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향락의 향연 (2)
제헌의 성기를 빠는 걸로 하루를 시작해서, 여원은 밤에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내내 그를 몸 안에 가득 품고 있어야 했다. 눈만 마주치면 붙어먹었기 때문에 옷을 벗기는 것이 도리어 거추장스럽게 느껴져, 두 사람은 언젠가부터 집 안에서 옷을 아예 입지 않았다. 계단, 부엌, 욕실, 응접실, 침실을 가릴 것 없이 저택 곳곳에 섹스의 흔적을 남기며 돌아다녔다.
일주일의 휴가 기간, 다른 이들을 모두 쫓아낸 저택에서 제헌과 여원은 서로를 독차지했다. 보는 눈이 없는 저택은 두 사람만을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독립된 세계 같았다. 같은 자리에 고여들어 정체된 시간 동안 관계는 깊숙해졌고, 향락적인 안락에 젖어든 두 사람은 상대의 눈을 두터이 가리기를 택했다.
그래 봐야 딱 일주일뿐이니까, 어차피 곧 선준이 돌아오면 끝나게 될 거잖아. 자기합리화했지만, 심리적 보루를 마련하자 오히려 더욱 가파른 속도로 욕망의 비탈길을 구르게 됐다. 너무 빠르게 아래로 굴러떨어지다 보니, 추락의 감각은 한편으로는 평온하고 고요하게도 느껴졌다.
스스로의 의지만으로는 아찔한 내리막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처음에 욕망이 내 안에서 생겨났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나 자체가 욕망에게 통째로 집어삼켜지고 있었다. ‘이래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은 찰나일 뿐, 결국은 ‘이렇게까지 좋은데 왜 안 되지?’라는 비틀린 의구심이 사고를 지배했다.
제헌은 저택이라는 작은 왕국의 왕이었으며, 언제나 저택의 주변부를 외부인처럼 겉돌던 여원은 무자비한 주인에게 완벽하게 복종함으로써 비로소 저택 일부가 되어갔다. 음산한 매혹으로 흘러넘치는 저택에서는 위험과 관능이 같은 의미로 통했으며, 이는 곧 깊어지는 감정을 싹틔우는 자양분이기도 했다.
“으응……. 제헌 씨?”
미지근한 물에 적셔진 수건이 가슴을 부드럽게 쓸어내리자 여원이 속눈썹을 두어 번 깜빡거렸다. 섹스 도중 반쯤 기절하다시피 잠들어버린 여원의 판판한 가슴팍은 단내를 폴폴 풍기는 자두 과즙으로 적셔져 있었다.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입꼬리를 작게 들썩인 제헌이 맨들거리는 피부 곳곳에 묻어 있는 자두 껍질과 말라붙은 과육을 떼어 주었다.
“지금 몇 시나 되었죠?”
“푹 자길래 일부러 안 깨웠어요.”
언젠가부터는 시간 감각이 점점 무뎌지고 있었다. 먹고 자고 섹스하는 게 전부인 일상이었지만, 이제 점점 각각의 경계마저 희미하게 흐려져 가고 있었다. 지금처럼 먹으면서 섹스하거나, 섹스하다가 잠들어버리고 마는 일이 왕왕 생겨났다.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피곤했나 봐요.”
“그래요. 넣고 있는데 그대로 잠들어버리더라.”
몸을 자주 맞댈수록 아래가 더욱 차지게 결합했다. 제헌과 처음 섹스를 할 때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생각했지만 최근 들어 여원의 몸은 훨씬 더 민감하고 예민하게 제헌을 받아들였다. 묵직하고 얼얼하면서도 생생한 감각은 중독적이어서, 실제로는 꽉 다물려 있는데도 아래가 아직 벌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 이제 섹스를 좀…… 덜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요?”
“이러다 저 아래가 아예 벌어져 버리면 어떡해요.”
철렁하는 기분에 여원은 본능적으로 손을 길게 내려 가랑이 부근을 더듬어보았다. 멍한 얼굴로 중얼거리자 쪽, 쪽, 제헌의 입술이 얼굴 곳곳에 간지럽게 내려앉았다. 따끈한 수건이 꼼꼼하게 닦아내자, 쾌락으로 온통 흐물흐물해진 몸이 금방이라도 바닥에 말캉말캉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꽉 잘 오므려져 있네요.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몽롱하게 젖어든 여원의 얼굴을 빤히 보더니, 제헌이 아래를 직접 만져보고는 다독거렸다. 대낮의 저택에서 스스럼없이 벗은 몸을 드러낸 제헌은 중심이 단단하게 잡혀 있어 실로 주인다웠다.
탁 트인 창문으로는 화사한 햇살이 와르르 쏟아져 내리고, 아름답게 조각된 상반신이 빛줄기를 희끄무레 반사했다. 제헌의 몸은 인간의 것임에도 완벽에 가까워서, 그리스의 어느 조각상을 연상시켰다. 환한 대낮에 나신을 바라보는 위화감에, 여원의 입술이 느릿하게 헤벌어졌다.
“제헌 씨…….”
