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왓.”
문이 닫히자마자 뒤에서 확 덮치듯 껴안는 통에 시우는 깜짝 놀라 작게 소리를 질렀다. 무경의 몸이 뜨끈하게 등 뒤로 달라붙었다. 팔을 배에 바싹 둘러 감고 얼굴을 목덜미에 묻으며 무경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와, 놀래라. 뭐예요, 갑자기.”
“뭐라니. 3주 동안 참은 거에 대한 보상을 받겠다는 거지.”
돌아보는 시우를 힐끗 올려다보며 무경이 목덜미에 코를 부볐다. 동시에 얇은 여름옷을 파고든 손이 슬금슬금 가슴으로 기어올라 왔다.
“아니, 잠깐만. 좋아요. 다 좋은데, 지금 대낮이거든요?”
옷 위로 무경의 손을 꽉 잡아 누르며 시우가 몸을 비틀어 빼려고 했다.
“대낮이면 뭐. 너무 밝아서 그래요? 암막 커튼이라도 칠까?”
떨어지려는 시우를 꽉 잡아당겨 안으며 길게 빼는 목덜미에 살짝 이를 세웠다. 진로를 차단당한 손은 원을 그리듯 부드럽게 배를 어루만졌다. 짙게 흘러나오는 페로몬에, 다정하다기보다는 야하게 피부를 간질이는 손가락의 움직임을 보니 가벼운 스킨십 정도로 끝날 분위기가 아니어서 시우는 바짝 정신을 차렸다.
“밝은 게 문제가 아니라… 지금 밖에 애들 있잖아요. 혜린 누나랑 기완 씨도 있고….”
시우는 어제 막 그림 동화책과 일러스트집 작업을 마감하자마자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가족 여행을 떠나온 참이었다. 아직 어린 둘째 람이를 데리고 먼 외국까지 나갈 수도 없어서 개인 해변이 딸린 동해의 별장을 찾았다. 관광지에서 거리를 적당히 둔 한적한 곳이어서 조용하고 평화롭게 휴식을 취하기에는 그만이었다.
무경도 몇 달 전부터 시우의 일정에 맞추어 휴가를 받아 놓았기에 모처럼 단란한 가족 여행이 된 것까지는 좋았지만, 무경의 입장에서 볼 때 한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아직 갓난쟁이인 람이는 재우기만 하면 그만이었지만 일곱 살이 된 겸이가 문제였다. 시우의 동화책과 일러집 작업이 겹치는 바람에 한동안 어리광을 부리지 못하고 얌전히 있어야 했던 겸이는 시우의 작업이 끝났다는 말을 듣자마자 찰싹 달라붙어 조금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들었다.
무경도 며칠 전부터 시우가 마감을 끝내기만을 기다렸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모처럼의 밤을 기대했지만 모두 다 허사가 됐다. 어제 겸이가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시우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다가 밤에는 결국 부부 침대의 가운데 자리까지 차지하고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모처럼의 여행이기도 하고, 시우가 바쁠 때마다 의젓하게, 하지만 쓸쓸한 얼굴로 혜린의 손을 잡고 돌아서곤 하던 작은 뒤통수를 생각하면 아버지가 돼서 제 욕심만 차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겸이가 잠들면 다른 방으로 옮기든가 하자고 신호를 주었지만, 작업하는 동안 수면 부족에 시달렸던 시우는 겸이보다도 먼저 깊은 잠에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눈 밑에 약한 그늘을 달고 곤히 잠든 얼굴을 보니 제 욕심 채우자고 깨우는 것도 못할 짓이라 어제는 그냥 그렇게 넘어갔었다.
일단 재우고 아침에 보자, 라고 생각했지만 아침에는 또 아침의 사정이 생겼다. 흥분해서인지 이른 여름 해가 떠오르자마자 잠이 깬 겸이가 잠든 시우 위에 올라 타 방방 점프를 하려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시우가 깨기 직전에 간신히 녀석을 붙잡아 어깨에 둘러메고 밖으로 나갔다. 시우 옆에서 떨어지지 않겠다고 난리를 칠 줄 알았더니 높은 곳에 대롱대롱 매달린 게 재미있었는지 겸이는 무경의 어깨 위에서 신이 나서 웃는 소리를 내며 버둥거렸다.
혜린이 람이를 돌보는 동안 무경은 겸이를 데리고 아침을 먹이고 오전 시간 내내 함께 놀았다. 별장 앞에 만들어 놓은 아이들 전용 해수풀에서 의도적으로 겸이를 정신없이 굴리기도 했다. 아빠가 적극적으로 놀아 주자 겸이는 신이 났지만 빨리 지쳐서 밤에 일찍 잠들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까지는 알 턱이 없었다.
푹 자고 느지막이 나타난 시우는 컨디션이 좋아 보였고 다 같이 점심을 먹은 후 함께 조금 더 놀고 나자 드디어 끝이 없을 것 같던 겸이의 에너지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우는 함께 데려 온 친구와 진작에 어디론가 사라졌고 람이도 낮잠을 자기 위해 혜린과 퇴장했다.
겸이는 긴 의자에 시우와 나란히 앉아 꾸벅꾸벅 졸면서도 시우의 옷자락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완전히 잠들어서 손에 힘이 풀리고 나서야 무경은 겸이를 조심조심 안아 들어 아이 방에 데려다 눕히라고 기완에게 안겨 주었다. 그리고 기완의 모습이 복도 반대편으로 사라지자마자 부리나케 시우를 침실로 끌고 온 거였다.
