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 11 (11/24)

가장 오랜 기억 중의 하나는 극우성 오메가로 보이는 여자에 관한 거였다. 가끔씩 꿈에도 나타나는, 아름다운 얼굴에 다디단 향기, 머리부터 발끝까지 우아하고 화려한 여자. 무경은 그 여자를 엄마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녀가 무경을 안아 주거나, 이름을 부르거나, ‘아들,’ 이라고 부른 적은 없었다. 아니, 심지어 따뜻한 눈으로 바라본 적조차 없었다. 무경을 보는 그녀의 눈은 항상 차가웠고 지금 생각해 보면 심지어 혐오에 가깝기도 했다.

그녀의 곁에는 무경이 형이라고 불렀던 다른 아이가 있었고, 그녀는 손님이 오거나 외출을 할 때면 항상 자랑스러운 듯 그 아이를 옆에 데리고 다녔다. 물론 그 아이는 그녀로부터 ‘우리 아들’이라 불리고 당연한 듯이 다정한 포옹과 미소를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무경은 누군가의 손에 끌려 교외의 어느 집으로 갔고, 그곳에서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라는 다른 오메가 여자를 만났다. 하얀 얼굴에 옅은 들꽃 향기가 나던 하늘하늘한 사람.

그녀는 다정했고 무경을 우리 아들, 우리 아기라고 불러 주었으며 자주 안아 주고 웃어 주었다. 무경은 첫눈에 그 사람이 마음에 들었지만, 애정을 받아 보지 못한 마음은 처음에 한없이 경계만 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여자는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옆에 누가 있든 없든 한결같은 태도로 무경을 대했고, 무경은 결국 그녀에게 마음을 열고 엄마라고 불렀다.

어딘가 항상 슬퍼 보였던 눈이, 무경이 ‘엄마,’ 라고 부르던 순간 반짝 빛났던 걸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예쁜 눈에 금세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 무경을 잔뜩 끌어안고, 내 아들, 내 예쁜 아들, 하고 중얼거리던 순간은 어린 무경의 마음속에 각인처럼 남아 있었다.

***

그 이후 한동안 행복했었다.

무경은 예전 집에서 경험해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경험했다. 엄마는 무경이 마음껏 어리광을 부리는 걸 허락했다. 아니, 오히려 그러길 바라는 것 같았다. 아기처럼 직접 밥을 먹여 주기도 하고 목욕도 시키고 품에 안아 재웠다. 책도 함께 읽고 어딜 가든 데리고 다녔다. 처음으로 놀이공원에도 갔다.

그 집 별채에는 집안일과 정원 관리를 돕고 어디에 갈 때는 운전을 해 주는 베타 부부가 함께 살았는데, 가끔 그 아줌마가 너무 오냐오냐하면 애 버릇 나빠진다고 말리기도 했지만 엄마는 웃으며 그 충고를 그냥 흘려들었다.

그리고 가끔씩 아버지가 찾아왔다.

그는 본가(어른들이 이렇게 불렀다)에 살 때도 가끔씩밖에 모습을 보이지 않던 사람이었는데 이곳에서도 그랬다. 무경은 아버지라는 사람이 오는 게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그가 오고 갈 때 인사를 하라고 해서 얼굴을 마주하면 그는 묘한 얼굴을 하고 한참 무경을 쳐다보다가 깊은 한숨만을 쉴 뿐 별다른 얘기를 하는 법도 없었다. 게다가 그가 오는 날은 온전히 엄마를 빼앗기는 날이었다.

본가에서는 항상 혼자 자던 무경이었지만, 여기에 오고 나서는 항상 엄마가 함께라서 좋았다. 무서운 꿈을 꾸어도 깨어나면 엄마가 옆에서 괜찮다며 도닥도닥 안아 주곤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오면, 아예 아래층으로 쫓겨 가 혼자 자야 했다. 엄마도 딱히 그가 반가운 얼굴은 아니었을 뿐더러, 그 다음날이면 더 슬픈 낯이 되곤 했다.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내심 생각했지만, 무경이 바란다고 이루어질 일은 아니었다.

***

그렇게 시간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무경은 밤에 엄마 옆에서 자다가 제 몸이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잠을 깼다. 온몸에서 열이 나는데 아프다기보다는 그냥 알 수 없는 기운이 사방팔방으로 뻗치는 것 같았다. 심장이 두근두근하고 머리는 너무 맑았다. 도저히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 있을 수가 없어 벌떡 일어났다.

옆에서 자고 있던 엄마도 잠이 깼다.

“왜 그래, 무경아. 또 꿈 꿨니?”

눈을 비비며 엄마가 졸린 목소리를 냈다. 이리와, 엄마가 재워 줄게, 하며 팔을 내미는 엄마에게 무경은 몸을 흔들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꿈 꾼 게 아니야. 그냥… 몸이 이상해. 못 자겠어.”

몸이 이상하단 말에 엄마의 얼굴에서 잠기운이 싹 달아났다.

“몸이 이상해? 어떻게 이상한데? 어디가 아파?”

어디가 아프냐고 묻지만 설명하기가 막막했다. 배가 아픈 것도 아니고 머리가 아픈 것도 아니었다. 정신이 없어서 조금 어지럽긴 한데, 그렇다고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몰라…. 그냥 막… 그냥 막 이상해.”

한밤중에 통통거리며 뛸 듯이 구는 작은 아이를 엄마는 약간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쳐다보다가 문득 아이의 몸에서 강하게 발산되는 것이 알파의 형질임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 강한 형질이 뜻하는 바를 깨달은 순간, 하얀 얼굴이 창백하도록 새파랗게 질렸다.

“무, 무경아, 이리 와. 엄마한테 와.”

무경은 이 순간 엄마한테 가기보다는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엄마가 갑자기 아파 보이는 얼굴로 오라고 하니 거부를 못 하고 다가가서 앉았다. 그러자 엄마가 무경을 꽈악 끌어안았다.

