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13)

5.

동열은 지난번 방문 이후 다신 찾아오지 않았다. 선우와 관련한 실종 뉴스도 전혀 없었다.

태화는 선우를 조금씩 풀어 줬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또라이를 집 밖으로 내놓는다는 게 별로 마뜩잖았으나 선우가 너무 답답하다고 해서 어쩔 수 없었다. 다만 선우가 태화 정육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반경은 고작 10미터 남짓이었다.

그것도 앞문으로는 나가지 못했고, 뒷문으로만 가능했다. 그러니까 쓰레기봉투만 버리고 올 수 있는 거리였다. 그마저도 CCTV로 누가 있나 없나 확인한 뒤에야 나갈 수 있었다.

“쓰레기 버리고 올게요.”

“같이 가.”

“요 앞인데요, 뭐.”

선우는 익숙하게 쓰레기봉투를 챙겼다. 한 손에는 분리수거할 것들이었고, 다른 손에는 일반 쓰레기봉투가 들려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는 매번 태화가 버렸다. 선우가 버리려고도 해 봤지만 어느샌가 정신을 차려 보면 태화가 빼앗아 들고 있었다. 한 번은 몰래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계단을 내려가다가 서재에 있던 그가 ‘어디 가’ 하고 묻는 소리에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더랬다.

그때 꼬리뼈에 든 멍이 아직도 있었다. 선우는 문득 꼬리뼈를 문질러 보다가 뒷문을 나섰다. 정육점 마감을 끝낸 뒤라 골목이 어두웠다. 가로등도 하나 없는 곳이어서 조금 스산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선우는 씩씩하게 쓰레기장까지 걸어갔다.

우선 일반 쓰레기부터 버리고, 나머지 것들을 차례차례 분리수거했다. 비닐이 붙은 페트병을 발견하고 떼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겨우 떼서 각각 비닐과 페트로 나누어 버리는데 분리수거장 옆으로 누군가 오더니 담배를 피웠다. 이곳에서 담배 피우는 거야 워낙 비일비재한 일이었다. 선우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쓰고 있던 모자만 좀 더 깊게 눌러썼다. 마지막으로 맥주 캔까지 제자리에 놓는데 옆에서 어? 하는 소리가 들렸다.

“와, 이게 누구야?”

선우는 순간 멈칫했다. 익숙한 음성이었다. 어디서 들어 봤는지 기억을 더듬는 중에 모자가 훌렁 벗겨졌다. 선우가 다급하게 손을 뻗었으나 모자는 앞에 선 남자의 손에 들어가 있었다. 남자는 담배를 한번 쪽 빨며 선우를 위아래로 훑었다.

“최선우! 너 최선우 맞지?”

남자가 아는 체를 하자 선우는 고개를 푹 숙였다.

“사람 잘못 봤습니다.”

“지랄. 잘못 보기는. 내가 네 팔뚝에 놓은 담배빵이 몇 갠데.”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선우의 팔을 홱 끌어왔다. 팔뚝은 흉터 하나 없이 말끔했다.

“어? 그새 없어졌네. 그래도, 흉터 없어졌다고 내 기억도 싹 다 지웠냐?”

남자는 시시덕거리며 말했다. 선우는 잡힌 팔을 비틀어 빼내 남자에게서 한 걸음 물러섰다. 남자는 과거 지영환의 사무실에서 본 적 있었다.

선우는 꽃다방에서 일하기 전 지영환 사무실에서 잠시 머물렀더랬다. 그때 처음 지영환의 좆을 빨았고, 앞에 있는 남자가 지영환에게 뒤를 대 주는 것도 목격했다. 지영환은 그래도 이제 갓 스물이 된 놈을 억지로 범하기 그랬던지, 선우에게는 펠라티오만 시켰고 그런 날엔 꼭 남자를 사무실로 불러 섹스했다. 남자는 그때부터 선우를 싫어했었다.

선우는 입만 쓰는데 자신은 뒤까지 대 줘야 한다는 게 싫었을 터였다. 그래서 가끔 지영환이 없는 틈을 타 선우에게 온갖 폭언을 쏟아 내고, 티 나지 않을 곳을 교묘하게 때리고, 팔뚝에 담배빵을 놨다. 팔뚝 안쪽에 짙게 남았던 화상 자국이 없어지는 데까지 장장 1년이 걸렸었다.

“지영환 따까리들이 너 하나 찾는다고 아직도 난리를 쳐 대는데, 여기 숨어 있었어? 뭐, 돈 많은 늙다리라도 물었냐?”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니면? 딱 보니까 길바닥에서 노숙하는 거 같지는 않고. 입고 있는 옷이며, 슬리퍼며……. 죄다 메이커잖아. 신수 훤해진 거만 봐도 존나 잘 먹고 잘사는 게 보이는구만 어디서 이빨을 까.”

빙글빙글 웃던 남자는 돌연 매서운 눈을 뜨고 선우에게 다가왔다. 선우가 또다시 뒷걸음질 치자 이번에도 팔뚝을 잡았다.

“야, 그놈들한테 너 여기 있다고 다 말할까?”

선우의 눈이 커졌다. 고개를 크게 저었다.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걸 영환의 아랫놈들이 알면 당장 찾아올 터였다. 가만히 찾아오기만 하면 다행이지, 태화 정육에 깽판을 놓을 게 분명했다. 게다가 잡히면 새우잡이 배에 팔릴지도 몰랐다. 아니, 죽을 수도 있었다.

“너 잡으면 몸에 있는 장기란 장기는 다 꺼내서 팔아먹겠다고 혈안이 돼 있던데, 내가 너 여기 있는 거 말하면 장기 팔아먹고 남은 돈 얼마라도 나한테 안 떨어지겠냐?”

“말하지 마세요! 네? 하면 안 돼요. 저 진짜 죽어요……!”

“그러니까. 내 입을 막으려면 최소한의 성의라도 보여야지.”

“성의요……?”

“돈. 병신아, 돈 가지고 오라고.”

남자는 곧바로 목적을 드러냈다. 행여 선우가 못 알아들었을까 봐 엄지와 검지를 붙여 만든 돈 모양을 흔들어 보였다. 선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돈 없어요.”

“왜 없어? 같이 사는 놈한테 달라고 해.”

“안 돼요. 그 사람도 돈 없어요.”

“웃기지 마, 새끼야. 잘 처먹고 사는 게 뻔히 보이는데 씨발 누굴 빙다리 핫바지로 아나.”

“진짜 없다고요.”

선우의 언성이 살짝 높아졌다. 두 주먹을 꽉 쥐고 말하는 모습에 남자는 인상을 험하게 일그러뜨렸다.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눈빛이었다. 잡고 있던 선우의 팔뚝을 바짝 끌어왔다.

“야.”

남자는 피우던 담배를 선우의 팔뚝에 비벼 껐다. 치익, 하는 소리가 났다.

“아악!”

“썅년아.”

“윽……!”

선우는 남자에게 머리채가 잡혔다. 팔뚝을 내려다보고 싶었지만, 두피가 뜯어질 정도로 강한 힘이라 쉽게 고개를 숙이지도 못했다.

남자는 선우의 낯으로 희뿌연 연기를 훅 뿜었다. 매캐한 담배 냄새 뒤로 고기 익는 냄새도 났다. 살갗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선우는 순간 눈을 번뜩 떴다. 과거 그 사무실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한쪽에서 비릿한 정액 냄새가 느껴지고, 언제든지 지영환이 원할 때면 펠라티오를 해야 했던 시절.

그때로 깜빡 돌아간 기분에 선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벗어나야 했다. 선우가 손을 떼어 내려고 아등바등하는 동안 남자는 여유롭게 담배를 한 대 더 물었다. 불까지 붙이고 선우를 매섭게 쏘아봤다.

“네 이 잘난 면상 지져 버리기 전에 돈 가져오라고.”

“없어요……. 진짜 돈 없다고……!”

“씨발년이, 진짜.”

선우가 발악하자 남자는 한 모금 빨다 만 담배로 다시 팔뚝을 지졌다.

“으아악!”

말랑한 살 위로 벌건 화상 자국이 두 개나 생겼다. 진물이 나오는 피부 위로 담뱃재가 엉겨 붙었다. 남자는 작정한 것처럼 굴었다. 담배를 또 한번 피웠다. 벌써 세 개비째였다.

“다음에는 진짜 얼굴이다.”

“나 돈 없어. 없다니까, 씨발!”

“씨발? 야, 야 이 썅년아. 지영환도 없는 마당에 누가 널 아낀다고, 씨발. 내가 네 얼굴 지져도 뭐라 할 놈 하나 없어, 알아? 어? 알아듣…….”

남자는 말을 채 다 잇지 못하고 억! 소리를 냈다. 선우의 머리채를 잡은 손이 스륵 풀렸다. 남자가 순식간에 바닥으로 쓰러졌다. 하필이면 쓰레기봉투 위에 쓰러져서 터진 봉투에서 흘러나온 쓰레기들이 나뒹굴었다.

선우는 헉헉 숨을 몰아쉬며 앞을 봤다. 쓰러진 남자보다도 그 뒤에 선 사람이 더 먼저 눈에 들어왔다. 태화였다. 태화는 손에 스패너를 들고 있었다. 작정하고 챙겨 나온 모습이었다.

“없기는 왜 없어, 씨발. 여기 버젓이 있는데.”

일상적이고 가벼운 어투였다. 남자의 말에 뒤늦게 대꾸하듯 중얼거린 태화는 들고 있던 스패너를 바지 뒷주머니에 대충 찔러 넣었다.

선우는 놀란 토끼 눈을 뜨며 태화를 바라봤다. 분명 사무실에 갇혀 있었는데 순식간에 현실로 돌아왔다. 태화는 손을 탁탁 털다가 선우의 시선을 느끼고 넌지시 눈을 맞췄다. 삐딱하게 서서 쳐다보자 선우가 딸꾹질했다. 어깨를 들썩여 가며 끅끅거리는 모습에 태화는 쯧 혀를 찼다. 참 가지가지 하는 놈이었다. 태화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 남자를 넘어 선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너는 또 왜 돈이 없어? 내가 돈이 얼마나 많은데.”

“그건, 끅……! 아저씨 돈이잖아요…….”

“등신아, 네가 그러니까 이런 새끼한테 당하고 사는 거야.”

선우는 제 앞에 온 태화를 올려다봤다. 태화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선우 역시 스스로가 참 한심하게 느껴졌다. 담배빵을 두 번이나 당할 동안 남자의 귀싸대기 한번 갈기지 못한 게 한심했고, 과거의 환상에 사로잡혀 덜덜 떨기만 한 게 한심했다. 만약 태화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정말 얼굴에 화상 흉터를 달았을지도 몰랐다.

나는 왜 이렇게 한심하지?

예전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지금은 왜 이렇게 됐는지 선우는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한순간에 머저리가 되어 버린 것만 같은 기분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고개를 숙이려는데 태화가 입술을 톡 쳤다.

“또 우냐?”

“안 울어요…….”

“당연히 안 울어야지.”

태화의 말에 선우는 코를 킁 먹으며 괜스레 뺨을 비볐다. 눈두덩이를 비비면 눈물이 찔끔 나왔던 걸 들킬 것만 같아서 그랬다. 뺨을 벅벅 비벼 가며 열을 내다 다시 손을 내렸다. 그때 태화가 팔을 너르게 벌렸다.

“안아 줘?”

목소리가 다정하게 울렸다. 물음표를 매달았으나 태화는 이미 안을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선우는 망설이지도 않고 태화에게 다가가 폭 안겼다. 너른 품에 안기니 거짓말처럼 딸꾹질이 멎었다. 대신 따스한 온기가 느껴져서 눈물이 후드득 쏟아졌다. 딸꾹질인 척 끅끅 소리를 내자 태화가 한숨 비스름한 웃음을 흘렸다.

“진짜 잘 우네.”

낮게 중얼거리며 선우를 꼭 끌어안았다. 선우가 눈물을 멈출 때까지 가만히 안고만 있다가 울음소리가 점점 잦아들자 그제야 살짝 힘을 풀었다. 선우는 제 옷에 코를 슥슥 닦고 고개를 들었다. 붉게 물든 눈으로 태화를 바라봤다. 하지만 태화의 시선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거, 씨발 게 애를 울려?”

태화는 발치에 쓰러진 남자를 내려다보며 욕을 뱉었다. 선우를 바라볼 때와는 달리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짜증이 난다는 듯 쯧 혀를 찼다. 태화가 남자를 발로 툭 차자 선우도 따라서 툭 찼다. 남자는 미동도 없었다. 제대로 기절한 모양이었다.

“때릴래?”

태화가 물었다. 갑작스러운 말에 선우는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왜. 이참에 이 새끼한테 쌓인 거 다 풀어.”

“괜찮아요.”

아저씨가 있어서 괜찮아요.

부끄러운 마음에 뒷말은 꿀꺽 삼키고 태화를 더 바짝 껴안았다. 어리광을 부리듯 힘을 꽈악 주다가 고개를 들었다. 태화는 허허롭게 웃으며 선우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줬다.

“그럼 먼저 들어가 있어.”

“아저씨는요……?”

“난 얘 처리해야지.”

“죽이려고요?”

“글쎄, 어쩔까.”

둘은 동시에 남자를 내려다봤다. 선우는 태화가 과연 남자를 죽일지 의문이었다. 일에 있어서는 워낙 철저한 사람이라 의뢰도 없이 사람을 죽일까 싶었다. 태화의 눈을 들여다봤으나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들어가.”

태화가 엉덩이를 톡톡 두드려 주자 선우는 그를 한 번 더 꼭 끌어안고 나서야 떨어졌다.

집으로 향하는 동안 몇 번이고 뒤를 돌아봤다. 태화는 이쪽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 쓰러진 남자 앞에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 생각하는 듯했다.

선우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갔다. 남자가 남겨 놓은 담배빵 자국을 지우고 싶었다. 거품 칠 하고 물로 씻어 낸다고 당장 지워지지 않는다는 건 알았다. 그래도 싫었다. 몸에 남은 담배빵 자국을 볼 때면 다시 지영환의 사무실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아직도 살갗이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담뱃불보다도 더 뜨거운 물을 틀고 그 아래에 들어가 미친 듯이 팔을 문질렀다.

