 ㅅㅂㅋㅋㅋ속았다]

[토라: 야...ㅋ 속다니...ㅋ;; 난 거짓말 안 했어]

[청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현지: 어휴 ㅋ]

[토라: 사실 그케 부자는 아닌데]

[토라: 우기 먹여 살릴 돈은 있다]

[청혼: ㅋ...ㅋ.....]

[청혼: 맨날 구라 저런 식으로 쳐]

[청혼: 나한테는 자기네 집 찜질방 한다고 별로 부자 아니래서 그런가 했는데]

[청혼: 리조트랑 뷔페 딸린 고급 스파?? 그런 거였음]

말하고 나니 새삼 그때의 충격이 다시금 떠올랐다.

[현지: 미친ㅋㅋㅋㅋㅋ틀린 말은 아니네]

[청혼: 그러니까 ㅋㅋㅋ 어처구니가 없던데 걍]

[토라: 너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 싶엇어...]

[토라: 나의 계략]

[청혼: 형은 가끔 좀 오싹해]

[청혼: 무서워ㅋㅋㅋ 뭔가 무서운 게 형이 무뚝뚝해 보이고 차갑고 그래서 그런 게 아니고 뭔가]

[청혼: 좀 또라이 같음...?]

[토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토라: 너 그래서 내 별명도 맞췄었잖아]

[현지: 안 들어도 정신병자 ㅋㅋ]

[토라: ㅋ그래... 그거]

[토라: 양아치들이 나한테 억지로 붙인 ㅠ 슬픈 별명...]

[토라: 난 그저 피해자]

생각해 보면 윤정신이랑 대화하면서 지루하다고 느낀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말이 많아서 그런가? 하는 짓이나 말투 같은 것도 웃긴 편이고.

[청혼: 근데 형이 진짜 좀 주접 떠는 느낌이 있긴 하다]

[청혼: 까분다고 해야 하나??]

[현지: 나댄다?]

[청혼: 깝죽댄다 해야 하나?ㅋㅋㅋㅋㅋ 나댄다는 좀 그렇고]

[토라: 야 일로와바]

[토라: 이종족 면담 좀 하자 ㅋ]

[토라: 나댄다?????????]

[현지: ㅋㅋ]

[현지: 아 동생이 쳤네;; 잠시 화장실 다녀왔는데 뭔 일 있었나?ㅋ]

[청혼: ㄴㄴ없었음 ㅎㅎ]

윤정신은 나름대로 억울한 게 있는 듯, 자신을 변호하기 시작했다.

[토라: 야 나는]

[토라: 발랄한 거지...]

[토라: 버찌는 음침하고]

[토라: 현지 얘는 비열하고]

[토라: 우리 우기는 귀욤둥이~~ㅎㅎ]

[현지: 둘이 같이 나가]

[토라: 우기가 전에 내 계정 들어와서 내 친구 창에 귀욤둥이라는 카테고리 만들어서]

[토라: 거기에 자기 넣고 갔다고ㅋㅋㅋㅋㅋ]

[현지: ㅋㅋㅋㅋㅋㅋ조련하는 거 보소 감탄 ㄷㄷ]

[청혼: 형 그거 인정하는 거야?]

내 기억상 그게 다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토라: ㅇㅇ]

[청혼: 그거 버찌는 사랑해 카테고리에 넣었는데 ㅋㅋㅋ 서진 형이랑 바람 나려고?]

[현지: ㅋㅋㅋㅋ의문의 치정극]

[토라: 어 카테고리 째로 삭제 했어^^~~ 이제 모르는 작자]

[청혼: ㅋㅋㅋㅋㅋ진짜로?]

[토라: 다시 친추했지만ㅋ 순간 빡쳐서 삭제한 건 맞아]

둘이 사이 좋으면서. 항상 저렇게 서로 툭탁거리는데 이상하게 사이는 멀어질 듯 전혀 멀어지지 않는 게 신기했다.

[청혼: 형은 투닥거리면서도 서진이 형이랑 잘 지내네]

[토라: 친구 중에 멀쩡한 애가 걔뿐인 듯?ㅎㅎ]

[청혼: 하긴 버찌 착하잖아]

[현지: 그냥 엄친아 그 자체]

[현지: 근데 이 오빠는ㅋ 최우기 피셜로 돈 많고 키 크고 잘생겼다고...? 근데 뭐 어쩌라고... 그래봤자]

[현지: 윤정신인데... 약간 이런 느낌]

쟤는 왜 저 소리를 전하고 난리야? 귀에 열이 올랐다. 내심 흘려듣길 기도했는데, 역시나 윤정신은 그 부분을 캐치 하여 물었다.

[토라: ㅋㅋㅋ우기가 그렇게 말했어?]

[청혼: ㄴㄴ]

[청혼: ㄴㄴ;;]

[현지: 네네 라는 뜻]

[토라: 아 부끄뎡!!!]

[토라: 엄마한테 이렇게 낳아줘서 고맙다고 전화해야지~ㅋ]

[청혼: ㅋ...]

[현지: ㅋㅋㅋㅋㅋ오빠가 그러니까 깝친다고 욕먹는 거예요ㅋㅋㅋㅋ]

[현지: 아 개웃기네]

[청혼: 그딴 말을 왜 해]

[현지: 너 쪽팔리라고ㅋ 는 장난이고 두 사람 사랑이 더 불타길 바라는 맘^^]

[토라: 현지현지... 인간으로 진화했구나ㅎㅎ 나중에 기프티콘 하나 받아가]

[현지: 예]

[토라: 대답 좀 길게 해 줘 친구들아]

나는 얼굴에 손부채를 부치며 은근슬쩍 화제를 돌렸다.

[청혼: 형 근데 그 스파]

[청혼: 생각보다 더 늦게 갈 거 같음 아빠 휴무가 조정이 잘 안 돼서]

[토라: 아 응응ㅋㅋㅋ아무 때나 와 ㄱㅊ]

[현지: 헐 나도 스파...ㅋ]

[토라: 넌 돈 내고 와]

[현지: 야박...하다...^-^]

[청혼: ㅋㅋㅋㅋㅋ현지 윤정신 실물 감당 가능?]

[청혼: 나대는데 살아 움직여]

[현지: 아 ㅋ... 좀 아닌 거 같네]

[토라: ㅠㅠ자기야]

[청혼: 텐션 좋은 날에 진짜 죽어남]

[토라: 여태까지 날 그런 눈으로 보고 있었던 거야...?]

[청혼: 웅]

내가 단호하게 잘라 말하자, 윤정신도 딱히 변명할 말이 없는지 화제를 돌렸다.

[토라: ㅋㅋ]

[토라: 우기 귀여워]

[현지: ㅋㅋㅋ지금 할 말 없다 토라]

[토라: 아닌데^^]

[청혼: ㅋㅋㅋㅋㅋㅋㅋ형두 기여워]

[토라: 헉^^]

[현지: 맞다 청혼이 아까 오빠 없을 때]

[현지: 오빠 주접떠는 거 적응 되면 귀엽다고 했어요ㅋㅋ]

[청혼: ㅡㅡ]

[청혼: 형 쟤는 형한테 주접떨고 거렁뱅이 같다고]

[청혼: 나한테 왜 사귀냐고 했어]

[토라: ㅋㅋㅋ 요놈요놈... 큰 일 날 소리를]

[토라: 그로묜 종싀니는 우기한테 애교 막 막 부려야겓따 구쥐???]

[토라: 정시니 기여어??>_<]

나는 도저히 저 꼴을 못 보겠어서, 그냥 게임을 꺼 버렸다. 그러자 바로 윤정신에게 전화가 왔다.

[우기 화났어? 그만할게, 다시 와.]

“화 안 났는데? 나 이제 유×브 좀 보려고.”

[말도 없이 나가……. 놀랐잖아.]

“형이 자꾸 역겨운 애교 부렸잖아. 그 꼴을 어떻게 계속 봐?”

[왜애, 귀엽다면서?]

어쩐지 그 말을 하는 윤정신의 모습이 상상돼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텍스트보다는 육성이 낫다. 계속 통화할래?”

[하려고 전화했지. 내일 놀러 갈까?]

“어디로?”

[어……. 생각해 봐야지. 가고 싶은 곳 없어?]

“나도 생각해 볼게.”

아는 곳이 있어야 말이지. 귀찮아서 연애도 잘 안 했다 보니 데이트할 만한 곳을 잘 몰랐다. 친구들이 가는 곳은 왠지 형이 유치해 할 것 같고. 주변에 연상 만나는 애 없나?

[내일 날씨 괜찮다던데. 더 추워지기 전에 밖에서 많이 놀자.]

“그래. 저녁은 먹었어?”

[너 쉰다니까 지금 먹으려고. 아, 뭐 먹지. 밥 해 먹기 귀찮은데 뭐라도 좀 사 올걸 그랬네.]

윤정신이 고민하는 듯 흠, 하며 냉장고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뭐 꺼낼지 생각하고서 좀 열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다. 나는 그에게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라면 먹어.”

