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장 (13/19)

14장

창문을 넘어 들어오던 개는, 가벼운 차림으로 커피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차현을 발견했다. 남자가 걸친 겉옷이 의자 밑으로 길게 늘어져, 그림자를 빚고 있었다. 개는 멍하니 남자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리 와.”

남자의 시선이 개에게 닿은 것은 창밖에서 바람이 불어왔을 때였다. 희뿌연 스탠드가 켜진 방 안에서도 남자의 눈은 선명한 빛을 띠고 있었다.

개가 머뭇거리자, 차현은 읽고 있던 서류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성큼 개에게 가까워졌다.

“오늘 뭘 했지?”

개는 거리낌 없이 자신의 허리를 감싸 안고 몸을 붙여 오는 차현의 움직임에 눈을 깜빡였다. 그에게선 사향 냄새가 났다.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했잖아.”

“식당에 가서 음식을, 읏.”

허리를 감았던 손이 옷 사이로 파고든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단단하고 커다란 손이 척추 뼈를 더듬어 올렸다.

“음식을?”

“음식을 시켰는데 맛이 없었습니다. 잠깐…….”

개는 자신이 점점 침대로 밀려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검은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차현은 개의 머리 위에 입을 맞추듯 코를 댔다.

“맛이 없는 걸 왜 시켰어.”

“눈에 보이는 걸 시켰…….”

풀썩. 그 순간 개의 몸이 침대로 넘어갔다.

어렴풋한 불빛을 등진 아름다운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다음엔 같이 가.”

남자가 올라온 침대가 푹 꺼지는 것이 느껴졌다. 개는 눈을 깜빡였다.

차현은 개의 눈가에 입을 맞췄다. 짧은 속눈썹을 핥아 올린 입술이 눈 밑으로, 콧잔등으로 떨어졌다.

“흣…….”

남자의 커다란 손이 옷 사이를 헤치고 들어왔다. 개의 몸이 움칠 떨렸다. 차가운 손이 홀쭉한 배를 더듬어 올리고 있었다.

움푹 파인 배꼽을 훑고 가슴 위로 올라온 손이 잠시 멈춰 섰다.

“심장 뛰는 소리.”

나른한 목소리에 웃음기가 서렸다.

“신기하네.”

“읏.”

개는 파르르 떨리는 눈으로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빛을 등진 남자는 진귀한 것을 바라보듯 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남자의 손 밑에 있는 심장이 둥둥 뛰는 소리가 들렸다.

심장 뛰는 소리가 뭐가 신기한 걸까. 사람이라면 응당 심장이 뛰는 것을.

“연우야.”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이름을 읊자 몸이 퍼뜩 뛰었다. 힘이 들어간 손끝이 침대 시트를 그러쥐었다. 오싹한 기분에 열이 오르고, 온몸에 있는 솜털이 바짝 섰다.

“귀가 빨개.”

놀란 개는 재빨리 귓가를 가렸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웃음을 터트린 남자가 개의 손을 치우고 귓가에 입술을 붙였다.

귀가 터질 것처럼 뜨겁고, 목구멍은 열에 익은 것처럼 말라붙었다. 개는 마른침을 모아 삼켰다.

“으…….”

귓가를 지분대던 입술이 목덜미로 느릿하게 떨어졌다. 공작의 입술이 닿는 곳마다 열이 피어오르는 기분. 개는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질끈 감았다.

눈알이 뜨거워질 정도로 열이 올랐기 때문일까, 아니면 귀를 먹먹하게 울릴 정도로 심장 소리가 커졌기 때문일까. 뭉근하게 번져 가는 쾌감에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배 속이 지글지글 끓고 사타구니에 힘이 들어갔다.

“점점 더 빨리 뛰네.”

목덜미에 닿은 입술에서 웃음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쿵쿵 뛰어 대는 심장 소리가 뇌를 울렸다. 감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심장은 언제나 뛰고 있는 건데, 공작이 말한 순간부터 심장 소리가 의식되었다.

“흐읏.”

목덜미를 부드럽게 핥던 남자가 일순 이를 세웠다. 살이 콰득 씹히며 아득한 고통이 피어올랐다. 발갛게 익은 개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차현은 뻣뻣하게 굳은 몸을 달래듯, 붉은 잇자국이 난 살갗 위를 핥았다.

심장 가까이에 닿아 있던 손가락이 스멀스멀 기어올라 유두에 닿았다. 비쩍 마른 가슴팍에 솟은 작은 유두를 문지르는 손길이 낯설었다.

“잠, 흣…….”

하지만 마냥 낯설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 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간지러운 감각이 가슴 안쪽에서부터 솟아나고 있었다.

“연우야.”

“싫, 으…….”

존재조차 잊고 있던 유두에서 이런 간지러운 느낌이 든다는 게 이상했다. 이대로 두면 이상해질 것만 같았다.

침대 시트를 쥐고 있던 손이 차현의 어깨를 붙잡았다.

“걸리적거리는데.”

그러나 차현은 물러나긴커녕, 손에 걸리적거리는 옷을 단번에 가슴 위까지 끌어 올렸다. 옷 아래 감춰져 있던 개의 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울퉁불퉁한 흉터가 가득한, 마르고 단단한 몸.

“흐으.”

차현은 자신의 아래에 깔린 먹음직스러운 몸뚱이를 내려다보았다.

손가락 사이에 끼고 문지른 유두는 어느새 뾰족하게 서서 짙은 분홍빛을 띠고 있었다. 마른 가슴팍 위에 작은 존재감을 드러낸 유두가 귀여웠다. 그는 비식 웃음을 터트렸다.

“한쪽만 섰네.”

“무슨, 말을…….”

차현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한쪽만 집요하게 문질렀기 때문인지, 양쪽 유두가 다른 색깔을 띠고 있었다.