여원은 널찍하게 떡 벌어진 제헌의 어깨를 향해 슬며시 손을 뻗어보았다.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제헌은 여원의 손에 흔쾌히 어깨를 내어주었다. 손가락 끝에 닿는 단단하고 딱딱한 살갗이 생경했다.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여원은 아주 조심스럽게 제헌의 쇄골뼈를 만지작거렸다.
“네, 여원 씨.”
이렇게 함부로 제헌의 몸을 만져도 되나 싶었지만, 의외로 제헌은 벗고 있는 제 모습에 홀려 손을 뻗는 여원을 기꺼워했다. 어디 더 해보라는 것처럼, 여원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내리기도 했다. 덕분에 한층 과감해진 여원이 제헌의 너른 품 안으로 홀라당 감겨들었다. 고개를 들어 올리고, 단정한 선을 그리는 그의 입술에 입 맞추려던 찰나였다.
부르르르.
산통을 깨는 듯한 진동 소리에 뭉근하게 달아오르던 분위기에도 찬물이 확 끼얹어졌다. 미간을 찡그린 여원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렇게나 내팽개친 핸드폰은 며칠째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아서, 소리의 근원이 어디인지 쉽사리 알 수도 없었다.
불만족스럽게 눈썹을 치켜뜬 제헌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몇 걸음 나아가더니, 테이블 위에서 애처롭게 진동하고 있는 핸드폰을 거두어들였다. 끊이지 않고 몸을 흔들어대는 핸드폰의 액정을 확인하더니 제헌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받아요.”
다시금 침대로 돌아온 제헌이 여원에게 불쑥 핸드폰을 내밀었다. 여원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핸드폰을 건네받았다.
[하선준]
액정에 떠오른 이름을 확인하자 기분 좋게 열이 올라 있던 몸이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여원이 가장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두 사람이 의식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그림자가 보일 만큼 가까이 다가온 사람이기도 했다.
“제헌 씨…….”
무슨 뜻으로 지금 당장 전화를 받으라고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얼핏 냉담하게만 보이는 제헌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비릿한 흥미가 아주 희미하게 묻어났다. 재촉하듯이, 제헌이 다시 한번 턱 끝을 까딱였다.
“여보세요.”
―여원아, 나야, 선준이.
“……무슨 일이야?”
전화기 너머의 선준은 지금 저택에서 나란히 있는 두 사람을 볼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럼에도 본능적으로 긴장이 당겨졌다. 괜히 주변을 슥 돌아본 여원이 조심스럽게 입술을 뗐다.
―나 부탁할 게 하나 있어서.
“선준이 네가 나한테?”
한동안 잠잠하던 선준이 어쩐 일로 전화를 걸었나 했더니, 부탁이라니. 혹시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여원이 미간을 바짝 좁힐 때였다. 불쑥 침대 위로 올라온 제헌이 등 뒤에서 여원을 단단하게 끌어안았다.
“……!”
처음에는 통화에서 오는 긴장을 풀어주려고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여원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제헌은 여린 피부를 잘근잘근 깨물기 시작했다. 이윽고 유두를 쭉 늘이듯이 만지작거리는 손길에 깜짝 놀란 여원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대로 눈이 마주치자, 제헌이 입꼬리를 비뚤게 끌어 올렸다.
―주민센터에서 서류 좀 떼줄 수 있어?
“……갑자기 무슨 서류?”
―등본이랑 가족관계증명서 두 개면 돼.
대체 선준이 무슨 이유로 느닷없이 등본과 가족관계증명서를 찾나 싶었다. 하지만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여원은 모든 신경이 뒤에서 저를 바투 끌어안고 몸을 매만지는 제헌에게 바짝 곤두섰다. 제헌의 커다란 손바닥은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의도한 것처럼 여원의 맨살을 눅진눅진하게 문질렀다.
“아…… 그렇구나. 그럼 언제까지 필요한, 흣, 데?”
―여원아?
제헌이 유두를 살짝 뾰족하게 잡아당기자 저도 모르게 새된 소리가 터졌다. 선준이 의아하다는 듯 질문하자 심장이 철렁했다. 그럼에도 제헌은 계속해서 손바닥 전체로 여원의 유륜을 짓눌렀다. 몸이 움찔움찔 떨렸다.
“어, 얘기해. 듣고 있어…….”
힉, 짧게 숨을 삼킨 여원이 어깨를 움츠렸다. 바람 새듯이 웃는 소리와 함께 미지근한 숨결이 귓가를 간질였다. 대화에 완전히 집중할 수 없어 말끝이 자꾸 느릿느릿 늘어졌다. 여원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몸을 파르르 떨자 제헌은 흡족하게 웃었다.
―어차피 너 지금 서울에 있으니까 오늘 바로 떼줄 수 있지?
“아, 으응.”
―목소리가 왜 그렇게 미적지근해? 대답 좀 제대로 해봐.
“아, 흣, 알았어…….”
손아귀에 완전히 움켜쥔 먹잇감을 기분에 따라 맛보는 것처럼, 제헌이 길게 뻗은 여원의 목덜미를 잘근잘근 씹어댔다. 제헌에게 착실하게 길들어 예민해진 몸뚱이는 사소한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불쑥 치고 올라오려는 신음을 꾹꾹 참아내는 여원의 얼굴이 애처롭게 일그러졌다.