[라면 안 좋아해.]

“진짜? 엄청 좋아할 거 같은 느낌인데 의외다.”

[허허. 무슨 뜻이지?]

귀에 대고 있던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린다 싶더니 윤정신에게서 사진 한 장이 도착해 있었다. 생 양파를 찍은 사진이었다. 저걸 먹겠다는 건가? 웃겨서 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요즘은 전보다 윤정신과 보내는 시간이 즐겁다. 많이 친해지기도 했고, 확실히 호감도 많이 쌓였고……. 그냥 윤정신이 좀 웃긴 걸지도. 전에는 그런 우리를 지켜보던 서진 형이, 예전엔 둘이 아옹다옹하더니 지금은 꽤 꽁냥꽁냥 하는 것 같다는 말도 했었다.

[어때? 냉장고 채소 칸에서 키우고 있던 거야.]

“먹으면 배탈 날 거 같은데……? 아, 유×브 보지 말고 그냥 드라마나 영화 같은 거 볼까? 형 뭐 재밌는 프로 아는 거 있어?”

[나 영화는 잘 안 보고, 드라마는 좋아해.]

“그런 건 또 이미지랑 잘 맞네.”

[너 그거 욕이지?]

“아침 드라마 이런 거도 봐?”

[어머니 보실 때 같이 자주 봤어. 독립하기 전엔 많이 봤는데, 요즘은 딱히?]

“헐……. 알다가도 모르겠다, 형네 집은. 프리 한 분위기인지 그냥 흔한 부잣집인 건지.”

[그렇게 부자 아니라니까. 나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그때부터 사업 좀 잘된 거야. 원래 좀 그저 그런 리조트였는데 리모델링 하고 근처에 이것저것 생기면서 스파랑 뷔페도 하고, 뭐 그렇게 된 거지. 부모님 그냥 평범하셔.]

이렇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니, 내 안에 있는 그의 형태가 좀 더 모양을 갖춰 가는 것 같았다.

“그렇구나……. 또 그런 거 얘기해 줘. 형은 중학교 땐 어땠어?”

[당연히 공부 더럽게 못했지. 선생님들이랑은 친하긴 했는데, 뭐. 그냥 좀 나대는 애? 시끄럽다는 소리 많이 들었고. 지금이랑 비슷해.]

“인기 많았어?”

[어……. 글쎄? 나 어릴 때는 좀 싸가지가 없었어서.]

“지금은 있어?”

[야, 나도 철들고 나서는 안 그랬지. 아무튼, 성격 때문에 그런지 그땐 별로 나 좋다는 애들 없었어.]

“확신해? 성격 때문이야?”

[뭐길 바라냐, 그럼. 너도 나 잘생긴 거 인정했잖아.]

“우리 애인 좀 생겼지.”

[와, 나 그거 녹음하게 해 줘.]

“형이랑 같은 학교 다녀 보고 싶다. 재밌을 거 같아.”

교복 입은 윤정신? 뭔가 그편이 더 자연스러운 것 같기도 하다. 워낙 개구쟁이 같으니까. 대충 어떤 학생이었을지 상상이 갔다.

[집에 교복 있어? 너는 명찰 무슨 색이었어?]

“나 초록색.”

[맞네. 3바퀴 도니까 너도 초록색이구나. 교복 버렸어?]

“아니. 엄마가 추억 삼아서 남겨 두라 해서 아직 있는데.”

[아, 그래?]

“또 이상한 생각하고 있지? 야, 이 변태야.”

[어떻게 알았지. 나 그거 입어 주면 안 돼? 나도 입을게.]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긴 했지만 그래도 학교 다닐 때 교복 입는 거랑 졸업하고서 입는 건 느낌이 다른데. 후자가 압도적으로 창피하다.

“형은 진짜 반성이라는 걸 모르는 거 같아. 그리고 난 형 교복 입은 모습 하나도 안 궁금해.”

[헐……. 알겠어, 알겠어. 참을게. 나도 모르게 본심이……. 못 들은 거로 해 줘. 취소할게.]

그날 처음 한 건 나쁘진 않았는데. 아니, 솔직히 좋았다. 심적으로 불안함을 느껴서 그렇지 솔직히 행위 자체는 살면서 처음 느껴 본 쾌락이었다. 물론, 그만큼 통증도 있긴 했는데 사람이라는 게 참 간사해서, 시간이 조금 흘렀다고 또 그런 건 생각이 안 나고 침 질질 흘리면서 느꼈던 것만 생각이 났다.

……할까?

나는 고민이 되어 슬쩍 그를 찔러보았다.

“내가 교복 입어 주면 형은 뭐 할래?”

[어? 진짜 해 주게? 내가 뭐 해 줬으면 좋겠는데?]

나는 곰곰이 부탁할 만한 게 있나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워낙 평상시에 부탁을 잘 들어주는 편이라 마땅한 게 생각나지 않았다.

“나중에 말해도 돼?”

[너 혹시 내 말 다르게 이해한 거 아니지? 교복 입어 달라는 게 아니라, 입고 해 달라는 건데……. 괜찮다고?]

“형은 근데 그런 게 왜 좋아? 상황극 하는 그런 건가?”

[왜 그래, 부끄럽게……. 그런 거 묻지 마.]

“아니, 진짜 궁금해서. 그러면 더 꼴려?”

[너는 뭐 그런 거 없어? 뭔가 취향 같은 거. 야동 같은 거 안 봐?]

“보긴 보는데……. 난 좀 이상한 건 거북해서 안 봐.”

[아……. 집에 혹시 누구 있어?]

“형 있지.”

[너희 집 방음 잘돼?]

“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올 생각 하지도 마.”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혹시 폰 섹스 할래? 나 좀 섰거든.]

어휴, 이 미친…….

조용할 날이 없다. 잠글 수 있는 강철 팬티 같은 거라도 사 입혀야 하나?

“싫어. 절대 싫어. 형, 그냥 야동 하나 봐. 끊을게.”

[아, 끊지 마.]

“그럼 그대로 있으려고?”

[우리 집 올래?]

“안 돼, 늦었어.”

[자고 가면 되지. 아니면 내가 데리러 가고 데려다주면 되잖아.]

“……형, 진짜 발정 났어? 왜 그래, 형은.”

[난 네 목소리 들으면 아래가 불끈불끈해. 정말이야. 너무 섹시해, 자기야.]

“미친……. 아무튼 지금은 오버야. 봐도 내일 봐.”

[정말로? 내일 괜찮아?]

“뭐 그러든지…….”

[내가 진짜 만족시켜 줄게. 기대해도 좋아. 넌 교복이랑 몸만 챙겨서 오면 돼.]

윤정신의 은근한 목소리가 자꾸 수화기 너머로 흘러들자, 나도 괜히 부끄러워지고 체온이 올라가는 것 같았다.

“……알겠어.”

[언제 올래?]

“언제 갈까?”

[음……. 새벽 12시?]

“미친 소리 하지 말고.”

[그럼 아침. 나 못 참겠어. 빨리 물고 빨고 하고 싶단 말이야.]

“아침이면 눈 뜨자마자 가라고? 대낮부터?”

[왜 안 돼?]

“그냥 나 가고 싶을 때 갈게. 언제 눈뜰지도 모르겠고…….”

[언제든 와 주면 감사해. 현관 앞에서 무릎 꿇고 기다릴게. 나 근데 상상하니까 자꾸 더 커져서 자기 위로의 시간을 가져야겠거든? 이따 연락하자. 사랑해, 자기야.]

“……그런 건 좀 조용히 해도 돼, 제발. 자기 전에 연락해.”

[응.]

나는 웃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끊었다.

* * *

다음 날 아침. 나는 가져가려고 전날 쇼핑백에 챙겨 두었던 교복을 깜빡 놓고 와 버렸다.

윤정신네 집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키스를 하고, 이후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반기던 그가 곧 실망스러운 눈으로 내 빈손을 바라보았다.

“자기, 왜 빈손이야?”

“왜? 아, 맞다. 미안. 깜빡했네.”

“……내 건 크겠지?”

“다시 가서 가져올까?”

“아니. 번거롭잖아. 괜찮아, 그럴 수 있지.”

애써 괜찮다고 하지만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지라 영 눈치가 보였다. 나는 결국 우물쭈물 입을 뗐다.

“뭐, 다른 건 없어? 교복 말고.”

“입어 줄 거야?”

“너무 이상한 것만 아니면…….”

“나 그럼 에이프런만 입어 주면 안 돼?”

“……그게 좋아?”

“싫으면 어쩔 수 없고…….”

“아니, 해 줄게. 어디 있는데?”

“잠깐만!”

윤정신이 후다닥 에이프런을 챙기러 사라졌고, 나는 뻘쭘하게 소파에 앉아 그를 기다렸다.

쟤는 부끄럽지도 않나 봐. 나만 이렇게 쑥스러운 건지 궁금했다. ……그래, 품 안에 에이프런을 안고 싱글벙글 웃으며 오는 꼴을 보니 하나도 부끄럽지 않아 보인다.

