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에필로그. (9/14)

“우심실이 약해지면 그만큼 심실을 감싼 심근, 그러니까 벽이 두꺼워져서.”

“오히려, 심장이… 허억. 커지는, 구나?”

“그렇지.”

성수기인 가을을 맞이한 순천만은 사람들로 붐볐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우리의 대화에 이상한 듯 쳐다봤지만, 나는 일일이 거기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숨이 찼다. 호흡을 가다듬으려 멈춰 서자, 손수건을 건넨 녀석이 벤치 하나를 발견했다.

“잠깐 쉬었다 갈까?”

“…어.”

확실히, 여긴 여름도 좋지만 가을이 제대로구나.

3개월만이었다. 그저 푸르른 갈대는 어느덧 바뀐 계절에 따라 금빛 머리를 하고 날 반겼다. 바람에 따라 너울거리는 갈대밭은 더욱 웅장했다. 그 속삭임에 몇 번이고 걸음을 멈춰 서야 할 정도였다. 가릴 것 없이 탁 트인 풍경 앞에서 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대답하듯 힘차게 뛰는 심장과 폐를 만끽하며.

물론 이번엔 녀석도 함께였다. 그래서 기왕 온 김에 우리는 전망대에 오르기로 했다. 결과적으론 그릇된 의욕이 이끌어 낸 망발이었다. 가파른 산도 아니건만, 확실히 등산은 지금의 내겐 꽤 만만치 않은 운동이었다.

녀석이 발견한 벤치에 앉아 우리는 한숨 돌리기로 했다. 녀석의 걱정스런 눈빛에 난 일부러 아까 전 화제를 이어 갔다.

“여하튼, 과하게 두꺼워진 근육이 오히려 전체적인 혈류에 악영향을 끼치는 거네.”

“그런 셈이지.”

“근데 그걸 어떻게 수술해? 게다가 아기 건. 엄청 작을 거 아냐. 나도 자두 씨만 했다는데.”

땀을 닦아 넘기자 녀석의 잘생긴 이마가 드러났다. 얌전하게 내 손길에 맡기고 있던 녀석이 대답을 못 하고 잠시 머뭇거렸다. 그게 그렇게 의외의 질문이었던가.

“그냥, 하다 보면 돼.”

“와, 재수 없어.”

“난 대신 그림 못 그리잖아.”

“흠….”

싱긋 웃어 버리는 녀석의 표정에 난 입을 비쭉 내밀고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약점이라는 거, 알고 저러는 걸까.

건네받은 물병으로 목을 축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망대에 오르는 길이긴 했지만 도중이라 그런지 크게 붐비진 않았다. 다들 낙조를 보려 오르는 도중이었다. 예정된 시각에는 이십 분 정도 남았다. 더 늦으면 자리 잡기 어렵겠다 싶어 일어나려는데, 녀석이 내 손을 잡았다.

“그냥 오늘은 여기까지만 오를까?”

“왜?”

“그냥. 너 그림 그리는 거 보고 싶기도 하고.”

오늘이 날만 아니고. 덧붙이는 재희의 말에 난 쉽게 주저앉았다. 네가 그림을 보고 싶다면야. 뭐가 중요하겠어.

일 년, 아니 한 달은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모든 것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세 번째 순천에 내려왔던 날 밤. 긴 고민의 끝에 녀석은 내게 대답을 전해 주었다. 제안을 따르겠다고 했다. 이 교수님을 따라 미국에 가겠다고. 이미 이 교수님과 통화를 마쳤다고 했다. 둘이 어디까지 대화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홀가분한 듯이 말하는 녀석에게 내가 오히려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괜찮겠냐고.

얼떨떨하게 올려다보는 내게 함께 가자며 미국 유학을 권하던 녀석은, 꽤 절절한 프러포즈를 건넸다.

‘살아만 줘, 내 곁에서.’

