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 개가 두 마리.
침대 위로 풀쩍 뛰어 올라온 강아지가 박민후처럼 이수현의 얼굴에 주둥이를 붙이고 핥아댔다.
간장이라 불리는 요 조그만 털 뭉치는 이수현이 쉬는 날 박민후와 함께 보호소에서 데려온 아이였다. 이수현은 작다고 했지만 사실 그렇게 작지는 않았다. 중형견에 가까운 크기였으니까. 하지만 이수현도 박민후도 아직 덜 큰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들 눈엔 여전히 작아 보였다.
이 애는 온몸이 검은색이었다. 밤이 되면 솔직히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검고 검었다. 털뿐만 아니라 눈도 그랬고, 코도 그랬다. 뭉실뭉실한 꼬부라진 털들을 보면 언뜻 검은 양 같기도 했다.
저쪽 세계에서 박민후가 말했던 소소한 소원들을 모두 이루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그가 원하는 건 저쪽이면 몰라도 이쪽에서는 이루기 어려운 소원이 아니었다. 그러니 두 사람이 서로에게 조금만 시간을 투자하면 할 수 있는 것들뿐이란 말이었다. 다만 그중에서 개를 키우고 싶다는 소원은 가장 마지막으로 미뤄지고 미뤄져 1년이 지날 무렵에야 겨우 이룰 수 있었다.
다른 건 다 쉬웠지만, 살아 있는 생명을 데려와 돌보는 건 여러모로 고민해야 할 문제였다. 먼저 돈이 있어야 했고, 시간과 여유가 있어야 했다. 정말로 데려와서 잘 돌볼 자신이 있는지 책임질 수 있는지 고민해야 했다. 이수현은 솔직히 말해 자신이 없었다.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에 차서 동물을 키우겠답시고 데리고 와서는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동물도 살아 있는 생명이고, 감정이 있고, 지능도 있었다. 사물처럼 넙죽넙죽 사다가 그대로 방치해도 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무언갈 키우기 위해서는 많은 게 소비된다.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하물며 말 못하는 짐승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그러니 두 사람은 계속 고민하고 고민하다 겨우겨우 결정했다.
그렇게 1년 뒤 검은색 푸들을 보호소에서 데려왔다.
아이의 이름은 고민하다 ‘간장’이라 붙였다. 그 외에도 짜장이라든가, 콜라라든가… 여러 개가 나왔지만, 간장이 더 귀여우니까. 물론 선택은 간장이 했다. 처음 데려왔을 땐 다리도 절고 삐쩍 말라 있었다. 털은 푸석했는데 지금은 잘 뛰고 또 잘 먹고, 살도 포동포동하고 털을 몽실거렸다.
“…음, 간장 밥 줬어?”
“아직. 나도 지금 일어났는데….”
“얼른 밥 챙겨 줘요. 난 씻고 올 테니까.”
“알았어.”
이수현은 품 안의 간장을 한껏 쓰다듬고선 침대에서 기어 나와 화장실로 향했고, 박민후는 익숙하게 찬장에서 사료를 꺼냈다. 봉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간장이 헐레벌떡 그의 발치로 뛰어왔다.
“꼬리가 아주 떨어지겠다. 떨어지겠어.”
박민후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사료가 담긴 밥그릇과 물그릇을 내려놓자마자 게 눈 감추듯 먹는 게 조금 걱정되어 그는 밥그릇에 얼굴을 들이박고 있는 간장에게 천천히 좀 먹으라며 한숨 쉬듯 말했다.
