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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한 상태로 출근했을 때, 혜성 형이 나를 발견하고 이것저것을 물었다. 혹시 하 대표와 원래도 아는 사이였는지, 어제는 나가서 어떻게 된 건지.
나는 일절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 뒤로도 형은 몇 번이고 캐물었지만 내 입술은 당연하게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형은 다시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어제 VIP 룸 바닥에 떨어졌던 수표들만 모아도 천만 원이란다.
괜찮아지던 편두통이 다시 일기 시작했다. 내가 미간을 찌푸리고 눈을 감자 혜성 형이 급하게 물어 왔다.
“그래서 뭔 일 난 건 아니지? 어?”
“났으면 왜. 형이 책임지게?”
“그게 아니라…….”
내 말에 혜성 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됐어. 오늘 예약 몇 시라고?”
“신규? 9시로 예약이긴 한데…… 좀 빠를 수도 있고.”
“그때까지 좀 쉬고 싶으니까 나 내버려 둬.”
아마도 내 말에 혜성 형은 달리 할 말이 없었을 터였다. 그래서일까. 직원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형은 포기한 듯 앞에서 등을 돌렸다. 나는 긴 소파 위에 걸터앉아 테이블에 천천히 엎드렸다.
“…….”
손바닥을 펼쳐 천천히 살폈다. 손끝과 손바닥 안. 그리고 손등까지도 느릿하게 쳐다봤다. 어젯밤, 하윤오의 체온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커다란 손이 생생하게 떠오르자 목 뒤가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개새끼.”
낮게 욕설을 중얼거린 나는 신경질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 직원실 안쪽의 냉장고에서 탄산수를 꺼내 그대로 한 병을 다 비워 냈다.
가슴속에 꺼지지 않는 불이 붙은 것만 같았다. 그때, 주머니 안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꺼내 들어 확인하니 화면에는 낯선 번호가 떠 있었다.
하윤오의 것이 틀림없는 숫자를 확인한 나는 바로 거절 버튼을 눌렀다. 그러고 신경질적으로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신경 쓰고 싶지 않았지만 하윤오라는 존재만으로도 나는 거대한 뭔가에 온몸이 짓눌리는 것 같았다.
9시로 예약을 잡았다던 신규 손님들이 도착했다. 나는 로비를 둘러보며 세일이를 찾아봤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카운터로 다가가 혜성 형에게 넌지시 물었다.
“……오늘 세일이 안 왔어?”
“아. 오늘 집에 급한 일 생겨서 못 나온대.”
나는 여전히 못마땅한 눈으로 혜성 형을 쏘아보다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메신저 어플을 켜서 들어가자 아니나 다를까 세일이로부터 연락이 와 있었다.
한세일
형, 아버지 상태가 안 좋아지셨다고 해서요. 오늘은 출근 못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