물론 내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재회의 키스만큼이나 열렬한 대답이 오갔다. 다음날 나는 물론 몸져누웠다. 몸살이 걸려서도 헤헤 웃었다. 그저 좋았다. 만사가 원하는 대로 풀려가는 게 좋기만 했다.

***

그렇다고 해서 일상이 무조건 녹록한 건 아니었다. 모든 게 쉬이 멀쩡해지진 않았으니까.

불면증이 고쳐진 듯싶더니만, 간혹 녀석은 악몽을 꿨다. 내가 곁에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살아 있음을 알리고 달래 줄 수 있었다. 꼭 자기가 어린아이가 된 것 같다며 하소연하던 녀석 또한, 차츰 자신의 약점을 내게 보이는 것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

나 또한 여전히 취약한 면역 기능 탓에 일상생활에 제한이 있었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집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여전히 한 달에 한 번은 서울에 올라가 검사를 받아야 했고, 검사 결과라도 나쁘게 나오면 더 오래 머물러야 했다. 함께하는 밤은 지독스레 달지만, 그만큼 그리워하는 밤은 쓰디써서 괴로웠다. 치미는 자괴감도 자취를 감추지 않고 이따금씩 고개를 들이밀어 날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리려 굴었다.

하지만 이전처럼 쉽게 나약해지진 않았다. 왜냐하면, 난 돌아갈 곳이 있으니까.

설사 지금은 떨어져 있다고 해도. 고난에 부딪히는 어느 순간에도 그 마음가짐이 갖는 위력은 상당했다. 지금의 순간은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서른 해 동안 지루하게 버텼던 병원 또한 다 지나갈 일이라고 넘기게 만들었다. 난, 곧 돌아갈 테니까.

아빠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평생 살던 너른 단독 주택이 아닌 그 낯선 지방의 좁은 아파트가 내게는 첫 보금자리가 되어 주었다. 중요한 건 공간이 아니고 사람이기에.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 언제 들이닥쳐도 재희의 방에 담뱃갑이나 술병은 찾을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재회하는 그 설렘이 익숙해질수록 평온은 그 겹을 더해 단단한 벽을 갖추었다. 그래 너도 다르지 않구나. 무척이나 오래 걸렸다.

이제야, 우리가 된 거구나. 너와 내가.

***

“거기서 어떻게 그런 색을 써?”

“그냥, 하다 보면….”

“와, 재수 없어.”

아, 이런 기분이구나.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유레카,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니 재희 역시도 알겠지? 라는 듯 피식 웃었다.

약간 공상에 빠져 이것저것 색을 썼더니 녀석은 호기심이 대폭 일어난 듯했다. 자기 생각엔 빨간색만 써야 할 것 같은데 왜 갑자기 남색이나 초록색을 쓰는지 이해를 못 하겠단다. 음, 빛의 보색 같은 건 얘도 고등학교 때 배우지 않았던가. 하지만 딱히 계산하고 쓴 건 아닌지라, 내가 붓질을 할 때마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도 감탄을 마지않는 녀석에 난 도통 집중을 못 했다. 아웅다웅하다 보니 평소보다 훨씬 더디게 그려 갈 수밖에 없었다.

문득, 또 시야가 온통 붉게 물든 탓에 난 고개를 들었다. 주변을 확인한 난, 여전히 스케치북만 뚫어지라 내려다보고 있는 재희를 툭툭 쳤다. 나에겐 두 번째지만 첫 경험인 녀석은 시야를 압도하는 붉은 빛에 반사적인 탄성을 내질렀다.

“와….”

아니, 나에게도 처음이지. 너와 함께 보는 낙조는.

***

여전히 아름다웠다. 하늘을 캔버스로 삼은 장대한 빛의 스펙트럼에 나는 붓을 감히 놀릴 수 없었다. 온전히 압도된 시야 속, 이름도 짓지 못한 현란한 빛들이 물들인 바람과 들판은 내가 마치 몰랐던 세상처럼 붉게 빛났다.

