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족쇄
저택에 들어온 지도 벌써 몇 주가 지났지만, 여원은 아직도 자신이 가족보다는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사람 간의 대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실내에는 백색 소음만이 가득했다. 날이 밝으면 알파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 저택을 떠나갔고, 화려하고 적막한 저택에서 여원은 거의 매 순간 혼자였다.
유령처럼 맥없이 복도를 걸어 다니던 여원이, 거대한 액자 앞에서 발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아…….”
복도 정중앙에는 여원과 선준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었다. 당사자인 두 사람 중 누구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 기이한 결혼식 사진이었다.
예식 당일 여원이 배가 불러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3주 만에 다급하게 결혼을 준비했다.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을 피하기 위해 가까운 친지만 초청해 조촐한 결혼식을 치렀다.
‘우리 가문에서도 이런 일이 생기는군요. 스무 살에 혼전 임신이라니,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가정 교육을 못 받아 그런 건지…….’
‘그래도, 제 형도 후사도 못 본 채 이혼했으니, 저렇게라도 대를 이어가는 게 저 집 형제에겐 차라리 나을 수도 있을 게다.’
식을 치르기 전, 여원은 노골적인 품평을 늘어놓는 선준의 친척들을 화장실에서 마주쳤다. 그러나 민망한 기색만 내비칠 뿐, 그들은 오늘 처음 보는 여원에게 결코 미안하다고 사과하지는 않았다.
집안 분위기는 시대의 흐름이 무색하게 여전히 보수적이고 결벽적이었다. 알파 후손을 귀히 여기면서도, 여전히 혼전 임신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치부처럼 여겼다.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은 신랑인 여원과 선준이 아닌 제헌의 눈치만을 살폈다. 결혼식 비용을 전부 제헌이 부담했으니, 실질적으로는 제헌이 가장 깊이 관여한 결혼식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평생토록 서로만을 사랑하며 살 것을 맹세합니까?’
‘……네.’
주례의 질문에 선준이 어딘가 떨떠름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여원을 설득하기 위해 열을 올리던 선준은 정작 결혼 승낙을 받은 뒤로는 묘하게 태도가 시들해졌다. 매사에 의욕을 잃어버린 것처럼 구는 탓에, 여원은 결혼 준비를 혼자 떠맡다시피 했다.
선준도 아직 어린 나이이니, 결혼을 앞두고 심란했을 수도 있겠다. 애써 이해해 보려 했지만, 결혼식에서조차 울적한 얼굴을 하고 있는 선준을 보고는 여원도 서운했다. 그러나 정작 그 옆에 선 여원 역시도, 다가올 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표정이 어두웠다.
‘그래, 부부가 결혼 이후에 저택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네, 맞습니다.’
‘이제 동생으로도 모자라서, 그 배우자까지 떠맡아야 한다니 제헌이 네가 고생이 참 많구나. 너희 부모님이 핏덩이들 남겨두고 그리 갑작스레 세상을 뜨지만 않았더라면…….’
‘숙부님, 걱정이 지나치십니다.’
‘…….’
‘선준이도 이제 성인입니다. 저는 형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을 다할 뿐이고요.’
피로연에서 늙은 친척은 능구렁이 같은 얼굴로 집안 속사정을 떠보려 했다. 제헌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웃는 얼굴로 그를 받아쳤다. 제헌의 숙부라는 사람이 비릿한 눈으로 여원을 훑어보았다. 재벌 가문의 알력 다툼이야 여원이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저를 얕보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스스로에게도 떳떳한 결혼이 아니어서, 축하를 바라지는 않았다. 그러나 편견 가득한 시선을 받아내자 수치심으로 심장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여원은 신혼여행도 없이 제헌의 저택으로 곧바로 들어왔다. 서울에서 한 시간 이상은 떨어진 교외에 자리한 저택은 민가를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하고 외진 땅 한복판에 있었다.
