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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갈림길 (10/17)

9. 갈림길

불안한 예감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감기약을 잔뜩 먹었는데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애써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다시 잠에서 깨어났을 때 여원의 다리 사이는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내내 저조했던 컨디션의 원인이 히트 사이클이었구나, 깨닫자 눈앞이 깜깜해졌다.

임신한 후에는 자연스럽게 히트 사이클이 멎었고, 유산 이후에는 페로몬 체계가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여원은 오랫동안 히트 사이클의 감각을 잊고 지냈다. 하지만 주인이 모르는 사이 여원의 몸은 섹스에 적합해지고 임신이 가능하도록 다시 차곡차곡 변하고 있었다.

기습적으로 찾아온 히트 사이클로 인해 온몸이 발정열로 뜨거웠다. 질척하게 젖어든 입구가 뻐끔거리는 감각이 적나라했다.

결혼 이후로 히트 사이클이 없었던 탓에, 저택에 따로 보관하는 억제제가 있을 리 만무했다. 게다가 열성 오메가인 여원의 히트 사이클은 불규칙하고, 강도도 들쭉날쭉했다. 아직 환한 대낮인데, 언제 멎을 줄 알고. 이대로 버텨야 한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억제제를 구해달라고 해야 하는데……. 하지만 이미 정신이 혼곤해져서, 손끝에서는 힘이 스르륵 빠져나갔다. 눈앞이 흐릿해지면서 이런 모습을 제헌한테 들키면 어떡하지 덜컥 걱정부터 됐다.

그러는 와중에도 잔뜩 달아오르는 열기에 몸을 가누는 것이 어려워졌다. 아래가 꼿꼿하게 솟아오르고, 충족되지 않는 쾌감이 울컥울컥 치밀 때마다 허리가 거칠게 튕겼다. 후덥지근한 숨이 한가득 차오르는 가슴이 크게 들썩거렸다.

본능적으로 쾌락을 갈구하게 되는 감각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열감을 떨쳐내기 위해 여원이 몸을 크게 버둥거렸다. 그러면서도 질척하게 젖어든 아래에는 차마 손을 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푹 끌어 올린 여원이 입술을 꼭 깨물고 발정을 참아보려 끙끙댔다. 희미하게 핸드폰 진동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그를 인지할 겨를조차 이제는 없었다.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문이 확 열리는 소리에 여원이 무겁고 축축하게 가라앉은 눈을 간신히 떠올렸다.

“이런.”

상황을 설명할 필요도 없이, 발정기를 맞은 오메가 페로몬이 방 안에 노골적으로 진동했다. 몸이 나긋나긋하게 풀어져 침대 위에 널브러진 여원이 으응, 얕은 신음을 흘렸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제헌의 표정이 비릿하게 비틀렸다.

“…….”

열기가 흥건하게 공기를 잠식했다. 가까이 다가온 제헌이 동물적인 눈으로 여원을 훑어내렸다. 여원을 모호하게 자극하며 거리를 유지하던 평소와 대조적으로, 굶주린 듯한 얼굴에서 날카로운 욕망이 번뜩거렸다.

“제헌, 흑, 제헌 씨…….”

완연하게 무르익은 우성 알파의 얼굴이 점차 선명하게 도드라졌다. 아침에는 간신히 붙들고 있던 실낱같은 이성은 이미 증발해 버린 지 오래였다. 지금 이 순간 고통스러울 만치 치미는 갈증은, 눈앞의 알파가 해소해 줄 수 있었다.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젖은 입술이 달싹거리자, 농염한 오메가 페로몬이 왈칵 터뜨려졌다. 눈매가 잔뜩 붉어진 여원이 엉망으로 헐떡거리며 제헌에게 도움을 청했다. 스스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잔뜩 연약해진 채로 제헌을 갈구했다.

“여원 씨.”

정욕에 젖어든 제헌의 동공이 혼탁하게 흐려졌다. 훅, 불균등한 숨을 내뱉고는 제헌이 거칠게 슈트 재킷을 벗어젖혔다. 두툼한 가슴과 팔뚝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제헌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저벅저벅 여원의 침대로 걸어왔다.

“흣, 으읍…….”

낭창한 몸은 제헌이 만지는 대로 부드럽게 휘어졌다. 늘씬한 등허리를 받쳐 든 제헌이 헐떡거리는 여원을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눈물이 함빡 고인 커다란 눈망울이 제헌만을 오롯이 담아냈다.

“하아…… 읏.”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 제헌은 여원에게 키스부터 퍼부어댔다. 사실은 그것이 히트 사이클 해결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데도. 까슬한 혀끝이 입 안을 가득 메우며 거침없이 휘감아 내렸다. 마침내 온전하게 맞물리게 된 입맞춤은 이제껏 이 순간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려왔던 것처럼 격렬했다.

“흐, 으으…….”

혀끝이 어지러이 뒤엉키며 타액이 질척하게 얽혀들었다. 입 안이 얼얼해지도록 헤집어지고, 숨이 금세 모자라졌다. 빈틈없이 여원을 몰아치는 키스는 그만큼 압도적이었다. 입술이 닿자 시원한 기분에 잠깐 살 것 같다가도, 오히려 완전히 해갈되지 못한 욕망이 더욱 강하게 고조되었다.

고개를 맥없이 까딱이던 여원은 반사적으로 제헌의 목덜미를 껴안았다. 그동안 꾹꾹 억눌러왔던 것들이 터뜨려지듯, 여원의 뺨을 타고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제헌은 흡족한 얼굴로 제게 안기는 여원의 머리를 부드럽게 감쌌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결국 이렇게 그에게 절박하게 매달릴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아응, 흣…… 으, 제헌 씨…….”

진득하게 이어지던 키스 끝에 입술을 느릿느릿 떼어냈다. 제헌의 눈동자가 위험하게 번들거렸다. 제헌은 거침없이 여원의 옷을 벗겼다. 땀에 젖어 피부에 착 달라붙어 있던 얇은 옷가지가 사락사락 떨어져 내리고, 매끈하고 부드러운 피부가 새하얗게 드러났다.

“아, 흑, 어떡해…….”

서늘한 손가락이 열이 오른 피부를 스칠 때마다 치미는 선뜩한 기분에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오스스 솟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원은 푹 무르익은 맨몸을 제헌의 앞에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하…….”

무방비하게 널브러진 하얀 몸을 집요하게 살피는 눈동자가 들끓었다. 이어 완전히 개방된 페로몬이 여원의 벗은 몸에 빈틈없이 들러붙었다. 이따금 스치듯이 지나가던 섹슈얼함과는 차원이 달랐다. 낯뜨거울 수준의 노골적인 정욕으로 가득해진 페로몬이 여원을 빼곡하게 에워쌌다.

제헌의 손이 자연스럽게 흥건하게 젖어든 여원의 다리 사이로 향했다. 머릿속이 온통 먹먹한데도, 지금부터는 정말 돌이킬 수 없어진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안, 흑, 거기 만지시면 흣, 안 돼요.”

더듬더듬 움직이던 손이 제헌의 팔목을 어설프게 틀어쥐었다. 본격적으로 접어들던 찰나 움직임에 제지를 당한 제헌의 입매가 불만족스럽게 비틀렸다.

“지금 이러는 거, 히트 사이클 때문이니까.”

“…….”

“여원 씨 잘못 아니잖아요, 그렇죠?”

당장이라도 몰아붙일 듯 열기 어린 눈을 하고 있으면서도, 제헌은 욕망을 간신히 억누르고 여원을 구슬렸다. 좀처럼 평정을 잃는 법이 없던 근사한 우성 알파의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어렸다.

“아…….”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채, 여원이 달싹이는 숨을 몰아쉬었다. 맹렬하게 뒤덮어오는 알파 페로몬에 착실하게 반응하는 아래가 또 한 번 왈칵 액을 토해냈다.

달착지근하게 무르익은 향이 공기 중에 확 퍼졌다. 짧은 숨을 내뱉은 제헌이 여원의 말랑한 목덜미를 거칠게 잡아챘다. 다시 한번 여원에게 키스를 퍼부어대는 제헌의 눈동자가 위험하게 번뜩였다. 음습한 정욕에 휩싸인 얼굴이 낯선 색을 띠었다.

매 순간 냉정하고 이성적이었던 알파는 히트 사이클의 절정에 오른 오메가의 농염한 페로몬에 자제력을 상실했다. 혹은, 이성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핑계로 숨겨왔던 본능을 완전히 개방해 버린 것 같기도 했다.

“다리 벌리세요.”

실오라기 하나 없이 발가벗은 몸을 품에 한가득 끌어안은 제헌이 낮게 속삭였다. 거침없이 흘러드는 알파 페로몬에 정신이 혼미해진 여원이 고개를 맥없이 끄덕거렸다.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던 다리가 느슨하게 벌어지고, 촉촉하게 젖어든 뽀얀 사타구니가 드러났다.

“흣…….”

커다란 손바닥이 보드라운 엉덩이 살을 꽉 움켜쥐자, 흠칫 놀란 여원이 제헌의 단단한 가슴팍에 몸을 바짝 기댔다. 길쭉한 손가락이 그대로 젖은 입구를 푹 파고들었다.

“아, 으읏…….”

이미 아래가 푹 젖어 있어서 금방이라도 쑥 집어삼킬 것만 같았지만, 오랫동안 섹스를 하지 않은 내벽은 잔뜩 긴장한 채로 좁게 오므라들어 있었다. 이를 악문 제헌이 미간을 좁히고 손가락을 하나씩 더 밀어 넣었다. 속살이 조금씩 벌어지긴 했지만, 고작 손가락 세 개가 들어온 것만으로도 안이 꽉 차는 것만 같았다.

“아, 흑, 아응…….”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안쪽이 생각 이상으로 아프고 빡빡하게 조여들었다. 함빡 여문 여원의 몸은 잔뜩 달아 있었지만, 조붓한 입구는 아직 알파의 성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지나치게 경직된 채로, 좀처럼 풀어지지 않는 내벽에 제헌의 미간이 좁혀들었다.

마디가 불거진 손가락이 주륵 빨려 나가자, 금세 원래대로 조밀하게 다물린 구멍이 애처롭게 뻐끔거렸다. 단박에 여원의 몸을 뒤집어 침대 위에 납작 엎드리게 했다. 그러곤 목 뒷부분의 여린 살갗을 내리눌렀다.

“제헌 씨, 제헌 씨…….”

“응, 가만히.”

허리를 부드럽게 추켜올리는 손길에 여원은 침대 위에 무릎을 꿇은 채로 둔부를 높이 들어 올렸다. 가는 허리가 잘록하게 패고, 봉긋하게 솟은 엉덩이 사이로 촉촉한 구멍이 드러났다. 써늘한 공기에 노출된 주름진 입구가 벌름거릴 때마다, 빨갛게 달아오른 속살이 빼꼼히 드러났다. 부드러운 능선을 그리는 뒷모습을 고집스레 훑어내리던 제헌이 하, 야트막한 숨을 몰아쉬었다.

“아, 응, 흐읏…….”

적나라한 자세에 수치심을 느낄 새도 없이, 흥분한 알파 페로몬이 열기와 뒤섞여 공기에 가득 차올랐다. 몽롱하게 젖어들어 눈을 깜빡거리자, 이번에는 손가락 세 개가 한꺼번에 안으로 치고 들어왔다. 콱콱, 거칠게 박아댈 때마다 안쪽에 고여 있던 액이 허벅지를 타고 줄줄 흘러내리는 감촉이 선연했다.

여전히 안쪽은 빼곡하게 조여 물었지만, 자세 탓에 이번에는 손가락이 한층 수월하게 밀려들었다. 능숙하게 안을 매만지던 제헌은 금세 여원이 가장 잘 느끼는 곳을 찾아냈다. 절벅절벅 안쪽을 둔탁하게 드나들던 제헌의 손가락이 녹진하게 풀리기 시작한 내벽을 교묘하게 자극했다.

“흣, 으…… 으응…….”

이런 식으로 극점만을 집중적으로 공략당해 본 적은 처음이었다. 푹, 푹, 거세게 안을 쑤셔대는 손가락이 내벽을 거침없이 넓혔다. 알파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성기를 밀어 넣을 공간을 마련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이어질 행동이 연상되어서, 여원은 더욱 애끓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등허리에 땀이 송골송골 고였다. 어느새 여원의 성기도 꼿꼿하게 일어서 벌어진 다리 사이에서 덜렁덜렁 흔들리고 있었다. 손가락을 꽉 조여 문 입구 틈새로는 투명한 액이 질금질금 새어 나왔다.

예민한 곳에 뭉근한 자극은 이어졌지만, 결코 절정까지 다다르지 못하니 딱 미칠 지경이었다. 이대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여원은 알파의 성기가 거칠게 파고들고, 안쪽을 가차 없이 짓이겨주기를 바랐다. 그래야만 지금의 갈급한 욕정이 해소될 것 같았다.

“하, 흑…… 제헌 씨…….”

흠뻑 젖어 있던 내벽은 느끼는 곳이 연거푸 자극되자 흐물흐물하게 풀어져 내렸다. 손가락이 뒤로 빠질라치면 말랑말랑한 속살이 쫀득하게 달라붙어 왔다. 이보다 더한 것을 달라는 듯, 구멍 주변의 촉촉한 주름이 벌름거리며 호흡했다. 안타까운 기분에 발등이 동그랗게 굽어들고, 목을 길게 젖힌 여원은 흐느끼는 듯한 신음을 흘렸다.

“제, 흐, 제헌 씨…….”

“내 거 넣어주면 잘 받아먹을 수 있겠어요?”

“네, 흐, 네.”