“애들 다 자요. 지우는 친구랑 놀러갔으니 저녁 먹을 때나 들어올 거고. 혜린 씨랑 기완이도 좀 쉬라고 했어. 시우 씨 어제 푹 자서 지금 안 피곤하잖아요. 이제 나랑 놀아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아,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모두가 제 방으로 돌아가 잠든 밤과는 상황이 다르다. 언제 무슨 일이 생겨서 누군가 문을 두드릴지 모르는 일 아닌가. 시우가 불안한 눈동자를 굴렸다.
“시우 씨, 진짜 너무하네. 나 시우 씨 바쁜 동안 손끝 하나 안 건드리고 독수공방하면서 잘 참았잖아요. 상 받을만하지 않나? 어제도 약속해 놓고 혼자 먼저 잠들어 버리고. 깨우려고 하다가 너무 피곤해 보여서 하루만 더 참자, 한 건데.”
“손끝 하나 안 건드려요?”
무경의 말에 시우가 슬쩍 흘겨보며 꼬투리를 잡았다. 그럼 손끝 하나 안 건드렸지 달리 내가 뭘 했다고, 하며 당당한 표정을 짓던 무경이 잠시 뭔가를 떠올린 듯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한 번 잠결에 덮친 적이 있었다.
무경은 잠결이었다가 도중에 정신이 들었지만 시우는 계속 비몽사몽이었다. 이미 뒤에서 끌어안고 잔뜩 부푼 것을 반쯤 밀어 넣은 상태였다. 이게 꿈이 아님을 깨달은 순간 당황했지만 그냥 덮을 상황도 아니었다. 시우의 것도 잔뜩 만져서 세워 놓았으니 어쨌든 해결을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우가 그냥 하라고 웅얼거리는데 잠결에 하는 소리인지 진담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었지만 재차 확인할 생각은 안 하고 저 좋을 대로 그냥 해 버리긴 했다. 시우는 몸이 거세게 흔들릴 단계에서야 정신을 차리고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었다.
“아… 그건… 무의식중에 일어난 일이니까….”
어설픈 변명을 중얼거리자 시우가 픽 코웃음을 치며 꿍얼거렸다.
“무의식은 무슨….”
말은 그렇게 말해도 크게 타박할 분위기는 아니어서 무경은 시우의 허리를 안은 팔에 슬그머니 힘을 더 주었다.
“…그래서 안 된다고?”
“음….”
안 된다고 밀어내는 게 현명하긴 한데… 시우는 망설였다. 엉덩이에 닿아 있는 무경의 것은 제법 단단해져서 강한 존재감을 주장하고 있었다. 모처럼 이런 곳까지 놀러 와서 혼자 처리하라고 욕실로 쫓아내는 것도 못할 일이다. 어차피 그동안 저는 책이나 읽고 음악이나 들으며 뒹굴거릴 거라서.
“봐요, 무경 씨. 내가 그냥 손으로 해 주면 안 될까? 지금만 그냥 그렇게 하고 넘어가요. 앞으로 며칠 동안 밤에 시간 충분히 많잖아요.”
달래듯이 제안하는 시우에게 무경이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볼 땐 전혀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요. 겸이가 오랜만에 같이 놀러 와서 지금 엄청 흥분했다고. 시우 씨는 바로 잠들어서 모르는 거지, 어젯밤에도 재우느라 얼마나 애먹었는지 알아요? 아이가 있는 이상 우리에게 충분한 밤 시간이란 없다고 봐야 해. 시간이 날 때마다 최대한 활용하는 수밖에 없어요.”
사뭇 엄숙한 투로 말하는 무경을 시우는 어이가 없어서 쳐다보았다.
“그래도 안 돼요. 불안해서 집중이 안된단 말이야. 손으로 해 주는 게 싫으면 혼자서 하든가.”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무경이 잠시 시우를 껴안은 상태로 가만있다가 푸욱 한숨을 내쉬며 팔을 풀었다.
“쌀쌀맞네. 시우 씨는 별로 나랑 하고 싶지 않았나 봐. 애 둘 낳았다고 벌써 애정이 식었나?”
시무룩하게 흘러나오는 말투에 시우가 움찔했다. 무경이 세게 나오면 저도 세게 나가지만 약하게 나올 땐 또 한없이 약해져 버린다. 시우는 무경이 자신의 그런 성격을 알아서 일부러 연기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도 넘어가 주곤 했다. 바로 지금처럼.
“애정이 식은 게 아니라… 밤에 제대로 집중해서 하는 게 좋다는 거죠. 이따가 밤에, 무경 씨 하고 싶은 거 다 해요. 나 오늘 밤을 새도 될 정도로 팔팔하니까. 네?”
시우가 무경의 팔을 잡으며 달래듯이 말하자 무경이 힐긋 시선을 들어 시우의 얼굴의 살폈다. 진심인지 아닌지 파악하겠다는 듯이 찬찬히 얼굴을 뜯어보더니 잡힌 팔을 빼내어 되레 시우의 손목을 잡아챘다.
“할 수 없지. 좋아요, 그럼. 해 줘요. 해 주겠다고 한 거부터.”