“무경아. 정신을 집중해. 침착하자, 하고 생각하는 거야. 알았지? 숨을 크게 들이쉬고, 천천히 뱉어 내. 그래, 그렇게. 다시 한 번.”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무경은 엄마가 시키는 대로 침착하자고 생각하며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제 의사와 관계없이 정신없이 날뛰는 것 같던 몸의 기운이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얼마 후, 이상했던 몸 상태가 평소대로 돌아오자 무경은 스스로도 신기해서 제 몸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저는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엄마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 무경은 제가 갑자기 난리를 피워서 엄마가 놀랐나 보다 하는 생각에 미안해졌다.

“엄마, 놀랐어? 난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방금 왜 그랬지?”

”무경아.”

무경은 엄마를 달래려고 했지만 엄마는 무경의 말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녀는 무경의 어깨 부근을 꽉 잡더니 눈을 맞추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일은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알겠지? 여기 아줌마, 아저씨한테도, 친구한테도, 아버지한테도, 절대 말하면 안 돼.”

“어… 응.”

엄마의 얼굴이 너무 심각했으므로 무경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무경아, 엄마 사랑해?”

엄마가 너무나 당연한 걸 물었다. 심심하면 서로 묻고 답하는 말이다. 무경은 짧은 팔로 엄마를 답삭 끌어안으며 외치듯이 말했다.

“응. 당연하지. 엄마가 세상에서 최고 좋아.”

“그래. 나도 무경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제일 사랑해. 그러니까 엄마는 무경이랑 헤어지고 싶지 않아. 무경이도 엄마랑 평생 같이 살고 싶지?”

“그으럼.”

“그럼, 절대로 방금 그 모습을 다른 사람한테 보이면 안 돼. 너는 그 기운을 네 마음대로 숨길 수 있어. 그러니까 남한테 들키지 않을 수 있단 말야.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이 아는 순간, 누군가 너를 엄마한테서 빼앗아 어딘가로 데려가 버릴 거야. 그러니까 절대로, 절대로 알려져선 안 돼. 알았지, 무경아?”

엄마는 무섭기까지 한 얼굴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무경에게 다짐을 했다. 그리고 그 밤에 잠도 자지 않고 그 기운을 풀었다 숨기고, 풀었다 숨기는 방법을 연습시켰다.

무경은 그 밤에 우성 알파로 판정 받았던 자신이 극우성으로 발현했으며, 엄마가 그 사실을 주변에 감추려고 했던 것임을 좀 더 커서야 깨달았다. 하지만 그때에도 어린 무경은 엄마의 의도가 스스로 말한 그것 외에는 없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

엄마가 무경을 데리고 해외로 도주한 것은 그로부터 석 달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몇 달 동안 정처 없이 유럽을 떠돌다가 간신히 정착한 곳은 의외로 한국에서 가까운 일본이었다. 유럽에서 동양인은 너무 눈에 띄고, 그 당시 중국은 도피처로는 아직 난관이 많은 땅이었다. 일본은 환경이 비슷한데다 인구가 많고 번잡한 대도시만을 선택해 머물렀으므로 숨어 살기에 나쁘지 않았다.

어린 아이로서는 사랑하는 엄마와 함께였으니 여기저기 옮겨 다닌다고 해서 무경에게 딱히 불만은 없었다. 극우성으로 튼튼한 몸까지 타고난 터라 병치레를 하는 법도 없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돈이 부족한 것 같지도 않았다. 행복한 시절은 외로운 외국 생활을 시작하고서도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먼저 무너지기 시작한 건 엄마였다.

성년을 갓 넘긴 어린 나이에 무경의 아버지 눈에 들어 정부로 들어앉은 엄마는 생활력이 없었다. 있는 돈으로 가게를 차려서 장사를 해 보려고 했지만, 순진하기만 한 엄마는 돈벌이에 수완도 재능도 없었다.

두세 번 사기를 당하거나 실패하는 사이 가진 돈은 거덜이 났다. 사기꾼 중에는 엄마를 사랑합네, 하며 들러붙었던 알파도 있었다. 무경에게 저를 아빠라고 부르라며 웃던 인간도 있었다. 그 다음부터는 뻔한 상황이었다. 신파극이었다.

마트에서 일을 시작했다가 스낵바로 흘러 들어갔다. 이때부터 술이 늘더니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줄곧 술에 취해 있었다. 술에 취하면 무경에게 폭언을 퍼붓기도 했다. 너 때문이라고, 네가 내 신세를 망쳤다고 소리소리 질렀다. 그러다가 또 무경을 끌어안고 미안하다며 울었다.

맑은 정신일 때는 여전히 다정한 엄마였지만, 문제는 맑은 정신일 때가 별로 없었다는 점이었다.

***

엄마가 무경을 버리고 나간 적이 한 번 있었다. 무경이 막 9살이 되던 무렵이었다.

자고 일어났는데 엄마가 없었다. 집을 다 뒤지고 다녔지만 엄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문간에 앉아서 엄마를 기다렸지만, 한참이 지나도 엄마는 나타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혼자 씻고 옷을 입고,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시리얼과 함께 먹었다. 문을 잠그고 잠시 망설이다가 열쇠를 화분 밑에 숨겼다. 엄마가 열쇠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였다.

혼자 휘적휘적 학교를 갔다.

방과 후에 이제는 엄마가 왔겠지, 생각하며 벨을 눌렀지만 문을 열어 주는 사람은 없었다. 화분 밑에 열쇠가 그대로 있었다. 문을 열자, 아침에 떠났던 텅 빈 그대로의 집이 어두운 입을 벌리고 무경을 맞았다. 들어갈 수가 없어서 다시 문을 닫고 그 앞에 앉아 엄마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엄마는 오지 않았고, 가방을 메고 집 앞에 앉아 있는 무경을 발견한 어른들이 뭐 하고 있냐, 열쇠 없냐, 집에 아무도 없냐면서 물어왔다.

그 어른들이 저에게 해꼬지를 할까 하는 두려움보다, 엄마를 신고해서 저를 잡아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서서 무경은 얼른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예전에 아동 학대를 고발하는 프로그램 같은 걸 TV에서 본 적이 있었다. 부모가 아이를 때리거나 버려두면 이웃들은 신고를 해야 하며 아이는 보호 센터로 보내진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

엄마는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돌아오지 않았다.

집에 있는 음식들은 아껴 먹었지만 금방 바닥을 드러냈다. 나름대로 열심히 씻고 학교를 갔지만, 슬슬 주변 아이들이 냄새 난다고, 옷이 더럽다고 놀리기 시작했다.

