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릴 때부터 게임을 좋아했다.
유치원생 때 플래시 게임을 처음 접했고,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온라인 RPG 게임을 시작했다. 주니어 네×버 동물농장 같은 것들도 모조리 거쳐 갔고, 하여튼 흥미 가는 게임은 다 건드려 봤던 것 같다.
처음에는 컴퓨터로 FPS, RPG, 레이싱 게임 등을, 핸드폰이 생긴 후에는 모바일 게임까지 영역을 넓혀 리듬×타나 액×퍼즐타운, 미니게임×국 같은 것부터 온갖 타이쿤, 농작 게임 등…….
참 내가 생각해도 뭘 많이 건드리긴 했다.
진지하게 오래 잡은 게임은 그에 비해 적은 편이지만, 어디 가서 게임 이야기를 할 때 PC 게임부터 모바일, 콘솔, 스팀까지 못 낄 곳이 그다지 없었다. 유×브가 발전한 후에는 게임 관련 유×브도 많이 봤었기에 더 그랬다.
하지만 게임은 내게 그저 취미였다.
내가 거의 모든 여가를 게임에 할애하고 있어서 그렇지 짬짬이 즐기는 다른 취미도 꽤 있었고, 일단 현실 생활에 크게 지장이 갈 정도로는 하지 않았었다.
그런 내가 게임 폐인이 돼 버린 건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나는 철 지난 RPG 게임에 미쳐 버렸다.
* * *
<‘청혼’ 님이 ‘10주년 기념 상자’에서 ‘한정 *마우(아이템 정보 확인)’ 펫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나는 멍하니 황금빛으로 빛나는 창을 바라보았다.
……형이 왜 여기서 나와?
전용 액세서리에 주문서를 발라 능력치를 부여할 수 있는 한정 펫이 나온 것이다.
계속 메가폰이랑 명찰만 떠서 포기하려고 했는데, 그게 다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고? 나는 떨리는 손으로 확인을 눌렀다.
미친, 이건 팔자. 현금으로 대충 15~20은 갈 텐데? 혹시나 해서 인터넷으로 시세를 알아보니 최근 거래 금액도 그 정도였다.
솔직히 나는 스펙 업보다는 룩 아이템 사는 게 더 좋았다. 스펙은 적당히 돈벌이 되는 몇몇 던전을 솔격으로 깰 수 있을 정도로만 올려 둬서 내가 이 펫을 껴도 데미지에 별 차이가 없을 거였다. 고스펙 유저들한테는 필수겠지만……. 일단 직접 강화할 자신도 없고.
귀엽게 생긴 펫이라서 아쉽긴 한데, 이걸 묵혀 두었다 비싸게 팔기만 하면 내가 찜 목록에 넣어 두었던 한정 캐시 아바타들을 전부 사고도 남을 돈이 들어올 테니까. 나는 처음으로 계정에 로그인 추가 인증 수단을 걸고 비밀번호와 2차 비밀번호도 어려운 것으로 바꿔 두었다.
해킹당하기만 해 봐…….
한정 펫을 먹은 게 서버 전체 알림으로 떠서 그런지, 몇몇 지인들이 친창으로 부러워하는 게 보였다.
[현지: ㅁㅊ 청혼 돌악나]
[현지: 니 확률 핵 썼냐? 신고 ㅅㄱ ㅋㅋ 아 ㅋㅋ 겜 더럽게 하네?]
[섭외: 와 혼님 축하드려요.. 금손 ㄷㄷ]
[쥬아: 헐 호니 머야 너 똥손이엇자나 ㅋㅋ 축하]
평소에 내가 그리 운이 좋던 편은 아니었어서 대체로 놀라는 반응이었다.
하긴……. 항상 확률성 콘텐츠를 할 때마다 명당이라는 명당은 다 찍고 다녔는데도 결과가 그리 좋지 못했지.
[청혼: ㄱㅅ]
나는 친창에 대충 답을 하고 10주년 상자가 언제 판매 종료되는지 확인해 보았다.
다음 패치부터면 3일 정도 남았네?
미리 돈 써도 되려나, 그럼. 나는 신이 나서 1채 자유 시장으로 갔다. 그러곤 고용 상인 상점을 돌아다니며 살 만한 게 있나 확인하는데, 내 눈을 의심할 만한 아이템이 있었다.
“헐, 미친. 앙고라 베레모?”
외형이 진짜 역대급인데 출시된 지 꽤 돼서, 물량이 없어진 지금은 부르는 게 값인 아이템이었다.
아, 이거 진짜 가지고 싶었는데…….
하필 내가 안 하던 때에 나온 아이템이라 드물게 착용한 유저를 볼 때면 군침만 흘렸었다.
매물 나온 거 처음 보네. 엄청 비싸겠지……. 나는 괜히 미련이 남아 사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구입하기] 버튼을 눌러 봤다.
<‘앙고라 베레모’를 획득하였습니다.>
……?
자, 잠깐만. 지금 무슨 일이…….
당황한 나는 허둥지둥 인벤토리를 열어 소지금과 아이템 칸을 확인했다.
<앙고라 베레모>
<소지금 : 30,740,100머니>
이게 내 수중에 있는 돈으로 사졌다는 건, 80억이 아니라 8억에 샀다는 소리였다. 창고에 있던 돈까지 가지고 있었어서 사실상 전 재산을 털어서 산 거지만, 되팔기만 해도 최소 60억짜리를 8억에 샀으니 전혀 손해 볼 장사가 아니었다.
오늘 나 운수 진짜 미쳤나 봐……. 이건 안 팔고 내가 무덤까지 가져가야지.
인벤토리를 보며 감상에 젖어 있는데, 누군가에게 교환 신청이 왔다.
<‘버찌’ 님이 교환을 신청합니다.>
누구지?
처음 보는 사람이라 그냥 신청을 거절하고 자유 시장을 나왔다.
나오자마자 앙고라 베레모를 쓰고, 그에 맞춰 코디까지 했다. 꿈에 그리던 순간이었다.
[버찌: 님 교신좀요]
그러는 동안 버찌라는 사람은 계속 나를 쫓아오며 교환 신청을 걸어 대고 있었다. 왜 저래, 귀찮게. 내 위치를 찾아 마을까지 쫓아온 게 소름이 돋았다. 신종 스토킹인가…….
나는 아예 교환 신청을 차단해 둔 뒤, 현지에게 대화 초대를 보냈다. 곧, 메신저에 현지의 캐릭터가 떴다.
<‘현지’ 님이 대화에 참여합니다.>
[청혼: 짠]
[현지: ?미친]
[현지: 니 돌았냐? 펫 판 거로 산 거임? 이번 달 굶을 거냐ㅋㅌㅋㅋㅋㅋ]
[청혼: ㅎㅎ자시에서 8억에 샀죠? 개이득 봤죠? 심현지 이제 밤에 잠 못 자죠?]
[현지: ㅅㅂ 처돌앗다]
[현지: 고상 어디?ㅋㅋㅋㅋ야 0빼기 했나봐 고상 주인 존나 빡치겠다]
[청혼: 아 그런가?? 어쩐지 8억 너무 말도 안 된다 했다ㅋㅋ; 나는 걍 싸게 올라온 줄ㅋ 암튼 ㄱㅇㄷ~]
[현지: 니 아직 자시임? ㅅㅂ 나도 찾는다 0빼기]
0빼기라는 건, 말 그대로 금액을 입력할 때 ‘0’ 하나를 덜 붙였다는 뜻으로, 원래 80억에 올리려던 걸 실수로 8억에 올린 것 같다는 말이었다. 지금 게임 머니 시세가 1억에 5천 원 정도니까 80억이면 40만 원……. 그리고 나는 그걸 4만 원에 산 셈이었다.
고용 상인으로 판매하면 구매자 기록 뜨는데, 나중에 달라고 하는 거 아니야? 그 생각을 하고 나니 아직도 옆에서 얼쩡거리고 있는 사람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청혼: ?]
교환 신청, 친구 신청, 귓속말이 전부 거부로 되어 있자, 반쯤 포기한 듯 내 캐릭터 주변에서 애처롭게 점프만 하고 있던 그가 기다렸다는 듯 채팅을 쳤다.
[버찌: 얘기 잠시만요]
[청혼: 왜요?]
[버찌: 0빼기 샀잖아요 고상 주인 저라서요]
아니……. 왜 고용 상인 두고 옆에서 지키고 있는데?
이렇게 빨리 만난다고? 나는 조금 난감해졌다.
[청혼: ㅈㅁ요 초메 드릴게요]
나는 심현지를 대화방에서 추방하고 그를 초대했다.
자세히 보니까 그는 유명한 장사 길드 소속이었다. 여기 길드원 본캐 보는 거 처음인 것 같다. 맨날 매크로랑 창고 캐들만 봤는데…….