윤정신이 은근한 손길로 내 허리를 감싸며 손에 에이프런을 쥐여 주었다. 나는 그의 눈빛을 피하며 그것을 받아 들었다. 나는 침실 안으로 들어가 옷가지를 다 벗고 에이프런을 둘렀다. 왜 침실에 전신 거울 같은 게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거기다 모습을 비추어 보니 꼴이 가관이었다.

……이딴 게 좋다고?

전신 거울 위치가 부자연스러운 걸 보면, 원래 제 드레스 룸 같은 곳에 있던 건데 부러 옮겨 놓은 것 같았다. 목적이야 뻔했다. 하여튼, 저 변태……. 가지가지 하는구나. 이불 없이 시트만 깔린 침대 위에 앉아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니, 윤정신이 침실 문을 열고 빼꼼 안을 들여다보았다.

“뭐 해……. 빨리 와, 장난치지 말고.”

“진짜 입었네. 나 들어가도 돼? 후회 안 하지? 지금 싫다고 하면 무를게.”

“……들어와, 그냥.”

내 대답에 윤정신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그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와 양손으로 내 볼을 감쌌다.

“네가 이러고 매일 저녁마다 나 기다려 주고 있으면, 아침 8시부터 출근한대도 행복할 것 같아.”

“내가 잘도 그러겠다. 게임 한다고 나가 보지도 않을걸.”

“완전 꼴리고 좋을 거 같은데.”

윤정신이 침대에 앉아 있던 내 손을 잡아끌었다. 순순히 이끄는 곳으로 따라갔고, 도착한 곳은 식탁 앞이었다. 윤정신이 나를 번쩍 들어 올려 혼자 사는 사람이 쓰기엔 넓다고 생각했던 식탁 위에 앉혔다.

윤정신이 내 다리를 벌리고 허벅지 사이에 섰다. 아슬한 기장의 에이프런이 내 중심부를 가리고, 시허연 허벅지만이 드러나 보였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나도 천천히 눈을 감았다. 곧 윤정신의 입술이 닿았고, 내 아랫입술을 조금 빨던 그가, 곧 내 입속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매끈매끈하고 통통한 살이 내 혀와 얽히며 입천장을 긁었다가, 혀뿌리를 건드렸다가, 치열을 훑었다가 야단을 피워 댔다.

키스도 꼭 저처럼 정신없이 한다. 나는 혀를 섞는 것만으로 꽤 느껴 버렸다. 윤정신의 손은 슬금슬금 맨살로 파고들어 내 가슴으로 전진했고, 나는 숨이 딸려 할딱거렸다. 윤정신이 손가락으로 내 젖꼭지를 잡아 꾹 눌렀다가, 슬슬 돌렸다가, 쓸었다가 당겼다가 하며 완급 있게 애무하기 시작했다. 그는 한껏 나를 몰아붙인 후에야 입을 뗐다.

쪽, 하는 소리와 함께 침이 쭉 늘어났다. 그가 혀로 그것을 감아올린 뒤, 에이프런 천을 옆으로 살짝 밀어 젖꼭지를 입에 담았다.

“아…….”

“자기야, 신음 너무 섹시해. 더 크게 해 줘.”

“그런 소리 좀 하지 마. 읏…….”

그의 몰캉거리는 혀가 따뜻하고 축축하게 내 젖꼭지를 감싸고 문지르자, 감각이 예민하게 곤두서기 시작했다.

……미치겠네, 오늘따라 왜 이렇게 흥분되는 거 같지? 윤정신의 손은 내 등허리와 엉덩이를 쓸어내리고 있었고, 입술과 혀는 여전히 젖꼭지를 유린하고 있었다. 그는 혀를 평평하게 해 가슴팍과 함께 젖꼭지를 쓸어 올리기도 하고, 혀끝을 세워 젖꼭지를 빠르게 문질러 대기도 했다.

나는 결국 윤정신의 얼굴을 억지로 가슴에서 떼어 냈다.

“형, 형, 그만……. 이건 그만.”

“별로야?”

“아니……. 느낌이 좀…….”

그 대답에 윤정신이 다시 내게 입을 맞추며 천천히 나를 식탁 위로 눕혔다. 그가 내 몸을 조금 더 식탁 위로 올리며 내 허벅지 아래로 팔을 넣어 내 다리를 접어 올렸다.

그가 준비해 온 젤을 짜서 내 구멍 위를 적시며 어정쩡하게 서 있던 제 중심을 한껏 꼿꼿하게 세웠다. 그러곤 젤로 번들거리는 손가락으로 내 구멍을 풀기 시작했다. 나는 아래를 들락거리는 부끄러운 감각에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윤정신이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자기 숨 가빠졌다. 지금 얼마나 야한지 알아? 하아……. 진짜 박고 싶다. 조금만 참아, 자기야.”

“으응……. 하…….”

“그때 이쯤이었나?”

윤정신이 손가락을 휘저어 내 스팟을 찾아 헤맸다. 그는 곧 스팟을 찾아내 안쪽을 꾸욱 자극했다.

“하악, 형……. 빨리, 빨리…….”

“빨리 넣어 달라고? 그런 말 하면 나 자제심 잃는다, 정말로. 나 핑거링 잘하는데 손으로만 가게 해 줄까?”

“으응……, 혀엉…….”

내가 끝내 조르듯이 흐느끼자, 그가 내 구멍을 채우고 있던 손가락들을 빼내고 귀두를 구멍에 대고 비비적거렸다. 조금 안달이 나서 내가 손을 허우적거리자, 그가 내 손을 맞잡으며 아래를 쑥 밀어 넣었다.

“흐윽.”

“하아……. 자기야, 힘 빼야지.”

미끄덩한 것이 꽤 빡빡하게 안으로 머리를 밀고 들어왔다가 다시 나갔다. 윤정신은 다시 천천히 제 것을 내 구멍에 꽂아 넣었다.

잊고 있었던 통증이 다시 현실 감각으로 닥쳐오자, 괜히 한다고 했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내가 주먹을 꽉 쥐고 아픔을 참자, 겨우 그의 것이 뿌리까지 들어왔다.

“으으…….”

“괜찮아. 힘 빼 봐. 응? 천천히.”

윤정신은 내가 압박감에 적응할 수 있게 조금 기다려 주다가, 천천히 피스톤질을 시작했다.

퍽, 퍽. 느린 속도로 박히던 것이 점점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의 귀두가 내 전립선을 노리며 안으로 처박혀 들었다. 그곳을 자극 받을 때마다 교성이 터져 나왔다. 통증과 쾌락이 전혀 다른 원색 물감이 섞이는 것처럼 뒤죽박죽 섞여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았다.

“아앗……. 아! 으읏, 아, 형……. 아읏, 아응, 아! 아! 형, 으응!”

“하아……. 윽, 하…….”

식탁이 끼걱거렸다. 다리가 허공에서 맥없이 흔들렸고, 윤정신은 내 허벅지를 잡은 채 굵직한 제 성기를 내 아래에 힘 있게 계속 박아 댔다. 그러다 그가 조금 조급한 것처럼 퍼억, 한층 세게 제 것을 깊은 곳까지 박아 넣었을 때, 나는 그가 사정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이미 한 번 사정을 하고 꽤 시간이 지난 후였다. 윤정신은 내 몸을 꽉 끌어안은 채로 몇 차례 정액을 내 안에 쏟아 냈다. 곧 그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연신 내 볼에 입을 맞추었다. 나도 부르르 떨며 두 번째 사정을 했다.

무어라 말할 기운도 없어서 숨만 몰아쉬고 있으려니, 그가 조용히 나를 돌려 눕혔다. 이번엔 발이 땅에 닿았다. 나는 식탁에 상반신만 엎드린 채로, 이번엔 뒤에서 그를 받았다.

“아아……, 아…….”

내 몸을 뒤에서 감싸 안는 그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윤정신과의 체격 차이를 새삼 체감했다. 이렇게 품에 쏙 들어갈 정도였구나……. 생각은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곧 그가 내 엉덩이 사이에 철썩이는 마찰음이 날 정도로 제 물건을 박아 댔다.

“아아! 앗!”

“하아……. 자기야, 좋아? 난 미치겠는데……. 네 구멍 안 환장하게 좋다. 넌 내 거 어때?”

“아윽. 형, 좀 천천히 좀…….”

“너도 내 거 어떤지 말해 줘.”

“좋아, 좋다고. 아, 형……. 으윽, 형, 침대, 침대로……. 여기 너무 딱딱해.”

“말해 주면 갈게.”

그러면서 그는 허리 짓에 박차를 가했다. 나는 욕지기가 치밀었다.

“아오, 어떻긴 뭐가 어때!”

“말해 줘, 빨리. 응? 자기 느낌이 어때?”

“딱딱하고…… 크고, 아으……. 미치겠어.”