여원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거리자, 제헌이 안쪽을 묵직하게 자극하던 손가락을 한꺼번에 홱 뽑아냈다. 순간적으로 뻐끔하게 벌어진 입구에서 후드득 애액이 쏟아졌다. 투둑, 투명한 물방울이 침대 시트 위로 튀어 올라 여원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아흑…….”

측측, 등 뒤로 지퍼를 풀어 내리는 마찰음이 들렸다. 둔부에 닿아오는 성기의 묵직한 부피감이 적나라했다. 흥분을 여실히 드러내는, 두툼하고 길쭉한 성기가 보드라운 엉덩이 사이로 슥슥 거칠게 문질러졌다.

뭉툭한 귀두가 엉덩이 골을 타고 미끄러지며 조밀한 주름 위를 집요하게 문질렀다. 딱딱한 성기 끝이 말랑말랑하게 풀어진 입구를 쿡쿡 찔렀다. 이대로 언제 안을 파고들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에 무릎 뒤쪽의 여린 살이 빳빳하게 당겨졌다.

“아, 하윽…….”

팽팽한 긴장으로 잔뜩 몸을 낮추고 있을 때였다. 오므라든 구멍을 벌리고 큼직한 성기가 퍽, 밀려들었다.

“흣, 힉…….”

뜨끈한 살덩이가 삽시간에 안을 가득 차지하자 눈앞이 새하얘졌다. 제헌의 성기를 안에 품은 것만으로 가벼운 오르가슴에 오른 여원이 숨을 가쁘게 할딱거렸다.

“여원 씨는 원래, 후…….”

“아, 으응, 응…….”

“뒤로 받기만 해도, 하, 이렇게 좋아합니까?”

배 속을 두드리는 성기는 끊임없이 안으로, 안으로 밀려들었다. 목 끝까지 차오르는 이물감에 고개가 절로 뒤로 꺾였다. 제헌이 흘리는 나른한 신음과 함께, 꺼슬꺼슬한 음모가 둔부에 문질러졌다. 무엇을 연상했는지, 좆을 한가득 물고 자지러지는 여원을 보고 제헌의 입매가 불만족스럽게 비틀렸다.

“아니, 흑, 으…….”

여원으로서는 꽤나 억울한 일이었다. 히트 사이클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제헌의 성기를 받아먹은 몸이 지나치리만큼 빠른 속도로 예민하게 달아올랐다. 제헌의 성기가 안쪽을 짓이기듯이 문지를 때마다 다리가 엉망으로 후들거렸다. 한바탕 크게 휩쓸고 간 쾌감의 여파로 잘록한 허리가 잘게 떨어댔다.

“하, 후으…….”

절박해진 여원이 무엇에라도 기대보려 알파 페로몬을 흠뻑 빨아당겼다. 그때, 여원의 골반을 단단히 틀어쥔 제헌이 쿵, 여린 안쪽으로 밀고 들어왔다. 내벽이 쩍 갈라지며 깊숙이 파고든 귀두가 전립선을 찔렀다. 힉, 잇새로 새된 소리를 내뱉은 여원이 잘게 소스라쳤다.

“아, 흐, 으…….”

굵직한 성기가 안을 뜨겁게 무두질했다. 딱딱한 끝이 녹진녹진해진 극점을 긁어내리면, 흐물흐물해진 내벽이 빠듯하게 기둥에 달라붙었다. 말캉한 안이 본능적으로 좆을 조였다가 풀기를 반복하자 뒤쪽에 있는 제헌의 숨이 거칠어졌다. 한층 거세진 허릿짓이 안쪽을 곤죽으로 만들어버릴 기세였다.

“하, 여원 씨.”

“흣, 으응, 으읏…….”

뜨끈하게 차오르는 쾌감으로 눈앞이 흐려졌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은, 성기가 빈틈없이 맞물리자 완전히 증발해 버렸다. 섹스의 향락에 정신이 너절하도록 혼미해졌다.

모든 것이 지금까지 알았던 섹스와는 전혀 달랐다. 전에 겪어본 적 없는 감각의 해일이 온몸을 휩쓸어 내렸다. 아니,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섹스보다는 차라리 짐승의 교접에 더욱 가까웠다. 하지만 이미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었다.

“아, 흑…….”

버겁도록 몰아치는 쾌감에 어느새 여원은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흐늘흐늘해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데도, 하제헌이라는 남자와 지저분하리만치 얽혀들고 싶은 욕망만은 도리어 선명해졌다. 오랜 시간 억눌러두었던 감정과 성욕이 중첩되자 열띤 흥분이 머릿속에서 폭죽처럼 펑펑 터졌다.

“앙, 흑, 하앗…….”

어느새 꼿꼿하게 솟아오른 여원의 성기에도 몽글몽글한 선액이 매달려 있었다. 얕게 절정에 오른 몸은 불뚝거리는 성기를 머금고 한층 예민해졌다. 처음에는 신음을 애써 참아보려고 했지만, 이제는 그조차 불가능해졌다.

입이 헤벌어진 여원은 엉망으로 신음을 흘려댔다. 봇물 터지듯이 쏟아지는 흐느낌과 함께 마지막으로 붙들고 있던 저지선도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해갈되지 않던 갈망이 비로소 터뜨려지는 순간 아찔한 쾌감이 전신을 타고 흘렀다.

“아흑…….”

직접 건드려진 적 없었던 여원의 성기가 말간 정액을 꿀렁꿀렁 토해냈다. 저릿한 쾌감의 여진으로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 욕망만을 좇게 된 몸이 이상하고, 무서웠다. 그런데 그게 너무 좋았다.

“제헌, 흐, 으…… 제헌 씨.”

눈이 엉망으로 풀린 여원이 목덜미를 뒤로 길게 젖혔다. 지금 자세로는 제헌이 보이지 않아서, 그가 어떤 상태인지 좀처럼 짐작할 수 없었다. 막연한 두려움마저도 흥분을 배가시키는 기폭제로 작용했지만, 문득 여원은 지금 그의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하…….”

좀처럼 똑바로 가누어지지 않는 고개에 겨우 힘을 주어 제헌을 돌아봤다. 스치듯 시선이 맞물리자 이를 악문 제헌이 더욱 깊숙이 여원의 안으로 성기를 밀어 넣었다. 찌르는 듯한 시선이 좆을 받아내며 온몸을 부르르 떠는 여원을 긴밀하게 훑어내렸다.

“네.”

제헌이 한발 늦은 대답을 내어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잠겨서 살짝 갈라졌다. 애써 억누르려 했지만 지극한 흥분의 기색이 역력하게 묻어났다.

“흐, 으…….”

미지근한 손바닥이 여원의 눈 밑에 고여든 눈물을 훑어내자, 또렷해진 시야로 정욕으로 나른하게 젖은 제헌의 얼굴이 드러났다. 늘 냉랭했던 제헌이 정사 도중 흥분해 흐트러진 것을 보자, 여원은 등골이 오싹하도록 황홀해졌다. 그가 자신으로 인해 쾌감을 느낀다는 사실에 지독하리만치 고양되었다.

길쭉한 손가락이 머리칼 사이로 부드럽게 밀려들더니, 여원의 머리통을 감싸 쥐어 살짝 당겼다. 강한 손아귀 힘에 두피가 뻣뻣하게 당겨지자 찌릿한 감각이 일었다. 까만 눈동자에 날카로운 이채가 도는 제헌과 눈이 마주치자, 흐물흐물 풀어져 내리던 여원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앗, 응, 흐응……. 제헌, 흣, 씨!”

성기를 삽입한 채로 몸을 길게 굽힌 제헌이 여원의 귓바퀴를 콱 깨물었다. 끄트머리만 씹히는 살갗에 따끔따끔한 감각이 번졌다. 땀에 살짝 젖은 탄탄한 가슴팍이 적당한 압박감과 함께 동그란 등을 짓눌렀다. 지금은 겨우 귓바퀴 정도였지만, 마음만 먹으면 제헌은 여원을 이대로 통째로 집어삼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아…….”

귓가에 낮게 뱉어진 제헌의 숨결에서 동물적인 포만감이 묻어났다. 더운 숨결이 예민한 귓가에 뭉글뭉글 퍼지자 여원의 등줄기가 바르르 떨렸다. 아슬아슬하게 손끝을 스쳐 나가는 쾌락에 여원은 어찌할 바를 모르며 속눈썹만 깜빡거렸다.

“제헌 씨.”

“하…….”

“얼굴, 흑, 얼굴 보여주세요.”

이미 고개를 젖힌 채 제헌의 얼굴을 보고 있는데도, 여원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간절하게 속삭였다. 결국은 짐승처럼 거칠게 처박히는 게 아니라, 제헌과 마주 보며 친밀한 섹스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하.”

발칙한 요구를 들은 제헌의 미간에 짙은 굴곡이 패었다. 흐, 하고 조금 어처구니없는 듯한 웃음소리가 길쭉한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창피한 와중에도, 그런 제헌이 섹시하게 느껴져 흥분이 배가되었다.

“앗, 응…….”

쑥, 성기가 갑작스럽게 빠져나가는 감각에 여원이 얕게 흐느꼈다. 한동안 거대한 성기에 혹사당했던 구멍이 뻐끔하게 벌어졌다. 길쭉한 기둥이 주륵 빨려 나가는 동안 다물렸다 벌어지는 주름진 내벽에서 질척한 소리가 번졌다.

“이리 올라와요.”

침대 헤드에 비스듬히 몸을 기댄 제헌이 여원에게 지시했다. 발가벗은 여원과는 다르게 제헌은 바지 앞섶만 열려 있을 뿐, 여전히 정제된 옷차림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흐느적흐느적 풀린 여원이 반쯤 기어가다시피 제헌에게 향했다.

제헌의 입매가 슬며시 비틀렸다. 오만한 낯으로 여원을 응시하는 제헌의 눈동자는 욕정으로 혼탁해져 있었다. 고압적인 태도에 반발감을 느끼기도 전 여원의 몸이 먼저 그의 명령을 따랐다.

“제헌 씨…….”

여원이 침대 위에 무릎으로 간신히 버텨 섰다. 제헌의 눈매가 날렵하게 좁혀들었다. 그대로 제헌은 오메가를 발정시키려고 작정한, 밀도 높은 페로몬을 발가벗은 몸뚱이에 들이부었다. 음험한 욕망을 고스란히 덮어쓴 여원이 차마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헐떡거렸다.

“기분이, 흐, 너무 이상해요…….”

정욕의 열기로 이성이 말끔하게 지워진 자리에 본능만이 지배했다. 그러나 제헌은 혼란스러워하는 여원을 도리어 기꺼워했다. 괜찮다는 듯 제헌이 고개를 끄덕이자, 여원은 계속해서 제헌에게 네발로 기어갔다. 기골이 장대한 제헌의 몸 위로 간신히 올라타자, 손 아래 가슴팍이 돌덩이처럼 딱딱했다.

“아, 응…….”

제헌의 다리 사이에 어설프게 자리를 잡은 여원이 인상을 쓰며 사타구니에 둔부를 비벼댔다. 까슬까슬한 바지 천에 엉덩이가 따끔하게 문질러지는 감각에 절로 인상이 써졌다. 미간을 살짝 찡그리는 여원의 눈매와 코끝은 불그죽죽하게 젖어들어 있었다.

성기를 어서 먹여달라는 듯, 동그랗게 주름진 구멍이 뻐끔뻐끔 벌어졌다. 귀두 끝을 입구에 맞춰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입구 부근이 애액으로 번들번들 적셔진 탓에, 딱딱한 기둥이 자꾸만 골 사이를 미끄러지면서 주름 위를 헛돌았다.

“다시 해봐요.”

엇나간 귀두 끝이 따끈하게 달아오른 허벅지 안쪽 여린 살을 쿡쿡 찔러대는 감각에 소름이 얕게 돋았다. 한동안 여원이 어떻게 하나 가만 내버려두던 제헌이 짧게 혀를 차고는 여원의 허리를 꽉 붙들었다. 달싹이는 숨을 내뱉은 여원이 반쯤 감고 있던 눈을 겨우 떴다.

“아…….”

제헌은 다른 손으로 성기 밑동을 움켜쥐고는 여원이 쉽게 넣을 수 있도록 뻣뻣하게 솟은 기둥을 들어 올렸다. 엉겁결에 제헌의 성기를 내려다보게 된 여원이 낮은 탄성을 터뜨렸다.

도회적이고 우아한 태도를 지닌 남자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게, 제헌의 성기는 야만적이고 저속했다. 무성한 수풀 아래에, 굵은 핏줄이 우두둑 돋아난 성기가 음란한 향취를 훅 풍겼다. 커다랗고 검붉은 성기는 오른쪽으로 길게 휘어져 불뚝거렸다. 저렇게 거대한 것을 안에 담는 것이 가능한가 싶어 여원은 눈앞이 아득해졌다.

“왜요?”

성기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여원의 시선을 의식한 제헌이 가볍게 물었다. 너무 커서요, 라는 말이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서, 화들짝 놀란 여원은 고개만 세차게 내저었다. 그러나 제헌은 뺨이 발긋하게 달아오른 여원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금세 간파하고는 픽 엷은 웃음을 흘렸다.

“아, 흣…… 잠깐만요…….”

성성하게 솟아난 성기를 움켜쥔 제헌이 이번에는 주름진 입구에 귀두 끝을 정확하게 겨냥했다. 묵직한 부피감이 닿아오자 여원은 잔뜩 겁에 질려 얼굴이 파리해졌다.

방금 전까지 안에 품고 있었는데도, 막상 크기를 직접 보았더니 다시 받아들이는 일이 좀처럼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러나 미적거리며 엉덩이를 살짝 위로 들어 올리려던 찰나, 굵직한 기둥이 무자비하게 안을 꿰뚫어버렸다.

“하아, 응, 아앙…….”