얼마 안 가 그가 대화방에 입장했다.
<‘버찌’ 님이 대화에 참여합니다.>
[버찌: 그거]
[버찌: 아 아니다 벌써 끼셨네요]
[버찌: 음...]
그는 아마 내가 앙고라 베레모를 착용하여 교환 불가 상태로 만들기 전에 8억을 주고 되사려고 했던 것 같았다.
그래서 계속 교환 신청 걸었구나. 근데 어떡해, 이미 낀 걸…….
[청혼: ㅇㅇ...]
[청혼: 고의는 아니었어요 저는 싸게 올라온 건줄]
[청혼: ㅈㅅ...]
[버찌: 아 ㅋㅋ 실수로 잘못 올려서 바로 고치려 했는데]
[버찌: 순간 나가서 멍했네요]
[버찌: 제가 실수한 거라 죄송할 건 없고]
[버찌: 혹시 시세로 사 가실 생각은 없으시겠죠...? 당연히 싸게 드리긴 할 건데]
[버찌: 8억은 진짜 아니라서 ㅋㅋ;]
[청혼: 아 72억 마저 달라고요??]
[버찌: 베레모 최근 거래 금액 살펴보고 제일 싼 가격에서 10억 더 싸게 드릴게요]
[청혼: 그게 얼만데요?]
[버찌: 50억 정도]
[버찌: 근데 이미 8은 내셨으니까 42억이요]
나 돈 없는데……. 뭔가 입 싹 닫기도 그렇고. 사실 나도 0빼기 당해 봐서 그게 얼마나 좆같은지 알기 때문에 뻔뻔하게 굴기가 좀 그랬다.
아, 그냥 끼지 말걸. 얌전히 교환 신청 받았으면 잘 끝났을 걸 이렇게…….
보통 이런 건 판매자 실수라 구매자가 안 돌려주는 게 대부분이긴 한데 현금으로 자그마치 36만 원 차이기도 하고, 상대방이 장사 쪽의 큰손이라는 것도 마음에 걸려서 웬만하면 원만하게 해결을 보고 싶었다.
[청혼: 님 근데]
[버찌: 네]
[청혼: 저 거지라서 8억이 전 재산이었거든요? 그래서 당장 40억 넘게 드리기가 좀 그럼]
[버찌: 아...]
[청혼: 혹시 할부 가능...?ㅎㅎ]
[버찌: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긴 한데]
[버찌: 몇 개월 정도요?]
그냥 알바 같은 거라도 해야 하나? 집에서 할 만한 게 뭐가 있지. 갖고 싶긴 했지만, 솔직히 너무 비싸서 현금으로 살 생각은 전혀 없었던 건데…….
왠지 강매당하는 느낌이라 좀 그랬다. 대충 나 쓸 거 안 쓰고 열심히 모으면 달에 10억 정도는 벌 테니까, 그럼 몇 개월이지? 부모님께 용돈 받는 것까지 다 머니 사는 데 쏟아부으면…….
아씨, 근데 그럼 게임 무슨 재미로 해? 한정 캐시 사는 재미로 하는 건데.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뜬금없이 웬 노가다 인생? 나는 원망스러운 내 머리를 탁 때렸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 있었다.
[청혼: 아 맞다]
[청혼: 제가 오늘 마우 펫 뽑은 거 있는데]
[청혼: 이거 시세 현금 대충 20만원 하지 않아요?]
[청혼: 이거 팔리면 바로 드릴게요]
[버찌: 그 10주년 상자에서 나오는 거요?]
[청혼: 네]
[버찌: 하나 뜨셨어요?]
[청혼: 두 개 떴으면 지금 이렇게 안 비굴해요ㅋㅋ...]
[버찌: ㅋㅋㅋㅋㅋ 그거 닥 묵인데]
[버찌: 직업병 때문에...]
[버찌: 지금 파시면 너무 아까울 거 같은데]
[청혼: ㅠㅠ]
닥묵이란 닥치고 묵혀야 한다의 줄임말이다.
장사꾼이 닥묵 해야 한다고 말하는 걸 보면 마우 펫의 가격이 나중에 2배 이상으로 뛸 전망인 듯했다. 마우 펫을 대체할 만한 것이나 그보다 좋은 것이 나오기 전까진 가격이 떨어지지도 않을 거고.
그래도 어쩌겠는가……. 체념하고 아이템 판매 글을 올리려는데, 그의 채팅이 올라왔다.
[버찌: 그냥 그럼]
[버찌: 어차피 제 실수니까 걍 8에 판 거로 할게요]
미친? 내가 잘못 이해한 건 아니겠지?
[청혼: ??? 그냥 주신다고요?]
[버찌: 솔직히 계속 돈 달라고 우기는 거도 양아치 짓이고]
[버찌: 묵힌 게 아깝긴 한데 그래도 처음에 2억에 산 거니까]
[버찌: 대신 저 매입하는 거 있을 때 좀 싸게 팔아주세요ㅎㅎ...]
[청혼: 헐 ㄱㅅ... 님 천사예요??]
[청혼: 뭐 사는데요 말만 하셈 노예 될게요]
[버찌: 일단 저 고상 다시 올려야 해서]
[버찌: 모자 예쁘게 잘 쓰세요]
<‘버찌’ 님이 대화에서 퇴장합니다.>
그는 그 말을 남긴 채 내게 친구 신청을 걸고 총총 사라졌다. 나는 그의 캐릭터가 포탈을 타고 가는 것을 멍하니 보다가 뒤늦게 친구를 수락해 주었다.
와, 존나 착하다. 나라면 펫 달라고 해서 내가 묵혔다가 팔 텐데. 아니면 늦게라도 돈 달라고 하거나……. 돈이 많으니까 미련도 덜한 건가? 하긴 캐릭터부터 부티 났지.
새삼 그가 궁금해서 커뮤니티에 [버찌] 닉네임을 검색해 봤지만, 본캐로는 조용히 사는 편인지 150레벨대 몬스터인 [버찌 나무] 이야기만 있고 그에 관한 정보는 없었다.
그래서 이번엔 그의 길드인 [백만살]을 검색해 보았는데, 이런 걸 잘 모르는 편인 나도 알 만큼 유명한 장사 길드라 그런지 검색 결과가 우르르 떴다.
[백만살] 길드원에 대한 게시글도 여럿 있긴 했는데, 거의 매크로용 캐릭터나 창고 캐릭터 이야기뿐이었다. 길드원의 본캐는 그리 알려진 바가 없는 모양이었다. 아예 본캐가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고…….
그래도 길드 정보가 뜨니 아예 목격담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튼 비밀스러운 집단인 건 확실해 보였다. 나는 왠지 희귀한 인맥을 얻은 것 같아서 좀 뿌듯해졌다.
* * *
[현지: 버찌? 첨 듣는데]
[청혼: ㅎㅎ 암튼 이거 8억에 주셨다 개꿀]
[현지: ㅁㅊ...ㅋ 니 언젠간 벗겨 먹을 듯]
[청혼: 세상 사람들이 다 지 같은 줄 아네]
[현지: 이 새끼가 뭘 잘했다고 이렇게 좋은 일만 생기는데??]
[청혼: 착하게 살아라 현지야 ㅎㅎ]
사람들이 별로 오지 않는 마을 잡화 상점 안에서 현지와 대화를 하고 있는데, 아까 고상 정리를 하고 바로 로그아웃을 했던 버찌 님이 로그인했다는 알림이 보였다.
나는 바로 친창에 인사를 했다.
[청혼: ㅎㅇ]
하지만 그는 채팅을 보지 못한 건지, 보고도 무시하는 건지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의 위치를 확인해 보니 던전이었다. 나는 아예 귓속말을 보냈다.
[청혼> ㅎㅇ]
이번에도 무시당하나 했는데, 의외로 답장이 왔다.
[버찌> 안녕하세요~]
[청혼> 뭐하세요?]
[버찌> 던전 돌아요]
나는 새삼 그의 스펙이 궁금해졌다. 어느 단계까지 하시는 거지? 고레벨 던전도 갈 수 있나?
[청혼> 어디까지 도시는데요?]
[버찌> ㅎㅎ 솔격이라 많이 못 해요]
[청혼> 돈 많은데 그거 왜 도는 거예요? 아이템 팔려고 하시는 건가]
[버찌> 기본 옵 좋거나 잠재 잘 뜨면 팔기도 하는데 딱히 그게 목적은 아니에요]
[버찌> 그냥 하루 일과 같은 거...]
[청혼> 저 프리스트 있는데 힐딱 해드릴까요??]