그날은 집에 와서 옷을 전부 벗고, 귀 뒤랑 머리랑 몸 구석구석을 깨끗이 씻었다. 입던 옷과 양말도 작은 손으로 세수 비누를 문질러 빨았다. 집을 뒤져서 서랍에 뒹굴던 100엔짜리 잔돈과 동전이 조금 든 저금통을 찾았다. 저금통은 일단 숨겨 두고, 찾은 동전으로 최대한 양이 많은 빵과 우유를 샀다.

나중에는 빵만 사서 물과 함께 먹었다. 엄마가 언제 올지 알 수 없는데 우유는 너무 비싼데다 너무 빨리 상했기 때문이었다.

***

엄마가 돌아온 건 열흘 후였다.

잠이 들었다가 무경은 누군가가 흐느껴 우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귀신인가, 무경은 한순간 겁에 질렸다. 하지만 금방 무경은 그 울음소리가 익숙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안해, 무경아, 미안해.

술만 취하면 반복되는 엄마의 술주정이었다.

***

다음날 잠이 깨자 엄마가 다정한 목소리로 ‘일어났니,’ 하고 말을 걸었다. 무경은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었다. 엄마가 팔을 벌려도 전처럼 뛰어들지 않았다.

결국은 엄마가 다가와서 무경을 끌어안았다.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하고 엄마는 취하지도 않았는데 울었다.

***

그 다음부터는 무경에게 이상한 증세가 생겼다.

밤에 자다가도 눈을 번쩍번쩍 뜨고 주변을 살폈다. 옆에 엄마가 잠들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 옷자락을 꽉 쥐고서야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에 학교를 갈 때도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한참을 가다가 다시 돌아와서는 길모퉁이에 서서 엄마가 여전히 집에 있는지 확인했다.

수업하는 동안도 도통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학교가 끝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달렸다. 그리고 벨을 누르고 기다리는 순간엔 항상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 엄마가 나오지 않는 날에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근처 마트와 공원과 스낵바를 전부 뒤지며 엄마를 찾아 헤맸다.

장을 보고 나오는 엄마를 발견하면, 예전처럼 달려가는 대신 어딘가에 숨었다. 그리고 두근거리며 엄마가 집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야 안심하고, 마치 그제야 집에 도착한 것처럼 집에 들어서곤 했다.

엄마는 여전히 무경에게 사랑한다고 했지만, 무경은 이제 마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엄마는 무경이랑 평생 같이 살 거야, 라고 얘기했지만, 무경은 이제 그 말을 믿지 않았다.

***

엄마는 가출했다 돌아온 이후 한동안 술을 마시지 않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듯 했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술에 절어 사는 생활이 시작됐다.

무경은 학교에서 지극히 평범한 존재였다. 그것은 엄마가 귀가 닳도록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가르쳐서이기도 했지만, 언제부턴가는 스스로 그걸 원하게 됐다.

한 부모 가정은 흔했다. 그러니까 그걸로 부끄러울 건 없었다. 그러나 부모가 하루 종일 술에 취해 있는 집은 드물었다. 무경도 그런 게 정상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우연히 무경의 집에 연락도 없이 놀러 왔던 친구가 대낮부터 술에 취해 있던 무경의 엄마를 보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로 반의 모든 학생이 무경의 집안 상황에 대해서 알게 됐다.

평소 무경을 거슬려 하던 아이 하나가 엄마가 술주정뱅이니 뭐니 하며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무경의 앞에서 술 취한 척 비틀거리다가 발치에다 우웩거리며 토하는 시늉을 했다. 패거리 중 한 놈은 그의 등을 두드리며 술 좀 작작 마시라고 했고, 다른 한 놈은 코를 쥐며 냄새 난다고 저리 치우라고 소리쳤다. 그리고는 왁자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언제나 얌전한 편인 무경이었지만 엄마 욕만큼은 참지 않았다. 극우성임을 드러낼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날 그때까지 한 번도 드러내지 않던 우성 형질을 최대치로 뿜어냈다. 같은 반에 한 명 더 있던, 그때까지 반의 리더처럼 굴던 다른 우성 알파 아이가 겁을 집어먹을 정도로 무경의 힘은 거칠고 난폭했다.

그날 이후로 무경은 반 아이들이 경외시하는 존재가 됐지만 그건 무경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을 뿐더러 엄마가 알면 불안해할 게 뻔했다. 무경은 엄마에게 전학 가고 싶다고 말했고, 엄마는 이유도 묻지 않고 곧바로 먼 도시로, 몇 번째인지도 모를 이사를 했다.

***

그 이후에는 집에 찾아올 만큼 친한 친구를 만들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너무 혼자서 동떨어져 있으면 이지메로 오인 받아 교사의 관리 학생 리스트에 오를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적절한 범위의 교제가 필요했다. 어울려 다니는 그룹은 만들되, 학교 밖에서까지 어울리는 친구는 만들지 말 것, 그게 스스로 세운 규칙이었다.

중학교에 올라가자,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면서 주변에서 들뜬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얌전한 학생이었던 무경에게도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아이들이 생겼다. 하지만 무경은 항상 부드럽게, 그리고 조금은 건조하게 거절하곤 했다.

어릴 때의 좋아한다는 감정은 그리 깊지도 못하고 길게 가지도 못했다. 거절당하고 가끔 우는 아이도 있었지만, 그런 아이도 한 달이 못 가서 다른 아이와 사귀고 있었기에 무경은 별로 미안함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특별한 케이스도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무경이 주로 어울리던 그룹은 열성과 베타가 섞인 그룹으로 반에서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아이들이었는데 그중에 눈에 띄는 오메가 남자아이가 한 명 있었다.

우성인 이 아이는 2학년 때부터 한 반이었고, 무경이 그어 놓은 선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항상 그 곁을 맴돌았다. 무경은 이 아이가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리 부담스럽거나 싫지는 않았다.

조용하면서도 어른스러운 성격이라 함께 있으면 편했고 무엇보다 외롭지 않아서 좋았다. 알파의 오메가에 대한 감정이라기보다 절친, 형제, 이런 느낌이 더 강한 사이였다. 감정의 온도 차이가 어떠했든, 이 아이의 존재는 무경에게 나름 특별했다.