당황한 검은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차현의 어깨를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건 불공평하잖아. 그렇지?”

“아닙니, 잠…….”

곧은 손이 부푼 유두를 지그시 눌렀다. 개의 몸이 파득 뛰었다.

찌릿한 전류가 가슴 안쪽을 징 하고 울리더니, 등허리를 타고 내려왔다. 눈을 꾹 감은 개의 허벅지 안쪽에 힘이 들어갔다.

“……!”

눈을 감은 찰나, 차현의 입술이 유두에 닿았다. 한 번도 손대지 않은 유두 위였다.

개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커진 동공이 곧장 차현의 가마로 떨어져 내렸다.

“무슨, 싫……!”

뜨거운 입 안에 갇힌 유두 위에 혀가 닿았다. 두껍고 축축한 살덩이가 작은 유두를 핥는 감촉이 소름 끼쳤다.

개는 남자를 밀쳐 내기 위해 양손을 단단한 상체에 올렸다.

“흐읏!”

그러나 반항은 소용없었다. 차현은 자신을 밀쳐 내려 했던 손을 잡아 침대에 내리눌렀다.

불안감을 담은 검은 눈이 파르르 떨렸다. 공작은 매번 자신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잠깐, 아……!”

부피감 없는 가슴을 한 움큼 물 것처럼 벌어진 남자의 입술이 미끄러졌다. 개는 몸을 비틀었다. 옅은 분홍빛을 띤 유두가 혀끝에 뭉개질 때마다 가슴 안쪽이 찌릿거렸다. 축축하게 젖은 소리가 유륜 위를 감도는 게 이상했다.

“우읏, 흐으…….”

곱아 든 발끝이 침대 위를 긁었다. 누군가 코끝을 깃털로 간질이고, 전류를 흘려 대는 것처럼 몸을 가만둘 수 없었다.

개는 입술을 깨물고 다리를 오므렸다. 그러나 다리를 오므려 봤자 남자의 몸을 옥죄는 형태만 될 뿐이었다.

여전히 가슴팍에 입술을 붙인 채 웃음을 흘린 남자가 꼿꼿이 선 유두를 가볍게 빨아들였다. 유륜 아래에 모여 있는 신경 다발이 통째로 들어 올려지는 기분. 개의 몸이 파득 뛰었다.

“아……!”

그뿐이 아니었다. 그는 빨아들인 유륜 주변을 이로 씹었다.

개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얄팍한 살갗을 씹는 날카로운 이가 금방이라도 유두에 닿을 것 같았다. 예민하게 선 감각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고통이 쾌감과 뒤엉켜 뇌를 헝클어트렸다.

“싫, 하지, 응, 우읏…….”

공작은 집요하게 한쪽 유두만을 괴롭히고 있었다. 평소엔 존재감조차 느껴지지 않던 유두가 퉁퉁 부어올라 지끈거리는 게 여실히 느껴질 정도였다.

슬슬 회음과 성기 주변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 성기가 아팠다. 개는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들썩이며, 남자의 단단한 다리 위에 회음부를 비볐다. 남자에게 내리눌린 손끝이 파들 떨렸다.

“흐으, 읏…….”

그런 개의 행동을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은 차현이었다.

그는 물기가 그득 맺힌 검은 눈동자를 내려다보았다. 새빨갛게 달아올라 파르르 떨리는 입술 새로 가느다란 신음이 흘러나왔다.

“저런…….”

차현은 젖어 번들거리는 유두와, 예쁜 분홍빛을 띠는 유두를 번갈아 보았다. 그가 물고 핥았던 곳은 새빨갛게 젖어 껍질이 벗겨질 것처럼 부풀어 있었다.

그의 눈동자가 곱게 휘어졌다.

“또 다르네.”

“싫, 흐읏, 그만하십…….”

공작은 웃고 있었지만, 그의 눈동자엔 이름을 명명할 수 없는 감정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수만 가지의 감정이 뒤엉킨 듯 새까만 색을 띤 감정.

그중에서 읽어 낼 수 있는 건 가장 강렬한 색을 가진 성욕뿐이었다.

“연우야.”

손목을 잡아 눌렀던 억센 손이 떨어져 나갔다. 순순히 멀어지는 남자를 보며 개는 거칠어진 숨을 천천히 몰아쉬었다.

“……!”

그 순간 바지가 끌어 내려졌다. 방심했던 개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옷 사이로 드러난 성기가 불쑥 튀어나왔다. 털이 거의 없는 반질반질한 사타구니에 남자의 손이 닿았다.

“싫은데 여기는 왜 세우고 있어.”

“응……!”

미끄러지듯 성기를 타고 오른 남자의 손이 귀두 끝을 둥글게 문질렀다. 성감이 단숨에 머리끝까지 치고 올라왔다. 목뒤가 뻣뻣해지고 솜털이 바짝 서는 쾌감.

붉은 손자국이 남은 개의 손이 어느새 차현의 양 어깨를 꽉 붙잡고 있었다.

“유두도 섰고, 자지도 꼿꼿이 섰잖아.”

아름다운 미소를 그린 입술에서 상스러운 말이 흘러나왔다.

개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귀가 뜨끈하게 달아오르고 시야가 부옇게 흐려졌다. 몸은 남자가 줄 쾌락을 기억하고, 또 기대하고 있었다.

“흐읏.”

개의 입에서 바람이 빠지는 듯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차갑고 미끈거리는 액체가 성기 위로 주르륵 떨어지더니 순식간에 회음을 지나 구멍까지 흘러들었다. 붉게 달아올라 미끈하게 젖은 성기는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차현은 텅 빈 윤활액 통을 바닥에 대충 내던지더니 젖은 개의 회음을 더듬어 내렸다. 조급하게 구멍에 닿은 긴 손가락이 입구를 열고 들어갔다. 좁고 뜨끈한 내벽이 손가락을 우물우물 물어 댔다.