아침이 되면 선준은 학교에 가고, 제헌은 회사로 출근했다. 저택에 홀로 남겨진 여원은 쉽게 무료해졌고, 금세 외로워졌다. 답답한 마음에 집 밖으로 나가보았지만, 기반 시설이 전혀 없는 허허벌판이라 차량 없이는 걸어서 돌아다니는 게 불가능했다. 괜한 아쉬움에 정원 벤치에 앉아서 발을 몇 번 구르다가, 지쳐 되돌아갔다.
‘선준아, 나 서울에 가게 차 좀 불러주면 안 돼?’
‘갑자기 서울은 왜? 네가 굳이 밖에 나가야 할 일이 있어?’
‘그런 건 아니지만……. 집에만 있으면 너무 답답해서.’
‘그런데 너 아직 임신 초기인데, 무리해서 움직이면 안 되는 거 아냐?’
‘어? 그렇기야 하지만…….’
‘게다가 밖에 나가려면 기사님 불러야 하는데, 네가 심심하다고 사람 오라 가라 하면 내가 뭐가 돼.’
어렵사리 이야기를 꺼내보았지만, 선준은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여원의 요청을 딱 잘라 거절했다. 자존심도 좀 상하고, 아쉬운 소리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여원은 대신 대중교통편을 검색해 봤다.
워낙에 외진 동네라 버스가 70분에 한 대씩 있었다. 다음날, 여원은 굽이진 길을 한참을 타고 올라 버스 정류장에 간신히 다다랐다. 유명무실한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는 버스를 기다려 도착한 시내는 가게가 듬성듬성 들어서 꾀죄죄했다. 한나절 남짓의 외출만으로도 집에 돌아온 여원은 녹초가 되어버렸다.
물론 병원에 정기 문진을 받으러 갈 때는, 여원 역시 서울로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없을 때는, 외출이 허락되지 않았다.
고립.
아무리 떨쳐 내려고 애써도, 끈질기리만큼 요 며칠 여원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단어였다. 여원에게 선준과의 결혼은 곧 외부 세계로부터의 고립을 의미했다.
“아니야, 나 갇혀 있는 거…… 아니잖아.”
스스로의 생각에 퍼뜩 놀란 여원이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저택에서 여원은 부족함 없이 호의호식했다. 원하는 물건은 거의 모두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갇혀 있다니…….
자기연민은 어떤 상황이든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스스로의 신세를 지나치게 비관할 필요도 없다. 실제로 결혼 이후 여원은 이전보다 객관적으로 훨씬 나은 삶을 누리고 있었다.
“저기요.”
아무래도 최근 스트레스가 심했던 모양이다. 외롭다고 느껴지는 기분이 드는 것일 뿐, 사실 여원은 저택에 혼자 있는 것도 아니었다. 소파 위에 맥없이 늘어져 있던 몸을 벌떡 일으킨 여원이 보란 듯이 사용인을 불렀다.
“네, 여원 님.”
고풍스러운 저택에는 섬세하게 조각된 목조 가구가 즐비했다. 경매에서 매입한 값비싼 도자기와 예술 작품은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하게 관리되었다.
사용인은 액자를 마른걸레로 꼼꼼히 닦아내다 여원의 부름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차박차박 복도를 가로질러온 사용인이 깍듯하게 허리를 굽혔다.
“오늘 날씨가…… 참 선선하고 좋은 것 같아요, 그렇죠?”
“네.”
여원이 가벼운 대화를 시도했다. 상대가 누구라도 이어갈 수 있는, 밋밋하고 평범한 이야기였다.
“올해 여름이 유난히 더운 편인가요? 아니, 생각해 보니 작년에도 꽤 더웠던 것 같기도 하고요.”
여원은 공감을 구하며 애써 밝게 웃어 보였다. 그러나 그 웃음의 이면은 불안하고 절박했다.
“…….”
사용인은 입을 꿰매기라도 한 것처럼 침묵을 지켰다. 대답 대신 기계적인 동작으로 고개를 숙여 여원의 시선을 피했다. 실낱같은 기대가 어그러지고, 여원의 얼굴이 바스락 일그러졌다.