어느 날, 이 아이가 무경에게 고백을 했다. 좋아한다고, 정식으로 사귀고 싶다고. 오래 지켜봤고 다른 아이들처럼 제 머릿속에서 멋대로 만든 이미지로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진심이라고.

무경은 가만히 친구를 쳐다보다가 팔목을 잡고 집으로 끌었다. 아이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무경은 제 날것의 환경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낡고 초라한 집과, 술에 절어 있는 아니, 이 즈음엔 약에까지 손을 댄 제 엄마의 모습을.

그런데 의외로 엄마는 그날따라 멀쩡한 모습이었다.

물론 보통의 엄마들과 같은 수준의 멀쩡한 모습이라는 얘기는 아니었다. 창백한 얼굴에 말라붙은 입술을 하고 손은 떨고 있는 초췌한 몰골이었다. 하지만, 술에 취하지도 약에 절어 있지도 않았다.

그녀는 아들이 처음으로 친구를, 그것도 오메가 친구를 데려왔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 허둥지둥 가까운 슈퍼에서 과일과 간식거리를 사다 내놓았다.

그리고 오늘부터 근처 마트에 일을 나가기로 했다며, 저녁을 못 해 줘서 미안하다고 돈을 쥐여 주고 집을 나섰다.

친구는 좁고 초라한 집과 한구석에 쌓여 있는 빈 술병을 조용히 둘러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종일관 미소를 띠고 예의 바르게 굴었고 무경과 함께 피자를 시켜서 저녁 대신 나눠 먹고 돌아갔다.

무경은 다음날, 그 친구와 사귀는 관계가 될 지도 모르겠다고, 아니라면 적어도 지금까지의 관계는 이어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등교했다.

눈이 마주친 친구는 여느 때처럼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더 이상 전처럼 먼저 다가와서 말을 걸거나, 뭘 하자고 하거나, 자기가 뭘 만들어 왔으니 먹어 보라고 내밀지 않았다. 눈이 마주치면 인사하는 반 친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일주일도 가기 전에 그 친구가 옆 반의 우성 알파와 사귄다는 얘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원래 그 알파가 계속 들이대는 걸 여지만 주고 슬쩍 슬쩍 빼고 있었던 모양이야. 걔 너한테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았는데 왜 갑자기 싹 돌아섰지?”

같은 그룹의 아이가 이상하다는 듯이 하는 말에 무경은 모른다는 대답 대신 그저 어깨만 으쓱했다.

나쁜 생각은 안 들었다.

그 아이가 제 오메가 친구들이나 베타 여자애들한테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아이의 엄마가 하는 말이,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했단다. 그러니 절대로 사람은 골라서 사귀어야 하는 거라고 강조했었다. 가장 중요한 건 자라난 집안 환경이며, 가족 관계가 원만하고 화목한지를 꼭 봐야 한다고 했다. 경제적인 수준 차는 다음 문제라며.

무경은 그걸 알면서도 집으로 데려갔다. 제 눈으로 보고 나면 기겁을 하고 학을 떼겠지,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론 기대를 했었다. 사실을 알면서도 스스로의 선택으로 제 곁에 남아 주기를 바랐다. 그러기만 하면, 무경은 친구가 되든 사귀는 사이가 되든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저 곁에 있어 주기만 하면 됐다.

멍청하긴.

무경은 속으로 저를 비웃었다.

정말로 제 곁에 있어 주길 바랐으면 그런 식으로 제 치부를 드러내서는 안됐다. 무모한 기대와 도전은 실패만 낳을 뿐이다. 포장하고 숨겼으면, 그 아이는 좀 더 오래 제 친구로 남아 있어 주었을지도 모른다. 어딘가 공허하고 불안정한 관계일지는 몰라도, 전혀 아무 사이가 아닌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간은 원래 그런 거였다. 그 아이의 엄마가 말한 것도 진실이었다. 저를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무경은 제가 다른 평범한 아이들과 같지 않음을, 겉으로는 멀쩡한 척 하지만 속은 뒤틀리고 비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다음번에는 속을 털어놓지 않으리라, 치부를 철저히 숨기리라 생각했다. 오래오래 가지고 싶은 게 생기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저는 선택 받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으므로.

무경은 다시 한 번 먼 도시로 전학을 갔다.

***

고교 2년 무렵이었다.

엄마가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말을 꺼냈다. 무슨 변덕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무경은 학교에도 일본에도 그다지 미련이 없었으므로 별 상관은 없었다. 지금까지처럼, 엄마든 무경이든 누구 한 명이 떠나자는 얘기를 꺼내면 그대로 하면 되는 거였다.

무경은 애당초 왜 엄마가 한국을 떠나 왔는지도 잘 알지 못했다. 이제는 어렴풋이나마 제 극우성 발현과 상관이 있으리라는 것만 추측하고 있을 뿐이지만 이유야 아무래도 좋았다.

한국으로 돌아가 고등학교에 편입했다.

이곳의 친구 관계라고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처음엔 한국말이 조금 어눌하게 나와서 당황했다. 엄마와 줄곧 한국말을 했고, 여러 가지 한국 콘텐츠도 많이 접해 왔기 때문에 제 한국어에 문제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막상 한국 아이들 사이에 끼어 실제로 생활하려니 어휘도 발음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쩔 수 없이 처음엔 원래 없는 말수를 더 줄이고 살았지만, 다행히 금방 익숙해지고 적당히 평범한 그룹에도 끼어들 수 있었다.

엄마는 여전히 술을 마셨다. 생활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기분은 오히려 더 가라앉아 보였다. 이럴 거면 왜 한국에 돌아오자고 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돈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도 걱정스러웠다. 한국으로 들어오느라 또 목돈이 깨졌을 거였다. 일본에서는 무경도 아르바이트를 해서 어느 정도 생활비를 보탤 수 있었지만, 한국은 학생이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이 못 됐다.

엄마가 왜 저를 인문계 고등학교에 집어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경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취업을 할 생각이었다. 엄마의 상태는 아슬아슬해서 그냥 두고 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사회인이 되어 엄마를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3이 됐고 1학기도 쏜살같이 지나가 여름방학이 시작됐다.