“힉!”
통화가 길어질수록 감당이 안 되겠다 싶어서, 빨리 끝내려 할 때였다. 어깻죽지와 목덜미 부근을 입술로 배회하며 페로몬을 잔뜩 묻히던 제헌이 급기야 여원의 얇은 핏줄이 돋아난 목덜미의 여린 살을 콱 깨물어버렸다. 찌릿한 통감에 등골에 쭈뼛한 소름이 돋았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야, 아무것도…….”
적나라한 신음을 흘리고는 얼굴이 새붉어진 여원이 핸드폰을 꽉 부여잡았다. 놀라고, 당황스럽고, 무섭기도 하고, 여러 감정이 뒤섞여 심장이 마구잡이로 쿵쾅거렸다.
―……오늘따라 왜 이상하게 굴고 그러냐.
“아, 하하…….”
다행히도 선준은 별다른 반응 없이 넘어갔다. 아무래도 평일 낮 시간이라서, 여원이 어떤 식으로든 제헌과 같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한번 빠듯하게 뛰어오르기 시작한 심장은 좀처럼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잘못된 일을 저지르고 있는 것만 같은 저릿한 죄책감으로 눈앞이 가뭇해졌다.
“알았어, 나 이만 끊을게.”
도망치듯이 전화를 끊은 여원이 하아, 눅진눅진한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짤막한 전화 통화를 마친 여원은 잔뜩 기진맥진해졌다. 눈을 뾰족하게 홉뜬 여원이 억울해 죽겠다는 듯 뾰로통한 얼굴로 제헌을 돌아보았다.
“아까, 일부러 그러신 거죠.”
매섭게 쏘아붙였다고 생각했는데, 제헌은 여전히 여유롭기만 한 얼굴이었다. 여원의 말을 부정하는 대신, 제헌은 너른 어깨를 가벼이 으쓱였다. 티끌 하나만큼의 잘못도 없는 듯 결백한 얼굴이 왠지 모르게 얄미웠다.
“진짜 나빴어요.”
“여원 씨한테 나쁜 놈 소리 들으니까 짜릿한데요.”
기꺼이 나쁜 놈이 되겠다고 선언한 제헌이 여원에게 질척하게 입 맞췄다. 입술을 집어삼킬 기세로 한참 빨아대는 제헌은 원하는 만큼 포식하는 육식 동물 같았다. 그대로 여원을 바짝 끌어안자, 짙어진 제헌의 페로몬에서 질투와 소유욕이 진득하게 묻어났다.
“그렇지만 제헌 씨, 이러다 혹시…… 선준이가 눈치채기라도 하면…….”
“그런 일이 없으라고 내가 일부러 선준이를 밖으로 내보낸 거잖아요?”
“제헌 씨가…… 일부러 내보내신 거라고요?”
제헌은 귓바퀴 바로 아래부터, 목덜미, 어깨에 이르기까지 방금 제가 여원의 몸에 남긴 흔적을 들여다봤다. 뽀얀 피부 위로 올라온 울긋불긋한 울혈과 이빨 자국이 얼룩덜룩한 살결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몰랐습니까? 처음부터 여원 씨랑 이러고 있고 싶어서 중국까지 보내버린 건데.”
“……제헌 씨, 그런 농담 이상해요.”
“농담이라뇨. 이 저택이 지금 왜 비어 있는지 생각해 봐요.”
여원이 주춤, 말을 더듬자 제헌이 픽 웃어버렸다. 짙게 가라앉은 소슬한 동공에는 질척한 욕정이 스며들어 있었다. 기분이 오싹해지는 와중에도 긴가민가했다.
“아…….”
물론 제헌의 태도는 충분히 진지했지만 이 상황이 처음부터 의도되었다는 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만약 그렇다면, 제헌은 대체 언제부터 자신을……?
“아니에요, 저 그냥 생각 안 할래요.”
여원이 고개를 파드득 가로젓자, 제헌이 여원의 마음을 다 알겠다는 듯 눈을 부드럽게 휘어 보였다. 여원은 애써 모른 척, 제헌의 너르고 탄탄한 품 안에 제 몸을 기댔다.
처음부터 제헌이 짜놓은 판이고, 덫에 걸려든 것이라고 해도 좋았다. 속박 속에서 안락을 느끼는 것이 나쁘기만 한가? 그 안이 이렇게 안온하다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눈을 내리감고만 싶었다. 제헌은 여원을 여지없이 매료시키는 근사한 족쇄였다.
* * *
선준의 귀국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1초가 지나는 것도 아까웠지만, 회사에서 전화를 받은 제헌은 급하게 서울로 향해야 했다. 광활한 저택에 홀로 남겨진 여원은 창틀에 기대앉아, 언제쯤 제헌이 돌아오려나 밖을 내다보며 늘씬한 종아리를 달랑거렸다.