말도 안 되게 커다란 성기였지만, 막상 안으로 쑥 들어오자 원래부터 제자리였던 것처럼 구멍에 쫀득하게 맞물렸다. 이미 제헌의 성기에 알맞게 벌어져 있던 내벽이 뻣뻣한 기둥에 환호하듯 달라붙었다. 저릿한 이물감은 금세 빠듯한 충족감으로 전이되었다.

“아, 흣, 아아아…….”

비어 있는 곳이 가득 차오르면서 비로소 완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리만큼 아프지도 괴롭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엄살을 부리고 싶다는 마음 역시 한편으로 살금살금 솟아났다.

“읏, 으응, 아파…….”

눈썹을 아래로 축 늘어뜨린 여원이 입술을 작게 오물거리며 칭얼댔다. 그런 여원을 빤히 들여다보던 제헌의 눈매가 가벼이 휘어졌다. 제헌은 허벅지 사이에 걸쳐진 여원의 엉덩이를 크게 주물럭거리더니, 불시에 손바닥으로 연한 살점을 내려쳤다.

“힉!”

찰싹, 하는 마찰음에 지레 놀란 여원이 새된 신음을 내뱉었다. 그를 기점으로, 여원의 허리를 꽉 붙든 제헌은 골반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원의 몸을 한 품에 안다시피 하고는 아래에서 위로 성기를 쿵쿵 찍어 올렸다.

정작 위에 올라탄 건 여원인데도, 질척한 알파 페로몬에 흐물흐물하게 풀린 몸을 제대로 가누기조차 어려웠다. 흐느적거리는 몸을 단단히 붙든 제헌이 허리 힘으로 묵묵히 성기를 박아 올렸다.

하얗고 말랑말랑한 살결이 꽉 움켜쥔 손아귀 아래에서 찰흙처럼 부드럽게 흐무러졌다. 맞닿은 아랫도리가 크게 들썩거릴 때마다 툭 불거진 제헌의 장골에 여원의 허벅지 위쪽이 쾅쾅 부딪혔다.

“아, 흑……. 앙, 하아앙…….”

굵직한 기둥이 퍽퍽 안을 드나들 때마다 달구어진 몸 전체가 부우웅 들떠 올랐다가, 다시금 바닥으로 내리꽂히는 것만 같았다. 여원의 몸 안 곳곳에 쾌감이 새로이 새겨졌다.

본능의 노예가 된 것처럼, 벌름대는 구멍으로 제헌의 성기를 받는 것 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눈앞의 알파에게 잔뜩 몸이 달아버린 스스로를 깨달은 여원이 작게 소스라쳤다. 아무리 히트 사이클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로 성적 흥분을 느껴본 것은 처음이었다.

“여원 씨, 눈 똑바로 떠요.”

“네, 흑, 으…… 네에…….”

여원의 무릎을 붙든 제헌이 양옆으로 넓게 벌리자, 자연스럽게 시선이 다리 사이로 향했다.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성기의 움직임을 맞닥뜨린 여원이 경악했다.

검붉은 성기가 쑥쑥 드나들면, 주름이 한계까지 팽팽하게 벌어진 구멍이 기둥을 오물오물 조여 물었다. 굵직한 성기를 안쪽 깊숙이 밀어 넣을 때마다 벌어진 틈으로 줄줄 흘러나온 애액이 고슬고슬한 음모를 흠뻑 적셨다.

시각적인 자극이 지나쳐 당장에라도 눈을 꼭 내리감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여원에게 똑바로 눈을 뜨라 지시한 제헌 역시 그 음탕한 광경을 뚫어져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거 바지 다 젖으면, 윽, 흑, 어떡, 흐, 어떡해요.”

날카롭게 번뜩이는 눈동자와 시선이 맞닿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집요한 소유욕에서 달아나고자 하는 본능으로, 여원은 제헌의 허벅지 부근을 어설프게 매만지며 아무런 말이나 주워섬겼다. 앞섶이 거나하게 풀어 헤쳐진 제헌의 슈트 바지는 이미 쿠퍼액과 애액으로 범벅이 되어 질펀하게 젖어 있었다.

“그딴 걸 신경 쓸 정신이 아직 있어요?”

어이없다는 듯, 제헌이 오른쪽 눈을 살짝 치켜떴다. 훅 풍기는 페로몬과 함께 얼굴이 가까워지더니, 제헌이 빨갛게 달아오른 여원의 코끝을 콱 깨물어버렸다. 깜짝 놀란 여원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놀란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다. 반사적으로 서럽다는 생각을 하자, 땀이 살짝 배어난 피부 위로 열감이 푹푹 솟았다. 잔뜩 흐려진 시야로 서서히 드러나는 제헌의 얼굴은 언제나처럼 위압적이었고, 그래서 매력적이었다.

“흣, 윽…… 제헌 씨.”

“하……. 네, 여원 씨.”

깨물린 코끝을 제헌의 목덜미에 파묻은 여원이 슬쩍슬쩍 비벼댔다. 의외로 제헌이 자신의 어리광을 받아준다는 사실을 깨달은 여원은 좀 더 과감해졌다. 빼꼼 고개를 들어 올려 눈앞에 보이는 제헌의 입술에 쪽, 뽀뽀했다.

술에 취한 중에도 제헌이 자신을 밀어냈던 게 못내 서러웠었다. 이번에 제헌은 여원을 거부하지 않았고, 용기가 북돋워진 여원은 고양이처럼 혀를 내 제헌의 입술을 살금살금 핥았다. 촉, 촉, 도톰한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지는 소리가 끈적하게 이어졌다.

“흣, 으응…….”

여원의 아래를 들쑤시는 성기도 한층 느긋해졌다. 완급 조절을 하기 시작한 제헌이 곧추선 성기로 내벽을 느릿하게 쓸어내렸다. 난폭하게 짓찧어대던 성기가 안쪽을 둥글게 그리듯이 문지르자 녹지근한 자극이 번져 발등이 절로 굽어들었다.

엄살을 부린 것은 여원인데도, 생각만큼 빠르게 충족되지 않는 쾌감에 금세 애타게 되었다. 눈을 가느다랗게 뜬 여원이 제헌의 다리 사이에서 허리를 얕게 움직거렸다. 제헌에게 몸을 바짝 붙이고는 탄탄한 가슴 근육에 저도 모르게 젖꼭지를 비벼댔다. 말랑말랑한 몸이 가슴에 착 감겨들자, 제헌이 더운 숨을 길게 몰아쉬었다.

“후우…….”

음험하게 가라앉은 눈동자에 날카로운 이채가 감돌더니, 제헌은 불과 얼마 전에 정액을 토해낸 여원의 성기를 거세게 움켜쥐었다. 가장 연약한 살덩이가 아프게 틀어 잡힌 여원이 앓는 소리를 내자, 엄지 끝이 매끈매끈한 귀두를 집중적으로 자극했다.

“아, 흣, 제헌 씨, 읏.”

뭉툭한 손가락이 예민하게 달아오른 귀두를 계속해서 슥슥 문질렀다. 요도구를 콕콕 찌르는 자극에 여원의 엉덩이가 안으로 꽉 조여들었다. 따끔하고, 저릿하고, 기분이 이상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다리를 버둥거렸지만, 제헌은 성기에 가해지는 자극을 멈추지 않았다.

“앗, 아…… 앙, 안 돼!”

여원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확 풀리더니, 반쯤 발기된 성기 끝에서 투명한 액체가 솟구쳤다. 이상한 액체를 분수처럼 토해낸 여원이 등허리를 푸드덕 크게 떨었다. 여원이 입을 크게 헤벌리고 있는 사이, 꿀렁거리는 성기는 계속해서 향이 없는 액을 울컥울컥 토해냈다.

“아, 아아…….”

미지근한 액이 제헌의 바지에서부터 침대 시트를 흥건하게 적셨다. 압도적인 쾌감으로 반쯤 정신이 나가 있다가, 한발 늦게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여원의 얼굴이 경악에 물들었다.

“아기처럼 다 싸버렸네.”

제헌이 짧은 감상을 읊조렸다. 그의 얼굴이 비틀린 충족감으로 물들었다. 그늘진 시선이 아직도 이따금 퍼덕거리는 하반신을 집요하게 훑어내렸다. 먹이고 재우는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성욕까지 풀어주더니, 끝내는 아이처럼 싸버리게 만드는 게 제헌이 말하는 보호란 건가 싶었다.

“이제 진짜 다 젖어버렸는데, 어쩔 거예요?”

“이거, 흑, 응…….”

정액은 확실히 아니었다. 색도 향도 없는 것을 보니 걱정했던 것처럼 오줌을 싸버린 것 역시 아닌 듯했다. 그럼에도, 섹스하다가 정체불명의 액체를 쏟아버렸다니 처음 있는 일이었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손으로 감싸 쥔 여원이 흠뻑 젖어든 제헌의 슈트 팬츠를 흘긋거렸다.

“흐, 으, 제헌 씨, 잘못했어요…….”

“후…….”

“이번 한 번만, 흑, 용서해 주세요.”

고개를 푹 떨군 여원이 가느다란 목소리로 속삭이자, 내벽을 채우는 제헌의 성기가 더욱 커지고, 딱딱해졌다. 미세한 변화였지만 기둥에 찰싹 밀착해 있던 속살은 그를 아주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여원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가 부르르 떨어대면서 제헌의 성기를 꽉 조여 물었다.

“아, 흑, 잠깐…… 흑, 아흑…….”

무엇이 자극제가 되었는지, 제헌의 허릿짓이 무턱대고 난폭해졌다. 여원이 숨을 헐떡이는 틈을 타 제헌의 성기가 쑥쑥 밀려들어 왔다. 그가 안을 치고 들어오는 속도를 좀처럼 종잡을 수가 없어서 여원의 허리가 자꾸만 엇박자로 들썩였다.

어차피 여원은 거의 움직이지도 않았지만, 이제는 제헌의 위에 올라앉아 있는 것 자체도 힘들어졌다. 목이 자꾸만 픽픽 꺾이면서 마른 몸이 아슬아슬한 곡선을 그려냈다. 여원의 상반신이 뒤로 확 넘어가려던 찰나, 마침내 제헌이 흉흉한 성기를 쑥 뽑아냈다.

“앙, 흐으…… 으으응…….”

조금도 크기가 줄어들지 않은 성기를 총신처럼 움켜쥔 제헌이 침대에 널브러진 여원을 빤히 내려다봤다. 마치 영역을 표시하듯, 여원의 아랫배부터 가슴까지 정액이 후드득 흩뿌려졌다. 찐득하고, 비릿하고, 끈적끈적했다. 엉망으로 튀어 오르던 백탁액이 얼굴에도 투둑 묻어나자, 여원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깨끗하게 해야지.”

혼미해지는 정신에 눈을 두어 번 깜빡이자, 사정을 마친 검붉은 성기가 입술 앞까지 들이밀어져 있었다. 덜렁거리는 기둥은 여원이 질질 흘린 애액에 흠뻑 젖어 투명하게 번들거렸다. 철렁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여원은 입술을 조붓하게 벌리고, 비릿한 성기를 입 안으로 삼켜 혀로 살살 핥아냈다.

* * *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시야가 씻은 듯이 말끔했다. 열에 들뜨던 기운이 싹 사라져, 억압된 족쇄에서 풀려난 것처럼 온몸이 개운하고 청량했다. 사방은 밝았고, 주변을 둘러싼 부드러운 온기는 녹진한 포만감을 선사했다.

“으읏…….”

그러나 나른함에 젖어들기도 찰나, 아랫도리에 번지는 저릿한 기운에 여원은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허벅지 근육이 뻑뻑하게 땅겼고, 내내 혹사당했던 입구는 꼭 다물려 있는데도 빠끔하게 벌어진 것처럼 얼얼했다.

“여원 씨, 일어났어요?”

쾌락의 여운이 너절하게 밴 몸을 둥글게 웅크리던 여원은 깜빡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제헌이 침대맡에서 희미한 온기가 묻어나는 시선으로 여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은은하게 번지는 페로몬을 들이마시자, 불과 하루 전 그에게 흠뻑 절었던 기억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아…….”

그러나 히트 사이클을 핑계로 본능에 몸을 맡기던 어제와는 다르게, 지금 이 순간 주변은 화사하게 밝았고 정신은 원망스러우리만큼 명료했다.

“저기, 큼…… 흐, 지금 몇 시예요?”

“…….”

내도록 새된 신음을 내질렀던 목구멍이 따끔거렸다. 목소리가 갈라진 것이 신경 쓰여 여원이 제헌의 눈치를 살폈다. 그대로 눈이 마주치자, 내가 정말 이 남자랑 잤구나, 하는 것이 새삼 실감이 나서 심장이 쿵쿵 뛰어올랐다.

“잘 만큼은 잤습니다.”

팔을 길게 뻗은 제헌이 여원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눈을 가늘게 접은 여원이 으응, 얕은 신음을 흘렸다. 머리칼 사이로 얽어드는 길쭉하고 단단한 손가락에서 포근한 안정감이 전해졌다.

“…….”

“…….”

색이 유난히 짙은 또렷한 눈동자가 아직 졸음이 묻어나는 여원의 얼굴을 훑어 내렸다. 제헌의 냄새가 희미하게 묻어나는 얇은 가운 하나만을 덮고 있을 뿐, 여원은 여전히 알몸이었다. 그러나 어제처럼 정욕에 젖어 있지 않은 담백한 시선은 여원의 몸 상태를 확인하기만 했다.

“제헌 씨…….”

아무리 히트 사이클이었다지만, 먼저 다리를 벌리고 유혹한 것으로도 모자라 애정을 갈구하듯이 제헌의 품에 안겨들고 입술을 빨았다. 지금 제헌은 그런 자신을 두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어찌할 바 모르는 기분에 여원이 발을 동동 굴렀다.

