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개와 늑대의 시간.
“뭐?”
“그쪽이랑 내가 언제 봤다고, 나랑 할 이야기가 있어?”
축축하게 젖은 옷도 머리도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얼굴에 튄 피가 어느새 말라 굳어 버리는 느낌도 썩 유쾌하지 않았고 말이다. 시끄러운 은행 안에 오래 있기 뭐 했고, 그냥 집에 가야겠다. 복권은 뭐 내일 다시 오든가…. 아니다. 어차피 이 상황에 내일 은행이 제대로 운영할지 모르겠네. 내일 다른 은행을 찾든가 해야지. 코앞에 서 있는 남자에게 간단하게 감사 인사를 하며, 나는 천천히 휴대폰을 꺼내 차주영이 알려 줬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구해 준 건 고마운데…. 아. 네, 여보세요? 다름이 아니라 이곳에 각성자로 구성된 은행 강도가 나타나서요. 네? 거짓말 아니냐고요? 하긴 은행 강도라니 장난 같긴 하네요. 거짓말 아니고요. 이곳 주소가… 주소 아시는 분?”
뭐라 입을 뻐끔거리던 남자를 힐끗 보며, 은행 주소를 묻기 위해 인질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나를 보고 크게 움찔거렸다. 역시나 지금 내 모습이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줬나 싶었다. 아무래도 집에 갈 때는 무리해서라도 택시 타고 가야겠다.
“아무도 없습니까? 이거 곤란하네….”
“…제가, 제가 알, 알아요.”
“대신 말해 줄래요?”
“네, 네…! 여보세요? 네, 여, 여기 주소가요….”
은행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말했다. 나는 아까 놈이 강도의 팔을 날려 버릴 때 덩굴도 같이 날려 버려 손발이 자유로웠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직 손발이 묶여 있었다. 거동이 불편한 직원을 위해 하는 수 없이 직접 귀에 전화를 가져다 대줬다. 직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주소를 말하는 걸 기다려 준 후 다시 휴대폰을 가져와 이야기를 마저 했다.
“예, 일단 마침 이곳에 계신 헌터분께서 제압을 해 주셨는데…. 아무래도 와 보셔야 할 거 같네요, 그 좀 많이 엉망이라서요. 오실 때 구급차나 힐러를 데려오시면 더 좋고요. 아, 복구팀도요. 그 헌터가 누구냐고요?”
고개를 돌려 뚱한 얼굴의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주인공 이름이 뭐였더라. 박…. 박 뭐였는데. 이 소설 제목도 기억 못 하는데 주인공 이름을 기억할 리 없었다.
“그쪽 이름이 뭐예요.”
“…박민후.”
남자가 자신의 이름을 퉁명스럽게 말하자, 그 이름을 듣고 여기저기서 놀라 소곤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이 사람 이름이 박민후였구나.
“박민후 헌터라고 하네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안 들리세요?”
내가 그의 이름을 말하자 휴대폰 너머로 우당탕 무언가 떨어지고 엎어지는 소리가 한바탕 나더니 박민후란 이름과 헌터들을 부르는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그 후 전화가 끊겨 버렸다. 음, 뭐 알아서 오는 거겠지…. 나도 모르겠네. 집에나 가야지. 문을 막던 차단막은 아까 박민후가 강도들을 제압할 때 진작 사라진 지 오래라 이대로 그냥 나가도 아무 문제도 없었다. 그렇게 막 문을 빠져나가려는데 박민후가 내 팔을 붙잡았다. 그제야 잠시 깜빡하던 게 생각났다.
“아, 다른 사람들 손발 좀 풀어 줄 수 있나요? 아무래도 사람들 손발이 움직여야 헌터들이 와도 일 처리가 빠를 거 같은데….”
“…….”
내 말에 박민후가 다시 한 번 손짓을 하려는 찰나, 인질들이 새된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말했다.
“아, 아뇨!!!!”
“아뇨, 아뇨!! 됐어요!!”
“안 그러셔도 돼요!!”
“그, 곧 헌터들이 오시는 거죠?”
“예, 아마요.”
“그, 그럼! 저희 그냥 이렇게 있을게요.”
“마, 맞아요…!”
“아까처럼 손을 잘라 버리면 어떡해요!”
“뭐…. 불편하실 텐데, 좋을 대로 하세요. 그쪽 일이 줄었네요.”
