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권-0. 그럴 수도 있지. (1/18)

0. 그럴 수도 있지.

툭.

내 기본 마인드는 기본적으로 ‘그럴 수도 있지.’다.

그럴 수도 있지.

이 한마디는 정말이지 마법의 단어다. 살아가면서 피곤할 때도, 화날 때도, 짜증 날 때도, 슬플 때도, 어떤 상황에서든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면 별거 아니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면 이 퍽퍽한 세상도 나름 살기 쉬워진다.

현대 사람들은 툭하면 꼬투리를 잡고 쓸데없는 것에 힘을 쓰는 경향이 있다. 그럴 땐 좀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길 줄 알아야 한다. 나처럼 말이다.

그래서 누가 날 치고 지나갈 때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겼고, 어깨가 탈골됐었지만. 누가 잠깐 화장실 다녀온 사이 내 노트북을 훔쳐 갔을 때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겼다. 좀 울었지만.

친구란 놈이 널 친구로 생각한 적 없다고 술 먹고 고백했을 때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겼다. 친구가 아니라니 그건 좀 충격이긴 한데, 뭐 어쩌겠는가? 본인이 아니라는데.

이때도 저때도 그렇게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갔다.

이런 마인드가 세상 살기 편했으니까.

그래, 그러니까 눈앞에 괴물이 나타나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갈 수 있을 리 없잖아.

“크아아아!!”

“미친….”

이건 그럴 수도 있지 수준이 아니었다. 생각해 봐라. 21세기에, 그것도 도심 한복판에! 빌딩만 한 괴물이 나타나다니, 이건 아무리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된다.

내가 길을 걸으면서 꿈이라도 꾸는 건가? 그럴 수도 있지. 그래, 가끔 너무 피곤하면 눈 좀 감고 졸면서 걸어 다니기도 하지 않나? 오늘 좀 피곤하긴 했지, 두 눈이 무거워 걸으면서 좀 졸기도 했다.

그럼 이건 꿈인가? 살 떨리는데.

쿠쾅쾅!!!!

“크아아아악!!!”

목청 한번 좋네. 얼떨떨한 기분에 내 양팔을 쓸었다. 닭살이 돋았다. 음, 역시 착각이 아니네…. 이 상황에서 내가 이렇게 나름 차분하게 상황을 지켜볼 수 있는 건, 다 주변 사람들 덕분이었다.

“이런, 길 막히겠네.”

“에잉, 쯧쯧쯧. 저 집은 사고 보험 들었나 몰라.”

“여보세요? 아, 미안! 잘 안 들려! 뭐라고?!!”

…이 사람들, 다들 아주 훌륭한 그럴 수도 있지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거 같다.

어떻게 도시가 파괴되고 있는 와중에도 이 사람들은 그냥 제 갈 길 간다. 재난 영화처럼 소리 지르고, 울고, 도망치는 모습은 전혀 없다. 뭘까, 이 편안한 느낌은. 그저 일상 속에 새로운 풍경이 하나 첨가된 것처럼 저기선 사진도 찍고 있고. 이야, 하긴 좋은 배경이긴 하네. 여기선 갑자기 건물 보험 이야길 한다. 저런 것도 보험 되나? 하긴 안 되면 집주인만 피눈물 나지. 자연재해로 구분되는 건가…?

이야, 미쳐 돌아가네.

나도 본받아야겠다. 그래, 갑자기 도심 한복판에 괴물이 나타날 수도 있지. 21세기잖아. 발아래 떨어진 가방을 주워 들고 걸음을 옮겼다.

“집에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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