이렇게 두 사람이 같이 한 침대에 누워 아침을 맞이한 지도 꽤 되었다. 하지만 이 세계로 돌아와 두 사람의 동거 생활이 계속되었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이곳에서 그들의 동거는 고작 일주일이었다. 그것도 박민후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어리광을 부리듯 이수현의 집에 눌러앉아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물론 박민후는 같이 살자 이야기했지만 그걸 이수현이 단칼에 거절했다. 같이 살게 되면 둘 중 한 명의 집은 정리해야 했다. 박민후의 집이 두 명이 살기에 넉넉할 정도로 컸으니, 그쪽으로 합치게 될 게 분명했다. 그러나 이수현은 제가 살던 집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만일이라는 게 있다. 모두가 해피 엔딩이 된 이야기의 끝은 언제까지 해피 엔딩일까? 그들이 서로 마음을 확인하고 함께 미래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며 끝나는 이야기는 딱 거기까진 해피 엔딩일 것이다. 그런데 그 뒤는? 삶은 종잡을 수 없는 일투성이였고, 서로 죽고 못 살 정도로 서로를 사랑해도 끝을 고하는 이는 셀 수 없이 많았다.
물론 이런 생각 자체가 상대에게는 굉장히 미안한 일이었고, 아직 오지 않을 끝을 생각하는 게 좋지 않다는 것도 물론 알았지만. 그래도 이수현은 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어릴 적부터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 자란 인간이 버리지 못한 습성이었다. 무엇이든 시작부터 끝을 생각하는 건 기대할수록 힘들고, 지친다는 걸 너무 어릴 때부터 알고 있어서 그랬다.
박민후는 그런 이수현의 행동에 몹시 서운했고, 이제 막 시작인데 벌써 끝부터 생각하는 건 너무하지 않나 싶기도 했으나, 이수현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그것도 참 그다워서 불만스러워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더 먼저 좋아한 사람이 지는 거라는 말이 있지 않나? 거기다 애초에 박민후는 이수현을 이길 생각이 개미 눈곱만큼도 없었다.
지금은 그저 서로의 집을 번갈아 왔다 갔다 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서로의 집에 각자의 물건이 놓인 지도 꽤 되었고, 서로의 일상에 상대가 자연스럽게 스며든 지도 오래되었다. 간장은 보통 박민후의 집에서 살았고, 박민후가 이수현의 집에 올 때 데리고 왔다.
같이 사는 게 아니니 때때로 박민후가 간장을 산책시킨다는 명목으로 이수현의 집 근처까지 왔다가 우연인 척 퇴근길인 이수현을 만나 산책하다가 같이 그의 집으로 가곤 했다. 물론 우연인 척은 바로 다음 날 들켰다.
“아침으로 뭘 먹어야 하나….”
“볶음밥.”
냉장고를 뒤적이며 뭘 먹을지 고민하던 박민후의 등 뒤에서 소름 끼치는 단어가 들려왔다. 어느새 다가온 건지 머리를 수건으로 털며 다가온 이수현을 보곤 박민후가 소리쳤다.
“싫어!”
“…왜 그렇게 볶음밥을 싫어해?”
“그러는 넌 대체 그놈의 볶음밥을 왜 그렇게 좋아하는 건데?”
“먹기 편해서.”
박민후는 수건 양쪽을 붙잡고 이수현을 훅 끌어당겼다. 그다음은 당연하게도 입술이 가볍게 포개졌다. 막 씻고 나와 물기를 머금은 입술이 촉촉했다. 박민후는 그 얄미운 입을 한번 콱 깨물었다가 놓아주었다.
“…아무리 편해도 너처럼 매일같이 먹자곤 안 할 거야.”
그러고선 쌩하니 씻으러 들어가 버렸다. 이수현은 그 꼴을 불만스레 쳐다보며 빨개진 아랫입술을 손으로 쓱쓱 문질렀다.
“왜 자꾸 무는 거야. 지가 간장인가.”
히웅?
저를 부르는 줄 알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간장을 보며 이수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 말고. 저기 큰 간장.”
아주 버릇이 이상하게 들었어. 박민후는 모르는 것 같지만 오히려 간장보다 더 무는 것 같았다. 전생에 개였던 게 분명해.
