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13)

3.

여름이 왔다.

선우는 1월에 태화와 길거리 한복판에서 헤어져 7월인 지금까지 그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장장 6개월이었다. 찾아갈 엄두도 못 냈다. 저번에는 손가락을 부러뜨렸는데 또 찾아갔다가 걸리면 그때는 목을 부러뜨릴지도 몰랐다. 손가락은 금방 나았으나 두려움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멀리서 한 번쯤 보는 건 괜찮지 않을까 싶었지만, 태화라면 그것마저도 알 것 같았다.

“자, 팁.”

남자가 오천 원짜리를 한 장 팔랑팔랑 내밀었다. 선우는 간이 세면대에서 입을 헹구다가 얼른 물기를 닦고 돈을 받아 들었다. 감사한 척 받기는 했지만 오천 원이면 그냥 안 받고 마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쪼잔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손님이었다.

“감사합니다.”

빈말로 인사하자 남자는 으하하 웃으며 바지춤을 추스르고 먼저 방을 나섰다. 선우는 오천 원을 대충 접어 주머니에 넣고 마저 입을 헹궜다. 짜고 비린 맛이 나는 입 안을 갸르르륵 소리까지 내며 헹구고 면도 용품을 정리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은 다 개소리였다. 태화를 못 본 지 반년이나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가 보고 싶었다. 저들이 무슨 사이라고 그립기까지 했다. 그저 좆이나 좀 빨아 주고, 일방적인 폭력만 당한 사이였는데도 선우는 매일매일 태화를 그리워했다. 여태 위험한 바이크를 타고 다니는지, 밥은 먹었는지 걱정했다. 제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으면서 그랬다. 또 다른 목표를 찾아 또다시 사람을 죽였는지도 궁금했다.

“정육점은 장사가 잘되나?”

비 맞은 중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려 가며 대충 정리를 마치고 나왔다. 화장실로 가 양치질부터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쓰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시는 태화를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요즘 들어 종종 이랬다. 영원히 이 좁고 더러운 방에 갇혀 살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짙게 들었다. 인생에 잘생긴 살인 청부업자 한 명 끼어들었다고 선우의 삶이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가난했고, 방은 좁았으며, 더러운 꿈을 자주 꿨다.

“최선우!”

바깥에서 큰 소리가 난다 싶더니 누군가가 대뜸 선우를 찾았다. 선우는 노란 장판이 깔린 바닥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고개를 슥 들었다.

“이 씨발년 어딨어?”

“어머, 남의 영업장에서 왜 이래?”

“씨발, 최선우 나오라고 해! 최선우!”

선우를 찾는 남자는 하나가 아니었다. 세 명 정도 되는 남자들이 일제히 선우의 이름을 불러 대며 욕을 지껄였다. 대체 무슨 일인지 몰랐다. 언뜻 익숙한 음성인 것 같아서 선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비척비척 밖으로 나갔다.

면도방을 지나 홀로 나가자 마담 앞에 서서 씩씩대고 있는 남자들이 보였다. 선우는 숨을 흡 삼켰다. 영환이 부리는 아랫놈들이었다.

“야, 최선우!”

남자 한 명이 선우를 발견했다. 남자들은 마담을 지나쳐 우르르 선우에게로 몰려왔다. 선우는 무슨 일인지도 모르면서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지영환의 부하들은 그 윗사람을 그대로 빼다 박아서 전부 성격이 지랄 같았고, 손버릇이 안 좋았다. 역시나 선우는 한순간에 남자에게 머리채가 잡혔다.

“어, 너 이 씨발아. 네가 우리 사장님 재꼈냐?”

“네? 윽……!”

“네? 는 씨발. 일단 맞자. 맞으면 뭔가 떠오르겠지.”

남자는 주먹으로 선우의 낯짝을 갈겼다. 영문도 모르고 맞기 시작한 선우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버둥거리는 것뿐이었다.

한 사람이 달려들어도 못 이길 텐데 남자는 셋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발로 배를 차고,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고, 머리채를 휘어잡고 난리였다. 주방에서 쉬던 아가씨들이 일제히 뛰어나왔고, 안에 있던 손님들은 슬금슬금 다방을 나갔다. 손님이 다 나가는 걸 본 마담은 성질이 났는지 남자들에게 매달려 뜯어말렸다.

“아, 왜 다짜고짜 애를 잡고 그래!”

“씨발년아, 너도 맞고 싶어?”

결국 마담도 뒤통수를 한 대 맞고서야 떨어져 나갔다. 마담이 아가씨들 사이로 피신하는 동안 남자들은 선우를 끌고 1층으로 내려갔다. 개처럼 끌려 거리 한복판으로 나간 선우는 거기서도 무자비한 폭행을 당했다. 신고 있던 슬리퍼는 끌려가며 벗겨져 저 멀리 나뒹굴고 있었다. 남자들은 오히려 구경꾼들이 생기자 신나서 더 때렸다.

“사장님이 너 만나러 간다고 하고 사라졌어. 네 새끼한테 좆 물리러 갔다가 없어졌다고!”

“윽, 저, 전 아무것도 몰라요……! 흑…….”

“몰라? 하, 씨발아, 너는 알 거 아니야. 사장님이 돈 꿍쳐 둔 거 어디 놔뒀다디? 엉?”

이제야 선우는 남자들이 제게 이 지랄을 떠는 이유를 알았다. 사라진 영환의 안위를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지영환의 돈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려고 이러는 것이었다. 지영환이 항상 끼고돌던 선우라면 알지 않을까 싶어서 난동을 부리는 중이었다. 근 반년 만에 나타나서는 잘하는 짓이었다. 선우는 순간 헛웃음이 나와 웃으려다가 주먹으로 복부를 맞고 대신 숨을 삼켰다.

“진짜, 윽, 아무것도 몰라요……. 저한테는 그런 거 안 알려 주……. 억!”

“맞자. 조금 더 맞으면 기억이 나겠지.”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나 남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폭력을 가했다. 말리는 사람도 없었다. 선우는 눈두덩이가 찢어져 핏물이 짙게 밴 눈을 떠 주변을 둘러봤다. 인제 보니 제가 미친 게 아니었다. 여기저기 미친놈들 천지였다.

그때 선우의 시뻘건 시야 속으로 새하얀 게 들어왔다. 선우는 눈을 크게 떴다. 하얀 트럭이었다. 혹시나 태화의 트럭일까 싶어 번호판을 보려 했으나 남자가 주먹으로 광대를 짓이긴 탓에 바닥으로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곧바로 세 남자의 발길질이 이어졌다. 트럭을 봤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싶은데 자꾸만 낯짝을 차 대서 쉽지 않았다. 겨우겨우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하얀 트럭이 사라진 뒤였다.

“윽……. 흐…….”

지금까지 잘만 참아 왔던 울음이 갑자기 터졌다.

태화를 볼지도 모르는 기회였다. 6개월 만에 온 기회였는데 다 망쳤다. 참을 만하다고 생각되던 통증이 너무 심하게 밀려왔다. 맞은 머리도 아팠고, 배는 찢어질 것 같았다. 쏟아지는 욕 때문에 귀가 따갑기까지 했다.

태화가 너무 보고 싶었다.

### ㄹㅂㅌㄹ 공금임  ###

태화는 새벽 4시에 일어났다. 평소처럼 양치질만 하고 운동복을 챙겨 입었다. 나가기 전 환기하기 위해 창문에 쳐진 암막 커튼을 열어젖히는데 밖으로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고 있었다. 어찌나 세차게 내리던지 창문을 뚫을 기세였다.

“갑자기 웬 비야?”

우비라도 입고 러닝을 나갈까 했지만, 오늘은 그냥 집에서 뛰기로 했다. 노래를 틀어 스피커 볼륨을 높이고 러닝 머신 앞에 섰다. 40분 정도 러닝을 뛰다가 욕실 문을 열어 놓고 노래를 들으며 샤워했다. 평소처럼 잘하지도 못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다 갑자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제 낮에 봤던 광경이 떠올랐다. 어쩌다 우림동을 지날 일이 있었다. 사실 굳이 꽃다방이 있는 도로로 지나갈 필요는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 앞으로 가게 됐다. 당연히 못 보겠거니 마음을 비워서 그런가, 태화는 선우를 봤다.