너무 열정적으로 거부하니 내가 다 기분이 뭣했다. 피도 안 통할 텐데…. 뭐, 본인들이 괜찮다니 내가 뭐라 할 수는 없지. 나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고 박민후에게 붙잡힌 손을 빼내려고 손을 살살 흔들었다. 저쪽은 별 힘도 안 주는 듯한데 빠지질 않는다. 하아, 젠장.
“…그래서, 나한테 할 말이 있다고요?”
“어, 할 말 있어.”
“여기서 할 만한 건 아닌 거 같은데 일단 나가서, 나가서 해요. 이왕이면 그냥 오늘은 각자 갈 길 가고 내일 이야기하면 더 좋고.”
“그건 안 돼. 급한 거야.”
“그래요, 무슨 이야길 하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는데 어디 들어나 봅시다.”
결국 혹을 달고 은행을 나섰다. 어느새 밖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있자니 떡볶이가 먹고 싶어졌다. 집에 갈 때 사 가야지. 어째 오늘은 종일 뭘 먹은 게 없네. 이렇게 오래 나와 있을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야.
은행 밖으로 나오니 거리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그들은 내 꼴을 보고 하나같이 놀라 숨을 들이켰다. 개중에는 엮이기 싫다는 듯 빠르게 멀어지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역시 택시를 타야겠어. 과연 잡히려나 모르겠지만…. 멀뚱히 박민후와 길 앞에 서 있는데 멀리서 큰 소리가 들렸다. 언젠가 들어 본 목소리였다.
“박민후 헌터!!”
엊그제 한 번 봤던 그 목청 좋은 헌터와 그 뒤를 따르는 수십 명의 헌터들이 보였다. 그들이 빠른 속도로 뛰어오는 것을 보고 있는데 몸이 덜렁 들렸다. 배를 누르는 단단한 어깨와 높아진 시야로 내가 지금 박민후한테 쌀가마니처럼 들렸단 걸 깨달았다.
“뭐 하는 거야?”
“시끄러운 놈들이 왔잖아. 또 방해받으면 나도 내가 뭘 할지 몰라.”
“분노 조절 장애는 병원에 가 봐야 해요.”
“그런 거로 될 거면 진작됐지.”
“그것도 그렇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박민후의 발아래서 뻗어 나온 그림자에 집어삼켜졌다.
“으아앗!! 또 어디 가는 거야!! 박민후 헌터!!”
***
그의 발밑에서 뻗어 나온 그림자는 마치 괴물의 아가리 같았다.
아마 그게 내가 이곳에 오기 전 마지막으로 본 상황이었다. 내 눈앞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그림자를 보다 그저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을 뿐이건만,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덩그러니 이상한 곳에 내던져져 있었다.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 있다 해도 구별이 가지 않았을 만큼 어두운 곳이기도 했고,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라는 존재는 뚜렷하게 보이는 이상한 곳이었다.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박민후 또한 보이지 않았다.
설마 그가 나를 집어삼킨 걸까? 대화를 하자는 건 거짓말이었나? 그럼 이곳은 괴물의 배 속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그저 검디검은 공간일 뿐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그저 어둠, 어둠뿐인 공간. 그다음 느껴지는 거라고는 뼈가 시릴 정도의 추운 한기 정도일까. 한겨울의 온도가 이보단 덜 추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상한 곳이었다. 이것도 그의 능력인 걸까? 그의 능력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그림자와 관련된 능력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어둠 계열의 능력. 정말 그와 꼭 어울렸지.
찰랑….
슬쩍 움직여 보자 발아래에서 찰랑거리는 물소리가 났다. 내가 밟고 있는 것은 아마 물이었던가 보다. 하지만 물이라고 해도 시커메서 그건 마치 먹물 같았다. 그런 물이 내가 발을 움직일 때마다 파장을 일으켰다. 찰랑거리는 소리가 이 고요한 공간 안에 울려 퍼졌다.
다행이게도 몸은 내 뜻대로 움직였고, 그러니 일단 앞으로 나아가 볼까 싶었다. 마냥 이렇게 서 있을 이유도 없었으니까. 한 걸음, 한 걸음 아무것도 없는 세계를 멍하니 걸었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이렇게 걷다 보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공간감이 사라진 이곳에서 내가 제대로 걷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나는 걷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어쩌면 제자리에 서 있는 걸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보이는 거라고는 어둠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온몸을 타고 흐르는 한기 덕에 피부가 춥다 못해 아리게 되었을 때였다.