무경이 냅다 시우를 잡아끌어 침대로 데려가 앉혔다. 벌건 대낮에 침대에 앉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으니 뭔가 민망하면서 등줄기를 따라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힐끔 창을 쳐다본다. 암막이 아닌 가벼운 여름 커튼만 쳐진 창은 밖에서 들여다보이지는 않겠지만 강렬한 여름 햇살을 막아 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조용하던 에어컨이 갑자기 윙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너무 밝다고 하면 일부러 까탈을 부린다고 생각하려나. 시우는 속으로 생각하며 힐끔 무경을 쳐다보았다. 멀끔한 하얀 얼굴은 몇 년 전과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눈빛이 유해져서 전체적인 인상이 더 부드러워진 느낌이 드는 게 달라진 점이라면 달라진 점일까. 선이 깨끗한 얼굴을 주욱 타고 내려오다 웃는 듯 아닌 듯한 입술에 시선이 멎었다.
내가 좋아하는 얼굴.
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다가 문득 이렇게 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순간이면 여지없이 심장이 조여 왔다. 거의 매일 보는 사람인데도 새삼 내가 좋아하는 얼굴, 좋아하는 목소리, 좋아하는 향기라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해지는 것이다.
내 것이다. 이 사람이.
벅차는 기분으로 찬찬히 보고 있는 동안 그의 보기 좋은 입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갔다.
“시간 없는데, 쳐다만 볼 거예요?”
마주친 눈동자가 웃고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게 예뻤다.
“그럴 리가요.”
시우는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고 몸을 기울여 입을 맞췄다. 온전히 집중해서,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들여서 하는 키스가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은은하게 퍼지는 페로몬을 느끼면서 시우는 그의 부드러운 입술과 딱딱한 치아와 말캉하게 엉겨 오는 혀의 감촉을 만끽했다. 젖은 살이 붙었다 떨어지면서 나는 소리, 허리를 안아 당기는 팔의 힘, 열이 오르는 체온에 여지없이 심장 박동이 올라갔다.
“손으로 해 준다고 했던 것 같은데. 키스가 아니라.”
잠시 떨어져 눈이 마주치자 무경이 웃음기를 섞어 물었다. 시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서 싫어요?”
“아니, 그럴 리가.”
시우가 했던 말을 따라하며 무경이 시우의 목덜미를 감아 당겼다. 이번에는 무경의 혀가 시우의 입 속을 파고들었다. 진득하게 키스를 이어 가면서 무경이 시우의 손을 끌어다 제 허리춤에 가져다 놓았다. 아니, 거기서 끝난 게 아니라 아예 제 바지 안으로 밀어 넣었다. 가벼운 운동복 반바지 차림이라 손이 미끄러져 들어가는데 거침없었다. 속옷 위로 반쯤 발기한 무경의 페니스가 손에 들어왔다. 속옷 위로도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손바닥으로 덮듯이 살짝 감싸 쥐자 마주 댄 입에서 나지막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좀 더, 빨리.”
입술을 맞댄 채로 무경이 재촉했다. 시우의 손 위로 제 손을 덮어 눌러 비비자 살아 있는 생물처럼 그것이 뭉클 부피를 키웠다.
무경이 시우의 손을 아예 속옷 속으로 끌어들였다. 까슬한 음모 사이로 열을 뿜으며 솟아오른 기둥이 잡혔다. 손가락으로 더듬은 귀두 끝으로 끈적이는 체액이 느껴졌다. 시우의 입천장 깊은 곳, 부드러운 곳을 긁어 대는 혀끝의 움직임이 거칠었다.
털썩.
무경이 입을 떼는 것 같더니 시우를 침대로 밀었다. 등이 매트리스에 닿자마자 무경이 급하게 시우의 허벅지 위로 올라타더니 바지를 끌어내리려고 했다. 시우가 당황해서 끌려 내려가는 제 바지춤을 잡았다.
“자, 잠깐만, 무경 씨 뭐 해요? 약속이 다르잖아.”
무경이 시우의 손목을 붙잡아 떼어 내며 아래를 바싹 붙였다.
“어차피 보내 주기로 한 거 좀 더 후하게 굴어 봐요. 이래 가지고는 저녁때까지도 못 끝낼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도 그림 그리느라 혹사한 손을 이런 데서까지 노동을 시킬 셈이야?”
무경이 시우의 손을 끌어올려 손목을 핥으며 말했다. 포장해서 말해 봤자 결론은 시우의 손 기술이 부족하다는 얘기였다. 시우의 얼굴이 부루퉁해졌다.
“언제는 잘 못해도 닿는 것만으로도 갈 것 같다더니. 애정이 식은 건 무경 씨 쪽 아닙니까?”
무경이 낮게 웃었다.
“다른 때 같으면 밤새도록 만지고만 있어도 좋겠지만 지금은 좀 급하기도 하고, 간만이라 여기저기 온몸이 다 닿고 싶어서 조바심이 나서. 좀 봐줘요.”
손목과 손바닥과 손가락에 고루 입을 맞추면서 무경이 다시 슬금슬금 시우의 바지를 끌어내렸다. 조금 못마땅한 듯이 쳐다보던 시우는 무경이 다시 한 번 아래를 꾹 눌러 비비는 바람에 결국 아, 신음을 토하며 손을 들고 말았다.