장사꾼 캐릭터는 대충 데미지가 얼마 정도 뜨는지 궁금했다. 왠지 엄청난 지갑 전사일 거 같은데……. 그래서 은근슬쩍 같이 던전 돌자고 찔러봤는데 거절당했다.
[버찌> ㅎㅎ괜찮습니다]
[청혼> 근데 그 캐 진지하게 키우는 거예요? 장사 안 하고?]
[버찌> 장사는 제 고상이랑 매크로들이 잘 해주고 있을 거예요]
[청혼> 저 펫 팔 때 부탁해도 돼여??]
[버찌> 무슨 펫이요?]
[버찌> 아 네 ㅋㅋㅋ 비싸게 팔아드릴게요]
[청혼> 팔리면 돈 갚을게요 ㅠㅠ ㄹㅇ]
[버찌> 괜찮아요^^ 전 이제 보스 잡으러]
[청혼> 담에 같이 해요 ㅋㅋ 화이팅 ㅎㅎ]
[버찌> 네 감사합니다~]
아, 아쉽네. 좀 친해지면 볼 수 있으려나?
내가 갑자기 조용해지자 현지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현지: 왤케 조용?]
[현지: 너 또 뭔 짓하는데ㅋㅋ?]
[청혼: ㄴㄴ 그 사람 들왔길래]
[청혼: 부캐로 힐딱 해준다하고 뎀 얼마 뜨는지 구경하려고 했는데 까였음 ㅠㅠ]
[현지: ㅋㅋ무림고수 각]
[현지: 맥뎀일 듯]
[청혼: ㅇㅈ]
아, 궁금한데 말이지…….
나는 조금만 더 질척거려 보기로 했다. 그가 보스를 다 돌 때를 기다렸다가 다시 귓속말을 걸었다.
[청혼> 버찌 님]
[버찌> ? 네]
[청혼> 베르사유 깨셨어요?]
베르사유 던전은 보스 몹의 피통도 크고, 즉사기와 광역기도 많아 보통 파티로 깨는 던전이었다. 솔격 한다는 걸 보면 딱히 고정 파티가 있는 건 아닌 듯해 찔러 보았다.
[버찌> 그건 혼자 하기 좀 힘들더라고요]
[버찌>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리고 효율 별로인 거 같아서 잘 안 돌아요]
[청혼> 헐 그걸 솔격 했다고요?? 스펙 좋나봐요]
[버찌> 근데 하드는 아니고 노말이었어요 ㅋㅋ]
[청혼> 아ㅋㅋㅋ 놀래라... 직업 뭐예요?]
[버찌> 아수라]
아수라는 단검을 쓰는 도적 직업군이었다. 완전 고자본 전용이라던데…….
[청혼> 같이 노멀 깨보실래요]
[청혼> 하시면 프리랑 격수 하나 더 구해볼게요]
[버찌> 지금요?]
[청혼> ㅇㅇ]
[청혼> 근데 님보다 스펙 많이 딸리는데 괜찮아요?]
[버찌> 청혼 님은 직업이 뭔가요]
[청혼> 저 혼령술사요]
[버찌> 아 그럼 바인드도 있네요]
[버찌> 하실 때 초대 주세요]
[청혼> 넵]
아싸! 나는 황급히 파티에 심현지를 초대하고 같이할 만한 사람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초대를 받은 심현지가 파티 채팅으로 뭐라고 하는 게 보였다.
(현지: ㅇ?)
(현지: 뭐)
(청혼: 야 베르사유 안 돈 프리 없냐)
(현지: 그거 돌게?)
(청혼: ㅇㅇ그분한테 같이 하자고 했어)
(청혼: ㅋㅋ 궁둥이 대기 중 팡팡 부탁)
(현지: 즐ㅋㅋ ㄱㄷ)
곧, 현지가 프리스트 한 명을 파티에 초대했다.
<‘데메테르’ 님이 파티에 참여합니다.>
(데메테르: 안녕하세용)
(청혼: ㅎㅇㅎㅇ)
나는 친창을 쭉쭉 내려 버찌 님을 파티에 초대했다. 한 번 초대를 거절한 그는, 두 번째 초대를 받고 파티에 참가했다.
<‘버찌’ 님이 파티에 참여합니다.>
(버찌: 잠시만요 거래 좀)
(청혼: ㅇㅋ)
나는 그동안 도핑도 좀 하고, 던전 근처로 이동해 입장할 준비를 했다.
곧, 용무를 보고 돌아온 그가 채팅을 쳤다.
(버찌: .)
(버찌: 바로 가나요?)
(청혼: 네 17채 모이세요@@@@@@)
얼마 지나지 않아 파티원들이 던전 입장 필드로 왔고, 나는 낮과는 또 달라진 그의 코디를 또 감상했다. 와, 저 아이템도 있네. 진짜 해킹하고 싶다…….
(현지: 버찌 님 안녕하세요 ㅎㅎ)
(버찌: 안녕하세요)
(현지: 캐리 기대해봅니다..)
(버찌: ㅋㅋㅋㅋㅋ)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베르사유 던전 노말 입장을 신청했다.
현지도 은근히 스펙 업 욕심이 있고, 나도 전보단 아이템이 꽤 괜찮아져서 생각보다 수월하게 베르사유 노말을 깰 수 있었다.
베르사유 노말은 하드와 다르게 단일 스테이지인 데다, 혼령술사가 바인드로 처음에 잘만 묶어 두면 보스 몹 피통의 3분의 1은 무난하게 깎을 수 있어서 머릿수나 딜, 시간만 있으면 깨기가 쉬웠다. 그래서 딜 측정할 때 많이들 오기도 하고. 하드라면 말이 달라지긴 하지만…….
버찌는 천상계라고 할 정도로 데미지가 세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나나 현지, 그리고 데메테르 님보다는 클라스가 높아 보였다.
데메테르 님은 짬짬이 힐이나 버프를 넣어 주기 바빠 딜이 덜 나왔고, 나도 혼령술사 직업 특성상 몬스터에게 디버프를 거는 스킬이 많아서 딜은 상대적으로 많이 넣지 못했는데 버찌 님이 2인분 몫을 해 주어서 별 무리가 없었다.
(청혼: 수고수고)
(청혼: 버찌 님 딜 쩌네요 ㄷㄷ 데메 님도 수고하셨어요)
(버찌: 제가요...?ㅋㅋ)
(데메테르: 수고하셨습니다~~!)
(청혼: 프리 하이퍼 스킬 이펙트 쩌네 직업 바꿀까)
(현지: 니 땅그지잖아)
(청혼: ㅇ)
돈도 돈인데, 사실 이 직업에 좀 정이 들어서……. 여러모로 고민이 되었다.
(데메테르: ㅋㅋㅋ만렙 확장할 때 추가된 스킬들이 진짜 사기예요)
(청혼: ㅁㅈ 저 부캐 프리 있는데 예전에 이벤트 때문에 구 만렙만 찍어두고 안 건드린 지 꽤 돼서ㅋㅋ)
(청혼: 아 근데 직업 바꾸려면 장비 새로 해야 하니까... 부캐는 걍 누더기 주워 입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거도 못 주워오고)
(데메테르: 그래도 혼술이랑 프리는 같은 계열에서 마지막 전직만 다른 거니까 많이 손 볼 건 없지 않아요?)
(현지: ㄴㄴ 보조스텟이랑 버프지속 같은 옵 생각해야 해서 은근 골 아픔)
(현지: 근데 부캐 프리 구만렙까지 찍었는데 그거도 프리 하면 좀 아깝다;)
(청혼: ㄱㅊ 그건 차피 템 구리니까 혼술로 전업해도 부담 없어ㅋ 걍 버려 그딴 건)
지금 쓰는 장비 최대한 팔고 새로 사면 그렇게 많이 깨지진 않을 것 같은데. 곧 돈 들어올 일도 있고…….
직업을 바꿀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조용하던 버찌 님이 내 캐릭터 쪽으로 한 발자국 다가왔다.
(버찌: 장비 구입은... 아시죠?)
(청혼: 아 ㅅㅂㅋㅋㅋㅋ네)
장사꾼은 장사꾼이네, 틈새 장사라니. 생각해 보니 그라면 아이템을 잘 볼 것 같긴 했다.
(청혼: 나 그럼 프리로 전업해야지)
(청혼: 버찌 님 저 펫 팔리면 템 좀 봐주세요 가성비 좋은 거)
(청혼: 걍 이거 템 다 정화수 발라서 부캐 주고 새로 해야겠음ㅋㅋ 둘 다 키워야지)
(버찌: 물량 정리할 때 괜찮은 거 봐둘게요ㅎㅎ)
(청혼: ㅠㅠㄱㅅ 천사시네ㅠ)
(청혼: 뭐 필요한 거 없어요?ㅋㅋㅋ 팔아 달랬잖아요)
(버찌: ㅋㅋㅋ생기면 말할게요 저는 이만)
(청혼: ㅂㅂㅂ! 버스 잘 타고 감니다 ㅎㅎ)
<‘버찌’ 님이 파티에서 퇴장합니다.>
(데메테르: ㅎㅎ 저도 이만 가볼게용 즐겜하세요)
(현지: 빠빠이[email protected]!)