***
오늘은 박민후가 쉬는 날이었다. 두 사람의 휴일은 좀처럼 잘 겹치지 않는 편이였는데, 덕분에 박민후가 쉬는 날이면 그는 이수현이 일하는 곳에 출근 도장을 찍곤 했다. 오늘은 카페에서 일하니 간장도 함께였다. 처음에는 간장과 함께 이수현을 데려다주고 그를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산책할 요량으로 같이 나온 거였는데, 간장을 본 카페 사장님은 아주 흔쾌히 간장의 카페 출입을 허가해 줬다. 그러니 간장도 이처럼 익숙하게 출근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카페 내부에 냉큼 들어갈 정도로 상식 없진 않았다. 사람이 별로 없을 때만 구석진 곳에 앉아 있었고, 사람이 많을 땐 밖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서 기다렸다. 날은 따뜻했고 곧 여름이었으니 바람이 선선해 밖에 있어도 문제없었다. 심심해하는 간장을 데리고 주변을 산책하기도 했고, 이따금 다른 강아지들과 만나면 뛰어놀게 두기도 했다.
오늘은 카페가 조용했다. 손님은 가끔 있었지만, 아침이라 그런지 테이크아웃을 하는 손님들뿐이었다. 덕분에 내부로 들어온 박민후와 간장은 이제는 지정석이 된 곳을 꿰차고 앉았다. 물론 주문도 틈틈이 했다. 태블릿이랑 책같이 심심할까 바리바리 싸 온 것들도 있었다.
박민후는 미리 주문해 둔 커피를 마시면서 태블릿을 켰다. 드문드문 고개를 들어 이수현이 일하는 걸 보다가 옆에서 졸고 있는 간장을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두드리기도 했다.
한참 손님이 몰리던 시간이 지나자 이수현은 익숙하게 음료를 내리고, 막 구운 파니니까지 놓인 트레이를 들고선 카운터를 빙 돌아 나와 박민후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뭘 하는지 제가 가까이 와도 고개도 안 들고 있는 그의 앞에 조금 세게 트레이를 탁 놓았다.
“박민후.”
“왜?”
그제야 슬쩍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 보는 박민후를 보며 이수현은 그의 얼굴에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그 작은 화면에 떠 있는 건 배달 웹 리뷰란이었는데….
[알바생이 맛있고, 커피가 친절해요~^^ (참고로 알바생이 제 애인입니다.)]
“…이상한 리뷰 좀 남기지 마.”
실제로 먹은 적도 없으면서. 이수현은 가끔가다 이러는 박민후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아까 휴대폰을 붙잡고 뭘 하나 했더니. 지끈거리는 미간을 짚으며 그를 흘겨보자 그가 입을 삐죽였다.
“널 노리는 놈들이 너무 많다고, 그러니 이렇게 애인이 있음을 강조해야 될 거 아냐!”
“그건 네 착각이고.”
“그 말 그대로 돌려줄게.”
저라고 뭐 그러고 싶어서 그랬나. 그렇다고 대놓고 ‘걔 애인 있습니다!’ 하고 외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럼 대놓고 싫어할 거면서!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자니 심경이 꼬이는 걸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좀 전에도 그랬다. 웬 놈팡이가 커피 받는 척 은근슬쩍 손을 잡질 않나, 이따금 번호를 얻으려는 놈도 있으니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물론 이수현이 그딴 수작질에 눈 하나 깜빡 안 하긴 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하지만 이수현의 생각은 좀 달랐다.
“오히려….”
“오히려 뭐?”
박민후를 게슴츠레 보며 이수현이 말끝을 흐렸다. 저를 따라와서 온종일 카페에 죽치고 앉아있는 박민후를 힐끔거리는 사람이 많았다. 카운터에서 보면 그런 게 참 잘 보였다. 그는 잘생긴 편이었고, 몸도 좋았고 또 미간을 구기며 태블릿을 두드리는 모습은 사람에 따라선 멋져 보였다. 뭐, 그 태블릿으로 게임이나 하고 있었겠지만…. 하여튼 허우대 멀쩡하고 얼굴도 괜찮은 남자가 귀여운 강아지를 데리고 카페에 앉아 있는데 사람들이 힐끔거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됐어요.”