눈앞에 어둠이 땅바닥에서 불쑥 치솟아 올라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것은 점점 거대해졌다. 꾸물거리며 찰흙을 뭉쳐 모양을 만드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 집채만 한 덩치가 무엇일까 궁금해 결국 뒷걸음쳤다. 그건 너무 높이 솟아 한참을 뒤로 물러나야 겨우 시야에 다 담을 수 있었다. 그제야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건 거대한 짐승이었다. 언젠가 밤에 본 검은 짐승.
그걸 보자 깨달았다.
이곳은 박민후의 심연이었다.
박민후는 정의로운 주인공은 아니었다. 오히려 안티 히어로에 가까운 캐릭터였지. 그의 과거는 무척 처참했다, 이 세계로 따지자면 ‘최악의 날’과 흡사했다. 게다가 그의 본성은 원래부터 선하지만도 않았다. 그는 지옥에서 살아 돌아왔기에, 그의 가치관, 생각 등 많은 것이 평범한 사람과는 달랐다. 그는 강해지기 위해 동료들을 제물로 삼기도 했고, 필요하다면 살생을 서슴지 않았다. 그의 강함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인해 만들어진 결과였다.
책에서 서술된 박민후는 어느 순간부터 연민을 몰랐고, 죄책감도 몰랐다. 그는 그저 감정 없는 괴물이었고, 자신의 목적만을 위해 그는 그렇게 그냥 앞으로 나아가기만 했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거나 방해하는 눈앞의 모든 것을 없애고, 꿇리고, 짓밟으면서. 그는 차근히 괴물이 되어 갔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지.”
굳게 감겨 있던 눈이 내 말에 느릿하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짐승의 눈은 오늘 몇 번이고 가까이서 보았던 샛노란 눈이었다.
“당신은 그걸 지키지 못했나 보네.”
그 눈과 마주하자 검은 세상이 파열음을 내며 무너져 내렸다.
쩌적 금이 간 공간 사이로 무너진 세계는 천천히 색색의 색으로 물들었다. 갑자기 밝아진 시야 속에는 여전히 샛노란 눈이 있었다. 사람 같지 않은 눈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노을을 등지고 서 있는 남자의 표정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그의 모습은 분명 사람이었으나, 나는 순간 그가 사람인지 괴물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뭘 넋 놓고 있어?”
퍼뜩, 정신이 들었다. 자꾸만 그의 눈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나, 그것은 다소 무례했기에 이수현은 고개를 살살 저었다. 우리는 어느새 모르는 아파트 베란다에 서 있었다.
“방금 이상한 걸 봤거든요.”
“뭘?”
“개 같은 늑대?”
“뭐?”
“그냥, 해가 지잖아요. 그런 말도 못 들어 봤어요? 해 질 녘 실루엣만으로는 저기서 오는 게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날 해치려는 늑대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뭐, 그런 거요.”
나는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이며 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왜 그렇게 보인 걸까. 그는 아마 모르는 듯싶었다. 뭐 내가 그의 심연을 들여다본 걸 그가 알아봐야 좋은 게 없겠지.
“그보다 어디로 온 거예요? 텔레포트도 할 줄 알아요?”
“그냥 그림자로 건너뛴 거야. 뭐 비슷한 개념이긴 하지.”
“베란다네요. 누구 집이죠? 그쪽?”
“내 집이야.”
“집에 있는 게 없네요.”
“잠만 자니까.”
배란다 창으로 본 그의 집 안 풍경은 썰렁하다 못해 텅 비어 있었다. 이사를 하고 난 후에 남겨진 집안 꼴이 이렇지 않을까?
“그럼 욕실 써도 되나요? 아무래도 너무 찝찝해서 씻고 싶은데….”
“까다롭긴…. 나중에 해, 나중에. 이야기만 끝내면 씻든지 말든지 신경을 안 쓸 테니까.”
“하아, 그래요.”
굳이 이런 곳까지 와서 그놈의 대화를 해야 하나 싶었지만. 그래, 듣는 귀가 없이 단둘이 이야기하기엔 이편이 좋을 수도 있겠지.