윤정신은 대답을 들은 뒤에야 제 성기를 쑤욱 빼내고 나를 번쩍 들어 침실로 옮겼다. 그는 내 몸이 침대에 떨어지자마자 내 다리 사이로 파고들어 제 성기를 다시 쑤셔 넣었다. 그러곤 다시 허리를 쳐올리기 시작했다.

“아아! 앗! 아!”

그의 몸은 개처럼 엎드린 내 등 뒤에서 완벽하게 나를 감싸고 있었다.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기분 좋은 무게감이었다. 윤정신이 느릿하게 아래를 비볐다.

“자기 너무 섹시해. 알아? 자기도 거울로 자기가 얼마나 섹시한지 한번 봐. 그리고 우리 연결된 것도……. 보여? 거울이 너무 먼가.”

“으으……. 됐어…….”

“그럼 만져 볼래? 우리 진짜 꼭 맞물려 있거든……. 아으……. 자기야, 너무 좋아.”

그가 다시 속도를 올려 피스톤질을 하기 시작했다. 내벽을 제멋대로 찍고 휘젓는 성기가 느껴졌다. 완전히 발기한 상태라 크기가 조금 버거울 정도로 컸다. 나는 전립선을 쿡쿡 찌르고 비비는 그의 귀두에 교성을 내질렀다. 살이 철썩거리며 마찰하는 소리가 방 안에 가득 찼다.

“아윽…….”

내가 새된 신음과 함께 사정하자, 그의 허리가 잠시 움찔하더니 곧 내 등을 끌어안으며 꿀렁꿀렁 정액을 토해 냈다. 내가 사정하면서 내벽이 좁아지자 견디기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사정의 여운으로 몸에 힘이 빠져 축 늘어지자, 윤정신이 에이프런 리본을 풀어 주며 내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곤 뒷처리를 해 주겠다며 나를 안고 욕실로 들어갔다. 그가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고 안에 찬 정액을 빼 주는가 싶더니…….

“아윽!”

“허억……, 헉……. 자기야, 욕조 꽉 잡아.”

“아으, 아아! 아읏!”

윤정신이 성기를 박아 넣을 때마다 따뜻한 물이 함께 들이차는 기분이었다. 나는 미끄러질세라 온 힘으로 욕조를 붙든 채 아래에서 빠르게 박아 올리고 있는 그를 감내해야 했다.

내가 이러다 미끄러질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그가 내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어 나를 제 위로 앉혔다. 꿀꺽대며 그의 성기가 안쪽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다. 그가 손으로는 내 성기를 쓸면서 구멍으로는 계속 성기를 박아 넣었다. 앞뒤로 자극이 오니 미칠 것 같았다.

“형, 형……. 잠깐만, 그만…….”

내가 반쯤 애원하며 사정하자, 그가 성기를 쑤셔 박던 걸 멈추고 제 가슴팍에 나를 기대게 하여 천천히 앞쪽만 쓸어 올렸다. 

윤정신의 손이 느릿느릿하게 내 성기를 애무했다. 내가 결국 참지 못하고 허리를 비틀자, 그도 못 참겠는지 성기가 연결된 채로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가 움찔움찔 아래를 박아 올리면서 천천히 비틀거리듯 욕실을 나섰다.

결국, 욕실 문 앞에 주저앉은 내게 가운을 입혀 대충 물기를 제거한 그가 다시금 나를 침대에 던지듯 옮겨 놓고 위로 올라탔다. 그러곤 가운을 걷고 내 한쪽 다리를 잡아 벌리며 단번에 안을 꿰뚫었다. 윤정신은 몹시 흥분한 상태인 듯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빠르게 허리를 박아 올렸다.

신음 소리만이 방에 울려 퍼졌다. 윤정신은 말도 없이 한동안 내게 박아 넣는 것에만 집중했다. 나는 이 적막이 굉장히 어색한 한편, 그가 주는 쾌감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색욕의 시간이었다. 점액들이 마찰하며 내는 묘한 소리만이 요란했다.

“하윽!”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게 한계다. 나는 이것이 마지막 사정이기를 바라며, 곧 꿈틀거리며 정액을 쏘아 내는 그의 성기를 가만히 느꼈다.

* * *

한바탕 뜨거운 시간이 지나가고, 나는 개운하게 씻은 뒤에 욱신거리고 나른하게 늘어지는 몸을 푹신한 소파 위에 건조시켰다.

TV를 보면서 누워 있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지치지도 않는지 평소보다 한결 산뜻해 보이는 모습으로 가운을 걸치고 나온 윤정신은 맥주 한 캔을 따 마시며 내 몫으로는 주스를 건네주었다. 길고 주름이 많은 빨대도 함께였다.

“아……형, 나 너무 힘든데. 내일 앓아누울 거 같아……. 파스라도 붙여야 하나?”

“푹 쉬면 좀 나을 거야.”

그가 내 몸을 가볍게 마사지해 주었다. 그래도 좀처럼 힘이 나질 않아, 오늘은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할 판이었다.

체력을 다 소진한 것 같다. 윤정신은 계속 먹을 것들을 가져다주고 화장실까지 업어다 주는 등 살뜰하게 나를 챙겼다. 그래, 지가 그런 거라도 안 하면 어쩔 거야.

나는 새삼 그와 이런 관계가 된 게 신기했다. 처음에는 동영상 몇 번 본 스트리머였고, 다음에는 좀 또라이 같은 버찌 친구이자 고정 파티원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윤정신이라는 자기만의 정체성으로 생겨나더니 확고하게 저 만의 위치를 잡아 버렸다. 오히려 주객이 전도되어 버찌가 그 부속물처럼 느껴질 정도이니……. 처음에는 윤정신, 나한테 별로 관심 없었던 것 같은데.

“형. 내 첫인상 어땠어?”

“응? 언제 처음 봤더라. 나 여행 갔다 온 후였나?”

“아, 맞아. 그때 형 해외여행 중이라 제일 늦게 소개 받았잖아. 그래서 나 보고 스무 살이면 군대 때문에 고정 팟 오래 못한다고 막 그랬었는데.”

“……내가? 미안. 솔직히 처음은 잘 생각 안 나. 그때 정신이 좀 없었어서……. 처음 던전 돌기로 한 날에 너 제대로 처음 봤던 거 같은데.”

“어땠어?”

“그냥, 어리니까 귀여웠지. 근데 그 베르사유 하드에서 유사 슈팅 게임 같은, 그 칼날 쏘는 패턴 스킬 모션으로 다 피하는 거 보고 ‘와, 저 새끼 뭐야?’ 이랬어. 좀 귀엽고 신기한 애? 너는?”

“나는 유×브로 처음 봤었어. 그땐 ‘와, 멋있다’ 생각했었는데, 형 입이 트이기 시작하면서 와장창 깨졌지. 난 근데 형이 나한테 관심 있을 거라곤 진짜 생각 못했거든. 처음에는 막 나랑 버찌 이상하게 엮고 나한테 욕도 쓰고 그랬잖아. 그래서 장난하는 줄 알았는데.”

“아……. 맞아. 이서진이랑 사이 묘했지. 처음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지내다 보니까 나도 너 좋아지기에 그냥 뺏어 왔어. 이서진이랑 더 어떻게 되기 전에 내가 선수 치려고. 그러니까 이서진도 할 말 없는지 대놓고 뭐라고는 못하고. 아, 웃겼는데.”

또 저 소리네.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서진 형은 당연히 이성애자일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장난친 거지 정말 아무 감정 없었는데. 서진 형 성격이 워낙 좋기도 하고, 얼굴도 진짜 잘생겼고, 돈도 많은데 싫어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심지어 나한테 잘해 주는데…….

진짜 윤정신이 생각하는 그런 감정은 아니었다. 정말 인간적으로 좋았을 뿐이었다. 애초에 내가 서진을 좋아했으면 왜 윤정신을 만났겠는가? 그 정도로 매너 없는 사람은 아니다.

“뭐가 묘해? 맨날 그 소리야.”

“너보다는 이서진이 좀 그랬지. 유난히 간지럽게 굴어서.”

나는 그의 말에 어리둥절해졌다. 원인이 서진이라면 더 이해가 안 간다.

“그런가? 원래 성격이 좀 그렇지 않아?”

“아니야. 착한데 그래도 자기주장 있는 편?”

“내가 많이 동생이라 그런 거겠지.”

“흠. 아무튼, 내가 보기엔 좀 그랬어. 아니면 나야 더 좋은 거고. 근데 이서진한테 그때 내가 그랬다는 뉘앙스로 말하니까 걔도 무슨 소리인지 알겠다는 눈치였는데. 딱 이랬어.”

윤정신이 몹쓸 재현을 했다. 그는 팔짱을 끼고 어이없음 반, 웃김 반이 담긴 눈으로 피식 웃었다. 

“헛소리한다 싶었겠지. 형 바보야?”

“아니라니까. 넌 이서진이랑 알고 지낸 지 얼마 안 됐잖아. 잘 몰라서 그래. 근데 내가 이런 걸 왜 이렇게 열심히 피력하고 있지? 뭐, 아무튼 이 얘긴 그만하자. 이서진이 너 안 좋아하면 난 좋은 거지.”