어둠을 틔우는 일출과 달리, 여태껏 품고 지낸 모든 것을 거둬들이며 마지막을 찬란히 빛내는 낙조는 무언가의 종말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화려했다. 그래서 믿을 수밖에 없었다. 비록 어둠이 찾아와도, 저 태양은 다시 또 찾아와 우리를 비추리라는 것을.

저토록 빛나는데, 사라질 리 없잖아. 끝일 리가 없잖아.

***

너도 그렇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장관의 넋을 잃은 재희의 손등 위에 내 손을 포갰다. 꼭 내 맘을 읽은 것처럼 녀석의 손이 내 손을 쥐었다. 나도 그 손을 맞잡아 깍지를 꼈다. 그렇게. 무슨 용기였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았다. 이어서 나는 자연스럽게 재희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고 녀석도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신기했었어.”

“…뭐가?”

“이게 사랑이면, 어떻게 사람들은 그걸 여러 번이나 하고 살지 싶어서.”

기대고 있는 녀석의 몸을 타고 나직이 녀석의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지평선 아래로 점차 사라져 가는 낙조를 안타까워하듯, 유난히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나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오히려 녀석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사랑이 이런 건 줄 알았다면. 난, 진작 안 했어.”

장거리 연애가 비단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헤어져 있는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에 대해 골몰할 수 있었다. 그건 상당한 소득이었다. 재희는 다른 의미의 그리움을 배웠다고 했다. 그저 외롭고 쓸쓸한 게 아니라, 설레고 기다려지는 일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곁에 머물렀던 공간이 비워진 여백을 반추하느라 하루가 짧고, 차곡차곡 쌓인 추억이 목울대를 간질일 정도가 되면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감정. 그것에는 어려운 이름이 없어도 된다. 녀석이 한때 천시했고, 이제는 경외감을 담아 매만지는 사랑은, 그런 울림이겠지.

“…그래서 후회해?”

같이 한 방향을 보고 있어서 녀석에겐 보이지 않겠지만, 나는 한껏 입술을 삐죽였다. 사실은 녀석의 대답이 두려웠다. 모르지 않는다. 녀석이 한정현이라는 이름 아래 희생한 모든 것들을.

자신이 없긴 하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전부 다 갚아 줄 수 있을까, 네게.

장래가 유망한 의사. 그리고 난 그냥 미대생. 우리에게 정해진 미래는 딱 그 정도다. 언젠가부터 내 키를 훌쩍 뛰어넘어 버렸던 것처럼 우리의 시선도 언젠가는 수평을 잃는 날이 오겠지. 온전히 나만을 사랑하겠다는 네 맘이 변할까 봐. 날아가 버릴까 봐 두려운 건 난데. 참, 네가 시야가 좁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한정현.”

내 말을 들은 녀석은 품에 안고 있던 내 턱을 잡아 돌려 제 쪽을 보게 했다. 내려다보는 녀석의 얼굴 또한 낙조 탓에 온통 붉었다. 안도했다. 자연스레 붉어진 내 뺨도 녀석에겐 보이지 않겠지 싶어서.

태연한 척 눈을 말없이 뚫어지라 나를 쳐다보는 녀석의 짙은 눈썹이 조금 꿈틀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아, 아주 잘 알고 있지, 이 표정. 나는 자연스럽게 긴장했다. 반사적이었다. 보통 이럴 때면 넌, 내 맘을 실컷 뒤흔들고는 하니까.

“후회할 기회라도 주고 말해.”

“…내가 뭐.”

“쉴 틈이 없어, 정말 너는.”

온 세상이 붉게 물들었다 못해, 미쳐 버렸나 봐.

눈을 감았는데도 검붉은 시야가 작열하는 태양의 꼬리를 본 것 같았다.