오후를 내내 혼자서 보내자, 붕 떠오른 상태로 부유하던 일상이 단박에 거칠게 바닥으로 내리꽂히는 것만 같았다. 서로를 탐하고 탐해지는 것만으로 가득했던 시간에는 빈틈이 없어 상념이 섞여들 새도 없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멎어버린 공백에 다다르자, 새롭게 생겨난 구멍으로 불안감과 죄책감이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물론 후회하지 않았다. 여원은 제헌을 욕망했고, 선준은 여원의 인생에서 수거되어야 할 악질의 쓰레기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제헌은 남편인 선준의 형이기도 했다. 선준이 자리를 비운 사이 두 사람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짐승처럼 붙어먹었다는 사실을 누군가 알게 된다면, 과연 완전히 떳떳할 수 있을지 여원은 확신할 수 없었다.
비틀린 욕망을 가감 없이 쏟아붓는 섹스는 과거의 여원으로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아찔한 해방감을 느꼈지만, 시간이 지나자 부도덕하게 타락했다는 죄책감 역시 스멀스멀 번졌다.
나중에 제헌에게 버려지면 어떡하지?
앞으로 이어질 관계에 대한 불안감 역시 자연스레 솟아올랐다. 제헌은 여원을 향해 진득한 소유욕과 집착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최근에는 희미하게나마 질투심마저 드러냈다. 그렇지만 선준이 돌아온 다음의 미래에 대해서만큼은 말을 아끼고 있었다.
정말로 제헌이 처음부터 자신을 사로잡기 위한 덫을 놓고, 여원은 그곳에 보기 좋게 걸려들어 버리고 만 것이라면…….
그렇다면 여원은 제헌이 최초에 놓은 덫의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단순히 흥미 본위로 섹스하는 것만을 원했기에, 선준이 돌아온 후에는 무책임하게 돌아선다면 너무나도 비참해질 것만 같았다.
저택의 주인인 제헌은 우성 알파 중에서도 손꼽히는 재력가이자 권력의 소유자였다. 한편 제헌의 손을 놓친다면 다시금 이방인이 되고 말 여원은 가진 것 하나 없는 열성 오메가였다. 제헌은 어떤 상황에서든 결코 흠집 나지 않을 사람이었지만 여원은 그렇지 않았다. 욕망에 경도된 선택을 했다는 건 같았지만 행동의 결과로 두 사람이 치러야 할 대가는 판이하게 달랐다.
엉엉 울고 싶은 것도 아니고, 심장이 요란하게 뛰거나 시큰거리지도 않았다. 다만 마음 한편이 무시하지 못할 수준으로 저릿하고 욱신거리기는 했다. 펄떡이는 불안을 으스러질 듯이 끌어안은 여원이 몸을 작게 웅크렸다. 뜨끈뜨끈하게 달아오른 눈두덩이를 꾹꾹 눌러대자, 발치에 다가온 통키가 위로하듯 동그란 머리통을 비비적거렸다.
“오셨어요?”
저녁 시간이 조금 지나 제헌이 돌아왔을 즈음에는 스스로를 갉아먹는 생각들로 마음이 온통 너절해진 이후였다. 여원은 갈피를 못 잡고 흐트러진 얼굴로 제헌을 맥없이 올려다봤다. 그를 마주하자 벅차면서도 초라해지는, 복잡다단한 감정이 혼란스럽게 얽혀들었다.
“우리 여원이가 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
여원을 가만 내려다보던 제헌이 다정하기 이를 데 없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안심시키려는 듯 부드럽게 웃어 보이는 얼굴에 심장이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감당이 안 될까 봐 애써 꾹꾹 눌러놓았던 감정이 뚫린 댐처럼 폭발하면서 시큰한 서러움이 몰려들었다.
“제헌 씨…….”
다만 여원은 지금 자신이 느끼는 혼란을 제헌이 명료하게 정의해 줬으면 했다. 불온한 흥분도 낯선 쾌감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해주고, 앞으로도 모든 것이 꼭 지금과 같을 것이라고 이끌어주었으면 했다.
“네, 여원 씨.”
“선준이가 돌아오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러나 원하는 것을 직접 말하지 않으면서, 제헌이 그것을 알아차려 주기만을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젖 먹던 힘까지 겨우 용기를 낸 여원이 제헌이 학습시킨 대로 의사를 표현했다.
“저는…… 흐, 저는 앞으로도, 제헌 씨랑 이렇게 같이 있고 싶어요.”
사실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이라면 ‘태어나서 제헌 씨처럼 좋아해 본 사람이 없었어요’, 내지는 ‘그러니까 제발 저를 버리지 말아주세요’에 더 가까웠지만, 그런 말들은 차마 제헌에게 꺼낼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거절당한다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해질까, 겁이 나서였다.
“그게 불안했어요?”
제헌이 나직하게 물어오자 여원이 고개를 빠르게 끄덕거렸다. 달싹이는 숨을 간신히 내뱉는 얼굴이 애처롭게 일그러졌다.
“흠.”
대답을 내어주기에 앞서 제헌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아이 달래는 듯한 너그러운 얼굴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서늘하고 냉철한 무표정이 나타났다. 그가 이성적인 태도로 상황을 따져 보고 판단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여원 씨에게 최선이 무엇인지를 늘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질문에 대한 답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우회적인 답변이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싶어 아득한 숨이 터져 나왔다. 표정 변화를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 제헌의 얼굴이 의뭉스럽게만 보였다.