“여원 씨 이제 씻어야죠.”

무덤덤하게 이야기하는 얼굴에서는 별다른 표정을 읽어내기가 어려웠다. 간밤의 섹스는 여원에게 둘러싼 세계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충격적이고 압도적인 경험이었다. 그러나 매사에 능숙하고 여유로운 제헌은 그를 대수롭지 않은 해프닝 정도로 생각하는 것일까.

“욕실로 갑시다.”

겨드랑이 아래 여린 살에 양손을 불쑥 밀어 넣은 제헌이 여원의 몸을 일으켰다. 뭔가 좀 이상한데……. 설마 제헌이 같이 욕실에 가는 건가. 화들짝 놀란 여원이 몸을 바짝 뒤로 뺐다. 제헌의 짙은 눈썹이 가볍게 들썩였다.

“호, 혼자 씻을 수 있어요.”

여원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제헌의 넓은 가슴팍을 슥 밀어냈다. 그대로 침대 아래로 내려가려고 했지만, 바닥에 발을 딛기가 무섭게 다리가 풀려버렸다. 여원이 어떻게 하나 가만히 보고 있던 제헌이 크게 휘청거리는 몸을 민첩하게 들어 올렸다.

“내 말 들어요.”

제헌이 그대로 여원의 엉덩이를 받쳐 들고는 자연스레 제 품에 기대게 했다. 포대기처럼 얇은 가운에 감싸인 채, 여원은 제헌에게 반쯤 안기다시피 욕실로 향했다. 몸이 밀착하며 페로몬이 일렁일렁 흘러오자 발바닥이 간질거렸다.

넉넉한 크기의 욕실이었지만 성인 남자 두 사람이 들어서자 다소 비좁게 느껴졌다. 제헌은 여원을 욕조 안에 내려놓고 얇은 가운을 벗겨 내렸다. 몇 시간 동안 물고 빨아댄 덕에 울혈과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몸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제, 제헌 씨!”

“네.”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기, 이제부터는 저 혼자서 할 수 있어요.”

어제는 더한 짓을 했다지만, 제헌 앞에서 발가벗고 있는 것이 너무 창피했다. 가쁜 숨을 뱉어낸 여원이 샤워기를 향해 팔을 뻗는 제헌의 팔목을 황급히 잡아챘다.

“여원 씨 지금 몸 상태 안 좋아서 그래요.”

고개를 슥 돌린 제헌이 여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부풀어 오른 유두 부근에 흘긋 시선이 닿았다. 잠깐의 정적 끝에 제헌은 차분하게 설득했다. 표면상으로는 여원을 위하는 말이었지만, 사실상 자신의 뜻을 거두어들일 의사가 없음을 전하고 있었다.

“아, 그러면…… 감사합니다.”

여원이 딱히 제헌을 거스를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벌써부터 막막해지는 눈앞에, 푹 한숨을 몰아쉰 여원은 눈을 질끈 감았다. 미지근한 물이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더니, 배에 조로록 고여들었다. 후드득 물줄기가 쏟아졌다. 여원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허리 똑바로 펴고.”

긴장한 여원은 허리에 꼿꼿하게 힘을 주고, 가슴을 앞으로 살짝 내밀었다. 입술을 꾹 다문 제헌이 묵묵히 여원을 씻겼다. 집중한 듯 미간이 좁혀지고, 날카로운 콧날이 도드라졌다. 멍하니 제헌의 얼굴을 바라보던 여원이 고개를 빠르게 가로저었다.

“아, 읏…….”

희디흰 몸이 미지근한 물에 충분히 젖어들자, 제헌은 부드러운 거품을 낸 샤워볼로 여원을 문질렀다. 목덜미부터 시작해 가슴, 겨드랑이 안쪽까지 몸 곳곳에 꼼꼼한 손길이 닿았다. 밀폐된 욕실의 공기가 금세 습해지고, 거품과 피부가 마찰하는 질척한 소리가 웅웅 울렸다.

“물이 너무 차가워요?”

“아니에요, 지금 좋아요.”

제헌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여원을 매만졌다. 분명 사심 없는 손길인데도, 길쭉한 손가락이 예민한 피부를 스칠 때마다 여원은 파르르 몸을 떨었다. 눈을 길게 내리깐 제헌이 짧은 숨을 내쉴 때마다 오금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다행이네.”

그러니까,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짐승처럼 붙어먹었는데…… 의식하게 되는 게 오히려 당연한 거 아닌가? 하지만 흐트러짐 없는 제헌의 얼굴을 보면, 음란한 기분을 느끼는 것은 저 혼자만인 것 같았다.

“뒤로 돌아서 벽 짚어요.”

“흐, 네…….”

샤워라니 금방 끝날 줄로 알았지만, 제헌이 느리게 손을 움직이는 탓에 앞을 씻기는 데만도 한참이 걸렸다. 나른한 얼굴을 하고 있던 여원이 허리를 곧추세우고 몸을 돌렸다. 어정쩡한 자세로 제헌에게 등을 내보이고는 팔을 길게 뻗어 욕조를 짚었다. 애액이 허옇게 말라붙은 동그란 엉덩이가 드러났다.

“아, 어떡해.”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민망하기 이를 데 없는 자세였다. 하지만 제헌은 여원의 발목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여원의 다리가 넓게 벌어지자 뽀얀 가랑이 안쪽이 훤히 드러났다. 제헌의 시선이 내리쬐는 허벅지 뒤쪽에 소름이 오스스 돋아 올랐다.

“아읏…….”

미지근한 물줄기가 다리 사이를 뜨끈하게 적셨다. 솨아아― 소리와 함께 샤워 헤드가 엉덩이로 드밀어졌다. 적당한 수압을 가진 물방울이 발갛게 부어오른 입구 위로 톡톡 내리꽂히자, 타일을 간신히 붙든 여원의 손목이 부들부들 떨렸다.

“읏, 제헌 씨, 잠깐…….”

온갖 체액으로 범벅이 되어 있어 특별히 더 꼼꼼하게 씻어야 하는 건 맞았지만. 예민한 살갗에 자꾸만 가해지는 자극에 여원은 마음과는 다르게 몸이 달아올랐다. 샤워볼을 움켜쥔 손이 회음부 부근을 슥 스치고 지나가자, 끝내는 페로몬을 왈칵 흘려버리고 말았다.

“조금만 더 참아요. 거의 다 끝났으니까.”

“네, 흣, 네에…….”

푹 숙인 목덜미에 빠른 속도로 피가 쏠렸다. 이래서야 속이 훤히 보이겠다 싶어서 여원의 얼굴이 금세 울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말린다고 한들 제헌이 그만두지도 않을 테다. 결국 여원은 집요한 손길을 계속해서 받아내면서 입술을 앙다물고 신음을 참는 수밖에는 없었다.

“팔 이리 뻗고.”

“네…….”

욕실에서 나온 제헌이 여원의 젖은 몸을 수건으로 닦아내고, 가벼운 홈웨어까지 입힌 후에야 긴긴 목욕은 끝이 났다. 여원은 말간 얼굴로 제헌을 올려다보았다. 피부가 물에서 갓 건져진 복숭아처럼 보송보송했다.

뽀득뽀득 씻겨지고 정성껏 말려진 새하얀 피부 위로는 분홍 기운이 연하게 돌았다. 제헌의 손이 닿는 동안 잔뜩 긴장하고 있던 탓에 길게 좁아든 눈매는 젖어들었고, 뺨은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히트 사이클의 여운이 폴폴 피어올랐다.

“감사합니다.”

단순히 고맙다는 마음보다는 좀 더 복잡한 심경이었지만…… 그래도 제헌에게 괘씸하게 보이고 싶지는 않아서, 여원은 힘없이 입술을 오물거렸다.

“그래요.”

체격이 큰 제헌이 허리를 반듯하게 세우자 압도적인 골격이 여원에게 야트막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후…….”

제헌은 제 손으로 씻기고 입힌 여원을 가만 내려다보았다. 나지막이 내뱉어진 숨소리와 함께 그대로 제헌의 주위를 감도는 공기의 흐름이 완전히 정지한 것만 같았다. 평소 제헌을 빈틈없이 둘러싸던 평정이 미묘하게 뒤틀려 있었다.

“제헌 씨…….”

혼란스럽고, 불안했다. 그러면서도 필요 이상으로 베풀어지는 끈덕진 관심과 다정함에 희미한 기대감이 생겨나기도 했다.

“네.”

“저기, 어제 있었던 일은요.”

히트 사이클 해소만이 목적이었다면, 제헌은 여원을 병원에 데려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제헌은 여원과 섹스하는 방법을 택했다.

“…….”

“…….”

여원은 다음 말을 쉽사리 잇지 못했다. 젖은 눈으로 제헌을 올려다보며, 그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일러주었으면 바랐다. 자신이 죄책감 없이 제헌만을 바라보고 순종적으로 따를 수 있도록.

“죄책감 가질 것 없습니다.”

“…….”

“여원 씨는 아직 호르몬이 불안정할 나이고, 나는 그런 데 휩쓸릴 나이는 아니니까요.”

그러나 이어진 말은 뜻밖이어서, 여원은 단박에 얼어붙고 말았다. 단순히 여원의 발정 해소를 위한 섹스라기에는, 제헌 역시 그에 확 휘말려버리고 말았다. 어제 이성을 잃고 여원을 욕망했던 남자라기에 지금 제헌의 태도는 지나치리만큼 담백했다.

“아, 역시…… 그렇군요.”

“…….”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음, 감사합니다.”

실낱같이 붙들고 있던 기대가 툭 끊어짐과 동시에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고개를 푹 숙인 여원은 좀처럼 표정 관리를 못 하고 입술을 엉망으로 잘근거렸다. 자신의 보호 아래에 있는 어린 오메가가 난처한 상황에 처하자, 제헌은 흔쾌히 도와주었다. 정말 제헌에게는 어제의 섹스가 아무 일도 아닌 걸까.

“…….”

“…….”

더 할 말이 있냐는 듯, 제헌이 여원을 흘긋 바라보았다. 무심한 채근에 여원의 심장이 아프게 방망이질 쳤다. 하고 싶은 말이야 많았지만 그중 무엇도 적절하지 않아서, 굳게 다물린 입술을 뗄 수 없었다.

“당분간은 사용인들이 저택을 비우도록 할 생각입니다.”

“네?”

자리에서 떠나기 전, 여원의 어깨 부근을 가볍게 두드린 제헌이 별것 아니라는 듯 이야기했다. 다소 갑작스럽게 들리는 이야기에 여원이 눈을 가늘게 떴다.

“꼭 필요한 일만 출퇴근해서 처리하면, 사용인들이 저택에 머무르는 시간은 최소화할 수 있겠죠.”

“그렇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여원 씨 아직 페로몬도 불안정한데, 불미스러운 상황은 사전에 차단하는 편이 좋습니다.”

생각해 보면, 방금 전 제헌이 몸을 씻길 때 역시 여원은 본의 아니게 페로몬을 흘려버리고 말았다. 빠르게 이해한 여원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결국에 제헌의 말은 불미스러운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까지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해요.”

제헌의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여원이 순종적으로 웃어 보였다. 제헌이 기껍다는 듯이 입꼬리를 슬쩍 끌어 올렸다.

* * *

아무리 평소에 교류가 없었다지만, 주변에 사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캬앙!

“통키야, 형아 깜짝 놀랐잖아!”

이따금 고양이 울음소리가 저택의 적막을 깨트릴 때마다 어깨가 흠칫 떨렸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것들에도 괜히 선뜩한 기분이 들었다. 안온함을 찾아, 여원은 나선형 계단을 빙글빙글 타고 올랐다.

냥, 냐양.

3층에 다다르자 금세 심술이 풀린 통키는 높이 솟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벽면에 문질렀다. 여원도 통키를 따라 살금살금 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기웃거렸다. 가장 불길하게 느껴졌던 공간을 이제는 가장 안전하게 여기게 되었다.

“아휴…….”

거실 소파 위에 길게 눕자, 통키가 냉큼 여원의 가슴 위로 올라탔다. 묵직한 털 뭉치를 쓸어내리며 여원은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희미하게 남아 있는 제헌의 페로몬을 안으로 들이켰지만, 저릿한 허기는 가시지 않았다.

자극적이고 강렬한 섹스보다도, 잠에서 문득 깨어났을 때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던 제헌의 얼굴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포근하면서도 야릇한 긴장감이 그 순간을 감쌌다.

“제헌 씨 보고 싶다…….”

예전에 여원은 외부로부터 철저히 격리된 고립감에 몸서리쳤다. 그러나 지금 여원이 마주한 것은 좋아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외로움이었다. 새로운 색을 띤 감정이 녹진하고 끈끈하게 마음에 고여들었다.

[제헌 씨]

그런 여원의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때마침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누가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도, 괜히 몸을 둥글게 웅크려 제헌의 전화를 받았다. 살짝 잠긴 채로 새어 나오는 자신의 목소리가 왜인지 낯설게 들렸다. 잔뜩 숨죽인 채 전화기 너머에서 전해질 제헌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혼자서도 집에 잘 있어요?

“네, 통키랑 같이 잘 있어요.”

―착하네.

“근데 지금 일하시느라 바쁘지 않으세요?”

―여원 씨랑 통화할 시간 정도는 있습니다.

별것 아닌 대화였지만, 예전보다 그와 훨씬 편하고 친밀해진 듯해 입가가 들썩거렸다. 제헌은 인생에 일 빼고는 즐거움이라는 게 없어 보이는 남자였지만, 여원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만사를 제치고 달려왔다. 언제나 바빠 보이는 그가 자신을 위해서는 흔쾌히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 못내 기분 좋았다.

“제헌 씨, 몇 시쯤 오세요?”

―이따 보고받는 게 늦어질 수 있는데, 그래도 8시 이전에는 갈 겁니다.