“뭐, 내 집도 아닌데 고집 피울 수는 없죠. 그래요. 이렇게까지 해서 나랑 무슨 이야길 하고 싶은 건데요? 전 정말 이해가 안 돼서 그래요.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났어요. 우리가 한 대화라고는 길을 묻고, 알려 준 거뿐이죠. 아, 강도에게서 구해 준 것도 있네. 그거에 대한 감사 인사도 아까 했지요. 그런데요? 겨우 그것뿐이에요. 우리가 여기서 더 이상 무슨 대화를 해야 하죠?”
어디 말해 보라는 듯 팔짱을 끼며, 등 뒤 유리창에 몸을 기댔다.
“하, 씨.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할 말 없어지는데….”
그렇게 말하며, 잠시 뜸을 들이던 박민후는 이내 항복이라도 한 것처럼 양손을 들고 한 발 물러섰다. 그가 움직이면서 드디어 그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어딘지 무슨 말을 꺼내야 좋을지 몰라 복잡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의 입은 뭐라 말을 하면 좋을지 고민이 되는 듯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고민할 거면 내일 하면 될 텐데 말이야. 나는 그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려 주기로 했다. 무슨 이야기를 할지 솔직히 좀 궁금하기도 했다. 그와 내가 할 이야기가 과연 무엇일지.
겨우 생각이 정리된 건지 그가 입을 열었다. 체념한 것 같기도 하고 불안한 것 같기도 한 표정이었다. 그는 나와 마찬가지로 등 뒤의 난간에 기댔다. 그는 날 보지 않고, 불타오르는 노을을 보고 있었다. 샛노란 눈이 붉게 물들었다.
“그래. 네 말대로야. 우린 오늘 처음 봤고, 대화도 아까 그게 다인데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난 이게 정말 중요하거든? 이걸 듣고 뭔가 알 거 같으면 말해.”
“아는 거면요.”
“…나도, 내가 미친놈인 건 알아, 그리고 이게 미친 소리란 것도 알아.”
답답한지 그가 양손을 들어 마른세수를 했다.
“…내가 각성한 날로부터 지금까지 나는 살면서 몇 번이고, 내 의지를 멋대로 움직이려고 하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었어. 이걸 ‘강제성’이라고 해야 할까? 뭐, 그런 거지. 그건 자꾸만 나에게 선택을 강요했어. 이 길로 가야 해, 저 사람을 구해야 해, 이 몬스터를 죽여야 해, 저 사람과 이야기를 해야 해, 이걸 가져야 해…. 그리고 나는 그때마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게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말아.”
그가 내게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너도 알겠지만 이 세계는 한 번 사라질 뻔했어. 그걸 구한 게 나란 건 너도 잘 알겠지?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아니, 몰랐는데…. 저 말이 사실이라면 이곳은 이미 모든 게 끝난 세계인 건가? 내가 완결까지 보지 못했으니 분기점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세계가 멸망할 뻔했다는 건 거의 완결 직전 마지막 이야기잖아?
“그리고 그날을 기점으로 나는 더 이상 그런 선택을 강요당하지 않았어. 그런 느낌도 사라졌고, 그렇게 몇 년이 흘렀지.”
나는 어렴풋이 그가 말했던 이상한 기분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내가 이곳에 사는 사람이 아니고, 이곳이 소설이란 것을 알기에 깨달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그래, 아마도 그건 이 세계의 흐름인 게 아닐까? 그가 주인공이기에 작가가 만들어 놓은 스토리의 흐름이 그의 의사에 간섭한 거지. 그가 예정대로 세계를 구하고, 그로 인해 이야기의 끝을 보았다면, 그 흐름이 사라지는 것도 당연한 걸 테다.
“그런데. 오늘 널 보고, 그 기분을 다시 느끼게 됐어. 아주 개 같은 기분이야. 드디어 그 빌어먹을 선택을 다시 안 해도 된다고 안심하고 있었다고! 그런데 널 보는 순간 그 기분이 다시 날 움직였지, 그래서 나는 널 따라왔고….”
하지만 이건 이상해. 나로 인해 흐름이 다시 시작되었다고? 대체 왜? 나는 그냥 지나가는 엑스트라일 텐데?