근 6개월 만에 보는 거였는데, 최선우는 또 처맞고 있었다. 하여튼 맞기는 오지게 잘 맞았다.

‘존나게 골 때리는 새끼네, 저거.’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던 태화는 바뀐 신호를 보고 망설임 없이 액셀을 밟았더랬다. 사이드 미러로 힐끗 보니 선우는 아예 남자 셋에게 둘러싸여 발길질을 당하고 있었다. 맞을 거면 신발이라도 제대로 신고 맞지, 처량해 보이려고 아주 용을 쓰는 것처럼 맨발이었다. 새하얀 발등과는 달리 새카맣던 발바닥이 떠오른 태화는 쯧 혀를 차며 샤워기를 끄고 물기를 닦았다.

이래저래 게으름을 피우다 보니 어느덧 5시에 가까워졌다. 곧바로 집을 나섰다.

태화의 집은 태화 정육 2층이었다. 카운터 안쪽에 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에 냉동 창고 문이 있었고, 왼쪽에는 집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었다.

계단을 내려와 가게 문을 통해 밖으로 나온 태화는 곧장 트럭을 몰고 마장동으로 갔다. 매주 월, 수, 금마다 이틀 치 고기를 떼 왔다.

갑자기 비가 와 고기 상태가 영 나쁠 줄 알았는데 다행히 상태가 다 좋았다. 내일까지 판매할 분량의 고기를 싣고 돌아와 트럭을 끌고 시장 안까지 들어가는데, 가게 앞에 무언가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뭐야?”

어떤 놈이 남의 가게 앞에 쓰레기라도 투척했나 싶어 절로 짜증이 났다. 속도를 줄이고 가게 앞에 트럭을 천천히 정차한 태화는 그제야 헛웃음을 지었다. 쓰레기가 아니었다. 쓰레기처럼 보이는 최선우였다.

시동을 끄자 쪼그려 앉아 바닥만 보던 선우가 고개를 들었다. 태화는 배짱 한번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처맞고, 심지어 손가락뼈가 나갔음에도 자신을 또다시 찾아올 생각을 한 선우가 이제는 신기하기까지 했다. 차에서 내려 다가가자 선우가 벌떡 일어났다.

“여기서 뭐 하냐?”

가볍게 묻는 말인데도 선우는 겁에 질린 듯 어깨를 떨었다. 저렇게 떨 거 뭣 하러 찾아왔는지 몰랐다. 그렇다고 도망가진 않는 몸뚱이를 보고 태화는 픽 웃으려다가 말았다. 지금도 기어오르는데 자꾸 웃어 주면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올 것 같았다.

눈을 느른하게 뜨고 선우를 위아래로 주욱 훑었다. 거지꼴이 따로 없었다. 하루 사이에 어제 맞은 얼굴이 시푸르뎅뎅해진 건 말할 것도 없었고, 누가 양동이로 퍼붓듯이 내리치는 비를 전부 맞고 왔는지 온몸이 쫄딱 젖어 있었다.

발에는 금방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낡아 빠진 슬리퍼만 덜렁 신겨 있었다. 아무래도 여기까지 걸어온 모양이었다. 우림동에서 여기까지 걸어서는 어림잡아도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참 미련하기가 끝 간 데 없는 놈이었다.

태화는 쯧 혀를 차고 선우를 지나쳐 가게 문을 열었다. 위에 잠금 쇠를 풀고 들어가려는데 선우가 팔뚝을 붙들었다.

“저 좀 구해 주세요.”

그러더니 한다는 말이 구해 달라는 것이었다. 숨겨 달라는 것도, 같이 살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선우는 지금 구원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것도 사람을 죽인 놈에게.

태화는 두 손으로 제 팔뚝을 잡고 매달린 선우를 내려다봤다. 머리카락은 늘 그렇듯 목덜미를 덮는 길이였다. 그 끝을 타고 똑똑 떨어지는 물기를 잠깐 쳐다보다 선우를 매몰차게 떼어 냈다.

“싫어.”

“제발요. 부탁할게요.”

“귀찮아.”

“안 그러면 더 귀찮게 할 거예요.”

태화는 결국 참다못해 헛웃음을 지었다. 이전에도 느꼈으나 협박 하나는 참 못하는 놈이었다.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해.”

경찰에 신고하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자꾸 같은 레퍼토리를 쓰는 선우 때문에 태화는 연신 피식피식 웃었다. 하지만 선우는 심각했다. 이번에는 태화의 손을 덥석 잡았다.

“난 이제 차라리 콩밥 먹는 게 더 나은 인생이 됐어. 그것도 당신 때문에.”

선우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되는대로 말을 내뱉었다. 잘만 쓰던 존댓말도 버렸다. 정중하게 해서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떼라도 써 볼 심산이었다.

어제, 입에서 피를 토할 만큼 맞고 마지막으로 남자들에게 들은 말은 장기를 팔아 버리겠다는 것이었다. 아직 선우 부친이 쓴 차용증이 저들 사무실에 있다며, 영환이 돈을 어디에 보관하는지 알아 오지 않는다면 그냥 통나무를 만들어 버리겠다고 했다. 지영환이 죽었어도 부친의 차용증은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선우는 장기를 떼 가겠다는 말에 벌벌 떨었다. 그놈들은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었다.

하지만 죽었다 깨나도 영환의 돈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고, 가죽만 남게 될 마당에 선우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태화였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고, 마지막 발악으로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당신 때문에 시궁창으로 처박힌 내 인생 책임져.”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도박이라도 하는 심정이었다. 선우를 넌지시 바라보던 태화는 다시금 잡힌 손을 빼냈다. 눈빛이 무료하게 바뀌었다.

“넌 원래 그런 인생이었어.”

무미건조하게 나온 말에 선우는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알고 있었는데, 남의 입을 통해 제 인생이 시궁창이라는 말을 들으니 서러웠다. 그게 태화라는 점이 더 그랬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게 느껴졌다. 태화에게 우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아서 먼저 눈두덩이를 비볐다. 약한 살성이 발갛게 부어오를 만큼 열정적으로 비비고 또다시 태화를 노려봤다.

“개새끼…….”

“개는 너지. 키워 달라며.”

“구해 달라고 했지, 내가 언제 키워 달라…….”

“누굴 구하는 건 취미 없어. 말 잘 듣는 개새끼를 키우는 건 몰라도.”

선우는 구기고 있던 미간을 스르륵 폈다. 고개를 반쯤 기울인 채 태화의 말을 이해하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떡할래?”

아직 이해하기 전인데 태화가 대답을 재촉했다. 멍청하고 둔한 머리를 팽팽 굴렸다. 한참 생각하던 선우는 도톰한 입술을 옴칠거리며 태화를 올려다봤다. 하늘이 천막으로 가로막혀 전등 하나 켜지지 않은 시장은 어두웠다. 비까지 와서 더 그런 것 같았다. 그런데도 태화의 얼굴만은 또렷하게 보였다.

꼭 그때 같았다.

영환의 가랑이 사이에서 눈물을 죽죽 흘리는 자신을 태화가 구하러 와 줬을 때.

“키워 줘, 말아?”

그 물음에 선우는 태화에게로 반 발자국 더 다가섰다. 태화도 물러서지 않았다. 키 차이가 꽤 나서 선우도 태화도 고개를 꺾어 가며 서로를 바라봤다.

“키워 줘요.”

“키워 주세요.”

“……키워 주세요. 저 좀 키워 주세요.”

태화가 정정해 준 문장을 웅얼거리던 선우는 갑자기 목소리에 힘을 주어 다시 한번 말했다. 언뜻 결연해 보일 만큼 단단한 목소리였다. 그 모습을 빤하게 내려다보던 태화는 곧 픽 웃으며 선우를 지나쳐 갔다.