“여원 님, 혹여 저에게 따로 주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한동안 명령을 기다리던 사용인이 내어놓은 질문이 여원을 무안하게 했다.
“그런 건 물론 아니지만요…….”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사용인은 여원에게 별다른 용건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금세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 여원이 방해했던 걸레질을 묵묵하게 계속했다.
“…….”
“…….”
마른걸레가 매끈매끈한 도자기를 닦아내는 연하고 부드러운 소음을 제외하면 사방이 고요하기만 했다. 건조한 적막이 견디기 힘들어, 여원은 아랫입술을 아프게 깨물었다.
화려하고 완벽하지만, 인간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저택. 여원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다만 집을 지키는 일, 아니 사실은 그마저도 아니었다. 집을 돌보는 것은 사용인들의 일이었기에, 그저 집 안에 머무르기만 하는 것이 여원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뭘 했다고 벌써 시간이 10시나 됐지?”
수풀이 무성하게 우거진 정원이 어둠에 젖어 불길하게 출렁거렸다. 여원은 창밖의 풍경을 홀린 듯이 건너다봤다. 그러다 이유 모를 조급함으로 선준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안 받네…….”
역시나 선준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여원은 얼굴을 감싸 쥐고 한숨을 폭 내쉬었다. 임신 이후 호르몬이 불안정해져 여원은 부쩍 누군가 제 옆에 있어주기를 바랐다. 아이 아빠인 선준이 저택에서 저와 함께 지내며 태교도 같이해 주기를.
“늦을 거면 미리 연락이라도 좀 하지.”
여름 방학에 계절 학기 수강 신청을 한 선준은 수업을 핑계로 늘 집을 비웠다. 시험 공부며 과제며, 이런저런 변명을 주워섬기며 밤늦게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연애할 때는 지겨우리만치 저를 졸졸 쫓아다녔던 선준의 얼굴을 결혼 후 같은 집에 살고 나면서부터는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선준 역시 여원과 마찬가지로 아이의 아빠였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인데도, 여원은 벌써부터 육아를 혼자서만 도맡고 있었다.
신혼 초기에 이렇게 어영부영 넘어가다가는 선준이 지금과 같은 상황을 당연하게 여길 수도 있었다. 오늘에야말로 이 문제에 대해서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했다.
“하암…….”
여원은 2층 거실에서 선준이 집에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무료한 표정으로 TV 채널을 돌려 보기를 얼마간, 그마저도 금세 질려 화면을 종료했다. 소파에 몸을 늘어뜨린 여원이 입을 틀어막고 작게 하품했다.
임신 이후 잠이 많아져서인지 금세 전신이 나른해졌다. 여원은 무거워진 고개를 겨우 가누고 꾸벅꾸벅 졸다 깨기를 반복했다.
“아직 자면 안 돼…….”
토끼처럼 새빨개진 눈을 거세게 깜빡인 여원은 아랫입술을 아프게 깨물며 잠을 참았다.
그러나 노력이 무색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 톡 곯아떨어졌다.
“강여원.”
마른 몸을 작게 웅크리고 잠들어 있던 여원은 제 이름을 부르는 까칠한 목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선준이었다.
“우응…….”
젖은 수건처럼 소파 위에 축 늘어진 여원이 도톰한 눈두덩이를 비비적거렸다. 동그란 뺨은 잠기운이 듬뿍 묻어 통통했다.
“왜 이 늦은 시간까지 거실에서 청승을 떨고 있어. 방에 들어가 자질 않고.”
배려 없는 말투가 여원을 아프게 찔렀다. 제 꼴이 그렇게 볼썽사나웠나 싶어, 여원은 마른 몸에 걸친 얇은 파자마를 내려다봤다. 비척비척 자리에서 일어선 여원이 주섬주섬 팔을 들어 올려 가슴께를 가렸다.
“아니, 선준이 너 기다리느라 못 잔 거잖아…….”