여름은 이게 문제다.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옷이 벗겨졌다. 속옷과 반바지가 돌돌 말려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시우는 조금 걱정스런 시선으로 쫓았다. 저걸 혹시 급하게 입어야 할 상황이 되면 조금 골치 아플 것 같은데.
하지만 무경이 시우의 맨다리를 벌려 사이에 자리 잡고 티셔츠마저 끌어올리는 바람에 그 생각도 오래가지 못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티셔츠가 목덜미까지 말려서 시우가 눈을 굴렸지만 무경은 싱긋 눈웃음을 치고는 금세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찬 공기에 식은 살갗에 뜨끈하고 습한 감촉이 닿았다. 음… 하고 저절로 새는 신음을 참으며 시우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더 꼬투리를 잡아 봐야 시간만 늘어질 뿐 무경은 결국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할 터였다. 시우는 그냥 반포기 상태로 눈을 감았다.
뜨겁게 달아오른 무경의 중심이 시우의 아직 말랑한 아래를 짓눌렀다. 음모가 엉기면서 서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몇 번을 뒹굴어도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소리며 감촉이었다.
무경이 시우의 양 옆으로 팔을 짚고 상체만 들어 올려서는 허리를 살살 돌리며 시우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밝을 때 하는 건 이래서 싫다. 붉어진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더니 픽 웃으며 아래를 쿡 찔러 왔다.
“아앗….”
갑작스런 공격에 짧은 신음을 토하며 시우는 무릎을 들어 올렸다. 그걸 기점으로 무경의 몸놀림이 빨라졌다. 비벼 올리고 퍽퍽 쳐올린다. 거칠어진 그의 숨소리만큼 시우도 호흡이 가빠졌다. 아래가 퍽퍽 부딪힐 때마다 몸이 진동을 일으켰다. 뒤에 넣지도 않았는데 삽입 섹스를 하는 기분이었다. 되는대로 하는 건지 고의로 노렸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무경의 것이 뿌리와 음낭을 찌르고 회음부를 비비며 뒤쪽까지 자극했다. 저도 모르게 다리가 오므라들었다. 무릎으로 바싹 무경의 골반을 조였다.
어느 순간 무경이 몸을 바싹 붙이고 다시 입술을 붙여 왔다. 삼킬 듯이 입술을 머금고 혀를 빨아 대는데 정신없이 매달리다 보니 어느 틈에 뒤쪽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손가락을 느낄 수 있었다.
“으읏, 읍.”
입을 떼고 뭐라 한마디 하려고 했더니 냉큼 뒤통수를 잡아당기며 더 깊이 혀를 묻는다. 입구를 몇 번 문지르다 슬그머니 손가락이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데 맞닿은 입술이 삐죽이 웃는 게 느껴졌다. 아, 차무경 진짜. 안을 더듬어 들어오는 감각에 열이 후끈 올랐다.
어느새 잔뜩 발기한 시우의 것에서 물이 뚝뚝 흘렀다. 그 물이 기둥을 타고 뿌리를 적시고 음낭을 타고 내려가 회음부까지 적셨다. 골을 문지르는 무경의 움직임에 따라 질척거리는 소리가 귀를 자극해 시우는 또 맥없이 얼굴을 붉혀야 했다.
결국 시우가 먼저 사정했다. 상기된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는데 조금 흐릿해진 눈으로 무경이 시우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날 보내 주겠다더니 혼자 먼저 가 버리고. 나쁜 애인이네.”
“조, 조금만 있다가 입으로….”
“시우 씨 입으로도 잘 못하잖아요. 이러다가 해지겠는데. 난 끝까지 갈 때까지 시우 씨 안 놔줄 거예요. 애들이 방문 앞까지 와서 난리 쳐도 안 열어 줄 거야.”
“그럼 어쩌라고요.”
숨을 고르면서 시우는 그를 노려봤다. 그렇게 물으면서도 시우는 답을 이미 알았다. 무경의 입꼬리가 사악하게 올라가는 걸 보면 빤한 일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걸 노린 건지도 모르지.
“어쩌라니, 그건 시우 씨가 알아서 할 일이지. 애들 잠 깨기 전에 날 가게 해 주면 되는 거잖아. 복잡한 얘기도 아니잖아?”
시우는 한숨을 쉬며 일단 숨을 돌렸다. 힐끔 벽시계를 보니 벌써 3시 40분. 그새 시간이 꽤 흘렀다. 아이들은 낮잠을 자도 오래 자지 않았다. 시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술수에 걸려들었건 어쨌건 상대를 버려두고 먼저 가 버린 건 사실이었다. 사실 한두 번 이런 것도 아니고 보통 때는 괜찮다고 다독거려 주면서 꼭 가끔씩 이렇게 약점 잡듯이 꼬투리를 잡았다.
이게 체력 탓인지, 제가 쾌감에 너무 약한 탓인지, 아니면 무경의 테크닉이 너무 좋은 탓인지 결혼 3년을 훌쩍 넘으면서도 도통 감이 안 잡히지만 어쨌거나 나는 내 볼일 다 봤으니 너는 네가 알아서 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급한 일도 끝났으니 이제부터라도 이래저래 휩쓸리지 말고 정신 바짝 차려서 연구를 좀 해 봐야겠다, 싶었다. 침대에서의 차무경 공략법, 알파 빨리 보내고 재우기 같은 거. 차무경 약점도 좀 찾아보고 따로 테크닉 공부도 좀 하고.