“나는 이 모든 게 어째 너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단 말이야? 내 직감이 네가 뭔가 알고 있다고 말해. 몇 년 만에 ‘강제성’이 나타난 이유가 있다면 그건 너일 거라고 말이야.”
음, 곤란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쉽게도 나는 아는 게 없어요. 그쪽이 지금 대체 무슨 이야길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이건 설령 안다고 해서 쉽사리 말해 줄 수 없는 내용이었다. 소설 속 등장인물에게 ‘사실 그건 이 세상의 정해진 흐름이다.’, ‘네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작가가 정해 놓은 흐름대로 몸이 움직인 거다.’ 하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하나의 예로 꿈속의 주민에게 이곳이 꿈이란 것을 말하는 순간 그 꿈은 붕괴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세계는 어떻지? 그렇게 되지 않을 거란 보장이 과연 있을까? 설령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와 상응하는 무언가가 벌어질 수도 있고, 다른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지. 내가 이 소설에 들어온 것처럼 말이다.
내가 이곳에 오게 된 게 어쩌면 주인공 때문이라면…? 아니, 그건 너무 멀리 간 생각이었다.
“모른다고? 정말? 아냐, 아냐…. 넌 뭔가 알아. 지금 거짓말하고 있잖아…! 사실대로 말해!”
그의 기세에 등 뒤의 유리창이 동시에 깨져 나갔다. 와장창 하는 소리가 울리고, 유리가 비상했다. 노을을 머금은 유리들이 별처럼 빛나더니 그대로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그 순간, 그의 그림자가 불안정하게 흔들거리는 것을 본 것만 같았다. 그 상황을 느리게 훑으며, 나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그게 뭔지 알면…. 그쪽이 뭘 할 수 있는데요?”
그가 원하는 답을 알지만. 그걸 안다고 해서 그가 뭘 할 수 있지?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쪽 말대로라면, 당신 같은 사람을 멋대로 휘두르려고 한 힘이에요. 그걸 당신이 어떻게 막겠어요.”
“…그건!”
“내가 해 줄 말은 없어요. 나는 당신이 뭐라는 건지도 모르겠고, 그 이야기가 왜 나랑 연관이 있다는 건지도 납득이 되지 않아요.”
그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뭐가 그렇게 신경 쓰이는지 모르겠네요. 그래, 내가 좋은 걸 알려 줄까요? 아주 좋은 마법의 주문이에요. 지금 당신에겐 이게 가장 필요할 거 같네요.”
나는 그의 흔들리는 눈을 마주 보며, 웃어 주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딴에는 최대한 다정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웃는 것은 익숙하지 않아 금방 얼굴 근육이 땅겨왔다.
“나를 만난 후 그렇게 느꼈다고 했죠? 글쎄요. 그게 착각이 아니라고 어떻게 단언할 수 있어요? 이미 몇 년도 전부터 느끼지 못했다면서요. 그게 이제 와서 다시 느껴진다면 한 번쯤은 착각이라고 의심해 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며 나는 손뼉을 쳐 이야기의 끝을 고했다. 그러다 문득 내 말에 정처 없이 흔들리는 샛노란 눈을 보는 건 썩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그럼 이야기 대충 끝났으니…. 욕실 좀 빌릴게요.”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뒤돌아섰다. 베란다에서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도중 바닥에 흩뿌려진 유리 조각을 밟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신발을 신고 가고 싶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의 집에 신발을 신고 들어가기에는 조금 그랬다.
어휴, 뭐 부수는 게 취미인가. 내 집도 부수더니…. 뭐 그래도 이건 본인 집이니 내가 신경 쓸 건 없지. 아, 욕실이 어디지? 눈앞에 보이는 문이 세 개라 고민이 됐다. 하나하나 열어 보며 찾는 수밖에 없겠다. 그렇게 하나하나 확인하고, 세 번째에 욕실 문을 열었을 때였다. 나지막이 등 뒤에서 무언가 참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얼핏 들으면 짐승의 으르렁거림과도 닮아 있었다.
“난 너처럼 생각할 수 없어.”
***
“그래요, 그럼.”
탁.
“…….”