종업식 날, 뭘 먹고 가자는 친구들을 떨쳐 내고 집으로 갔다. 엄마가 일하러 갔을 시간이었기 때문에 바로 열쇠로 현관문을 땄다.

문을 열었을 때, 무언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거실에 가득한 물 냄새.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서 풍기는 어딘가 비릿한 쇠 냄새.

엄마가 자살을 기도했다.

***

의사는 교복을 입은 무경을 보고 난감한 얼굴을 했다.

“음…. 어른은 안 계시니?”

“네. 제가 유일한 가족입니다.”

의사는 차트를 뒤적이며 얼굴을 찌푸렸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는 엄마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엄마의 자살 기도는 실패로 끝나 목숨은 건졌지만, 장기 치료와 요양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중증 알코올 중독인데다 당연한 결과로 위와 간이 위험한 수준으로 손상됐으며 영양 불균형도 심각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자살을 시도할 만큼 망가진 정신 상태였다. 의사는 전문 요양원의 장기 입원 치료를 권했다.

무경은 복도 의자에 주저앉아 망연히 바닥을 바라보았다.

통장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고 월세 보증금은 몇 푼 되지도 않았다. 방을 빼 봐야 한 달 입원비나 계산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제가 줄곧 살아 온 일본에서도 저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는데 십수 년이 훌쩍 지나 돌아온 한국에서 도와줄 사람이 어디 있으려고.

무경은 주머니에 구겨 넣었던 엄마의 편지를 끄집어냈다. 유서처럼 남긴 글이었다.

반듯한 글씨체로 봐서 술이 취해 쓴 것 같지는 않았지만,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로 점철된 편지의 맨 아래에는 전화번호가 하나 적혀 있었다. 엄마가 죽으려고 생각하면서 남긴 전화번호. 상황상 누구일지 대충 짐작이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얼굴도 가물가물한 사람. 그가 아닐까, 생각했다.

신호가 울렸다. 한참 만에, 여보세요, 하는 낮은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저… 차무경이라고 합니다. 혹시 저를 아세요?”

자기가 걸어 놓고 자기가 누군지 아느냐고 물어보다니. 이상한 말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남자는 한참을 침묵했다. 전화를 끊어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목소리는 이어졌다.

“…무슨 일이냐.”

“엄마가… 많이 아픕니다. 도움이 필요해요.”

“…….”

남자는 말이 없었다. 부정적인 대답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무경은 초조해졌다.

“제가… 극우성 알파로 발현했다는 걸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의 효과는 어마어마했다.

***

무경은 알코올 중독자 엄마를 둔 가난한 가정의 자녀에서 일약 대 재벌 그룹의 후계자로 발돋움했다. 신데렐라도 이런 신데렐라가 없었다. 물론 MK 그룹의 총수인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는 숨겨 둔 유리 구두를 보여주는 대신 철저한 유전자 검사와 알파 형질 검사를 거쳐야 했다.

하루 종일 병원에서 시달린 후에야 넓은 창으로 정원이 내다보이는 서재에서 아버지라는 사람을 마주할 수 있었다. 감개무량한 포옹이나 눈물 바람 따위는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입을 다문 채, 적을 관찰하는 맹수처럼 서로의 모습을 경계하듯 살필 뿐이었다.

십 년을 훌쩍 넘어 만나는 아버지의 얼굴은 낯설기도 하고 낯익기도 했다. 무경은 그의 얼굴이 낯익은 것이 어린 날 기억의 잔재 때문인지 아니면 이따금 그가 언론에 얼굴을 비친 유명 기업인이기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네 엄마를 닮았구나.”

한참의 침묵 끝에 차 회장이 처음 꺼낸 말이었다.

무경은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자신은 엄마와 전혀 닮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주위 사람들로부터 엄마와 닮았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차 회장이 말한 엄마란 아마 다른 사람을 말하는 것이리라. 다디단 향이 나던, 눈빛이 그지없이 차가웠던 사람. 제가 그 사람을 닮았다니, 듣기 싫은 얘기였다.

“벌써 열아홉이라니 너무 늦게 왔군. 유럽에서 행방이 묘연해졌다고 하더니 한국에 돌아와 있을 줄이야.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더니 완전히 그 짝이지 않나.”

혼잣말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말투에 무경은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배워야 할 게 많아. 공부는 열심히 했니.”

“…….”

공부라. 그걸 열심히 했다고 할 수 있다면 그랬는지도.

머리는 쓸데없이 좋고 시간은 남아돌았다. 교과서는 한 번만 읽고 나면 무슨 내용이 몇 페이지 어느 구석에 있는 것까지 다 기억에 남았다. 심심하다 보니 학교 도서관을 다 훑었고 그것도 부족해서 동네 도서관, 시립 도서관, 국립 도서관까지 다 헤집었다.

하지만 성적이 좋았느냐고 하면 그건 아니었다.

눈에 띄지 말자고 마음먹었는데, 성적이 전국에서 놀면 말이 안 됐다. 무경이 정한 상한선은 학급 상위권 정도였다. 만점은 받지 말고 항상 2, 3개 정도 틀릴 것. 질문을 받으면 세 번에 한 번 정도는 오답을 낼 것. 그룹 프로젝트나 수행평가 따위를 할 때는 두 걸음 정도 물러서 있으면서 영 허튼 방향으로 빠질 것 같으면 한 번씩 잡아 주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내버려두고 하자는 대로 따라갈 것.

신체 능력이 뛰어난 것도 골치였다. 운동이나 악기 같은 건 집중한 상태의 반복 훈련이 중요했다. 무경은 뭐든 한 가지를 배우면 마른 스펀지가 물 흡수하듯 흡수했지만, 재능이 있으니 계속 해 보라는 얘기를 들으면 그 다음부터는 손을 놓고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해도 문제는 있었다. 아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축구나 농구, 야구 따위를 어울려서 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열을 올려 집중하게 돼서 이따금 굉장한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사내아이들이란 운동을 잘하는 것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기 마련이라, 몇 번 그러고 나면 사방에서 동경 어린 시선이 꽂혀 들었다.

