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13)

12.

일 처리 하나는 역시 장 선생이 최고였다. 장 선생은 오랜만에 공구리질도 해 본다며 환하게 웃었다. 점잖아 보여도 미치기는 태화 못지않은 사람이었다. 일곱 개의 드럼통에 일곱 구의 시신을 욱여넣고 각각 시멘트를 부어 굳힌 걸 인천 앞바다에 던져 넣었다. 퍽 고전적인 일 처리 방식이었지만 이것보다 확실한 게 또 없었다. 창고 정리도 장 선생의 몫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게끔 바닥의 흙을 퍼내고 새로 깔아 마무리했다. 남은 건 서재화였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재화였던 시체.

서재화의 시신은 깨끗이 씻겨 나체로 창고 문 앞에 덩그러니 앉혀 놨다. 마치 대역죄인을 효수하듯 부러 보이는 곳에 둔 것이었다. 괘씸죄가 더해지기도 했고, 다른 간부들이 보고 겁 좀 먹으라는 쇼의 일종이기도 했다.

치아도 다 뽑아 버리고, 열 손가락 역시 모두 잘려 나간 시신이라 지문 채취도 불가능했다. 이게 재화라는 걸 알아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터였다. 오래 걸리다 뿐이지 어지간한 조직 간부들은 대충 알아볼 게 분명했다. 마지막까지 조직에 경고한 셈이었다.

장 선생이 창고 일을 마무리하는 동안 고 박사도 바빴다. 정신력 하나로 버티던 태화는 돌아가는 차에 오르자마자 정신을 놨다. 상태를 보면 당장이라도 대학 병원에 가야 했으나 병원에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럴 때 필요한 사람이 고 박사였다.

수술은 고 박사의 개인 병원에 딸린 작은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필요한 기구와 도구가 전부 갖춰진 상태는 아니었지만 고 박사의 실력은 어디 가지 않아서 수술은 완벽하게 끝났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장 선생은 조금만 늦었어도 죽었을 놈인데 제 실력이 워낙 좋아 살려 놨다는 고 박사의 공치사를 하루 종일 들어야만 했다.

수술 후 죽은 듯이 잠만 자던 태화가 나흘 만에 깨어나 가장 먼저 한 일은 근원 섬유의 비리를 터뜨린 것이었다. 서원식이 늙어 죽어 가며 지옥에 사는 것처럼 괴로워하는 건 못 봤지만, 원식이 인생 전부를 걸고 세우고 지킨 회사를 무너뜨리는 걸로 나름 만족했다. 물론 멍청한 재화가 원식을 죽여 버리는 바람에 영감의 망연자실한 표정을 보지 못한 건 좀 아쉬운 일이었다.

“자, 환자분. 소독할 시간입니다.”

태화는 인상을 구겼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믿음직한 의료진이 아니라 고 박사였다. 뭐 한다고 매번 병원 놀이 콘셉트인지 몰랐다. 그저 징그러울 따름이었다. 태화가 이상하게 쳐다보든 말든 고 박사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산뜻한 발걸음으로 들어와 들고 온 소독 재료들을 협탁에 놓고 태화가 누운 침대 옆에 앉았다.

수술 후 태화는 고 박사의 집에서 지냈다. 태화 정육으로 돌아가려니 하루에 두 번씩은 소독해야 하는데 네가 매번 찾아올 거냐고 면박을 주는 고 박사 때문에 별수 없었다.

고 박사가 음흉한 표정으로 옷을 벗기려 하자 태화는 학을 떼며 손을 물렸다. 이럴까 봐 태화 정육에서 혼자 쉬겠다고 한 것이었다. 태화는 고개를 작게 젓고 스스로 티셔츠를 주섬주섬 말아 올렸다. 근사한 복근보다도 그 옆에 붙어 있는 커다란 거즈가 먼저 드러났다. 장난스레 웃던 고 박사도 거즈를 보자마자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고 박사는 무균 장갑부터 끼고 상처를 살폈다. 거즈를 천천히 떼 보는데 꿰맨 흔적이 선명했다.

“누구 실력인지 흉터 예쁘게 지겠네.”

“흉터가 안 져야 진짜 실력이지.”

“뱃가죽이 뚫리다 못해 그 안에서 비틀어 버려서 장기가 다 찢어졌는데도 살아 있는 거면 수술한 의사 실력이 엄청난 겁니다, 환자분.”

“징그럽게 왜 이래?”

태화가 질린다는 듯이 쳐다보는데도 고 박사는 병원 놀이를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매번 환자분, 환자분, 하며 사람 좋은 얼굴로 웃었다. 표정은 웃고 있으면서 손길은 거칠었다. 일부러 이러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수술 부위를 막 다뤘다. 태화가 몇 번이고 아픈 티를 냈으나 고 박사는 모르는 척 좀 더 세게 짓누를 뿐이었다. 가만 보면 소독을 핑계로 괴롭히는 것 같았다.

“이제 어디로 갈 거냐?”

옆구리에 이어 손가락까지 소독하고 거즈를 예쁘게 붙이던 고 박사는 쳐다보지도 않고 물었다. 태화도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멀뚱거렸다.

“남쪽.”

“남쪽?”

“여긴 너무 춥다.”

고 박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제 완연한 봄 날씨인데 뭐가 춥다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옆구리와 손가락만 문제인 줄 알았더니 인제 보니 머리도 이상해진 모양이었다. 생전 가야 지방으로 내려갈 생각 한번 안 하던 놈이 뜬금없이 남쪽 타령을 하니 이상하게 보는 것도 당연했다.

“내일 어디 좀 다녀와야 할 거 같은데.”

“어디?”

“가게도 정리해야 하고, 가져올 짐도 남았고. 나가도 되지?”

“그럼 나가도 되지. 무리해서 걷다가 기껏 꿰매 놓은 자리 다 터지고 피 줄줄 흘리면서 다녀도 되지, 그럼.”

“실력이 워낙 출중한 선생님이 꿰매 주신 건데 설마 걷는다고 터지겠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태화 역시 제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는 것쯤은 알았다. 이제 내일이면 수술 후 딱 일주일이 되는 날이었으나 워낙 상처가 깊었던 탓에 아직까지 숨을 쉴 때마다 옆구리가 당겼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걸음을 뗄 때면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래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됐으니 하루빨리 모든 걸 정리하고 떠나고 싶었다.

“내일 다녀온다.”

거의 통보식으로 말하자 고 박사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말이나 못 하면. 무리해서 나다니지 말고, 힘들다 싶으면 바로 전화해라. 살아 있을 때 데리러는 못 가도, 죽은 시체 수습하러는 갈게.”

태화와 마찬가지로 고 박사 역시 한 마디를 지지 않았다. 말은 저렇게 해도 걱정하는 마음이 다 느껴졌다. 태화는 픽 웃다가 옆구리가 결리는 느낌에 윽 소리를 냈고, 고 박사는 모르는 척 옆구리를 한 대 더 때렸다.

* * *

태화가 신발을 신을 때까지도 고 박사는 주의 사항을 줄줄줄 읊었다. 언제든 시체 수습하러 온다더니 태화가 쓰러질까 봐 걱정이었다. 덩달아 고 박사의 아내도 걱정이 한가득한 얼굴로 쳐다보는 통에 태화는 몇 번이고 괜찮다고 말한 뒤에야 집을 나설 수 있었다.

고 박사는 택시 타고 가라고 했지만 말을 들을 태화가 아니었다. 언제 챙겼는지 고 박사의 차 키가 손에 들려 있었다. 운전쯤이야 뭐 어렵겠나 했는데 브레이크 한번 밟는 데에도 옆구리가 쑤셨다. 게다가 핸들을 잡는데 왼손 검지 하나가 없는 게 자꾸 거슬렸다. 옆구리에 구멍 낸 건 그렇다고 쳐도 멀쩡하던 손가락이 뭉툭하자 서재화를 향한 욕이 튀어나왔다. 그러다가도 죽은 사람 욕해서 뭐 하나 싶어 금방 고개를 저었다.

시장으로 들어가면 오랜만에 보는 상인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말을 걸어올 것 같아서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후문으로 들어가자 매캐한 먼지가 가장 먼저 태화를 반겼다. 겨우 일주일 만에 오는 곳이었는데 먼지가 둥둥 떠다녔다. 창고는 잔뜩 쌓인 먼지를 제외하고는 변한 것 하나 없이 그대로였다. 늘 오가던 곳이었는데 어쩐지 좀 낯설었다.

새삼 구석에 있는 연육기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최선우가 저질렀던 깜찍한 짓거리가 기억났다. 정육점인 걸 뻔히 알면서도 가정용 믹서기에 시체를 갈아 치운 미련함이 참 웃겼더랬다.