“시, 싫…….”

“안 싫잖아.”

남자의 손가락이 통통한 내벽을 뭉근하게 문질렀다. 윤활액으로 젖은 구멍이 찔꺽거리는 소리를 내뱉었다. 귀 안에 쑤셔 박히듯 들어오는 소리가 자극적이었다.

물기에 젖어 투명해진 개의 눈동자가 크게 울렁였다. 그 순간 두 번째 손가락이 구멍을 파고들었다.

“히읏, 아……!”

좁은 구멍을 파고든 두 개의 손가락이 어딘가를 짓눌렀다. 질식할 것 같은 쾌감에 숨이 막혔다. 내장 안쪽이 파르르 떨리며 확 조여들었다.

남자의 집요한 시선이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진 개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봐, 연우야. 안쪽을 문지르면 더 넣어 달라는 것처럼 구멍이 움찔거리잖아.”

“아니, 아닌……. 그만, 아, 흣!”

세 개의 손가락이 들어왔다. 구멍이 찢어질 것 같은 압박감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윤활액으로 젖은 구멍은 쉽게 찢어지지 않았다.

벌어진 구멍 사이를 추삽질 하듯 들락거리며, 손가락이 자꾸 어딘가를 찔러 올렸다. 차현의 어깨를 움켜쥔 손이 드득 솔기를 쥐어뜯었다.

“정말 그만해?”

옷이 찢길 정도의 힘이었다. 차현은 살을 파고드는 손톱을 느끼면서도 웃음을 흘렸다. 구멍을 쑤시던 손가락을 멈추자, 개의 눈동자가 떨렸기 때문이다.

“…….”

몇 번이나 깨물어 붉어진 입술이 작게 달싹거렸다. 그러나 소리가 되어 나오는 것은 없었다.

개의 눈자위를 비집고 흘러내린 눈물이 붉어진 얼굴을 적셨다. 차현은 개의 말간 눈물을 핥아 먹었다.

“아……!”

추삽질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엔 네 개의 손가락이었다.

안쪽이 찔릴 때마다 구멍이 움찔거리며 손가락을 깊게 빨아들였다.

개는 끝을 모르고 치솟는 쾌감에 덜컥 숨을 몰아쉬었다. 머리가 녹을 것 같았다. 제어가 되지 않는 눈물이 머리카락과 관자놀이를 모두 적시고 있었다.

“응, 으흣……! 거기 싫, 우으, 읏.”

개는 몸서리를 치며 울음을 터트렸다.

축축한 입 안에 유두가 빨려 들어갔다. 껍질이 벗겨질 것 같은 유두가 거칠거칠한 혀에 쓸려 아팠다. 아니, 저릿했다.

아니. 머리가 녹을 것 같았다.

배 속을 쳐 올리는 강렬한 쾌감에 입 안이 질척하게 젖었다.

“그만, 응, 싫……!”

도리질을 치는 얼굴이 눈물로 잔뜩 젖어 있었다. 성기가 만져지지도 않았는데 사정할 것 같았다.

“연우야.”

유두에서 입술을 뗀 남자가 목덜미에 입술을 붙였다. 개는 가늘게 눈을 감았다. 주륵 떨어진 눈물이 이미 젖은 관자놀이를 또 한번 적셨다.

구멍 깊이 쑤셔 박혔던 손이 일시에 뽑혀 나왔다.

“흐으…….”

남자의 손가락을 품었던 구멍이 잔뜩 벌어져 있었다. 배 속을 압박하던 강렬한 쾌감이 사라지자, 내벽이 아쉬운 듯 빠끔거렸다.

“……!”

그러나 쾌감의 여파가 사라지기도 전에 열기를 내뿜는 살덩이가 구멍 입구에 닿았다.

두꺼운 귀두가 빠끔 벌어진 구멍을 벌리며 들어오기 시작했다. 온몸의 근육이 긴장하며 뻣뻣하게 굳는 게 느껴졌다. 검은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

“연우야. 하, 힘 빼야지.”

공작의 커다란 손이 개의 머리맡에 닿았다. 고개를 숙인 남자의 이마와 자신의 이마가 닿을 것 같았다.

개는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간신히 떠 남자를 보았다. 고통스러운 듯 미간을 구긴 남자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아……!”

일순 개의 몸에서 긴장이 빠져나갔다. 차현은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느릿느릿 진입하던 성기가 순식간에 내벽 가장 깊숙한 곳까지 처박혔다.

“하, 아.”

내벽이 확 조여들었다. 성기를 끊어 낼 것 같은 압박감에 차현은 토막 난 숨을 토해 냈다.

“……힘 풀어야지.”

“흐, 읏.”

좁은 구멍에 쑤셔 박힌 흉기 같은 성기와 다르게 남자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개는 부옇게 흐려진 눈을 깜빡였다. 그득 고였던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착하다.”

남자는 압박감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개의 배를 더듬었다. 두껍고 긴 성기를 문 배 위가 불쑥 솟아 있었다.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괴생명체가 배 속에 들어 있는 것만 같은 기분. 개의 덜덜 떨리는 손이 매달리듯 차현의 팔을 그러쥐었다.

“쉬이.”

“흐윽…….”

차현은 언제 자신이 배 위를 짓눌렀냐는 듯 다정한 낯을 해 보였다. 검은 눈에 고이는 눈물의 양이 늘어나자, 그는 그 위에 입술을 눌렀다. 두꺼운 혀가 젖은 속눈썹 위를 거칠게 쓸고 지나갔다.

“아읏!”

커다란 손이 새빨갛게 부푼 유두에 닿았다. 찌릿한 고통과 함께 지끈거리는 쾌감이 머리로 치달았다. 일순 뻣뻣하게 긴장했던 몸이 부드럽게 이완됐다.