그러면 할 수 없이 어이없는 실수를 몇 번 해 주어야 했다. 결정적인 순간의 패스 미스라든가, 신중히 계산한 헛발질이라든가. 그렇게 욕을 먹다 보면 이따금씩 엄청난 기술을 선보여도, 그저 요행으로 받아들여서 별거 아닌 걸로 넘겨 버리기 마련이었다.

재벌가 후계자의 공부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는 몰라도, 무경은 그다지 부담스럽거나 기가 눌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제발 따라가기 벅차다는 게 어떤 건지 좀 알려 달라는, 그런 건방진 기분이기도 했다.

“바로 유학부터 가야지.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배워야 했던 것들을 단시일 내에 익히자면 한시가 급하다. 학교는 바로 그만 두고….”

“잠깐만요.”

무슨 얘기를 하든 묵묵히 듣고만 있던 무경이 마침내 얼굴을 굳히고 입을 열었다.

“엄마를… 엄마가 저런 상태인데 두고 외국으로 갈 수는 없어요. 내가 옆에 있어야….”

이번에 얼굴을 찌푸린 건 차 회장이었다.

“그 오메가는 네 엄마가 아냐. 윤 실장이 말해 주지 않더냐?”

무경은 입술을 깨물었다.

들었다. 전화를 하자마자 저를 데리러 온, 차 회장의 개인 비서라는 윤정훈이란 사람으로부터.

무경이 사실은 차 회장과 정식으로 결혼한 부인의 자식이며, 무경이 여지껏 엄마라고 부른 오메가는 차 회장의 정부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정부가 발칙하게도, 잠깐 맡아 기르던 무경을 유괴하여 사라졌던 것임을.

하지만 무경은 이들이 입을 다물고 있는 다른 진실도 알고 있었다. 굳이 엄마의 편지가 아니더라도, 제 머리가 유일하게 붙잡고 놓지 못하는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

차가운 눈. 벌레처럼 저를 떨쳐 내던 손길.

“들었어요. 그래도 난 상관없어요. 어릴 때 날 아들이라고 불러 주고 따듯하게 안아 준 건 엄마뿐이었으니까, 나한테 가족은 엄마 한 사람뿐입니다. 다른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지금 위험한 상태라면서요. 엄마한텐 나밖에 없는데 이 판국에 내가 가긴 어딜 가요.”

차 회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차무경. 어리광 부리지 마라. 네가 지금 느끼는 감정은 스톡홀롬 증후군이나 진배없어. 저 여자는 범죄자다. 감옥에 가서 죗값을 치러야 할 사람이야. 너는 앞으로 그 여자와 인연을 끊어야 될 게다. MK의 후계자가 그런 여자를 엄마라고 부르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차 회장의 말에 무경의 눈에 화르륵 불이 일었다. 무경은 주먹을 꽉 쥐고 발을 구를 듯이 소리를 질렀다.

“범죄자라고 부르지 마요! 그런 여자라니, 내 엄마라고 했잖아!”

무경이 폭발하듯 쏟아부은 형질에 벽에 걸린 액자와 장식장의 유리가 빠지직 소리를 내며 금이 갔다.

“아들 좋아하네! 이 따위 거지 같은 집안, 내가 알게 뭐야! 됐어요! 당신네들 도움 따위 필요 없어! 우리 엄마는 내가 무슨 짓을 해서든 지킬 테니까 신경 끄라고!”

손에 닿는 건 죄다 부술 듯한 얼굴을 한 채 무경은 문을 박차고 서재를 나섰다. 복도에 있던 경호원 두엇이 깜짝 놀란 얼굴을 했지만 회장의 아들이라는 그를 붙잡아야 할지 어째야 할지 판단이 안 서는 얼굴이었다.

“잠깐만, 무경 군. 잠깐만 기다려요.”

저택을 빠져나가는 무경을 붙잡은 건 서재에서 그림자처럼 붙어 있던 윤 실장이었다.

“놔요, 이거. 던져 버리기 전에.”

무경이 상처 입은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조금만 진정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해요.”

윤 실장은 스파크가 일 듯한 살벌한 기세에 무경의 어깨를 잡은 손은 놓았지만 계속해서 쫓아오며 말을 걸었다.

“여기서 이러고 나가면 이서연 씨… 어머니를 치료할 방법이 있습니까? 무경 군 미성년자예요. 한 달 꼬박 일해도 병원비 감당 못합니다. 집에 데려다 놓고 계속 무경 군이 붙어있을 건가요? 생활비는 누가 벌죠? 어머니가 또다시 자살을 시도하면 그땐 어쩔 겁니까?”

무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거세게 일렁이던 형질이 조금씩 가라앉고 뛰다시피 하던 걸음걸이도 조금 느려지고 있음을 윤 실장은 눈치챘다.

“무경 군. 진정하고 나와 조금만 얘기합시다. 지금 제일 중요한 건 무엇보다 어머니를 제대로 치료하는 것 아닙니까? 당장 불쾌한 것보다 지금 제일 필요한 게 뭔지를 생각해야지요.”

***

윤정훈 실장은 무경을 잡아두는 데 성공했다. 저택의 빈 방으로 데려가 앉히고 일단 어느 정도 흥분이 가라앉은 듯 싶자, 무경을 다시 설득하기 시작했다.

“무경 군 기분은 이해합니다. 무경 군한테는 이서연 씨가 지금껏 어머니였고 실제로 키워 준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회장님, 무경 군 아버님 입장에서는 지난 13년간 아들을 잃어버린 셈입니다. 보통 아들도 아니죠. 아시아 금융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MK 그룹의 차기 회장이 되실 분 아닙니까? 극우성 알파 후계자가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도 어마어마합니다. 무경 군은 지난 13년간 자신이 무얼 잃어버린 건지 모를 겁니다.”

얼굴을 돌린 채 듣고만 있는 무경의 표정은 완고했다. 이런 실감나지 않는 얘기로는 안 되겠다 싶어 윤 실장은 방향을 틀었다.