네 살 때부터 그랬다. 삶의 끄트머리에서 내가 버틸 수 있게 해 주었던 절대적인 온기. 펑펑 울던 녀석을 웃게 해 주고 싶었던 마음, 그 욕심은 사랑이라 칭하기엔 지독히 이기적이었다. 그러면 안 될까 봐. 널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간혹 먼 길도 돌아왔었다. 내 존재가 녀석의 행복이 아닌 불행을 만든다는 사실에 괴로워하기도 했다. 심지어 거절당했을 때도, 마지막이라 생각했던 순간에도 내 우주는 온통 네가 중심이었으니까.

그리고 서른. 곧 서른하나가 된다. 일평생 한 녀석에게 타올랐던 마음은 아무래도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뛰고 있다. 심지어 남의 심장을 달고도 있지. 좀 색다르게 뛰어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번 생은 답이 없나 봐. 너 말고는.

잔인하지만 너의 하루도 그랬으면 좋겠다. 삶의 주인이 나 자신이 되어야 하는 성인 따위는 영원히 되지 못해도 좋다. 네가 내 주인이듯, 나도 네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낙조를 뒤로한 채 나는 멀어져 가는 녀석의 입술을 다시 이끌었다.

“이거 봐.”

“…….”

“계속 예쁘잖아.”

내가 먼저 입을 맞춘 순간 개어 버린 널 향한 하루는, 아무래도 여전히 저물 생각은 없어 보이니까. 이거 봐, 눈을 감아도 온통. 환하잖아.

***

생각해 보면, 우린 둘 다 각자 실패한 인생이었다.

난 녀석을 떠나려고 했다. 독립적인 성인으로서 하나의 삶을 살아가려 애썼고, 주변의 바람대로 가늘고 길게, 두 번째는 큰일 없이 내 심장을 가지고 오래오래 살아가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결론은 처참했다. 심장도 망가져서 남의 심장을 갖게 되었고, 제 발로 녀석의 곁에 돌아가게 되었다.

녀석도 별반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녀석의 원대한 목표는 날 수술하는 집도의가 되는 것이었다. 그걸 위해 날 사랑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고 했다. 인고해 왔던 오랜 시간을 순식간에 말아먹은 녀석은 모든 전제와 결론을 가뿐하게 인정해 버렸다.

사랑한다고.

아니, 사랑해 버렸다고.

“현아.”

글쎄, 사랑이 여태껏 그래 왔듯. 무조건 볕 든 날만을 보장하는 건 아니겠지만.

녀석이 말했듯 감정은 변한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 속에서, 언젠간 지금의 우리를 후회할 날들도 올지 모른다. 바쁜 녀석에 지치다 못해 다툴지도 모르고, 서로에게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실패가 너와 함께하는 삶을 의미한다면야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찰나의, 아주 짧은 한순간이라도 이토록 온전히 서로만을 바라볼 수 있다면 괜찮다. 네가 아니면, 그리고 내가 아니면 행복해질 수 없다는 이 불완전한 삶도 조금 괜찮을 것 같아. 아니, 마음에 들어.

성급하게 굴 필요는 없다. 조바심내지 않아도 된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순간마저 끝이 아니었는걸. 오히려 그 벼랑에 몰리지 않았다면, 어쩜 우리는 이렇게 닿지 못했을지도 몰라. 세상 가장 끄트머리로 떨어져 내리는 낙조가 더욱 아름답게 불타오르듯. 그 끝의 시작에서도 나는 두렵지 않았다. 혹여 기다리고 있을 구렁텅이마저도. 그게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알기에.

“좋아해.”

“…사랑해.”

“무슨 차이야?”

“글쎄….”

너와 닿은 내 나약한 몸 어느 한구석도 소중하지 않을 수는 없는걸. 유독 컸던 심장의 방 한구석. 이제는 네가 거둬 준 누군가의 생명까지도.

내 손이 닿을 수 있는 이토록 가까이에. 다른 사람은 범접할 수 없는 좁고도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

재희야.

이렇게 너만 내 곁에 있다면. 그렇다면.

<끝, 외전에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