“그러니까.”

“그냥 좀 넘어가자. 자기는 맨날 나 혼 내.”

윤정신이 툴툴거리며 한편으로는 내 손을 잡았다.

서진이 형, 평소 성격은 좀 다른가?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가 다른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던가 골똘히 떠올려보고 있는데, 윤정신이 내 손을 조물조물하며 손금을 유심히 봤다.

“오오. 생명선 길다.”

“손금 볼 수 있어?”

나는 놀라서 물었다. 신기하네, 그런 재주가 있었나?

“응. 어디 보자……. 재물 운이 있네. 돈 많은 스물일곱 살 남자랑 결혼해서 부자 되는 운명인데?”

또 시작이네, 되도 않는 수작. 그러면 그렇지……. 나는 쯧쯧 혀를 찼다. 

“그냥 손 달라고 그래.”

“에구, 좋다. 우기 손 보들보들해.”

그가 실실 웃으며 내 손에 제 볼을 비볐다.

좋아 죽는구나. 다시 일상적인 분위기가 되자, 잊고 있었던 배고픔이 꼬르륵거리며 아우성을 쳤다.

“배고파…….”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딱히 생각나는 건 없는데……. 국물 있으면 좋겠어. 밥 먹고 싶다.”

“음, 잠깐만.”

윤정신은 침실로 가 옷을 입고 나와선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며 한참 무언가 하는 듯했다. 그리고 얼마 후, 지갑을 챙겨 어딘가로 나가려는 듯 채비를 했다. 나는 당황해서 물었다.

“형, 어디 가?”

“응. 나가서 먹을 거 포장해 올게. 역시 내가 만든 건 좀 그래서. 나만 먹는 거면 괜찮은데, 너 먹이기가 좀…….”

“괜찮은데……. 나 먹어 볼래.”

윤정신이 내키지 않는 눈치로 미적거리며 찌개를 조금 덜어 왔다.

“된장찌개 하려고 했는데…….”

나는 그가 끓인 찌개를 한 스푼 떠먹어 보았다.

“엥? 괜찮은데?”

“괜찮아?”

“기대를 안 해서 그런가 괜찮은데? 형 요리 되게 못하는 건 아닌 거 같아.”

“그래?”

윤정신이 촐랑거리며 그릇을 들고 부엌으로 갔다. 그는 다시 찌개를 끓이며 여러 가지 밑반찬들을 꺼냈다. 나는 비틀비틀 걸어 식탁 앞에 앉았다. 기척을 느꼈는지 윤정신이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나 부르지, 부축해 주게.”

“괜찮아.”

“방석 줄까? 잠깐만.”

윤정신이 아예 제 컴퓨터 의자를 가지고 와 그 위에 푹신한 방석까지 깔아 주었다. 게다가 담요까지…….

“다음에는 연습해서 더 맛있게 해 줄게. 100첩 반상 어때?”

“거짓말.”

“정말인데. 너랑 있으면 내일이 막 기대돼.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거든, 정말로. 굳이 재밌는 일 찾아서 안 해도, 뭘 해도 너무 행복해서 좋아.”

“나도 형 만나는 거 좋아.”

왠지 익숙한 말이었다. 저런 말 어디서 들었더라?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가 덥석 내 손을 잡았다. 그러곤 곧장 내 의자 등받이를 잡고 입을 맞추었다.

나는 이번에는 그의 키스에 응하며 함께 혀를 섞었다. 그러자 그가 한쪽 무릎으로 의자를 눌러 고정하며 양손으로 내 볼을 감싸고 더 깊게 입을 맞추었다.

밥이고 뭐고, 2차전의 시작이었다.

* * *

나는 결국 윤정신이 내어 준 과일 몇 조각만 겨우 먹고 기절한 듯 잠에 빠져들었다.

가족들에게는 윤정신이 연락하기로 했고, 결국 그의 집에서 자고 가게 되었다. 몸이 욱신거려 새벽에 몇 번 깨어나 뒤척거렸는데, 그때마다 윤정신은 내 등을 토닥이며 나를 다시 재우려고 애썼다.

“미안……. 나 때문에 밥도 못 먹고…….”

나는 대답 대신 팔을 힘겹게 움직여 그를 안아 주었다. 윤정신이 내 쇄골에 코를 묻으며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런 것도 나쁘진 않네. 나는 그러다 또 까무룩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땐 다시 그의 품에 안긴 채였다. 따뜻한 체온과 편안한 체취가 좋았다. 꽤 개운하게 잔 것 같았다. 윤정신은 아직 꿈나라였다. 나는 물이라도 한잔 마실까 싶어 몸을 일으켰다가 그대로 다시 벌러덩 누워 버렸다. 

미친, 허리가…….

팔이나 어깨, 등 근육,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윤정신도 어제 그렇게 달려들고는 피곤하긴 했는지, 내가 꽤 푸닥거리며 기척을 내도 깨어나지 않았다.

나는 손으로 윤정신의 잠든 얼굴을 살짝 만져 보았다. 콧대 되게 오뚝하네. 쌍꺼풀 선이 짙구나. 그의 얼굴이 움찔거리며 일그러진다 싶더니 곧 그가 눈을 떴다.

“미안. 깼네.”

“으응. 언제 일어났어?”

윤정신이 크게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켰다. 말 안 해도 척하면 척인지, 그는 어정쩡한 자세로 누워 있던 나를 조심스럽게 일으켜 세워 주었다.

“뭐 좀 마실래? 화장실은?”

“나 물…….”

윤정신은 내 등 뒤에 쿠션을 여러 개 받쳐 놓고 후다닥 주방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그가 빨대를 꽂은 물컵을 가지고 나타났다.

“마사지 좀 해 줄까? 많이 아파?”

“응. 나 파스…….”

“파스가 있으려나. 일단 욕조에 따뜻한 물 받아 놓을 테니까 찜질 삼아 하고 있을래?”

“아니……. 기운 빠질 거 같아.”

윤정신은 안절부절못하며 방을 돌아다니다가 조심스럽게 내 몸을 마사지해 주었다.

“……미안. 이 정도일 줄 몰랐는데.”

“아파……. 운동 안 하다가 너무 힘을 줘서 그런지 으슬으슬해.”

“몸살인가? 감기 기운 있는 건 아니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때, 그가 내 허리를 꾹 눌러 마사지했다. 다른 부분과는 조금 다른 통증이 주변으로 번졌다.

“아아……. 살살 해…….”

“어떡하지? 자극하면 더 안 좋으려나?”

“허리는 누르지 말고 다른 곳 좀 해 줘. 아, 나 집에 어떻게 가…….”

“미안……. 잠깐만, 찜질 팩 같은 게 없네.”

윤정신은 내 등과 어깨를 주물러 주면서 한 손으로는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어, 서진아. 너희 집에 혹시 찜질 팩 같은 거 있냐?”

수화기 너머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장난하냐? 없지, 당연히. 내가 찜질방에서 사는 거도 아니고. 아무튼, 없냐고? 아니, 내가 아니고 우기가 골골거려서. ……사 온다고? 그럴래? 오면 돈 줄게. 야, 올 때 아침 할 만한 거도 좀 사 와. 간단한 거.”

통화를 마쳤는지 윤정신이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나는 왠지 그 대화가 웃겨서 푸핫, 웃었다.

“서진이 형이 찜질방 집 아들인데 찜질 팩 없냐고 그랬지?”

“어? 들려?”

“아니, 그냥 짐작. 그러게, 형은 찜질방 집 아들이면서 찜질 기구가 하나도 없냐?”

“서진이가 아침도 사 온대. 조금만 참아.”

“나 아침 잘 안 먹는데…….”

“알아. 그래도 먹어.”

그 뒤로 1시간쯤 지났을까? 윤정신과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누며 침대에 누워 있는데 초인종이 울리며 서진이 나타났다. 오랜만에 보는 느낌이었다.

“우기, 안녕.”

“형, 오랜만.”

“허리가 왜 그렇게 됐어? 아프면 집에서 쉬지.”

서진이 들고 온 봉투를 식탁에 내려 두곤 자연스럽게 물을 한잔 떠 마셨다. 윤정신이 허튼소리 하지 말라는 듯 서진의 등을 툭 쳤다.

“내가 간병하고 있잖아. 그리고 허리는 묻지 마라.”

“아……. 뭔지 알 것 같네. 적당히들 하지 그랬어. 그러다 말년에 고생할라.”

“밥 뭐 사 왔냐?”

윤정신은 찜질기를 조작하느라 정신이 없고, 서진은 아침 대용으로 사 온 샌드위치를 봉투에서 꺼내 정리했다. 먼저 볼일을 마친 서진이 침대 앞으로 와 슬쩍 내 허리를 눌러 보았다.

“아야야…….”

“심한가 본데? 쟤는 이렇게 될 때까지 왜 했대. 우기야, 일어나서 뭐라도 좀 먹어.”

“앉아 있는 게 좀…….”