“흐윽…….”

울기 싫었으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불현듯 제 팔에 난 담배빵 자국을 보며 징그럽다고 학을 떼던 지영환이 떠올랐다. 저 때문에 생긴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하고 지영환은 선우에게 꼴이 그게 뭐냐며 벌레 보듯 했다.

그때 기억에 사로잡힌 선우는 할 수 있는 한 팔뚝을 벅벅 문질렀다. 살갗이 벗겨지든 말든 상관없었다. 벗어날 수 없는 과거가 제게 덕지덕지 묻어 있는 것 같았다. 팔뿐만 아니라 온몸에 벌건 상처가 날 정도로 바득바득 긁었다.

“떨어져. 떨어지라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결국 팔에서 피가 툭 터졌다. 담배빵 자국이 남은 곳이었다. 피가 한 줄기로 흐르는데도 선우는 멈추지 않았다. 손톱을 세워 긁고 있는데 순간 욕실 문이 벌컥 열렸다. 선우는 파드득 몸을 떨다가 문 쪽을 바라봤다. 태화가 서 있었다. 선우의 모습을 눈에 담은 태화는 미친, 하고 욕을 갈기며 안으로 성큼 발을 들였다.

“들어오지 마요……!”

선우의 외침에도 태화는 멈추지 않았다.

“들어오지 말라고!”

“왜 또 지랄이야?”

“들어오지 마요, 제발……!”

선우는 태화에게서 등을 돌렸다. 벽을 보고 서서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몸을 한껏 웅크린 채 파르르 떨었다. 징그러운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최선우.”

“가……. 나가.”

“최선우, 나 봐.”

태화의 목소리는 어느새 바로 옆에서 들렸다. 고개를 슬쩍 돌려 보자 욕조 안으로 성큼 들어온 발이 있었다. 그 위로 샤워기 물에 다 젖은 바짓단도 보였다. 선우는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머리만 숨기면 안 보이는 줄 아는 동물처럼 무릎 사이로 고개를 처박고 어깨를 감싸 안았다. 태화가 수온 조절을 했는지 피부가 델 정도로 뜨거웠던 물이 알맞게 따끈해졌다.

“나 보고, 일어서.”

태화의 목소리가 조금 더 낮아졌다. 언뜻 화를 참는 것도 같았다. 선우는 고개를 파묻은 채 도리질을 쳤다.

“싫어. 징그럽단 말야.”

중얼거리며 연신 고개를 저었다. 불안한 듯 어깨를 세게 긁자 태화가 손목을 홱 잡아챘다. 끌어 올리는 힘에 선우는 별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태화는 옷을 입은 채로 물을 맞고 있었다. 꼭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선우는 제 모습이 비에 젖은 똥개 같다는 걸 모르고 마냥 서태화만 생각했다.

태화의 시선이 여기저기 덕지덕지 붙었다. 선우는 태화가 제 몸을 훑을 때마다 흠칫 떨었다. 피가 흐르는 팔뚝을 감추고 손톱자국이 난 살갗을 가렸다. 미친놈이라고 생각할 게 분명했다. 할 짓이 없어 스스로 상처를 내고 앉았나, 짜증을 낼 터였다.

“그렇게 보지 마요, 제발.”

“예뻐.”

“네……?”

선우는 눈을 크게 떴다. 내내 태화의 발끝만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위로 올렸다.

“너 예쁘다고.”

태화는 한 번 더 같은 말을 읊조렸다. 선우는 커다란 눈을 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믿을 수 없었다. 이런 꼴을 하고 있는데 예쁘다니,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지긋이 바라보는 눈빛은 진심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태화가 손을 뻗었다. 뺨부터 시작해서 마른 어깨, 가느다란 팔, 한 손에 잡힐 듯한 허리, 봉긋한 엉덩이까지 태화의 손길이 지나갔다. 선우는 태화의 손이 닿을 때마다 옴칠거리며 떨었다. 야릇한 감각에 태화를 제대로 마주 볼 수 없었다. 시선을 살짝 내리깔자 태화는 마지막으로 입술을 톡 쳤다.

“온몸이 너무 예뻐서 다 핥아 주고 싶어.”

“거짓말…….”

“진짜야. 나 봐 봐. 응? 나 봐 봐, 선우야.”

“그렇게 부르지 말아요.”

“왜. 부끄러워?”

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끄럽다 못해 열이 올랐다. 뺨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다른 때는 이름을 헷갈리더니 지금은 왜 선우라고 잘만 부르는지 모를 일이었다. 괜히 몸을 가리자 태화가 손목을 잡아끌었다. 선우는 못 이기는 척 태화에게 안겼다. 물에 젖은 옷이 몸에 닿자 느낌이 이상했다.

얄따란 티셔츠 안으로 굵직하게 갈라진 근육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태화가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크게 오르내렸다. 선우는 그 단단한 가슴팍에 뺨을 대고 그의 호흡을 느꼈다. 쿵쿵쿵, 불안으로 뛰던 심장이 이제는 다른 의미로 세차게 뛰었다.

“근데 씨발 화나네.”

“뭐가요……?”

“그 새끼 말이야. 왜 남의 거에 함부로 스크래치를 내지? 예쁜 몸에 흠집 났잖아.”

태화는 한 번 더 개새끼가, 하고 욕을 짓씹으며 선우의 팔뚝을 내려다봤다. 하얀 살결 위로 동그란 화상 자국이 두 개 찍혀 있었다. 담배빵 자국만으로도 짜증 나는데 선우가 생각 없이 긁어 놔서 피까지 비치자 태화는 인상을 콱 구겼다. 피가 흐르는 흉터를 엄지로 조심스럽게 쓸었다.

선우는 아……! 소리를 내며 움칠거렸다. 이제야 통증이 느껴졌다. 태화는 몇 번 더 선우의 팔뚝을 문지르다가 고개 숙여 상처 위로 입을 맞췄다. 쪽쪽, 두 개의 화상 자국 위로 입 맞추는 소리가 났다.

“안 징그러워요……? 지영환은 징그럽다고 하던데…….”

“이런 적이 또 있었다고?”

선우가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에 태화는 크게 반응했다. 선우는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걔가 그런 거야?”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이자 태화의 눈썹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진짜 죽여야겠네.”

혼잣말하는 얼굴이 사나웠다. 밝은 눈동자로 안광이 스몄다.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짜증이 아니라 화가 난 듯 보였다.

“씨발, 진짜.”

“화나요?”

“어.”

“나 때문에요?”

“어. 너 때문에.”

태화는 정말 화를 냈다. 기운이 다른 게 느껴졌다. 선우는 끓어오르는 분노로 숨소리가 더 거칠어진 태화를 빤히 올려다봤다.

“말만 들어도 너무 좋아요.”

조금 전까지 처량하게 울었으면서 지금은 또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태화가 너무 좋았다. 담배빵을 보고도 징그러워하지 않는 게 좋았고, 예쁘다며 팔뚝에 입 맞춰 주는 게 좋았다. 무엇보다도 제게는 한 번도 화낸 적 없던 사람이 저 때문에 타인에게 화내는 모습이 좋았다. 특별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기분이 한껏 좋아진 선우가 배시시 웃으며 쳐다보자 태화는 화를 씨근대다 말고 쩝 입맛을 다셨다. 선우의 손을 끌어 아래로 내렸다.

“그럼 일단 이것 좀 어떻게 해 보든지.”

태화는 눈썹을 들썩였다. 선우는 숨을 옅게 들이켰다. 손안으로 묵직한 부피감이 들어찼다. 굵다란 기둥을 좀 더 더듬어 봤다. 이미 드로어즈 밖으로 대가리를 내민 것까지 파악한 선우는 침을 꼴깍 삼켰다. 입을 먼저 쓸지, 뒤로 곧장 받아들일지 잠깐 고민했다.

“콩알만 해서는.”

태화는 손가락으로 선우의 유두를 잡아 비틀며 말했다. 선우의 입에서 한숨 같은 신음이 나왔다. 아직 여운이 남아 있어 약한 자극에도 몸이 감전된 것처럼 찌릿했다. 태화가 제 유두를 둥글리는 동안 선우는 그의 팔뚝을 콕콕 찌르며 놀았다. 언제 봐도 탐스러운 근육이었다. 얼마나 운동하면 이렇게 되는 건지 몰랐다.

태화는 새벽 4시에 일어나면 항상 한 시간씩 러닝을 하고 왔다. 그뿐이었다. 태화가 하는 운동은 달리기밖에 없는데 몸에 근육이 덕지덕지 붙었다. 선우는 태화의 팔뚝을 찌르다 말고 제 팔뚝을 찔렀다. 순 말랑살이었다. 그래도 남자라고 힘을 주면 어느 정도 근육이 잡혔지만, 태화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운동을 안 해 본 것도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 또래 남자애들 사이로 근육 키우기가 한창 유행이어서 선우도 그때 바짝 운동했다. 문제는 근육이 잘 안 붙는다는 것이었다. 어깨는 얼추 넓어졌는데 살은 여전히 말랑했다. 그나마 넓어진 어깨도 매일 옹송그리며 살다 보니 그리 넓어 보이지 않았다.

“부럽다…….”

선우는 속에 든 말을 저도 모르게 웅얼거렸다. 유두를 톡톡 두드리며 놀던 태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아……. 아저씨 근육이요. 멋있잖아요.”

“넌 근육 키울 생각 하지 마라.”

태화는 그렇게 말하고 선우의 유두를 입 안으로 머금었다.

“아흣…….”

선우는 태화의 머리통을 끌어안았다. 이미 통통하게 부어오를 만큼 주야장천 빨아 댔으면서 아직도 부족한가 싶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쭙쭙 소리를 적나라하게 내 가며 빨아 대는 탓에 선우는 몸을 한껏 웅크렸다. 더듬더듬 태화의 손을 찾아 꼬옥 깍지 꼈다.

태화는 남는 손으로 선우의 말랑한 살들을 연신 쥐어 주물렀다. 팔뚝 안쪽 여린 살에도, 허벅지 안쪽에도, 엉덩이에도 모조리 태화의 손자국이 남았다. 특히 살집이 많은 부위만 찾아 만지는 태화 때문에 선우는 신음하며 생각했다.

살집 있는 쪽이 취향인가? 살을 더 찌워야 하나?

어느새 근육에 대한 열망은 사라져 있었다. 그때 밖에서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선우가 파드득 떨며 놀랐다.

“누구 쳐들어온 거 아니에, 으응……!”

선우가 다급히 묻는데도 태화는 여유롭게 젖꼭지만 빨았다. 그렇게 빤다고 해서 나올 것도 없는데 참 열정적이었다. 결국 유륜 주변으로 울혈까지 남기고서야 뒤로 물러났다.

“빨리도 깼네.”

태화는 입술을 슥 닦으며 중얼거렸다. 나체인 선우의 몸에 홑이불을 둘둘 말아 주고 침대 밖으로 내려왔다.

“나오지 말고 있어.”

“누구예요?”

“아까 걔.”

태화는 심드렁한 투로 말했다. 하지만 선우는 눈이 커질 대로 커졌다. ‘아까 걔’라고 할 만한 사람은 선우에게 담배빵을 놓은 남자밖에 없었다. 선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사이 옷을 챙겨 입은 태화는 아직 발기가 덜 풀린 아랫도리를 주물럭거리며 선우를 응시했다.

“분명히 말했어. 나오지 말라고.”

가벼운 어투였지만 선우를 겁주기에는 충분했다. 선우는 한 마디만 남기고 쌩하니 나가는 태화를 바라봤다.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반면 태화는 무신경한 얼굴로 방을 나섰다. 주방에 서 있는 남자가 보였다. 남자는 그새 주방을 뒤져 식칼을 들고 있었다. 천천히 다가가자 다른 무기를 찾던 남자가 휙 돌아봤다. 태화는 서늘한 표정을 지우고 금세 사람 좋은 얼굴을 했다.

“씨발, 너 누구야? 어? 여기 어디야!”

“아, 어……. 일단 진정하고.”

“여기 어디냐고!”

“길에 쓰러져 있길래 그대로 두면 안 될 거 같아서 데리고 온 겁니다.”

“뭐……. 라고요?”

태화의 거짓말에 남자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태화가 난처한 표정으로 식칼을 가만히 쳐다보자 남자는 그제야 아차 하고 식탁 위로 칼을 내려놨다. 태화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경찰에 신고해 줄까요? 보니까 퍽치기당하신 거 같던데, 사라진 물건은 없습니까?”

“경찰이요? 어, 아니요.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진짜 괜찮아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에 가 봤자 도움 될 게 전혀 없었다.

남자는 우림동에서 알아주는 남창이었다. 워낙 호모를 상대하는 호스트가 드물다 보니 다 거기서 거기였는데, 그중에서도 남자는 유명했다. 밤 기술이 좋은 걸로 유명했고, 돈 많은 남자만 꼬셔서 공사 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러니 남자 입장에서 경찰이 달가울 리 없었다. 어차피 퍽치기당했다고 말해 봤자 공사 친 손님이 그런 거 아니냐며 빈정거릴 게 뻔했다.

남자는 경찰 생각은 지워 버리고 대신 태화를 빤히 쳐다봤다. 가만 보니 퍽 본인의 취향이었다. 태화가 이쪽 성향인지 아닌지 남자는 몰랐지만, 생긴 것도 취향인 데다가 집도 넓고 좋아서 잘만 하면 횡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자지도 우람해 보이고.

태화의 중심을 흘깃 쳐다보던 남자는 경계심을 내려놓고 유순한 인상을 연기했다.

“근데 여기 어디예요?”

“부영 시장이요.”

“부영 시장인 건 아는데…….”

“그나저나 그 차림으로는 못 갈 거 같은데.”

태화는 남자의 말을 끊었다. 태화의 말에 남자는 고개 숙여 옷을 봤다. 쓰레기 더미에서 묻었을 법한 더러운 물이 군데군데 들어 있었다. 게다가 등도 축축했는데 만져 보니 손끝에 피가 묻어났다. 그제야 뒤통수가 찢어진 걸 알아챈 남자는 앓는 소리를 냈다.