태화는 그때 일을 상기하며 피식 웃다가 불현듯 미간을 찡긋거렸다. 웃는 얼굴 그대로 미간만 구겨진 이상한 표정이었다. 또다시 선우를 떠올린 탓이었다. 어찌 보면 손가락도, 옆구리도 전부 선우의 작품이나 다름없는데 이 순간에도 그 맹랑한 걸 떠올리는 게 퍽 웃겼다. 저도 참 답이 없었다.

“우선아.”

태화는 또 습관처럼 선우의 이름을 거꾸로 불렀다. 이제는 이름을 틀리게 불렀다고 눈을 새초롬하게 뜨며 면박을 줄 사람도 곁에 없었다.

최선우는 어디로 갔을까.

문득 최선우의 행방이 궁금했다.

그놈이 갈 데가 있긴 한가? 또 꽃다방으로 돌아갔을까. 어차피 이제 빚도 없고 목숨을 위협하는 놈들도 없으니 꽃다방에 갔더라도 시달리며 살진 않겠지. 괜찮겠지. 아니, 그걸 괜찮다고 할 수 있나? 성인이 되자마자 남의 자지 빠는 것부터 배운 애가 뭘 할 수 있겠나. 또 그 짓거리나 하면서 살겠지. 그게 이상한 줄도 모르고 맹하니 살아가겠지.

생각을 이어 나가던 태화는 쯧 혀를 찼다. 최선우 그건 눈앞에 있으면 정신이 사나워지는데 또 막상 눈에서 안 보이면 걱정되었다.

그런 놈이 뭐 예쁘다고 나는 최선우 생각만 하고 있나?

생각을 멈추려고 고개를 슬슬 저어 봤으나 그런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계단을 하나하나 오를 때마다 선우 생각은 더 커졌다. 선우를 가두겠다고 밖에 달아 놓은 잠금장치를 봤을 때는 헛웃음만 나왔다. 태화는 헛헛한 웃음소리를 내며 안으로 들어갔다.

창고와 마찬가지로 집 안 역시 사람 손을 타지 않아 공기 중에 먼지가 풀풀 날렸다. 태화는 손으로 허공을 휘휘 저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차 키부터 챙기기 위해 방으로 향하던 걸음이 문 앞에서 뚝 멈췄다.

“허…….”

태화의 입에서 저절로 그런 탄식이 나왔다. 그 뒤로는 욕지거리가 울컥 올라왔다. 멀겋던 인상을 한껏 구긴 태화는 아래를 내려다봤다. 발치에 선우가 있었다. 웅크려 누워 있었다. 침대도 아니고 바닥에 누워 태화의 이불과 옷가지로 더미를 만들어 그 가운데에 파묻혀 있었다.

죽었나?

다급한 마음에 한 걸음 다가가다가 또 우뚝 멈춰 섰다. 달착지근한 냄새가 났다. 선우가 숨을 내쉴 때마다 단내가 느껴졌다. 최선우가 살아 있는 냄새였다. 그제야 태화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최대한 멀리 가라니까.”

어느새 표정도 풀려 있었다. 태화는 선우에게로 다가갔다. 가만 서서 내려다보길 한참, 그 앞에 쭈그려 앉아서도 오랜 시간 선우를 관찰했다. 일주일 만에 보는 얼굴은 딱 일주일 굶은 것처럼 야위어 있었다. 왜 저만 없으면 밥을 안 먹는지 몰랐다. 미련하기가 하늘을 찌를 기세라 한 번 더 짙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손등으로 뺨을 쓸어 봤다. 보들보들하던 살결이 지금은 꺼끌꺼끌하기 그지없었다. 왼쪽 귀에서 흘러나온 피도 아직 꾸덕꾸덕하게 말라붙은 그대로였다. 노숙자라고 해도 손색없을 만큼 추레한 몰골이었는데 이상하게 태화의 눈에는 마냥 예쁘게만 보였다. 기다란 속눈썹을 손끝으로 살살 매만지다가 피딱지 앉은 입술도 쓰다듬고, 마른 몸도 조심스레 만져 봤다. 손목이나 발목은 톡 치면 툭 부러질 것처럼 가늘었다. 다시금 뺨을 쥐어 매만지자 선우가 흠칫 떨었다.

“아저씨…….”

잠꼬대인 듯 눈을 감은 채 웅얼거렸다. 이 와중에도 저를 찾는 선우 때문에 태화는 한숨 뒤로 작게 웃었다.

“어.”

나직이 대답하자 마른 몸이 한 번 더 움칠거렸다. 고요하던 눈두덩이가 굼뜨게 움직였다.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린 선우는 정신이 없는 듯 몇 번 더 눈을 끔뻑였다. 그러다 눈동자를 느리게 움직여 태화를 올려다봤다. 놀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놀라지 않았다.

“드디어 죽은 거예요……?”

“뭐?”

“지옥이어도 되니까 아저씨 만나게 해 달라고, 아저씨가 나 못 알아봐도 좋으니까 나는 아저씨 알아보게 해 달라고. 빌고 또 빌었는데.”

현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흐리멍덩한 눈이 태화를 빤하게 응시했다. 태화는 숨을 짧게 터뜨리다가 빙긋이 웃었다.

“너처럼 예쁜 애가 지옥에 왜 가.”

그 한마디에 선우의 눈이 커졌다. 점점 크게 뜨이더니 어느새 왕방울만 해졌다. 선우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는데 동작이 제법 재발랐다.

태화를 마주 보고 앉은 선우는 산발인 머리를 어떻게 할 생각도 못 하고 손을 뻗었다. 말라비틀어진 손으로 태화를 더듬어 만졌다. 뺨을 쥐어 보기도 하고, 어깨를 꾹 눌러 보다가 팔뚝을 콕콕 찌르기도 했다. 다시 한번 두 손으로 뺨을 만지다가 이내 인상을 콱 찌푸렸다. 기다렸다는 듯 눈물이 후두두 쏟아졌다. 꿈이 아니라면 벌써 지옥에 도착한 줄 알았는데 지옥도 아니었다. 태화는 꿈도 뭣도 아닌 진짜였다.

숨죽여 눈물만 주룩주룩 흘리다가 고개를 푹 떨궜다. 차마 태화를 볼 낯이 없어 그랬다. 그 마음을 다 안다는 듯 태화가 뺨을 쥐어 올렸다. 시선을 옆으로 돌려 봐도 집요하게 따라왔다. 결국 선우는 태화를 마주 봤다. 눈을 들여다보기 무서워 시선을 내리깔아 태화의 입술을 봤다. 늘 제 몸을 어르고 귀하게 핥아 주던 입술이었다.

“왜 여기 있어?”

“나……. 갈 데가 없어요……. 여기밖에, 올 데가 없었어…….”

울음으로 잔뜩 잠긴 목소리를 겨우겨우 쥐어짜 내 가며 말했다. 태화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봤으나 선우는 정말 갈 데가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여길 오고자 한 건 아니었다. 그저 가라는 태화의 외침에 쫓겨 무작정 뛰고 또 뛰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태화 정육 앞이었다. 모든 불이 꺼진 새벽, 어둑한 시장 안에서 선우는 불 꺼진 태화 정육 간판을 올려다봤다.

태화.

그 이름을 한참 눈에 담다가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자신은 이곳에 오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염치가 없기로서니 태화 없는 태화 집에 머물 만큼 없진 않았다.

아저씨가 누구 때문에 죽어 갔는데…….

그런 생각으로 발걸음을 돌려 간 곳은 꽃다방이었다. 참 웃긴 인생이었다. 이제는 빚도 없고, 제 발목을 잡고 있던 모든 것에서 해방되었는데도 정작 선우는 꽃다방으로 돌아왔다.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다시는 오고 싶지 않았던 곳을 제 발로 찾아올 정도로 갈 곳이 없었다.

다행히 비밀번호는 바뀌지 않아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선우가 쓰던 방은 창고가 돼 있었다. 선우는 그곳에서 사흘을 지냈다. 그런데도 아무도 선우가 그곳에 있다는 걸 몰랐다. 살아 있는데 살아 있는 줄 모르고, 죽지도 않았는데 죽은 사람처럼 존재감 없이 지냈다.

그러다 밤이 되고 다들 퇴근한 시간이면 선우는 뭐에 홀린 것처럼 태화 정육을 찾아갔다. 생각이 없으니 목적도 없었다. 그저 정신을 차리고 보면 태화 정육 앞이었다. 멍하니 불 꺼진 간판을 올려다보다가 어두컴컴한 창문도 응시했다.

아저씨는 없겠지……? 그럼 어디 있을까……? 어디 있길래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걸까? 내가 미워서 숨었나……? 그렇지, 밉겠지……. 아니, 싫겠지……. 나 같아도 내가 밉고 싫을 거야. 그래도 얼굴 한번 보여 주면 안 되나? 내가 죽으면 보러 와 줄까……?