“많은 걸 말해주고 싶지만, 아직은 그럴 수 없는 걸 이해해 줘요.”
“…….”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여원 씨가 걱정할 만한 일은 없을 겁니다.”
여원을 달래주는 것도 없이, 제헌은 단호하게 딱 잘라서 이야기했다. 그 이상은 여원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다는 확고한 뜻이 전해졌다.
“네에. 알겠어요.”
제헌의 속내는 언제나 그 밑바닥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혼탁하게만 보였다. 어떻게든 그 색을 파악하기 위해, 미간을 잔뜩 좁힌 여원이 제헌을 읽어내 보려 애썼다. 지금 이상으로 더 따지고 캐묻고. 요구하고, 정 안되면 어리광쟁이처럼 떼쓰고도 싶었지만 단호하기만 한 얼굴을 보면 말을 목구멍 안으로 꿀꺽 삼키게 됐다.
“……하아.”
자신의 눈앞에 있는 그가 실망스럽거나, 의심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여원이 마음 깊이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사실은 누구보다 더 간절히 믿고 싶었다.
“제헌 씨.”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제헌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자꾸만 불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제헌은 언제라도 여원에게서 아스라이 멀어질 것처럼 손에 완전히 쥐어지지 않는 사람 같았다. 돌연 서글퍼지는 마음으로 그를 하염없이 바라보자, 심장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흐으…….”
지금까지는 그 비슷한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상대를 가지는 것은 동등한 자격에서나 할 수 있는 일이기에, 감히 제게 그럴 자격이나 있나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확실해졌다. 언제나 제게만 꼭 붙어 있을 수 있도록, 여원은 제헌을 완전하게 소유하고 싶었다.
아릿한 깨달음과 함께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한 발짝, 제헌에게 다가간 여원이 그의 두툼한 목을 바투 끌어안고 키스했다. 여원이 전에 없이 적극적으로 안겨들자, 제헌은 놀란 듯한 눈을 하면서도 빳빳하게 긴장한 여원의 등줄기를 부드럽게 다독여주었다.
질척한 입맞춤을 끝낸 여원은 제법 경건한 표정으로 제헌의 옷을 직접 벗겨냈다. 완전히 드러난 맨몸이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애틋하고 먹먹해지는 마음으로, 탄탄한 가슴팍 위로 뜨끈하게 달아오른 입술을 낙인처럼 찍었다.
제헌은 여원을 통제하고 지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보호해 주고 애정을 들이부어 주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완벽한 권위를 지켜온 그를 하염없이 숭배하고 싶다가도, 이렇게까지 근사한 남자가 자신을 절대 떠날 수 없도록 그를 제 옆에 단단히 묶어두고 싶기도 했다.
“여원 씨.”
“네, 네에.”
“오늘은 여원 씨가 위로 올라올래요?”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여원이 제헌의 위로 올라탔다. 손을 길게 뻗은 제헌이 여원의 바지와 속옷을 살짝 아래로 끌어 내리고, 벌어진 틈을 능숙하게 매만졌다. 꺼끌꺼끌한 손바닥으로 몇 번 쓸어내리자, 감정적으로 고조되어 있던 몸이 금세 민감하게 달아올랐다.
“흣, 으읏.”
여원이 흘린 애액으로 골이 금세 미끌미끌해지고, 단단한 손끝이 척척하게 젖어들었다. 한층 짙어진 제헌의 눈이 여원을 탐욕스럽게 훑어내렸다. 커다란 손으로 밑동을 몇 번 가볍게 쳐올리자, 불뚝 솟아오른 성기가 여원의 허벅지 부근을 쿡쿡 찔렀다.
“여원 씨가 직접 해보세요.”
제헌의 요구를 따르기에 급급해서, 지금까지는 섹스 도중 여원이 적극적으로 무언갈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오늘만은 달랐다.
“아, 흑, 네에.”
여원의 자그마한 손이 꼿꼿하게 일어선 성기를 간신히 부여잡았다. 촉촉해진 입구에 딱딱한 귀두를 맞춰보기 위해 끙끙댔다. 쿡쿡 찌르는 성기를 엉덩이 사이로 미끄러트리다가, 안쪽으로 밀어 넣으려 애썼다.
두툼하고 단단한 성기의 감촉은 익숙했지만, 혼자서 해보려니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제헌의 성기 위로 입구를 비벼대는 여원의 얼굴에 발갛게 열이 올랐다. 아무래도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았다.
“아흑…….”
무언가를 결심한 여원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허리에 힘을 단단히 주고, 뻣뻣하게 치솟은 성기를 입구에 겨냥해 위에서 아래로 푹 내려앉았다.
순간적으로 구멍이 확 벌어지면서, 묵직한 성기가 안으로 푹 밀려들었다. 갑작스럽게 안쪽을 차지하는 부피감에 화들짝 놀란 여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아래를 흘긋 내려다보자 아직도 들어올 것이 한참은 남아 있었다.
“앗, 흐응, 응.”