차현은 자신의 성기를 조여 문 붉은 내벽이 풀린 틈을 놓치지 않았다. 즈윽, 하는 소리와 함께 한계까지 벌어진 좁은 구멍에서 두꺼운 성기가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핏줄이 선 검붉은 성기가 윤활액으로 젖어 번들거렸다.

흉터가 가득한 손끝이 작게 떨렸다. 부어오른 구멍에서 성기가 뽑혀 나가는 것마저 쾌감으로 느껴졌다.

개는 초점이 잡히지 않는 눈으로 공작을 올려다보았다. 바짝 곤두선 성기 끝이 터질 것 같았다. 그가 장난처럼 건드리고 지나친 유두가 간지러워 견딜 수 없었다.

“아……!”

그 순간, 중간까지 빠져나왔던 성기가 아쉬움에 뻐끔거리는 내벽을 파헤치며 들어왔다. 두껍고 단단한 귀두가 전립선 위를 짓누르며 들어오는 순간 개의 몸이 확 튀어 올랐다.

빛이 터지듯 일순 시야가 하얗게 흐려졌다. 개는 파득 떨리는 몸을 통제하지 못한 채 짧은 신음을 토해 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다. 모든 생각이 희게 휘발됐다.

“하.”

개는 초점이 잡히지 않는 눈으로 차현을 보았다. 그는 진심으로 즐겁다는 듯 웃고 있었다.

“연우야, 이젠 박기만 해도 싸는 거야?”

“아니, 아닙…….”

그는 명화 속 초상처럼 아름다운 얼굴로, 상스러운 말을 내뱉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개는 작게 도리질을 쳤다. 자신도 모르게 귓가가 붉어지고 눈물이 어룽어룽 맺혔다.

“귀여워.”

공작은 그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개의 다리를 추어올려 즈윽 성기를 빼내기 시작한 남자의 눈에선 이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아!”

쾅, 두꺼운 성기가 치받히며 내장이 크게 뒤흔들리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압도적인 쾌락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막 사정한 몸은 여느 때보다 예민했다. 두꺼운 좆에 내벽이 비벼지기만 해도 덜컥 숨이 멎었다. 곱아 든 발끝이 희게 질렸다.

“시, 싫, 흣, 이거 이상한…….”

“거짓말.”

남자는 개의 다리를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렸다. 마른 몸이 유연하게 휘어지며 접합부가 더욱 깊어졌다. 개는 배를 뚫고 나올 것 같은 압박감에 진저리를 쳤다.

“이거 아직 뜨겁잖아. 곧 설 것 같은데.”

“만지지, 으읏, 싫……!”

개의 몸이 파드득 뛰었다. 커다란 손이 말랑말랑한 개의 성기를 움켜쥐었다. 귀두 아랫부분을 엄지로 문지르자 전류가 튄 것처럼 눈앞이 희게 변했다.

“연우야.”

“시, 싫…….”

마른 가슴팍을 들썩거리며 색색 숨을 몰아쉬었다. 너무 강한 자극에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차현은 부옇게 흐려져 울먹거리는 얼굴을 가만히 뜯어보다, 쥐고 있던 성기를 느리게 놓았다.

개는 눈물로 흐려진 눈으로 허공을 보았다. 너무도 강렬한 이 쾌감에서 도망쳐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흐읏, 아!”

그러나 도망은 허락되지 않았다. 좁은 골반 위를 붙잡은 남자가 거칠게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유연하게 휘어진 몸 깊숙이 쑤셔 박힌 성기가 좁은 내벽 안을 마구 파헤쳤다. 두꺼운 귀두가 전립선을 짓누를 때마다 신음이 물처럼 흘러내렸다.

“우흣, 이상, 흐, 이상…… 아!”

찌걱, 찌걱! 두꺼운 성기가 들락거리는 소리가 외설적이었다. 미끄러지듯 쑤셔 박히는 성기가 배 위로 불룩불룩 튀어나왔다.

“시, 싫, 자꾸 거기, 그만, 흐으…….”

“하아.”

남자의 입술에서 만족스러운 숨소리가 토해졌다. 낮은 울림을 가진 목소리는 자극적이었다. 개의 마른 몸이 작게 비틀렸다.

“연우야.”

“으읏, 아…….”

두꺼운 성기가 처박힐 때마다 시야가 멀게 흐트러졌다가 돌아오길 반복했다. 내벽이 경련하듯 떨리며 남자의 성기를 가득 조여 물었다.

“흐으, 읏……. 그만, 이상, 아, 흣……!”

회음부터 성기까지 모두 질척거리는 액체로 젖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구멍에서부터 흘러나온 액체가 사타구니 전체를 적시고 있는 것 같았다. 눈물로 흠뻑 젖은 개의 눈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입 벌려 봐.”

흐릿하게 풀어진 검은 눈을 보는 차현의 눈동자에 의미를 알 수 없는 소유욕이 스쳐 지나갔다. 멍한 빛을 담고 있던 개의 눈동자가 일순 크게 확장되었다.

“아, 싫……!”

남자가 몸을 숙이자 결합부가 더욱 깊어졌다. 개는 몸서리를 치며 도리질을 쳤다. 배 위가 불룩하게 튀어나오다 못해 찢어질 것 같았다. 크게 확장된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벌어진 입술 새로 바람 빠지는 듯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큿…….”

새빨갛게 달아오른 내벽이 경련하듯 떨리며, 두꺼운 성기를 조여 무는 것이 느껴졌다. 미간을 구긴 차현이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 통통하게 부어올라 성기를 꽉 붙잡는 내벽이 뜨끈했다.

“…….”

“하.”