“씻고 나올래요? 맞는 옷은 없을 건데, 그래도 갈아입을 건 드릴게요. 약도 준비해 놓고.”

태화는 친절을 가장했다. 남자도 태화도 상대에게 연기만 했다.

“그래도 돼요?”

태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샤워하다가 수건이 없다는 핑계든, 칫솔을 좀 달라는 핑계든, 뭐든 태화를 욕실 안으로 끌어들여 어떻게 해 볼 심산이었다.

“여기가 욕실입니다.”

“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남자는 생긋 웃으며 욕실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샤워기 물소리가 들렸다. 태화는 다시 무감한 표정으로 욕실 문을 물끄러미 보다가 무슨 일인지 곧바로 현관을 나섰다.

현관문이 여닫히는 소리에 이번에는 선우가 밖으로 나왔다. 나오지 말라는 태화의 말은 잊었는지, 그새 옷을 챙겨 입은 상태였다. 선우는 형형하게 빛나는 눈으로 욕실 문과 현관문을 번갈아 쳐다봤다. 딱딱, 소리가 날 정도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씩씩거리는 숨이 터져 나왔다.

“개자식…….”

짜증이 났다. 아니, 짜증을 넘어서 분노가 끓었다. 남자와 태화 사이로 묘한 기류가 흐르는 걸 느낀 탓이었다. 정확하게는 남자가 태화를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 노골적이었다. 선우는 남자가 어떤 취향을 좋아하는지 알음알음 들어 알고 있었다. 우림동은 워낙 말이 빨리 퍼지는 곳이었다. 근육질의 미남이 남자의 취향이라는 건 너무도 유명했다. 사실 굳이 취향이 아니더라도 태화는 한 번쯤 군침 흘릴 만한 외모를 가진 사람이었다.

선우는 이번엔 아랫입술을 꾹 짓씹었다. 아픈 줄도 모르고 세게 씹어 대서 살이 툭 터졌다. 비릿한 피를 넘기던 선우는 돌연 식탁 위에 있는 칼을 챙겨 들더니 욕실 문을 벌컥 열었다.

“무슨 일이……. 뭐, 뭐야? 너 왜 여기 있어?”

남자는 자기 집인 것처럼 욕조 안에 퍼질러 앉아 있었다. 욕조는 불과 한 시간 전 선우가 태화와 살을 섞은 곳이었다. 서로에게 좋다는 밀어를 속삭이고, 끈덕지게 붙어먹던 장소였다. 선우는 눈을 부릅뜨고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선우의 등장에 남자는 당황한 표정으로 벌떡 일어났다. 선우의 손에 칼이 들린 걸 보고 잠깐 주춤했으나 그 손이 파들파들 떨리는 모습에 곧바로 여유를 찾았다.

“뭐, 그걸로 찌르기라도 하게? 너 나 찌를 수나 있겠냐?”

남자는 선우를 개무시했다. 선우가 버젓이 식칼을 들고 있음에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찌를 수 있으면 찔러 보라는 듯 배짱을 부렸다. 우림동에서 늘 봤던 게 지영환에게 맞는 최선우였다. 뺨을 맞아 가면서도 찍소리 한번 못 하던 선우를 떠올린 남자는 비웃듯 웃음을 흘리며 욕조 밖으로 나왔다.

“찌르지도 못할 거 괜히 지랄하지 말고. 맞다. 아까 내 대가리 깬 거 누군지 봤냐?”

“…….”

“사람이 묻는데 말을 안 해, 씨발놈이. 봤냐고? 어?”

남자는 검지로 선우의 이마를 툭툭 밀었다. 선우는 넘어가지 않고 버텼다. 고개를 빳빳이 세운 채 노려보자 남자가 얼씨구? 하는 소리를 냈다. 뺨까지 툭툭 치던 남자는 불현듯 인상을 찡그렸다.

“설마……. 네 기둥서방이 내 대가리 후렸냐? 씨발, 그 새끼 지금 어디 있어? 어디 있어!”

“기둥서방이 아니라 서태화야.”

“뭐? 미쳤나, 이게. 야, 너 또 나한테 맞고 싶어……. 아악!”

째지는 비명 끝에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남자는 뺨을 감싸 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남자의 왼쪽 뺨이 쭉 갈라져 있었다. 선우가 식칼로 남자의 낯짝을 그은 것이었다. 피가 뚝뚝 떨어졌다.

“서태화는 내 거야.”

선우는 한 번 더 남자의 낯을 그었다. 피비린내가 짙어졌다.

“아아아악!”

남자의 비명으로 욕실 안이 웅웅 울렸다.

“어윽, 내 얼굴, 씨발, 어으……!”

남자는 막아도, 막아도 피가 흐르는 뺨을 부여잡고 비틀거리다가 다시 똑바로 섰다. 피눈물이 맺힌 눈으로 선우를 노려보더니 순식간에 머리채를 잡았다. 그 바람에 선우는 식칼을 놓고 휘청였다.

“아윽……!”

“씨발년아, 어흑, 씨발. 너 오늘 뒈졌어, 썅년아!”

“윽, 서태화는 내 거라고!”

남자가 머리채를 잡고 흔들자 선우도 지지 않고 남자를 발로 찼다. 그런데도 남자는 머리채를 놓지 않았다. 선우는 머리가 이리저리 흔들리자 어지러웠다. 피 냄새 때문에 더 그랬다. 남자가 선우의 뺨을 올려붙이려고 팔을 높이 쳐들었다. 벌건 피로 물든 손이 욕실 조명을 받아 더 붉게 빛났다. 선우가 눈을 질끈 감는 순간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툭 튀어나왔다.

“뭐야?”

태화의 음성이라는 걸 알아챈 선우는 다시 두 눈을 떴다. 그가 남자를 제압하고 있었다. 감히 선우의 머리채를 잡던 손목을 세게 쥐더니 콱 꺾어 버렸다.

“악!”

남자는 아픈 비명을 지르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정말 손목뼈가 나갔는지 아무리 힘을 줘도 손이 이리저리 흔들리기만 했다. 남자가 손목을 잡고 우는 사이 태화는 욕실 안을 휙 둘러봤다.

핏방울이 사방팔방 튄 바닥과 낯짝에 칼집이 난 남자, 발치에 떨어져 있는 칼과 그 앞에서 바들바들 떠는 최선우.

거기까지 눈에 담은 태화는 꼭 정신이 나간 것처럼 넋을 놓고 있는 선우를 흔들었다. 좀체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아서 턱을 쥐어 눈을 맞췄다. 한참을 빤하게 쳐다보자 그제야 선우의 눈동자로 빛이 들었다.

“아…….”

탄성을 내지른 선우는 제 앞에 있는 게 태화라는 걸 인지하자마자 숨을 크게 내쉬었다. 진동하는 피비린내 대신 그의 체향이 코끝을 톡 치고 들어왔다. 태화를 안으려 와락 달려들었다. 하지만 태화가 선우의 이마를 밀었다. 결국 선우는 팔만 쭉 뻗었다가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네가 이런 거야?”

태화가 물었지만, 선우는 대답 대신 눈치만 봤다. 그가 또 화가 났는지, 아니면 단순히 궁금해서 묻는 건지 알아보기 위해 가만 쳐다봤다. 아니, 태화는 선우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그 사실을 습득한 선우는 그럼 짜증이 났나 싶어 눈동자를 자꾸 굴렸다. 다행히 짜증도 나지 않은 것 같았다. 선우는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왜. 너한테 담배빵 놔서?”

이번에는 도리질을 쳤다. 담배빵은 숱하게 당했다. 그런 이유로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다면 그건 미친놈이었다. 선우에게는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은근히 당당해진 눈빛으로 태화를 올려다봤다.

“아저씨한테 꼬리 쳤잖아요. 아저씨도 이 새끼한테 잘해 줬고……. 이 새끼가 아저씨한테 관심 있는 게 다 보였다고요.”

선우의 말에 태화가 눈을 크게 떴다.

“그게 이유라고?”

“아저씨가 다른 사람한테 친절한 거 싫어요…….”

“어…….”

태화는 선우를 보며 감탄했다. 살다 살다 이 정도로 미친놈은 처음 봐서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태화가 몇 번 더 탄성을 내뱉자 선우는 눈을 말똥말똥 뜨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태화의 반응이 왜 저런지 몰랐다. 너무도 투명한 표정에 태화는 이제 킬킬대며 웃기까지 했다.

“씨발, 널 어쩔까.”

태화는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문득 선우의 아랫입술이 살짝 찢어진 게 보였다.

“저 새끼가 이랬어?”

선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그냥 짜증 나서, 제가…….”

“몸에 함부로 상처 내지 말랬지.”

태화는 인상을 구겼다. 도톰한 입술에 남은 생채기가 거슬렸다. 한숨을 짧게 쉬며 선우의 입술을 문질렀다.

“나가 있어.”

태화의 말에 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욕실을 나가진 않았다. 과거 어느 날처럼 욕실 문 앞에 서서 태화를 지켜봤다. 말도 지지리 안 듣는 모습에 태화는 한 번 더 한숨을 쉬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자를 봤다. 남자는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여태 펄떡거리고 있었다. 태화는 그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굽혀 앉았다.

“미안합니다. 많이 아팠어요?”

말을 걸자 남자가 겁에 질린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래 봤자 욕실 안이었다. 욕조에 등을 부딪친 남자는 더 물러날 곳이 없다는 걸 깨닫고 절망의 눈빛을 띠었다. 태화는 자신을 괴물 보듯 하는 남자를 바라보며 잠깐 생각했다.

내가 게이들한테 먹히는 얼굴인가?

조금 전 선우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남자가 제게 꼬리 친 것 같기도 했다. 당시에는 남자를 어떻게 죽일까 생각하느라 못 느꼈는데 욕실로 들어가기 전에 팔뚝을 살짝 터치한 것도 그렇고, 쳐다보는 눈빛도 그렇고, 확실히 꼬시려고 했던 것 같았다. 태화는 별안간 기분이 나빠져 남자가 만졌던 팔뚝을 툭툭 털었다. 시답잖은 생각 끝에 쯧 혀를 찼다. 욕조에 기대서 벌벌 떨고 있는 남자의 발목을 잡아 주욱 끌어왔다.

“이번 거는 조금 더 아플 거야.”

그대로 남자의 발목을 뚝 꺾었다. 다시금 앙칼진 비명이 쏟아졌다. 시끄러운 소리에 태화는 고개를 뒤로 슬쩍 뺐다가 곧 남자의 머리채를 쥐어 타일 바닥으로 콱 내리찍었다. 서너 번 하자 드디어 잠잠해졌다. 또다시 정신을 잃은 모양이었다.

태화는 기괴하게 꺾인 남자의 발목을 내려다보며 미간을 찡긋 구겼다. 사람을 죽이라면 죽이겠는데 고문은 영 제 취향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태화는 어떤 짜증이 밀려들어 남자의 남은 발목마저 꺾었다. 약간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일어났다. 뒤를 돌아보자 선우가 눈을 반짝이며 보고 있었다.

“죽었어요?”

“죽여야지.”

여상한 음성이었다. 남이 들으면 기겁할 말인데도 선우는 겁먹지 않았다. 태화는 선우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마어마한 또라이였다.

“내가 너 때문에, 씹…….”

태화는 말을 잇다 말고 한숨을 쉬었다. 이후 늘 하던 대로 처리했다. 다만 이번에는 가정용 믹서기가 아니라 창고에 있는 연육기를 사용했다. 선우에게 작동법을 가르치기도 했다. 태화가 이리저리 다니는 동안 선우는 그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마치 어미 새를 따라다니는 새끼 새 같았다. 태화는 걸리적거리니 저리 가라고 하면서도 정작 정말 귀찮아하지는 않았다.

장장 두 시간 만에 모든 걸 끝낸 태화는 여태 제 옆에 꼭 붙어 있는 선우를 넌지시 내려다봤다. 청부 살인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의뢰 없이 사람을 죽인 순간이었다.

그것도 이 완두콩 같은 놈 하나 때문에.

태화는 눈을 가늘게 뜨고 선우를 보다가 어딘가로 전화했다. 평소 쓰는 휴대 전화는 아니었고, 지난번에 선우에게 들려 줬던 피처 폰으로 걸었다. 몇 번 신호음이 가자 저쪽에서 전화를 받았다.

“어. 잘 먹고, 잘 자고, 잘 산다.”

상대방이 매번 묻는 말인지 태화는 다짜고짜 저렇게 말했다.

“다른 일은 없고. 루미놀만 좀 구해 주라. 어. 어떤 또라이 때문에 그렇게 됐어.”

태화는 ‘또라이’를 발음할 때 선우를 힐끗 쳐다봤다. 전화는 짧게 끊겼다. 오래간만에 숨을 길게 내쉬자 선우가 눈치를 봤다. 태화는 안절부절못하는 선우의 귓불을 쭉 잡아당겼다. 선우는 아야야……. 하며 까치발을 들어 따라 올라갔다.

“나도 미친놈이라 미친 거 가지고 뭐라 하는 건 아닌데, 공과 사는 좀 구분하자. 너 때문에 야밤에 이게 무슨 난리야.”

태화는 귓불을 아프게 짓누르다가 선우의 눈이 그렁그렁해지는 걸 보고서야 놨다. 선우는 서둘러 귀를 문질렀다. 귀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다. 어떻게 꼬집어 놨는지 감각이 전혀 없었다. 화끈거리는 귓불을 만지며 귀가 잘 붙어 있는 걸 확인하고는 태화를 올려다봤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성질을 더 돋울까 싶어 망설였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했다. 선우는 약간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람한테 친절하지 마요.”

“너는 여태까지 다른 놈 좆 몇을 빨았는데.”

“그건 어쩔 수 없……. 아아……!”

태화가 다시 귓불을 잡았다.

“그리고 나랑 계속 살고 싶으면 멋대로 날뛰지 마.”

경고하듯 으르고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어찌나 차지게 때렸는지 정말 찰싹! 소리가 났다. 선우는 이번엔 엉덩이를 문질렀다. 그러다 한 번 더 볼기짝을 맞고 눈물을 찔끔 짜냈다. 태화의 손이 엄청나게 매워서 엉덩이를 맞았는데도 정말 아팠다. 얼얼할 정도였다. 선우가 젖은 눈으로 쳐다보자 태화는 귓불을 놨다.