거기까지 생각하자 소름이 돋았다. 태화를 보기 위해 죽을 생각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죽는 건 싫다고 생각했는데 고작 사람 한번 보겠다고 죽음을 생각했다.

아니, 아니지……. 고작 사람이 아니지…….

태화는 선우가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뒤늦게서야 그걸 깨달아 버린 선우는 결국 나흘 만에 태화 정육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 없는 빈집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던 찰나 태화를 만난 것이었다.

“아저씨…….”

“병신.”

태화는 대뜸 욕을 내뱉었으나 거친 느낌은 아니었다. 선우는 오히려 태화가 저를 향해 뱉는 욕이 좋았다. 감정이 없다면 저런 욕도 나오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알았다. 다시는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사람이 눈앞에 있자 뭘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그저 정말 태화가 맞는지 만지고 또 만질 뿐이었다. 어깨부터 팔을 더듬어 내려가다가 손을 쥐어 보는데 무언가 느낌이 이상했다. 선우는 고개 숙여 아래를 내려다봤다.

“어……?”

없었다. 왼손 검지가 없었다. 마디 하나가 없는 게 아니라 아예 손가락 자체가 없었다.

“어어?”

자꾸 이상한 소리가 나왔다. 선우는 고개까지 갸웃거려 가면서 이상하다는 듯 태화의 손을 들여다봤다. 앞으로 보고, 뒤로 보고, 옆으로 봐도 마찬가지였다. 있어야 할 게 없이 뻥 뚫린 자리를 만지다가 고개를 들어 태화와 눈을 맞췄다. 살짝 눈웃음 진 눈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끔찍한 생각이 스쳤다.

서재화가 아저씨의 손가락마저 잘랐구나.

그것까지 생각한 선우는 인상을 더없이 찡그리며 태화에게 와락 달려들었다. 그 바람에 태화는 뒤로 벌렁 넘어갔다.

“윽!”

이번에는 아픈 소리까지 냈다. 선우는 그제야 태화의 옆구리에서 흐르던 무수한 피를 떠올렸다. 선우가 서둘러 상체를 일으키는데 태화가 꼭 껴안고 놔주질 않았다.

“잠깐, 흐윽, 잠깐만요.”

“싫어.”

태화도 선우도 상대의 말을 좀체 듣질 않았다. 선우는 기어이 손을 더듬어 태화의 옷을 들쳤다. 손끝에 거즈가 만져졌다. 선우는 이게 뭔지 알았다. 옆구리에 난 상처 위로 덧씌워진 거즈라는 걸 알고 세상 서럽게 울었다.

“아저씨 나는, 난……. 아저씨한테 너무, 윽, 미안해서. 아저씨가 죽은 줄 알고…….”

선우가 눈물을 뚝뚝 흘리는 바람에 태화의 뺨이 흥건하게 젖었다. 닦아도 닦아도 젖어서 태화는 더 이상 닦길 포기하고 선우를 끌어안았다.

“살려고 했거든요, 벌받는 것처럼, 흑, 살려고 했는데……. 근데 또 아저씨 없는 세상에서 살려니까, 끅, 겁나서 그냥 아무것도 안 먹고 있으면 죽겠거니 하고…….”

“그래서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먹었다고?”

선우는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쫄쫄 굶어서 힘들었다고, 제가 힘들었던 걸 알아 달라는 애처럼 그랬다. 태화는 인상을 엷게 구겼다. 어떻게 최선우는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다른 때에는 이리저리 통통 튀어서 사람 속을 썩이더니만 이럴 때는 또 예상 그대로 행동해서 답답하게 만들었다.

“넌 애가 왜 이렇게 미련해.”

“몰라, 몰라요……. 나 진짜, 미안해서……. 잘못했어요, 흑…….”

“미안해야지, 그럼.”

태화는 빼지 않았다. 괜찮으니 그만 울라는 말도 없었다. 그저 빤한 시선으로 쳐다보기만 했다. 그 시선이 견디기 버거워진 선우는 태화의 어깨 위로 이마를 맞댔다.

“나 미워할, 끅, 할 거죠? 내가 아저씨 배신해…….”

“쓸데없는 말 할 시간에 울음이나 그쳐.”

“아저씨가 나 미워한다고 하면 나, 너무 무서워서…….”

“미움받기 싫어?”

선우는 그걸 말이라고 하냐는 듯 펄쩍 뛰었다. 목이 떨어져 나가라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기회를 놓칠 것만 같았다. 사실 지금 기회가 온 건지조차도 헷갈렸다. 그래도, 그렇더라도……. 만약 이게 기회라면, 태화가 다시금 제게 기회를 주고 있는 거라면…….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선우는 잔뜩 찡그린 낯을 하고 눈치 보듯 태화를 쳐다봤다.

“그럼 앞으로 잘해.”

태화가 픽 웃었다. 선우는 눈을 크게 떴다가 곧 눈이 안 보일 만큼 찌푸리더니 엉엉 울었다. 방 안뿐만 아니라, 온 집 안이 떠나가라 목청껏 울었다. 평소라면 시끄럽다고 뭐라 했을 태화도 이번만큼은 별말 없이 선우의 등허리만 토닥토닥 두드렸다. 멀리 가지도 못하고 이곳에 메여 혼자 죽는 연습을 했을 선우가 미치도록 미련해서, 그 미련함에 마음이 쓰여서 내내 작은 몸을 어르고 달랬다.

일정한 박자로 몸을 쓰다듬는 손길 속에서 선우는 숨이 넘어갈 만치 울며 태화를 꼭 붙들었다. 다시 손에 들어온, 저만의 신이었다.

* * *

태화 못지않게 선우의 몸 상태도 엉망이었다. 남자들에게 폭행과 윤간을 당한 뒤 몸을 제대로 추스르지도 못했고, 재화가 칼로 그어 놓은 허벅지도 문제였다. 상처를 제때 돌보지 않은 탓에 벌어진 살점 사이로 고름이 차올라 그걸 걷어 내는 것만 해도 큰일이었다. 흉터가 남을 수밖에 없는 상처였다.

사실 허벅지보다도 더 문제인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왼쪽 귀였다. 고 박사는 선우를 다시 만나 반가워할 겨를도 없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몸에 든 멍이나 칼에 베인 허벅지는 흉이 남더라도 어떻게든 치료가 되겠지만 어떻게 맞았는지 왼쪽 귀 고막이 터져 있었다.

바로 손을 썼다면 또 모르겠으나 터진 채로 며칠 동안 방치한 탓에 염증이 심하게 생겨 자연 재생되지 못한 게 문제였다. 이런 상태에서는 인공 고막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요즘은 의료 기술이 발달해서 인공 고막 수술만 한다면 이전과 큰 차이 없이 들을 수 있었지만 무슨 일인지 선우가 거절했다. 수술받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고 박사는 놀라서 펄쩍 뛰며 왜 안 받으려는 거냐고 물었지만 태화는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선우의 마음을 어렴풋이 알 것 같은 이유였다. 아마 반성의 의미일 거라고 생각했다.

반성을 그런 식으로 할 필요는 없었지만, 태화는 구태여 선우의 선택을 막지도 않았다. 그렇게 해서 선우의 마음이 편해진다면 그러도록 두는 게 맞다고 봤다.

뭐, 한쪽 귀가 안 들리는 정도야 괜찮다는 생각도 있었다. 아니, 오히려 더 좋았다. 가뜩이나 생긴 것 때문에 여기저기서 노리는 놈들이 득시글한데, 하자 있는 놈이 돼 버리면 그런 놈들이 조금이라도 줄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대체 누가 선우를 노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태화 눈에 이 세상은 최선우에게 너무 위험했다. 정작 제가 가장 위험하다는 걸 모르고 세상 탓만 했다.

폭풍 같던 일들이 마무리되는 동안 선우와 태화 사이의 일도 어느 정도 정리됐다. 선우는 제 모친을 죽인 게 태화가 아니라 서재화라는 걸 알고 오해를 풀었다. 비록 부친을 죽인 것에 대한 진실은 풀리지 않았지만, 굳이 들추지는 않았다. 태화 역시 선우가 자신을 배신하려 했고, 저를 두고 떠나려던 일에 대해서는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

모든 문제가 온전히 풀리지는 않았으나 두 사람은 개의치 않았다. 진실을 모르더라도 함께 있기만 한다면 살아가는 데에 아무 문제 없다는 걸 깨달은 덕이었다.

태화와 선우는 차를 타고 달렸다. 당연하게도 운전은 태화의 몫이었다. 선우는 아직까지도 운전에 대한 갈망이 있어서 한 번 더 태화에게 도로 주행 연습을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받아 냈다. 한참 조잘대며 떠들다가 문득 창밖으로 시선이 향했다. 봄이 거의 다 지나는 시기라 이제는 봄꽃 대신 푸릇한 잎이 돋아난 나무가 더 많았다.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불어 들어오는 바람도 찬 기운보다는 따스한 기운이 더 많이 돌았다. 새삼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나 싶었다.