그는 잠든 듯 눈을 감은 개를 뒤늦게 발견했다. 붉어진 눈가를 바라보던 그의 단정한 입매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퓨즈가 끊어진 듯 기절한 개의 성기 끝에서 묽은 사정액이 토해지고 있었다. 차현은 의식이 없음에도 우물거리는 내벽 안에 느릿하게 추삽질을 했다. 찔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기분 좋은 쾌감이 손끝을 적셨다.

“…….”

그러나 기절한 몸에 좆을 쑤셔 박는 것은, 머리끝을 쭈뼛 서게 할 정도의 희열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눈물로 흠뻑 젖어 드는 말간 검은 눈을 떠올렸다. 식욕과 비슷한 감각이 혀끝을 스쳤다.

쯧, 혀를 찬 차현이 구멍 깊이 박혀 있던 성기를 천천히 빼냈다. 한계까지 벌어졌던 작은 구멍이 다물리지 못한 채 발간 안쪽을 드러내고 있었다.

“연우야.”

차현은 잠든 개의 얼굴에 나지막한 목소리를 흘렸다. 개의 눈꺼풀이 일순 파르르 떨렸다. 그는 흠뻑 젖은 눈꺼풀을 만질 것처럼 손을 뻗었다.

“…….”

그러나 곧은 손은 눈꺼풀에 닿지 못한 채 허공에 멈췄다. 개의 얼굴 위에 그림자를 드리운 손이 일순 꽉 주먹 쥐어졌다.

그는 잠든 개를 두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성을 태울 정도의 강렬한 감정은 쉽게 소모된다. 그런 충동적인 감성에 흔들려 파멸로 향한 인간을 한두 명 보았던가?

차현은 언제나 그들을 비웃는 위치에 있었다. 그것은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는 마른 얼굴을 거칠게 쓸어 올렸다.

개에게 느끼는 소유욕은 찰나의 감정이다.

그것 외에는 없었다.

벌어졌던 구멍과 내벽이 다물리지 않는 것은 언제나 불편한 이물감을 안겨 주었다. 아직도 남자의 성기가 안에 쑤셔 박혀 있는 것만 같은 기분. 그러나 전처럼 어기적어기적 걸을 정도의 이물감은 아니었다.

개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하얗게 타오른 연탄이 겹겹이 쌓인 낡은 동네는, 낮임에도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

빌딩 숲 사이에서는 깡패들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알을 까 순식간에 번식하는 벌레처럼 낡은 동네에 군집해 있었다.

그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깡패들은 어째서 저 빌딩 숲의 인간들에겐 손을 대지 않고, 음울한 얼굴을 한 가난한 인간들의 숨통을 쥐며 자신의 우위를 증명받으려 하는 걸까. 약한 자를 건드리는 것은 기분이 나쁠 뿐인데.

하지만 그런 습성은 개에게 도움이 됐다. 힘들여 이곳저곳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어 시간이 단축됐다.

개는 고요한 병실 안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을 태성을 떠올렸다.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싶었다.

개의 걸음이 점점 더 빨리 어두운 골목을 향해 움직였다. 하루라도 허투루 쓸 수 없었다. 악인을 찾아 헤매는 개의 검은 눈이 어둠 속에서 반짝였다.

“…….”

기척 없는 걸음이 얼마 가지 않아 멈춰 섰다. 새까만 눈동자가 무감정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개는 힐끗 눈을 굴려 바닥에 떨어진 유리 조각을 보았다.

쐐액!

그 순간 무언가가 빠르게 쇄도해 왔다. 개는 곧장 몸을 굴려 바닥에 떨어진 유리 조각을 움켜쥐었다.

“그 얼굴, 역시 맞군.”

개의 목을 노린 것은 검은 일색의 옷을 입은 복면인이었다. 암살자. 또한 꽤 준수한 실력을 가진 자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일대일의 대결에서 개를 이길 수 있는 암살자는 없었다.

챙!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인 복면인과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개가 유리 조각을 휘둘렀다. 그러자 복면인은 자신이 들고 있던 칼로 그것을 막아 냈다.

얇은 유리 조각은 쇠붙이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깨어져 나갔다. 산산조각 난 유리 부스러기가 허공에 비산했다.

복면 사이로 드러난 눈이 안쓰럽다는 듯 개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개는 모멸적으로 느껴지는 시선을 받으면서도 무덤덤함을 유지했다.

비산하는 유리 조각이 복면인의 시야를 교란시킨 사이,

“……!”

개는 그의 허리춤에 채워져 있던 칼을 뽑아 휘둘렀다.

어둠 속에서 튀어 오른 피가 바닥을 적셨다.

밝은 대낮임에도 칠흑 같은 어둠에 잠긴 골목은 고요했다. 잠든 것처럼 벽에 기대앉은 복면인의 몸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났다.

찍찍―

긴 꼬리를 바닥에 쓸며 쥐 한 마리가 시체 주위로 다가와 코를 벌름거렸다. 경계하듯, 혹은 호기심을 느끼는 듯 조심스럽게 다가오던 작은 생명체가 화들짝 놀라 도망친 것은 그때였다.

타닥, 탁.

검은 복면을 쓴 한 무리의 인간들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골목 안을 메웠다. 시체와 같은 옷을 입은 그들은, 외부의 시선을 차단하듯 순식간에 시체를 둘러쌌다.

그들 중 가장 우람한 덩치를 가진 남자가 시체에 다가와 섰다. 그는 곧장 무릎을 굽히더니, 시체가 걸친 옷을 잡아 내렸다. 턱 끝까지 끌어 올려졌던 옷이 쇄골까지 내려갔다. 피에 젖은 살갗이 드러났다.

남자는 숨이 끊어져서 식어 가는 인간의 몸을 나무토막 만지듯 무감하게 살폈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시체의 목 부근이었다. 바닥에 흥건히 고인 혈흔이 시작된 곳, 칼날에 의해 깊이 베인 절단면은 깔끔했다.

“죽었군.”

“예.”