속으로 결심하며 다시 차무경을 쳐다보았다. 손가락으로 유두를 살살 눌러가며 장난을 치고 있다가 저를 보는 시선을 눈치챘는지 얼른 손을 내리며 씩 웃었다. 이 상황에 저러고 웃는 게 얄미워야 할 상황인데 되레 마음이 녹으려고 하니 콩깍지가 씌어도 단단히 씌었다고 시우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빨리 해요. 진짜 시간 없으니까.”
무경의 말 대로 정말 시간이 없었다. 시우는 군말 않고 무경의 허리에 다리를 감았다. 무경의 눈꼬리가 만족스럽게 휘었다. 눈동자도 볼도 입매도 아낌없이 웃고 있다. 어쩌면 저렇게 웃지. 시우는 속으로 탄식을 했다. 저러니 이길 수가 없지.
이미 앞에서 흘러내린 것과 안에서 나온 것으로 뒤는 흠뻑 젖어 있었다. 게다가 무경이 손가락을 넣어 휘저어 놓기까지 했으니 녹진하게 풀린 상태이기도 했다. 아까부터 한계까지 부푼 듯한 무경의 것이 입구를 문질렀다. 마주 보는 시선을 피해서 슬그머니 얼굴을 돌렸더니 손이 올라와 턱을 잡아챈다.
“어딜 봐요. 나한테 집중해야지.”
뒤에서 밀고 들어오는 감각을 적나라하게 느끼면서 눈을 맞추고 있다니 이 무슨 변태 같은 행동이람. 무경의 손을 잡아떼고 고개를 돌리는데 얼굴이 그대로 따라와 계속 시선을 붙들었다.
“아, 무경 씨!”
화가 난 척 인상을 썼지만 무경은 장난처럼 웃을 뿐이었다.
“얼굴이 그렇게 빨개가지고 화를 내봤자 귀엽기만 한 걸 모르나. 그나저나 지금까지 우리가 한두 번 한 것도 아닌데 아직 이게 부끄러워요? 애도 둘이나 낳았는데? 아, 애를 둘이나 낳느라 충분히 못 해서 그런가?”
“부끄러운 게 아니라 자꾸 놀리려고 드니까 싫어하는 거라고요.”
“놀리려고 들다니. 내가 뭘 놀린다고? 서로에게 집중하자고 하는 게 놀리는 건가? 내가 해 주는 걸 기분 좋아하나 살피는 게 놀리는 거라고? 이렇게.”
“아!”
시우의 몸이 휘어지고 허리를 감은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갑자기 무경이 제 것을 뿌리 끝까지 쿡 박아 넣었기 때문이었다. 무경의 단단한 성기 끝이 강하게 눌러 비벼 온 곳은 시우가 특히 민감하게 느끼는 부위였다.
“시우 씨가 기분 좋아하는 걸 해 주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 왜 화를 내. 예뻐해 줘야지.”
두 팔 사이에 시우의 얼굴을 가두고 무경이 느긋하게 허리를 돌리며 내벽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수축하는 내벽이 무경의 것을 빨아들이며 움찔거렸다. 그 느낌이 스스로에게도 너무나 적나라하게 느껴져서 시우는 계속해서 얼굴에 열이 올랐다.
무경이 천천히 제 것을 빼냈다가 강하게 쳐올릴 때마다 입에서 저도 어쩌지 못할 앓는 소리가 새었다. 젖은 소리를 내며 드나들 때마다 전신에 움찔움찔 잔경련이 일고, 뱃속이며 발바닥도 간질거려서 시우는 다리를 움츠리고 발가락에도 힘을 주어야 했다.
“나는, 밑에만 이렇게 맞추고 있는 것보다.”
무경이 더운 숨을 뱉으며 속삭였다.
“시우 씨 얼굴을 같이 봐야, 제대로 흥분이 되는데, 시우 씨는 안 그래요? 나만, 그런가?”
흐려진 눈으로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바튼 숨을 뱉으며 저런 소리를 하면 장난으로라도 당신만 그런 거라고 할 수가 있냔 말이다. 게다가 시우가 제 얼굴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뻔히 알면서 하는 소리다. 그것도 이런 상황에서. 얄밉기 짝이 없었다.
시우는 무경의 팔을 잡고 허리를 감은 다리에도 바짝 힘을 주어 제게로 끌어 당겼다.
“나는 무경 씨 얼굴을 보면 지나치게 흥분해서 안 돼요. 그래서 안 보려는 건데, 그걸 아직도 몰라요?”
무경의 눈빛이 확 바뀌었다. 갑자기 불이 붙은 것 같았다. 그게 스트라이크존이었다.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몸이 나른하게 풀렸다. 땀이 밴 피부가 에어컨 바람에 식으면서 오싹 소름이 돋았다. 시우는 숨을 잘게 뱉으면서 무경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눈이 저절로 감겼다.
안 되는데, 일어나야 하는데 생각하면서도 까무룩 잠이 몰려들었다.
쿵쿵.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설핏 잠에 빠져들던 시우의 어깨가 흠칫했다
“엄마, 엄마!”
침실 문 너머로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겸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뒤이어 으애앵~ 하고 우는 아기 울음소리. 시우는 눈을 번쩍 떴다. 눈 아래에 무경의 까만 정수리가 어른거렸다. 그제야 가슴 언저리가 따끔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 뿐일까. 긴 손가락이 질척하게 젖은 뒤를 문지르고 있었다.