선우는 서둘러 태화를 따라 뒤를 돌았다. 옷깃이라도 잡으려고 했는데 태화의 움직임이 너무 빨랐다. 능숙하게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는 뒷모습에 선우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태화가 제게 장난을 친 건가 싶었다.

잘만 빨면 데려가 줄 것처럼 굴어 놓고는 열심히 했는데도 버리고 갔고, 뒤를 밟은 벌로 눈물이 쏙 빠질 만큼 때렸으면서 나중에 손가락까지 부러뜨렸다. 선우는 이번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키워 줄 것처럼 잔뜩 기대하게 만들어 놓고선 사람을 또 바보로 만들고 있어.

제게 등을 돌린 태화를 보며 아랫입술을 아프게 깨물었다. 서러웠다. 서러운데 여전히 태화가 좋아서 눈물마저 나왔다. 울상이 된 낯으로 입술을 우물거리며 주먹을 꼭 쥐는데 카운터 위에 열쇠를 올려 둔 태화가 뒤를 돌아봤다.

“들어와.”

태화는 선우를 바라보며 짧게 말하고는 안쪽 창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밥 먹어.”

뒤이어 들려오는 말에 돌연 선우의 눈이 커졌다. 눈을 한번 끔뻑이자 맺혀 있던 눈물이 톡 떨어졌다.

“안 먹어?”

사라진 줄만 알았던 태화가 문 사이로 고개만 빼꼼 내밀고 물었다. 선우는 서둘러 뺨에 흐른 눈물을 닦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먹어요!”

혹시나 태화의 마음이 바뀔까 봐 다급히 대답했다.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가 태화의 걸음 소리를 쫓아 계단을 올랐다. 그리 길지 않은 계단이었는데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심장이 쿵쿵쿵 뛰는 게 느껴졌다.

선우는 두방망이질 치는 심장을 느끼며 마른침을 꼴딱 삼켰다. 태화를 보면 항상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의 말마따나 저는 개새끼인 게 분명했다.

* * *

선우는 답지 않게 새벽부터 눈을 떴다. 협탁 위에 있는 시계를 보니 5시 40분을 막 지나고 있었다.

허리가 아팠다. 아무래도 푹신한 침대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더 걸릴 듯싶었다. 태화가 안고 자라고 던져 준 베개를 끌어안고 이리저리 뒹굴었다. 밤에 그의 침대로 기어 들어갔다가 머리를 한 대 맞고 쫓겨나며 얻은 것이었다. 태화가 베고 자던 거라 그런지 아직도 그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보고 싶다.”

태화는 어젯밤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같이 산 지 이제 고작 보름 만에 그가 외박했다. 매일 밤 11시에 잠들어 새벽 4시에 일어나는 규칙적인 일상을 살던 태화는 어젯밤 잘 준비는 안 하고 외출 준비를 했다. 어디 가느냐고 물었으나 돌아온 건 신경 쓰지 말라는 냉대뿐이었다.

선우는 태화가 제게 차갑게 대하는 게 서러운 것보다도 그의 안위가 더 걱정되었다. 태화는 분명 또 사람을 죽이러 가는 것이었다. 지난번처럼 손에 난 상처 때문에 주춤하다가 도리어 상대에게 당하면 어쩌나 전전긍긍했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화는 다녀오겠다는 흔한 인사말 하나 없이 집을 나섰다.

그래도 잠들기 전에는 들어오겠지 싶어 기다리려고 했는데 깜빡 눈을 감았다 뜨니 벌써 세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밖에는 여전히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힘쓰면 배고플 텐데. 오자마자 밥부터 찾겠지?”

선우는 무언가 좋은 생각이 난 듯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혹시나 자신이 잠든 사이 돌아와서 자고 있을까 싶어서 태화의 방문을 열어 봤지만 잠겨 있었다. 태화는 본인이 집에 있을 때는 방문을 잠그지 않았다. 아직 안 온 모양이었다.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밥은 챙겨 먹고 일하는지, 태화를 향한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남을 죽이러 간 게 분명한데 태화 손에 죽을 아무개보다도 태화가 더 걱정이었다.

샤워부터 하고 주방으로 나와 이것저것 뚱땅거리며 만들었다. 그래도 꽃다방에 있을 때 계란프라이 하나는 예쁘게 잘 부친다고 종종 칭찬을 들었다. 태화에게 줄 걸 만들기 위해 프라이팬 위에 달걀을 깨는데 쌍란이었다.

“복권이라도 사야 되나?”

요즘 들어 운이 좋았다. 아니, 태화와 같이 살기 전에는 지지리 복도 없던 인생이 최근 보름 동안 좋아도 너무 좋았다. 태화가 사 둔 쌍쌍바를 먹으려고 아무 생각 없이 쪼개도 정확히 반으로 갈라졌고, 비타민 음료를 마시고 뚜껑을 보면 ‘한 병 더!’라고 적혀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이랑 사니 제 인생도 점점 피는가 보았다. 선우는 복권 살 돈도 없으면서 1등에 당첨되면 태화에게 멋진 트럭을 사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작게 웃었다.

제 몫까지 계란프라이를 두 개 해 놓고, 딱히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그나마 가장 쉬운 계란국도 끓여 놨다. 태화는 혼자 살면서도 꽤 잘 챙겨 먹는 편이라 냉장고 안에 같이 먹을 밑반찬은 많았다.

이제 태화만 오면 되었는데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 깜깜무소식이었다. 그의 전화번호를 아는 것도 아니어서 선우는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식탁 앞에 앉아 다리를 달랑달랑 흔들어 가며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언제 오려나…….”

말 상대가 없어 혼잣말을 계속 중얼거리던 선우는 문득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다 곧 눈살을 찌푸렸다. 이대로 태화가 안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질적인 불안이 고개를 쳐들었다.

워낙 재수 없던 인생이라 이렇듯 평온한 기분이 들면 꼭 불안해졌다. 선우는 실은 제가 귀찮은 나머지 태화가 떠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다 설마 그렇게까지 했겠나, 자기 합리화를 했고, 또 태화의 화끈한 성격이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두 눈에 힘이 들어갔다.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선우는 괜스레 커다란 접시로 덮어 놓은 계란프라이를 들춰 보며 코를 훌쩍였다. 이젠 혼잣말도 하지 않고 입을 꾸욱 다문 채 기다리고 있는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선우는 엉덩이에 스프링이라도 달린 듯 벌떡 일어나 현관문 쪽으로 다다다 뛰어갔다. 신발을 벗은 태화가 캐리어를 끌고 들어오는 중이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엄청 기다렸잖아요.”

쌓여 있던 말을 다다다다 내뱉는데 태화는 시끄럽다는 듯 쯧 혀를 찼다. 그런데도 선우는 개새끼처럼 태화의 뒤꽁무니를 쫄래쫄래 따라다녔다. 다행히 피 냄새 대신 은근한 땀 냄새만 풍겨 왔다. 어디 다친 곳은 없는 모양이었다.

“저는 진짜 안 오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저 버린 줄 알고.”

“여기가 내 집인데 널 버릴 것 같으면 내가 나갈 게 아니라 널 내쫓았겠지.”

“아…….”

선우는 맹한 소리를 냈다. 태화의 말이 맞았다. 이 세상에 제 집에 객식구를 두고 본인이 나가서 살 사람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는데 밀려드는 불안 때문에 제대로 된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벽 한쪽에 캐리어를 세우고 숨을 돌리는 태화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고 선우를 내려다봤다.

“뭐, 집주인 내보내고 네가 안방 차지하려고?”

“그런 거 아니에요.”

“알아. 아닌 거.”

태화는 캐리어 위에 걸터앉아 티셔츠를 팔랑거렸다. 선우는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검은색 캐리어는 그때 봤던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지영환이 들어 있던 것.

까만 캐리어를 빤히 바라보던 선우는 고개를 바짝 쳐들고 태화를 올려다봤다.

