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수업이 끝나는 시간이 되자 교문으로 학생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저맘때의 남자 놈들은 다 똑같이 생겨서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기도 어려웠다.
태화는 한숨을 짧게 쉬며 휴대 전화를 슬쩍 들여다봤다. 눈앞에 보이는 고등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는 웬 남자애 사진 하나가 떠 있었다. 남고였기에 망정이지 생긴 것만 보면 이게 사내자식인지 계집애인지 선뜻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애매하게 생긴 놈이었다. 나쁘게 말해 애매한 낯이지 사실 누가 봐도 연예인 해도 되겠다는 말이 나올 만큼 잘난 얼굴이었다. 지금 눈앞에서 몰려나오는 시커먼 남자 놈들과는 확연히 다른 스타일이었다.
태화는 남학생의 콧잔등을 치듯 휴대 전화 화면을 톡 치고 다시 교문을 주시했다. 어느 남고 교문 앞에 정차해 둔 차 안에서 오가는 놈들을 세심하게 살피는 중이었다. 이런 일은 튀어 보이면 안 되기에 가진 차 중 가장 흔한 국산 승용차를 끌고 나와서 지나가는 놈들 누구도 태화의 차를 돌아보지 않았다.
“아가, 너는 누구한테 미움을 사서 나한테 왔냐.”
푸념하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며칠 전 들어온 의뢰를 떠올리자니 기분이 가라앉았다. 썩 좋지 않은 얼굴로 쯧 혀를 찼다. 일주일 전, 제발 빨리 좀 죽여 달라는 다급한 의뢰가 들어왔었다. 하루를 앞당길수록 인센티브를 얹어 주겠다는 조건이었다. 빨리 죽여야 할 정도로 미움을 잔뜩 산 놈이 누구인가 싶어 사진을 봤더니 사진 속 타깃은 어려도 너무 어린 모습이었다. 젖비린내가 날 것 같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였다.
교복을 입은 사진이었으나 가진 사진이 이것밖에 없어서 줬을 거라고 속 편하게 판단했다. 그래도 설마 미성년자는 아니겠지 생각하며 뒷조사를 했더니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타깃이 되는 놈은 이제 고작 고등학교 3학년, 열아홉 살이었다. 미성년자가 타깃인 의뢰는 처음인지라 태화도 적잖이 당황했었다.
뭐, 학교 폭력 피해자가 의뢰한 건가? 아니면 전교 2등이 1등 좀 없애 달라고 한 건가?
허무맹랑한 생각만 들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 어린놈이 죽어야만 하는 이유가 도저히 상상되지 않았다.
사실 무슨 이유가 되었든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 크게 상관도 없기는 했다. 타깃의 나이를 알고 당황했던 것도 처음에만 그랬지, 지금은 별 감흥이 없는 상태였다.
태화는 평소 일하는 방식대로 며칠 놈을 관찰했다. 그 과정에서 조금 의아했던 건, 애가 누굴 괴롭힐 정도로 배짱이 좋은 것도 아니고, 알아본 바로는 뒤에서 1등만 안 하면 다행일 정도로 성적 역시 안 좋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태화가 상상했던 허무맹랑한 의뢰 이유는 전부 나가리라는 뜻이었다. 더군다나 친구들과 있는 걸 보며 성격도 순하니 착해 보였다.
“도대체 뭘까?”
태화는 핸들에 엎드리듯 기대 고개를 삐뚜름히 기울였다. 아직 놈은 교문을 나서지 않은 상태였다. 그때 전화가 왔다.
“예, 선생님.”
장 선생이었다. 타깃의 가족 관계에 대해 알아보길 부탁했는데 벌써 알아본 모양이었다. 어린놈의 얼굴까지 알리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이름과 나이만 알려 줬는데도 일 처리에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역시 장 선생은 장 선생이었다. 원래 의뢰인의 가족 관계를 간단하게는 조사해도 가족들의 직업이나 학력 등등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알아보지는 않는데 이번 의뢰는 영 께름칙해서 좀 자세하게 부탁했더랬다. 장 선생은 기다렸다는 듯 조사한 내용을 줄줄 읊었다.
“예, 아, 예.”