(청혼: ㅂㅂ)
<‘데메테르’ 님이 파티에서 퇴장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사라지고, 심심해진 나는 심현지와 함께 길드 룸으로 갔다.
우리 길드 레벨대에서 이렇게 길드 룸이 허름한 길드도 몇 없을 것이다. 기본 룸에서 딱 하나, 벽난로만이 추가되어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저게 유일한 가구였다.
내가 길드 룸에 입장하자마자 누군가가 눈에 불을 켜고 달려왔다.
{유징: ㅡㅡ헐}
{유징: 된장남 새끼ㅋ 너 그 모자 어디서 낫니 ㅋ 당장 말해}
{청혼: ^^ 알면 뭐하게 ㅋ 넌 못 사}
{유징: 말하라구 미친넘아 ㅋ}
길드 룸에 있던 유징이 앙고라 베레모를 보고 부러움에 거품을 물었다. 그녀가 늘 갈망 아이템이라며 목 놓아 부르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길드원들도 신기하다는 듯 한마디씩 했다.
{BOBI: 헐 샀음?}
{기망: 저게 뭔데?}
{BOBI: 저거 예전에 상자에서 뜨던 한정 템임ㅋㅋ 현금 30만원짜리}
{청혼: 엥? 40 아니고?}
{BOBI: 최저 30 급처면 진짜 가끔 더 싸고 요즘처럼 물량 유난히 없을 때는 장사꾼들이 35~40까지 올리는 듯}
{기망: ㅁㅊ 우기... 그 돈 스펙업에 썼으면 니 길드팟 격수도 가능}
기망 저 새끼는 맨날 스펙 업 타령이야. 제 현실 스펙이나 좀 쌓고 그런 말을 하지. 어차피 그 부분에서 ‘0’인 건 자기나 나나 마찬가지면서 꼭 저렇게 스펙 업 타령을 해 댔다.
{청혼: 지랄 노 ㅋ 이미 룩딸에만 100 넘게 썼는데 다른 길 안 판다 글고 지금도 격수 씹가능}
{기망: 우리 우기...^-^... 자기 머리털은 동네 미용실 가서 5천원에 깎으면서... 캐릭터 머리카락은 몇 십 주고 이거 쳐했다 저거 쳐했다}
{기망: 눈 뜨고는 못 봐줄 염병...}
{청혼: ㅇ기망 니 얼굴 보고 기분 망함 니 캐릭 존나 못생겼다 ㅇㅈ?}
{기망: 우리 우기...^-^... 재미없는 농담이나 하고... 부모님이 옷 사고 머리 좀 깎으라고 쥐여 준 용돈 개꿀~ㅋ 이러면서 캐릭터 옷 입히고 있죠?}
{기망: 무기 옵 아직도 에픽이죠?}
{현지: ㅋㅋ팩트: 청혼이 외모 관리 더 잘함}
{현지: 아니어도 기망보다 잘생김;; 너 쟤 얼굴 모르냐?? 질투 자제해라 추하다ㅋ 친구니까 조언해준다}
{기망: 뭔 질투;;;}
{현지: 니는 5천원도 아까워서 김치 자르던 가위로 니 머리카락도 자를 것 같아...ㅋ 뭔가 비호감 쉰내 남 캐릭터에서}
{BOBI: ㅋㅋㅋㅋㅋ아무리 스펙업이 좋대도 기본 성형은 심하긴 해 권민아^^; 나도 가끔 니가 좀 싫네}
{청혼: 기망 니 스펙업 하는 거보단 안 비싸 ㅡㅡ 글고 나 프리로 바꿀 거야 하면서 템 새로 하려고}
{기망: ㅅㅂ 왜 내 편은 하나도 없음??? 나 왕따냐}
{나도: 엥 프리 한다고?? 혼술이라서 닉 청혼인 거 아니었어?ㅋㅋㅋ}
{현지: 저거 걍 접는 지인한테 싸게 산 닉ㅋ 그지 가성비충 그리고 기망 새끼야 그걸 이제 알았냐 니 없는 길드 단톡도 있다ㅋ}
{청혼: 응 가성비 있게 베레모도 싸게 샀어~ㅋㅋ 칭찬 ㄱㅅ}
{현지: ㅋㅋ}
{현지: ㅅㅂ놈}
{기망: 심현지ㅡㅡ 이따 대전 뜨자 넌 진짜 안 되겠다}
{BOBI: ㅋㅋㅋㅋ근데 진짜 웬 거야? 너 유징이가 그거 산다고 돈 모을 때 돈 지랄이라고 욕 했잖아}
내가 오늘 있었던 기막힌 일들을 설명하려는데, 또 눈치 없는 심현지가 끼어들었다.
{현지: 얘 오늘 백만살 길드원이 실수로 0빼기 올린 거 샀잖아ㅋㅋㅋㅋ 근데 고상이라서}
{현지: 기록 떠가지고 그 사람이 다시 받아 갈랬는데 이 얌생이가 그새 끼고 코디까지 해놔가지고}
{현지: 그분이 걍 그 가격에 준다고 함 ㅇㅇ 나라면 블리 올리고 지랄할 텐데 베르사유 캐리팟까지 데려가줬어ㅎㅎ ㄹㅇ 부처}
{BOBI: 엥? 백만살 장사 길드 아니야? 베르사유 어떻게 가}
{현지: ㅋㅋㅋㅋㅋ신기하게 본캐였스... 레벨 높더라ㅋㅋ 나 거기 길드원 본캐 처음 봤어}
{BOBI: 헐 게임 하는 사람들이었구나... 난 돈 벌려고 게임 하는 줄 알았는데}
{현지: ㄴㄴ 레어닉에 한정캐시 둘둘 하고 뎀도 괜찮던데?}
{청혼: 혐지야... 니 혐오스러운 입에 성스러운 그분을 담지 말아줘... 부탁할게}
{현지: ?ㅋ}
그 말에 심현지가 심기 불편한 듯 [삐짐] 감정 표현을 계속 썼고, 나는 연신 웃었다.
왠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 * *
<‘버찌’ 님께서 로그인하셨습니다.>
다음 날, 나는 알림이 뜨자마자 귓속말로 그에게 인사를 보냈다.
[청혼> !!]
[버찌> !!!!!]
[버찌> 안녕하세요 ㅎㅎ]
그리고 웬일인지 친창에도 채팅을 치시는 게 보였다.
[버찌: ㅋㅋ]
[버찌: 아발 덜 낀 거 아니고?]
[버찌: ㅇㅇ 이따]
의외로 저 계정에 친구가 있나 보구나.
그러고 보니 보스 팟도 해 봤다고 하셨지? 장사 캐릭터다 보니 되게 자연스럽게 친창이 텅 비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버렸다.
나도 친창으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청혼: 버찌 님 펫 떡상 아직이에요?]
[버찌: ㅋㅋㅋㅋㅋ 급전 필요하세요?]
[버찌: 제가 사도 괜찮고]
[버찌: 너 말고]
[청혼: 그런 건 아닌데 빨리 직업 바꾸고 싶어서 ㅠ]
[버찌: 저런... 마음이 뜨셨군요ㅎㅎ]
[버찌: 킹 초메 그만^^ 차단한다]
얼마 안 가 그에게서 대화방 초대 메시지가 왔다. 나는 얼른 초대를 수락했다.
<‘청혼’ 님이 대화에 참여합니다.>
[버찌: 청혼 님]
[청혼: 네네]
[버찌: 그 펫 제가 지금 시세 2배에 살게요]
[버찌: 그리고 아이템 지인 통해서 괜찮은 매물 저렴하게 찾아서 템 맞추는 거 도와드릴 테니까]
[버찌: 저 경벞 알바 해주실 수 있나요? 나중에 던전 돌 때도 프리 하나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버찌: 대신 템셋 제대로 도와드릴게요]
[청혼: 헐 그럼 저야 좋죠]
[청혼: 갓버찌...ㄷㄷ; 제가 보기엔 님 장사꾼 체질 아님 너무 퍼주시는데;]
[버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는 정말로 웃긴다는 듯 처음으로 [ㅋ]을 매우 길게 썼다.
[버찌: 유저들 고혈 잘 빨아먹고 있으니까 제 걱정은 마세요^^...]