“여기 안에 사람 들었어요?”

“넌 뭐 그렇게 궁금한 게 많아?”

“저는 형에 대한 건 뭐든지 다 궁금해요.”

태화의 고개가 옆으로 살짝 기울어졌다. 선우는 태화가 왜 그런가 싶어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너 올해 스물하나 아니야?”

“네?”

“나이 말이야.”

“맞아요.”

태화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몇 번 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더니 선우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툭 밀쳤다. 작은 머리통이 뒤로 휙 꺾였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내 나이가 올해 서른셋이거든. 띠동갑에 형은 좀 아니지 않냐?”

그제야 선우는 태화가 왜 저런 반응이었는지 이해했다.

서른셋…….

선우는 속으로 태화의 나이를 되뇌었다. 태화에 대해 알게 된 게 하나 더 늘어 그저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태화의 말마따나 저들은 띠동갑이었다. 태화와 제가 같은 말띠라는 사실에는 마냥 신이 나 나이 차이가 열두 살이나 난다는 건 별스럽지도 않았다. 손등으로 태화가 밀쳐 낸 이마를 슥 문지르며 그를 올려다봤다.

“그럼 뭐라고 불러요?”

“부르지 마, 그냥.”

“같이 사는데 어떻게 안 불러요.”

“개가 주인 이름 부르는 거 봤어?”

“나 개 아닌데…….”

선우는 입술을 우물거리며 작게 말했다.

“사람인데.”

나직이 이은 뒷말은 너무 작아서 본인에게조차 잘 안 들릴 정도였다. 그런데도 태화는 선우의 말을 들었는지 쯧 혀를 차며 캐리어에서 일어났다.

“아, 거 쫑알쫑알 말 많네. 할 일 없으면 가서 잠이나 자.”

“많이 잤어요.”

선우는 지난 밤 겨우 세 시간 자 놓고 많이 잤다며 툴툴거렸다. 태화가 미간을 짙게 구겼다.

“안 가지?”

한 번만 더 대꾸하면 아예 때릴 기세라 선우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화는 다 좋은데 손버릇이 나빴다. 같이 살게 된 이후로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맞았다. 지난번처럼 무지막지하게 때리고 발길질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볼기짝을 한 대씩 갈겼다.

조금이라도 더 붙어 있고 싶어 몰래 침실에 들어갔다가 맞았고, 태화가 샤워하는 중에 저도 홀딱 벗고 들어갔다가 맞았다. 볼기짝이 남아나는 날이 없었다. 아무리 엉덩이여도 태화의 힘으로 맞으면 아팠다. 선우는 이번에도 또 맞을까 봐 잰걸음으로 제 방을 향해 걸었다.

“근데 집 안이 왜 이렇게 더워? 에어컨 안 켜…….”

선우는 제게 말을 거는 줄 알고 뒤돌아봤다. 뭔가 이상했다.

“하아…….”

태화가 또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얼굴빛은 변함없는데 현기증이라도 나는 것처럼 중심을 잡지 못하고 쿵쿵 걸음을 뗐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모양새라 선우는 놀란 눈을 뜨며 한달음에 다가갔다. 선우가 다가오자 태화는 한 번 더 씨발, 욕을 뇌까리더니 저리 가라는 식으로 손을 휘휘 저었다.

“왜요? 어디 안 좋으세요?”

“너, 방에 들어……. 방에…….”

태화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아저씨!”

거구의 몸이 쿵 소리를 내며 쓰러지는 모습에 선우도 덩달아 놀라서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아저씨! 아저씨, 저 좀 봐 봐요! 아저씨!”

“아저씨, 는……. 씹…….”

태화는 미간을 있는 대로 구기다가 두 눈까지 슥 감았다. 선우는 놀란 마음에 태화의 몸을 크게 흔들었다. 이 건강한 몸이 갑자기 죽을 리는 없고, 기절이라도 했나 싶어 팔뚝을 찰싹찰싹 때려 보는데 태화가 간간이 낮게 앓는 소리를 냈다. 아예 정신을 잃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아저씨…….”

선우는 형 대신 처음 불러 보는 아저씨라는 말도 어색해하지 않고 잘만 했다. 걱정이 한가득한 얼굴로 태화를 내려다봤다. 갑자기 쓰러져서 제대로 눕지도 못해 꺾인 목이 눈에 들어왔다. 선우는 태화의 머리통을 들고 끌고 오려다가 도저히 꿈쩍도 하지 않아 대신 제가 꾸물꾸물 다가가서 제 허벅지 위로 그의 머리를 올렸다.

태화가 움찔거리더니 선우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기도 했다. 선우는 제 허리를 감싸 안은 온기에 바짝 굳었다가 이내 커다란 눈을 도록도록 굴렸다. 다시 태화를 내려다보고 흐트러진 앞머리를 세심하게 넘겨 줬다.

예고 없이 쓰러졌을 때는 많이 놀랐는데 인제 보니 태화는 잠든 것처럼 보였다. 그때와 같았다. 선우는 인터넷에서 봤던 ‘기면증’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지난 보름 동안은 아무렇지도 않더니 갑자기 왜 또 기면증이 도진 건지 알 수 없었다.

“밖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그러고 보면 그때도 영환을 죽여 놓고 쓰러졌다. 선우는 실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 태화에게 큰 스트레스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도 이상하기는 했다. 그땐 죽이자마자 바로 쓰러지더니 오늘은 왜 죽이고 시체를 챙겨 집까지 와서 쓰러졌는지 몰랐다.

“원래 정해진 패턴이 없는 건가?”

선우는 제 허벅지를 베고 누워 쌕쌕 거친 숨소리를 내며 자는 태화를 내려다봤다. 고작 반나절 떨어져 있었던 것뿐이었는데 어찌나 보고 싶던지, 내내 그리워하던 낯을 찬찬히 관찰했다.

선우는 이 시간이 좋았다. 지난번 꽃다방에서도, 트럭에서도, 지금도. 잠든 태화를 관찰하는 시간이 행복했다. 행복이라는 걸 잘 알지는 못하지만, 심장이 몽실몽실한 건 꼭 행복의 감각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만큼 푹 빠져서 태화를 관찰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뭔가 쿰쿰하고, 역한 지린내였다. 기분 나쁜 악취에 선우는 킁킁 소리를 내며 두리번거리다가 한곳을 응시했다. 시선 끝에는 검은색 캐리어가 있었다.

시체 썩는 냄새였다. 지영환이 널브러져 있던 꽃다방 화장실에서 맡았던 것과 비슷한 냄새에 선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리를 굴렸다.

“핏물을 빼고, 삶고, 갈아서 변기에 버린다……. 우선은 핏물부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태화가 일러 준 걸 그대로 읊어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전에 할 일이 있었다. 태화를 마냥 땅바닥에서 자게 할 순 없었다. 선우는 태화의 머리를 조심스레 바닥으로 내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먹을 꼭 쥐어 기합을 한번 넣고 그의 두 다리를 들어 올렸다. 너무 무거웠다. 잘못하면 떨어뜨릴 것 같아서 각각 겨드랑이에 끼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끌었다.

끙끙 소리까지 내니 태화가 끌려오기 시작했다. 선우는 한 번 더 흡! 소리를 내며 힘을 주다가 삐끗해 바닥으로 털퍼덕 넘어졌다. 태화가 깨지 않게 하려고 두 다리를 사수하느라 바닥에 무릎을 찧었다.

“아으으…….”

아픈 소리를 최대한 눌러 참고 무릎을 봤다. 벌써 발갛게 부어오르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멍이 들 것 같았다. 무릎을 문지르고 싶었으나 태화의 다리를 끌어안고 있어 그마저도 하지 못했다. 아픈 건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은 다시 일어나 태화를 끌었다. 시체 끌 듯 질질 끌어 그의 방으로 갔다가 문이 잠겼다는 걸 깨닫고 제 방으로 향했다.