“그러면, 제가 오늘 요리해 드릴까요?”

―여원 씨가 요리도 할 줄 알아요?

들뜬 기분에 비스듬히 돌린 얼굴이 화끈거렸다. 바람 새듯 웃음을 짧게 터뜨린 제헌은 여원의 제안을 반기는 기색이었다. 긴장으로 잠시 쭈뼛 곤두섰던 목 뒤가 안도감으로 가라앉았다.

“네, 그런데 너무 많이 기대하시면 안 돼요.”

―그래요. 필요한 것 있으면 알려주고.

“오후에도 일하실 때 힘내세요!”

―응. 고마워요.

전화를 끊고 난 여원은 때아닌 의욕으로 두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제헌에게 매번 받기만 했는데, 이번만큼은 작게나마 되돌려줄 기회가 생겼다.

집에 있을 때 식구들 끼니를 챙기는 건 여원의 몫이었지만, 저택에 들어온 뒤로는 그곳을 떡하니 차지한 사용인들 눈치를 보느라 부엌에 들어온 적이 없었다. 식기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한 여원이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어지간한 식자재는 전부 마련되어 있기는 했다.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으니, 간단하지만 그래도 겉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이는 메뉴를 선정해야 했다. 냉장고 안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여원이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한층 밝아진 얼굴을 했다.

고기를 꺼내 양념에 재우고, 새우를 잘 손질해 끓는 물에 데쳤다. 도마 위로 각종 채소를 꼼꼼하게 다지는 칼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부지런히 움직여서인지, 잠시나마 잠식했던 무기력함이 깨끗이 씻겨지고 산뜻한 활력이 퐁퐁 솟아올랐다.

[오시는 길에 라이스페이퍼만 부탁드려요.]

저녁 시간에 접어들 무렵, 식사 준비를 마친 여원이 뿌듯한 얼굴로 제헌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저녁 메뉴는 월남쌈이었다. 자신이 직접 만든 음식을 본 제헌이 어떤 반응을 할까? 그를 향한 기다림에 다채로운 색깔이 덧입혀졌다.

“제헌 씨, 오셨어요?”

초겨울의 써늘한 냉기를 옷깃에 머금고 돌아온 제헌은 언제나처럼 근사했다.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고 미리 얘기했는데도, 정작 여원이 직접 요리를 만든 것을 본 제헌은 놀란 기색이었다.

“제법 근사한데요?”

“아, 감사합니다!”

“애초에 사람 쓸 필요가 없었겠는데.”

식탁 위에는 한입에 먹기 좋게 잘 손질된 채소와 데친 고기가 예쁜 그릇에 담겨 있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괜한 수줍음으로 뺨이 간질거렸다. 사용인 없이도, 이렇게 저택에 둘만 있어도 충분하겠다는 생각을 여원 역시 은연중에 하고 있었다.

“아…….”

널따래지만 둘만으로도 꽉 차는 것처럼 느껴지는 식탁에 제헌과 마주 앉았다. 제헌이 소담한 고명이 올라온 쌈을 입으로 가져갈 때는, 우습게도 심사평을 앞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실패할 확률이 낮은 음식이었지만 그래도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맛있네요.”

“정말요?”

느리게 음식을 씹어 삼킨 제헌이 흔쾌한 칭찬을 건넸다. 여원이 반색하며 기뻐하자, 제헌의 입꼬리 역시 흡족하게 끌려 올라갔다.

“제가 요리한 거, 먹어주시니까 기뻐요.”

“직접 만든 사람이 고생이지.”

“아니에요,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닌데요.”

“다음번에는 요리하는 모습도 보여줘요.”

“네, 그럴게요.”

이어지는 식사는 전날 질펀하게 섹스한 사람들의 것이라기엔 태연하게 화기애애했다. 다정다감하고 폭신폭신한 분위기에 안심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희미한 아쉬움이 일었다.

“아, 뜨거워.”

라이스페이퍼를 적시던 여원이 실수로 뜨거운 물에 손가락 끝을 담갔다. 살성이 여린 피부가 금세 빨갛게 달아올랐다. 살짝 따끔거리는 손가락을 입술 부근에 가져가 피부 위를 꾹꾹 누르며 열을 식혔다.

“근육 땅기는 데는 없어요?”

“네, 네?”

“어제 보니까 잘 못 걷는 것 같아서.”

여원을 빤히 쳐다보던 제헌이 여상하게 물었다. 고개를 반짝 들어 올린 여원의 눈이 휘둥그레했다. 일상적인 어조였지만 성적인 맥락이 충분히 내포된 질문이었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어올랐다.

“…….”

“…….”

여원이 대답을 망설인 탓에, 질문에 덧입혀진 성적인 뉘앙스가 도리어 커져 버렸다. 얼핏 평온하게 이어지던 저녁 식사 분위기가 금세 팽팽해졌다.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제헌과 여원 사이를 흘렀다.

“아…… 제가 그랬었나요?”

무심해 보이는 시선이 닿는 곳마다 피부가 뭉근한 온기로 달아올랐다. 그런 섹스를 하고서 없었던 일인 척 천연덕스럽게 군다는 것이 어불성설이었다. 한 번 일깨워진 감각이 육체에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이제 슬슬 식탁 정리할까 봐요.”

살짝 가라앉은 또렷한 눈동자를 마주하는 것만으로 입 안이 바짝 말랐다. 당혹스러운 위기감을 떨쳐 내려 여원이 몸을 서둘러 일으켰다. 일부러 제헌의 시선을 피하며 바닥을 드러낸 접시를 더듬거렸다.

“아얏…….”

캬앙!

그릇을 갈무리한 여원이 제헌에게서 등을 돌리는 데 간신히 성공했을 때였다.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식탁 발치에 있던 통키가 벽면으로 돌진했다. 균형을 잃어 바닥에 풀썩 넘어진 여원의 손에서 쨍강, 접시가 박살 나버렸다.

“여원 씨, 괜찮아요?”

손끝이 베였는지 맑은 피가 송골송골 배어 나왔다. 창피하기도 하고, 널브러진 채 좀처럼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여원의 얼굴이 울상이었다. 금세 바닥으로 내려온 제헌이 여원을 부축했다.

“아, 읏…….”

제헌은 상처가 선명하게 난 여원의 손을 받쳐 들고 손가락에 맺힌 피를 쪽 빨았다. 따끈하고 축축한 점막이 손가락에 달라붙자, 금세 저릿하게 번지는 감각에 몸이 잔뜩 움츠러들었다. 이미 서로의 몸을 알아버린 탓에, 관능은 아주 사소한 계기로도 발화했다.

“제, 제헌 씨…….”

퉤, 제헌이 손가락을 뱉어냈다. 무덤덤하고 냉담한 표면이 한 꺼풀 벗겨진 자리, 새까맣게 내려앉은 눈동자에서 억눌린 욕망이 들끓었다. 언제나 금욕적으로 보이던 남자가 자신을 탐하며 달려들던 순간을 연상해 버린 여원이 눈을 꼭 내리감았다.

“많이 놀랐죠?”

이제는 정말로, 부정할 수도 없게 나쁜 짓을 저질러버릴 것만 같았다. 제헌은 우아하고 품격있는 태도 너머로 얼마든지 저속하고 상스러운 욕망을 드러낼 수 있는 알파였다. 이 남자랑 얽혀들면 밑바닥을 모르도록 타락해 버릴 것만 같다는 위기감에 휩싸였다.

“아뇨, 괜찮…… 흐, 아요.”

“…….”

“그런데 이거, 그릇 빨리 치워야 하는데.”

제헌의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계속해서 이상한 기분이 들 것만 같았다. 고개를 간신히 옆으로 돌린 여원이 손바닥으로 제헌의 어깨를 밀어냈다. 단단한 어깨는 맥없는 손짓에도 금세 뒤로 물러나 주었다.

“거기 가만있어요. 내가 치울 테니까.”

여원을 의자에 앉힌 후 깨진 접시를 치우는 널찍한 등을 바라보자니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히트 사이클 때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지만, 이제부터는 대체 뭐라고 설명할 건지.

모른 척하려고 애써보아도, 한번 서로를 성적으로 의식하게 된 이상 돌이킬 수는 없었다. 남편의 형, 혹은 동생의 배우자. 표면적인 관계 아래에서 애써 억눌러놓았던 서로를 향한 이끌림이 이제는 걷잡을 수 없어졌다.

“아…….”

금세 말끔해진 바닥과는 대조적으로, 마음속은 어지러이 얽혀들고 있었다. 여원은 혼란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제헌을 올려다보았다. 지금 이상으로 분위기가 위험해지면, 그때부터는 정말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런데요, 제헌 씨는 정말 좋은 사람 같아요.”

“내가 그래 보여요?”

“네. 그럴 이유가 없는데도, 이렇게 항상 저를 신경 써주시고, 배려해 주시고…….”

고개를 푹 숙인 여원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우물거리자 제헌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픽 웃어버렸다.

“원한다면 여원 씨에게는 좋은 사람이 되어줄 수 있죠.”

기본적으로 성정이 냉랭해서이지, 제헌은 여원을 늘 다정하게 대하며 존중해 줬다. 그런데도 지금처럼 그가 지독하게 나쁜 남자 같고 음험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이따금 있었다.

“오늘 밤에는 혼자서 잘 수 있겠어요?”

흠칫 놀란 여원이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었다. 결혼 이후로 내내 선준과 각방을 썼기에 혼자서 자는 게 새삼스러울 일은 아니었다. 한데 제헌은 사용인들을 내보낸 걸 핑계로 유난하게 굴었다.

“걱정되어서요.”

같이 자자는 건가. 이래도 되나 싶었다.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불 보듯 훤했다.

“아…… 네.”

“…….”

“걱정하실 만큼은, 정말로 아니에요.”

제헌은 지금 저를 슬며시 떠보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맨정신으로 제헌과 얽혀들면 더는 어설프게 실수라는 변명을 할 수조차 없게 된다. 밀어내지도 못하고, 다가가지도 못하며, 그렇게 여원은 제헌에게 속수무책으로 휘둘렸다.

“…….”

“…….”

“그래요, 그럼 잘 자고.”

느직한 시선으로 여원을 훑어내리던 제헌이 음험한 기운을 금세 얼굴에서 지워내고는 여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제나처럼 제헌은 여원에게 강요하지는 않았다. 다만 여원이 스스로 선택해서, 제 발로 손아귀에 걸어 들어오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 * *

새벽빛이 어슴푸레 밝아오는 방 안에 헐떡이는 숨소리가 번졌다.

“하, 흑…….”

온몸에 따끈하게 오른 열 때문에 잠에서 깨어난 여원이 끙끙 앓았다. 흥건하게 젖은 다리 사이에서 맑은 액이 뚝뚝 떨어졌고, 아랫도리는 꼿꼿하게 일어서 얇은 잠옷 바지를 들쳐 올렸다.

“흑, 아래가 너무 뜨끈해.”

열감으로 흐무러진 팔다리가 농밀한 페로몬을 녹진녹진 뿜어댔다. 히트 사이클이 끝났지만 페로몬은 여전히 불안정했다. 열성 오메가인 여원이 히트 사이클에 우성 알파 페로몬을 푹 절여지도록 받아냈으니, 체내 균형이 깨진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잘 자다가 중간에 깨서 대체 이게 무슨 꼴인 건지. 아랫배가 저릿하게 땅겨오자 여원이 저도 모르게 허리를 퉁 들썩이고는 금세 울상이 되었다. 본능에 따라 착실하게 흥분해 버린 몸뚱이가 원망스럽기만 했다.

“아, 금방 제헌 씨 깰 시간인데.”

무슨 일이 있어도, 이런 모습을 제헌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 번쩍 정신을 차린 여원이 침대에서 몸을 벌떡 일으키고, 반쯤 달려가다시피 욕실로 향했다.

벗은 몸 위로 찬물을 냅다 들이부었지만, 여전히 물안개가 잔뜩 낀 것처럼 시야가 부옜다. 은은하게 달아오른 발정열은 금방 달아날 기세가 전혀 아니었다. 들뜬 기운을 간신히 꾹 참아내느라 무릎을 한데 모아 바짝 붙이자, 엉덩이 안쪽이 확 오므라들면서 볼깃살이 홀쭉하게 패었다.

“흣, 제헌 씨…….”

어제의 자극이 무의식중에 남아 있었던지, 눈을 꼭 내리감자 제 손가락을 입술에 물고 촉 빨아당기던 제헌의 나른한 얼굴이 떠올랐다. 손가락을 빠는 데 그치지 않고, 유혹적인 입술은 금세 몸을 타고 내려오더니 목덜미와 쇄골과 유두 부근을 질척하게 적시고 흡착했다.

“강여원, 진짜 미쳤나 봐.”

스스로의 생각에 지레 놀란 여원이 고개를 살래살래 가로저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로 연거푸 씻어냈지만, 몸을 잠식한 열기는 완전하게 가라앉지 않았다. 발갛게 달뜬 기운을 동그란 뺨에 묻힌 채로 여원이 욕실 밖으로 비척비척 걸어 나왔다.

“여원 씨, 좋은 아침.”

“힉! 제, 제헌 씨…….”

머리칼에 맺힌 물기를 털어내느라 고개를 비스듬히 옆으로 돌리던 때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 음란한 상상의 재료였던 제헌이 바로 눈앞에 있어, 여원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어쩐 일로 깨우지도 않았는데 일찍 일어났어요?”

출근 준비를 하던 중 잠깐 2층에 내려왔는지, 제헌은 말끔하고 말쑥하게만 보였다. 그를 두고 야한 생각을 했다는 죄책감이 쿡쿡 쑤셔서 여원은 제헌과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도 못했다.