“난 안 봐줘. 맞을 짓을 했으면 때릴 거야. 맞기 싫으면 얌전히 있어.”

태화의 말에 선우는 침을 꼴깍 삼켰다. 태화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다만, 선우는 좀 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침대 위에서는 한없이 다정한 사람이 아래로만 내려오면 냉정해졌다. 좋다고 말하며 몸을 어루만져 줄 땐 서로 마음이 통한 것 같은데 이렇듯 엉덩이를 때리고 귓불을 꼬집을 때면 혼자 하는 짝사랑인가 싶었다.

짝사랑……?

선우는 문득 ‘사랑’이라는 단어를 곱씹다가 도리질 쳤다. 태화를 슬쩍 올려다봤다.

“나 안 좋아해요?”

“좋아해.”

태화는 고민하는 시늉조차 하지 않고 대답했다. 별스럽지 않은 어투였다. 오히려 질문을 던진 선우가 히끅 놀랐다. 딴에는 고심 끝에 물었는데 태화가 저렇게 나오니 당황스러웠다.

“그런데도 때려요……?”

겨우 뒷말을 붙이자 태화가 픽 웃었다. 하지만 웃음은 금세 사라졌다.

“그러니까 때리지. 안 좋아했으면 벌써 죽였고.”

태화는 서슬 퍼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선우는 숨을 크게 삼키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두 손으로 태화의 손을 잡았다.

“저 죽이지 말아요! 이왕이면, 때리지도 말고…….”

“지랄 발광을 하는데 예뻐만 하라고?”

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생각해도 이기적인 것처럼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맞는 건 싫었다. 죽는 건 더 싫었다. 선우가 눈썹을 축 늘어뜨리자 태화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익숙한 표정이었다.

“일단 벌은 좀 받자.”

태화가 나직이 뱉은 말에 선우는 마른침을 꼴딱 삼켰다. 벌을 준다는데 희한하게 긴장되지 않았다. 태화의 눈빛 때문이었다. 태화의 옅은 눈동자에는 짜증 대신 욕정이 그득 들어차 있었다. 슬쩍 아래를 내려다봤다. 태화의 바지 앞섶이 불룩 올라와 주름 하나 없이 팽팽해져 있었다.

이번에는 또 어떤 벌을 받을까……?

선우는 피딱지가 앉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뒷구멍을 조였다.

선우는 팔을 통통 두드렸다. 벌써 20분째 손을 들고 있었다.

“이게 뭐야.”

태화가 내릴 벌에 대해 약간 기대했던 선우는 입을 삐쭉 내밀며 구시렁거렸다. 지난번에 바이브레이터를 이용해 벌을 줬을 때와 비슷할 거라는 생각은 완전히 착각이었다. 태화는 정말 말 그대로 ‘벌’을 줬다. 침대 한가운데에 무릎 꿇고 앉아 손을 들고 있으라고 했다.

초등학생 조카 벌주는 것도 아니고, 스물하나 먹고 이게 말이나 되는지 몰랐다. 아니, 요즘은 초등학생도 손 드는 벌을 서지는 않았다. 태화가 서늘한 눈을 하기에 군말 없이 손을 들긴 했으나 여간 어이없는 게 아니었다.

더군다나 태화는 손을 들라고 해 놓고 본인은 샤워하러 쏙 들어갔다. 욕실에선 아직도 물소리가 들렸다. 선우는 한숨을 폭 쉬었다. 이번에도 요령을 피울 수 있는데 선우는 끝까지 버텼다. 가끔 팔이 아프면 정수리에 얹는 꼼수를 부리긴 했지만, 아예 내리지는 않았다.

“다리 저려.”

선우는 욕실까지 들리지 않을 말을 중얼댔다. 감각이 거의 없어져 가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맞은편 책장을 멍하니 응시했다. 서재뿐만 아니라 태화의 방에도 커다란 책장 하나가 있었다. 딱히 할 일도 없어서 책장에 꽂힌 책 제목을 읽어 가며 시간을 때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욕실에서 물소리가 뚝 그쳤다. 선우는 숨을 짧게 삼키며 떨었다. 정수리 위에 얹어 뒀던 손을 바짝 들어 올렸다. 팔이 귀에 달라붙을 정도였다.

욕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묵직한 걸음 소리 뒤로 태화가 방에 들어왔다. 나체 그대로였다. 태화는 물기를 뚝뚝 떨어뜨리며 선우 앞에 섰다. 선우는 침을 꼴깍 삼켰다. 태화의 좆 끝에 매달려 있던 물방울이 똑 떨어지는 걸 눈에 담았다. 참 빨고 싶게 생긴 모양새라고 생각했다. 빤히 아랫도리만 내려다보자 태화가 턱을 쥐어 올렸다.

“너 진짜 개새끼 같다.”

자칫 기분 나쁠 수 있는 말이었으나 선우는 아무렇지 않았다. 욕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별말 없이 입을 꾸욱 다물고 있자 태화가 픽 웃었다. 태화는 몇 번 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다가 선우의 턱을 놓고 서랍에서 수건을 꺼냈다.

선우는 태화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평소에는 욕실에서 물기를 다 닦고 나오면서 이번에는 왜 방에서 닦는지 의아했다. 움직일 때마다 존재감이 드러나는 근육을 눈에 담았다. 등에 덜 닦인 물이 도록 흘러내리는 걸 보고 저도 모르게 앞으로 손을 뻗었다.

“누가 팔 내리래.”

곧바로 태화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선우는 힉 놀라며 다시 팔을 번쩍 들었다. 긴장한 상태로 앞만 보고 있자 몸을 다 닦은 태화가 다시 앞에 와 섰다. 선우는 눈치를 슬금슬금 봤다.

“팔 아파요. 다리도 엄청 저리고요.”

“근데?”

“이제 그만하면 안 돼요?”

“너 뭐 이쁘다고.”

태화는 시큰둥하게 대답하더니 선우의 아랫입술을 톡 쳤다. 선우는 여태껏 잘 참아 왔으면서 괜히 손목을 주물렀다. 팔이 너무 저리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했다. 그런데도 태화는 아무 반응 없었다. 선우는 어떻게 하면 벌을 그만 받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갑자기 아랫입술을 핥았다.

“아저씨 좆, 또 섰어요.”

분명 방에 들어올 때까지도 축 늘어져 있던 좆이 반쯤 힘을 받아 있었다.

“알아.”

태화는 무심히 말하며 자지를 쥐고 가볍게 문질렀다. 그 앞에서 선우는 눈동자를 빙그르르 굴렸다. 짜증이라도 낼 줄 알았던 태화가 너무 아무렇지 않게 구는 바람에 선우만 민망해졌다. 선우는 한참 이리저리 시선을 주다가 태화를 빼꼼히 올려다봤다.

“빨아 줄까요……?”

“넌 뭘 맨날 빨아.”

“섰는데 안 빼면 힘드니까.”

딴에는 생각한답시고 말했는데 태화의 반응이 영 시들했다. 검지로 귀두 끝을 문지르면서도 무감한 표정이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 줬으면 싶었으나 아무 말도 없어서 선우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자지와 태화의 낯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결국 먼저 손을 뻗었다. 자지를 감싸 쥐려는데 태화가 씁, 하고 엄한 소리를 냈다.

“손 들라고 했어.”

낮은 목소리에 선우는 호다닥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이제는 좀 한계였다. 팔은 후들후들 떨리고, 다리는 마치 남의 살인 것처럼 감각이 없었다. 땀까지 삐질 흘리며 버티는데 태화는 그 앞에서 자지만 연신 주물럭거렸다. 반쯤 발기했던 게 어느새 완전히 서서 복근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침이라도 뱉듯 자지 끝에서 물이 질질 흘렀다. 태화는 자지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침대 위로 무릎을 대고 올라왔다.

“아…….”

순간 태화의 입에서 탁한 신음이 나왔다. 흥분감에 절은 소리인가 싶었으나 결이 조금 달랐다. 선우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태화를 봤다. 그가 두 눈을 무겁게 깜빡이고 있었다. 불현듯 선우의 눈이 커졌다. 언젠가 본 적 있는 모습이었다. 그때와 똑같았다.

태화가 갑자기 잠에 빠져들던 때.

“씹, 진짜 왜 자꾸 이러…….”

태화도 제 몸 상태를 인지했는지 짜증스레 중얼거리더니 말을 다 맺지 못하고 풀썩 쓰러졌다. 다행히 지난 두 번의 기면과는 달리 이번에는 침대 위였다. 선우는 놀란 눈으로 제 옆에 엎어진 태화를 내려다봤다. 손을 내려도 되나 잠깐 고민하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자세를 바꿨다. 태화에게 조금 더 다가가려고 움직이는 순간 다리에서 쥐가 나서 똑같이 푹 엎어졌다.

“으으…….”

근 30분 동안 무릎을 꿇고 있었으니 쥐가 날 만도 했다. 다리 속에 전파가 이상하게 잡힌 라디오라도 든 듯 지지직거리는 감각에 선우는 한참을 끙끙 앓았다. 발끝을 몇 번이고 몸 쪽으로 당긴 끝에 겨우 쥐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허벅지와 종아리를 통통 두드리다가 태화에게 다가갔다. 매번 하던 것처럼 맥부터 짚어 봤다. 목을 짚으려니 엎드려 있어서 잘 안 되었다. 손목을 이리저리 짚어 본 뒤에야 태화가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쉰 선우는 호흡할 때마다 부풀었다가 가라앉는 그의 광배근을 보며 침을 삼켰다. 잠든 사람에게 이래도 되나 싶었으나 본능이 이성을 이겼다.

“조금만 만지는 거야.”

스스로와 의미 없는 약속을 하고, 손끝으로 태화의 등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단단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움푹 팬 척추 부분과 탄탄하게 올라붙은 엉덩이를 지나 허벅지까지 만졌다.

만지는 것뿐인데도 입 안으로 침이 고였다. 연신 침을 꼴깍꼴깍 삼키던 선우는 무슨 대단한 결심이라도 한 듯 눈을 힘 있게 떴다.

태화는 낮게 앓는 소리를 냈다. 두 눈을 감은 그대로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렸다. 또 기면이었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였는데, 당최 원인이 뭔지 알 수 없었다. 오랫동안 쓰러지는 일이 없어서 다 나은 줄 알았더니 왜 최근에 와서 도졌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고 보면 최선우 앞에서만 잠에 빠져들었다. 하여튼 최선우 그게 문제였다.

“아윽…….”

느닷없이 아랫배로 열이 쫙 몰리는 게 느껴졌다. 이 나이에 자다가 몽정이라도 했나 싶어 두 눈을 뜨는데 시야 가득 엉덩이가 보였다.

살랑살랑 움직이는 봉긋한 엉덩이.

“뭐야?”

태화는 미간을 구겼다. 아직도 꿈인가 싶었다. 만약 꿈이라면 발정이 제대로 난 것이었고, 꿈이 아니더라도 이건 좀 해괴한 광경이었다. 미간을 구긴 채 눈을 짙게 감았다 떠 봤지만 눈앞에서 살랑이는 엉덩이는 그대로였다.

순간 짙은 사정감이 몰려왔다. 고개를 슬쩍 들어 내려다보니 자지가 바짝 서 있었다. 문제는 최선우가 그 끝을 맛있게 빨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찌나 펠라티오에 열중하던지 아직 제가 깨어난 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춥춥 소리까지 내며 아이스크림 빨 듯 제 것을 빠는 모습에 태화는 헛웃음을 쳤다. 피식피식 웃다가 선우의 바지와 팬티를 동시에 내렸다. 마른 몸이 놀라서 파드득 떠는 게 훤히 보였다.

“일어났……. 응……!”

선우는 허리를 크게 휘며 신음했다. 구멍 안으로 손가락이 푹 들어온 탓이었다. 숨을 헙 삼켰다. 젤 없이 벌어진 거라 조금 뻐근했다. 하지만 곧 굵다란 손가락이 어느 부분을 꾹 눌러 대는 감각에 눈앞이 하얘졌다.

“아흐……!”

손가락이 하나 더 들어왔다. 선우는 직전까지도 태화의 자지를 쪽쪽 빨다가 지금은 그저 지지대처럼 기둥을 부여잡고만 있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언제 일어났어, 읏, 일어났어요……?”

“방금.”

“하으…….”

“계속 빨아.”

“응…….”

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뒤로 오는 자극이 강했지만 말 잘 듣는 개처럼 태화의 자지를 덥석 물었다. 조금 전부터 빨아 댄 터라 이미 짭짤한 물이 많이 쏟아진 상태였다.

벌름거리는 좆구멍을 혀끝으로 톡톡 두드리다가 입 안으로 쑥 밀어 넣자 태화의 허벅지가 움칠 떨리는 게 보였다. 선우는 제 허리만큼이나 굵은 그의 허벅지를 끌어안고 조금 더 고개를 숙였다. 목구멍으로 단단한 살덩이가 쿡 닿았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아예 목구멍을 열어 삼켰다. 구멍을 쑤시던 손이 잠깐 멈췄다.

“아, 너……. 윽…….”

가랑이 사이에서 태화의 신음이 들렸다. 태화가 입을 열 때마다 뜨끈한 숨이 회음부에 찰싹 달라붙어 왔다. 불에 덴 듯한 느낌에 선우는 흠칫흠칫 떨면서도 목구멍을 죄였다 풀길 반복했다. 태화는 턱을 쳐들고 신음하다가 선우의 뒷구멍에서 손가락을 뺐다. 작기도 참 작은 주제에 봉긋하기까지 한 엉덩이를 우악스레 잡아 양쪽으로 벌렸다. 방금 손가락을 받아 낸 구멍이 뻐끔뻐끔 입을 열었다 닫았다.

열릴 때마다 발간 속살이 보였다. 태화는 입술을 축이며 선우의 엉덩이를 아래로 좀 더 끌어 내렸다. 엉덩이 골 사이에 낯을 파묻고 경박한 소리를 내며 빨았다. 선우가 엉덩이를 파들파들 떨었지만 놔주지 않았다.