지난 늦겨울부터 한봄까지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로만 가득했다. 선우는 눈을 질끈 감고 도리질을 쳤다. 그 시간들을 떠올리기보다는 앞으로 있을 일들을 행복하게 상상하는 게 더 나았다.

태화와 함께하는 삶.

그것을 떠올리려는데 거친 손이 뺨을 문질렀다. 옆을 돌아보자 태화가 전방을 주시하면서도 싱긋 웃고 있었다.

“무슨 생각 해.”

“행복한 생각이요.”

모호한 대답이었지만 태화는 단번에 알아들었다. 저 작달막한 머리통에는 제 생각만이 가득 들어차 있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 좋아?”

묻자 선우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나 크게 끄덕이던지 목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바다랑 가까운 곳이라면서요. 시장이랑도 가깝고.”

“바다랑 가까운 게 좋은 거야, 시장이랑 가까운 게 좋은 거야?”

둘 다 좋겠지.

태화는 본인이 물어 놓고 속으로 혼자 대답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답이 곧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옆을 힐긋 쳐다보자 커다란 눈을 멀뚱거리는 선우가 보였다. 한참 멀뚱거리더니 이내 예쁘게 눈웃음 졌다.

“아저씨랑 같이 사는 거요.”

태화는 순간 눈을 짙게 떴다. 숱하게 들어 온 것이었지만 어쩐지 방금 나온 선우의 목소리는 조금 다르게 들렸다. 값나가는 청자처럼 매끄럽고 반짝이는 목소리였다. 차랑차랑한 소리가 귓가를 맴돌자 태화는 잠깐 앓는 소리를 냈다. 이러면 좀 곤란했다. 아니, 아주 많이 곤란했다. 결국 잘만 달리던 차는 어느 한적한 곳에 우뚝 멈춰 섰다.

“왜 멈춰요? 무슨 일 있…….”

태화는 고개까지 갸우뚱 기울여 가며 쳐다보는 선우의 입술을 단숨에 집어삼켰다. 입맞춤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이다지도 사랑스러운 놈인데, 할 수만 있다면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내킬 때마다 꺼내 온갖 데에 입술 도장을 찍어 대고 싶었다. 다짜고짜 혀부터 들이미는 태화 때문에 처음에는 당황하던 선우도 나중에는 익숙하게 그를 받아들였다. 매달리듯 태화의 목덜미를 끌어안고 몸을 바짝 붙였다.

출발할 때부터 틀어 놨던 라디오에서는 어느덧 뉴스가 흘러나왔다. 어느 한적한 창고 앞에서 신원 미상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이었다. 아나운서는 치아도, 손가락도 없는 나체의 시신이라 신원 파악의 난항이 예정된다고 했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체온에 집중하느라 듣지 못했다.

* * *

선우는 화이트보드에 내일의 할인 품목들을 적다 말고 밖을 내다봤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중이었다. 곡식이 마지막까지 잘 자라라고 내리는 가을 끝자락의 비였다.

늦봄에 서울을 떠나 이곳에 정착한 지도 어언 6개월째였다. 목포가 좋겠다고 했으나 태화와 선우는 좀 더 남쪽으로 내려와 작은 시골 마을에 터를 잡았다. 바다도 가까웠고, 근처에 상설 시장이 있는 곳이었다. 봄을 지나 여름의 문턱을 밟을 무렵 두 사람은 시장 내에 가게를 냈다. 이번에도 정육점이었다. 태화는 카페나 빵집이 선우와 좀 더 어울린다는 생각에 업종을 바꿔 볼까 했으나 선우가 먼저 정육점을 다시 해 보자고 했다.

선우는 열의가 넘쳤다. 가게 일을 이것저것 배우려고 했다. 요즘에는 태화에게 칼 쥐는 법부터 시작해 정육 하는 걸 차근차근 배우는 중이었다. 물론 아직은 많이 서툴러서 다른 잡일을 더 많이 했다. 이번에도 화이트보드에 할인 품목을 적는 건 선우의 몫이었다. 이번 주말이 지나고 나면 삼겹살을 할인해 판매할 예정이었다.

새로운 곳에서 가게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시골 마을에 젊은 청년 둘이 느닷없이 나타나 장사를 시작하자 손님이 꽤 왔다. 고기 질이 좋다고 입소문도 난 참이었다. 그래도 이렇듯 비 오는 날에는 손님이 뜸할 수밖에 없었다.

- 띵동-! 배달의 제왕에서 배달 주문이 들어왔어요!

경쾌한 여자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갑자기 울린 소리에 선우는 어깨를 파드득 떨었다. 그 바람에 잘 써 놓은 글자 위로 못난 줄이 주욱 그어졌다. 선우는 놀란 마음을 다잡고 소리가 난 쪽을 봤다. 태화 역시 소고기를 썰다 말고 눈을 가늘게 뜬 채 모니터를 확인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며 심상치 않은 눈빛을 하다가 곧 푸스스 웃었다.

“금방 포장해 줄 테니까 기다려.”

“네.”

둘 다 피식피식 웃으며 하던 일을 마저 했다. 방금 울린 소리는 배달 주문 소리였다. 예전처럼 살인 의뢰를 알리는 소리가 아니라, 진짜 배달 주문.

선우는 삐끗한 글씨를 다시 예쁘게 고치고 알아서 우비를 챙겨 입었다. 헬멧 위로 우비 모자까지 쓰고서는 문 앞에서 대기했다. 그사이 주문 들어온 고개를 썰어 포장한 태화는 가게에서 쓰는 비닐봉지에 담아 선우에게 내밀었다. 봉투에는 ‘선우 정육’이라고 적혀 있었다. 봉투를 받아 든 선우는 습관처럼 제 이름이 적힌 부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언제 봐도 낯설었고, 언제 봐도 뿌듯했다. 선우 정육은 가게 명의도 선우로 돼 있었다.

“얼른 갔다 올게요. 마감 같이해요!”

마감 10분 전에 들어온 주문이라 얼른 다녀와서 태화를 도울 생각이었다. 선우는 가게 앞에 서 있는 자전거로 올라탔다. 제법 익숙한 동작이었다. 페달을 밟기 전, 그 옆에 서 있는 하야부사를 슬쩍 쳐다보기도 했다.

서울에서 내려오며 태화는 많은 걸 두고 왔으나 하야부사만은 챙겨 왔더랬다. 선우는 자신도 2종 소형 면허증을 따 하야부사를 몰고 싶었으나 태화의 반대에 부딪혀 하야부사를 몰기는커녕 면허증조차도 따지 못했다. 위험하다는 게 태화가 반대하는 이유였다. 그 위험한 걸 본인은 잘만 타고 다니면서 왜 저는 안 된다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선우는 괜스레 입술을 삐쭉 내밀고 자전거 손잡이를 잡았다. 그래도 태화를 보며 다녀오겠다고 손 흔들어 주는 건 잊지 않았다. 태화는 픽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우가 배달을 떠나고 태화도 썰던 고기를 마저 썰었다. 일을 마무리한 뒤에는 슬슬 가게를 정리했다. 선우는 본인이 오면 함께하자고 했지만 말을 들을 태화가 아니었다. 설렁설렁하는 것 같아도 워낙 오래 했던 일이라 마감 정리는 빨리 끝났다. 셔터까지 내리고 가게 앞에 서서 휴대 전화만 틱틱 만지고 있는데 저쪽에서 아저씨!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선우가 달려오고 있었다.

“같이하자니까 왜 혼자 다 했어요!”

선우는 자전거에서 내리자마자 타박이었다.

“네가 너무 늦게 왔잖아.”

선우가 몇 시인지 확인하는 동안 태화는 선우의 헬멧을 벗겨 줬다. 우비까지 벗긴 뒤에는 기다렸다는 듯 선우를 품에 안았다. 마른 어깨에 코를 묻고 숨을 크게 들이켰다. 오늘은 물에 젖은 비누 향이 났다. 고작 20분 떨어져 있었는데도 그리웠던 냄새였다. 킁킁 소리까지 내며 냄새를 맡아 대자 선우는 간지럽다며 작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똑같이 태화를 한 아름 끌어안고 몸을 치댔다. 한참 서로의 체향을 느끼던 둘은 가벼운 뽀뽀를 끝으로 뒤로 물러났다.

“가자.”

태화는 선우의 오른쪽에 서서 손을 내밀었다. 선우는 자연스레 태화의 왼손을 잡았다. 손가락이 네 개뿐인 손이었다. 왼손에 하자가 있는 태화처럼 선우도 왼쪽 귀가 들리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둘은 항상 같은 위치를 고집했다. 선우는 늘 태화의 왼손을 잡아 제 과오를 기억했고, 태화는 늘 선우의 오른쪽에 서서 제 목소리를 선명하게 들려줬다.