“무경 군도 이제 곧 성인이 될 테니 좀 더 현명해질 필요가 있어요. 무경군은 마음만 먹으면 어마어마한 힘을 틀어쥘 수 있습니다. 지금은 유학을 가라, 이걸 해라, 저건 하지 마라, 하는 소리를 들어야 하지만 그 과정을 거쳐서 얻게 되는 권력은 결코 가벼운 게 아닙니다. 어머니를 지키고 싶죠? 소중한 걸 지키려면 힘이 있어야 합니다.”

무경은 잠자코 듣고 있었다. 이야기에 집중하는 기색이 보이자 윤 실장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며 서둘러 다음 말을 이었다.

“무경 군이 순간의 기분에 휩쓸려 여기를 박차고 나가면 지금 당장은 후련할지 몰라도 종국엔 뭐가 남을까요? 이 상태로 어머니는 오래 못 버팁니다. 최고의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해요. 그것도 아주 장기간 말이죠. 무경 군은 어머니에게 그걸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본인이 가진 카드를 잘 이용해야 해요.”

윤 실장의 이 말이 무경의 마음을 흔들었다. 눈동자의 흔들림으로 윤 실장은 무경의 동요를 읽어 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윤 실장은 쐐기를 박았다.

“지금 무경 군이 가진 카드는 단 한 장뿐입니다. 엄청나게 불리해 보이죠. 하지만 그 카드가 조커예요. 제대로만 활용하면, 당장 이기지는 못해도 절대로 지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궁극에는 킹, 퀸, 에이스 전부 얻을 수 있는 만능키가 될 거예요. 무경 군은 본인이 MK의 유일한 극우성 알파 후계자라는 사실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른의 현명함이란 그런 겁니다.”

***

무경은 아버지 차 회장과 첫 번째 딜을 했다.

엄마에게 최상의 치료와 요양 환경을 제공하고 절대로 손을 대지 말 것. 그것만 지켜 준다면 시키는 건 다 하겠노라고, 열아홉, 소중한 건 엄마밖에 없었던 무경이 자신을 내놓고 약속했다.

***

무경이 엄마라고 알고 있던 여자, 이서연은 열성 오메가였다. 차 회장의 눈에 띄어 계약 정부로 인연을 맺었다가 아이를 가지고 계속 정부로 눌러앉았다. 서연이 극우성 알파를 낳고 8개월 후 차 회장의 부인인 한지수도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는 우성 알파 판정을 받았다.

극우성 오메가로서의 자존심이 하늘을 찌를 듯했던 한지수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정신을 잃을 정도로 쇼크를 받았다. 인생의 목표가 극우성 알파를 낳아 키우는 것이라고 배우고 자랐던 그녀는 한낱 정부인 열성 오메가에게 자신이 밀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물론 극우성도, 우성도 모두 그녀의 아이로 키워질 것이었다. 누가 누구의 자식인가 하는 점은 극비에 부쳐질 계획이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것도 아니니 쌍둥이라고 우길 수도 없고, 둘 중 하나가 정부의 아이라는 사실은 자명했다. 게다가 사실관계를 아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하니 언제 누구의 입에서 진실이 새어 나갈지도 알 수 없었다.

한참을 앓아누웠다 정신을 차린 지수는 자신을 세뇌시켰다. 극우성 알파가 자신의 아이고 우성 알파 따위는 정부가 낳은 아이라고.

지수는 극우성인 무영만을 자신의 아들로 인정하고 그렇게 취급했으며 우성인 무경은 철저히 배척했다. 심지어 무경이 눈에 띌 때마다 스트레스가 극심해진다며 급기야 아이를 제 눈앞에서 치워 줄 것을 요구했다.

지수의 히스테리가 심해지자 차 회장은 결국 무경을 서연에게 맡겨 키우도록 했다. 자신이 낳은 아이를 빼앗겨 실의에 빠져 있던 서연은 무경을 키우며 조금씩 기운을 되찾았고 자폐 초기 증상을 보이던 무경도 점점 아이다운 얼굴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던 차에 뜻하지 않게 무경이 극우성으로 발현을 한 거였다.

현대 의학조차 미처 예측하지 못한 발현이었다.

서연의 머릿속에 갖가지 생각이 휘몰아쳤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를 빼앗겼지만 그 아이가 한껏 사랑받으며 자라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게다가 장차 MK 그룹의 후계자가 될 몸이었다. 아이를 빼앗긴 상처는 깊었지만, 아이가 손에 쥘 미래를 생각하며 그 사실로 위안을 삼자고 자신을 달래 왔다.

그리고 무경이 왔다. 서연은 무경을 제 자식이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하며 듬뿍 애정을 주었다. 지수가 그리도 싫어하니, 무경이 우성 알파이긴 해도 성인이 될 때까지는 제 품에서 클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무경이 발현하며 갑자기 상황이 급변한 것이다.

무경이 극우성 알파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차 회장 일가에서는 어떻게 나올 것인가.

한 가지는 확실했다. 무경 역시 빼앗기게 될 것이다. 집안에서 극우성 알파를 정부의 품에 고이 놔둘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제 아이가 다시 돌아올 것도 아니었다. 무영도 극우성이니, 무경이 발현했다고 해서 무영을 제 품에 고이 돌려줄 리 없었다.

두 아이는 모두 지수의 품에서 자랄 것이고 후계는 경쟁 구도로 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똑같은 극우성 알파라면 당연히 제 핏줄, 제 자식을 먼저 챙기는 게 인지상정이다. 무영은 지금까지 독차지했던 많은 것들을 무경에게 빼앗길 것이고 결국에는 정부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상처 입게 될 터였다.

서연은 떨리는 손으로 지수에게 연락을 했다. 지수는 줄곧, 막대한 위로금을 줄 테니 무경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라고 남몰래 서연을 닦달해 왔었다. 그녀는 자신이 우성 알파를 낳았다는 사실이 아예 지워지기를 바랐던 것이다.

서연은 무경이 발현한 사실을 숨기고, 차 회장을 떠나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말했다. 아이를 데리고 숨어 살고 싶다고 말이다.

서연은 바로 유럽으로 떠났다. 지수의 지원으로 MK의 추적을 따돌린 후에는 아예 지수와도 연락도 끊고 잠적했다. 그리고 몰래 일본으로 돌아와 숨어 살기 시작한 거였다.