침대까지 올릴 자신은 없어서 바닥에 곱게 눕히고 베개와 이불을 챙겨 줬다. 쓰러지기 전에 덥다고 했던 걸 기억해 선풍기까지 돌려 주고서야 숨을 크게 내쉬었다. 선우는 목을 타고 줄줄 흐르는 땀을 닦으며 눈을 반짝였다.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선우는 땀으로 샤워하는 기분이었으나 태화에게 고정된 선풍기를 제게 돌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 더해서 오늘 자 신문을 곱게 접어 팔랑팔랑 부채질까지 해 줬다.

일 처리를 다 하고 벌써 저녁에 가까워진 시간이었으나 태화는 일어날 기미가 안 보였다. 혹시 제가 모르는 사이에 죽은 게 아닐까 싶어서 선우는 이따금 그의 왼쪽 가슴에 귀를 대고 심장 소리를 들었다. 쿵쿵쿵, 세차게 뛰는 박동을 들으면 그제야 안심하고 다시 부채질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태화를 기다리느라 아침을 거르고, 점심은 작업하느라 못 먹고, 이래저래 힘만 쓰며 하루 종일 굶은 탓에 허기가 졌다. 한 번 더 꼬르륵 소리가 났는데, 어찌나 우렁차던지 천둥소리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였다.

그때 태화가 움찔거렸다. 천둥 같은 꼬르륵 소리 때문에 깼는지 감은 눈두덩이 안에 든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보였다. 곧 태화가 눈을 떴다. 몇 번 더 눈을 끔뻑이며 시야를 밝히던 태화는 선우를 보자마자 인상을 구겼다.

“뭐 하냐?”

대뜸 묻는 말에 선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전히 팔랑팔랑 부채질하며 태화를 내려다봤다.

“괜찮아요?”

“뭐 하냐고.”

“부채질…….”

선우는 태화의 날 선 표정에 기가 죽어 말끝을 흐렸다. 태화는 습관처럼 쯧 혀를 차며 몸을 일으켰다.

“언제부터 그러고 있었던 거야?”

선우는 벽에 걸린 시계를 봤다. 벌써 5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한……. 세 시간 정도요.”

말하고 다시 태화를 봤는데 무슨 일인지 그의 얼굴에 짜증이 가득했다.

“일부러 이러는 거야, 뭐야?”

태화는 혼잣말인 양 다 들리게끔 중얼거리더니 손을 뻗어 선우의 이마를 쓸었다. 커다란 손바닥 가득 땀이 묻어났다. 선우는 민망해서 태화의 손을 가져와 얼른 제 옷에 닦았다. 그 바람에 태화의 표정이 더 안 좋아졌다.

“한여름에 왜 에어컨도 안 틀고 이러고 있어. 안 더워?”

“더워요.”

“근데 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묻는 말에 선우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신문지를 꾸깃꾸깃하게 접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전기세 많이 나올까 봐…….”

조용히 웅얼거리자 앞에서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가 터졌다. 선우는 고개를 들어 태화를 봤다. 다행히 태화의 표정에서 짜증은 싹 가셔 있었다. 대신 어처구니없다는 눈빛이었다.

“넌 뭐 맨날 들어앉아서 청승 떠는 법만 연구하냐?”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닌데, 왜.”

태화의 낯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목소리도 더 낮아졌다. 선우는 잔뜩 졸아들어 어깨를 옹송그렸다. 계속 신문지를 만지작거리자 소리가 거슬렸는지 태화가 신문지를 뺏어 옆으로 치웠다.

“꽃다방에서 살 땐 다 퇴근하고 나면 에어컨 못 틀게 했단 말이에요.”

선우는 솔직하게 말했다. 정말이었다. 권 마담은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해도 굉장한 짠순이였다. 손님들에게 내주는 음료수도 정해진 양이 있었고, 아가씨 중 하나가 손님에게 이쁨받으려고 한 잔 더 내가려고 하면 손등을 찰싹 때리며 물이나 가져가라고 야단쳤다.

그래도 장사는 해야 하니 손님이 있는 동안에는 에어컨이든 히터든 빵빵하게 틀어 놨으나 아가씨들과 본인이 퇴근하고 선우만 꽃다방에 남으면 둘 다 틀지 못하게 했다. 때문에 선우는 여름에는 쪄 죽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고, 겨울에는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렸다. 선심 쓰듯 권 마담이 준 선풍기와 라디에이터가 있었으나 크게 도움 되지는 않았다.

“그럼 어떻게 했는데.”

“그냥 선풍기 바람 쐬고, 그래도 더우면 얼음 꺼내 먹고…….”

겨울에는 동상에 걸릴까 봐 두 발을 꼭 쥐고 달팽이처럼 잤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것까지 말하면 너무 청승맞아 보일 것 같았다. 선우는 스스로도 잘 알았다. 제게는 학습된 청승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배우고 싶지 않아도 배워야만 했던 것들이라 자못 억울하기도 했다.

입을 오물거리며 다시금 시선을 내려 손끝을 쳐다보자 태화가 손을 뻗었다. 선우는 움찔 몸을 떨었다. 커다란 손이 때릴 것만 같아서 눈을 질끈 감는데 태화는 또다시 이마에 맺힌 땀만 닦아 줬다. 축축하게 젖은 손을 이불에 슥 문질러 닦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름 내내 에어컨 틀어 놔도 될 정도의 재력은 있으니까 앞으로 더우면 그냥 틀어.”

정수리 위로 떨어지는 목소리에 선우는 눈을 번쩍 뜨고 위를 올려다봤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태화의 뺨을 불그스름하게 물들였다.

“대답.”

“네.”

“크게.”

“네!”

선우는 신이 나서 목청 높여 대답했다. 한껏 풀 죽어 있다가도 금세 또 생글생글 웃었다.

“그럼 지금 틀어도 돼요?”

“틀어야지, 씨발. 나도 더워 죽겠는데.”

태화가 티셔츠를 팔랑거리자 선우는 잽싸게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소파 테이블 위에 있는 리모컨을 들어 곧장 에어컨을 틀었다. 거실에 한 대, 큰 방에 한 대, 작은 방에 한 대. 전부 세 대를 동시에 틀자 집 안 공기가 빠르게 시원해졌다.

선우는 거실에 있는 에어컨 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섰다. 티셔츠를 살짝 들고 땀을 식혔다. 너무 시원했다. 몸이 오싹할 정도로 시원한 느낌에 작게 웃었다.

“이거 어디 갔어?”

뒤에서 태화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그가 캐리어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캐리어를 보다가 선우를 돌아봤다. 선우는 커다란 눈을 느리게 끔뻑였다.

“삶고, 갈아서 변기에 버렸는데. 핏물은 이미 빠져 있던데요? 토막도 다 나 있고.”

얼굴빛 하나 바꾸지 않고 했던 짓을 곧이곧대로 말했다. 태화는 돌연 눈을 가늘게 뜨고 선우를 살폈다. 한참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곧 헛웃음을 터뜨렸다. 눈빛을 보아하니 이번에는 진짜라는 걸 알아챈 모양이었다.

선우는 또 자신이 무언가 잘못했을까 싶어서 일부러 태화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멀찍이 떨어져 서서 가만 쳐다보기만 하는데 태화가 다시 캐리어를 닫았다.

“어디에 삶았는데?”

“찾아보니까 제일 큰 솥이 저거뿐이라…….”

선우가 가스레인지 위를 가리켰다. 잔칫집에서 곰국을 끓일 때나 쓸 법한 커다란 스테인리스 솥이 가스레인지 위에 있었다. 태화의 입가에 설핏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못했다.

“그럼 어디에 갈았는데?”

“믹서기요.”

“이거?”

태화는 식탁 위에 있는 믹서기를 가리키며 물었다.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담한 크기의 믹서기였다. 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화는 한숨 비스름한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고는 선우에게 이리로 오라는 듯 손짓했다. 선우가 망설이며 걸음을 떼지 않자 삐딱하게 서서 빤히 쳐다봤다. 안 가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에 선우는 결국 주춤주춤 걸음을 떼 태화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서자 태화가 선우의 턱을 쥐어 올려 눈을 맞췄다.