그게 다였다. 남자는 그 말만 남긴 채 욕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문이 닫히고, 옷 벗는 소리가 들리고, 샤워 부스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도 박민후는 멍하니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그냥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여겨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 웃음은 한순간뿐이었지만 박민후의 머리에는 각인처럼 새겨졌다. 무표정한 얼굴에 핀 웃음은 어찌 보면, 사뭇 다정해 보였으나, 그 웃음에서도 박민후는 감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기뻐서 웃는 건 아니고, 재밌어서 웃는 것도 아닌 그저 메마른 웃음. 그러나 아마 이게 그의 평범한 웃음이겠지. 그 웃음이 너무 자연스러웠으니까, 그의 웃음은 그와 닮아 메말라 있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그게 무엇인지 안다 해도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난 아무것도 못 할 게 분명했다. 여태 그래 왔으니까. 앞으로도 그렇겠지. 그래도… 멍하니 닫힌 문을 쳐다보던 박민후는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힘없이 중얼거렸다.
“난…. 그냥 알고 싶었어.”
내가 왜 그렇게 해야 했는지….
왜 이렇게 돼 버렸는지….
***
가볍게 몸을 씻었다. 목욕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서 그냥 대충 물만 뿌리고 있을 뿐이지만. 요 며칠 겨우 3일뿐이었는데도 인생 참 파란만장했다. 정말 소설다운 3일이라 내가 소설에 들어왔구나 하고 다시금 상기했다.
원래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선택지는 사실 생각도 안 했다. 가면 좋고, 못 가면 마는 거지…. 딱히 미련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그곳이나 이곳이나 내가 살아가는 대에는 문제가 없었으니까.
일단 집도 여전히 있었고, 가지고 있던 돈도 쓸 수 있었다. 의식주가 해결된다면 그저 여행 온 기분으로 지내도 나쁘지 않겠지. 저쪽 세계에서 나는 실종 처리된 걸까? 아니면 나와 교환하듯 이곳에 살던 ‘이수현’이 그쪽으로 넘어간 걸지도 몰랐다.
그런 거면 가족에게 딱히 연락이 갈 일은 없겠지. 태평하게 그런 생각을 했다. 그곳에 있는 부모님이나 형이 생각 안 나는 건 아니었지만, 혼자 나와 사는 순간부터 연락을 거의 끊고 살다시피 했다.
딱히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내 성격이 그런 거였을 뿐으로 가족과의 사이가 나쁘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냥 연락하기 귀찮았을 뿐이고, 집안 내력이라고 해야 하나 가족들도 나처럼 타인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그 타인에 가족도 해당했을 뿐이었다. 이곳에도 내 가족이 있을지 찾아봐야 하나 그런 생각이 불쑥 들었지만…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샤워기를 끄고 수건을 찾아 몸을 닦았다. 벗어 놓은 옷을 다시 입기는 찝찝했지만 어쩌겠는가, 입을 옷이 없는걸. 대충 속옷과 바지를 껴입었다. 피에 푹 절여진 셔츠는 샤워를 하기 전에 세면대에 물을 받아 놓고 담가 두었다. 헐벗다시피 한 상체가 으슬으슬 추웠다.
“살다, 살다 은행 강도를 다 보고 진짜 별일이 다 있다니까.”
그나마 복권이 무사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수건을 머리에 얹고 탈탈 털면서 세면대에 담가 둔 피 묻은 셔츠를 빨았다. 첨벙첨벙 소리를 내며 새빨갛게 물든 물을 갈고, 그걸 서너 번 반복하고 나서야 피 묻은 흔적이 사라졌다. 하지만 이 옷은 아마 더는 못 입지 않을까 싶다. 흰옷에 핏물이 스며들어 분홍빛을 띠었다.
지금 당장은 입을 옷도 없었으니…. 하는 수 없지만. 물을 쫙 짜고 탈탈 털었다. 이대로 다시 입으면 감기에 걸리려나. 그런 생각이 들어 일단은 젖어서 묵직해진 셔츠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윗옷이라도 빌려야겠어.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해는 저물고 세상은 어둠에 물들어 있었다. 이따금 바람 소리가 깨진 유리창 너머로 들어와 어두컴컴한 집 안을 배회하고 있었다. 나는 어둠에 적응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떴다. 아까 욕실을 찾으면서 전원 스위치를 봤는데 어디 있지? 벽을 더듬더듬 짚어 가며 겨우 불을 켰다. 환해진 거실의 풍경은 내가 욕실에 들어가기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박민후는 여전의 베란다 난간에 기대어 있었고, 사방에 흩뿌려진 깨진 유리도 그대로였다.