가게 2층에 딸린 곳에서 살던 예전과는 달리 두 사람이 살림을 차린 집은 가게에서 도보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전원주택이었다. 시장 바로 옆에는 아파트도 많았으나 마당 있는 집에서 한번 살아 보고 싶다던 선우의 의견을 100퍼센트 반영해 얻은 집이었다.

실제로 쉬는 날이면 선우는 너른 마당을 뽈뽈 돌아다니며 정원도 가꾸고, 가끔은 밖에 나와 고기를 구워 먹기도 했다. 걸어서 20분이나 걸리는 거리라 오가는 길이 조금 멀긴 했으나 함께 출근하고 함께 퇴근하다 보니 그마저도 장점으로 느껴졌다.

오늘도 집 가는 길 내내 선우는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한시도 쉬지 않고 조잘댔다. 태화는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짧게 호응할 뿐이었다. 하루 종일 같이 붙어 있으면서도 선우의 입은 쉴 줄 몰랐다.

“배달 갔더니 안에 강아지가 있는 거예요. 짖지도 않고 저 보자마자 좋다고 막 꼬리를 흔드는데 엄청 귀여웠어요.”

집에 도착해 옷방에서 옷을 벗으면서도 선우는 말하길 멈추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옷을 툭툭 벗어 빨래 바구니에 넣던 태화는 선우 옆에 서서 가만히 내려다봤다. 시선은 선우의 입술에 꽂혔다. 도톰하고 붉은 입술이 연신 달싹이는데 달큼한 복숭아 향까지 났다.

“이참에 우리도 한 마리 키울까 봐요. 마당도 있으니까 키우면 좋지 않을까요? 아, 안 되겠다. 우리 둘 다 가게에 있으면 강아지 혼자 외로울 테니까 키우는 거 좀 더 생각해…….”

“존나 박고 싶게 말하네.”

“네?”

선우는 속옷을 벗다 말고 태화를 올려다봤다. 마지막 배달 때 만났던 하얀색 강아지를 떠올리느라 몰랐는데 태화는 어느새 옷을 다 벗은 상태였다.

“네 입에다 박고 싶다고.”

너무 뜬금없는 말이어서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랫입술을 혀로 짧게 훑는 것까지 봤을 때는 절로 뒷걸음질이 쳐졌다. 선우가 한 걸음 물러난 만큼 태화도 한 걸음 다가왔다. 커다란 어깨에 조명이 전부 가려져서 선우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선우는 저를 빤히 내려다보는 태화를 빼꼼 올려다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오늘따라 태화가 더 거대해 보였다.

“그럼…….”

선우는 더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팬티까지 마저 벗고 태화에게 반 발자국 더 다가갔다. 왼손을 덥석 잡아 뭉툭하게 잘려 나간 부분을 살살 매만졌다.

“박을래요?”

거기까지 말하고 먼저 태화를 잡아당겼다. 대답도 듣지 않고 침실로 향했다. 너른 복도로 둘의 걸음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평소보다 태화의 신음이 짙었다. 고개를 쳐들어 천장을 보던 태화는 시선만 아래로 내리깔았다. 가느다란 다리가 먼저 보였다. 열이 올라 울긋불긋한 물이 번진 다리를 따라 내려오면 발딱 솟아오른 좆이 보였고, 예쁜 빛을 띠는 젖꼭지도 보였다. 얄따란 목을 지나면 검붉은 자지를 받아 내느라 한껏 벌어진 붉은 입술이 자리하고 있었다.

선우가 침대에 가로로 누워 머리통만 아래로 늘어뜨려 놓고 침대 밖에 선 태화의 자지를 빠는 중이었다. 절경도 이런 절경이 없어서 태화는 바짝 마르는 입술을 축이고 허리를 천천히 움직였다. 그동안 선우가 펠라티오를 숱하게 해 줬지만 이런 자세는 처음이었다. 이건 뭐랄까, 펠라티오라기보다는 질 좋은 오나홀을 쓰는 기분이었다. 입에 박고 싶다고 했더니 정말 이렇게 박게 됐다.

“후윽…….”

태화는 이를 악물고 사정을 참았다. 미끈하고 축축한 입 안 감촉이 너무 좋아서 조금 더 오래 느끼고 싶었다. 목구멍을 툭툭 가르고 들어가는 것도 자극적이었다. 정말 뒷구멍에 박는 것과 비슷했다.

“너 이런 건, 씹, 어디서 배워 온 거야? 하아…….”

태화가 물었지만, 선우는 대답할 수 없었다. 입 안 가득 좆이 들어찬 까닭이었다. 태화도 딱히 대답을 들을 생각은 없었다. 그저 선우의 유두를 꼬집으며 허리를 깊게 묻었다. 추삽질하듯 입 안으로 자지를 끝없이 처넣을 때마다 마른 목젖이 불룩불룩 올라왔다.

힘들다고 우는소리를 할 만도 한데 선우는 헐떡이면서도 목구멍을 열어 태화를 받아들였다. 굵다란 허벅지를 끌어안고 조금 더 끌어당겼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귀두를 꽉 압박하는 감각에 태화는 점점 이성을 잃어 갔다. 허리 짓이 빨라졌고, 몸짓도 커졌다. 반 정도 들어가던 좆은 어느새 뿌리 끝까지 모습을 감췄다가 다시 귀두까지 빠져나오길 반복했다.

“후으, 씨발.”

참지 못하고 욕지거리를 내뱉던 태화는 슬쩍 아래를 내려다봤다가 인상을 콱 찌푸렸다. 선우의 낯이 벌겋다 못해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누가 봐도 버거워 보이는 표정이었다.

“힘들면 말하라니까.”

말할 수 없게끔 좆으로 입을 꽈악 채워 뒀으면서 타박이었다. 태화도 선우가 말을 못 한다는 걸 깨닫고 쩝 입맛을 다셨다. 이쯤 할까 싶어 뒤로 물러났으나 선우가 엉덩이를 쥐고 놔주질 않았다. 그래 봤자 될 힘이 아니었다. 태화는 뒤로 성큼 물러나 자지를 빼냈다.

“컥…….”

목구멍 저 아래까지 꽉 들어찼던 게 한꺼번에 쑤욱 빠지자 선우는 목을 쥐고 콜록댔다. 기침할 때마다 입 안에 고여 있던 프리컴과 침이 함께 튀어나왔다.

“흡, 하아…….”

한참 숨을 고르자 터질 듯이 붉어졌던 얼굴이 점점 원래 색으로 돌아왔다. 태화는 인상을 구기면서도 선우를 내려다보며 자지를 쥐어 문질러 흥분감을 계속 이어 갔다.

“계속, 계속해요.”

“계속하긴 뭘 해.”

“나 괜찮으니까 계속해요. 아저씨 거 빨고 싶어.”

태화의 미간이 좀 더 짙게 구겨졌다. 최선우는 지금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 자각이 없는 듯했다. 그렇게 말하면 듣는 놈 자지가 터져 버릴 것 같은 건 아는지 모르는지 자꾸 저런 식으로 사람을 자극했다. 정작 저 말을 듣고 정말 제 마음대로 해 버리면 엉엉 울 거면서 왜 감당 못 할 짓만 하는지 몰랐다.

“응? 다시 박아요, 나한테…….”

선우는 기어이 입을 아 벌리고 태화를 기다렸다. 아직 입 안에 남아 있는 좆물 찌꺼기도 전부 삼키지 못했으면서 난리였다. 태화가 심각한 표정으로 쳐다보기만 하자 선우가 직접 그의 좆을 쥐고 흔들었다. 거기서 그치면 좋았으련만 그 아래에 탐스럽게 매달린 고환을 입에 넣고 굴리기까지 했다.

좆 빨리는 것과는 또 다른 감각에 태화는 허리가 곧추서는 걸 느꼈다. 사방으로 퍼져 있던 피가 빠른 속도로 중심을 향해 몰려들었다. 마저 삼키지 못한 한쪽 고환을 손으로 매만지듯 둥글리자 태화는 눈을 질끈 감더니 한참 만에야 다시 뜨고는 두 손으로 선우의 뺨을 감싸 쥐었다.

“목구멍 제대로 열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그마하게 벌어진 입 안으로 자지를 욱여넣었다. 자위 기구를 쓰듯 퍽퍽 소리가 날 정도로 박아 대다가 아예 한쪽 다리를 침대 위에 올린 채 선우의 유두를 꼬집으며 허리를 빠르게 치댔다. 뭉툭한 선단 끝이 목구멍을 넘어 저 안쪽까지 치고 들어갔다.

먼저 도발하고 나섰던 선우도 이 정도로 깊게 쑤셔 박힐 거란 생각은 못 했는지 귀두 갓이 식도를 긁어 댈 때마다 눈을 번쩍번쩍 떴다. 숨이 전혀 쉬어지지 않았다. 숨을 쉬려고 목구멍을 열어 봤자 들어오는 건 자지와 프리컴뿐이었다.