비몽사몽 중에도 선준의 면박이 부당하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러나 선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무척 짜증스럽다는 듯 얼굴을 확 구겼다. 잠이 확 깨는 동시에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었다.
“나를 기다렸다고? 너는 애가 왜 이렇게 미련하게 구냐.”
“그게 아니라…….”
“지금 시간이 새벽 3시 반이다, 3시 반, 어?”
매서운 말투에 서러움이 울컥 밀려왔다. 선준이 제때 들어왔다면 자신이 이렇게 늦게까지, 그러니까 청승맞게……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어휴, 진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선준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한발 늦게 얼큰한 술 냄새가 흠씬 밀려왔다. 연락도 없이 새벽에 집에 들어오더니, 선준은 술에 잔뜩 찌든 채였다.
“하선준, 너 저녁 내내 전화도 제대로 안 받았잖아. 그래서…….”
“전화 안 받으면 사람이 많이 바쁜가 보다, 그렇게 알아서 생각하면 좀 안 돼?”
억울한 심정에 여원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선준은 득달같이 여원의 말을 끊고 큰소리쳤다. 황당함이 목 끝까지 뻐근하게 치밀어 말문이 다 막혔다.
지나치게 당당한 태도에 순간 여원마저 헷갈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 선준이 미안해해야 할 상황이었다.
“너 요즘 매일같이 술에 취해서 들어오는 거야…… 그래, 약속이 겹치다 보면 그럴 수 있다 쳐.”
“…….”
“그치만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도 있는데, 적어도 늦을 거면 미리 얘기해 줘야 하는 거 아냐?”
여원은 싸움이나 갈등으로 인한 긴장을 극도로 불편해했다. 평소라면 서로 감정 상하기 싫다는 생각에 이쯤에서 물러났을 것이다. 그러나 선준이 뻔뻔하게 나오자 여원도 더더욱 화가 났다.
“누가 언제 너한테 나 기다려달라고 했냐?”
“뭐라고?”
“아니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혼자 해놓고 나한테 성질인데.”
“네 눈엔 지금 내가 너한테 성질내는 것처럼 보여?”
“그래. 아, 씨. 너 이런 앤 줄 몰랐는데, 사람이 왜 이렇게 질척거리냐?”
선준이 지겨워 죽겠다는 듯 면박을 주자 여원은 입이 떡 벌어졌다. 아무리 술에 취했다지만 막말이 정도가 심했다.
“하선준. 너 방금 나한테 뭐라고 했어? 다시 한번 똑똑히 말해 봐.”
“아니…… 하, 참. 근데 사실이 그렇잖아.”
“사실이 뭐!”
“강여원 너야 어차피 하루 종일 집에만 있지만, 나는 아니라고.”
“…….”
“수업도 들어야 하고 사람들도 만나면서 인맥도 쌓느라 바빠 죽겠는데, 내 입장도 좀 생각해 주면 안 돼?”
“하.”
입장 바꿔 생각해 보라니, 여원이 선준에게 간절히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면서도, 선준은 이제 제 입장까지 이해해 달라 여원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매일같이 술 취해서 들어오는 게, 그게 너한테는 그렇게 중요한 일이야?”
“……야, 강여원.”
“너는 내가 바보인 줄 알지. 맨날 이래서 바쁘다, 저래서 바쁘다 변명만 하고.”
“…….”
“사람이 참는 데도 한계가 있어. 우리 오늘은 제대로 얘기 좀 해.”
“무슨 얘기를…….”
“솔직히, 계절 학기라서 과제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잖아. 그냥 집에 들어오기 싫어서 핑계 대는 거 아냐?”
되도록 좋게좋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선준의 무례한 태도에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평소 온유한 성격인 여원이 격앙된 태도로 나올 줄은 몰랐는지, 선준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야, 너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 오늘따라 너무 예민한 것 같은데…….”