“여기 어디야.”

“……우리 집이요.”

그냥 집도 아니고 ‘우리 집’이라는 대답에 태화는 더 무게를 잡지 못하고 픽 웃었다.

“아니, 여기 아래층 어디냐고.”

“정육점……?”

“그럼 대형 고기 다지는 기계가 있겠어, 없겠어.”

선우는 눈을 반짝 뜨며 ‘아……?’ 소리를 냈다. 어찌나 맹한 얼굴이던지 태화는 그만 웃음을 크게 터뜨렸다. 비웃는 건 아닌 것 같았지만 선우는 괜스레 민망해 뺨을 발그레하게 붉혔다.

갈아야 한다니 당연히 믹서기만 생각했었다. 정육점에는 당연히 연육기가 있을 거란 상식적인 생각을 하지 못한 터라 한순간에 머저리가 된 기분이었다. 이러니 또다시 대학을 나오지 못한 게 한이었다. 이건 대학과 아무 관련 없는 일이라는 걸 알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일 도와준 건 좋은데, 믹서기 새로 사야 하잖아.”

“죄송해요.”

목소리가 또다시 기어들어 갔다. 저는 왜 제대로 된 생각을 못 하는지 몰랐다. 괜히 태화의 돈을 쓰게 만든 것 같아 한껏 시무룩해져 있는데 그가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줬다.

“됐어. 고생했어.”

나직이 떨어진 말에 선우는 태화를 바라봤다. 그는 웃고 있지 않았으나 선우의 눈에는 마냥 다정해 보였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손길이 너무 좋아서 눈을 지그시 감고 가만히 있자 금세 떨어져 나갔다. 조금만 더 해 달라는 듯이 까치발을 들고 따라가 봤지만, 소용없었다.

겁도 없이 태화의 팔목을 잡아끌었으나 바로 내쳐졌다. 그의 눈살이 엷게 구겨졌다. 별 또라이를 다 보겠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선우는 병아리처럼 입술을 삐쭉 내밀며 태화가 쓰다듬어 줬던 제 머리통을 문질렀다.

“근데 이건 다 뭐야?”

태화가 식탁에 엎어진 그릇을 뒤집어 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식탁 위에는 선우가 새벽부터 만들어 놓은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그래 봤자 계란프라이에 계란국이었다.

“네가 애야? 먹은 건 치워야 할 거 아니야.”

“아니에요. 먹고 안 치운 게 아니라, 아저씨 오면 같이 먹으려고 차려 놓은 거예요. 아침에 차린 건데……. 이제 저녁이네요.”

“네가 한 거라고?”

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딴에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정성껏 차려 놓은 건데 먹다 남긴 음식 취급을 받으니 마음이 좀 그랬다.

한 입도 안 먹어서 동그랗게 잘 부쳐진 계란프라이가 멀쩡히 있는데 어떻게 먹다 남긴 걸로 생각하지?

선우는 밖으로 하지 못할 말을 속으로만 꿍얼거렸다. 태화는 선우가 차려 놨다는 밥상과 그 앞에 놓인 믹서기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 시선에 선우도 똑같이 쳐다보다가 얼른 믹서기를 들어 휴지통 옆에 세웠다.

“믹서기 써서 만든 거 하나도 없어요. 그냥 계란프라이랑 계란국만 한 거예요.”

서둘러 말했다. 혹시 비위라도 상해 안 먹겠다고 할까 봐 걱정이었다. 태화는 별일도 아닌 걸로 전전긍긍하는 선우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픽 웃었다.

“알아.”

태화는 한마디를 흘리고 계란프라이와 계란국을 다시 데우기 시작했다. 그가 계란프라이를 볼 때 선우는 옆으로 와 계란국을 봤다. 즉석 밥도 데우고 선우가 만든 음식들과 냉장고에서 밑반찬 몇 개를 더 꺼내 식탁 앞에 마주 보고 앉았다.

선우는 이 시간이 무진 좋았다. 예전에는 밥을 먹다가도 손님을 받아야 할 때가 많아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맛도 모르고 욱여넣기 바빴고, 그마저도 아침은 거르기 일쑤였는데 태화와 함께 살면서 삼시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게 됐다.

태화는 바른 생활 사나이라서 아침밥은 꼭 그가 차렸고, 대신 설거지를 선우가 했다. 점심과 저녁은 선우가 염치를 차린다며 꼬박꼬박 준비했으나 전부 시장표 반찬을 꺼내 그릇에 옮겨 담기만 하면 됐다. 그럼 또 설거지는 태화의 몫이었다.

선우는 숟가락을 들기도 전에 배시시 웃었다. 서로를 위해 밥을 차리고, 마주 앉아 먹는 이 순간이 너무 간지러웠다.

“쳐다보지 말고 먹어.”

“네.”

“밥 먹으라고 했다.”

선우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태화에게로 향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태화와 자신이 꼭 연인 같다는 생각에 미소를 감추지 못하다가 그가 계란국을 한술 뜨는 걸 보고는 금방 정신을 차렸다. 태화에게 요리를 해 준 건 처음이었다. 요리랄 것도 없이 그냥 물에 달걀과 파를 넣고 간장으로 간을 맞추면 되는 것이었으나 그래도 긴장되었다. 선우는 마른침마저 꼴깍 삼키며 태화를 바라봤다.

태화는 계란국을 몇 술 뜨더니 누가 봐도 알 정도로 맛없다는 티를 냈다. 콧잔등을 찡긋거리고 곧바로 다른 반찬을 입에 넣었다.

“그렇게 맛없어요……?”

“어. 존나게.”

“죄송해요.”

선우가 풀 죽은 목소리로 말하자 태화는 급기야 숟가락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놨다. 선우의 어깨가 파드득 떨렸다. 하여튼 겁은 참 많았다.

“넌 그 죄송하다는 소리 좀 그만해. 죄송한 걸 알면 다음부터 안 그러면 되는 거야.”

태화는 쯧 혀를 차고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선우는 눈을 멀뚱멀뚱 뜨며 그를 바라봤다. 맛없다면서 계란국을 두 술 더 뜨는 태화를 보고는 결연한 눈빛을 했다.

“그럼 다음에는 더 잘해 볼게요.”

무슨 거창한 다짐이라도 하듯 말했다. 태화가 슬쩍 쳐다봤다.

“요리는 하지 말고.”

정말 맛이 없는 모양이었다. 선우는 얼마나 맛이 없으면 저러나 싶었다.

우선 밥부터 먹어 봤다. 즉석 밥은 맛있었다. 계란프라이는 맛이 없을 수가 없었고, 시장 반찬들도 전부 입에 맞았다. 문제는 역시나 계란국이었는데 간장을 너무 많이 넣었는지 소태처럼 짰다. 선우는 자신이 만든 것임에도 한 입 먹고 계란국을 옆으로 슥 밀어 치웠다. 반면 태화는 그 짠 걸 후루룩 소리까지 내며 잘도 먹었다.

“엄청 짠데. 먹지 마요.”

“음식 남기면 지옥 가서 벌받아.”

“그래도…….”

선우는 태화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이제야 어렴풋이 느꼈다. 지옥 가서 벌받기 싫어 저 맛없는 걸 억지로 먹는 사람이 사람은 숭덩숭덩 잘도 써는 게 좀 이해가 안 되었다.

이상한 사람이야…….

선우는 속으로 생각하며 밥을 오물오물 먹었다.

태화는 먹다 보니 조금 짜긴 했는지 계란국에 찬물을 벌컥벌컥 타 밥까지 말아 먹었다. 선우는 마른 것치고 많이 먹는 편이었는데, 태화는 더한 대식가였다. 생긴 것처럼 먹성이 좋아 즉석 밥 두 개를 해치웠다. 선우가 설거지하려니 귀찮게 얼쩡거리지 말고 꺼지라고 했다.