[청혼: 저 지금 펫 찾아올까요? 창고에서 꺼내야 하는데]
[버찌: 네 준비 되면 거래 걸어주세요]
[버찌: 돈은 계좌로 보내드릴까요?]
[청혼: 네]
[버찌: 이따 뵙시다 ㅎㅎ]
<‘버찌’ 님이 대화에서 퇴장합니다.>
이게 웬 횡재수래. 어차피 오래 묵힐 자신도 없어서 버찌 님이 2배에 사 준다면 나야 땡큐였다. 물론 그도 최대한까지 묵혀서 알아서 이득을 보겠지만…….
그나저나 아까 King이랬나? 그 닉네임을 보자마자 전체 랭킹 3위에 우리 서버에서는 랭킹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한 사람이 생각이 났다. 왠지 버찌 님의 지인이라면 정말 그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사람 놔두고 나랑 파티를 한다는 거지? 문득 그렇게 생각했다가 버찌가 King의 파티에 낄 스펙은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레벨 업 하는 건가…….
그렇게 한정 펫 거래를 무사히 끝마치고 며칠 뒤, 버찌 님은 그럴싸한 아이템들을 내게 싼 가격에 팔아 주었다. 내가 원래 끼던 장비들을 생각하면 굉장한 발전이었다. 게다가 시세보다 훨씬 싸게……. 요즘 불안할 정도로 일이 잘 풀리고 있었다.
남는 돈으로 사고 싶었던 코디 아이템도 몇 개 사고 길드원들에게 물어물어 액세서리까지 맞추고 나니 기망도 인정할 정도로 스펙이 꽤 괜찮아졌다. 그러고도 돈이 조금 남아서 오랜만에 내, 그러니까 현실의 내가 입을 옷도 몇 벌 샀다. 그러는 김에 친구들도 좀 만나고……. 간만에 현실 감각이 좀 돌아오는 듯했다.
* * *
장비를 맞춘 후 직업 이전을 하고, 나는 본격적으로 버찌 님의 전용 프리가 되었다.
파티 경험치 배분 방식을 버찌 님에게 몰빵하고 나는 쿨 타임마다 버프만 계속 넣어 주었다.
사실 프리로 직업 이전하고 장비까지 다 구비해 놓고서도 혼령술사에 조금 미련이 남아서 유×브에서 저스티스 혼령술사 영상을 찾아보면서 계속 고민했는데, 오히려 그 덕분에 남은 미련을 털게 되었다.
[저스티스 최강 쓰레기 캐 뭐인 것 같냐고요? 진짜 딱 알려 드릴게요. 혼령술사예요. 오케이? 절대 하지 마세요. 제가 혼술 키우면서 느낀 건데, 얘는 그냥 어정쩡해, 좀. 특출 난 게 없어. 딜 할 거면 그냥 다른 캐 잡는 게 낫고, 서폿 할 거여도 그냥 다른 캐 잡는 게 낫고. 굳이 왜 쓰지, 이런 느낌? 난 애정으로 키우는 거라 전업 하진 않을 것 같긴 한데. 비주류 캐는 비주류인 이유가 있어요.]
가장 최근 영상인 저스티스 Q&A 영상에서 그 스트리머가 그렇게 말하는 걸 듣고 후련하게 미련을 털 수 있었다.
사실 저스티스 시작하면서 제일 처음 키운 직업은 궁수 계열이었었는데 이 사람, 토라라는 닉네임을 쓰는 스트리머의 방송을 보고 멋있어서 혼령술사를 키우기 시작했었다. 새삼 그때 생각이 나서 아련해졌다. 그때는 육성도 꽤 재밌었는데.
어느 날 토라가 생방송 비율을 줄이고 편집 영상 업로드 위주로 가고 싶다며 플랫폼을 아프×카에서 유×브로 옮긴 후로는 생방송을 거의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 전이라고 자주 본 건 아니긴 하지만.
아무튼……. 토라 영상은 오디오가 별로 안 비어서 재미있는 편이었는데, 풀 영상이 남아 있는 걸 보면 주기적으로 실시간 방송을 켜긴 켜는 것 같았다.
이왕 채널에 방문한 김에 관련 동영상을 몇 개 더 찾아보았는데, 이게 내가 키우던 그 직업이 맞나 싶을 정도로 차이가 컸다. 그래, 혼령술사는 이런 사람이나 키우라고 있는 직업이지. 역시 전업을 한 건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혼: 버찌님 혹시 제가 버프 지속 끝났는데 리벞 안 하면 시끄러운 스킬 하나만 써 주세요]
버프 셔틀은 생각보다 몹시 지루했다. 캐릭터를 필드 밧줄에 달아 둔 채 핸드폰도 해 보고, 게임을 창 모드로 해 둔 뒤 웹 서핑을 해 보기도 했지만 심심함은 가시지 않았다.
[청혼: 맵쓸이 속도 ㄷㄷ]
[청혼: 오 곧 업이네요 화이팅]
그는 사냥에 집중하느라 답을 거의 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심심해진 나는 길드 채팅 창에 도배를 시작했다.
다들 먹이를 주지 않다가, 하나둘 원성을 터뜨렸다.
{현지: 아 좀;}
{기망: 싸물어 제발}
{청혼: 나 심심}
{현지: ㅇㅉ}
{청혼: ㅠㅠ}
그래도 심심해하는 내가 불쌍했는지, 한가한 몇몇이 대화에 응해 주었다.
{유징: ㅋ니 머하는데?}
{유징: 터반으로 와ㅋㅋ 여기 쌈 구경 꿀잼 ㅎ}
{청혼: 나 경벞 셔틀 중}
{유징: 알바 하니?ㅋ 서민}
{청혼: 졸라 잼 없네 이거}
{유징: 투컴 ㄱ 다른 게임 해}
{유징: 어맛... 설마 우기쿤...; 놧북 살 돈 수중에 없는 건 아니지?ㅋ;; 에이... 슬마~~ㅋ 그런 사람이 세상에 어딨어;;}
{기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ㅅㅂ}
{기망: 야 너 이제 길드 팟 가능? 윤지가 이제 못할 것 같다 해서}
{청혼: ㅋ 고정팟 생김 ㅈㅅ}
{청혼: 나 베레모 때문에 노예 됐으니까 다른 사람 찾아 봐}
{기망: 그 조건으로 산 거냐?}
{청혼: ㄴㄴ 베레모 덕에 운명의 상대 만나서 자발적 사랑의 노예 됨ㅎㅎ}
{현지: ㅋㅋㅋㅋㅋㅋㅋ자본의 노예 아니고?}
{청혼: ^^설마}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다가 문득 얘기할 거리가 생각이 났다. 참, 이 얘기하려고 했었는데.
{청혼: 나 근데 돈 거래 할 거 있어서 버찌님이랑 카톡도 깠거든}
{현지: ㅇㅇ}
{청혼: 젊던데 ㅋㅋㅋ 좀 놀랐다; 오지상일 줄}
{현지: 몇 살인데?}
{청혼: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20대 얼굴이었어ㅋㅋ 개잘생김 씹존경 ㅎ 지갑도 잘생기셨다 심지어}
{BOBI: 헐 야 ㅋ 혹시 카톡 이름 sj?}
{청혼: ㅇㅇㅇㅇ 아는 사람?}
{BOBI: 머니 자주 사면 모를 수가 없는데ㅋㅋ}
{기망: 아 미친ㅋ sj냐}
{기망: 그 사람 원래 잘생긴 거로 윾명 ㅋㅋㅋ 그리고 사도 사도 머니 계속 나오는 거로 윾명 ㄷㄷ}
유명한 사람이었나? 머니를 유저한테 직접 사 본 적이 별로 없어서 잘 몰랐는데.
{기망: 와 근데 본캐 있구나 장사에만 미친 놈인 줄}
{청혼: 아 ㅋㅋㅋㅋ}
{BOBI: 나도 sj 그 길드인 건 알았는데 게임 할 줄 몰랐네}
{BOBI: 걔네처럼 맘 잡고 장사하는 거면 보통}
{BOBI: 템테크하려고 게임하는 거지 게임하면서 돈도 모으는 느낌은 아닌 거 같던데 신기}
그렇구나…….
슬슬 버프 지속 시간이 다 돼서 채팅을 접어 두고 리버프를 해 주러 버찌 님에게 가려는데, 그가 때마침 레벨 업을 하는 것이 보였다.
[청혼: 오]
[버찌: ㅋㅋ 지루하죠]
[버찌: 저 3업 할 때까지만...]
[청혼: ㅇㅇㅇㅇ ㄱㅊ]
조금만 더 고생하면 된다…….
나는 하품을 참으며 채팅 창을 다시 켰다.