남자가 건조한 목소리로 말하자 처음 시체를 발견한 일행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대답했다.

그는 오늘, 아니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자신의 단원이었던 시체에게서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사체를 수습해. 돌아간다.”

남자가 걸음을 떼자 장벽을 만들고 있던 복면인들이 일제히 흩어지며 길을 만들었다.

“‘그자’는 피를 보는 방식을 선호하지 않는다 알고 있습니다.”

아니, 단 한 명을 제외하고.

그는 제자리에 서있는 복면인에게 시선을 두었다.

“이건 ‘그자’답지 않은 살해 방식인…….”

“글쎄.”

남자는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말을 끊었다.

“‘그자’가 죽음에 관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그건 그자 같은 실력자가 이런 허름한 동네에도 존재한다는 걸 의미할 테니.”

남자의 시선이 시체를 향했다.

살해를 당했음에도 저항흔이나 흐트러짐이 없는 시체. 만약 시체가 일반인의 것이었다면 면식범의 존재를 의심해야겠지만, 이자는 일반인이 아니었다. 황제의 명령을 받는 위치에까지 오른 실력 있는 암살자.

남는 가설은 단 하나뿐이었다.

시체는 반항할 새도 없이 죽음에 이르렀다.

“이런 솜씨를 지닌 것은 단 하나밖에 없어. 그래야 할 거고.”

남자는 자신의 앞길을 막은 복면인을 지나쳐 가며 중얼거렸다.

“황제의 개는 살아 있다. 그것도 이 도시 안에.”

그것이 ‘황제의 개’를 찾아올 것을 명령받은 자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창공을 비상하는 새가 태양을 가렸다. 눈이 시리도록 환한 빛을 내뿜는 태양을 등진 회색 깃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새의 그림자가 빠르게 도시를 지나 외곽으로 빠지고 있었다. 겨울의 풍경을 헤친 새는 곧 고풍스러운 저택에 다다랐다. 새하얀 공작저 위를 빙글빙글 도는 새의 모습은 자유로워 보였다.

마음껏 날갯짓을 하던 새가 순식간에 고도를 낮춰 땅으로 활공했다. 금방이라도 땅에 부딪쳐 균형을 잃을 것 같은 모습. 그러나 새가 멈춰 선 곳은 땅 위가 아니었다.

사뿐한 걸음으로 저택의 창문턱에 앉은 새가 날개를 털었다. 빛 부스러기가 새의 날개에서 떨어져 창문 위를 뒹굴었다.

고개를 갸웃한 새가 투명한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안에는 아름답게 꾸며진 너른 방이 있었다. 새는 그 안에 앉아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인간을 마주 보았다.

딱, 딱.

부리를 치켜든 새가 곧장 유리창을 쪼기 시작했다. 개는 창문을 두들기는 작은 새를 보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창공이 새파랬다. 해가 지기도 전의 시각. 평소라면 도시를 돌아다니며 표적을 찾았을 시간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개는 저택에 돌아와 자신의 가슴팍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흣.’

복면인의 가슴팍에서 피가 튀어 오른 순간, 신음을 내뱉은 것은 그가 아니었다. 개는 눈을 크게 떴다.

팔을 크게 휘두르자 옷자락이 거칠게 유두에 쓸렸다. 어젯밤 남자가 집요하게 물고 빨았던 곳에서부터 찌릿거리는 쾌감이 피어올랐다. 이미 둥글게 부풀어 오른 유두가 발갛게 젖어 드는 기분.

개는 일순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벌어져 다물리지 않는 구멍이 확 오므라들었다. 검은 눈동자가 당황으로 흔들렸다.

뭐였지, 방금?

타닥. 그 순간 칼에 베인 복면인이 뒤로 물러서는 소리가 들렸다. 개는 자신과 거리를 벌려 도망치려는 남자를 보며 눈을 날카롭게 치떴다.

대체 자신의 몸에 무슨 변화가 일어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이 좋은 변화가 아니란 것만은 확실했다. 더 시간을 끌면 당하게 되는 것은 자신이 될지도 몰랐다.

개는 벌어진 거리를 단숨에 좁혔다. 예상보다 더욱 빠른 몸놀림에 복면인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개는 남자를 벽에 밀치며 칼로 단숨에 숨통을 끊어 냈다. 뿜어져 나온 피가 개의 손과 팔은 물론이고 바닥까지 튀었다.

개는 끈 떨어진 인형처럼 풀썩 쓰러진 복면인을 뒤로한 채 저택에 돌아왔다. 곧장 화장실에 들어간 개는 손에 묻은 피를 닦아 내고, 가슴에 닿는 옷을 벗어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러자 퉁퉁 부어오른 유두가 거울에 비쳤다. 한쪽은 가라앉아 분홍빛을 띠는 것에 반해, 다른 한쪽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터질 것처럼 부풀어 있었다.

개는 그 위를 손끝으로 매만졌다. 껍질이 까진 유두에서 지끈거리는 고통이 올라왔다. 눌러 봤자 가라앉을 것 같지도 않았다.

결국 개는 유두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를 포기했다. 할 수 있는 것은 품이 넉넉한 옷을 걸치고, 유두에 옷이 스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뿐이었다.

“…….”

딱딱.

투명한 창문 너머에 선 새가 주변을 얼쩡거리더니 유리를 두들겼다. 개는 새를 보다가 옷이 가슴에 스치지 않도록 조심하며 걸음을 옮겼다.

달칵.

창문을 밀어 열자 안으로 새가 훌쩍 들어왔다. 깃털을 바르르 떤 새는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으로 개를 바라보았다.

‘새를 잡으려면 빵 같은 거라도 주세요.’

과거에는 새가 무엇을 바라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알았다.

개는 퉁명스럽게 말하던 태성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자신을 흘겨보던 앳된 얼굴도.