“응, 흐……. 흐으…….”

“후으…….”

젖은 숨소리만 가득했다. 태화가 혓바닥을 단단하게 세워 구멍 안으로 비집어 넣자 선우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수영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파! 하는 소리를 내며 좆을 입에서 빼냈다.

“아, 거기, 흣……. 이상해…….”

우는 목소리에 태화가 킥킥 웃었다. 다시 손가락을 넣어 깔짝이며 선우를 내려다봤다.

“안 힘들어?”

“힘들어요.”

“그러게 왜 잘하지도 못하는 걸 무리해서 해.”

태화가 빙글거리며 웃자 선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 잘해요……!”

“잘하긴. 입도 작아서 다 넣, 아……!”

태화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축축한 신음을 내질렀다. 선우가 다시 목구멍까지 자지를 밀어 넣은 까닭이었다. 선우는 자칫 필사적이다 싶을 만큼 목을 열고 태화를 받아들였다. 그래 봤자 반절도 넣지 못한 건 변함없었으나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 태화에게서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좆 빠는 걸 잘해서 뭐 하는가 싶을 수 있지만, 선우는 그저 태화에게 칭찬받고 싶을 뿐이었다.

혀로 굵은 좆기둥을 문지르며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은 것도 참고 계속 삼키는데 돌연 태화가 머리채를 잡고 뒤로 물렸다. 선우는 한 번 더 큰 숨을 토해 내며 좆을 뱉었다. 미처 삼키지 못한 침과 프리컴이 턱을 타고 질질 흘렀다. 다시 좆을 입에 담으려니 태화가 놔주질 않았다. 뒤를 슬쩍 돌아봤다. 태화가 쩝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대가리만 물어. 네 입에는 그 정도만 들어가도 죽겠으니까.”

태화의 말에 선우는 눈을 크게 떴다. 이내 눈매를 예쁘게 휘어 접어 웃었다. 배슬배슬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말은 저렇게 무심하게 해도 그 안에서 다정이 느껴졌다. 선우는 쌕 웃으며 눈앞에 있는 귀두를 쫍쫍 빨았다. 평소에 저 보고 물이 많다며 놀리더니 오히려 태화가 더 많았다. 사정하는 건 아닌데 멀건 좆물이 끊임없이 나왔다. 선우는 쭈쭈바라도 빨 듯 태화의 좆물을 전부 마셨다.

인제 보니 태화의 좆에도 옅은 점이 박혀 있었다. 이걸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잠깐 생각하던 선우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어쨌든 지금 태화의 자지를 빨고 있는 건 자신이니 누가 알고 있대도 상관없었다.

태화도 선우의 사타구니에 있는 점을 집요하게 빨았다. 서로의 은밀한 부위를 물고, 빨고, 핥는 소리만 습하게 흐르던 중에 뜬금없이 따르릉! 소리가 났다. 너무 큰 소리라 선우가 파드득 놀라자 태화는 말랑한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려 줬다. 협탁 위에 있던 피처 폰을 들었다.

“어.”

상대는 조금 전 통화했던 사람이었다. 태화는 대충 어어, 하며 호응하다가 미간을 콱 구겼다.

“윽, 씹……. 하…….”

목구멍까지 쑤시지 말랬더니 기어코 선우는 또다시 자지를 깊숙이 물어 삼켰다. 그 바람에 태화는 짙은 사정감을 느끼며 신음했다. 헛헛한 숨소리가 휴대 전화를 통해 전부 전달되는데도 두 사람 모두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 뒷문 비밀번호, 윽, 알지? 들어와서, 놓고 가.”

전화는 금방 끊겼다. 태화는 휴대 전화를 바닥으로 던지듯 놓고 선우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벌렁대며 박아 달라고 난리 치는 뒷구멍에 손가락을 몇 번 쑤시다가 그 아래에서 딸랑이는 좆을 입에 물었다.

“아!”

선우가 고개를 홱 젖혔다. 구멍을 빨아 주는 것도 좋았으나 확실히 좆 달린 놈이라 그런지 펠라티오도 무진 좋았다. 혼이 쏙 빠질 정도였다. 뜨겁고 미끈거리는 태화의 입 안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선우는 그만 푹 쓰러졌다. 그의 좆을 빨기 위해 다시 일어나 보려고 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대신 자지만큼이나 탱탱해진 고환을 물고 입 안에서 굴렸다.

“윽, 씨팔……!”

바로 반응이 왔다. 태화는 여느 때보다도 더 짙은 숨을 쉬며 선우의 애무를 느꼈다.

그때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 누군가의 걸음 소리도 들려서 선우는 퍼뜩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태화가 뒤통수를 꾸욱 찍어 누른 탓에 다시 사타구니 사이로 고개가 푹 처박혔다.

“좀만 더 하면 쌀 거 같거든.”

“저, 저도요…….”

“한 번 싸자.”

침입자가 있다는 걸 아는데도 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화가 다시 좆을 빨기 시작했을 때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태화의 입 안에 싸고 싶다는 욕망만이 남아서 허리 짓을 살살 해 가며 마찬가지로 그의 고환을 핥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우는 숨을 헐떡이며 사정했다. 태화의 목구멍 너머로 정액이 푹 꽂히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순간 그의 좆에서도 허연 액이 솟구쳐 올랐다. 파편처럼 튄 정액의 절반은 침대 시트를 더럽혔고, 나머지 절반은 선우의 뺨에 찰싹 달라붙었다. 미끄러져 내려와 입 안으로 흘러드는 정액을 꼴딱꼴딱 삼키는데 방문 앞으로 누군가가 불쑥 나타났다.

“뭐야? 무슨 일이……. 아이, 씹……!”

남자는 태화와 선우의 꼴을 보고 다짜고짜 욕을 갈겼다. 못 볼 꼴을 봤다는 식으로 고개를 돌리며 눈을 질끈 감기도 했다. 한참 여운에 젖어 있던 선우는 저쪽에서 씨부렁거리는 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화들짝 놀라 버둥거리자 태화가 번쩍 들어 본인 옆에 제대로 눕히고 이불을 덮어 줬다.

두 눈을 감고 있던 남자는 슬쩍 눈을 떠서 상황을 살폈다. 선우가 이불 속에 포옥 쌓인 걸 보고는 비로소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야, 씹질을 할 거면 문이라도 닫고 해!”

“내 집에서 내가 왜?”

“하여튼 수치심이라고는 좆도 없어요.”

남자는 태화에게 거리낌 없이 대했다. 서로 잘 아는 사이인 것 같은 두 사람을 지켜보던 선우가 태화의 팔을 톡톡 쳤다.

“누구예요?”

“돌팔이.”

“돌팔이 아니고, 고 박사입니다.”

남자가 태화의 말을 정정했다. 선우가 쳐다보자 사람 좋은 얼굴을 하며 웃었다. 언뜻 봐도 수더분해 보였다.

남자는 의사였다. 그래서 태화는 돌팔이라고 불렀고, 남자는 스스로 고 박사라고 칭했다. 태화는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티슈로 자지를 닦으며 고 박사를 힐긋 봤다.

“가져왔어?”

“식탁 위에 올려놨어.”

“그럼 그냥 나가지 뭐 한다고 여기까지 와.”

“이상한 소리 들리길래 드디어 누가 너 죽이나 싶어서 구경하러 왔다, 왜!”

“걱정 마. 너보단 오래 살 거니까.”

말은 조금 거칠어도 두 사람은 참 친해 보였다. 선우는 이불 밖으로 눈만 빼꼼 내밀고 둘을 번갈아 쳐다봤다.

“간다.”

“어야.”

“돈은 계좌로 입금해 주십시오. 여기까지 온 차비에 고급 인력 인건비까지 쳐서 문자드리겠습니다.”

고 박사는 익살스럽게 말하고 돌아섰다. 이제 나가려나 싶었는데 재차 방 안을 들여다봤다.

“근데.”

순간 선우는 고 박사와 시선이 마주쳤다. 깜짝 놀라 눈을 내리깔았다가 슬그머니 다시 봤는데도 고 박사는 여전히 빤하게 쳐다보는 중이었다. 한참 선우를 응시하다가 갑자기 눈살을 찌푸리며 태화를 봤다.

“또 뭐.”

“너 이제는 죽이기 전에 섹스도 하냐? 존나 변태 새끼 아니야, 이거.”

“뭔 씹, 말을.”

태화가 짜증스레 얼굴을 구겼다. 고 박사는 선우가 태화의 애인일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물론 정말 애인도 아니었다. ‘아직’은 아니라고, 선우는 생각했다.

눈을 끔뻑끔뻑 뜨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고 박사가 어느 정도 이해됐다. 태화를 잘 모를 때만 해도 오래 사귄 연인이 있지 않을까 했었는데, 같이 살다 보니 그는 연인을 만들 만한 위인이 못 되었다.

잘난 얼굴을 보고 다가왔다가도 태화의 실체를 알면 다들 도망가기 바쁠 터였다. 비단 태화가 살인 청부업자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좋아한다고 하다가도 잘못하면 거침없이 엉덩이를 때리고, 사람한테 개새끼라고 하지를 않나, 뻔히 보고 있는 걸 알면서도 다른 놈에게 친절히 웃어 주는 것만 봐도 그는 좋은 애인감이 아니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죽은 남자에게 싱긋 웃어 보이던 태화를 떠올린 선우는 코끝을 찡긋 구겼다.

나니까 아저씨 옆에 붙어사는 거지.

잠깐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스스로 생각해도 조금 웃겨서 이불에 입술을 묻고 키득키득 웃었다. 선우가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있는 사이 태화와 티키타카를 주고받던 고 박사는 돌연 선우를 향해 합장하는 자세를 취했다.

“천국 가세요. 지옥은 저 새끼가 갈 거니까.”

선우가 들어도 얄미운 말이었다.

지옥에 갈 ‘저 새끼’인 태화 역시 짜증 난다는 듯 혀를 찼다. 꺼지라고 말하려는데 선우가 먼저 스윽 일어났다. 선우는 고 박사를 똑바로 바라봤다.

“아저씨는 저 안 죽일 건데요.”

그 한마디에 두 사람의 시선이 모두 선우에게로 꽂혔다. 태화는 고개를 뒤로 한껏 돌려 선우를 봤다. 선우의 표정은 볼만했다. 너무 당연한 말을 한다는 듯 말간 얼굴이었다. 고 박사 역시 선우의 말에 약간 놀랐던지 두 눈을 크게 뜨며 태화를 봤다.

“쟤 뭐, 이거야?”

고 박사는 검지를 세워 관자놀이 옆으로 작은 원을 몇 번 그렸다. 뻔히 선우가 보고 있는데도 당사자 앞에서 또라이냐고 묻는 것이었다.

“살짝.”

태화도 빼지 않았다.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고 박사를 봤다. 그제야 선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사람을 앞에 두고 둘이서 뭐 하는 건지 몰랐다.

태화는 입술을 비죽이 내밀고 쳐다보는 선우의 이마를 툭 밀쳐 눕혔다. 곧바로 다시 일어나려는 걸, 김밥 싸듯 이불로 둘둘 말아 옴짝달싹 못 하게 해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우가 낑낑대는 소리에 저절로 나오는 한숨을 삼키며 드로어즈를 챙겨 입었다.

“얘, 죽이려고 데려다 놓은 거 아니야.”

“응?”

“키우는 애야.”

태화는 별거 아니라는 듯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우의 엉덩이를 가볍게 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느새 태화의 입가로 웃음기가 살짝 스며들었다. 그 모습에 고 박사는 몸서리치듯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아주 정신병자들만 모아 놓은 집합소가 따로 없었다.

“애완 인간, 뭐 그런 거냐? 와, 어마무시한 변태 새…….”

“가라, 좀.”

태화가 꺼지라는 듯이 손짓하는데도 고 박사는 걸음을 돌리지 않았다.

“근데 진짜로 키우는 애야?”

“어.”

“네가 뭘 키울 수 있기나 해?”

남자의 물음에 태화는 어깨를 으쓱였다.

“제법 잘 키워.”

씨익 웃으며 말했다. 침대를 내려다봤다. 선우는 아직도 김밥 같은 이불에 말려 꿈지럭거리고 있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팔푼이라고 생각하며 고 박사를 데리고 방을 나섰다.

“뭐 하러 키우냐?”

“저거 잘 키우면 천국 갈까 싶어서.”

“또라이인가?”

고 박사는 생각하지도 않고 곧장 말을 내뱉었다. 덕분에 태화에게서 꺼지라는 말을 한 번 더 들어야 했다.

배웅 아닌 배웅을 받으며 고 박사가 돌아가고, 태화는 냉장고에서 냉수를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무심결에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아직도 자지가 두툼하게 서 있었다. 선우와 지내며 죽는 법을 까먹은 건지 요즘 들어 항상 이랬다. 태화는 마시던 물병으로 앞섶을 툭 치고 식탁 위에 고 박사가 두고 간 병을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이불에서 벗어난 선우가 벌떡 일어나 앉아 있었다. 절정에 오르느라 상기됐던 뺨이 아직도 발그레했다.

“누구예요?”

“아는 사람.”

“아는 사람, 누구요?”

“고 박사.”

“그건 아까 저 사람이 말해 줬는데.”

선우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더 말해 달라는 표정을 지었다. 태화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한숨을 푹 내쉬며 선우 곁에 다가가 앉았다.

“옛 애인 같은 거 절대 아니고, 쟤 마누라도 있어. 그러니까 눈 그렇게 뜨지 마.”

힘주어 뜨느라 쌍꺼풀이 짙게 그어진 눈두덩이를 꾹 누르며 말했다. 하지만 선우는 아직도 무언가 부족하다는 눈빛이었다.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친해졌고, 정말 아무 사이 아닌 게 맞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궁금해서 빤히 쳐다봤으나 태화는 더 입을 열지 않았다. 결국 선우는 포기하고 그에게 기댔다. 팔뚝에 뺨을 뭉개듯 비비며 기댄 채 아래를 내려다봤다. 불룩 올라온 태화의 앞섶이 보였다. 손을 뻗어 만지려니 그가 손목을 잡아챘다.

“더 안 해요?”

“뭘.”