* * *
버찌 님을 따라다니면서 자연스럽게 그의 지인을 몇 명 소개 받게 되었다. 버찌 님은 신기할 정도로 랭커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들 앞에서는 어쩐지 거리감 있던 버찌 님도 평범해 보일 때가 많았다.
[연희: ㅋㅋㅋ전향하라니까]
[연희: 우리 길드 와]
[버찌: ㅎㅎ]
[버찌: 근데 장사는 진짜 접을 거야]
[연희: 잘 생각했오 ㅋㅋ]
그리고 최근 대화를 몰래 엿본 결과, 그가 [백만살] 길드를 나오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나중에 버찌 님과 둘만 남았을 때 슬쩍 그에 대해 물어보았다.
[청혼: 버찌 님]
[버찌: 넵]
[청혼: 이제 장사 안 해요?]
[버찌: 아 ㅋㅋㅋ 아예 안 하는 건 아닌데]
[버찌: 그냥 소소하게만 하려고요]
[버찌: 지금은 거의]
[버찌: 상점 npc 수준이라]
[버찌: 이제 사재기나 그런 건 안 하려고요 ㅋㅋ 걍 남은 물건 좀 팔고]
[버찌: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버찌: 일부러 팔 목적으로 템 얻는 짓 안 하겠다는 뜻]
[버찌: 그 길드는 어차피 갠플 성향 강했어서ㅋㅋ 장사 접으면 그냥 나와야 해요 친목이 거의 없어서]
하긴, 그러니까 종일 저렇게 사냥만 하는 거겠지? 그래도 장사 쪽에서 그 정도로 입지를 쌓았는데 그만둔다니 내가 다 아쉬웠다.
[청혼: ㅇㅎ... 그럼 이제 그거 육성하시는 거?]
[버찌: 네 ㅎㅎ]
[청혼: 저 템 구경해도 돼요?]
[버찌: 어... 아직 덜 맞춰서 좀 그렇긴 한데]
[버찌: 정보 열어드릴게요]
나는 버찌 님이 착용한 아이템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구경해 보았다. 와, 씨. 이게 덜 맞춘 거라고? 장사로 돈을 많이 벌긴 번 모양이다. 여기서 뭘 더 하려는 거야…….
[청혼: 와 ㅋㅋ... 접고 싶다]
[버찌: 헉 ㅋㅋ 안 돼요...]
[청혼: 그사세네]
[버찌: ㅎㅎ 청혼 님도 살고 있어요]
나는 왠지 그 말이 웃겨서 시시덕거리며 웃다가 조금 더 사적인 질문을 했다.
[청혼: 근데 버찌 님 연세가 어떻게 돼요??]
[버찌: 헉...ㅠㅠ 연세라니...ㅋㅋㅋㅋㅋ]
[버찌: 27살이에요^^]
[버찌: 청혼 님은 몇 살이에요?]
[청혼: 그러면 직장 다녀요?]
[버찌: 아뇨 사업해요 ㅎ]
[청혼: 오... 전 20살인데]
[버찌: 대학생?]
[청혼: ㅋㅋㅋㅋ아니요 취준생 ㅎ...]
[버찌: 아이고... 맘고생이 많겠네요]
그가 [토닥토닥] 감정 표현을 썼다.
새삼 깨달은 건데 버찌 님 말투 정말 다정하네. 평소 내가 노는 스타일이랑은 달랐지만 낯간지럽다거나 지루하진 않았다.
그때, 버찌 님도 나에게 질문을 했다.
[버찌: 근데 청혼 님 길드는]
[버찌: 뭐하는 길드예요?]
우리 길드? 그냥 길드인데, 평범한.
그가 먼저 이런 걸 묻는 건 처음인 것 같아서 신기해하며 답장을 보냈다.
[청혼: 왜요? 그냥 친목 길드인데]
[버찌: 아하 ㅎㅎ 친목...]
[청혼: 오실래요?]
[버찌: ㅋㅋㅋ 제가 근데]
[버찌: 사교성이 없는지라...]
[청혼: 길드 스킬은 좀 찍어 놨어요]
[청혼: 그냥 길드팟 돌리고]
[청혼: 근데 모시기 좀 죄송한데... 누추해서... 만렙도 ㅂㄹ없고 길드명도 구려서요ㅋㅋㅋ]
딱 봐도 오고 싶지는 않은 눈치라 나도 더 권하지 않았다. 그는 곧, 조심스럽게 제 목적을 꺼냈다.
[버찌: 청혼 님이랑 고정 팟이라 길드 보너스 좀 받아볼까 생각을 했는데]
[버찌: 음 길드 옮기시는 건 좀 그렇죠?]
[청혼: ㅇㅇ...]
[버찌: 그냥 길드는 따로 하는 게 낫겠네요 ㅎㅎ 알겠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그는 King이 길드 마스터로 있는 서버 내 1위 유명 길드로 들어가 있었다.
지금까지 장사만 한 것 같은데 저런 사람들이랑은 어떻게 아는 걸까? 참 신기한 일이다. 새삼 나는 버찌 님이 왜 나에게 고정 파티를 제안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라면 나보다 더 고스펙인 프리스트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어느 날 내가 그렇게 물었을 때, 버찌 님의 답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간단했다.
[버찌: 제가 아는 프리스트 중에 고정 파티 없는 남자가 청혼 님 뿐이었어서 ㅎㅎ... 오래 볼 사이면 동성이 편해서요]
하긴, 직업을 바꾸고 자주 들은 소리 중 하나가 [남캐 프리스트 처음 본다]였다. 그래도 남성 프리 유저는 꽤 있는 편일 텐데? 다들 여자 캐릭터를 쓸 뿐이지.
[버찌: 사실 프리 자체가 고레벨은 좀 귀하잖아요]
[버찌: 혼령도 저레벨 때 올리기 힘든 건 마찬가지라 직업 변경으로 커버가 안 되니까]
[버찌: 그래도 파티 필수 캐라 키우는 사람들이 꽤 있긴 한데]
[버찌: 수요가 그만큼 많아서 거의 고정 팟이 있더라고요]
[버찌: 이 계정 지인들은 거의 제 헤비 고객으로 시작해서 친해진 거라]
[버찌: 고인물들이 많아서]
[버찌: 보통 오래된 그룹이 있어요... 이렇게 저렇게]
[버찌: 제가 이제 와서 끼려고 하면 자리가 없는 거죠 ㅎㅎ 그래서 새로운 파티 꾸리려는 거예요]
[청혼: 근데 격수 둘 없잖아요]
[버찌: 일단 제 장비 다 갖춰지면 차차 구하려고요]
[버찌: 혹시 아는 분 있으세요?]
[청혼: 저도 근데 뎀 좀 나오는 분들은]
[청혼: 좀 고정팟 하기 싫은ㅋ; 왜 솔플 하는지 알 거 같은 분들이나]
[청혼: 아예 고정팟 있는 분들 뿐이라]
[버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버찌: 제가 찾아볼게요 ㅎㅎ]
확실히 요즘은 버찌 님이랑 꽤 친해진 것 같다. 사냥할 때나 던전 돌 때가 아닐 때에도 종종 마을 같은 곳에서 같이 있다 보니 내 지인 몇몇도 그와 얼굴을 트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나도 그의 지인인 랭커들과 계속 마주치면서 조금씩 그들과 말을 트게 되었다. 아무래도 내가 흔치 않은 남캐 프리스트라서 다들 기억을 잘하는 것 같았다.
[뽀삐: 근데 청혼 님도]
[뽀삐: 원래 장사 하셨어요?]
[버찌: ㅋㅋㅋㅋ아니?]
[뽀삐: 저는 사실 오빠가 갑자기 고정 2인팟으로 다니길래]
[뽀삐: 아 장사 파트너였나보다 했어요 ㅋㅋㅋㅋㅋ]
[뽀삐: 원래 저 계정 거의]
[뽀삐: 레벨 높고 예쁜 창고캐였어서]
[버찌: 나 진지하게 키웠는데...]
[뽀삐: ㅋㅋㅋ]
[뽀삐: 둘 다 캐릭터가 너무 귀엽네요]
[청혼: ㅎㅎ 제 게임의 목적]
[뽀삐: 앜ㅋㅋㅋ 룩덕... 현질의 앙꼬죠...^^b]
대체로 버찌 님의 지인들은 나에게 친절했고, 말투도 버찌 님처럼 조곤조곤한 느낌이었지만 아닌 부류도 간혹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King이었다.
얜 일단 기본적으로 인사를 절대 먼저 하지 않는다.
[King: ㅋㅋㅋㅋㅋ그럼 안 팔 거임?]