“…뭐 해요?”
아무래도 양말을 벗은 맨발이라 가까이 갈 수는 없었다. 욕실에서 씻으면서 보니 발바닥이 유리에 베여 피가 나오고 있었다. 신고 있던 양말은 당연 찢어졌고, 지금은 피가 멈추었지만, 발을 옮길 때마다 발바닥이 따끔거렸다.
“박민후 헌터? 옷을 좀 빌려도 될까요. 입을 옷이 없어서요.”
내 부름에 그제야 박민후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나를 보는 그의 표정이 묘했다. 어딘지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것도 같고, 나사가 하나 빠진 것도 같은 어딘가 멍한 표정이었다. 어둠 속에 우두커니 서 있던 그가 천천히 내게 걸어왔다. 그가 걸을 때마다 파삭파삭 유리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발 신고 들어와도 되는 거였으면 진작 말하지. 괜히 벗었네.
그는 몇 걸음 걷지도 않은 거 같은데 어느새 내 앞에 와 서 있었다. 문득 나는 그와 처음 만났던 밤이 생각났다. 그가 나를 바닥에 짓누르고 등에 발톱을 박아 넣었을 때를 말이다. 그때도 밤이었지, 베란다는 부서져 있었고, 이렇게 노란 눈이 날 내려다봤었다. 어쩐지 등이 욱신거렸다. 그가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입을 열었다.
“…생각을 좀 해 봤는데.”
“예?”
“네 말대로 착각일 수도 있겠더라고, 몇 년이나 지났으니까. 그래…. 착각이면 오히려 나한테 더 좋지.”
“그런가요.”
“응.”
“저 그럼 이제 옷 좀….”
“그래서 네 옆에 좀 있을까 해.”
“예?”
“만약 착각이 아니라 정말 네가 문제였다면, 네 옆에 있는 편이 알아채기 쉽잖아. 그럼 착각인지 아닌지도 금방 알게 되겠지.”
“…그, 렇긴 하겠는데.”
“그래, 그러니까 확신이 들 때까지 내 옆에 있어야겠어.”
그렇게 말하며 그는 나를 지나쳐 어떤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대체 무슨 말을 들은 거람? 어이가 없어서 잠시 멈칫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서둘러 박민후가 들어간 방으로 따라 들어가며 외쳤다.
“싫어요!”
“왜?”
그를 따라 들어온 방은 침대가 하나, 옷장이 하나 딸랑 있는 방이었는데, 남자는 옷장 문을 열고 안을 뒤지고 있었다. 내 부탁대로 옷을 찾아 주려는 것 같았다. 그건 참 고마운데….
“내가 왜 그쪽이랑 있어요?”
“아까 말했잖아.”
“그러니까 왜 이야기가 그리로 빠지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거예요.”
“머리가 나쁜가? 옆에 있다 보면 이해될 거야.”
“난 하루 먹고살기 바빠서 그쪽이랑 놀아 줄 시간이 없다고요.”
“그거 안타깝군, 난 돈이 많은데.”
…이런 우라질.
그의 말에 속으로 욕을 하는데 그가 휙 뒤 돌았다. 순간 뜨끔해서 흠칫 놀랐다. 눈앞에 박민후는 어딘지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하는 말도 그렇거니와 지금 표정도 어정쩡했다. 솔직히 나는 지금 그가 본인 입으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아는지 궁금했다.
뭐라고 하려다 그가 내미는 옷 때문에 잠시 멈추었다. 그가 준 건 검은 반팔 티셔츠였다. 지금 입고 거리로 나돌기엔 좀 추운 옷이었다.
“계절에 맞는 옷이 없어. 대충 그거 입어.”
“…고마워요.”
나는 일단 옷부터 입고, 마저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가 준 옷은 조금 크고 품이 넉넉해 잠옷 대용으로 입던 티셔츠가 생각났다. 옷을 입는 과정에서 머리에 얹어 둔 수건이 발아래로 떨어졌는데 그걸 멀뚱히 보던 박민후가 수건을 주워 들었다. 수건을 한 번 나를 한 번 보더니 아직 채 마르지 않은 내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개털 말리듯 탈탈 털어대기 시작했다.
“뭐 하는…! 그만해!”