코로 숨을 쉬는 것도 불가능했다. 자지가 쳐들어올 때마다 고환이 콧대를 뭉그러뜨릴 듯 압박했다. 결국 선우는 숨 쉬길 포기하고 태화의 손을 찾아 깍지를 꼈다. 꼭 왼손이었다. 남는 손으로는 스스로 자지를 쥐어흔들었다. 이미 잔뜩 열이 올라 있던 좆은 몇 번 문지르지 않았는데도 금방 정액을 쏟아 냈다. 태화에게 뒷구멍이 박히는 것도 아니고, 목구멍을 박혀 가며 사정한 변태가 바로 최선우였다.

한참 추삽질이 이어지고, 선우도 더는 한계다 싶을 즈음 태화 역시 거친 숨을 후욱 내뱉어 가며 허리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먼저 사정한 선우가 본능적으로 목구멍을 조이는 순간 태화의 입에서 커다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윽, 아……! 씨발……!”

허벅지가 부르르 떨렸다. 좁다란 곳으로 정액이 밀려들어 가는 게 느껴졌다. 끈적하게 달라붙어 오는 목구멍 속으로 모든 걸 쏟아 낸 태화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깊숙이 박은 뒤에야 뒤로 물러났다.

“하아, 하…….”

느릿하게 좆을 빼내자 좆구멍에 매달려 있던 정액이 선우의 입술을 더럽히고, 인중까지 번들번들 물들였다. 콧잔등에 고여 있던 정액은 선우가 숨을 들이켜는 바람에 콧구멍 안으로 쏙 밀려들어 갔다. 선우는 입 안에 든 걸 꼴깍 삼키면서 코에 들어온 것도 킁 소리를 내며 먹었다. 코 안이 약간 찡하기는 했으나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까지 아깝다는 듯 손가락으로 모조리 그러모아 쪽쪽 빨아 대자 태화가 자지로 뺨을 문질렀다. 그 바람에 뺨이 더 질척하게 젖었다. 빤히 내려다보는 시선에 선우는 태화의 좆기둥에 쪽 입을 맞췄다.

“좋았어요?”

“존나.”

“나도, 나도요…….”

선우는 숨소리를 가득 섞어 말하더니 배시시 웃었다. 뺨이고 입술이고 눈두덩이고, 온통 정액 범벅인 낯으로 샐쭉 눈웃음을 쳐 대는 모습에 태화는 끙 앓는 소리를 냈다. 처음 최선우를 따먹었을 때부터 알아봤지만 최선우는 정말 난놈이었다. 가만 보면 늘 최선우가 저를 따먹는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마저 들 정도였다.

겨울이 다가오는 계절이라 밤이 점점 길어지는데 어쩐지 태화와 선우에게만큼은 너무 짧았다. 섹스하고, 씻고, 잠까지 자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태화의 체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선우는 두어 발 싸고 나면 항상 칭얼댔다. 웃긴 건 힘들다고 찡찡거리면서도 그만하라는 말은 죽어도 안 한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두 다리로 태화의 허리를 옭아매고 조금 더 바짝 맞붙었다. 천천히 해 달라고, 너무 빠르다고. 그런 소리만 해 가며 태화를 쉼 없이 자극했다.

태화는 콘돔을 끼고 하다가도 사정할 땐 늘 밖으로 빼 콘돔을 벗기고 선우의 몸 위로 싸는지라 다 끝나고 나면 선우는 허연 좆물에 절여져 있다시피 했다. 머리카락에도 정액이 엉겨 붙었고, 뺨과 젖꼭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관계 끝에는 늘 선우가 지쳐 늘어지는 탓에 좆물을 뒤집어쓰고 있는 몸을 씻기는 건 태화의 일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자세에 자극받아 평소보다도 더 열과 성을 다했던지라 태화도 오늘은 씻고 자시고 할 여력이 없었다. 너무 졸렸다. 마지막 사정 후 선우는 이미 쿨쿨 자고 있었다. 큰 숨을 쌔근거리며 자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태화 역시 옆에 몸을 풀썩 뉘었다. 축축이 젖은 몸을 꼬옥 끌어안고 함께 잠들었다.

“으응…….”

작은 소리에 태화는 눈을 슬며시 떴다. 선우는 태화에게 등을 보인 채 품에 안겨 있었다. 선우가 한 번 더 작게 앓는 소리를 내자 태화는 잠이 덜 깬 상태로도 선우가 편하게끔 팔베개를 해 주고 이불을 턱 끝까지 끌어 올려 덮어 줬다. 이불에 둘둘 쌓인 몸을 끌어와 좀 더 바짝 끌어안았다. 은은한 냄새가 솔솔 올라왔다.

오늘은 무슨 냄새인가, 생각해 봤으나 제 정액 냄새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서 픽 웃다가 동그란 정수리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입술에 제가 흩뿌려 놓은 정액이 묻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떻게 잤는지 까치집을 잔뜩 지은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세심하게 정리해 주고 한 번 더 입술 도장을 찍자 선우가 낑 소리를 냈다. 꿈이라도 꾸는 것처럼 자꾸 낑낑거려서 꼭 개새끼 같았다. 문득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던 선우의 말이 떠올랐다.

“키우긴 뭘 키워.”

태화는 작게 웃으며 선우의 볼을 톡 쳤다. 굳이 개 한 마리 들이지 않아도 이미 개와 사는 기분이었다. 최선우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개새끼 같아졌다. 예쁘고 소중하다는 뜻이었다.

예쁜 놈 엉덩이 좀 만져 볼까 싶어 아래로 손을 내렸다. 강아지 터럭처럼 보들보들한 살결이 느껴졌다. 엉덩이도 참 작아서 한 손에 쏙 들어오는 걸 쥐어 주무르다가 문득 지난밤에 씻지도 않고 잠들었던 게 기억났다. 마지막 두 번은 콘돔 없이 해서 아직 구멍 안에 정액이 남아 있을 터였다. 골 사이로 손가락을 미끄러뜨리듯 집어넣자 역시나 질척했다. 모른 척 아랫구멍을 슬쩍 벌려 보는데 정액이 죽 흘러 손가락을 적시는 게 느껴졌다.

“하으…….”

선우도 무언가 느껴지는지 잠결에도 낮게 앓았다. 봉긋한 엉덩이를 타고 내려가는 정액을 만져 보던 태화는 마른침을 크게 삼켰다. 단전이 후덥지근하게 끓어올랐다. 질질 새는 정액을 다시 그러모아 구멍 안으로 꾹 밀어 넣었다. 손가락 두 개를 넣어 휘적이자 찔걱이는 소리가 났다. 지난밤 그렇게 박아 댔는데도 질척하게 젖은 내벽은 손가락 두 개를 세게 조여 물었다.

“어떻게 생겨 먹은 거야, 대체.”

태화는 푸념하듯 말하며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선우의 몸은 안 그래도 체온이 높았는데 내벽은 더 뜨거웠다. 뜨겁다 못해 손가락이 녹을 것만 같았다. 매끄럽게 주름진 곳을 살살 비벼 매만지자 팔딱팔딱 뛰는 옅은 맥도 느껴졌다.

이 안으로 제 자지가 끊임없이 들락거렸을 걸 생각하면 눈앞이 어찔했다. 당장이라도 처박고 싶었다. 그렇게 했는데도 또다시 흥분감에 휩싸여 입 안으로 침이 고였다. 자지도 슬슬 자아를 가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자다 깨서 벌떡 일어나 있던 놈이 몸집까지 부풀려 대가리를 꺼떡이다가 알아서 선우의 골 사이를 파고들어 갔다.

“씨발.”

태화는 더 참지 못하고 이불을 걷었다. 제 다리 사이에 얽혀 있는 선우의 왼쪽 다리를 덜렁 든 채 아래를 내려다봤다. 틈이 조금 벌어지자 기껏 밀어 넣은 정액이 다시 비어져 나왔다. 안에 든 게 전부 쏟아지기 전에 태화는 서둘러 귀두 끄트머리를 끼워 맞춰 입구를 틀어막았다.

“흐…….”

선우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잠투정을 부렸다. 여전히 한밤중이었다. 잠에 깊게 빠진 몸은 여느 때보다도 말랑하고 따뜻했다. 내벽도 마찬가지였다. 귀두를 걸쳐 두고 한참 가만히 있던 태화는 선우가 다시 곤히 잠든 것 같자 허리를 꾹 올려붙였다. 밤새 드나들던 뒷구멍이었다. 그러니 그만큼 익숙한 감각이어야 하는데 선우의 안에 좆을 박아 넣을 때면 항상 새로웠다. 매번 처음 이곳을 침범하는 것 같았고, 아무도 쓴 적 없는 곳을 처음 더럽히는 것만 같았다.