[버찌: 급처도 아닌데 가격 너무 양심 없는데 ㅋㅋ]
[King: 야... 역시 장사꾼 ㄷㄷ 장사 접는다더니]
[King: 장사꾼 어디 안 가네]
[버찌: 손해 볼 이유가 없지]
[버찌: 내가 장사를 접는댔지 언제 재고 떨이 한다 했나]
[버찌: 마트 바겐세일 코너 취급하지 말고 정상 제시 하라고 전해]
[King: ㅇㅇㅋㅋㅋ안 그래도 에누리 안 될 거랬는데 ㅈㄴ 자꾸]
[King: 귀찮게 해서 함 물어본 거임ㅋ]
[버찌: 장사 접는 거지 게임 접는 거도 아닌데 웃기네ㅋㅋ]
그리고 내가 버젓이 있는데도 투명 인간 취급하듯이 내가 모르는 이야기만 쏙쏙 골라 해 댔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그러니까 솔직히 불만이긴 했는데, 그렇다고 대놓고 뭐라고 할 수도 없어서……. 신경 쓰는 나만 괜히 쪼잔해 보일 것 같으니까.
King이랑 있을 때면 여러모로 심기 불편한 나와 다르게 버찌 님은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편해 보일 때가 많았다. 내가 언젠가 그런 감상을 버찌 님에게 말하자, 돌아온 답은 꽤 충격적이었다.
[버찌: 아 ㅋㅋㅋㅋ 걔]
[버찌: 실친이에요]
[버찌: 걔 때문에 시작했던 거라서]
[청혼: 헐 그랬구나]
[청혼: 뭔가 싱기]
[버찌: ㅋㅋ 제가 놀아 주는 거죠... 불쌍한 히키코모리]
[청혼: ㅋㅋㅋㅋㅋ]
그래, 이상하게 친해 보이더라니. 나는 어쩐지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렇게 그와 조금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현지가 왔다. 우리는 셋이서 별 것 아닌 주제들로 대화하며 시간을 보냈다.
[현지: ㅋ 제발]
[버찌: ㅎㅎ]
[청혼: ㅋㅋㅋ 절대 주지 마셈]
심현지가 캐릭터를 기게 만들며 버찌 님에게 복종의 의사를 표했다. 나는 웃겨서 죽을 지경이었다.
매크로에 장난치는 애들이 장사할 때 제일 싫었다는 버찌 님에게 구체적으로 그게 어떤 거냐고 물어본 것이 시발점이었다.
안 사는 아이템을 일부러 올리거나 교환 신청을 쓸데없이 계속 걸고, 매크로가 일 처리하는 속도의 빈틈을 노려서 장비 창을 가득 차게 하는 식으로 장난을 친다고 하는데, 사실 나도 괜히 용건 없이 교환 신청을 건 적이 조금 있어서 양심이 찔렸다.
그래서 내가 그걸 당하고만 있었냐고 물으니, 매크로인 척 대기를 타다가 그 사람이 왔을 때 교환 수락을 빠르게 눌러 상대방이 교환을 취소하기 전에 아이템과 머니를 꿀꺽해 버렸다고 하는데……. 솔직히 나는 매크로는 써 본 적도, 구경해 본 적도 없어서 어떤 방식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계속 되묻자, 버찌 님은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직접 보여 주는 게 빠를 것 같다며 내게 교환 신청을 걸었다. 그러고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엄청난 양의 머니를 교환 창에 올렸다.
[청혼: ???]
그가 곧장 교환 수락을 눌렀고, 나는 어리둥절해하며 맞수락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교환이 취소되었다.
[버찌: 이런 거예요]
[버찌: 걔가 제 매크로 반응이 느린 거 이용해서]
[버찌: 교환 수락 했다가 제 매크로가 수락 누르기 전에 취소하는 식으로 자꾸 장난을 쳤는데]
[버찌: 그때 걔가 취소하기 전에 빨리 수락을 누른 거예요ㅋㅋ]
[청혼: 와 근데 반응속도 뭐지]
[버찌: 심심할 때 가끔 했더니ㅎㅎ]
[버찌: 이거 우리 길드에 진짜 잘하는 분 있었는데]
[버찌: 5판 했는데 딱 1판 이겼어요 ㅋㅋ... 10억 뺏겼었는데]
[청혼: 헐ㅋㅋㅋ 부자 게임이네]
[현지: 나도 그거 잘하는데ㅋ]
[현지: 버찌 함 떠요]
[버찌: 얼마빵?]
[현지: 1억 고 ㅋ]
[청혼: ㅋㅋ 전 재산 나왔죠?]
[현지: ㅗ]
그리고 곧, 두 사람이 게임을 시작하는 것 같았다.
[현지: 아니 미친]
[현지: 아니 ㅋㅋㅋㅋ 야비해]
[버찌: ㅎㅎ]
[현지: 아니 일부러 말 걸고 그 사이에]
[버찌: 기본이죠]
[현지: 매크로 아니죠?]
[버찌: ㅋㅋㅋ결백합니다]
[현지: 다시 1억 ㄱ]
심현지는 은근히 열 받았는지 다시 내기를 제안했고 버찌 님은 흔쾌히 수락했다. 아마 결과는 같았는지, 잠시 후에 심현지의 사자후가 또 울려 퍼졌다.
[현지: 아니 ㅁㅊ]
[현지: 아니;;;; 이보쇼ㅋ 화면 실시간 방송 켜 봐요]
[현지: 진짜 매크로 아님?]
[버찌: 손은 눈보다 빠르니까요]
[현지: ㅅㅂ 2억 날림]
[현지: 어제 한 말 취소함ㅋㅋ 이 사람 천성 장사꾼임]
[버찌: ㅋㅋㅋㅋㅋㅋ]
[현지: 진짜 마지막 ㄱ 1억]
[버찌: 얼마든지 ㅎㅎ 전 10억 걸게요]
그리고, 현재 상황이 된 것이다.
어떻기에 하는 족족 심현지가 지나 궁금해서 버찌 님에게 잡템을 내고 대결을 신청했다가 24개 있던 [멈춘 심장] 아이템을 10개 잃었다.
[청혼: 버찌 님]
[버찌: ? ?]
[청혼: 님 이긴 사람 매크로임ㅋㅋ 지금 가서 돈 돌려 달라 해 보세요]
[청혼: 역시 너무 티 났지... 미안 사기 쳐서 ㅠ 이러면서 돈 돌려줄 거 같은데요]
[버찌: ㅋㅋ닉네임 먹을 때 그런 거 쓰긴 하는데]
[청혼: 와 닉네임 도적 여기 있었네]
[버찌: 도적이라니...ㅎㅎ 모두에게 주어진 기회를 이용하는 것 뿐인데]
[버찌: 그리고 저는 안 했어요; 휴면닉이나 탈퇴닉 풀릴 때는 쓰긴 했는데]
[버찌: 저도 장사하는데 남들이 사고 판 거 가로채면 좀 마음이 아프죠ㅠ]
[현지: 와 인성]
[버찌: 인성 나쁜 김에 머니 안 돌려줘야겠다]
[현지: 와 잠만 저 실명 했어요; 모니터에서 갑자기 빛 나서; 왼쪽 부근이었던 거 같은데...]
[현지: 아 막 천사가 나와서 뭐라고... 아... 버찌라는 닉네임 가진 사람 내 동료다... 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버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마도 아부가 합격이었는지 버찌 님이 바로 교환 신청을 걸어서 심현지에게 머니를 돌려주었다.
[현지: 헐 ㅠ 진짜 천사 ㄱㅇㅈ]
[현지: 하긴 저 인성 쓰렉 최우기 품으신 것부터...]
[현지: 저는 남다른 그릇이라고 생각했읍니다...]
[버찌: 아 청혼 님 이름이 최우기예요?]
[청혼: 인성쓰렉이라고만 했는데 왜 알아들으신 거지?ㅋㅋ]
[버찌: 아 ㅎㅎ; 아니 카톡 이름이 우기였던 게 기억나서]
[현지: 당연 알아보지ㅋ 니 인성 쓰렉인 거 유명]
[청혼: ㅇ ㅋㅋ]
[버찌: ㅋㅋ근데 두 사람은]
[버찌: 실제로 아는 사이인가요?]
버찌 님은 평소 내가 캐묻는 거에 비해서 나에게 사적인 질문을 그다지 하지 않는 편이었기에 가끔 이렇게 관심을 보일 때면 당황스러웠다.
[청혼: ㄴㄴ 겜친]
[현지: ㅋ겜 아니었으면 저런 찐따랑 친구 안 함니다^^ 하하~!]