“그냥…… 잠에서 일찍 깼어요.”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인 채, 여원이 기어들어 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목덜미에서 후끈후끈 열이 올랐다. 성적으로 갓 눈뜨기 시작한 여원은 제헌에게 욕정하게 되는 스스로가 낯설면서도 부끄러웠다.

어깨를 움츠린 여원이 가운으로 꼼꼼히 덮여 있는 가슴팍을 다시금 손으로 감추었다. 보송보송한 목욕 가운 아래, 발갛게 익은 몸에서 젖은 열기가 폴폴 피어올랐다. 여원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누가 봐도 찔리는 구석이 많아 보이는 태도였다.

“그랬어요?”

성큼, 발을 내디딘 제헌이 가까이 다가오자 널찍한 어깨가 여원에게 그늘을 드리웠다. 여원의 턱 끝을 가볍게 들어 올린 제헌이 그대로 입술에 뽀뽀했다. 말캉한 살덩이가 닿았다가 떨어지며 촉, 젖은 소리가 번졌다.

“헉, 제헌 씨…….”

제헌은 여원에게 입을 맞추고도 태연자약한 얼굴이었다. 제헌의 살갗이 닿았다가 떨어진 아랫입술이 여전히 화끈거리는 것만 같아, 여원은 손가락으로 그를 꾹꾹 누르고픈 충동을 애써 참아야 했다.

“까, 깜짝 놀랐어요.”

제헌을 올려다보는 여원의 얼굴에 당혹과 두려움이 일렁거렸다. 지극히 혼란스러웠다. 대체 제헌이 왜 이러는 건지…….

아니 사실 제헌이 왜 이러는지는 알겠는데,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가 전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오늘 하루도 잘 보내고요.”

산뜻한 인사와 함께 제헌이 떠나가자, 여원은 그대로 자리에 푹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것을 간신히 버텨야 했다.

“큰일이다, 진짜…….”

갈수록 위험해지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그것이 싫기는커녕 설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제헌에게 이끌리고, 이제는 그를 넘어서 제헌을 갈급하게 원하게 되는 마음과 지금껏 여원이 의지해 온 보편적인 상식과 올바름에 대한 개념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 * *

오전에 잠깐 사용인이 다녀간 후, 거대한 저택에는 여원 혼자서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도 꼭 누가 보고 있는 것만 같은 불안한 기분에, 심장이 아프도록 두근거렸다.

불안감이 불쑥 치고 오르는 것은, 결국은 양심의 가책이 느껴져서였다. 제헌을 향해 느끼는 감정이 그릇된 것임을,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심장이 따끔따끔 쓰라렸다.

선준이랑 무사히 이혼하고 나면, 그때는 제헌 씨를 정식으로 만날 수 있을까?

죄책감으로 욱신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여원이 가냘픈 희망을 품어보았다. 하지만 선준과 갈라서고 접점이 사라지게 되면, 제헌이 과연 자신을 만나주기나 할지……. 사회적 격차뿐만 아니라, 나이와 경험에 있어서까지, 모든 일이 쉽기만 한 제헌과 모든 일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자신은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다.

최근 제헌이 여원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확실히 느껴졌다. 그러나 그 정체가 애정인지 성욕인지 비틀린 호기심인지. 아니면 그 모두인지, 그것에 대해서는 결코 알 수 없었다. 무턱대고 휩쓸려서는 안 됐다. 욕망을 위해서 위험을 감수하기에, 여원의 상황은 이미 충분히 위태롭고 아슬아슬했다.

“그러게 누가 혼자 그렇게 섹시하래…….”

모두를 당연하게 아래에 두는 태도가 위압적이면서도 압도적이라 이끌렸고, 속내가 모호하고 야릇해서 더욱 매료되었다. 이러다가 정말 큰일 난다고 아무리 스스로에게 경고해 보아도, 감정이 쉽게 덜어지지는 않았다.

“아, 세상에, 통키야!”

드르륵 드르륵. 잠깐 넋을 놓고 있던 여원은 이상한 마찰음을 듣고는 뒤돌아봤다. 통키가 이제 제법 날카로워진 발톱으로 벽지를 득득 긁고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던 건지, 엉망으로 옷이 벗겨진 벽의 몰골이 처참했다.

“이놈, 누가 이렇게 말썽 부리라고 했어!”

냥, 냐앙.

“통키야, 네가 봐봐. 이렇게 손톱으로 죄다 긁어놓으면 벽이 다치잖아.”

인상을 찌푸린 여원이 통키를 힘주어 붙들고 따끔하게 혼냈다. 하지만 여원의 손아귀 안에서도 심술궂은 얼굴을 한 통키는 전혀 반성하지 않는 태도였다.

“강통키 형 봐, 형 무섭게 화났어!”

야옹!

심지어는 유연한 등줄기를 쭉 펴더니, 저를 꽉 붙들려 하던 여원의 품에서 날렵하게 빠져나갔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힘이 세진 건지. 이제는 통키까지 속을 썩이나, 싶어 여원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대로 바닥에 드러눕다시피 한 통키가 캥캥 날카로운 울음을 뱉으며 크게 버둥거렸다.

“왜 그래, 통키야, 어디가 불편해서 그래?”

아무래도 통키가 평소와는 너무 다르게 행동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하고 얌전해서, 원래 이렇게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애가 절대 아닌데. 불길한 전조처럼, 안 좋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드드드드.

핸드폰이 떨어대는 소리에 여원이 흠칫 놀랐다. 신경이 예민해진 탓인지, 평소와 다름없이 평범한 진동 소리인데도 심장이 철렁거렸다. 여원은 밭은 숨을 몰아쉬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어, 이상하다?”

여원은 액정 위에 떠오른 이름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선준도 제헌도 아니었다. 대학교에 다닐 때 적당히 친했던 동기였다.

“여보세요?”

여원은 의아한 기색으로 동기의 전화를 받았다. 여원이 결혼한 뒤로는 교류가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

“유진아, 오랜만이야. 잘 지내지?”

―여원아. 혹시 지금 통화 괜찮아?

“어……. 무슨 일이길래 그래?”

조심스럽게 운을 떼는 친구의 목소리가 의미심장했다. 여원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친구가 착잡한 기색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원은 긴장으로 바싹 마르는 입 안을 빠르게 축였다.

―나중에 만나게 되면 얘기해 주려고 했는데……. 도저히 보다 못하겠어서.

“…….”

―너 그렇게 휴학하고, 하선준이 학교에서 네 얘기 이상하게 하고 다닌 거 알아?

“선준이가 무슨…… 얘기를 했는데?”

구체적으로 선준이 어떤 말을 했는지 아직 전혀 모르는데도, 여원은 벌써부터 섬뜩해졌다. 결혼 이후 연락한 대학교 친구들 대부분은 여원을 어색하게 대하며 대화를 회피했다. 아무리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지만, 어딘가 꺼림칙했다.

불길한 예감이 드는 와중에도 애써 아닐 거라고,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냐고 생각했었지만…….

―여원이 너 혹시, 선준이랑 결혼하려고 계획적으로 접근하거나 그런 거야?

“그게, 대체 무슨……. 내가 왜?”

―그래, 나는 딱 봐도 아닐 거라고 생각했어. 솔직히 말이 안 되잖아. 선준이가 학기 초부터 너 졸졸 쫓아다녔던 거 다들 봤는데.

“…….”

―그런데 하선준이, 음, 아무래도 여원이 너 집안 사정도 좀 어렵고 하니까……. 여원이 네가 자기 이용해서 인생 역전하려고 한 것 같다고 그래.

“……하.”

―하선준도 너랑 진지하게 만나는 건 아니어서 일부러 더 조심했다면서, 애까지 생긴 거 보니까 여원이 네가 콘돔에 구멍이라도 뚫은 건 아닌가 싶다고.

“…….”

―자기는 아직 스무 살이고, 결혼할 생각 전혀 없었는데 여원이 너 때문에 하루아침에 발목 잡혔다고 억울해하더라고.

머릿속이 삽시간에 새하얘졌다. 선준이 퍼뜨렸다는 소문의 정체는 생각 이상으로 저열했다. 띠― 귓가에 이명이 울리고 속이 엉망으로 울렸다.

“선준이가……. 그렇게 말해?”

간신히 친구에게 대꾸하는 여원의 목소리가 엉망으로 덜덜 떨렸다. 여원이 캠퍼스를 떠났으니, 선준이 두 사람의 결혼 생활에 관해 적당히 저 좋을 대로 이야기할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콘돔에 구멍이라니……. 여원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거짓말이었다. 어떻게 저런 소문을 퍼뜨릴 수가 있는지 그 시커먼 악의에 치가 떨렸다.

“아…….”

그때, 무언가 머리를 땡, 때리는 듯해 여원이 탄성을 터뜨렸다. 머릿속을 내내 맴돌던 의혹에 대한 실마리가 또렷해졌다.

거짓말은 보통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자신이 가장 감추고 싶은 치부를 덮기 위해 사실과 정반대인 이야기를 꾸며낸다. 그렇다면…….

“설마, 그렇게까지…….”

내키지도 않았던 성관계, 피임을 철저하게 했는데도 선준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 것이 내내 의아하다고 생각했었다. 선준은 일부러 콘돔에 구멍을 뚫고 자신과 섹스했던 걸까?

―어? 여원아, 방금 뭐라고 했어?

“아, 아니야……. 아무것도.”

―어차피 다들 하선준 말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으니까, 처음에는 이러다 말 줄 알았어. 그런데 이번 학기에 선준이가 중국 간 다음에도, 질 나쁜 알파 몇이 계속 소문 퍼뜨리고 다녀서.

“…….”

―어쨌든 두 사람 이미 결혼했기도 하고, 다른 사람 가정사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어.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서 전화했어.

이어지는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도 여원은 꼭 다물린 입술을 떼지 못했다. 캠퍼스에 파다하게 퍼져 있을 소문을 상상하니 어깨가 오싹하게 떨렸다. 길거리 한복판에서 발가벗겨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제 더는 학교에서 차마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혹시 선준은 여원이 이혼하고 학교로 돌아가는 일을 막으려고 일부러 이런 소문을 퍼뜨린 건가? 선준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되어 소름이 끼쳤다.

―여원아, 전화 끊긴 건 아니지? 내 말 듣고 있어?

“유진아…… 이렇게 얘기해 줘서 고마워.”

―아니야, 어쨌든 너도 알고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어, 음, 내가 나중에 또 연락할게.”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여원이 황급히 전화를 끊어냈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니. 충격과 분노로 온몸이 덜덜 떨렸다.

친구가 전화해 준 것은 물론 고마웠다. 하지만 아무리 왜곡된 이야기라 해도, 친구 역시 선준이 지껄였던 저열하고 적나라한 말들을 다 들은 후다. 수치스러워서 도무지 대화를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하, 미친 새끼.”

단박에 다리에 힘이 풀려 푹 주저앉으려는 찰나, 간신히 벽을 짚었다. 하지만 마른 몸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크게 휘청거렸다.

지독한 모멸감이었다. 끝없는 밑바닥으로 내리꽂히는 듯한 기분에 여원은 더없이 비참해졌다. 그러잖아도 여원은 학교에 돌아가는 데 부담감 느끼고 있었다. 선준이 저지른 짓은 거의 여원을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행위였다.

정말, 선준이 자신을 계획적으로 임신시킨 걸까?

다른 사람의 일이었다면,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여원이 겪어온 선준은 충분히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게다가 실상이 어떠하든, 학교에서 선준이 여원에 대한 악랄한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다는 점에는 변화가 없었다.

사람의 본성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난동을 부리다가도 가끔씩 후회하는 시늉을 할 때면 여원은 선준을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 했다. 하지만 선준은 등 뒤에서 여원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고 있었다.

지금껏 여원을 옭아매고 있던 결혼 생활은 애초에 선준이 만들어낸 구렁텅이였다. 그 사실을 깨닫자, 아직 선준이 자신의 배우자라는 이유로 제헌을 향한 끌림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던 것이 허탈해졌다.

선준은 애초에 여원을 배우자로서 존중한 적이 없었다. 여원 혼자서만 그럴 가치도 없는 사람에게 불필요한 죄책감을 느꼈다. 묵직하게 심장을 내리누르던 죄의식의 크기에 비례해 격렬한 분노가 치솟았다.

격앙된 감정으로 여원의 눈앞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어떻게든 선준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난폭한 충동이 전신을 타고 질주했다.

문득 선준이 자신과 제헌의 관계를 의심하며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기라도 할까 초조해하던 것이 떠올랐다. 오히려 그가 가장 두려워한 일을 현실로 만듦으로써, 복수해 주고 싶다는 파괴적인 충동이 일었다. 누군가는 비난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이대로 선준에게 무력하게 당하기만 할 수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지키려던 선이 툭, 끊어지면서 그동안 억누르던 욕망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해서는 안 될 이유조차 더는 느끼지 못했다. 이제 여원은 자신이 제헌을 강렬하게 원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 * *

오후가 지나는 동안 분노와 모욕감이 여원을 한차례 크게 휩쓸고 지나갔다. 그러나 여원의 내면에 휘몰아치는 폭풍과는 다르게, 저택에 찾아온 밤은 언제나처럼 고요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 버석거리는 소리가 은밀한 적막을 틈타 선명하게 울렸다.

제헌은 선준에게 치명적인 약점이자 두려움의 근원이었다. 그런 제헌을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함으로써, 여원은 선준을 비참함의 끝으로 몰아넣을 수 있었다.

아니, 사실 그 모든 건 변명이었다. 선준을 향한 복수심은 단순한 계기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더는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여원은 제헌을 욕망했다.

스스로를 억누르는 데 익숙한 여원에게 인생에서 처음으로 원하고, 탐하고 싶은 사람이 생겨났다. 한번 자각한 강렬한 욕망은 걷잡을 수 없도록 솟구쳤다. 잘못된 걸 알면서도 갈망하게 되었고, 가지고 싶어졌다.