눈이 마주친 제헌에게 도와달라는 듯 애처로운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제헌은 계속해 보라는 듯 여원의 골반께를 툭툭 두드릴 뿐이었다. 머릿속이 아득해진 여원이 길게 심호흡했다. 의식적으로 아래를 이완시키고, 제헌의 하반신에 바짝 맞붙은 아래를 느릿하게 흔들어댔다.
“잘했어요.”
뻑뻑했던 구멍이 조금씩 벌어지면서, 제헌의 성기를 슬금슬금 씹어 삼켰다. 비로소 기둥 끝까지 안으로 받아들이자, 억세고 구불구불한 털이 여린 볼깃살 위로 거칠게 문질러졌다. 그와 동시에 볼록해진 아랫배를 타고 저릿한 기운이 사아악 퍼졌다.
“흑, 으윽…… 제헌 씨…….”
맞닿은 아래에서 들끓어 오르는 욕망이 온몸으로 전이되어 거칠게 맥동했다. 한계까지 성기를 받아들이느라 팽팽하게 벌어진 주름이 민망할 지경으로 벌름거렸다. 여원이 발그스름하게 달아오른 얼굴을 가리려 들자, 제헌이 여원의 손을 겹쳐 잡아 얼굴 대신 성기 윤곽이 선명하게 도드라진 아랫배를 매만지게 했다.
“여기 끝까지 가득 들어왔네.”
“흣, 으응…… 네, 흐, 맞아요.”
“원래부터 내 좆 받으려고 태어난 것처럼 크기가 딱 맞춤이지 않아요?”
흘긋, 아랫배 부근을 내려다보자 적나라한 광경이 눈에 들어와 온몸에 열이 잔뜩 올랐다. 여원은 지금 이 순간 제헌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모든 감각으로 느꼈다. 그래도 이렇게 이어져 있는 동안에는, 자신이 그를 한가득 품고 있고 그럼으로써 소유하는 기분이 들었다.
반쯤 흐느끼는 듯한 신음을 흘린 여원이 제헌의 목덜미를 푹 끌어안았다. 평소처럼 너절한 쾌감으로 황홀해하기보다는, 절박한 감정으로 눈앞의 상대에게 매달리게 되었다.
“아, 흑, 응…… 좋아.”
“하아…….”
제헌의 위에 올라탄 여원이 허리를 들썩이기 시작하자, 살성이 유난히 다른 피부가 거칠게 부딪치면서 철썩철썩 차진 소리를 냈다. 제헌을 깊숙이 품고 싶어서, 그렇게 감각으로 그를 온통 기억하고 싶어서, 그를 가장 생생하게 느끼기 위해 성기가 극점에 닿도록 아래를 찍어 올렸다.
“제헌 씨, 너무, 흐으, 으, 좋아요.”
“하아…….”
“흑…… 좋아해요.”
제헌은 입술을 꼭 깨문 채 허리를 살뜰하게 움직이는 여원의 몸 곳곳을 쓸어내렸다.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허리께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면 허벅지 안쪽 살이 움찔움찔 떨렸다. 찰랑거리는 볼깃살이 밀가루 반죽처럼 찰박거리며 손바닥에 감겨들기도 했다.
“제허, 흑, 제헌 씨…….”
살짝 접혀든 여원의 눈매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야트막하게 휘어진 가슴팍 위로 불그스름해진 유두가 꼿꼿하게 달아올랐다. 열이 오르는 유륜 주변이 화끈하게 간질거렸다.
“하…….”
돌연 허리를 크게 굽힌 제헌이 몸을 반쯤 일으키고, 여원에게 달려들다시피 해 유두에 혀를 가져다 댔다. 딱딱한 이가 유두를 살짝 스치더니 그대로 제헌의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곤두선 유두를 부드럽게 혀로 굴린 제헌은 빳빳해진 유륜까지 금세 거세게 빨아 삼켰다.
“으, 하응, 아앙.”
뭉클하고 축축한 혀는 계속해서 뾰족하게 돋아오른 유두를 집요하게 핥아 내렸다. 거친 전율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고 사지의 말단까지 속절없이 저릿해졌다. 여원이 엉망으로 헐떡거리면서 고개를 제대로 가누지 못하자, 제헌은 갑자기 유두를 잘근잘근 씹어댔다.
그러면서도 한번 가속이 붙은 움직임을 멈출 수 없어서, 여원은 계속해서 허리를 들썩들썩 흔들었다. 성기를 물고 있는 구멍에서는 질척하게 젖은 소리가 울렸고 입 안에는 금방에라도 흘러내릴 듯 침이 고였다.
“토, 통키야!”
그때, 샛노란 눈동자를 번뜩이는 검은 고양이와 눈이 마주치자 여원은 몸이 죄 얼어붙었다. 심심했는지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통키가 두 사람이 맞붙어 섹스하고 있는 소파 발치에 서 있었다. 쾌감에 넋이 나가서 마구 허리를 흔들어대던 모습을 통키가 봐버렸다고 생각하자 아찔해졌다.
“아, 흑, 안 돼, 보지 마…….”