“침대는 푹신해서 괜찮지? 가져다줄게.”

“온몸이 욱신거려서 미치겠어. 내가 체력이 좀 안 좋아서……. 근육통 온 거 같아.”

“집에는? 연락했어?”

“응.”

“쟤도 참……. 이상한 건 안 시키고? 그런 거 싫으면 싫다고 분명하게 말해야 해.”

“어……. 괜찮았어.”

“다행이네.”

사실 아니었지만. 왠지 그런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워서 그냥 어물쩍 넘겨 버렸다.

서진이 여전히 찜질기 설명서를 붙들고 골머리를 앓고 있는 윤정신을 보며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그래도 진심이긴 한가 봐. 정성이네. 저러는 거 처음 봐.”

“내 시종이잖아.”

“그러니까. 원래 그렇게 숙이고 들어가는 애가 아닌데……. 솔직히 좀 걱정했는데 기우였나 봐. 너 아픈데 할 소리는 아닌가? 저러는 것만 좀 어찌 하면 좋겠는데.”

무어라 대답하려는데, 윤정신이 찜질기를 들고 방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가 나를 일으켜 앉혔다.

“자기야, 만세 해 봐.”

윤정신은 내 허리에 찜질기를 감고 작동을 시켰다. 서진이 불만스러운 듯 뚱하게 그를 보았다.

“너 나한텐 맨날 우기랑 가깝게 지내지 말라고 뭐라 하면서 이런 건 왜 꼭 나 부르는데?”

“너 아니면 누구 부르냐?”

“그럼 구박을 말든지.”

“너 어차피 한가하잖아. 그래서 싫냐? 친구 도와주는 건데?”

“어, 싫다. 어쩔래? 너 필요할 때만 부르지 말고 놀 때 좀 불러 주든지. 뭐야, 맨날.”

“우리 자기랑 놀아서 뭐 하려고?”

서진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식탁으로 가 아까 꺼내 두었던 샌드위치를 가지고 왔다.

“네 남자 친구가 너랑 눈도 마주치지 말래. 너무한 것 같지 않아?”

“원래 좀 저렇잖아. 무시해.”

“그런 말 하면 쟤 또 너 가고 난 뒤에 조용히 전화해서 정색하고 화낸다? 남의 애인이랑 왜 그러냐고, 그걸 뭘 받아 주고 있냐고. 나한테만 뭐라 그래, 쟨.”

서진이 은근 쌓인 게 많았는지 계속 투덜거렸다. 사람을 얼마나 들볶았으면……. 친구 해 주는 것에 감사해야 할 수준이다.

윤정신이 민망한 듯 서진의 팔을 툭 쳤다.

“그래서 삐쳤냐? 알겠다, 알겠어. 뭐라 안 할게. 됐지?”

“대체 뭘 얼마나 들볶았기에 그래? 서진이 형 화 난 거 같은데?”

“아니야. 쟤가 오버 하는 거야.”

“너 나한테 이러는 거 양심 없는 거 알지?”

서진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팔짱을 꼈다. 윤정신도 반쯤은 장난으로 그의 멱살을 쥐었다 놓았다.

“짜증 나게 하지 마라.”

“양심 없는 건 맞잖아. 아니야?”

“아니지. 나 잘못한 거 없는데?”

“와……. 점점 뻔뻔해지는데?”

나는 그들의 대화를 뒤로하고 샌드위치를 먹었다. 서진이 샌드위치와 함께 마실 커피도 사 와서, 나는 컵 홀더 삼아 윤정신의 손에 커피를 들려 놓았다.

두 사람은 이제 뭔지 모를 사업 이야긴지, 집안 이야기인지 아무튼 어려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화로운 분위기가 좋았다.

“이따 공원이나 갈까?”

“차 끌고 왔어? 얘 이래서 어떻게 가. 안 돼.”

“그러네. 혹시 답답할까 봐서. 우기는 호신술이나 운동 같은 거 배워 보면 어때? 몸이 진짜 많이 약한가 보다.”

“야, 그런 게 아니고. 알잖아, 너 전에 봤지?”

“뭘?”

“내가 좀 크잖아. 팔팔하거든. 멈추지 않는 그, 엔진. 어?”

내가 사레들려 기침을 해 대자, 윤정신이 웃으며 커피를 내밀었다. 서진이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런 이야기를 내가 왜 듣고 있지?”

“부러우면 너도 연애해.”

“안 그래도 부모님이 요즘 선보라고 난리시다. 귀찮아 죽겠어.”

“그래서? 맞선 보게?”

“아니. 결혼 생각 없어서. 넌 그런 이야기 없어?”

“우리 부모님은 나 진작 포기했지. 얼마 전에는 통화하는데 애인 있냐길래 있다니까, ‘이번엔 남자니, 여자니?’ 그렇게 묻는 거야. 아, 웃겨 가지고.”

“부럽다. 우리 부모님은 집요하셔서.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니까.”

“계약 결혼해, 계약 결혼. 어디든 가서 우리 우기한테 그만 집적거려.”

“왜? 우기 나한테 장가오기로 했어.”

서진이 웃으며 말하자, 윤정신이 표정을 갑자기 싹 굳히며 짜증을 냈다.

“지랄하지 마라. 너 진짜 왜 그러냐?”

“농담이지, 농담. 또 화낸다. 넌 진짜로 내 연애 훼방 놔 놓고.”

“진짜? 윤정신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내가 궁금해서 물어보니 윤정신의 표정은 썩어 들어가고 서진은 재미있다는 듯 한껏 미소를 지었다.

“이서진 그만해라. 진짜 화낸다.”

“왜? 알려 줘. 나 궁금해.”

“얘가 내가 작업 치던 사람 뺏어 간 적 있어, 중간에.”

“그게 가능해? 뺏길 수가 있나?”

내가 믿을 수 없어 되묻자, 윤정신이 발끈하며 말했다.

“야, 당연히 가능하지. 내가 얘보다 훨씬 나은데. 얘가 10명 사귀면 10명 다 뺏을 수 있어.”

“응. 뺏기더라고. 뭐 해 보기도 전에 그렇게 돼서.”

“그리고 그게 뭐가 연애 훼방 놓은 거야? 그냥 같이 좋아했는데 내가 먼저 꼬신 거지.”

“야, 상도가 있지……. 너 내가 복수한다, 정말로.”

“그래라, 그래. 난 우기랑 평생 살 건데? 복수할 틈도 없을걸.”

“바람날 거야. 우기랑 둘이서 섬으로 여행 갔다 와야지.”

“죽여 달라 이거지?”

서진이 작게 웃으며 알겠다는 듯 손을 작게 내저었다.

“미안, 미안. 그만할게.”

“너 이따 내 전화 받아라.”

“아, 큰일 났다. 우기야, 말려 줘. 네 애인.”

“내 능력 밖이라. 미안. 그리고 난 윤정신이랑 평생 살지도 않을 거고, 형이랑 여행도 안 갈 건데 형들끼리 떠들지 말아 주라.”

서진은 마냥 웃긴 것 같았고, 윤정신은 섭섭하다는 표정이었다.

“나랑 평생 안 산다고? 너무해.”

“어떻게 평생 살아?”

“야. 그래도 사귀는 중에는 빈말로라도 그런다고 해 줘야지!”

“알겠어, 형이랑 평생 살게, 빈말이지만. 됐지? 왜 또 삐쳐. 형 삐돌이야?”

나는 또 한껏 삐쳐 있는 윤정신을 위로해 주려 손을 뻗었고, 그는 뻔뻔스럽게 내 손에 제 볼을 가져다 대며 입을 비쭉였다. 서진이 그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윤정신은 조용히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그래도 너희 제법 커플 같다, 이제. 전에는 영 친구 같더니.”

“웃기시네. 항상 커플 같았는데.”

“아. 그렇지, 그렇지.”

“너 자꾸 까불어라.”

“미안하다니까. 진짜 농담이야. 넌 왜 맨날 네가 불러 놓고 구박해? 부르지를 말든지.”

“이제 진짜 안 부른다, 너.”

“아, 잘못했어. 불러 줘, 계속. 진짜 장난 안 칠게.”

나는 서진과 아옹다옹하며 점점 나에게 기대 오는 윤정신을 손바닥으로 탁탁 쳤다.

“아, 형. 기대지 마. 나 허리 아파.”

“어? 미안, 미안. 괜찮아?”

“나 이제 그만 먹을래. 뭔가 소화가 잘 안 돼.”

나는 먹던 샌드위치를 윤정신에게 건네고 다시 꾸물꾸물 침대에 누웠다. 윤정신이 바로 내 등 뒤에 받쳐진 쿠션을 치워 주며 눕는 것을 도와주었다. 찜질기 덕에 허리가 뜨끈한 것이 확실히 아까보다 나은 것 같았다.

“집에 데려가서 마사지 좀 받게 해야 하나?”

“요통 심할 때 잘못 마사지 받으면 더 심해질 수도 있다던데. 온찜질 좀 하고 가볍게 마사지해 주면 괜찮을 걸? 그러게 왜 체력 자랑은 해 가지곤. 적당히 봐 가면서 해. 좀 심했던 거 아니야?”