“아까 하던 거…….”

반대 손을 다시 뻗었으나 마찬가지로 또 잡혔다.

“어. 안 해.”

“왜요?”

“너 이제 일해야지.”

태화는 가져온 병을 들고 선우의 눈앞에 흔들며 씩 웃었다. 루미놀이 담긴 병이었다. 무슨 일을 하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던 선우는 몇 분 지나지 않아 우비를 주섬주섬 챙겨 입어야 했다. 네가 저지른 일은 네가 수습하라는 태화의 말 때문이었다. 한순간의 질투를 참지 못하고 욕실 여기저기 남자의 피를 뿌린 탓에 선우는 루미놀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그래도 태화가 보호 장비는 챙겨 줘서 기분 좋게 움직였다.

태화는 피의 흔적을 뽀득뽀득 지우는 선우를 뒤에서 물끄러미 구경했다. 혹시 빼먹은 곳이 있을까 봐 한 번 두 번 확인하는 걸 보자니 픽 웃음이 나왔다.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열심히 타일을 문지르는 선우에게로 다가갔다. 발끝으로 엉덩이를 톡 건드리자 동그란 머리가 위를 휙 올려다봤다. 보안경에 마스크까지 껴서 작은 얼굴이 다 가려진 모습이었다. 투명한 보안경 안에 든 눈이 느리게 끔뻑였다.

“힘들어?”

태화가 묻자 선우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다시 타일을 닦았다.

태화는 문득 선우를 두고 애완 인간이냐던 고 박사의 말이 떠올랐다. 애완 인간이라니. 최선우는 그냥 개새끼였다.

말을 퍽 잘 들어 키울 맛이 나는 개새끼. 예쁜 새끼.

*** ㄹㅂㅌㄹ 공금임  ***

여름이 지나갔다. 벌써 9월이었다. 선우는 덥지 않은 여름을 보낸 게 몇 년 만인지 몰랐다. 부친이 도박에 빠지지 않았을 때만 해도 집에서 에어컨 켜는 건 별거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선우에게 더운 날 덥지 않게 보내는 건 대단한 일이 되어 있었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메모지에 써 두라는 태화의 말에 선우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는 일이 그날 먹고 싶은 걸 적는 것이었고, 태화의 옷들 사이로 선우의 옷이 조금씩 늘어 갔다. 다른 건 마음대로 사게 하면서 유일하게 선우의 팬티만은 태화가 골랐다. 하얀색 삼각 면 팬티였다. 꽃다방에서 살 때도 안 입던 것이었다. 선우는 요즘 초등학생도 이런 건 안 입는다며 항변해 봤으나 태화는 듣는 척도 안 했다.

선우가 몰래 산 남색 드로어즈는 이틀 만에 태화에게 걸려 곧장 쓰레기통행이었다. 선우는 입을 불퉁하게 내밀고 팬티 보이콧을 하기도 했지만 오래 가진 못했다. 네가 팬티를 안 입으면 나야 더 좋지, 하며 태화가 자꾸 맨 엉덩이를 움켜쥐는 탓이었다. 결국 선우는 하얀색 삼각 면 팬티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선우는 오늘도 팬티 하나만 입은 채 태화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태화는 침대 헤드에 기대앉아 책 읽는 중이었다. 선우가 놀아 달라는 듯 허벅지를 콕콕 찌르고, 팔을 톡톡 쳐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가랑이 사이를 슬쩍 쓰다듬는데도 마찬가지였다.

“책이 그렇게 재밌나…….”

들으라는 식으로 혼잣말을 하자 태화가 커다란 손을 내려 정수리를 슥슥 쓰다듬어 줬다. 아랫입술을 쓰다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선우는 이제 태화가 제 아랫입술을 좋아한다는 것쯤은 알았다. 입술을 다소 난폭하게 문질러 대는데도 좋다고 가만히 있었다.

이제 막 이가 나기 시작한 강아지가 장난치듯 태화의 손을 자근자근 깨물며 라디오를 틀었다. 남자 보컬과 여자 보컬이 통기타를 치며 부르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처음 듣는 노래였는데 꽤 좋았다. 선우는 알지도 못하는 노래를 따라 콧소리를 아무렇게나 흥얼거리며 태화의 손을 잡고 놀았다.

노래가 끝나고 몇 개의 광고 뒤에 뉴스가 시작되었다. 물가가 올랐다느니, 올해 단풍 절정은 이를 거라느니 하는 시답잖은 얘기 뒤로 진짜 뉴스다운 뉴스가 나왔다. 둘은 아무 생각 없이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듣다가 불현듯 움직임을 멈췄다.

- 서울특별시 우림동에서 20대 두 명과 30대 남성 한 명이 실종돼 경찰 당국이 수색에 나섰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최근 전국에서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실종 사건과 유사한 점을 발견해 연쇄 실종 사건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하는데요. 경찰은 인근 CCTV를 통해 실종자들의 행적에 대해 파악 중이라고 합니다. 실종자들이 거주하던 우림동에는 상대적으로 설치된 CCTV가 적어 수사에 차질이 있다는 소식도 함께 전해졌습니다.

이후로도 ‘실종’과 ‘우림동’이라는 단어가 몇 번 더 나왔다. 뉴스에서는 실종자의 이름을 특정하지 않았으나 태화와 선우는 실종된 20대와 30대 남성이 누군지 알았다. 어느새 책을 덮은 태화는 뉴스에 귀를 기울이다가 선우를 내려다봤다. 선우는 한참 전부터 태화를 보고 있었다. 선우가 몸을 벌떡 일으켜 앉자, 태화 역시 서둘러 휴대 전화를 들여다봤다.

[우림동 실종]

간단하게 검색했는데도 관련 뉴스가 주르륵 나왔다. 선우는 태화의 옆에 꼭 붙어 앉아 함께 화면을 들여다봤다.

[우림동 실종 남성 A 씨, 극단적 선택 관련 전조 증상 없어]

[불법 퇴폐업에 종사하던 20대 남성의 마지막 목적지가 시장?]

[실종된 B 씨, 성 소수자를 상대로 하는 유명 호스트로 밝혀져]

[잇따라 일어나는 실종 사건, 이번에는 우림동에서 세 명…….]

비슷비슷한 헤드라인을 쭉쭉 읽어 내려가던 두 사람의 시선이 어느 부분에서 멈췄다. 태화도 선우도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태화는 인상을 구겼고, 선우는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태화는 작게 욕을 뇌까리다가 선우의 허리를 감싸 바짝 당겨 안았다. 어느 기사에 지영환과 지난번에 쓰레기장에서 만났던 남자, 그리고 최선우의 사진이 버젓이 걸려 있었다. 한동열이 태화에게 보여 줬던 것과 같은 사진이었다. 경찰 당국의 허가가 떨어졌다는 내용이 있었지만 웃기는 소리였다. 잘만 살아 있는 당사자가 허락하지 않았는데 남의 사진을 왜 함부로 공개하는지 몰랐다.

“씨발놈들이.”

태화는 참지 못하고 한 번 더 욕을 읊조렸다. 다른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이미 20대 남성이 불법 퇴폐 업소에서 일하는 게 다 까발려진 상황에서 사진을 걸어 두면 어쩌자는 건지, 이해가 안 되었다.

지영환과 나머지 두 사진 중 30대는 누가 봐도 지영환이었다. 그러니 동네방네 최선우가 실은 몸 파는 놈이라고 광고하는 꼴이었다. 몸을 팔았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입만 팔았던 놈인데 허위 정보를 마음대로 유포해도 되나 싶었다. 이 정도면 아예 인격을 말살하는 수준 아닌가. 이런 생각에 태화는 이가 갈렸다.

하지만 선우는 생각이 달랐다. 선우가 창놈이었다는 사실이 까발려진 게 짜증 나는 태화와는 달리 선우 본인은 태화 걱정만 했다. 이렇게 기사가 나고, 버젓이 사진이 걸릴 정도면 경찰 수사가 상당히 진행됐다는 뜻일 터였다. 그건 아무리 멍청한 최선우라도 알았다. 이러다가는 태화가 잡혀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선우를 덮쳤다.

그냥 찾아오지 말걸. 꽃다방에서 계속 살걸.

선우는 처음으로 태화에게 온 걸 후회했다. 입술을 우물거리고 있는데 거친 손이 턱을 쥐어 올렸다. 선우는 고개를 스르륵 들어 태화를 바라봤다.

“무슨 생각 해.”

태화의 물음에 선우는 아랫입술을 꾹 눌러 다물었다. 한참 울먹이는 얼굴을 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저 나가 봐야 되는 거 아니에요?”

목소리가 볼품없이 떨렸다.

“저 때문에 아저씨 피해 보면 어떡해요?”

“그 걱정을 이제야 해?”

“……계속하고 있었어요.”

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웅얼거리자 태화가 쯧 혀를 찼다. 다시 고개를 살포시 숙이는데 느닷없이 딱밤이 날아들었다.

“아!”

봐주지 않고 진심을 다한 힘이라 선우는 고개가 뒤로 휙 꺾였다가 돌아왔다. 어찌나 아프던지 절로 악 소리가 나왔다. 한 손으로는 모자라 두 손으로 이마를 빠르게 문질렀다. 벌써 혹이 볼록 올라온 것 같았다. 뇌가 터진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아파서 맞은 데를 꾹꾹 눌러 보자 이번에는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태화는 선우의 손을 치우고 대신 벌겋게 물든 이마에 쪽 입을 맞췄다.

“기다려. 뉴스 뜨자마자 나타나면 찔려서 나온 거 같잖아. 일주일만 참았다가 나가.”

“그래도 돼요?”

“생각 같아서는 그냥 계속 가둬 두고 싶은데 이번엔 영, 감이 안 좋아서 별수 없이 내보내는 거야.”

태화가 하는 말에 선우는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가둬? 누가 누굴? 그간 내가 갇혀 있던 건가?

선우는 금세 울음기가 사라진 눈을 멀뚱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감금당했던 건 아닌 것 같았다. 설령 지금까지 여기서 지냈던 게 태화 말대로 감금이었다고 해도 선우는 아주 만족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가끔 태화가 때릴 듯이 손을 올리면 쫄리긴 했지만 처음 만났을 때처럼 무지막지하게 때리지는 않았다. 간간이 저지레하면 엉덩이를 맞았고, 그마저도 나중에는 태화가 살살 문질러 줬다. 그 손길이 너무 좋아서 선우는 또 맞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몇 번 있었다. 이런 게 감금이라니, 그렇다면 평생 갇혀 있고 싶었다.

“또, 또. 이상한 생각 하지, 또.”

태화가 선우의 뺨을 톡 쳤다. 선우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워낙 가벼운 힘이라 아프지 않은데도 괜히 뺨을 문지르며 태화의 어깨에 기댔다. 어쨌든 이제 이 호화로운 감금 생활도 끝이라는 소리였다.

여기서 나가면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이었다. 다시 꽃다방을 가자니 이제는 태화가 아닌 남의 좆을 빠는 게 싫었고, 그렇다고 길바닥에 나앉자니 지영환 똘마니들이 찾아와 장기를 떼 갈 것 같았다. 물론 그 전에 태화가 자신을 구해 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살아 보니 믿는 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는 걸 깨달았다. 잘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를 팽팽 굴리던 선우는 또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일주일 있다가 그냥 나가서 짠! 하면 되는 거예요? 그것도 이상할 거 같은데.”

“이상하지. 그러니까 머리를 굴려 봐야지.”

태화는 벌써 많은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믿을 사람은 태화밖에 없었다. 제 믿음의 손을 잡고 연신 주물럭거렸다. 선우는 골몰하는 태화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작게 웃었다. 차르르한 웃음소리였다.

“왜 웃어?”

“그냥요.”

“그냥, 왜.”

태화가 집요하게 묻자 선우는 그를 향해 조금 더 환하게 웃었다.

“나랑 아저씨만 아는 비밀이 생긴 거 같아서요.”

목소리가 평소보다도 더 들떠 있었다. 그때 창밖에서 가로등이 켜졌는지 빛이 반짝하고 들어왔다. 하얀빛이 선우의 이마를 물들였다.

태화는 아직 혹이 가라앉지 않은 이마를 살살 쓰다듬었다. 별말 없이 선우를 멀거니 쳐다봤다. 썩은 동아줄을 붙들고도 좋다고 웃는 놈은 최선우밖에 없을 터였다. 태화는 속에 든 말을 내뱉지 않고 선우를 번쩍 들어 허벅지 위에 앉혔다. 꼭 껴안자 선우가 짙은 웃음소리를 냈다. 태화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말마따나 좋다고 웃었다.

* * *

실종 뉴스를 접한 바로 다음 날, 정육점 마감을 하자마자 태화와 선우는 차에 올랐다. 이번에는 검은색 승합차였다. 선우는 태화에게 도대체 차가 몇 대냐고 물었다가 네 대라는 대답을 듣고 입을 떡 벌렸다. 하얀 트럭과 검은 세단, 그리고 이 승합차까지. 알고 있는 것만 세 대인데 이것 말고도 한 대가 더 있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가지고 싶어?”

“아뇨. 그냥 차가 네 대나 있는 게 신기해서. 저는 면허증도 없어요.”

“면허증이 없어? 넌 대체 어떻게 살아온 거야?”

태화가 생각 없이 묻는 말에 선우는 금방 시무룩해졌다. 굳이 꼬집지 않아도 거지 같은 인생을 살아온 건 스스로 더 잘 알았다. 안 그래도 CCTV에 찍히지 않게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던 선우가 고개마저 푹 떨구자 그제야 태화도 아, 소리를 냈다. 선우의 등을 길게 쓰다듬었다.

“면허증 따고 싶어?”

“어떻게 따요.”

“내가 있는데 왜 못 따.”

선우는 고개를 비스듬히 돌려 태화를 올려다봤다. 태화가 이번에는 뺨을 문질렀다. 선우는 잠시 가볍게 눈을 감고 태화의 손길을 느끼다가 손등에 쪽 입을 맞췄다.

“저 운전 가르쳐 줄 거예요?”

“사고 안 친다고 약속하면.”

“약속해요……! 완전 약속할 수 있어요, 저!”