“엄마아!”
겸이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마치 합주라도 하듯 아기 울음소리가 동반된다.
시우는 가슴에 매달린 무경을 밀어내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겸이가… 지금 저거 람이 우는 거 같은데?”
당황한 시우가 헝클어진 머리를 쓸었다. 뒤로 밀쳐진 무경이 침대를 짚고 앉아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오, 옷이 어디로….”
구겨진 티셔츠가 흘러내리며 얼룩덜룩 해진 상체는 가렸지만 엉덩이를 반쯤 가린 모습이 더 야하게 보였다. 마음이 급해진 시우와는 달리 무경은 느긋하게 침대에 기대 앉아 허둥대는 시우의 뒷모습을 감상했다.
침대에서 내려서 바닥에 떨어진 바지와 속옷을 집느라 허리를 숙이자 뒷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통통한 하얀 엉덩이와 진득하게 젖은 골, 그리고 그 사이에 숨은 붉은 입구도 살짝 드러났다. 바지를 입느라고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리자 말랑해진 음낭과 성기도 나타났다. 손 하나 대지 않았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아래가 뻐근해져 왔다.
“아, 이런….”
옷을 입다 말고 시우가 당황스런 소리를 냈다. 허벅지를 타고 끈적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겸이는 연신 문을 두드리며 엄마를 찾고 있고 람이 울음소리는 더 높아져만 갔다.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뒤를 돌아보자 무경은 옷을 찾아 입을 생각도 않고 느긋하게 앉아 시우의 다리 사이에만 시선을 꽂아 두고 있었다.
“이잇… 차무경!”
바지가 젖든 말든 휙 당겨 올려 아래를 가리며 시우가 눈에 날을 세웠다. 그제서야 무경의 시선이 시우의 얼굴 쪽으로 올라왔다. 발갛게 상기되어 저를 노려보는 눈동자를 보며 무경의 입꼬리가 쓱 올라갔다.
“아, 미안 미안. 잠깐 딴생각을 하느라.”
딴생각은 무슨. 어딜 보고 있는지 숨기지도 않더니만.
시우가 계속 노려보자 무경이 실실 웃으며 드디어 몸을 움직였다.
“그런 얼굴로 노려보면 흥분이 가라앉다가도 다시 치솟는다니깐.”
무경이 침대를 내려와 시우의 뺨을 잡고 촉 소리를 내며 입을 맞췄다.
“나 잠깐 손만 씻고 나와서 애들 붙잡고 있을 테니 시우 씨는 대충 씻고 나와요.”
무경은 문밖을 향해 ‘아빠 나가니까 잠깐만 기다려’, 하고 소리치고는 정말로 손만 씻고 나왔다. 머리를 대충 손가락으로 빗어 넘기고 옷차림을 정리한 다음 시우에게 욕실로 들어가라고 눈짓을 했다.
무경은 시우가 욕실 문을 닫는 걸 확인한 후에 문을 열었다. 조금 엄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풋 웃고 말았다. 겸이가 아기를 안고 있는데, 뒤에서 겨드랑이 아래로 팔을 둘러 힘들게 안고 있었다. 람이는 자세가 불편해서 울어 대고 겸이도 아기를 안느라 힘들어서 울상이었다.
“아빠, 아기가 자꾸 울어.”
겸이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남매가 둘 다 얼굴이 벌게져서 땀투성이 되어 있는 꼴이 웃겼다. 그 꼴이 귀여워서 좀 더 두고 볼까 싶었지만 람이가 영 불편해 보여서 무경은 아기를 받아 안았다.
“읏차, 우리 공주님, 잘 자고 일어나서 왜 이렇게 우실까. 누가 괴롭혔어?”
칭얼대는 람이를 어르며 달래는데, 누가 괴롭혔냐는 말에 겸이의 작은 어깨가 움찔했다.
“괴, 괴롭힌 거 아니에요. 깨어 있길래 같이 엄마 보러 가자고 했더니 좋다고 해서 데리고 나온 거란 말이에요.”
뭐라고 한마디 한 것도 아닌데 지레 찔린 겸이가 변명을 했다. 한 살짜리 아기의 어떤 반응을 보고 좋다고 했다는 건지는 몰라도 겸이의 핑계가 귀여워서 무경은 픽 웃으며 겸이의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었다.
“알았어. 누가 뭐래?”
잠이 깨서 엄마는 보고 싶은데, 아빠랑 단 둘이 침실에 있을 때 찾아가면 아빠가 별로 안 좋아하는 건 알고 있으니 아기 핑계를 대서 찾아온 게 분명했다. 조그만 게 머리 굴린다는 생각에 자꾸 웃음이 났다. 시우에게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있으려는 거나 이리저리 머리 굴리는 거나 영락없이 저를 닮았다는 생각도 들고.
“엄마는요?”
문을 가로막듯이 서 있는 무경의 다리 옆으로 겸이가 빼꼼 머리를 집어넣었다.
“엄마 지금 씻고 있어.”
무경이 몸을 움직여 시야를 차단했다. 본다고 뭘 알지는 못하겠지만 침대 사정도 그렇고 환기도 아직 안 되어 있어서 아직 아이를 방에 들이기는 좀 그랬다.
“나도 들어가서 씻을래요. 람이가 버둥거려서 땀 났어.”