“또 뭐가 됐어?”
“네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내가 인기가 많지 않다는 말이야.”
이수현이 한숨을 쉬며 그의 코를 콱 지고 살살 흔들었다. ‘네 주변이나 한번 봐.’ 그 말은 그냥 하지 않았다. 말하면 이 남자는 참으로 좋아할 테지만.
“이거나 먹어요.”
“너는?”
“나도 먹을 거야. …아, 먼저 먹고 있어요.”
때마침 손님이 들어와 이수현은 다시 카운터로 돌아갔다. 능숙하게 주문을 받고 움직이는 모습은 볼 때마다 신기했다. 박민후랑 같이 있을 때의 이수현은 느긋해서 나무늘보 같았으니까. 요리하는 것도 싫어하고 청소도 싫어하고. 그런데 일할 땐 완전히 반대라 그게 참 신기했다. 언제였더라, 그의 집이 또 돼지우리처럼 엉망이 됐을 때 그랬던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밖에서 지겹게 하는 걸 집에서까지 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 지겹기도 하겠지. 그러니 박민후는 될 수 있는 한 이수현 대신 밥도 해 주고 청소도 해 주는 편이었다. 이 무슨 눈물겨운 헌신인가 싶지만. 자신이 좋으면 된 거 아닌가? 이수현도 좋고, 저는 저대로 마음 편에서 좋고. 하지만 결국 제대로 된 밥 같은 건 이수현이 만드는 편이 맛은 좋았다.
***
“형?”
“음.”
카페 일이 끝나고, 평소보다 조금 일찍 온 저녁 알바와 교대한 뒤 두 사람이 간장을 산책시키고선 느지막이 이수현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그 집 앞에 웬 남자가 서 있어 박민후는 살짝 인상을 찌푸린 상태였다. 하지만 곧이어 이수현의 입에서 ‘형’이라는 단어를 듣고, 고개를 돌려 이쪽을 보는 얼굴을 보자 미간이 확 펴졌다. 이수현이 형이라 부른 남자는 입에 담배를 문 상태로 손만 가벼이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 모습에 이수현이 눈살을 찌푸린 건 당연했다.
“담배 꺼.”
“전자 담배야.”
“끄라고.”
“네, 네.”
박민후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와, 붕어빵이네.’
정말이지 이수현의 부모님 중 어느 쪽 유전자인지는 모르겠으나 쌍둥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눈앞의 남자는 이수현과 판박이였다. 키는 이수현보다 조금 작은 것 같았고, 머리 스타일도 달랐지만 딱 봐도 형제네, 싶을 정도로 닮아 있었다. 이수현의 형이 무심한 얼굴로 박민후를 보며 고개를 까딱였다. 그게 또 이수현이랑 똑 닮아 있었다.
“그쪽은?”
“…친구야.”
“친구 있었구나.”
“큽!”
친구라는 그 말에 이수현의 형은 제법 놀랍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선 감탄하는 목소리로 이수현을 훑어봤다. 그 모습에 박민후는 웃음이 튀어나올 거 같아 입술을 깨물었다. 아, 저런 건 안 닮았네. 그의 형은 생각보다 표정 변화가 다양했고, 말투도 장난스러웠다. 그건 참 새로운 느낌이었다. 이수현이 평소답지 않게 얼굴을 찡그리며 삐딱하게 대답했다.
“나도 친구 정돈 있어.”
“그럼 다행이고. 넌 성격이 글러 먹었잖아? 뭐, 욕 안 먹게 밖에서는 잘하나 보네.”
‘꼭 그렇지만도 않지만요.’
박민후는 그 말이 저도 모르게 튀어 나올 뻔해 더더욱 입술을 꾹 깨물고선 살짝 고개를 돌려 먼 곳을 보았다.
“반가워요. 이놈 형이에요.”
“…안녕하세요.”
“…….”