멍하니 새를 바라보던 개는, 불현듯 커피테이블 위에 놓인 쿠키를 상기해 냈다.

바구니에 한가득 담긴 쿠키는 공작의 명령으로 얼마 전부터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그는 개가 너무 먹지 않는 것이 거슬린 듯했다.

개는 성큼 테이블 앞으로 걸어가 바구니를 집어 들었다. 바삭바삭한 쿠키가 한가득 담긴 바구니는 정갈했다.

개는 창문 앞으로 돌아가 바구니를 통째로 내려놓았다.

“구룩!”

놀란 새가 창문 밖으로 날아갈 것처럼 날개를 푸드덕거렸다. 하지만 바구니 안에 든 것이 쿠키라는 것을 깨닫고, 곧 슬그머니 내려와 쪼아 먹기 시작했다.

개는 즐겁게 쿠키를 골라 먹는 새를 보다, 노란 발목에 묶인 쪽지를 발견했다. 말끔하게 접힌 종이 너머로 잉크 자국이 보였다.

열어 봤자 알 수 없는 말만 적혀 있을 테지만 궁금증이 일었다. 공작은 대체 누구와 전령을 주고받는 걸까.

“구루룩.”

쿠키에 집중한 새의 발목에서 쪽지를 가져오는 것은 손쉬운 일이었다.

개는 손에 쥐어진 종이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바스락, 그것을 펼쳐 보았다.

개는 종이 위에 적힌 열 글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사마귀의 상태는 여전함.

글자를 읽을 수 없기에 의미는 몰랐지만, 그림을 보듯 외우는 것은 쉬웠다. 뜻을 알 수 없는 글자를 외우는 것은 과거에도 몇 차례 해 본 일이었다.

전령에 집중한 개는 열린 창을 닫지 않았다. 쿠키를 배부르게 먹어 치운 새가 미련 없이 날개를 펼치고 날아갔다.

새의 그림자가 떠난 곳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청량한 하늘을 가린 구름에서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것 같았다.

달칵.

“……!”

그 순간 개의 몸이 움찔 떨렸다. 방 쪽으로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지도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열린다고?

“뭘 하고 있었어.”

개가 아는 한 이런 실력자는 단 하나뿐이었다.

“연우야.”

공작.

당황과 불안으로 흔들리는 검은 눈동자가 차현을 향해 돌아섰다. 검은 제복 위에 흰 코트를 걸친 남자는 비식 웃는 얼굴로 개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얼굴에서 미소가 걷히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차현은 흉측한 손에 쥐어진 흰 종이를 눈에 담았다. 당황한 듯 보이는 개의 얼굴은 그의 가설에 확증을 더해 주었다.

“읽었나?”

사실 관계를 묻는 건조한 목소리였다.

개는 입을 달싹였다. 공작의 시선이 너무 건조해서, 종이를 쥔 손을 등 뒤로 숨기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저는 글씨를 읽지 못합니다.”

그래서였다. 의미도 모르는 글자를 통째로 외웠다는 걸 숨긴 채, 진실의 한 토막만을 입에 담은 것은.

개는 냉엄한 판사 앞에서 판결을 기다리는 죄인처럼 시선을 내리깔았다. 전령을 훔쳐봤으니 분노한 공작이 손을 들어 올려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여태 개를 때려 본 적이 없었지만, 지금은 차라리 마음껏 때리고 원래의 그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다시 눈이 마주쳤을 땐 그가 웃고 있었으면 좋겠다.

주먹 쥔 개의 손아귀에 놓인 전령이 작게 구겨졌다.

그가 실망감 어린 얼굴로 자신에게 등을 돌리지 않길 바랄뿐이었다.

“…….”

개는 자신의 발치 앞에 멈춰 선 커다란 발을 보았다. 기척 없이 다가온 남자에게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마른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고개를 들어 남자를 보아도 되는 걸까?

총도 칼도, 어떤 날카로운 무기도 개를 두렵게 만들 수 없는데. 남자의 건조한 얼굴은 개를 두렵게 만들었다. 믿을 수 없게도.

“연우야.”

남자의 목소리가 머리 위에 떨어졌다. 개는 움칠 몸을 떨었다.

“연우야, 고개 들어 봐야지.”

나긋하게 울리는 목소리는 언제나 개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귀 안쪽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간지러워지는 목소리.

남자의 손이 턱에 닿았다. 개는 거부할 수 없는 중력에 이끌린 것처럼 고개를 들어 올렸다.

“왜 이렇게 긴장해 있어. 섹스하기 직전같이.”

남자는 웃고 있었다. 그러나 입가에 떠오른 것은 진심 어린 미소가 아니었다. 마주한 눈동자가 냉담했다.

의심이 내려앉은 공간에서도 몸은 친밀하게 붙어 있었다. 차현은 고개를 숙여 개의 목덜미에 코를 묻었다. 살내를 빨아들이는 숨결이 살갗 위를 스쳤다. 손끝이 곱아 드는 간지러운 감촉에 솜털이 바짝 섰다.

“씻었네. 옷도 갈아입고.”

“흣.”

전령을 움켜쥔 손에 작게 힘이 들어갔다. 턱에 닿아 있던 커다란 손이 미끄러지듯 개의 팔을 쥐었다.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돌아왔어.”

“……!”

차현의 손이 순식간에 개의 손등을 덮었다. 끔찍한 흉터가 가득한 손에 닿는 아름다운 손의 감촉이 생경했다. 놀란 개는 손에서 힘을 풀었다.

“연우야.”

전령이 원래 주인에게로 넘어갔다. 차현은 개의 목덜미에 묻었던 고개를 들어 올려 검은 눈을 마주 보았다.

“말해야지.”

“……가슴.”

입술이 말랐다. 남자의 질문은 때때로 개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귓가를 뜨겁게 만들었다.