아까보다는 기세가 수그러든 선준이 말을 건성으로 얼버무렸다. 그러면서도 선준은 여원의 말을 부정하지는 못했다. 역시 그동안 내내 거짓말로 일관해 왔구나 싶어 허탈해졌다.
“내가, 내가 지금 예민하다고?”
“아니, 솔직히 그렇잖아. 막 달려들어서는, 다짜고짜 화부터 내면 대체 어쩌라는 건지…….”
“하선준.”
“아, 또 왜.”
“이럴 거면 너 왜 나한테 결혼하자고, 그렇게 매달렸어?”
불도저처럼 결혼을 밀어붙여 놓고도, 정작 저택에 들어온 후 선준은 여원에게 심드렁했다.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된 여원이 바라는 관심과 애정을 부담스럽게 여겼다.
마치 처음부터 여원을 이 저택에 데려오는 것만이 목적이어서, 그다음부터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듯이.
“나도, 나도 집에만 있으니까 너무 답답하단 말이야!”
그동안 혼자서 끙끙 앓으며 쌓아왔던 것들이 팍 터트려졌다. 맑은 눈물방울이 여원의 뺨을 타고 또륵 흘러내렸다.
“밖으로 나가봤자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집안에는 이야기할 사람도 없어서 숨이 턱턱 막혀.”
“여원아…….”
“내가 투명인간이라도 된 것 같아서, 갑갑하고 울적해 미치겠다고.”
“워, 너무 흥분하지 말고…….”
“이 집에서 나를 신경 쓰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
뻑뻑해지는 눈을 부릅뜨고 선준을 노려보았다. 제 생각을 의연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뭉쳤던 설움을 겨우 토해내자 감정이 더욱 격앙되었다. 흡, 숨을 삼킨 여원이 흘러내린 눈물을 다급하게 닦아냈다.
“흐윽…….”
“아, 왜 갑자기 또 울고 그러냐, 어?”
선준은 난감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는 여원을 답삭 끌어안았다. 이를 악문 여원이 선준의 가슴팍을 퍽, 밀쳐냈다.
“야, 강여워언.”
그러나 선준은 물러나는 대신 여원을 더욱 강하게 옭아맸다. 마지못한 기색으로 여원의 어깻죽지를 토닥거렸다.
“그래그래. 내가 잘못했어, 어?”
“흣…….”
“다 내가 죽일 놈이지, 죽일 놈이야.”
선준이 건성으로 사과를 늘어놓았다. 여원이 힘들어하는 모습에도 선준은 딱히 마음 아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여원을 적당히 달래서 빨리 상황을 종결시키려는 심산이 훤히 드러났다.
“그리고…… 이 집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단 말이야.”
여원은 북받치는 울음을 겨우 안으로 삼켰다. 떨리는 목소리로 불안의 근원을 토로하는 여원의 눈동자가 엉망으로 흔들렸다.
“뭐? 냄새가 난다고?”
“어, 혼자 있을 때마다 자꾸만 여기 냄새 때문에 기분이…….”
선준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원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었다.
“하…….”
여원은 입술을 잘근 깨물고 일순 말을 멈췄다. 분명 이런 반응일 것이라고 생각해, 그동안 이야기를 꺼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아니, 이건 대체 또.”
“그치만…… 진짜로 냄새가…….”
하지만 무작정 덮어두기에는, 이따금 소름 끼칠 정도로 두려워졌다. 출처를 모르는 음산한 냄새가 저택 곳곳에 위험하게 출렁거렸다.
“이리 와봐, 여원아.”
“…….”
“야, 집에서 냄새가 나기는 무슨…… 너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그래, 어?”
이렇게나 노골적인데도, 선준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걸까.
“여원이 네가 요즘 스트레스를 좀 많이 받은 모양인데. 잘 생각해 보면 이렇게까지 난리 칠 일도 절대 아니야.”
“하…….”
“네가 뭐 여기 감금이라도 당한 것도 아니고, 어? 원하면 언제든지 나갈 수 있는데.”