살갑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퍽 이질적이었다. 이수현과 이렇게까지 똑같이 생기다니 쌍둥이라 오해해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형은 이수현과 다르게 웃는 상이었다. 그게 참 묘했다. 웃는 모습이 조금 달라서 그런가?
“근데 계속 여기 서 있을 거야?”
그 말에 이수현이 짜증 난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들어오려고?”
“들어가도 되는 거긴 하고?”
이수현은 저걸 어쩔까 잠시 고민하더니 말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의 형은 그 모습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곤 뒤따라 들어가면서 제 할 말을 꺼냈다.
“전화 안 받던데.”
“…핸드폰 바꿨어. 그런데 전화번호부를 아직 옮기지 않았어.”
“뭐, 그럴 거라 생각했어.”
“…모르는 번호는 안 받아.”
“웃기네. 알면서 안 받은 거겠지.”
박민후는 여기에 제가 따라 들어가도 되는 건가 잠시 고민했다가 이수현이 “안 들어오고 뭐 해요?” 하고 부르는 목소리에 “어? 어!” 하다가 따라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품에 안겨 있는 간장이 작게 칭얼거리기도 해서 일단 박민후는 곧장 화장실로 들어가 간장의 발과 주둥이를 후다닥 씻기고 나왔다. 화장실을 나오니 두 사람은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왜 온 거야?”
“…살았나 죽었나 어떤지 좀 보고 오라고 등 떠밀려 겸사겸사 얼굴 보러 온 거지. 뭐 있겠어?”
이수현의 형은 다리를 꼬고선 발을 까딱이며 말했다. 그러고선 집 안을 한 차례 쓱 훑어보더니 이수현에게 어느새 쪼르르 달려가 치대는 간장을 눈에 담고선 그 뒤에 박민후를 보며 눈썹을 꿈틀거리다 피식 웃었다.
“뭐, 잘 지내나 보네.”
“얼굴 봤으면 가.”
“그래그래, 간다 가. 이건 선물. 친구랑 둘이 먹어.”
식탁 위에 놓여 있는 검은 케이크 박스를 가리키고선 그의 형은 미련 없이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이수현이 “이럴 거면 왜 들어왔대….”라며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뒤따라 현관까지는 마중을 나갔다.
“잘 가.”
“어.”
두 형제의 대화는 참으로 찬 바람이 불었는데 그게 서로 익숙한 듯했다.
“친구도 잘 놀다가 너무 오래 있진 말고 가요.”
“아, 네. 조심히 가세요.”
웃으며 하는 말이 어째 이상한 느낌이었으나 박민후는 착실하게 대답하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벽에 기대서있던 박민후가 여태 참았던 말을 뱉었다.
“너 형이랑 완전 똑같이 생겼다.”
“…그런 말 자주 들어요.”
“누구 닮았어?”
“엄마요.”
그 반응이 익숙한지 이수현은 박민후를 흘기고선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쪼르르 따라가며 박민후가 물었다.
“어머니 많이 닮았어?”
“응, 엄청 똑같이 생겼어. 나보단 형이 더 닮았지만….”
“사진 없어?”
“없어.”
은근슬쩍 등 뒤에 찰싹 달라붙은 박민후를 발로 차며 케이크 상자를 까던 이수현은 갑자기 온 알람 소리에 하던 걸 멈추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내뱉었다.
“미친 거냐고….”
알림은 그의 형에게서 온 거였다. 이수현은 형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에 순간 사고가 멈춰 아연해졌다. 이수현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그 메시지를 같이 보고 있던 박민후는 그 간결한 내용에 얼굴이 붉어졌다.
“아니, 넌 뭘 얼굴을 붉히고 있어?”
그 꼴을 본 이수현이 황당하다는 듯 목까지 빨개진 박민후를 보았다. 박민후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할까?”
“하긴 뭘 해!”
이수현이 화들짝 놀라 박민후의 발을 콱 짓밟았다.
그럴 수도 있지. 외전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