개는 텅 빈 손으로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가슴이 부어서, 움직이면…… 옷이 스칩니다. 그러면 신경이 몰려서.”

“아.”

집요하게 검은 눈을 바라보던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개의 눈가가 미미하게 붉어졌다.

개는 자신의 가슴 위에 닿은 남자의 눈을 가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얇은 옷가지 너머로 퉁퉁 부은 붉은 유두가 비칠 것 같았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수치심에 머리끝이 쭈뼛 섰다.

그 순간 남자의 손이 옷자락 사이를 파고들었다. 크게 확장된 검은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남자는 저돌적으로 옷을 걷어 올렸다. 마른 배 위를 지나 턱 끝까지 올라온 옷이 개의 입술에 닿았다.

“연우야, 물어 봐.”

남자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어졌다. 옷자락 너머로 느껴지는 손이 입술을 가볍게 문질렀다. 개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벌렸다. 옷자락이 일순 입 안에 밀려 들어왔다.

“보기 좋게 부었네.”

개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웃음기 어린 목소리를 흘린 남자가 부은 유두를 뭉근하게 문질렀다. 개의 눈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우으…….”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 위에 입술이 닿았다. 남자는 젖지도 않은 개의 눈꺼풀을 핥아 올리더니, 나긋한 목소리를 토해 냈다.

“다른 한쪽이 섭섭해하겠어.”

“……!”

검은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

개는 코앞에 놓인 검푸른 눈동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음습한 감정이 남자의 눈에 어른거리고 있었다.

곧은 손이 분홍빛을 띠는 유두 위에 닿았다.

설마?

개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창문턱에 몸이 닿았다.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수가 없었다.

입술에 물린 천 자락이 젖어 축축했다. 개는 다가올 쾌감에 눈을 질끈 감았다.

“하.”

그러나 다가온 것은 머리가 녹을 것 같은 쾌감이 아니었다. 헛웃음을 토해 낸 남자가 개의 유두 위에서 손을 떼어 냈다.

“연우야. 창밖에 봐.”

남자의 낮은 목소리에 개는 슬그머니 눈을 떴다. 검은 눈동자가 창을 향해 돌아섰다.

“눈이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흐린 하늘에서 빛나는 것이 쏟아지고 있었다. 온 세상을 하얗게 덮는 새하얀 눈.

개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말간 눈에 반짝이는 풍경이 담겼다.

차현은 자신의 품 안에 들어오는 작은 머리를 내려다보았다. 진귀한 풍경을 보듯 창밖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첫눈을 마주한 어린아이 같았다.

“…….”

의심했던 것이 모두 부질없이 느껴졌다. 그는 창문턱에 놓인 쿠키 바구니를 보았다. 새가 쪼아 먹은 그대로 놓인 쿠키는 개가 얼마나 요령이 없는지 보여 주는 증거였다.

그는 개의 입술에 물린 옷자락을 잡았다. 개가 눈을 들어 차현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개의 부드러운 머리칼에 입술을 묻었다.

“뱉어.”

작게 속삭인 목소리에 개의 입술이 벌어졌다. 툭 떨어진 옷자락이 마른 몸을 가렸다.

“정말 읽지 못했나?”

“네.”

개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머리칼에 닿아 있던 입술이 차근차근 내려왔다. 개의 어깨가 작게 움츠러들었다. 귓가에 닿은 입술이 간지러웠다.

“네가 읽지 않았다면 그렇겠지.”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개의 눈꺼풀이 반쯤 내리감겼다.

아랫입술을 문 남자가 입술 사이를 핥았다. 숨결이 뒤엉켰다. 남자가 건네는 키스는 뜨거웠다.

개의 등 뒤에서는 계속 눈이 내리고 있었다. 소복이 내리는 눈은 모든 흔적을 가릴 것처럼 세상을 뒤덮어 갔다.

개는 입 안을 가득 채우는 혀에 헐떡이며 손을 뻗었다.

“읏.”

차현은 솜털처럼 자신의 뺨을 쥐는 손길에 비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 무엇도 확정 지을 수 없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확정 지을 수 있는 것.

그건 품에 닿는 체온이 뜨겁다는 것이었다.

자신마저 그 온도에 옮아 버릴 정도로.

창밖의 세상은 적요했다. 차현은 눈을 감았다. 쏟아지는 눈발에 잠긴 황궁 또한 침묵에 잠겨 있었다.

어두운 골목에는 발자국 하나 찍혀 있지 않았다.

개는 눈이 쌓인 거리를 걸었다. 작은 발자국이 눈 위에 남았다.

사박, 사박.

발밑에서 기척이 느껴졌지만 불쾌하지는 않았다.

개는 멍하니 걸어가다가 불현듯 걸음을 멈췄다. 입술을 더듬는 개의 검은 눈이 작게 일렁였다.

‘눈이네.’

눈이 내리는 한낮, 개는 남자와 입을 맞췄다.

답지 않게 다정히 입을 맞췄기 때문일까. 입술 위에 남은 감촉이 생각을 헤집어 놓았다.

개는 입술을 더듬던 손을 간신히 내리고 고개를 내저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들이 쓰레기 같은 일을 저지르기 전에 잡아 죽여야만 했다.

개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사박.

그러나 가벼운 발소리는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개는 골목에 선 낯선 그림자를 발견했다.

“……살아 있었어.”

아니, 그건 ‘낯설어진’ 그림자였다.

“살아 있었군.”

실핏줄이 터진 눈에 광기 어린 빛이 스쳐 지나갔다.

“하하…….”

그는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이였다.

“살아 있는데 감히 돌아오지 않고, 이 내가 직접 찾아오게 만들다니. 아주 건방져.”

황제.

잠행을 나온 듯, 용포를 벗고 평복을 입은 남자가 그곳에 있었다.

― <개와 늑대의 시간> 3권 끝 ―

개와 늑대의 시간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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