선우는 그가 말만 조금 예쁘게 하면 참 좋겠다 생각하며 거실로 돌아와 소파에 앉아 태화의 뒷모습을 감상했다. 워낙 덩치가 커서 싱크대가 작아 보였다. 달그락거리며 설거지하는 소리가 들렸다. 에어컨 바람은 시원했고, 배도 불렀다. 얼마 만에 느껴 보는 평온인지 몰랐다.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긴장할 필요가 없어서 그런지 요즘 들어 잠이 늘었다. 선우는 느른한 숨을 쉬며 쩝쩝 입맛을 다셨다. 흐른 침을 닦고 눈을 뜨려는데 순간 무릎에 찬 기운이 닿았다.

“아!”

온몸이 덜덜 떨릴 만큼 찌릿한 감각에 눈을 번쩍 떴다. 서둘러 몸을 일으키려는데 기다란 검지가 이마를 툭 밀쳤다. 가벼운 힘에도 선우는 다시 뒤로 발랑 넘어갔다. 앞에 태화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가만히 누워 있어.”

태화는 간단히 말하고 손에 든 얼음 팩으로 선우의 무릎을 지그시 눌렀다. 선우는 본능적으로 몸을 파르르 떨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양 무릎에 멍이 시커멓게 들어 있었다. 태화를 방으로 옮기다 넘어진 흔적이었다.

멍이 들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도 더 심하게 부은 모습이었다. 모를 때는 안 아프다가 멍이 든 걸 보자마자 선우는 무릎이 욱신거리는 게 느껴졌다. 태화는 오른쪽 무릎에 대고 있던 얼음 팩을 왼쪽으로 옮겼다. 너무 차가워서 선우가 크게 떨었다.

“가만히 있으라니까.”

“차가워서.”

“차가워야 멍이 빠지지.”

태화는 선우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선우는 태화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의 시선이 제 두 무릎을 향해 있다는 걸 알고 나니 어쩐지 손끝이 간지러웠다. 무릎은 차가운데 다른 곳은 열기가 느껴졌다. 에어컨이 꺼졌나 싶어 슬쩍 봤으나 여전히 쌩쌩 잘만 돌아가고 있었다. 다시금 태화를 쳐다보며 얼음 팩을 쥐고 있는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

“건드리지 마라.”

단호한 말에는 또 금방 손을 뗐다. 대신 두 손을 모아 베며 태화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다른 사람한테도……. 해 준 적 있어요……?”

“뭘.”

“이거요. 멍 든 데에 얼음 팩 대 주는 거. 익숙해 보여서요.”

선우의 물음에 태화가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춰 왔다. 그새 씻고 나왔는지 그에게서 산뜻한 바디 워시 향이 났다. 선우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해 준 적 있으면.”

“싫을 거 같아요.”

“그럼 싫어해.”

태화는 단호했다. 듣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였다. 하지만 선우는 민망해하는 대신 도리질을 쳤다.

“아니에요.”

“뭐가 또.”

“좋다고요.”

선우가 말하자 태화는 미간을 찡긋 구겼다가 폈다. 쯧, 혀를 차고 얼음 팩을 선우에게로 던졌다. 아프게 던진 건 아니었지만 허벅지에 얼음 팩이 닿자 선우는 깜짝 놀라 흠칫 떨었다.

“재롱도 적당히 떨어야 예쁘지.”

태화는 짜증이라도 난 것처럼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우가 따라서 몸을 일으켰으나 태화는 이미 방에 들어간 뒤였다. 소파에 덩그러니 남은 선우는 꽉 닫힌 방문을 멀거니 쳐다봤다. 안에서 씨발, 하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또 화나게 만든 걸까?

선우는 이번엔 또 뭘 잘못했나 생각했다. 물론 알아내진 못했다. 애초에 잘못한 게 없었으니까. 그런데도 선우는 모든 게 제 잘못이라고 생각했고, 그런데도 화내지 않고 자리를 피해 준 태화에게 고마웠다. 멍 자국이 난 자리로 심장이 옮겨 가기라도 한 듯 무릎이 두근두근 떨렸다.

* * *

태화는 오늘까지 쉰다고 했다. 작업이 있는 날이면 통상 이틀을 쉬는 듯했다. 선우는 온종일 태화와 함께할 수 있어서 기뻤다. 물론 태화는 대부분 서재나 본인의 침실에 들어가 있었지만, 그래도 정육점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더 가까이 있는 것이라서 마냥 좋았다.

오늘 아침 선우는 태화와 마주 앉아 밥 먹으며 그의 성이 ‘서’라는 걸 알게 됐다. 서태화라니, 성을 붙이자 안 그래도 근사했던 이름이 더 근사하게 느껴졌다.

선우는 설거지하며 이게 실은 꿈이 아닐까 생각했다. 영환에게 끌려갈 때만 해도 다시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비록 집 밖 출입을 할 수 없고, 태화는 여전히 까칠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가끔은 너무 좋아서 일부러 볼을 꼬집어 가며 꿈이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태화 앞에서도 몇 번 그래서, 그럴 때마다 또라이를 쳐다보는 듯한 시선을 받아야 했다. 꽃다방에서 살 땐 있는 줄도 몰랐던 성욕이 들끓기도 했다. 밤마다 태화의 방으로 들어갔다가 쫓겨났고, 아침이 되면 욕을 얻어먹었다.

“아, 하으……. 읏……. 아……!”

자위하는 횟수도 늘었다. 예전에는 한 달에 한 번 할까 말까 하던 걸 요즘은 하루에 한 번은 꼭 했다. 스물하나라는 나이에 맞게 성욕이 돌아왔다.

선우는 탱탱하게 발기해 좆물을 질질 흘리는 자지를 쥐고 힘차게 흔들었다. 자위할 땐 꼭 침대에서 내려와 프레임에 기대앉아서 했다. 발치에는 태화의 베개가 뒹굴고 있었다. 품에 안은 채로 하고 싶었으나 혹시나 정액이라도 묻을까 봐 앞에 두고 보기만 했다. 발갛게 상기된 귀두를 잡고 짤깍짤깍 소리가 날 정도로 흔들다가 요도구를 검지로 톡톡 두드렸다. 투명한 체액이 길게 늘어났다.

“하아…….”

선우는 눈을 꼬옥 감고 태화를 그렸다. 제 무릎에 얼음 팩을 대 주던 친절함을 떠올리며 자위했다. 그때만 생각하면 여지없이 몸이 달았다. 태화와 그 소파 위에서 붙어먹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했고, 참지 못하고 자지를 꺼내 쥔 것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저는 발정 난 것 같았다. 얼음 팩 대신 무릎을 핥아 주는 태화를 상상하며 더운 숨을 내쉬었다. 마른 배가 울렁거리며 크게 오르내렸다.

고환이 쫙 올려 붙는 게 느껴졌다. 발끝으로 흩어졌던 전류가 중심부로 빠르게 모이는 감각에 선우는 오므리고 있던 다리를 활짝 벌렸다. 상상 속의 태화는 어느새 허벅지 안쪽을 빨아 주고 있었다. 고개를 조금만 옮기면 제 자지였다.

“으응, 거기 말고……. 아으…….”

“어디?”

“여기, 으……. 악!”

갑작스럽게 들려온 음성에 선우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디서 난 소리인가 싶어 고개를 돌려 보니 방문 틀에 태화가 기대어 서 있었다. 면도방에서 처음 봤을 때와 같은 자세였다. 짝다리를 짚고 비스듬히 서서는 팔짱을 낀 모습이었다.

선우는 밭은 숨을 내쉬며 태화를 보다가 불현듯 제 꼴을 깨닫고 다리를 오므렸다. 팬티라도 입고 싶었으나 왼쪽 발목에 대롱대롱 달려 있어 다시 입을 수가 없었다. 되는대로 모은 다리를 꼭 끌어안았다. 앞에서 픽 웃는 소리가 들렸다. 선우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자위하다 들킨 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창피했다.