겸이가 무경의 다리 사이로 들어가려고 해서 한숨을 쉬며 덜미를 낚아챘다. 뒤처리를 하고 있을 텐데 겸이가 있으면 불편할 것이다.
“겸이는 이따가 아빠랑 같이 씻어.”
결국 아예 침실 문을 닫아 버리고, 한 팔로 람이를 안고 다른 팔로는 겸이를 옆구리에 낀 채로 개인 거실로 나왔다. 히잉, 우는 소리를 내며 겸이가 몸을 축 늘어뜨렸다. 아빠한테는 떼든 응석이든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멀어지는 침실 문을 아쉬운 눈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엄마 금방 나올 테니까 여기서 얌전히 기다려.”
겸이와 람이를 소파 위에 내려놓고, 구석에 간단하게 손을 씻거나 찻물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곳으로 가서 작은 수건 두어 장을 물에 적셨다. 울어서 땀이 난 람이와 겸이를 꼼꼼히 닦아 주고 있는데 겸이가 들어오면서 열어 둔 거실의 문을 누군가 똑똑 두드렸다.
“이, 이사님.”
혜린이었다. 혜린이 무경을 부르는 명칭은 처음이 그래서 그런지 항상 이사님이었다. 회사 직원도 아니고 급여도 개인적으로 나가는데 이사님은 아닌 거 아니냐고 시우가 지적하긴 했다. 하지만 무경 씨라고 부르라고 하자 혜린이 기겁을 하고 고개를 젓는 바람에 그냥 이사님으로 부르기로 했다. 무경도 시우 이외의 사람에게 이름을 불리는 게 그리 달갑지 않아 보였고.
혜린은 람이를 재우고 저도 옆에서 잠시 잠들었는데, 깨고 보니 람이가 없어져서 혼비백산한 참이었다. 머리도 흐트러져 있고 볼에도 약하게 눌린 자국이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잠든 사이에….”
“괜찮아요. 집 안인데 뭐 별일 있으려고. 그리고 애들은 우리가 잠깐 볼 테니까 가서 좀 더 쉬어요. 풀에서 놀든가 책을 보든가. 저녁 식사 때 보죠. 기완이한테도 그렇게 전하고.”
“네? 아니, 그렇게까지는….”
어차피 이번 가족 여행이 끝나면 혜린은 따로 휴가를 받기로 되어 있었다. 게다가 시우에게는 더없이 다정한 배우자이고 연인일지 몰라도 저에게는 엄격하고 무서운 상사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어쩐지 이번에도 뭔가 일을 땡땡이치고 놀고 있는 모습을 들킨 것 같은 기분에 사뭇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니, 정말로요. 우리도 애들하고 같이 보낼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 낮보다는 밤에 좀 애들을 붙들어 줬으면 해서 그래요. 그러니까 낮 동안에는 좀 쉬고 에너지를 비축하고 있으라고.”
“아… 네.”
어린 나이도 아니고 둘 사이를 모르는 것도 아니어서 혜린은 단박에 무경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부부의 밤 시간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아이들 관심을 좀 붙들어 두란 말이었다. 얼굴이 좀 붉어진 채로 대답을 하고 혜린은 더 머뭇거리지 않고 얼른 거실을 빠져나갔다.
“밤에 엄마 아빠랑 같이 자면 안 돼요?”
멀뚱하니 듣고 있던 겸이가 한마디 했다. 돌아보니 시무룩한 눈동자를 하고 볼을 부풀리고 있다. 무경은 아차 싶었다. 자꾸 잊어버리는데, 겸이가 큰 뒤로는 말귀를 너무 잘 알아들어서 항상 조심을 해야 했다.
“어… 음….”
무경은 잠깐 머리를 굴리며 람이의 팔다리를 주물렀다. 깨끗이 닦고 쭉쭉이를 해 주니 기분이 좋아졌는지 눈을 맞추고 꺄르륵 웃었다.
“집에서는 자주 같이 자잖아. 며칠 동안만 아빠가 엄마 독점 좀 하자.”
무경이 손을 뻗어 동그랗게 부풀어 오른 겸이의 뺨을 쓱 문지르며 말했지만 겸이는 불만스러운 듯 무경의 손을 제 두 손으로 잡아뗐다.
“밤에는 아빠가 독점하고 낮에는 람이가 독점하잖아요. 요즘은 계속 그림이 독점하고. 겸이만 독점 못해.”
겸이가 씩씩거리며 불만을 토로했다. 독점이란 말을 무경이 한번 쓴 뒤로는 겸이도 틈만 나면 독점 소리를 해 댔다. 무경은 쓰게 웃었다.
“아… 그랬나?”
“그랬어.”
“겸이 속상했겠구나. 그러면 안 돼지.”
무경이 다시 말랑한 볼을 어루만졌다. 편을 들어줘서 그런지 이번에는 밀어내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이리 와.”
무경은 겸이를 끌어당겨 허벅지에 앉혔다. 나이 좀 먹었다고 이제 제법 무게가 묵직했다.
“여기 있는 동안 밤에는 아빠가 엄마 독점하고, 낮에 낮잠 잘 때는 겸이가 독점하는 걸로 하자. 그때 람이가 울면 아빠가 데리고 나가 줄 테니까.”
우움…, 하고 겸이가 생각하는 듯 골똘한 표정을 짓는다. 이것이 과연 정당한 거래인가 생각하는 얼굴이다.