“필기 붙어 오면 가르쳐 줄게.”

선우는 눈을 반짝였다. 수능을 보고 나서 할 일 없이 학교에 나갈 무렵, 반에서 몇몇 친구들이 운전면허 시험을 준비하는 걸 봤었다. 머리 좋은 친구들은 그때도 논술이다, 면접이다 해서 이래저래 바빴고, 정작 학업을 놓은 애들이 운전면허 시험을 준비했다. 그 애들도 다 붙었던 필기시험인데 저라고 못 할까 싶었다.

선우도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었으나 남들 다 붙는 필기시험쯤이야 거뜬히 통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샘솟았다.

“그리고 운전면허 따 오면 차도 사 주고.”

주먹을 불끈 쥐고 운전면허 시험에 도전할 날을 꿈꾸던 선우는 태화의 말에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너무 놀라 하마터면 몸을 벌떡 일으킬 뻔했다. 실제로 반쯤 일어났다가 또 머리를 부딪쳐서 태화의 비웃음을 사야 했다. 선우는 부딪힌 머리통을 살살 문지르며 그를 봤다. 반짝 뜬 눈으로 물음표가 가득 담겼다. 다짜고짜 차를 사 준다니, 아무것도 아닌 사이에서 나올 만한 말이 아니었다. 키우는 개가 부리는 재롱이 너무 예쁘다고 차를 사 주는 주인은 없었다.

“아저씨, 저 좋아해요?”

결국 선우는 참지 못하고 묻고야 말았다. 이런 질문이 퍽 멋없다는 건 알고 있으나 확실한 답을 듣고 싶었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보며 묻자 태화는 검지로 핸들을 톡톡톡 치며 선우를 힐긋 봤다.

“글쎄.”

미적지근한 대답에 선우는 눈을 더욱 힘주어 떴다.

“저번에는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랬나.”

“네. 그랬어요.”

“그럼 그런가 보지.”

“좋아한다는 거……. 윽!”

태화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선우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글로브 박스에 정수리를 콩 찧었다. 옆에서 키들키들 웃는 소리가 들렸다. 선우가 쳐다보자 태화는 미안, 하고 전혀 미안하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일부러 그런 게 분명했다. 이후로 선우가 몇 번 더 자신을 좋아하냐고 물었지만, 그때마다 태화는 느물스럽게 넘어갔다.

차로 한참 달리다 보니 서울을 벗어나 인천에 들어섰다. 그때부터 태화도, 선우도 말수가 줄어들었다. 함께 달리던 차마저 모두 사라졌고, 도로는 점점 더 컴컴해졌다.

어둠이 짙게 깔리자 선우가 태화의 손을 찾아 꼭 붙들었다.

“진짜 할 수 있겠어?”

태화가 묻는 말에 선우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주어가 빠진 문장임에도 둘은 의사소통을 수월히 했다.

“진짜?”

태화는 한 번 더 물었다. 선우가 영 미덥지 않은 얼굴이었다. 선우는 여전히 몸을 접은 채 고개만 돌려 태화를 바라봤다.

“저 못 믿으세요?”

“어.”

단 1초도 걸리지 않고 대답이 나왔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태화 때문에 선우는 또 아랫입술을 비죽이 내밀었다. 그는 쳐다보지도 않고 선우의 도톰한 아랫입술을 톡 쳤다.

“양심이 있으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지금까지 네가 믿을 만하게 행동했는지.”

태화의 말에 선우는 정말 가슴에 손을 얹었다. 왼손으로 오른쪽 가슴을 만지다가 이내 손을 바꿔 왼쪽 가슴을 만졌다. 아무래도 심장이 뛰는 쪽이 더 진실할 거란 생각이었다. 태화 딴에는 그냥 해 본 말인데도 선우는 진지했다. 쿵덕쿵덕 뛰는 심장 박동을 느끼며 한참 생각하다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믿을 만한 거 같은데…….”

“믿을 만한 거 같아?”

태화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되묻자 선우는 한 번 더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네.”

오랜 심사숙고 끝에 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가 지영환 죽이는 거 보고도 신고 안 했고, 지난번에 아저씨 잠들었을 때 시체 처리도 했었고, 처음 집 밖에 나갔던 날은 말 진짜 잘 들었었는데…….”

구구절절 그동안 말을 잘 들었던 일만 나열했다. 선우가 꽤 진중하게 말해서 태화는 그만 헛웃음을 터뜨렸다. 참 같잖지도 않았다.

“찾아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두 번이나 찾아와서는 기어이 내 집 안에 들어앉았고, 옷 사라고 카드 줬더니만 그걸로 지 뒷구멍 쑤실 거나 사고 앉았고, 방에 가만히 있으라니까 기어 나와서는 욕실을 피바다로 만든 놈이 누구더라?”

선우와 마찬가지로 태화 역시 선우가 말을 안 들었던 사건만 늘어놓았다. 우비를 입고 보안경에 마스크까지 쓴 채 욕실 바닥을 닦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에어컨을 세게 틀어 놨는데도 다 끝낸 뒤 선우는 땀으로 범벅이 된 모습을 했었다. 본인이 저지른 잘못으로 그 고생을 했으면서, 선우는 말을 잘 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양심을 팔아먹었나.

태화는 선우를 짧게 쳐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래도 네가 믿을 만한 놈이야?”

반성 좀 하라는 의미로 물었지만 돌아오는 건 긍정의 끄덕임이었다. 선우는 아무리 생각해도 태화가 믿을 사람은 저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제가 믿을 사람은 태화가 유일했다. 조금이라도 믿음직스러워 보이려고 눈을 또랑또랑하게 뜨고 쳐다보자 그가 돌연 인상을 험하게 구겼다. 한쪽 눈썹이 옅게 꿈틀거렸다.

“환장하겠네.”

혼잣말인 양 중얼거리며 앞섶을 주물럭거렸다. 선우는 태화의 손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뭘 했다고, 아랫도리가 또 바짝 서 있었다. 안에서 움칠 떠는 모습까지 두 눈에 담은 선우는 침을 꼴깍 삼켰다. 손을 뻗어 태화의 허벅지부터 쓰다듬었다. 단단하게 성난 근육을 매만지다가 좀 더 안쪽으로 손을 옮기는데 태화가 손목을 잡아챘다.

“오래 살고 싶다며. 이러다 너랑 나랑 황천길 친구 한다. 얌전히 있어.”

태화의 음성은 흥분감에 절어 있었다. 낮게 젖어 든 목소리에 선우도 아랫배가 저릿해졌다. 얌전히 있지 못하고 손을 꿈지럭거렸더니 태화는 별수 없다는 듯 한숨을 푹 쉬었다. 선우의 손을 끌어 앞섶에 얹어 두고 좆과 함께 주물렀다.

선우 역시 젖은 숨소리를 냈다. 태화와 비슷한 소리였다. 손안에서 점점 크게 부푸는 자지가 느껴졌다. 입으로 빨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차가 갓길에 멈춰 섰다.

마침 CCTV도 없는 도로였다.

섹스가 목적인 여정이 아닌지라 끝까지 하지는 않았다. 선우가 빨려고 하는 것도 태화가 말렸다. 대신 두 사람은 서로 좆을 내놓고 상대의 것을 쥐어흔들었다. 이런 건 학생 때나 호기심에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 큰 성인 남성 둘이 하고 있었다. 선우보다도 더 큰 남성인 태화는 중간에 잠깐 이게 다 뭔 짓거리인가 싶었지만 선우가 손톱으로 귀두를 긁어 주는 감각에 참지 못하고 사정했다. 그나마 다행이랄 건, 선우가 싸고 한참 뒤에 쌌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자존심은 지켰다.

가을인데도 차 안이 후덥지근했다. 결국 에어컨까지 켜고 다시 달렸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인천의 한 부둣가에 딸린 컨테이너였다.

“여긴 어떻게 아는 거야?”

태화가 차에서 내리며 물었다. 선우의 안내로 온 이곳은 을씨년스러울 만큼 한적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정말 별것 없었다. 지금은 부두로 쓰이지 않고 이름만 ‘부둣가’인 곳이라 인적도 드물었다. 허허벌판에 컨테이너 하나가 덩그러니 있었고, 저 멀리 구색 갖추기 용도로 있는 매운탕집과 편의점만이 보였다. 그마저도 요즘 편의점은 도나캐나 전부 24시간 영업인데 멀리 보이는 건 불이 시커멓게 꺼져 있었다. 하기야 이런 데에서 온종일 영업해 봤자 전기세가 더 나올 것이었다. 인천이라고 하면 그래도 광역시인데 아직도 이런 곳이 있나 의구심이 들 정도로 촌이었다.

“여기서 살았을 리는 없고.”

“살진 않았고…….”

어느새 태화 옆에 바짝 붙어 선 선우는 앞에 있는 컨테이너를 가리켰다.

“저기 갇혀 본 적은 있어요.”

“뭐?”

생각지도 못한 말에 태화는 본능적으로 되물었다. 선우는 태화를 지나쳐 먼저 컨테이너로 걸어갔다. 태화가 뒤를 따랐다. 용케도 문은 열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매캐한 먼지가 가장 먼저 두 사람을 반겼다. 선우가 콜록거리자 태화가 옆에서 손을 휘휘 저어 먼지를 걷어 냈다.

선우는 정말 이곳에 와 본 적이 있는지 능숙하게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찾아 눌렀다. 불이 반짝 들어왔다. 혹시 전기가 나간 상태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었다. 갑자기 쏟아진 불빛 때문에 질끈 감았던 눈을 스륵 뜨고 주변을 천천히 둘러봤다. 제 기억 속에 있던 곳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습하고, 더러웠다. 한마디로 좆같은 곳이었다.

“갇혀 봤다는 게 무슨 뜻이야.”

뒤에서 태화의 음성이 들렸다. 선우는 뒤를 돌아 그를 마주 봤다. 태화는 멀건 얼굴이었다. 화를 내지도, 짜증스레 미간을 구기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웃는 것도 아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힘들었다.

“처음 지영환한테 끌려오고서 보름 만에 도망갔었거든요. 그때 잡혔다가 여기 한 일주일 정도 갇혀서 허구한 날 입으로 해 줘야 했어요.”

선우는 느릿하게 말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때 일을 회상했다. 지영환의 사무실로 잡혀가서 처분을 기다리는 동안 선우는 참지 못하고 탈출을 감행했었다. 사실 거창하게 탈출이랄 것도 없었다. 발목에 족쇄가 채워진 것도 아니었고, 쇠창살 안에 갇혀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선우는 그때 일을 탈출이라고 명명했다.

저를 팔아먹으려고 혈안이 된 놈에게서의 탈출, 지긋지긋한 밑바닥 인생에서의 탈출, 나락을 향해 가는 기차에서의 탈출.

하지만 탈출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무작정 영환의 사무실을 뛰쳐나온 선우가 갈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돈도 없었고, 도움을 줄 만한 어른은 더 없었다. 하룻밤만 재워 달라고 사정하며 주변 모텔을 전전하다가 결국 길바닥에서 잤고, 모텔 사장들의 투철한 제보 정신으로 단 하루 만에 지영환 똘마니들에게 걸려 돌아가야 했다.

그때 지영환은 말 안 듣는 놈은 짐승처럼 길들여야 한다며 선우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 일주일, 이곳에서 일주일 동안 개처럼 살았다. 한창 겨울바람이 사나운 1월 말쯤에 있었던 일이었다. 선우는 얼어 죽는다는 말이 뭔지 처음으로 몸소 느꼈었다. 죽지 않더라도 손가락이나 발가락 하나쯤은 동상으로 떨어져 나가겠구나 싶었는데 다행히 지금은 두 손 두 발 모두 멀쩡했다.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저기 저거 보이죠?”

선우가 멀쩡한 손가락을 뻗어 구석을 가리켰다. 개 밥그릇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동안 저게 제 밥그릇이었어요. 가끔은 밥이 아니라 정…….”

“어.”

덤덤하게 말을 이어 가는데 태화가 돌연 뚝 끊었다. 그러더니 아무 말 없이 컨테이너를 나갔다. 선우는 제게서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였다.

오늘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생각하며 태화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어디 가요?”

“차에.”

“왜요?”

태화는 입을 다물었다. 선우는 태화의 뒤를 쫑쫑 따라가며 몇 번 더 물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차에 도착한 태화는 조수석 문을 열고 글로브 박스 안을 뒤적였다. 얼마 뒤 태화의 손에 들려 나온 건 담뱃갑과 라이터였다. 태화는 담뱃갑 밑부분을 툭툭 쳐 비죽이 올라온 걸 입에 물고 자연스레 불을 붙였다.

“떨어져 있어.”

옆에 바짝 붙어 있는 선우에게 한마디 하고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선우는 옆으로 반 발자국만 물러선 채 태화를 올려다봤다. 지금까지 함께 살면서 태화가 담배 피우는 걸 본 건 처음이었다. 가끔 일 끝나고 맥주는 마셔도 담배는 안 피우던 사람인데, 느닷없이 흡연하는 걸 보게 되니 마냥 신기했다. 그러고 보면 지난번에 형이라는 사람과 대화할 때 담배를 끊었다고 했던 게 기억났다.

끊은 지 얼마나 됐을까……? 하루에 몇 갑씩 피웠을까? 멘솔을 좋아하나? 가장 좋아하는 담배는 뭘까?

선우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태화를 관찰했다. 비흡연자이기에 담배 맛은 잘 모르지만 태화가 피우는 게 멘솔 종류라는 건 알았다. 꽃다방에서 손님들의 담배 심부름을 자주 했어서 익숙했다.

연기를 빨아들일 때마다 태화의 볼이 깊게 팼다. 오랜만에 피우는 담배가 낯선지 미간에 주름이 살짝 지기도 했다. 입으로 들이마시고 코로 연기를 내뿜는 모습을 내도록 눈에 담았다.

“연기 좋지도 않은데. 더 떨어져.”

태화가 다시금 말했지만, 선우는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조금 전에 물러났던 반 발자국을 다시 다가가 붙어 섰다.

“말 한번 지지리도 안 듣지.”