한동안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 같다는 도취감에 젖어들어 절제 없이 서로를 탐했다. 그러나 꿰뚫어 보는 듯한 눈동자를 맞닥뜨리자 아주 치명적인 잘못을 들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단박에 충격에 빠진 여원이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으며 버둥거렸다. 하지만 정작 통키는 놀라지도 않고, 달아나지도 않고 그 자리에 버텨선 채로 바짝 접붙어 있는 여원과 제헌을 빤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야, 흑, 저리 가.”
온몸을 감싸고 옭아매는 음산한 기운에 여원의 손에 땀이 고여들었다. 그건 일종의 본능이었다. 여원이 허둥거리면서 제헌의 몸에서 내려오려고 했다.
“어딜 가려고요.”
“흑, 제헌 씨…….”
혹시라도 제헌에게 버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를 소유하고 싶다는 집착으로 먼저 들러붙었다. 그럼에도 동시에 이 관계를 다른 누군가에게 들킬까 두려워서, 도망치고만 싶었다.
“그치만, 그치만 통키가 보고 있잖아요.”
고양이는 인간과 달라서 두 사람의 관계를 판단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렇게까지 패닉하는 스스로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여전히, 잘못된 것 같았다.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됐다.
“그래서요.”
위험하게 그르렁대는 거친 숨결이 터져 나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제 위에서 허리를 흔들던 여원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에게서 달아나려고 하자, 제헌이 노골적으로 불쾌해했다. 위태롭게 짙어진 페로몬이 여원을 빼곡하게 옭아매고, 꽉 내리누르는 위압감에 숨이 막힐 것만 같아 여원은 엉망으로 헐떡거렸다.
“하…….”
잠시만, 아주 잠시만이라도 떨어져야 했다. 차분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젖먹던 힘까지 다해 제헌에게서 벗어나려 했다. 쑥 하는 소리와 함께 성기가 빠져나가고, 몸에 힘이 죄 풀려버린 여원이 얕게 휘청거렸다.
“다른 사람한테 들키면 나한테서 도망이라도 갈 겁니까?”
“학, 흐윽, 으응…….”
“어떡하지. 나는 여원 씨를 그렇게 쉽게 놓아줄 생각이 없는데.”
제헌은 반쯤 기어가다시피 달아나려 하는 여원의 뒷덜미를 가뿐하게 잡아챘다. 상상 이상의 악력에 여원의 목덜미가 뻣뻣하게 당겨졌다. 제헌은 한 손만으로 손쉽게 여원을 다시금 제게로 끌어왔다. 몸을 바르작거리려던 찰나, 제헌의 거대한 상반신이 여원을 거세게 내리눌렀다.
“내 얼굴 봐요.”
제헌은 여전히 단단히 쥐고 있는 목덜미를 슬쩍 뒤로 잡아당겨 여원이 제게로 고개를 돌리게 했다. 제헌은 잔인하고 무자비한 포식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힉, 히익.”
동시에 제헌은 사냥감을 쫓는 육식 동물처럼 천진하고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평소에 제헌이 억누르고 있던 야만적인 정복욕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자 여원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하, 여원 씨를 해칠 것 같아요?”
“흑, 으윽. 아뇨…….”
“근데 왜.”
“그래도, 무서, 흑, 너무, 무서워요.”
여원의 동그란 뺨을 타고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나왔다. 여리고 연약하고 예쁜 존재가 잔뜩 겁에 질려 오들오들 떨고 있는 모습은 알파의 가학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허벅지 뒤로 닿는 제헌의 성기에 확 힘이 들어가더니, 이내 게걸스럽게 입술이 얽혀들었다. 질척하게 뒤엉키는 혀끝에서 짭조름한 눈물 맛이 묻어났다.
“내 말만 잘 들으면 앞으로는 다칠 일도 없습니다.”
그대로 얼굴을 죄 씹어먹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얼굴로, 제헌은 흠뻑 젖어든 눈물을 축축한 혀끝으로 핥아냈다. 허리를 단단히 추켜올린 그는 여원을 제 아래에 엎드리게 했다. 짐승과 같은 자세로 엉덩이를 들어 올리고, 정복자 앞에 치부를 완전히 드러냈다. 제헌이 눈앞에 들이밀어진 하얗고 봉긋한 살점을 양손으로 단단히 붙들었다.
“하, 흑,으응…….”
얼마 전까지 성기가 쑥쑥 드나들던 밀부에서는 여전히 애액이 왈칵거리고 있었다. 여원의 골반을 단단히 고정한 제헌이 크기를 한층 부풀린 성기를 박아넣었다. 다시 한번 제헌의 성기가 여원의 안쪽 아주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온몸의 혈관을 타고 흘러내리는 공포와 쾌감으로 뒤섞인 전율에 여원이 고개를 푹 떨구었다.
“하, 후으…….”
“으응, 하, 아앙, 앙!”
안을 쑤셔대는 성기는 실로 무자비했다. 위에서 아래로 누르듯이 여원의 안을 꽉꽉 채우며 큼직한 성기를 박아 넣었다. 높은 교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허용치를 넘어서는 감각에 사지를 마구 버둥거렸지만 별다른 소용이 없었다. 한계까지 벌어진 구멍뿐만이 아니라, 여원의 온몸이 제헌에게 제어당하고 속박당했다.