여원은 삐걱대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나선형 계단을 타고 3층으로 비틀비틀 올랐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생생하고 강렬한 욕망을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순간은 야릇한 전율을 동반했다.

“제헌 씨.”

늦은 시각이었지만 제헌은 여원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3층 거실을 지켰다. 웅장한 암체어에 등을 기대고 있던 제헌이 제 발로 자신을 찾아온 여원을 향해 고개를 비스듬히 들어 올렸다. 야릇한 결연함이 깃든 여원의 얼굴을 집요한 시선이 빤히 훑어내렸다.

“네, 여원 씨.”

조도가 낮은 불빛 아래로 날렵하게 뻗은 제헌의 얼굴선이 드러났다. 잔뜩 숨죽인 채, 여원은 살짝 좁아진 제헌의 미간과 날카로운 코끝, 단호한 턱선을 끈끈하게 응시했다. 제헌의 입가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더니, 흐트러짐 없는 얼굴에 비틀린 충족감이 스몄다.

“제헌 씨, 저 지금 히트 사이클 아니에요.”

“…….”

“제정신이에요.”

달뜬 숨을 몰아쉰 여원이 암체어에 앉은 제헌에게 다가가 몸을 숙였다. 촉, 소리와 함께 까슬한 입술에 짧게 입맞춤했다.

“하아…….”

미지근한 온기가 닿자 눈이 절로 감겼다. 여원은 일부러 입술을 느릿하게 문질렀다. 탄탄한 가슴팍에 잠시 닿았던 손바닥이 떨어지자, 제헌의 숨소리가 한층 거칠어졌다.

여원의 촘촘한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뒤로 물러선 여원이 제헌의 처분을 순종적으로 기다렸다.

“한번 시작하면 쉽게 놓아줄 생각 없습니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습니까?”

낮게 내리깔린 제헌의 중저음이 공기를 묵직하게 가로질렀다. 어두워진 주변을 틈타고 형형한 안광이 번뜩였다. 제 소유의 것을 포착하는 육식동물 같은 시선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네, 후회 안 해요.”

거짓말이었다. 분명 언젠가,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내린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게 될 것을 여원은 잘 알았다.

그러나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남들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만을 위한 결정을 한 번쯤은 내려보고 싶었다. 다짐을 굳힌 여원이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옷 전부 다 벗고 이리로 기어와요.”

그늘진 욕망으로 점철된 시선이 여원을 빈틈없이 옭아맸다. 고압적인 명령에 반사적으로 몸이 움찔 떨렸지만, 지금 이 순간 저만큼 그 역시 자신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에 미약한 거부감은 금세 지워졌다. 여원은 홀린 듯이 옷을 벗어 내렸다.

맨살에 닿는 써늘한 공기에 유두가 뾰족하게 곤두섰다. 제헌은 오만한 시선으로 수치심으로 붉어진 여원의 가슴팍을 훑어 내렸다. 여원을 자발적으로 굴종시키는 데 성공한 지배자의 얼굴에 나른한 포만감이 번졌다.

“흐, 읏…….”

금방이라도 통째로 집어삼켜질 것만 같은, 오싹한 위기감이 전신을 타고 흘렀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여원이 제헌에게 기어갔다. 코앞까지 다가온 섹스에 대한 두려움과 야릇한 기대감으로 아랫배가 저릿했다.

“하아…….”

나직한 한숨을 뱉어낸 제헌이 지퍼를 열어 성기를 꺼냈다. 반쯤 발기해 빳빳하게 일어선 기둥이 여원의 얼굴 근처에서 툭, 길게 퉁겨졌다. 음탕하게 젖은 향이 코끝에 비릿하게 퍼졌다. 거대한 성기에는 굵은 핏줄이 우둘투둘하게 불거져 있었다.

“빨아요.”

흉포한 성기가 눈앞에 드밀어지자 고개가 절로 뒤로 젖혀졌다. 제헌은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듯 여원에게 지시했다. 나신으로 무릎 꿇은 여원은 이제 꼼짝없이 제헌의 성기를 빨아야 했다.

“네, 흑, 네에…….”

충분히 각오하고 왔는데도 쉽사리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맥없이 입술만을 달싹이자 여원에게 드리운 제헌의 시선이 한층 짙어졌다. 여원은 덜덜 떨리는 손을 제헌의 다리 사이로 뻗으려 했다.

“손 쓰지 말고.”

제헌이 여원의 뒷덜미를 단단하게 잡아챘다. 눈매가 빠듯하게 가늘어지자 여원을 내려다보는 제헌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비틀렸다. 제헌은 스스로의 욕망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고, 본격적으로 여원을 길들일 준비를 이미 마쳤다.

“왜요. 내가 여원 씨 나쁜 짓 시키는 것 같습니까?”

“흐윽…….”

압도적으로 몰아치는 긴장감에 여원은 눈물이 절로 고였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제헌이 멈출까, 비틀어진 질문에는 온 힘을 다해 고개를 도리질했다.

“아니, 아니요…….”

여원이 젖은 목소리로 달싹였다. 정말 아닌가? 더듬더듬 대답하면서도 실은 확신하지 못했다. 제헌은 다정하지만 위험하고, 배려심 넘치지만 음험했다. 어느 쪽이 진짜 모습인지 좀처럼 가늠되지 않았다.

“흣, 응, 우응…….”

그러나 처음부터 모든 게 제헌이 놓은 덫이라고 할지라도 여원은 기꺼이 사로잡히고 싶어졌다. 색이 짙은 입술을 동그랗게 벌린 여원이 제헌의 귀두 끄트머리를 입에 물었다.

큼직한 성기가 입술을 벌리고 쭉 밀려들었다. 아직 완전히 발기하지 않았는데도, 충분히 묵직한 살덩이가 입 안에 두둑이 차올랐다. 딱딱한 기둥이 숨을 쉬기 버거울 정도로 혓바닥을 꾹꾹 눌러대자, 혀 밑으로 침이 졸졸 고여들었다.

“하아…….”

“응, 우응…… 흐…….”

바닥에 손을 짚은 채로 고개만 높이 들어 올려 입술을 오물거리자, 여원의 어깨부터 등허리가 부드러운 능선을 그렸다. 입 안을 가득 메운 성기를 츱츱 빠느라 호흡이 부족해지면, 파들파들 떨리는 날개뼈 사이가 옴폭하게 패어들었다. 하얗게 드러난 여린 목덜미가 불그죽죽하게 물들어가는 것을 제헌이 흡족하게 내려다보았다.

“시키는 대로 잘 하니까 예쁘네.”

“흐, 우으…….”

여원이 성기를 빠끔 입에 물고 제헌을 올려다보았다. 말끔한 입술선을 따라 투명한 타액이 흘러내렸다. 제헌은 애완동물을 귀여워하는 것처럼 여원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수치스러웠지만, 제헌이 저를 달콤하게 옥죄자 지독하리만큼 흥분이 일었다.

“이제 슬슬 혀도 써보겠어요?”

일단 제헌의 것이 너무 크기도 했고, 여원도 펠라티오에는 익숙지가 않아서 지금까지는 입술만 간신히 오물거리는 수준이었다. 권유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여원은 제헌의 말이 사실은 명령이라는 것을 알았다. 앙, 입을 크게 벌린 여원이 젖은 혓바닥으로 기둥을 쓸어보았다.

“하아…….”

질척한 소리와 함께 말랑한 혀가 날름날름 움직이자, 입 안에 들이찬 성기가 크기를 한층 부풀렸다. 먼젓번에 제헌의 좆을 빨았을 때는 여원도 히트 사이클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점막을 뚫어버릴 기세로 거세게 꺼떡거리는 성기를 맨정신으로 받아내려니 새삼스럽게도 눈물이 핑글핑글 맺혔다.

그런 여원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헌은 뻣뻣해진 성기를 더욱 깊숙이 밀어 넣었다. 이미 입술 가장자리와 입 안쪽이 얼얼한데, 아직도 들어올 것이 더 남았다는 생각에 눈앞이 아득해졌다. 딱딱한 성기가 여린 입 안을 짓이기더니, 두툼한 귀두 끝이 목구멍을 쿡쿡 자극했다.

“캑, 으흑…….”

그러던 중 귀두 끄트머리가 여원의 목젖 부근을 잘못 찔러버렸다. 반사적으로 성기를 뱉어낸 여원이 캘룩, 마른기침을 하며 홧홧한 목을 가다듬었다. 가늘게 좁혀든 눈가가 눈물로 흥건하게 젖어들고, 헤벌어진 입술 틈새로 선분홍색 혀가 할딱거렸다. 엉망으로 흐트러진 여원의 얼굴을 내려다보던 제헌의 눈빛이 날카롭게 돌변했다.

“하, 미치겠군.”

“흣, 응, 으응…….”

우아한 낯짝으로 저속한 감탄사를 읊조린 제헌이 커다란 손으로 여원의 양 뺨을 세게 거머쥐었다. 혹시라도 제헌이 저를 혼낼까, 잔뜩 긴장한 여원이 동그란 어깨를 잔뜩 웅크렸다. 제헌은 다소곳하게 다물린 입술에 성기를 다시금 들이밀었다.

“하, 응, 아응…….”

여원의 턱을 고정한 제헌이 흉흉하게 부풀어 오른 성기를 퍽퍽 박아댔다. 방금처럼 목젖을 잘못 찌르지 않게 신경 쓰면서도, 제헌은 여원이 다치지 않는 선에서 제 욕망을 차고 넘치게 채웠다. 한번 안으로 세게 처박을 때마다 여원의 마른 몸이 팔랑팔랑 흔들렸다. 숨을 쉬기가 어렵게 빠듯하게 박아 넣을 때도, 여원은 제헌이 시킨 대로 혀를 내어 기둥을 핥기 위해 노력했다.

“응, 흐으으…….”

입 안을 밀고 들어간 성기가 목구멍의 가장 안쪽까지 톡톡 건드리자, 콧등이 꺼슬꺼슬한 음모에 파묻어졌다. 여원의 부드러운 눈초리에 눈물이 맺혀들 즈음, 욕심껏 입 안을 짓이기던 기둥이 꿀렁꿀렁 정액을 토해냈다. 눈이 잔뜩 풀린 여원이 벼락에라도 맞은 것처럼 몸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전부 삼켜요.”

캘룩, 여원이 얕은 기침을 토해냈다. 제헌의 새까만 눈동자가 음습한 욕망에 젖었다. 제헌의 맹렬한 눈빛에 압도당한 여원은 헐떡이면서도 비릿한 정액을 꿀꺽꿀꺽 삼켰다. 입술을 벌리고 들어온 길쭉한 손가락이, 여원이 잘 삼켜냈는지 검사하듯 혓바닥과 점막을 꼼꼼하게 훑어내렸다.

“아, 으…… 후응…….”

장밋빛으로 물든 여원의 자그마한 얼굴에 울음기가 스며들었다. 기껏 용기를 내어 제헌을 원한다고 말했는데, 제헌은 목구멍 깊숙이 성기를 밀어 넣고 아주 오랫동안 또 집요하게 빨게 시켰다. 게다가 성기는 어찌나 크던지, 내내 벌어져 있던 입술이 얼얼하고 살짝 찢어진 입가가 따끔따끔 쓰라렸다.

“제헌, 흐, 씨…… 아까 전에, 흐…….”

꼭 제헌의 욕구 해소를 위해서 입을 사용당한 것만 같아 여원은 서러워졌다. 게다가 입에 성기를 물고 눈물을 찔끔거리던 제 얼굴이 못생겨 보였을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도 제헌의 성기를 빤 것만으로도 아랫도리가 반쯤 발기해 있어서, 낯선 감각에 온통 혼란스러웠다.

“잘 견뎠어요, 여원 씨.”

제헌은 앞머리를 들어 올려 맨질맨질한 여원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곤 여원의 몸을 끌어 올려 품에 안았다. 제헌의 허리께에 다리가 감겨들자, 여원은 내내 엎드리고 있던 무릎이 욱신거렸다. 제헌이 차분한 태도로 여원의 어깻죽지와 등허리를 다독여줬지만, 놀라고 서글픈 기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여원을 번쩍 안아 든 제헌이 복도를 가로지르고, 침실 문을 밀어젖혔다. 3층에 올라올 때마다 굳게 닫혀 있던 침실 문 너머를 내심 궁금해했다. 그러나 마침내 제헌의 침대 위에 눕게 됐음에도, 여원은 제헌의 내밀하고 사적인 공간을 차지했다는 기쁨을 만끽할 새가 없었다.

“여원 씨?”

무심한 얼굴을 하고, 압도적인 체격으로 제게 기다란 그늘을 드리우는 제헌이 여원은 이 순간 지나치게 낯설게 느껴졌다.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지만 그래도 분명 저를 함부로 하거나 나쁘게 대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겨우 시작인데도, 물밀 듯이 밀려드는 서러움과 두려움에 여원은 제헌에게 안겨 있는 내내 찔끔찔끔 울고 있었다.

“이런. 언제부터 이렇게 울고 있었어요?”

제헌이 퍽 가엾다는 듯, 제 침대 한복판에서 얕게 훌쩍이는 여원을 내려다봤다. 우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제헌에게 안겨 있는 내내 여원은 애써 숨죽이고 있었다. 지금도 별것 아니라고 고개를 저어내려 했다. 그러나 목에 맺힌 뜨끈한 응어리가 찌르르 울리더니 눈동자에 흠뻑 고여들었던 눈물이 뺨을 타고 고요하게 흘러내렸다.

“흣, 읍…… 흐윽…….”

“왜 우는지 나한테 말 안 해줄 겁니까?”