좆물이 끈적하게 말라붙은 좆을 디밀자 안에 고여 있던 정액들이 쩍쩍 달라붙어 오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처음에는 귀두 갓까지만 넣었다 빼다가 점점 깊숙이 들어갔다. 한번 넣고 뺄 때마다 찌걱이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그 작은 소리마저도 자극이라 태화는 몸을 둥글게 말아 선우의 목덜미에 이마를 쿵 맞댔다.

“하……. 후으, 아…….”

낮은 신음이 끊임없이 나왔다. 겨우 반 정도 밀어 넣자 안쪽이 혼자서 죄었다 풀길 반복하며 좆기둥을 쥐어짜 내듯 움직였다. 자면서도 내벽을 조여 대는 선우 때문에 참을 수가 없었다. 이를 악물고 버티다가 결국 허리를 퍽 쳐올렸다.

“아……!”

뿌리 끝까지 단번에 박아 넣자 늘어져 있던 몸이 움칠거렸다. 한 번 더 콱 쳐올리자 선우의 입에서 힉! 소리가 나왔다. 뭣도 모르고 잠에서 깬 선우는 커다란 눈을 끔뻑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익숙한 광경이었다.

뭐지……?

생각하고 있는데 목덜미로 더운 숨이 닿는 게 느껴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 뒤를 돌아보려고 했지만, 선우는 다시 희뜩 떨 수밖에 없었다. 뒷구멍으로 뜨거운 게 쳐들어와 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고 멀뚱거리다가 태화가 다시금 굵은 핏줄로 내벽을 비벼 대자 절로 고개가 꺾였다.

“아흐, 응……. 아, 하읏……!”

자다 이제 막 깨서 그런지 신음이 더 낮고 짙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잘만 자고 있었는데 눈을 떠 보니 태화에게 뒤를 내준 상태였다. 더군다나 오줌 싸는 개처럼 왼쪽 다리만 덜렁 들려 있어서 민망하기도 너무 민망했다.

“아저씨, 응…….”

선우는 제 오금을 그러쥔 태화의 손등을 쓰다듬다가 굵다란 팔목을 쥐었다. 뒤를 돌아보자 곧장 태화와 눈이 마주쳤다. 태화는 선우의 귓불을 질척하게 핥는 중이었다. 귓구멍까지 혀를 넣어 빨아 대다가 선우의 턱을 쥐어 와 입술을 겹쳐 물었다. 말캉한 혀가 닿자마자 태화의 입에서 씨발,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자다 일어났으면서 최선우의 입 안은 마냥 달큼하기만 했다. 아무래도 콩깍지가 씌어도 제대로 씐 것 같았다. 그리고 벗겨질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저를 보며 눈꼬리를 착 내리깔고 신음하는 선우를 마주했을 때는 아예 평생 벗겨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선우에게 이렇게나 단단히 빠질 줄은 꿈에도 몰랐어서 돌연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맞붙은 입술 사이로 웃음소리가 번졌다. 선우는 제 입 안으로 들어차는 태화의 웃음을 받아먹으면서 서툴게 혀를 움직였다.

“또, 또 하는 거예요……? 아……!”

“어.”

“왜, 갑자기…….”

“네가 하도 예뻐서 뭐 가만둘 수가 있어야지. 후으, 봐 봐. 너도 좋다고 물어 대잖아.”

태화는 실실 웃으며 선우의 손을 쥐어 아래로 내렸다. 자지가 들락거리는 접합부를 만지게끔 하자 선우는 도리질을 쳤다. 주름 하나 없이 팽팽하게 늘어난 구멍이 느껴졌다. 매일같이 섹스해도 언제나 처음은 두려웠다. 태화의 자지가 워낙 커서 그랬다. 제 손목보다도 굵은 게 구멍을 쉼 없이 왕래하자 선우는 겁먹은 얼굴을 하고 태화를 쳐다봤다. 비 맞은 똥개처럼 애처로운 눈빛이었다.

그 눈동자를 가만 들여다보던 태화는 이제는 돌연 씨익 웃었다. 예전 같으면 저 눈빛에 속았겠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진짜 겁먹은 게 아니라는 것쯤은 진즉에 알았다. 그저 조금만 봐주길 바라며 엄살을 부리는 것이었다.

이렇듯 다 알지만, 또 모른 척 깜빡 속아 넘어가 줄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부터 최선우에게 늘 져 주게 되었다. 이기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그랬다. 애처로운 눈빛 한 번에 마음이 녹아내린 태화는 말간 뺨에 쪽쪽 입을 맞추고 왼쪽 다리를 들어 올린 손을 조금 더 깊숙이 넣어 선우의 자지를 쥐었다. 선우도 남자라 작은 텐트가 쳐져 있었다. 게다가 아랫구멍이 쑤셔지는 쾌감에 진득한 물까지 스며 나온 걸 쥐고 살살 매만지듯 흔들자 반응이 재깍 왔다.

“아으, 오줌, 일어나자마자 그러면 오줌 나올 거 같아요, 아!”

“나도 나올 거 같은데.”

“응, 아……! 안 돼, 진짜 나와, 흐윽…….”

“나도 쌀게. 너도 싸.”

선우는 연신 고개를 저으며 안 된다고 웅얼거렸다. 이대로 쌀 순 없었다. 오줌은 변기에다 싸는 것이었다. 이런 침대에 오줌을 싸는 건 어린애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또한 태화 역시 싸겠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인지 몰랐다.

내 안에다 오줌을 싸겠다고?

그런 생각까지 해 버린 선우는 더욱 빠르게 도리질 쳤다.

“안 돼, 그럼 안, 읏……. 안 돼……. 오줌은 변기에다, 하으, 아, 아!”

선우는 안 된다며 고개를 저으면서도 태화가 찔러 주면 찔러 주는 대로 만져 주면 만져 주는 대로 신음을 크게 터뜨렸다. 요의가 느껴지는 동시에 쾌감도 얹어지자 온몸이 절절 끓는 것만 같았다. 이대로 있다가는 오줌이든 뭐든 정말 싸 버릴 것 같아서 덜덜 떨며 태화를 밀어 냈지만, 그는 좋다고 웃는 소리만 냈다. 거의 집어삼킬 듯이 볼을 빨아들이며 박아 대는 속도만 높였다. 손안에 들어온 선우의 자지도 빠르게 치댔다.

“아! 아저씨, 나, 오줌……! 아아!”

비명 같은 신음 뒤로 선우는 사지를 부르르 떨었다. 마른 배가 크게 오르내리기도 했다. 허연 백탁액이 흘러나오던 좆 끝에서 노랗고 맑은 액체가 쫄쫄 흘러나왔다. 정말 오줌이었다.

“하……. 하으, 읏…….”

선우가 아랫배에 힘을 주며 안에 든 걸 모조리 싸지르는 동안 내벽이 확 수축하는 바람에 태화도 얼마 지나지 않아 좆구멍으로 많은 걸 쏟아 냈다. 선우와 달리 태화가 싼 건 진짜 정액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저 역시도 뒷구멍 안에 오줌발을 갈기고 싶었지만 그게 썩 선우의 몸에 좋지 않을 거란 생각에 참은 것이었다. 대신 오줌만큼이나 정액을 많이 싸지르며 추삽질을 얕게 몇 번 더 했다.

선우는 그때까지도 오줌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자다 일어나서 처음 싸는 거라 그런지 오줌발이 길게 이어졌다. 태화는 오줌이 흘러나오는 선우의 자지를 구경했다. 마치 본인이 소변보는 것처럼 조준까지 해 줬다. 말갛게 쏟아져 나오는 오줌은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침대 밑으로 떨어졌다. 한참 쏟아 내다가 오줌 줄기가 잦아들자 태화는 좆 끝을 탁탁 털어 주는 친절까지 베풀었다.

“쌌어…….”

“어?”

“오줌……. 싸 버렸어요…….”

선우는 무슨 나라라도 잃은 사람처럼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멍하니 맞은편에 있는 책상을 쳐다보다가 어깨 너머에서 키들대며 웃는 소리가 들리자 뒤를 휙 돌아봤다. 발갛게 달아오른 눈으로 태화를 쏘아보더니 팔뚝을 퍽 때렸다. 손바닥도 아니고 주먹이었다. 꽤 강한 힘으로 몇 번 더 퍽퍽 때리다가 울상을 지었다.

“내가, 흐윽, 오줌 나온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싸라고 했잖아.”

“맨날 창피하게 만들고, 맨날 아저씨 마음대로 하고!”

선우는 정말 화가 난 듯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던 눈빛이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못나게 눈을 흘겼다. 숨까지 씩씩거리며 온몸으로 화가 났음을 표출했다.