그게 너무 아파 진저리를 치며 그의 손에서 간신히 빠져나왔다. 머리 전체가 다 얼얼하고 눈이 핑글 돌기까지 했다. 이거 머리카락 왕창 뽑힌 거 아냐? 내가 자기 같은 줄 아나…. 좀만 더 있었어도 두피까지 벗겨질 뻔했다. 그게 아니꼬워 그를 노려보는데 박민후는 여전히 어디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은 모양새로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이 자식 아까부터 왜 이래? 나는 그의 손에서 수건을 뺏어 들었다. 그의 시선이 수건의 꽁무니를 따라 움직였다.
“아니, 대체 뭐 하는 짓이에요?”
“머리 말려 주잖아.”
“머리를 뽑아 버릴 생각은 아니었고요?”
“…아냐.”
왜 뜸 들이는데.
“정신 좀 챙겨 봐요. 아까부터 대체 왜 그렇게 넋이 나갔어요?”
“그러게.”
대답에 매가리가 없었다. 진짜 왜 이러는 거야? 내가 씻으러 간 사이 무슨 심경에 변화라도 있었나? 아까 내가 무슨 이야길 했더라? 별로 이상한 말은 안 했던 거 같은데….
뭐가 됐든 대충 말리고 얼른 여길 나가야지 더는 안 되겠다. 머리를 두어 번 털고서 손으로 대충 빗어 넘겼다. 됐다. 이 정도면 가다가 마르겠지, 더는 저놈이랑 엮이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엮이는 건 오늘로 충분해.
이곳에 온 지 겨우 3일, 그 3일 동안 저놈과 엮여서 손해 본 시간이 얼만지…. 원래 오늘은 은행에 다녀온 뒤 아르바이트도 새로 구해야 했고, 장도 봐야 했다. 할 게 많았다. 그런데 벌써 해가 저물었다. 집에 가면 시간이 또 훌쩍 지나 있겠지.
“옷 고마웠고, 이만 가 볼게요. 이 옷은 나중에 돌려 드릴게요. 헌터 협회에 맡기면 되죠?”
“…간다고?”
“예, 갈 거예요.”
“어떻게 가려고.”
“어떻게든 그쪽이 신경 쓸 일은 아니죠.”
“길도 모르잖아.”
“…나가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면 돼요. 아니면 위성 내비를 켜든가.”
“다음 날에나 집에 들어가려고?”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
이렇게 그와 무의미한 대화를 하고 있자니 절로 피곤해졌다. 집에 가려면 일단 베란다에 벗어 둔 신발을 가져와야 하는데. 저 유리들을 안 밟고 갈 수 있으려나. 내 시선을 눈치챈 건지 박민후가 베란다로 향했다.
베란다 입구에 벗어 놓은 신발을 들고 온 그가 신발을 내 앞에 떨어뜨렸다. 손으로 건네주면 받을 생각이었던지라 순간 움찔했다.
하여간 저 인성.
짧게 한숨 쉬며 신발을 신었다. 마무리로 바닥에 신발코를 톡톡 치고 몸을 일으켰다. 신발도 신었겠다, 이제 진짜 가야지.
내가 신발을 신기를 기다리던 그가 아까처럼 덜렁 나를 어깨에 둘러멨다. 딱 느낌이 왔다. 데려다줄 건가 보다. 그래. 그것참, 돈도 안 들고 시간도 절약해서 좋은데. 좋긴 한데…
“…좀 평범하게는 안 되나요.”
“말이 많네. 데려다주는 걸 고맙게 여겨.”
“그래요…. 그럼.”
그래, 남의 어깨에 둘러업히는 경험을 내가 또 언제 해 보겠어. 새로운 경험이라고 치자. 오늘이 두 번째였지만…. 애초에 그가 이리로 데려오지만 않았으면 이럴 일이 없었을 테지만!
그의 그림자가 다시금 아가리를 벌리는 걸 멀뚱히 보며 급격하게 피로감이 느껴졌다. 오늘 하루 별로 한 것도 없는데 피로가 몰려오다니 이대로 집에 가면 알바고 뭐고 잠이나 자고 싶었다. 그래도 배가 고프니 집에 가면 편의점에 가야겠어. 간단하게 삼각김밥이라도 사 먹어야지. 떡볶이가 먹고 싶었는데 아쉬운 대로 컵 떡볶이도 사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