그다지 특별한 내용들이 아니어서 심드렁한 반응만 나갔다. 모친은 오래전에 집을 나가 행방이 묘연한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더 알아보겠다고 장 선생은 말했다. 현재는 부친과 둘이 살고, 부친의 직업이 택시 기사라는 것까지 들었다. 그리고 이어 나온 말을 들은 태화는 허리를 곧추세워 앉아 눈을 번뜩였다.
“애비가 노름꾼이라고요.”
- 응. 택시 기사들 사이에서는 유명하더라. 이미 동료들한테 빌린 돈도 어마어마해.
어째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이런 쪽으로는 틀려 본 적 없는 더듬이라 슬슬 걱정됐다.
“선생님, 하나만 더 알아봐 줘야 할 거 같은데요. 최대한 빨리요.”
장 선생에게 다른 부탁을 하나 더 하는 사이 교문에서 익숙한 사람이 나왔다. 의뢰인에게 받은 사진 속 그 어린놈이었다. 태화는 본능적으로 몸을 아래로 쭉 미끄러뜨려 숨었다. 당연하게도 놈은 태화의 존재를 모르고 그의 차와는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태화는 대충 전화를 끊은 뒤 시동을 걸었다. 어차피 하교 후 놈이 어디로 가는지는 이미 알았다. 먼저 가서 기다리기로 하고 놈을 지나쳐 달렸다. 몇 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주유소였다.
기름을 넣으러 온 건 아니어서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학교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근처에 차를 정차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놈이 나타났다. 놈은 자연스레 주유소로 들어가 가방만 놓고 나와 청소부터 하기 시작했다. 사흘 전부터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이었다. 수능이 이제 겨우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고등학교 3학년짜리가 아르바이트라니. 이걸 기특하다고 해야 할지, 미련하다고 해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놈은 새벽 1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태화 역시 그때까지 계속 놈을 주시했다. 11월 초라 해가 지면 쌀쌀한 날씨였다. 태화는 히터를 틀어 놓고 잘 부르지도 못하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놈은 이 추운 날씨에도 변변찮은 봄 점퍼 하나만을 걸치고 일하는 중이었다. 추운지 손님이 없는 동안에는 연신 손을 호호 부느라 여념이 없었다.
“옷이라도 좀 따뜻하게 입고 다니지, 쯧. 어린놈이 청승은.”
그때 진동이 짧게 울렸다. 휴대 전화를 들여다보니 장 선생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첨부 파일로 함께 온 이미지를 본 태화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고 이러냐.”
사진은 누군가의 사망 보험 계약서였다. 그곳에는 익숙한 이름이 적혀 있었다.
[최선우]
고개를 들어 주유소 안에 있는 놈을 쳐다봤다. 놈의 교복에 적혀 있는 이름도 ‘최선우’였다. 태화는 몇 번 더 허허로운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거액의 빚이 있는 부친. 장기를 팔아 갚아도 모자랄 판에 한가롭게 택시나 몰고 다니고, 심지어 아직도 도박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렴풋이 생각했던 게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아들 목숨을 팔아먹고 돈을 챙기려는 비정한 부친. 그리고 그 개새끼의 아들.
태화는 한참 킬킬거리다가 돌연 웃음을 뚝 그쳤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땐 아무 감정도 들지 않은 얼굴이었다. 가느스름하게 뜬 눈으로 놈을 봤다. 최선우를 봤다. 마침 주유하러 온 손님이 있어 환하게 웃으며 맞이하는 모습이었다. 휴대 전화에 저장돼 있던 최선우의 사진을 지우고 대충 옆자리로 던졌다. 글로브 박스를 열어 담뱃갑을 꺼내 들었다. 한동안 끊었던 담배를 물고 불을 붙여 길게 빨아들였다.
“더럽게 예쁘네.”
입술을 달싹일 때마다 희뿌연 연기가 흐드러졌다. 손님에게 꾸뻑 고개 숙여 인사하는 선우가 보였다. 매초롬한 얼굴로 짓는 눈웃음을 보자니 왜인지 입술이 바짝 말랐다.
졸린 것도, 정신이 명료해지는 것도 같은 기분이었다.
<기면(嗜眠)>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