“산책할 때도 아빠가 계속 람이 안고 다닐게. 그럼 겸이가 엄마 손 잡고 다닐 수 있잖아.”
무경이 패를 하나 더 던졌다. 겸이가 입을 헤 벌렸다. 넘어왔다, 라고 생각하는 참에 겸이가 힐끔 무경을 쳐다보더니 작은 손을 맞잡고 꼼지락거렸다.
“그럼… 아빠는 계속 람이랑만 놀아요? 람이만 안아 주고?”
람이가 태어나고 얼마 안 돼서, 아빠는 람이만 이뻐하는 거냐고 겸이가 시우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고 했다. 한때는 엄마밖에 모르던 겸이가 제 애정에도 어느 정도 욕심을 부리게 됐다는 얘기였다. 그것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솔직히 무척 기쁜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겸이는 은근슬쩍 아빠의 애정도 원하고 있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럴 리가 있나. 오늘 오전에도 아빠는 겸이랑만 놀았는데 기억 안 나? 여기 있는 내내 아침마다 아빠가 놀아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대신에 엄마 아빠가 둘 다 바쁠 때는 겸이가 람이 데리고 잘 놀아야 돼. 울리지 말고.”
“네에.”
그제야 겸이가 흡족한 듯 방긋 웃었다. 볼이 밀려 올라가서 뺨이 동그래지고 눈은 초승달처럼 휘었다. 헤실헤실 웃으며 폭 안겨 오는 작은 몸뚱이가 따끈했다.
딸깍.
하지만 겸이의 체온은 그리 오래 무경에게 머물지 않았다. 침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겸이가 벌떡 무경에게서 몸을 떼어 냈다. 문 사이로 시우의 모습이 보이기도 전에 굴러떨어지듯 무경의 무릎에서 내려가서 시우에게로 달려갔다. 아, 저 배신자.
“엄마아!”
겸이가 덥석 시우의 다리에 매달렸다. 저 모습을 보니 겸이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3살 때나 지금이나 몸만 좀 자랐지 하는 짓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끙차 하면서 시우가 겸이를 안아 올렸다.
“잘 잤어? 람이가 왜 울었어?”
머리카락이 젖은 채로 샴푸 냄새를 퐁퐁 품기면서 시우가 다가왔다.
“우음….”
겸이가 시우의 목에 매달려서는 힐끔 무경의 눈치를 봤다. 필요할 때만 쳐다보는 것 좀 봐. 무경은 피식 웃었다.
“람이가 엄마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데리고 왔대. 착한 오빠야.”
“그랬어?”
시우가 머리를 쓸어 올려 주며 묻자 겸이가 한껏 착한 척을 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응.”
“혜린 누나는?”
옆자리에 앉으면서 시우가 무경을 쳐다보았다. 무경은 대답에 앞서 얼굴을 당겨 시우의 귓가에 뽀뽀부터 했다. 간지러운 듯 어깨를 움츠리며 피하는 걸 한 번 더 당겨서 입술에다 춥 소리를 내며 입을 맞췄다.
“혜린 씨 피곤해 보여서 저녁 먹을 때까지 쉬라고 했어. 그때까지 우리가 애들 본다고.”
“으응. 지우는 아직 안 들어왔죠?”
“그렇지 뭐. 한창 놀 때니까 저녁 먹을 때나 돼야 들어올걸. 그럴 나이잖아.”
“람이 이리 주고 무경 씨도 들어가서 씻고 나와요.”
“겸이 아빠랑 같이 들어갈래? 아까 씻고 싶다고 했잖아.”
하지만 겸이는 시우의 무릎에 매달려서 고개를 저었다. 마음이 바뀐 모양이다. 그럴 줄 알았다. 아까 씻고 싶다고 한 것도 단순히 시우가 욕실 안에 있으니까 그랬을 터다.
“금방 나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네.”
람이를 안고 겸이까지 매달려 있으니 힘들어 보여서 한마디 했지만 시우는 오랜만에 아이들과 있는 시간이 마냥 좋은지 휘어진 눈을 하고 아이들과 눈을 맞추느라 저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조금 아쉬운 기분으로 막 침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겸이가 한마디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이거 뭐야? 벌레 물렸어요?”
벌레?
돌아보니 겸이가 시우의 티셔츠 목덜미를 잡아 당겨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 응, 모, 모기야.”
“으~ 모기 싫어. 엄마 가려워? 아파? 호오 해 줄까요?”
모기? 모기라니, 주변에 방역도 미리 시키고 방충망 체크도 제대로 하라고 했는데… 하면서 인상을 쓰고 쳐다보는데 시우와 눈이 마주쳤다. 당황한 것처럼 시선을 피하는데 목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아… 내가 남긴 울혈이구나.
바로 알아채고 피식 웃었다. 아니, 웃을 일이 아닌가. 이제 보일 만한 데는 절대 남기지 말라고 경계령이 떨어질 테니. 하기야 그러면 더 안쪽에다 남기면 될 일이다. 가슴이라든가, 허벅지 안쪽이라든가.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무경은 침실 문을 닫았다. 꺄아 하고 웃는 람이의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얼른 씻고 나와 겸이의 탐구심으로부터 시우를 해방시켜 줘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열심히 겸이를 굴려야지. 오늘 밤에는 제발 좀 일찍 잠들 수 있도록.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