방금 전까지 생각보다 거칠게 다루어져서, 여원은 제헌이 무시무시한 얼굴을 하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여원에게 펠라티오를 시키는 동안 매섭게 일그러져 있던 얼굴이 조금 느슨하게 풀어져 있었다. 제헌은 여원을 향해 부드럽게 눈을 휘어 보이고는, 단단한 손으로 눈물로 푹 적셔진 뺨을 꼼꼼하게 닦아주었다.

“……저는, 흐, 다 벗고 있는데, 제헌 씨만…… 옷, 입고 있어서요.”

여전히 앞섶만 흐트러져 있을 뿐, 셔츠와 바지를 갖춰 입은 제헌에게 흘긋, 여원의 시선이 닿았다. 여원은 적당한 핑계를 대어 진짜 이유를 숨겼다. 호기롭게 먼저 유혹해 놓고, 펠라티오 하나 제대로 못 하고 울어대는 어린 오메가는 경험 많은 제헌의 눈에 매력 없을 것 같았다. 제헌에게만은 지금 제가 잘 버티고, 견디는 것처럼 보이고 싶었다.

“그것 때문에 서러웠어요?”

“…….”

“…….”

“흐, 으…… 네에…….”

금방이라도 톡, 터질 듯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여원이 입술을 힘없이 달싹거렸다. 살짝 찌푸려진 눈썹을 슬쩍 들어 올린 제헌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픽 웃어버렸다. 제헌은 대답 대신 여원을 향해 숙인 상반신을 일으키고, 얇은 니트와 바지를 흔쾌히 벗어버렸다.

옷가지 하나 없는 맨몸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취약한 상태여야 했다. 그러나 여원이 보란 듯이 옷을 벗은 제헌은 적나라한 알몸을 드러내고도 전혀 거리끼는 기색 없이 당당했다. 저택의 주인은 벌거벗은 후에도 권위가 조금도 훼손되지 않았다.

“와아…….”

제헌의 벗은 몸을 처음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 여원이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워낙 좋은 골격을 타고난 것은 옷 위로도 느껴졌지만, 완벽한 자기 통제와 함께 꾸준하게 관리된 탄탄한 몸은 상상 이상으로 근사했다. 조각상처럼 빈틈없이 짜인 근육을 보자 여원은 도무지 제헌이 저와 같은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아까 열심히 좆 빨았으니까, 여원 씨 이제 상 받아야지.”

“흐, 제헌 씨이, 앗, 아응…….”

꾹 참고 입 밖으로 내지 않았는데도, 제헌은 아까 너무 거칠게 대해서 무서웠던 여원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본 것만 같았다. 제헌이 단단한 품에 여원을 끌어안고 가볍고 달콤하게 입술을 빨아당겼다. 제헌의 질깃한 피부가 말랑한 맨살에 문질러지고, 온기가 생생하게 전해지자 여원의 심장이 콩닥콩닥 뛰어올랐다.

“아, 흣, 으응…… 제헌 씨…….”

일방적이라는 기분이 들지 않게끔, 제헌은 여원의 몸 곳곳을 부드럽게 애무했다. 실제로 예민한 곳을 찾아내 절묘하게 문지르는 손길이 능숙하기도 했지만, 여원에게는 좋아하는 남자에게 만져진다는 정신적인 쾌감이 더욱 컸다. 울어서 코끝과 눈가가 빨갛게 달아오른 여원이 금세 숨을 할딱거리면서 둥그런 신음을 내뱉었다.

“하아…….”

가릴 게 없는 것처럼 제 욕정만을 채우던 남자가, 저를 겁내지 말라는 듯 다시금 여원을 다정하게 대했다. 못내 헷갈렸지만, 그래도 여원은 좋기만 했다. 엉덩이를 녹지근하게 주무르던 커다란 손바닥이 말캉한 회음부와 구멍 주변을 쥐어짜듯이 문질렀다. 꺼끌꺼끌한 굳은살에 여린 안쪽 살이 비벼지자 여원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아, 흑, 제헌 씨…….”

적나라한 감촉을 받아들이는 여원의 목덜미에 땀이 송골송골 배어났다. 이어 늘씬하게 뻗은 다리를 들어 올리더니, 제헌이 여원의 몸을 반으로 접었다. 허벅지를 끝까지 밀어 올리고, 여원이 양손으로 직접 무릎 아래를 붙들고 지탱하게끔 했다.

“흑, 응, 으응…….”

허벅지 안쪽 근육이 팽팽하게 땅겨지면서 통통한 둔부가 둥실 솟아올랐다. 제헌의 앞에서 다리를 활짝 벌리고, 스스로 구멍을 내보이는 듯한 자세였다. 부끄러움에 여원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었다. 하지만 무릎 아래를 잡은 손을 함부로 놓지는 못했다.

“놓치지 말고 꽉 잡아요.”

서늘한 얼굴을 한 제헌이 여원을 엄격하게 타일렀다. 마냥 거칠지도, 그렇다고 마냥 다정하지도 않아서 제헌이 무언가를 시키면 여원은 좀체 반항이라는 걸 할 수가 없었다.

“네, 흣, 응…… 네!”

사지가 긴장으로 팽팽하게 땅겨지고,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 입구가 살짝 뻐끔거렸다. 아주 약간 젖어 있는 그곳은, 제헌이 뚫어져라 바라보자 마치 그 시선을 의식이라도 하듯 벌름거렸다. 입꼬리를 슬쩍 비튼 제헌이 여원의 구멍 위에 침을 뱉었다.

“아, 흐, 아아앙.”

놀랄 새도 없이, 골반이 한계까지 확 벌어지는 느낌이 들더니 젖은 입구로 성기가 갑작스레 들이밀어졌다. 퍽, 안으로 들어오는 거대한 기둥에 눈을 휘둥그레 뜬 여원이 자지러졌다. 성기를 문 안쪽이 빠르게 수축하자 제헌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크게 아랑곳하지 않고 여원의 안으로 더욱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후, 읏…….”

삽입만으로 몸이 양쪽으로 쩍 갈라지는 듯한 감각에 여원은 차마 숨을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그러나 거대한 성기는 끝없이 진입을 거듭했다. 바르작거리는 여원의 안으로 제헌은 뿌리 끝까지 저를 박아 넣었다.

“앙, 흑…… 아앙…….”

이제 두 번째였지만, 여원은 제헌의 거대한 성기가 조금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니, 맨정신으로 몸을 얽자 이물감이 더욱 생경하게만 느껴졌다. 제헌에게 몰입해 잔뜩 고조된 때, 쾌락이 득달같이 내리꽂히자 온몸이 흐물흐물해졌다. 이래서야 지금까지 제헌이 아닌 다른 사람과 했던 섹스는 전부 애들 장난 같았다.

“하, 여원 씨…….”

침대 위에 양손을 올려놓은 제헌이 허리 힘만을 사용해 여원의 안에 성기를 쿵쿵 박아 넣었다. 골반이 노련하게 움직이며 성기가 안쪽을 둥그렇게 쓸어내리자, 잔뜩 긴장해 움츠러들었던 내벽이 물컹물컹 녹아내렸다.

“아, 으응, 제헌 씨! 흐앙, 잠깐.”

이윽고 뭉툭한 귀두가 내벽 안쪽, 살짝 도톰하게 부어오른 부위를 직격으로 비벼대자 여원이 크게 소스라쳤다. 삽입되는 각도를 비스듬히 기울이자 여원이 허리를 푸드덕 떨었다. 지나친 쾌감에 당황해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제헌은 멈추지 않고 여원이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을 성기 끝으로 집요하게 찔러댔다.

“왜요?”

여원의 구멍에 성기를 깊숙이 파묻은 제헌이 숨을 낮게 몰아쉬었다. 새까만 눈동자가 정염으로 잔뜩 혼탁해져 있었다.

“지금 너무, 흣, 너무…… 커요.”

“하…….”

여원이 숨을 헐떡이며 어려움을 호소하자, 무표정하던 제헌의 얼굴에 노골적인 만족감이 깃들었다. 골반을 크게 움직인 제헌이 여원의 안쪽 더욱 깊숙이 성기를 밀어 넣었다. 한계까지 성기를 삼킨 입구의 주름이 팽팽하게 펴졌다. 까슬까슬한 음모가 입구 근처를 쿡쿡 찌르고, 여린 엉덩이 살을 거칠게 쓸었다.

“뭐가요? 내 자지가?”

“흣, 네에. 거기, 이상한 데까지, 흣, 자꾸, 닿아서…….”

“선준이는 여기까지 안 넣어줬나 보죠?”

여원의 아랫배가 성기 모양을 따라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제헌은 짐승 같은 교접을 확인이라도 하는 것처럼 마르고 판판한 배에 불거진 불뚝한 성기 윤곽을 제 손으로 직접 쓸어내렸다. 세련된 표피를 벗어낸 제헌은 거침없이 노골적이고 저속하게 굴었다. 당황스럽고 창피했지만, 그만큼 더 흥분되었다.

“흑, 응, 으으응……. 이상해.”

“…….”

“안 돼, 흑, 제헌 씨, 이러다가 안에, 학, 앙, 망가져요.”

너무 힘들었지만, 여원은 제헌이 시키는 대로 무릎을 살뜰하게 받쳐 들고 있었다. 그렇지만 뽀얗게 드러난 가랑이 안쪽을 쑥쑥 드나드는 성기가 정말이지 너무 컸고, 자꾸만 이상한 곳을 건드리는 탓에 쾌감이 지나쳐 금방이라도 몸이 푹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여원이 버거워하며 눈물을 주르륵 흘리자, 제헌의 얼굴에 감돌던 지배적인 여유가 순식간에 증발했다.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닌데, 사람 돌게 만드는 것도 재주입니다?”

하, 신음을 길게 뱉어낸 제헌이 여원에게서 성기를 쑥 뽑아냈다. 뻥 뚫린 구멍이 크게 뻐끔거리더니, 이내 확 주름지게 오므라들었다. 크고 딱딱해서 너무 아프고 힘들었는데, 막상 빠져나가자 조금 허전하기도 했다.

여원은 온몸이 흐물흐물하게 풀어져 속눈썹만 깜박거렸다. 제헌이 그런 여원을 침대 위에 길게 엎드리게끔 했다. 제헌이 여원의 골반 위에 올라앉자, 묵직하게 덜렁거리는 딱딱한 성기가 엉덩이 부근을 쿡쿡 찔러댔다.

“허벅지 꽉 다물어요.”

그대로 성기가 삽입될 거라 생각해 눈을 꼭 감았지만, 정작 제헌이 선택한 곳은 여원의 허벅지였다. 뜨끈한 살덩이가 다리 사이를 파고들자 여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찰싹, 제헌이 아프지 않게 엉덩이를 때렸다. 그제야 반사적으로 허벅지를 오므렸다.

“앗, 흐…… 아앙…….”

침대에 납작 엎드린 여원의 허벅지 사이로 꺼끌꺼끌하고 흉흉한 성기가 쑥쑥 드나들었다. 한발 늦게 제헌의 의도를 이해한 여원이 골반에 힘을 꽉 주고 다리를 최대한 움츠렸다.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제헌은 벌름거리는 구멍에 마구잡이로 손가락을 두어 개 쑤셔대기까지 했다.

“아, 하앙…… 제헌 씨…….”

“후…….”

여원은 지금껏 이렇게까지 적나라한 행위를 감히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서투름을 완전히 감추지 못하고, 여원이 제헌의 움직임에 따라 어설프게 허리를 들썩였다. 제헌은 크게 개의치 않고 여원의 하반신을 완벽하게 짓누르듯이, 계속해서 허벅지와 구멍을 좆과 손가락으로 자극해댔다.

“아파서 못 받겠다더니, 욕심 많은 구멍이네.”

볼깃살 바로 아래에서 성기가 쑥쑥 드나들자, 옴칠거리는 구멍이 반사적으로 애액을 질금질금 흘려댔다.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중얼거려, 여원의 목덜미가 온통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이내 애액이 허벅지를 줄줄 타고 흘러내리고, 젖은 살갗에 거칠게 드나드는 성기가 비벼지며 질척질척한 소리가 번졌다.

“아니, 흑, 아닌데…… 하앙…….”

“하, 후으…….”

“흑, 으응. 제헌 씨, 아앙…….”

잔뜩 붉어진 살결에 따끔따끔한 통각이 번지는 것조차 색다른 자극처럼 느껴졌다. 여원은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살래살래 내젓다가, 벅차도록 치미는 쾌감에 코끝을 시트 위로 문질렀다. 먼젓번에 여원은 단지 히트 사이클 때문에 이성을 잃었던 게 아니었다. 이 남자와의 섹스는 이 정도로까지 본능적이구나, 눈앞이 아득해졌다.

“제헌 씨, 흑, 아응, 제헌…….”

“후, 흐으…….”

퍽퍽 성기를 올려치는 격렬한 움직임에 여원의 볼깃살과 허벅지 안쪽이 꺼슬꺼슬한 음모에 쓸려 발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그 모양을 흡족하게 내려다보던 제헌이 애액에 흠뻑 젖어든 오른손으로 여원의 엉덩이를 꽉 움켜쥐었다. 뒤이어 여원의 허벅지 위로 좆물이 흥건하게 싸질러졌다.

“하…… 아, 흐으으…….”

땀과 페로몬, 정액으로 흠뻑 전 하반신이 퍼들퍼들 떨렸다. 그대로 제헌의 묵직한 몸이 여원의 몸을 감싸듯이 내리누르자, 경험한 적 없는 종류의 압도적인 쾌락이 전신에 몰아쳤다. 여원은 제 온몸의 감각을 모조리 파악하고 조율하는 제헌에게 완벽하게 지배당했다. 제헌의 밑에서 빈틈없이 짓눌리며 여원은 달콤한 속박에 황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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