태화는 옅게 한숨을 쉬었다. 그 짧은 숨에도 연기가 함께 딸려 나왔다. 선우는 무슨 신기한 생명체라도 관찰하듯 두 눈을 반들반들하게 떴다. 그 모습에 태화는 픽 웃음을 흘리고 아예 선우를 마주 보고 섰다. 태화가 숨을 내쉴 때마다 희뿌연 연기가 둘 사이를 갈랐다. 바람결에 연기가 흩어지면 다시 상대의 모습이 보였다. 태화도 선우도 서로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너도 피울래?”

태화가 담뱃갑을 내밀며 묻는 말에 선우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피워 본 적 없어요.”

선우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지 태화가 가볍게 웃었다. 그 후로도 태화는 담배를 계속 피웠다. 발치로 꽁초가 한둘씩 쌓이는 내내 선우 역시 그를 빤히 쳐다봤다.

태화는 연기를 내뿜을 때마다 고개를 반대쪽으로 살짝 돌렸고, 선우는 그게 나름의 배려라는 걸 알아서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찬찬히 태화를 훑었다. 태화는 손가락 가장 안쪽 마디에 담배를 끼우는 게 습관인 듯 보였다. 첫 모금은 깊게 빨아들이고, 그다음부터는 옅게 들이켰다. 반절 정도 피웠을 때 꽁초를 내다 버리고 새로운 걸 꺼내 잇새에 물었다.

선우는 필터 근처도 가지 못한 꽁초들을 내려다봤다. 흡연자들이 보면 아까워할 것 같았다. 이런 사소한 습관에서마저도 태화의 성격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담배꽁초를 툭툭 차며 샐쭉 웃었다. 남들은 알지 못하는 태화의 특징을 또 하나 알아냈다.

어째 담배를 피우면 피울수록 태화의 얼굴은 눈에 띄게 험해졌다. 아니, 얼굴 근육은 그대로인데 눈빛이 살벌하게 변했다. 선우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밝은 눈동자 속으로 빛이 반짝 들었다. 선우는 별수 없이 긴장감이 느껴졌다. 태화의 저런 눈빛은 익히 본 적 있었다. 사람을 죽이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무슨 생각 해요……?”

“지영환 생각.”

“그 사람을 왜요?”

선우는 선뜻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태화는 마지막인 양 연기를 깊게 들이켜고 담배꽁초를 퉁겼다. 발로 몇 번 비벼 불씨를 끈 뒤, 근처에 떨어진 꽁초들을 모두 주워 차 안으로 대충 던져 넣었다.

“그 씨발 새끼 어떻게 조질까. 그 생각 하고 있었어.”

선우의 고개가 더 기울어졌다.

“이미 아저씨가 다져 놨잖아요?”

큰 눈을 끔뻑이며 묻자 태화가 손을 뻗었다. 선우는 부지불식간에 또 맞는 줄 알고 어깨를 확 움츠렸다. 하지만 어떤 타격도 없었다. 슬며시 눈을 떴다. 태화가 미간을 구깃하게 접으며 쳐다보고 있었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태화는 쯧 혀를 차고 선우의 머리카락을 만졌다. 근 2개월 동안 미용실 한번 가지 못해 목덜미 아래까지 길게 자란 머리카락을 장난치듯 배배 꼬았다.

“가둬 둘 거면 밥이라도 잘 처먹이지, 개 밥그릇이 뭔가. 애가 이렇게 말랐는데 좆물을 먹게끔 하는 게 말이나 되나. 그 씨발 새끼는 인정머리라는 게 없나.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한 잡놈이었구나. 뭐, 그런 생각 하다 보니까 좀 화가 나서.”

한 마디, 한 마디 나열할 때마다 태화의 손이 점점 더 깊숙이 들어왔다. 어느새 두피를 간질이는 손길에 선우는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간지러웠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너무 간지러웠다. 콩콩콩 뛰던 심장이 갑자기 제멋대로 쿵쿵대는 느낌이었다. 선우는 아랫입술을 축였다. 화내는 태화가 무서워서 심장이 빠르게 뛰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어떻게, 더 못 다지나.”

“전 괜찮으니까 너무 화내지 말아요. 무서워요.”

“뭐가 괜찮은데?”

태화는 고개를 삐뚜름히 기울였다.

“아직도 이렇게 덜덜 떨면서 뭐가 괜찮다는 거야?”

태화의 손이 선우의 뺨으로 옮겨 왔다. 태화의 말대로 정말 선우는 파르르 떨고 있었다. 화내는 태화가 무서워서 떠는 게 아니었다. 설렘에 기인한 기분 좋은 떨림은 더 아니었다. 다만, 다시 이 공간에 와 있다는 게 두려웠다. 괜찮은 척하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그날의 악몽은 여전히 존재했다. 선우는 제 뺨을 부드럽게 감싸 쥔 태화의 손을 겹쳐 잡았다. 무게를 실어 머리를 기대고 손바닥에 뺨을 치댔다. 따뜻했다.

“저 사실 하나도 안 괜찮아요.”

“알아.”

목소리마저 따뜻해서 눈이 짓무르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진물이 흘러나오듯 눈물 한 방울이 봉긋 맺히다가 기어코 톡 떨어졌다. 태화는 엄지로 선우의 눈물을 닦아 주고는 뒤로 살짝 물러났다. 선우는 태화가 뭘 하려는 건지 알았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태화의 팔이 너르게 벌어졌다. 태화가 고개를 까딱이자 선우는 망설이지 않고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

무서웠다고. 너무 추웠고, 배도 고팠다고. 지영환이 문을 걸어 잠그고 가면 다신 오지 않을까 봐 얼마나 떨었는지 아느냐고. 그래도 살고 싶어서, 지영환 같은 놈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마음이 너무 비참하더라고. 죽고 싶었노라고.

선우는 눈물과 함께 고여 있던 감정들을 왈칵 쏟아 냈다. 횡설수설하는 와중에도 태화는 다 알아듣는다는 듯이 어, 어, 낮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우는 그게 참 좋았다. 자신이 별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여도 집중해서 들어 주는 태화가 좋았다. 눈물겹도록 좋아서, 울음이 멈추질 않았다.

“고개 들어 봐.”

우는 얼굴을 보여 주기 싫어 고개를 파묻고 버티자 태화가 직접 선우의 뺨을 쥐어 올렸다. 별수 없이 선우는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태화를 올려다봤다. 참 못난 얼굴일 터였다. 눈가는 시뻘겋게 질리고, 코는 찔찔 흘리고, 온 낯짝은 눈물범벅이라 잘생기려야 잘생길 수 없었다. 그래도 태화에게만큼은 잘난 모습만 보여 주고 싶어 소매 끝으로 낯을 문질러 닦았다.

벅벅 소리가 날 정도로 닦자 태화가 한숨 비스름한 웃음을 흘리더니 손을 가볍게 잡았다. 그대로 손을 내려 깍지를 끼고 대신 선우의 눈가로 쪽쪽 입을 맞췄다. 눈알이 뽑힐 만큼 강하게 빨아들였다가 또 살살 핥고, 혀끝으로 속눈썹을 간질였다.

“좆같은 기억은, 더 좆같은 기억으로 덮는 거야.”

입맞춤이 쏟아지는 동안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던 선우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태화는 무표정했다. 미소가 사라진 낯으로 가만히 쳐다보더니 다짜고짜 차 트렁크를 열어 선우를 밀어 넣었다. 다소 거친 손길에 선우는 윽, 소리를 내며 딱딱한 바닥으로 벌러덩 누웠다. 승합차라 확실히 트렁크가 넓었다.

“마음껏 울어.”

한마디를 끝으로 태화는 바지 버클을 직, 내렸다. 선우의 다리를 덜렁 들어 바지와 속옷을 한꺼번에 끌어 내리고 중앙에 자리 잡았다. 엉덩이를 움켜쥐는 악력이 너무 강했다. 눈물이 쏙 빠질 정도라 선우는 다급히 도리질을 쳤다. 풀어 달라고 말하기도 전에 뜨끈한 기둥이 엉덩이 사이를 쿡 파고들어 왔다.

초반에만 거칠었지, 결국 태화는 선우를 물고 빨아 가며 예뻐했다. 태화가 정말 예뻐해 주려던 건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선우는 예쁨받았다고 생각했다. 좆같은 기억은 더 좆같은 기억으로 잊으라더니 이번 섹스도 너무 좋은 기억으로만 남을 것 같았다.

그래도 나름의 효과는 있었다. 태화와 밖에서 배 맞춘 게 처음이라 다른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컨테이너에서 당했던 일련의 학대와 관련된 기억은 눈 녹듯 사라졌다. 이제 이곳에 오면 태화와 끈덕지게 붙어먹은 기억만 날 게 분명했다.

“뒤에서 계속 나오는 거 같아요…….”

선우는 괜스레 태화의 어깨에 뺨을 비비며 응석 부렸다. 태화가 트렁크 바닥에 함부로 눕지 못하게 해서 그의 몸 위에 나무늘보처럼 엎어져 있는 상태였다. 그 바람에 다리가 양쪽으로 너르게 벌어져 정말 구멍 밖으로 끈적한 정액이 줄줄 샜다.

“그러게, 콘돔 낀다고 했잖아.”

“끼면 잘 안 느껴진단 말이에요.”

“그거 편견이야. 요즘 콘돔이 얼마나 잘 나오는데.”

냉정한 말에 선우는 입술을 오리처럼 쭈욱 내밀었다. 다른 남자들은 안 끼고 하려고 혈안이 됐는데 태화는 왜 이렇게 바른 생활 사나이인지 몰랐다. 아무리 좋은 콘돔을 쓴다고 해도 안 낀 것과 똑같을 순 없었다.

힘차게 박동하는 태화의 맥과 구불텅하게 돋아 있는 핏줄, 곧게 선 힘줄 같은 게 전부 느껴질 리 만무했다. 게다가 태화도 더 잘 느끼는 것 같았다. 좋으면 좋다고 하지, 뭐 하러 고집을 부리나 싶어 두 눈을 가늘게 뜨는데 태화가 뚱하게 쳐다보다가 쪽 뽀뽀했다.

두 번 더 쪽쪽거리는 동안 태화는 손을 내려 선우의 엉덩이 골을 더듬거렸다. 정말 손가락 사이가 질척하게 젖는 게 느껴졌다. 태화는 미간을 살짝 구기면서도 제 정액을 그러모아 구멍 안으로 꾹 밀어 넣었다. 구멍이 열린 틈에 다시 비어져 나오는 것까지 전부 넣고 코르크 마개라도 되는 양 손가락 두 개로 막았다.

“응……. 이상해요. 안 다물려…….”

“끼 그만 부려.”

“끼 부리는 거 아니에요.”

“한 번 더 해?”

태화가 묻자 선우는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태화와 하는 섹스는 하늘을 나는 것처럼 좋았지만 몸이 감당하긴 힘들었다. 치받는 힘이 어찌나 강한지 아직도 엉덩이와 가랑이 사이가 얼얼할 정도였다. 선우가 거의 학을 떼듯 고개를 젓자, 태화는 그게 또 마음에 안 들었는지 선우의 아랫입술을 콱 깨물었다. 힘 조절을 못 하고 세게 씹어서 결국 피를 봤다.

“피 나죠? 피 많이 나죠?”

“안 나.”

태화는 시침을 뚝 뗐다.

“피 나는 거 같은데. 찢어진 느낌 났는데…….”

선우가 입술을 만지기 전에 태화가 먼저 선수 쳐서 아랫입술을 쫍 빨았다. 하지만 태화의 입술에 피가 묻은 걸 보고 선우는 눈을 흘겼다. 둘은 뽀뽀와 키스를 번갈아 하다가 그마저도 선우의 체력이 달려서 그냥 가만 서로를 끌어안았다. 선우는 쌕쌕거리는 숨을 쉬며 늘어졌다. 태화의 심장이 힘 있게 뛰는 게 느껴지자 슬며시 웃었다. 크고 거친 손이 머리카락을 살살 쓰다듬어 주는 것도 좋았다.

“근데 신기하네.”

태화가 작게 중얼거리는 말에 선우는 고개를 살짝 들었다. 태화의 쇄골에 턱을 괴고 그를 봤다.

“뭐가요?”

“입은 그렇게 썼는데 뒤는 안 따인 게.”

“아…….”

선우는 다시 단단한 몸에 뺨을 착 붙였다.

“처음 뒤에 넣으려고 했을 때 죽겠다고 혀 깨물었었어요.”

머리카락을 간질이던 손이 잠깐 멈췄다. 끙, 앓는 소리가 나더니 다시금 움직였다. 귓불을 만지다가 뺨을 타고 내려온 손이 돌연 선우의 입 안으로 쑥 들어왔다. 너무 갑작스러운 침입에 선우는 하마터면 태화의 손가락을 아프게 깨물 뻔했다. 다행히 잇자국이 나기 전에 입을 벌렸다. 굵다란 손가락 두 개가 혓바닥 위를 자꾸 문질렀다.

“흉터는 안 남았네.”

태화는 또 혼잣말했다. 그제야 선우는 태화가 뭘 하는지 알게 됐다. 혀를 깨문 흉터가 있는지 없는지 만져 보는 것이었다. 혓바닥뿐만 아니라 입 안 여기저기를 슥 훑던 손가락이 한참 만에야 빠져나갔다. 선우는 서둘러 입가로 죽 흐른 침을 문질러 닦았다. 태화의 가슴에 고인 침도 핥아 먹자 그가 피식 웃었다.

“안 아팠어?”

“네.”

“진짜?”

태화가 한 번 더 묻고서야 선우는 고개를 저었다.

“많이 아팠어요.”

축축하게 젖은 목소리로 말하자 태화가 더 꽉 껴안아 줬다. 자칫 숨이 막힐 만큼 강한 힘이었으나 선우는 태화를 밀어 내지 않았다. 그때는 안 아팠던 것 같던 혓바닥이 이제야 아팠다. 저릿한 혓바닥으로 태화의 입술을 핥았다. 태화는 곧바로 선우가 원하는 걸 눈치채고 입을 열어 혀를 받아들였다. 이때까지 해 왔던 것과는 달리 느리고, 녹진한 입맞춤이 이어졌다. 키스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를 수 있다는 걸, 선우는 오늘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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