선준은 눈썹을 잔뜩 이지러뜨리고 여원을 설득하려 했다. 선준의 말에도 틀린 구석은 없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여원 역시 똑같은 논리로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었으니까.
“하…….”
여원은 선준의 품에서 겨우 빠져나와 가빠지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감정부터 가라앉히고 제가 원하는 것을 선준에게 똑바로 이야기해야 했다.
“그러면, 선준아.”
“으응…….”
“나도 좀, 밖에 데려가 주면 안 돼?”
가냘픈 질문에 가쁜 숨소리가 섞였다. 선준을 올려다보는 여원의 얼굴에 미약한 기대감이 찰랑찰랑 차올랐다.
“응?”
제발 선준이 그렇게 해주었으면 했다. 가끔이나마 저택 밖으로 나갈 수만 있다면, 갑갑한 결혼 생활을 견디기도 훨씬 나을 것이다.
“여원아, 일단 알겠어. 그런데…….”
“그런데 뭐?”
“아직은, 네가 임신 초기잖아. 몸조리하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되도록이면 집에서 쉬는 게 좋지.”
“하…….”
여원이 헛웃음 쳤다. 비슷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선준이 늘어놓는 변명은 지나치게 성의가 없었다. 아이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면서, 그동안 집안에 코빼기도 비치지 않고 있었던 것인지.
“그치만…… 잠깐만이라도 우리 같이 나갔다 오면 안 돼?”
“되지, 당연히 되지. 근데 안정기에 접어들면, 그건 다음에 천천히 하자, 어?”
둘이서 같이 바람 쐴 겸 외출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선준은 무조건 지금은 아니라는 말만 기계처럼 되풀이했다.
“하…….”
그러나 여원은 더는 강하게 나가지 못했다.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몇 주 전까지 두 사람은 동등한 연인 관계였지만, 이제는 선준의 집안에서 여원을 경제적으로 부양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생겨나는 필연적인 상하 관계를, 여원은 몸소 깨달아가고 있었다.
“약속해 줄 거지?”
“그럼, 물론이지. 손 이리 줘봐.”
끝내 반항을 포기한 여원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풀죽은 여원이 순종적인 태도를 보이자, 선준은 눈에 띄게 흡족해했다. 여원의 작은 손을 단단히 쥐고, 보란 듯이 손도장도 찍어주었다.
“선준아…….”
“알았으니까 이제 뚝 하고.”
제가 윗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시혜적인 말투였다. 표정 관리를 하려고 노력하면서, 여원은 고개를 뻑뻑하게 끄덕거렸다.
“이제 더는 불만 없지?”
선준의 약속을 받아냈지만, 여원은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작 한 번의 외출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낮춰야 하나 탈력감이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울지 좀 마. 보는 사람까지 머리 아파지니까.”
여원이 실제로 펑펑 울면서 매달린 것도 아니건만, 마지막 순간까지 선준은 여원을 부당하게 매도했다.
“……알았어.”
그러나 역시, 그런 마음을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여원은 뜨끈한 서러움을 목구멍으로 삼켰다. 또 한 번 맥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얌전히 잘 있으면, 내가 알아서 잘 챙겨줄 테니까…… 쓸데없이 칭얼거리지 말고, 어?”
“어, 으응…….”
선준은 그대로 여원의 어깨를 감싸 안고 침실로 이끌었다. 마음이 좀 풀렸는지, 여원을 침대에 조심스럽게 눕힌 후 꼼꼼하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하아…….”
선준의 손등이 식은땀에 젖은 여원의 이마를 쓸어내렸다. 살갗 위를 움직거리는 후끈한 손바닥과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번뜩이는 안광. 순간적으로 겁에 질린 여원이 침을 꿀꺽 삼켰다.
“잘 자고. 좋은 꿈 꿔.”
“응, 선준아.”
선준은 그대로 여원을 혼자 남겨둔 채 방을 나섰다. 반쯤 열린 방문으로는 거실 쪽에서부터 야트막한 불빛이 새어 들어왔다. 쾅, 문이 닫히자 칠흑 같은 어둠이 여원을 에워쌌다.