“전에도 한번 했는데 그때는 이 정도 아니었거든.”

윤정신의 말에 서진이 놀란 얼굴을 했다.

“지금도 심각하게 빠른데, 처음이 아니라고? 너희 만난 지 얼마 안 됐잖아. 진도 너무 빠른 거 아니야?”

“진도는 네가 상관할 바 아니고, 하여튼 그땐 멀쩡했는데……. 그치, 자기야.”

“그러게. 그때도 좀 아프긴 했는데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야, 그럼 우기 문제가 아니고 네가 잘못했네. 왜 애를 고생시켜?”

“아니……. 이럴 줄 알았나. 좀 참아야겠네. 아, 이것 참. 축소 수술을 받을 수도 없고.”

“내가 보기엔 정도의 문제 같은데.”

“그러니까. 뻔뻔스러워.”

윤정신이 어깨를 으쓱하며 내 옆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는 내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어깨를 끌어안았다.

“좋은 걸 어쩌라고? 조만간 진짜 스파 가자. 얼른 나아야 다음도 있지.”

“몰라. 봐서.”

“왜애. 다음엔 진짜 심하게 안 할게. 난 네가 이렇게 아플 줄 몰랐어. 이제 조금만 할게. 응?”

눈꼴사납다고 생각한 건지, 서진이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컴퓨터 좀 쓸게.”

“어.”

서진이 방을 나가고, 나는 윤정신이 내어 준 패드로 영상 스트리밍 어플을 켜 영화를 보았다.

그는 어릴 때 쓰던 원숭이 목도리처럼 내 목과 어깨를 끌어안고 매달려 있었다. 나는 괴물 주식회사라는 제목의 영화를 보다가, 옆에서 하품하며 함께 화면을 보고 있던 그에게 물었다.

“형, 이거 봤어?”

“어릴 때 봤지.”

“나 이거 되게 좋아하는데. 형, 부 같아. 형도 맨날 저러고 울잖아.”

“야, 무슨 헛소리야.”

“우는 거 똑같은데? 까불까불하는 거도 형이랑 똑같네.”

“그럼 너는?”

“나는 이 괴물. 왜냐면 형 돌봐 주잖아.”

“참 나. 이게 재미있어? 네가 아기야? 응? 맘마 줄까?”

윤정신이 내 볼을 쿡쿡 찌르며 놀렸다.

이거 하나도 안 유치한데……. 자기도 전에 하얀 고무신 진지하게 보고 있었으면서 나한테만 그래. 나는 속으로 윤정신을 욕하며 화면을 그의 반대 방향으로 틀었다.

윤정신이 내 머리를 쓱쓱 쓸며 물었다.

“이거 끝에 어떻게 되더라?”

“부는 돌아가고 얘네가 회사 바꿔.”

“뭐야, 그럼 나 부 안 할래. 헤어지는 거잖아. 다른 애 할래.”

“아니야, 나중에 다시 만나.”

“그래? 그럼 부 할게.”

윤정신이 바로 태세를 전환하며 빙그레 웃었다.

으, 근데 생각해 보니 그 말대로면 좀 징그럽겠는데. 우리는 그냥 우리인 것으로 하자. 나는 패드를 윤정신에게 들려 놓고 핸드폰을 켜 쌓인 연락들을 확인했다.

<고9마9워요 길톡(13)>

(공지: 가 족같이)

[이권민: 그래도 심현지보다 나음]

[심현지: 뭐 ㅅㅂ롬아]

[심현지: 니는 분리수거 하면 대체 어디 들어가냐;; 깡통 소리 나는데 캔류냐]

[박도원: 잘 불 타는 것으로 보아 가연성 쓰레기인 건 확실ㅋㅋㅋ]

[이권민: 박도원 심현지 똘마니로 전향 역겹다ㅡㅡ]

여기는 참……. 오늘도 언제나처럼 평화로웠다.

보통 얘기하는 사람만 얘기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시끄러운 게 저 셋이었다.

기망, 현지, 나도.

심현지가 자기 생일이 1월 극초라는 이유로 동갑이라 주장하는 것을 인정해 주면 모두 스무 살 동갑내기들이었다. 나머지 길드원들은 전부 우리보다 나이가 한두 살 정도 많았다.

[현서: 여 얘들아]

[현서: 정모 할까 하는데 혹시 하면 올 사람?ㅋㅋㅋ 회비는 걷음]

대충 확인만 하고 나가려는데, 길드 마스터인 BOBI가 불쑥 정모 이야기를 꺼냈다. 정모? 갑자기?

[심현지: 보비상... 그런 건 기망 없는 단톡방에서 말해야지 ㅋ;;]

[현서: ㅋㅋㅋㅋㅋㅋ 아 내가 생각이 짧았네]

[이권민: 심현지 오면 난 안 감ㅡㅡ]

어쩌지, 나는.

나도 일단 대충 한마디 했다.

[ㅋㅋㅋ난 현서가 돈 내주면 감]

[최유정: 머래 믿힌넘아 ㅋ 현서 언니가 돈을 땅에 버리면 버렷지 니 새끼한테 쓰겟니????? 생각하자~~생각~~!!]

[심현지: ㄴㅁㅇ ㅋㅋㅋㅋ 니는 잘하는 척이라도 해라 반말 찍찍 하면서 돈 내쥬세요 ㅡㅂㅡ 요 지랄 하고 있네 덜덜덜덜덜덜;; 무양심]

[누나]

[현서: 와;; 마음 약해진다]

[현서: 쟤한테 누나 소리 오랜만에 듣는 듯 한 2억년 됐나]

[박도원: (속보) 과학 계 비상, 알고보니 최초의 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닌 현서... 페름기부터 존재해]

[심현지: (속보) 박도원 집 비상, 박도원 페름기부터 참아온 듯한 용트름 해...]

[박도원: (속보) 알고보니 심현지 얼굴에 대고 해...]

[심현지: ㅅㅂ 드러]

[최유정: ㅋㅋㅋ 언니 안대 마음 굳게 먹어]

[최유정: 얼굴에 혹하면 안 됨]

[최유정: 우리 강제 회춘했던 나날들 떠올려바 ㅋ 따흑씨 ㅠㅠ]

[현서: 돈 까짓 거...]

[현서: 내줄 리가 ㅋ]

아니……. 서로 나이 모를 때 말 놓고 친해졌는데, 알고 보니 나보다 나이 많았다고 갑자기 존댓말 하는 것도 웃기지 않나? 오글거려서 도저히 못하겠던데.

형이라는 말은 그래도 친형제가 있다 보니 잘 나오는 편인데, 누나라는 말은 적응이 잘 안 됐다. 어차피 끽해야 두 살 차이인데……. 햇수로 안 세면 그보다 더 적다. 

[ㅋㅋㅋㅋㅋㅋㅋ최소한 뭐할지 어디서 볼지는 알려 주고 묻는 게]

[심현지: 너 없는 나라]

[진짜 나 없을 수도 있음;]

[심현지: ㄷㅊ ㅋ 젤 한가한 놈이 웃기시네 지랄하지 말고 와라]

[아 힘든데 ㅎㅎ; 일단 생각 좀]

[현서: ㅋㅋㅋㅋㅋ일단 올 생각 있는 애들 갠톡]

“다른 거 볼까? 재미없어?”

“어? 아니. 보고 있는데.”

나는 후다닥 핸드폰을 집어넣고 다시 영화에 집중했다.

정모를 갈까, 말까 고민이 돼서 영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결국 윤정신을 쿡쿡 찌르며 그에게 물었다.

“……형. 나 길드 정모 다녀올까?”

“아니?”

그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왜지?

“왜?”

“갈 거면 나 데리고 가. 안 그럴 거면 너도 가지 마.”

“그딴 게 어디 있어, 우리 길드도 아니면서.”

“가입하면 되지.”

“정말로?”

윤정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쩌억 하품을 했다.

“아, 이거 못 보겠다. 나랑 너무 안 맞아.”

“형, 정말 올 거야?”

“응.”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가더니 노트북을 가지고 와 부팅시켰다.

“나 그럼 길마한테 말한다? 나중에 농담이었다고 하기만 해.”

“말해. 근데 가입 조건 같은 거 없어?”

“딱히 없어.”

나는 패드를 대충 던져 놓고 그의 옆에 붙어 노트북 화면을 함께 보았다.

“그럼 그냥 가입 넣으면 되지?”

그가 자신이 길드 마스터로 있던 1인 길드를 해체하고 우리 길드에 가입 신청을 넣었다. 참, 얘기해야 하는데. 나는 다시 핸드폰을 집어 들어 BOBI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보비 나 길드에 친구 데려와도 됨?]

[현서: 정모는]

[친구 오면 친구랑 감]

[현서: 친구 누군데?]