하지만 서연은 여리고 나약했다. 무경에 대한 미안함과 친아들에 대한 그리움, 사랑했던 차 회장에 대한 원망과 삶의 고단함. 이 모든 것이 서연의 정신을 좀먹기 시작했다. 그녀는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술에 의존하기도 하고, 무경을 버리기도 했지만, 결코 현실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십 수 년이 흘러 약까지 손대고 나서야 서연은 무경을 제자리로 돌려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무리해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쉽사리 마음의 결정을 행동으로 옮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며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서연은 사고 소식을 하나 접했다. 지수와 무영이 함께 여행에서 돌아오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비보였다. 서연이 자살을 기도한 것은 그 사실을 알게 된 당일이었다.

***

무경이 시우를 처음 만난 건 고3 봄이었다.

학교 축제가 시작된 5월.

입시 준비에 한창인 고3 수험생들은 그저 구경꾼일 뿐 달리 준비 과정에 참가할 필요는 없었다.

무경은 적당히 어울리던 아이들과 함께 다니다가 어쩌다 헤어진 척, 슬쩍 무리에서 빠져 조용한 도서관 쪽으로 향했다. 먹거리라든가, 게임이라든가, 우스꽝스러운 분장 카페 같은 건 계속 사람으로 붐볐지만, 문집이나 미술 쪽의 전시회 같은 건 의리로 보러 온 관람객이 한 번 쓸고 지나가면 한산했다.

시끄러운 아래층에서 조용한 5층으로 올라가 도서관이 있는 별관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5층은 미술부가 있는 곳으로 긴 복도를 전시회장으로 삼고 있었다.

무경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별생각 없이 그림들을 훑어보았다. 아마추어들의 그림이니 대부분 구도도 엉성하고 붓질도 서툴렀지만 개중에는 제법 각이 잡힌 그림들도 간혹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림 하나 앞에 멈춰 섰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찬란한 봄의 한가운데 아이가 팔을 한껏 벌리고 뛰쳐나올 듯 달리는 그림이다. 티끌 한 점 없이 해맑게 웃는 아이의 얼굴과 화사한 봄 햇살이 잘 어울렸다.

아이보다도, 무경의 시선을 사로잡는 건 그 뒤에 선 젊은 엄마의 얼굴이었다. 연둣빛 원피스를 입은 엄마는 아이가 넘어질까 손을 살짝 내밀고서 걱정과 애정이 가득한 얼굴로 아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경은 액자의 투명 아크릴 위로 젊은 엄마의 얼굴을 만졌다. 엄마도 한때는 저런 얼굴로 저를 보았었다. 여섯 살이었나, 일곱 살이었나. 교토의 여관에 숨어 살 때, 눈처럼 내리는 벚꽃 비 속을 제가 저렇게 달렸고 엄마는 저런 얼굴로 저를 보았었다.

엄마가 아직 사기를 당하고 실패하지 않았을 때. 술에 손을 대지 않았을 때. 저를 볼 때마다 엄마의 얼굴이 꽃처럼 웃을 때다.

무경은 액자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림의 제목은 <행복>. 그리고 그 아래 작게, 연시우, 라는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이거 마음에 드세요, 선배님?”

누군가 말을 걸었다. 돌아보니 키가 껑충하고 마른 베타 남자애가 싱글거리며 서 있다. 이 아이가 연시우인가 했지만, 고2임을 나타내는 뱃지 아래 이름표는 다른 글자가 쓰여 있었다.

“저희 부에서 불우 이웃 돕기 바자회를 하고 있어서요, 마음에 드시면 그림 사실 수 있어요.”

남자애는 설명을 하며 복도 한쪽 끝에 있는 테이블을 가리켰다. 벽에 커다랗게 <미술부 불우 이웃 돕기 바자회>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테이블에 앉아 있는 담당 여학생에게 학부형으로 보이는 누군가가 돈을 지불하고 있었다.

“패널 값이 들어가서 만 오천 원 이상만 주시면 돼요. 그래야 수익이 조금이라도 나서 기부할 수 있거든요.”

무경이 멀뚱히 테이블 쪽을 보고 있자 그가 재차 설명을 했다.

만 오천 원이라. 보통은 축제 때 학생들이 이런 그림을 사는 데 쓰지 않을 돈이다. 그걸로 먹을 걸 사 먹거나 게임을 하거나 하겠지. 어차피 이런 건 졸업생이나 그림을 그린 학생의 가족들을 대상으로 하는 거지 일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도 아닐 터다. 그럼에도 무경을 붙들고 이렇게까지 말하다니 그렇게나 그림을 가지고 싶어 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무경은 주머니를 뒤졌다. 나온 돈은 만 팔천 원. 일주일간의 저녁 값이다. 무경은 당장 얼마 남겨야 한다는 계산도 없이 그냥 손에 쥔 돈을 내밀었다. 말을 꺼내 놓고도 반신반의하고 있었던 듯, 남자애의 얼굴이 함박 벌어진다.

“엇, 감사합니다, 선배님. 이리 오세요. 포장해 드릴게요.”

필요 없다고 하려다가, 이걸 들고 교내를 돌아다니는 것도 시선을 끌 것 같아 묵묵히 남자애를 따라갔다.

“부장.”

다가가자 앉아 있던 여자애가 일어났다. 남자애가 미술부 부장이었던 모양이다. 어쩐지. 상당히 적극적이다 했다.

“여기, 선배님이 시우 그림 사시겠대.”

남자애가 제 손에 든 돈을 팔랑거리며 웃는다. 영업에 성공한 게 어지간히 기쁜 모양이었다. 여자애의 얼굴도 확 밝아졌다.

“우와… 재학생이 사는 건 첫 개시네요. 졸업한 선배 부원이나 학부모님들만 사 주셨는데.”

여자애가 조잘거리며 남자애에게서 그림을 받아 포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 틈에 남자애는 뭔가 방명록 같은 종이 더미를 펼쳐 무경에게 들이밀었다.

“혹시 그림 그린 애한테 남기실 말씀 없으세요? 저희가 전해드릴게요.”

뭔가 민망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해서 됐다고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그림을, 고작 만 팔천 원에 가져가는 것도 미안한 기분이 들어 무경은 펜을 받아 들었다.

위로가 됐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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