제헌이 스스로를 절제하지 않기로 결정한 순간 여원이 그의 아래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따금 바닥을 짚은 손이 하얘지도록 간신히 힘을 줄 뿐, 여원은 벌어진 구멍과 움츠러든 몸을 모조리 제헌에게 내어주어야 했다. 가차 없는 잠자리 상대 아래에 바짝 몸을 엎드려 복종한 여원이 몸을 파들거렸다.
“당장 내 손 안에 움켜쥐고 싶었는데 내내 참았습니다. 한번 시작하면 못 멈출 걸 알아서.”
“흐, 으응, 응…… 제헌 씨…….”
“여원 씨가 우는 모습은 가엾지만, 후으…… 그래도 놓아줄 순 없겠네요.”
뒤에서 제헌이 퍽퍽 골반뼈로 엉덩이를 찍으며 성기를 쳐올리는 내내, 흐물흐물하게 늘어진 다리가 제멋대로 흐트러졌다. 자꾸만 무너지는 여원의 다리를 제헌이 끌어 올리고 여원의 얇은 허리를 단단하게 감싸 안았다. 구멍에서는 미향이 도는 액이 꿀처럼 흘러넘쳤다.
집요한 자극이 아래에 끊임없이 가해지자 여원의 가슴팍이 위아래로 펄떡였다. 마찰을 거듭하는 사타구니가 화끈하게 달아오르고, 홧홧하게 달아오른 내벽이 꿀렁꿀렁 움츠러들었다. 다시금 고요히 터지기 시작한 눈물이 버티지 못하고 여원의 볼을 타고 주르륵 흘렀다.
“하, 아아앙.”
정말로 이상한 것은, 제헌이 무섭고 두렵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선준에게 억압당하는 것은 정말이지 끔찍했는데, 제헌이 이성을 잃고 자신에게 집착하자 왠지 모르게 고양되었다. 예속당하는 데서 오는 짜릿한 쾌감과 함께, 오싹한 공포는 성적인 흥분을 배가시켰다.
“제, 흑, 제헌 씨…….”
퍽퍽, 조금도 봐주지 않고 거세게 내리꽂히는 커다란 성기에 안쪽이 찢어질 것처럼 쓰라렸다. 적당히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이 쾌감을 도리어 고조시켰다. 격렬한 자극이 몰아치자 바짝 일어선 여원의 성기가 선액을 뚝뚝 흘려댔다. 이내, 건드리지도 않은 성기의 끝머리에서 꿀렁꿀렁 정액이 흘러나왔다.
“하, 여원 씨.”
그리고 마침내 절정에 달한 제헌의 성기가 처음으로 여원의 안에서 정액을 토해냈다. 뜨끈하고 끈적한 액체가 내벽 안을 폭포처럼 쓸어내렸다. 그 순간, 좁다란 구멍을 자연스럽게 차지한 채로 제헌의 성기가 그 크기를 또 한 번 불렸다. 노팅의 시작이었다.
“아, 흑, 하읏.”
“하, 하아.”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른 제헌의 성기가 여원의 안을 한계치 이상으로 집어 벌리고 단단하게 차지했다. 좀처럼 믿기지 않는 상황이어서, 고통마저 제대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흐, 흐으…….”
내내 파들거리며 소리 질렀던 탓에 이제는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여러 번 겹치듯 몰아치던 오르가슴에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채 달아올랐던 여원의 몸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비정상적으로 비대하게 부풀어 오른 제헌의 성기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없었다. 영겁과도 같이 이어지는 시간 동안, 제헌과 여원은 꼭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난 사람들인 것처럼 하나로 단단하게 결합해 있었다.
“아, 하아앙…….”
이윽고 성기를 쑥 뽑자 꽤 오랜 시간 벌어져 있던 여원의 구멍이 뻐금거렸다. 여원이 눈을 꼭 감았다가 떴다. 기다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오랜 결합으로 느슨하게 벌어진 구멍에서 제헌이 남긴 정액이 울컥 쏟아져 내렸다.
“하아…….”
입술을 반듯하게 다문 제헌이 여원을 느슨하게 내려다봤다. 진득하게 머무르는 제헌의 시선을 알아차린 여원이 무릎을 들썩이며 다리를 작게 오므렸다. 주르륵, 채 다물리지 않은 구멍에서 제헌의 정액이 다시 한번 새어 나왔다.
생명을 가지고 태동하는 듯한, 뜨끈하고 끈적한 정액이 다리의 선을 타고 미끌거렸다. 금방이라도 질퍽거리며 바닥으로 뚝 떨어질 것만 같았다. 생경하고 생생한 점액질의 감촉에 소스라친 여원의 밀빛 허벅지에 소름이 오스스 솟아올랐다.
“…….”
“…….”
내벽은 내내 욱신거렸고, 벌어진 구멍이 뻐끔거리며 공기를 안으로 집어삼켰다. 여전히 제가 처한 현실은 실감 나지 않았고, 노팅의 여파를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여원은 불균등한 호흡을 뱉어내며 등줄기를 위태롭게 들썩이다가, 끝내는 스르륵 눈을 감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