[토라]

[현서: 아 ㅋㅋㅋㅋ 난 또 누구라고]

[현서: 그 분이 오신다고 함? 길드 있지 않았나]

[노노 그냥 길드 초대 방지용 1인 길드였대 자기가 오겠다고 함]

[현서: ㅇㅇ... 약간 부담스럽긴 한데]

[현서: 알겠음 길갑 넣어 두면 수락할게]

[ㅇㅋㅇㅋ]

윤정신은 유심히 우리 길드의 정보를 열람하는 듯하다가, 불쑥 이해가 안 간다는 투로 물었다.

“근데 이 숫자는 왜 넣은 거야? 중복이라서?”

“아니. ‘구’라고 발음해서 읽어 봐.”

“아……. 충격적인데.”

마침 BOBI가 접속 중이었는지 토라의 길드 가입 신청은 금방 수락됐고, 그렇게 우리 또래끼리 친목하는 길드에 느닷없이 윤정신이 끼어들게 되었다.

나는 그를 카톡 길드 채팅 방에도 초대했다.

<‘우기’ 님이 ‘윤정신’ 님을 초대했습니다.>

[ㅎㅎㅎㅎㅎ]

[현서: 오늘 길드 가입한 토라 님입니다 다들 환영의 박수로 ㅎㅎ]

[윤정신: 안녕하세요 ㅎㅎ 2학년 7반 토라입니다]

[심현지: 아 잠시만;]

[심현지: 침투력 무엇ㅋㅋㅋ]

[심현지: 이의 있는뎁쇼;;;]

[먼 이의ㅡㅡ 텃세 부리지 마]

[윤정신: ㅠㅠ 그러니까]

[심현지: ㅋㅋ 이 꼴을 내가 여기서까지...?]

[윤정신: 너 나 없는 데서 우기 구박하는지 안 하는지 감시할 거야ㅋ]

[ㅋㅋ]

[이권민: 헐 안녕하세요;;]

[이권민: 대박 뭔데]

[혹시 나이 많아서 부담스러우면 내보내겠음]

[윤정신: 시뎌시뎌 안 나가!!!~!]

[윤정신: 정시니도 같은 2학년이야 ~!!!! 가티 놀꾸야~~ㅠㅠ]

[윤정신: 나도 고구마 구울 거야ㅋㅋㅋㅋㅋㅋㅋ]

[ㅡㅡ]

나는 그의 손에서 핸드폰을 뺏어 버렸다.

생각해 보니 얘를 데리고 정모를 나가면 아무도 안 오려고 할 것 같은데……. 적당히 상황 봐서 안 가든가 하겠다고 BOBI한테 말해 둬야 할 것 같았다.

[정신연령이 진짜 초등학교 2학년이라 양해 좀]

[못 떠들게 하겠음]

[심현지: ㅋㅋㅋㅋㅋ 존나 웃겨]

[박도원: 헐ㅋ... 섭외력 뭐냐]

[현서: 내가 한 거 아니고 우기가 부른 거야 ㅋㅋㅋㅋㅋ]

[심현지: 경외하지 마셈ㅋ 나중에 잠깐이라도 그런 마음 품었던 거 후회하게 될 거임]

[ㅁㅈ 그냥 무시 좀]

아무튼, 뭐. 그렇게 윤정신이 길드에 오게 되었는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약간 걱정이 됐다. 너무 갑자기 일을 벌였나.

* * *

영화를 마저 다 보고, 나는 꾸역꾸역 일어나 윤정신이 차린 점심상을 반쯤 강제로 먹었다. 어제 거의 밥을 못 먹인 게 미안했는지 부담스러울 정도로 찬이 많았다.

아직 배 별로 안 고픈데. 나는 깨작거리며 밥알을 세다가 결국 수저를 놓았다. 눈치가 보여 슬그머니 그를 보자, 역시나 탐탁잖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던 윤정신이 고개를 저으면서 내 손에 다시 수저를 들렸다.

“끼니 자꾸 거르니까 비실비실하지.”

“아침도 먹었는데 12시 땡 하자마자 무슨 점심이야.”

“그럼 잘 먹고 있는 나랑 얘는 뭐야? 사이코야? 식충이야?”

“그런가 보지. 나 그만 먹을래. 입맛도 없어.”

“이럴 때 더 잘 먹어야지……. 나 마음 아프잖아.”

“어휴, 또 봐. 부 우는 표정 짓지? 형, 잊지 마. 어제는 형 때문에 못 먹은 거야.”

“나 밥그릇 들고 나가서 먹을까? 나 저기서 벌설게. 또 그러면 나 사람 아니고 짐승이야. 진짜 중성화 수술 받을게. 각서도 쓸 수 있어.”

이기지도 못할 거면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서진이 조용히 물었다.

“부 우는 표정이 뭐야?”

“괴물 주식회사 몰라? 거기 나오는 양 갈래머리 아기 있잖아.”

“아……. 나중에 찾아봐야겠다.”

“그것도 모르냐? 문찐이네, 너. 문찐이 무슨 뜻인지는 아냐?”

“무슨 뜻인데?”

정신이 얘 좀 보라는 듯 서진을 가리키며 웃었다. 하여튼, 서진이 곤혹스러워할 때 제일 즐거워 보인다.

“문명 찐따. 현대 문화 못 따라온다고.”

“아아.”

“왜 알려 줘, 그거.”

“어, 또 운다. 부 운다.”

“울보네, 윤정신. 너 우기랑 싸운 날에도 울었다며?”

“내가?”

윤정신이 뻔뻔하게 저를 가리키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잉잉 울었지. 내가 미앙……. 이러면서.”

“내가 언제……. 그냥 좀 글썽한 거지. 뭘 또 잉잉 울었다고 그래?”

“은근히 귀여워, 가만 보면. 머리도 부처럼 묶어 줄까?”

“싫어.”

“정말? 정말 싫어?”

“싫어.”

“쳇.”

점심을 먹고 나서 윤정신은 잠깐 담배를 피우고 온다며 사라지고 서진과 둘이 남게 되었다. 그가 주스 병 하나를 까서 내게 건넸다.

“어? 고마워.”

“괜찮아?”

“허리? 아니. 여전히.”

“음, 허리도 허린데……. 정신이 만나는 거, 괜찮아?”

“뭐가?”

내가 어리둥절해서 묻자, 서진이 불안한 듯 현관을 한번 바라보았다.

“아……. 윤정신이 들으면 오해할 거 같아서. 난 그렇게 나쁜 애는 아니라고 생각하긴 하는데, 연애관은 조금 가볍다고 느껴 왔거든. 너랑도 진도가 너무 빠른 거 같아 보여서 좀 걱정이 돼서……. 지난 애인들 생각하면 확실히 너는 각별하게 생각하는 거 같긴 한데, 그래도 좀……. 걱정이 돼서. 별일 없지?”

진도……. 확실히 너무 자주 하는 것도, 그가 하자고 조를 때 거절 못하는 것도 좋은 현상은 아닌 것 같다. 솔직히 처음 그렇게 됐을 때는 나도 세상 끝난 것처럼 참담했는데 윤정신이 너무 태연하니까 묘하게 동화돼 버렸다. 전보다 신뢰가 쌓이기도 했고.

“좀 그렇긴 하지? 근데 그냥 믿기로 했어, 나는.”

“네가 그렇다면 나도 믿을게.”

“형 친구잖아. 형도 믿어. 아무튼, 형도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계속 친구 하는 거잖아? 난 형 안목 믿어.”

“그 말, 쟤 앞에서 하면 분명 토라질걸.”

“그러라고 해.”

“나 별로 안목 좋은 사람 아닌데. 그래도 너희 꽤 잘 만나는 것 같네. 사실 오래 못 갈 줄 알았어.”

“아직 오래 안 됐잖아? 극 초긴데.”

“나는 1의 자리 숫자 중에서도 초반일 거라고 생각했거든.”

“나도 그랬어. 근데 지내다 보니 좋아지는 거 같아. 잘해 주니까…….”

“좋다니 다행이네.”

“응. 만나길 잘한 거 같아. 사실 그럴 생각 없었긴 한데.”

서진이 빙그레 웃으며 내 어깨를 살짝 짚었다.

“네 맘 가는 거에 집중해. 다른 거에 휘둘리지 말고.”

“응, 그럴게. 고마워. 형이랑 결혼하는 사람은 좋겠다. 형은 결혼 신중히 해야겠어. 누구 만나도 아까울 거 같네.”

“하하……. 아직은 생각 없어.”

“인간적으로 부러워, 형은.”

서진이 머쓱한 듯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아니야. 그렇지도 않아. 나도 그다지…….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지, 뭐. 파헤치고 보면 별거 없어. 정신이는 알수록 괜찮은 스타일이잖아. 근데 나는 알수록 좀 의뭉스럽대. 냉정하다기도 하고…….”

“그런가? 아직은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

눈웃음도 참 선했다. 서진은 알게 된 게 다행이라고 느낄 정도로 참 좋은 사람이다. 이런 얘기 윤정신에게 하면 분명 삐치겠지만.

<게임 말고 연애> 2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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