여원은 다시금 혼자가 되었다.
* * *
이불 안에서 몸을 뒤척이자 적막한 방 안에서 버스럭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번졌다. 그런 식으로라도 생명의 기척을 느끼고 싶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고 몸을 잔뜩 웅크렸다.
각방을 쓰기로 결정한 것은 임신 초기에 충분한 수면을 취해야 하는 여원을 위한 배려였다. 여원은 임신 이후 신경이 부쩍 곤두서서, 아주 조그마한 인기척에도 잠에서 금세 깨어났다. 처음에는 여원도 선준과 방을 따로 쓰게 된 것이 달가웠다.
그러나 오늘은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서 보내는 기나긴 밤이 서럽고 막막했다. 계속해서 방치당하고, 외면당하고, 동떨어졌다. 내가 이렇게까지 외로움을 타는 성격이었나, 새삼스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실내는 쾌적한 적정 온도로 관리되고 있었지만, 오스스한 소름이 목덜미를 오싹하게 타고 올랐다. 아무리 애써도 저택을 감도는 음산하고 야릇한 냄새가 떨쳐지지 않았다.
‘여원이 너 같은 애가 왜 하필 하선준이랑 사귀냐, 옆에서 내가 복장이 터진다, 터져…….’
‘아하하.’
‘민아 누나! 자꾸 여원이 형한테 그런 얘기 하지 말라니까요.’
‘역시 내 친구라서 그런가, 민아가 보는 눈이 아주 정확하네!’
‘아씨. 나도 알아요……. 형이 착해서, 그래서 나 만나주는 거. 그래서 내가 형한테 매일 진짜 잘 하고 있잖아요, 응?’
꽃망울이 풋풋하게 피어나던 봄, 캠퍼스에서의 일상을 떠올리자 여원은 눈물이 핑글 맺혔다. 선준은 첫눈에 반했다며 여원에게 한 번만 만나달라며 비굴할 정도로 매달렸었다. 그런 선준이 이제는 여원을 노골적으로 귀찮아하고 있으니, 관계가 완벽하게 역전된 셈이었다.
불과 몇 달 전의 일인데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일상이 까마득한 과거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저택에서의 고립이 앞으로 여원이 익숙해져야 하는 현실이었다.
차라리 선준을 열렬하게 사랑했다면 이보다 더 나았을까.
얄팍한 호감과 어설픈 동정심으로, 갈팡질팡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결혼이라는 큰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여러 가지 여건이 좋지는 않았지만, 여원에게도 분명히 하고 싶은 일과 삶의 목표가 있었다. 그런데도 지금 여원은 인형처럼 선준이 집에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신세다.
“이제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지…….”
고작 3주 만으로도 이렇게 숨 막히는 기분이 드는데, 남은 평생을 이런 식으로 살아야 하는 것인지. 눈앞이 깜깜해졌다. 쉬운 길을 택해서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 건가 싶기도 했다.
“흐읍…….”
여원은 느릿하게 아랫배를 어루만졌다. 조심스러운 손끝에 닿아오는 배는 여전히 밋밋하기만 했다.
선준과의 사이에서 아이만 생기지 않았더라면…….
꼭 아이에게 발목 잡힌 것 같다. 그러다, 여원은 스스로의 생각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기 몸으로 품은 생명체에게 그렇게나 가혹한 평가를 내리다니, 묵직한 죄책감이 들었다.
“하…….”
여원은 고개를 짧게 가로젓고는 아랫입술을 아프게 깨물었다. 실내는 안온했고 침대는 푹신했다. 그러나 결코 쉽게 잠들 수 없는 밤이었다. 무언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처럼, 여원은 잔뜩 몸을 웅크렸다.
그렇게 한참을 맥없이, 무의미하게 뒤척이기만 하다 동이 터 오를 즈음에야 겨우 잠들었다.