태화는 그 모습을 보며 잠시 두 눈을 멀뚱거렸다. 영 낯설다는 듯, 또 조금은 당황한 듯한 얼굴이었다. 짙은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며 선우를 쳐다보다가 몸을 뒤로 확 뺐다. 내벽을 꽉 메우고 있던 좆이 단숨에 빠져나가자 선우는 ‘흐아……!’ 하는 신음을 흘리며 몸을 둥글게 말았다. 마치 풀잎 사이에 파묻힌 애벌레라도 된 양 두 무릎을 껴안은 채 파르르 떨었다.

아랫구멍이 뻐끔거리며 안에 고인 정액을 죽 뱉어 내는 게 느껴졌다. 그 큰 걸로 하도 쑤셔 놔서 잘 안 닫히는 것 같았다. 구멍이 안 다물린다며 몇 번은 엄살을 부린 적도 있었으나 지금은 정말이었다. 몸이 움칠움칠 떨릴 때마다 구멍도 같이 움칠거렸다.

선우는 창피한 것도 잊고 손을 더듬더듬 내려 제 구멍을 만져 봤다. 다행히 잘 닫혀 있었다. 다만 꽉 다물린 곳에서 정액이 삐질거리며 새어 나오는 중이었다. 엉덩이가 축축하게 젖는 게 느껴지자 선우는 옅게 떨어 가며 태화를 올려다봤다. 멀뚱거리던 태화는 어느새 씩 웃고 있었다. 선우 위에 올라타 온 얼굴에 입을 맞추다가 고개를 들어 눈을 맞췄다.

“내 마음대로 하는 게 그렇게 싫었어?”

“…….”

“어? 그래서 싫어, 선우야?”

태화가 이름을 부르자마자 선우는 눈살을 엷게 찌푸렸다. 태화는 여우 중의 여우였다. 천 년이 뭐야, 만 년은 묵은 구미호가 따로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영리하게 굴 수 없었다. 저런 식으로 이름을 다정스레 불러 가며 물어보면 싫다는 소리가 도저히 안 나왔다. 그저 좋다고, 아저씨가 뭘 해도 좋다고, 그런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 들어찼다. 태화는 분명 그걸 알고 이러는 것이었다. 대체 그 많은 여우 꼬리는 어디에 숨겨 놓은 건지 모를 일이었다.

선우는 태화를 향해 눈을 흘기다가도 곧 입술을 작게 달싹였다. 불만이 잔뜩 있는 얼굴이었으나 고개는 저절로 도리질이 쳐졌다.

“안, 싫어…….”

목소리를 쥐어짜 내듯 말하자 태화는 그만 참지 못하고 크게 웃었다. 호탕한 웃음이었다. 부끄러운 듯 속눈썹을 아래로 늘어뜨린 선우에게 세례를 퍼붓는 것처럼 뽀뽀를 끊임없이 했다. 마지막으로 무게를 실어 선우에게 기대 꼬옥 껴안았다.

“숨, 윽, 숨 막혀요……!”

선우가 무겁다는 듯이 버둥거리는데도 놓아주지 않았다. 이대로 같이 죽자고, 태화는 제법 살벌한 생각을 하며 환하게 웃었다.

밤에 한 걸로도 모자라 결국 일어나자마자 거하게 붙어먹었다. 쉬는 날이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선우는 힘들어 죽겠는데 이번에도 태화 혼자 멀쩡했다. 나이 차이가 열둘이나 나는데 어떻게 태화는 이렇게나 쌩쌩한지 모를 일이었다. 신체 나이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라더니, 선우는 제 신체 나이가 태화보다 늙은 건 아닌가 싶어서 살짝 걱정되기도 했다.

지쳐 늘어진 선우가 숨만 바르작거리는 사이 태화는 선우를 욕실까지 옮겨 씻기고, 닦이고, 말리는 것까지 전부 다 해 줬다. 정액을 빼야 한다는 핑계로 욕조 안에서 손가락으로 한 번 더 괴롭힌 탓에 선우에게 힘 빠지는 보약 좀 지어 먹으라는 괴상한 타박을 들어야 했다.

씻고 나온 두 사람은 다시 이불 속에 파묻혔다. 선우가 싼 오줌으로 더러워진 침대는 당장 쓸 수가 없어서 대신 거실 바닥에 이부자리를 깔고 누운 참이었다. 선우는 습관처럼 태화의 팔을 벤 채 잠들락 말락 가물거리는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태화 역시 싱긋 웃으며 선우를 마주 봤다.

허리를 끌어안은 채 토닥토닥 두드려 주자 선우는 희미하게 웃었다. 딱 좋은 온도와 폭신한 이불, 따끈따끈하고 단단한 태화의 품에 안겨 있으려니 잠이 솔솔 왔다. 이대로 조금만 자고 일어나서 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가 불현듯 다시 번쩍 떴다. 무언가 생각난 표정이었다.

“그때 귀에 대고 뭐라고 했었잖아요.”

“언제?”

“그때, 창고에서…….”

“아.”

선우는 태화의 눈치를 봤다. 6개월 전 창고에서 있었던 일은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전부 제 잘못처럼 느껴졌다. 서재화의 세 치 혀에 놀아나지만 않았어도, 아니, 그놈에게 잡히지만 않았어도 태화의 옆구리에 흉터가 남을 일은 없었을 터였다. 손가락도 마찬가지였다. 선우는 태화의 왼쪽 검지가 있다가 사라진 뭉툭한 부분을 살살 매만지며 우물쭈물했다. 별로, 떠올리기 썩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반면 태화는 별스럽지 않은 얼굴이었다. 선우는 용기를 얻어 한 번 더 물었다.

“그때 뭐라고 했던 거예요? 망가진 귀 쪽으로 들어서 잘 못 들었거든요.”

“알아듣지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인 거야?”

선우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때는 상황이 워낙 급박해서 알아들은 척할 수밖에 없었다.

“네? 뭐라고 했었는데요? 무슨 말 했던 거예요?”

태화의 왼손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위에서 픽 웃는 소리가 들렸다. 슬며시 시선을 올려 보자 싱긋 웃는 태화가 보였다.

“너 못생겼다고.”

장난스러운 표정이었다. 선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거짓말.”

“진짜.”

“아저씨 나 엄청 예뻐하잖아요.”

저도 알 건 다 안다는 듯 말하자 태화는 눈을 선명하게 뜨다가 곧 허허롭게 웃었다. 그런 것도 아느냐는 얼굴이었다. 모르고 싶어도 알 수밖에 없었다. 태화는 티가 날 정도로 선우를 예뻐했다. 조금만 무거운 걸 들어도 팔이 부러지는 줄 아는 것처럼 애지중지했고, 매일 눈만 마주치면 예뻐 죽겠다는 눈빛을 쏴 대며 빙긋이 웃었다.

더럽게 예쁘다고 푸념처럼 말한 적도 있었다. 처음에는 남자에게 예쁘다는 게 뭔가 싶어 약간 별로였는데 날마다 예쁨받고 살다 보니 요즘은 거울을 보며 정말 예쁜가? 하고 생각하게 됐다. 이러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일이었다. 선우는 괜스레 태화의 턱에 쪽 뽀뽀를 갈기고는 모른 척 품에 안겼다. 이후로도 그때 무슨 말을 했는지 계속 물어봤으나 태화는 끝까지 말해 주지 않았다. 결국 선우는 제풀에 지쳐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금세 잠들었다.

고롱고롱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태화는 그제야 긴 숨을 내쉬었다. 잘도 자는 선우의 뺨을 쥐어 보고 콧잔등도 톡 쳐 봤다. 입술을 매만지고, 이마에 뽀뽀도 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선우가 듣지 못하는 왼쪽 귀를 살살 쓰다듬었다. 창고에서 선우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귀에서 피가 질질 흐르는 줄도 모르고 이 공간에서 선우를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속삭였던 말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가. 최대한 멀리 가. 다시는 오지 마. 내가 네 최악이니까, 날 버리고 가.’

‘최악이 없는 삶을 살아.’

‘잘 살아, 선우야.’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멍청하게 고개만 끄덕이던 선우마저 떠올린 태화는 픽 웃는 소리를 냈다. 제 품에 쏘옥 안겨 있는 선우를 내려다봤다. 미련하기가 이를 데가 없어서 최악에게서 벗어나지도 못한 최선우였다. 인생에서 다신 없을 최악의 품에 안겨 살게 되었는데 뭐가 좋다고 이렇게 예쁘게 웃으면서 자나 싶었다.

태화는 선우의 볼을 톡 치고 눈을 감았다. 선우를 바투 끌어안고 잠을 청했다. 휴일에 선우를 껴안고 자는 낮잠은 정말이지, 최고였다. 오랜만에 좋은 잠에 들었다.

꿈도 꾸지 않고 취한 숙면이었다. 서로의 품에 안겨 즐기는 휴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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