[청혼: ㅋㅋ난 너 빵셔틀 시켰을 듯 ㅎㅎ]
[버찌: ㅋㅋㅋ아 친구였구나]
[청혼: 심지어 아닌데요;;]
[청혼: 쟨 좆고 저는 어엿한 성인]
[현지: 근데 니 빠른이잖아 ㅋ]
[청혼: ㅋ? 특:아님]
[현지: 아니 말이 헛나옴 생일 느리잖아ㅡㅡ12월생은 느린 19임]
[청혼: 혼자 실컷 그렇게 생각해라 족보 다 꼬이지ㅉㅉ]
[버찌: 아 ㅋㅋㅋ 그 말이 아니라]
[버찌: 저는 사귀는 사이인 줄 알았어요]
나는 그의 폭탄 발언에 벙쪘고, 그건 심현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현지: ???????]
[청혼: 버찌 님 외국인이었나?ㅋㅋ]
[현지: ㄹㅇ 한국어 미숙한가 본데]
[청혼: 미친 소리 자제 좀... 아무리 님이라지만 참기 힘드네요]
[버찌: 아 저는 봐주시는 건가요??]
[청혼: 근데 방금 권리박탈]
[버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시 회복해 주세요ㅠㅠ]
[버찌: 둘이 참 잘 맞는 것 같아서 ㅎㅎ]
[청혼: 쟤랑 사귀느니 버찌 님이랑 결혼함]
[현지: ㅇㅇ 꼭 해라 ㅋ 너 결혼 안 하면 너랑 사귈 거니까 해라; 꼭 해라]
[청혼: ㅋㅋㅋ안 하면? 같이 인생 조져볼래?]
[현지: ㅅㅂ 더러워]
[청혼: 나도 싫거든; 조만간 청첩장 보낸다 받아라]
[버찌: 제 의사는 필요 없는 건가요?]
[청혼: 헐 거절하시게요?]
별생각 없이 채팅을 쳤는데, 버찌 님이 다시 물었다.
[버찌: 아 게임에서요??]
[청혼: 아니요 실제로 청혼할 건데요 ㅋ]
[버찌: 그럼 이민 가야하지 않아요?ㅋㅋㅋ]
이민 이전에 여러 문제가 있을 텐데? 나는 태연하게 실현 가능성을 논하는 버찌 님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현지: 와 받아 줄 생각 있나본데ㅋ 휘유~^/ 0 \^]
[버찌: 게임에서면 오히려 좋은데]
[버찌: 커플 보너스 얻을 수 있어서 ㅎㅎ... 그거 커플 아이템도 있잖아요 청혼 님 그런 거 좋아하지 않았나]
[청혼: 그거 개못생겨서 시름]
[청혼: 하트 표창만 귀여운데 전 표도 아니니까ㅋ]
[버찌: 아 ㅠ]
역시 목적이 있었구먼.
[현지: 랭커 노려요?? 왜 이렇게 경낳괴 되셨는지?;]
[버찌: 그런 건 아닌데 ㅋㅋ 뭔가 시간 아깝잖아요]
[버찌: 경퍼 높으면 덜 잡아도 되는 건데]
그렇게 말하지만, 버찌 님은 최근 내가 경험치 버프를 안 주는 시간까지 사냥을 돌리고 있었다. 지금처럼 쉴 때도 많지만…….
[청혼: 커플 하면 뭐 좋아요?]
[버찌: 워프 ㅇㅇ 결혼 시키면 프로필에서 신혼집 이동 가능한데]
[버찌: 그 안에 신혼여행 기능이 있어서 지도에 표시 되는 필드면 텔포 템처럼 아무 곳이나 이동 가능]
[버찌: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커플 보너스 있어서]
[버찌: 근데 꼭 안 해도 돼요^^]
[현지: 차피 둘 다 남캐자늠 ㅋ]
[청혼: 아 맞네 실화데스?]
[청혼: 그면 걍 ㅂㅂ]
[버찌: ㅋㅋ... 왜 동성은 결혼 안 되지 전환 템도 없는 주제에 ㅎㅎ...]
[현지: 진짜 하시려 한 거?ㅋㅋㅋㅋㅋ 이야 우기 장가가겠다^^]
[버찌: 네에]
[청혼: ㄷㄷ; 날 왤케 좋아하지]
[청혼: 전에는 길드에서도 빼가려 했는데ㅋㅋㅋ 위험인물임]
[현지: 헐...ㅋ까비]
[버찌: ㅋㅋㅋㅋㅋ 양도 되나요?]
[현지: ㅋㅋㅋㅋ 저는 넘 좋은디 길드 애들이 시러할 듯 ㅎ]
[버찌: 에구]
이후로 시답잖은 이야기를 좀 하다가, 버찌 님이 같이 던전 돌 격수 둘을 구했다며 소개해 주겠다고 해서 함께 고레벨 사냥터 인근의 마을로 이동했다.
[보보: ㅊㅎ]
[청혼: 엥ㅋ ㅎㅇ]
[청혼: 다른 채널 이동 부탁 ㅋㅋ 시력 감퇴 중]
[보보: ㅋㅋㅋ]
여기서 지인을 만나다니. 마을에서 친해진 고레벨 인맥 중 하나였다. 그런데 버찌 님이 보보 앞에 멈춰 서는 게 어째…….
[봉봉: 아넝하새오]
[청혼: ㅎㅇㅎㅇ]
[보보: 버찌 님 설마 얘예요?]
[버찌: 아 네네 맞아요]
[보보: 청혼 혼술 아니에요?ㅋㅋㅋ 얘 딜 안 나올 텐데]
[청혼: 뭐야 ㅅㅂ 격수가 너였냐; 스토킹 자제하자 니가 날 존경하는 건 알지만ㅎㅎ;]
[버찌: ㅋㅋ아는 사이셨구나]
[버찌> 청혼님 혹시 그때 파티 하기 싫다던 분들 중 하나인가요...?]
버찌 님이 귓속말로 불쑥 그렇게 물었고, 나는 전에 내가 했던 말이 떠올라서 해명했다.
[청혼> ㄴㄴㄴ 보보는 당연히 팟 있을 줄]
[버찌> 아하 ㅎㅎ 그럼 별 문제 없는 거죠?]
[청혼> 네네 ㄱㅊ]
[보보: 엥 직업 언제 바꿨냐]
[청혼: ㅋㅋ 그뿐이냐 템도 맞췄다 깝ㄴ 격프리 할 거니까]
[보보: 미친ㅋㅋㅋ 갑분혼 뭔데]
[보보: 이런 곳에서 얘를 만나네...]
[봉봉: ㅋㅋㅋㅋㅋㅋㅋ 잘부탁해요]
[청혼: 저도 ㅎㅎ 보보 근데 고정팟 없었음?]
[보보: 원래 나 커플이랑 둘이 해 ㅇㅇ 진짜 쎈 거 깨러 갈 때만 가끔 팟 짜고]
[보보: 별로 욕심 없어서]
[청혼: ㅇㅎ]
보보는 너클을 쓰는 해적 계열의 직업군이었고, 그의 커플인 봉봉 님은 법사였다. 내 직업도 법사 쪽이긴 하지만 이건 서포트 계열이었고, 봉봉 님은 전투 계열이었다.
이제 한 사람은 누구려나…….
[봉봉: 근데 4명이서 고정하는 거예요?]
나와 같은 의문을 품은 건지, 때마침 봉봉 님이 질문을 하셨다.
[버찌: 아 ㅎㅎ 생각해둔 사람이 있긴 한데]
[버찌: 지금 해외여행 중이라 부주가 들어와서]
[버찌: 며칠 뒤에 돌아오면 물어보려고요]
[보보: 누구요?]
[버찌: 토라 님이요]
[청혼: 헐 대박]
……미친, 토라라고?
전의 그 스트리머였다. 내가 프리스트로 전업하는 데 결정적 한 방을 제공했던…….
생각해 보면 시작과 끝이 다 토라 때문이었네. 시작에 비해 끝은 딱 집어 그의 영향이라고 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결정적 영향을 주기는 했으니까.
솔직히 생방송 안 보기 시작한 후부터는 다른 콘텐츠 다 거르고 사냥, 던전 영상만 가끔 봐서 팬이라 하기는 모호했다. 그래도 저스티스 전문 방송 채널 중 유일하게 구독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청혼: 저 약간 팬인데]
[버찌: ㅋㅋㅋㅋㅋㅋ아 정말요?]
[청혼: 유×브 하시는 분 맞죠]
[버찌: 네 ㅎㅎ 친분이 있어서 운 좋게 설득했네요]
[보보: 그분이면]
[보보: 딜 뽑을 수 있죠]
[보보: 청혼이 혼술이었으면 안습]
[청혼: ㅋㅋ ㅗ]
나는 점점 기대되기 시작했다.
이 팟에 나 같은 쩌리가 껴도 되는 건가? 분명 그때 10주년 상자에서 뽑은 것은 한정 펫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렇게 겜생이 술술 풀릴 리가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