* * *
여원은 평온해졌다. 어떻게든 상황을 바꾸어보려고 바르작거리던 노력이 멎자 마음은 차라리 편했다. 그리고 현실 부정을 끝마친 여원은 급속도로 무기력해졌다.
힘없이 늘어지는 몸을 소파에 눕히고 하루하루를 맥없이 흘려보냈다. 그렇게 사실상 저택에 갇힌 것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이어나갔다. 박제당한 초식동물, 아니면 가지가 바짝 쳐진 화초와 같은 삶이었다.
“아, 먹기 싫다…….”
정갈한 한식이 차려진 식탁을 내려다본 여원이 푹 한숨을 내쉬었다. 온종일 미지근한 물 몇 잔이나 겨우 삼킬 뿐, 최근 여원은 음식을 입에 거의 대지 못했다.
영양소 섭취를 전혀 안 할 수야 없으니, 뭐가 됐든 먹어야 하기는 했다. 다만 실내에 만연하게 퍼진 울렁울렁한 냄새 탓인지, 좀처럼 식욕이 돌지 않았다. 의지와는 별개로 여원의 몸이 음식물을 필사적으로 거부했다.
“그래도 먹어야 하긴 하는데…….”
윤기가 도는 매콤한 양념장에 안이 꽉 찬 꽃게살이 싱싱하게 버무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 위에 흩뿌려진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여지없이 역했다.
한참을 깨작깨작하는 동안, 먹기 좋을 정도로 따끈했던 잡곡밥이 차갑게 식어갔다. 그러자 더더욱이나 맛이 없어 보여서, 여원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식사를 치워드릴까요?”
그대로 한 시간쯤이 지나자, 식사를 준비했던 사용인이 식탁 근처로 걸어와 사무적인 말투로 질문했다.
“아…… 네.”
“…….”
여원이 고개를 작게 들어 올렸다. 흘긋 건너다본 사용인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그래…… 주시겠어요?”
여원이 끼니를 제대로 먹지 않은 지도 이제 꼬박 사흘째였다. 재깍재깍 식사를 준비하는 사용인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끼니를 거르면 안 된다고 질책하거나, 몸 상태가 나쁜 것이냐고 물을지도 몰랐다. 식사를 거부하는 이유를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할지 여원은 한발 앞선 고민을 했다.
“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하지만 외출을 막을 때만은 임신부의 건강에 끔찍한 신경을 쓰던 선준을 포함해, 이 저택의 누구도 여원의 식이 상태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아…….”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도 않았다. 여원에게 양해를 구한 사용인이 절도 있는 동작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곤 미동 없는 표정으로 식탁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내가 괜한 걱정을 했네.”
여원은 비척비척 식당에서 걸어 나왔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든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 사실에 씁쓸한 안도감이 전신에 감돌았다. 지극히 자유로웠지만 동시에 처절하게 외로웠다.
저택 안에서 여원에게 허락된 공간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왔다 갔다 한 공간을 맴돌았다. 맥없이 복도를 부유하는 여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여원은 2층 테라스로 나아가 난간에 몸을 느슨하게 기댔다. 투명한 창문에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대고 몽롱한 기분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오후가 여무는 동안 해가 충분히 기울어 있었다.
건조하고 씩씩한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면, 튼실한 나무에 매달린 이파리가 조금씩 찰랑거렸다. 창밖으로는 연노란 햇살이 흠잡을 데 없이 가꾸어진 정원 위를 화사하게 드리웠다. 더욱 멀리는, 대문까지 이어지는 무성하게 우거진 덩굴이 보였다.
민가나 기반 시설을 찾아볼 수 없는 주변 광경은 무미건조하고 황량했다. 그렇지만 저택에서 멀어질수록, 자유롭게 펼쳐지는 풍경은 아름답고 생기 있어 보였다.
이 안에 갇혀 있는 대신 저 멀리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흐으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여원은 계속해서 탈출을 염원했다.
이대로 쭉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조금씩 조금씩 더 작아지다가 언젠가는 완전히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처음부터 존재했던 흔적도 남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