“언제부터 봤어요……?”

발끝을 꼬물거리며 물었다. 땀과 체액으로 엉덩이가 축축한 게 느껴졌지만, 티 내지 않았다. 태화는 흠……. 소리를 내더니 벽에 걸린 시계를 봤다.

“한……. 10분 정도?”

태화는 지난번에 선우가 했던 말과 행동을 똑같이 흉내 내며 말했다. 선우는 자꾸만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무릎 위로 턱을 괬다.

“왔으면 기척 좀 내 주지…….”

“냈어. 문을 벌컥 열어젖혔는데도 딸 치느라 못 들은 사람이 누군데.”

선우는 눈동자만 도록 올려 태화를 쳐다봤다. 저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태화의 말마따나 자위하는 데에 집중하느라 다른 소리를 못 들었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선우가 지금까지 봐 온 서태화는 괜히 민망해지라고 없는 말을 할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어찌 됐든 선우는 뺨은 물론 귀 끝까지 벌게져서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가만 서 있던 태화가 방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선우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바짝 들고 태화를 쳐다봤다. 입 안에 고여 있던 침을 꼴딱 삼켰다.

“계속해.”

“네?”

“계속하라고.”

선우가 이번에도 다 들었으면서 되묻자 태화는 미간을 짧게 구기다가 폈다. 바닥에 나뒹구는 베개를 발로 대충 걷어차고 선우를 마주 보고 앉았다. 선우는 제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태화를 보고는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아, 어……. 자위를 계속하라고요?”

묻자 태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우는 선뜻 움직이지 못했다. 아무리 수치심이 없기로서니 남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자위를 할 정도는 아니었다. 도저히 못 하겠어서 발끝만 꼼질꼼질거리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태화의 앞섶이 보였다. 두툼한 부피감이 느껴졌다. 워낙 큰 사람이라 원래 저 정도였는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발기한 상태인지 구분이 안 되었다.

선우는 태화의 아랫도리를 뚫어져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재롱은 이럴 때 떠는 거야.”

태화가 아랫도리를 주물럭거리며 말했다. 바지 안쪽이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선우는 태화가 발기했다는 걸 알아보고 마른 입술을 축였다. 열리지 않을 것만 같던 문이 열리는 것처럼 마른 다리가 서서히 벌어졌다.

조금 전처럼 M자 모양으로 만들자 그 중심으로 발딱 선 자지가 드러났다. 태화의 입가로 언뜻 미소가 스쳤다. 선우는 그 찰나의 표정에 자신감을 얻어 제 자지를 손에 쥐었다. 사정 직전에 멈춰 버려서 죽어 있을 줄 알았는데 태화가 앞에 있어서 그런지 손으로 쥐자마자 신호가 왔다.

“으응, 아……!”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젖어 있던 좆은 그새 말라붙어 조금 뻑뻑했다. 선우는 평소 하던 대로 귀두 부분을 꼭 쥐고 얕게 깔짝였다. 슬슬 비어져 나오기 시작한 좆물을 손바닥에 치덕치덕 묻히고 기둥을 감싸 쥐었다. 미끈거리는 감촉을 느끼며 흔들어 댔다. 긴장감 없이 늘어져 있던 고환이 하트 모양으로 통통하게 들어찼고, 프리컴은 끊임없이 나왔다. 요도구가 벌름거리는 게 태화의 눈에도 보였다.

“너 가랑이에 점 있네.”

무심한 듯 정확하게 짚어 내는 태화의 말에 선우는 순간 목덜미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면도방에서 한 번도 대 준 적이 없으니 손님들도 몰랐고, 그렇게 선우를 먹고 싶어 했던 지영환도 사타구니 점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죽었다. 선우는 본인만 알고 있던 은밀한 신체의 비밀을 태화가 알았다는 것에 흥분했다. 왼쪽 가랑이에 점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이제 서태화가 유일했다.

“귀엽게.”

나직한 뒷말까지 들은 선우는 고개를 뒤로 휙 젖혔다. 침대에 뒤통수를 걸치고 손을 빨리 움직였다. 천장이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었다. 자위하면서 이만큼이나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아랫배가 꽉 죄어 왔다.

“아, 아……! 아윽……!”

단말마 같은 탄성을 내지르며 사정했다. 양이 많았다. 어제도 자위해서 고환이 반쯤 비었을 텐데 왜 계속 나오는지 모를 일이었다. 정액이 푹 솟아오를 때마다 온몸을 움칠움칠 떨던 선우는 헉헉거리며 두 다리를 쭉 뻗었다. 종아리로 태화의 손등이 느껴졌다. 입가로 흐를 뻔한 침을 쓰읍 삼키고 앞을 봤다. 선우의 눈이 커졌다.

“아, 어떡해! 죄송해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선우는 죄송하다는 말 좀 그만하라던 태화의 말을 상기하고 도리질을 쳤다. 서둘러 태화에게 기어갔다. 태화가 입은 검정 티셔츠 위로 허연 정액이 잔뜩 튀어 있었다. 양만 많이 싼 줄 알았지, 이렇게 멀리까지 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선우는 태화의 티셔츠를 쥐고 정액을 닦아 냈다. 손으로 문지르다가 더 번지는 것 같아서 발목에 매달려 있던 제 팬티로 슥슥 닦았다. 열심히 닦아 봤지만 허연 자국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허둥지둥하는 선우를 멀거니 내려다보던 태화는 돌연 봉긋 솟은 엉덩이를 꽉 쥐었다.

“아!”

선우는 놀란 소리를 내며 태화를 올려다봤다. 왜인지 태화는 또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티셔츠에 묻은 정액 때문이라고 생각한 선우가 더 열심히 박박 문질러 닦자 그는 선우의 몸을 쉽게 들어 제 허벅지 위에 앉혔다.

“존나 꼴리게 하는 법도 가지가지다, 진짜.”

태화는 습관처럼 혀를 차고 제 바지 속에서 자지를 꺼냈다. 벌겋게 달아오른 좆이 선우를 향해 꺼떡이며 인사했다. 선우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정신없는 사이 두 다리가 너르게 벌어져 태화의 허벅지 위에 앉게 됐다. 태화는 선우의 다리를 제 허리에 감싸고 팔도 목덜미를 감싸 안게 했다.

“꽉 잡아.”

그 말을 끝으로 커다란 손이 두 자지를 겹쳐 쥐었다.

선우는 힉, 이상한 소리를 내며 태화를 바짝 껴안았다. 맞닿은 자지가 너무 뜨거웠다. 손도 뜨겁고, 안겨 있는 몸도 뜨거웠다. 온몸이 들들 끓는 감각에 선우는 젖은 숨을 쉬며 태화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너른 어깨에 눈두덩이를 비벼 가며 신음했다.

선우가 싸지른 정액과 태화의 자지에서 나온 프리컴이 만나자 아주 물바다였다. 태화는 좆물도 정액만큼 많이 흘려서 온갖 데가 미끈거렸다. 선우는 제 자지에 맞닿은 태화의 것에서 팔딱팔딱 뛰는 맥이 느껴져 흠칫 떨었다. 제 것은 작고 볼품없는데 태화의 것은 크고 우람했다. 마치 살아 있는 것만 같았다. 핏줄 하나하나가 굼실대며 움직이는 게 여실히 느껴져서 겁이 났다. 무서운 만큼 좋았다.

“아! 하으, 응……. 흐……. 아……!”

“후으, 씹…….”

“흐, 좋아요, 으응……. 좋아, 으…….”

선우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좋으면 좋은 대로 소리를 내질렀다. 가느다란 다리로 굵은 허리를 꽉 옥죄고 몸을 조금 더 바짝 맞붙였다. 태화가 손으로 왕복 운동을 할 때마다 근육 덩어리들이 움직이는 게 눈에 보였다. 그런 태화의 등 근육을 감상하며 그의 목덜미에 쪽쪽 입을 맞췄다. 혼자 하는 자위와는 차원이 달랐다. 남의 손을 빌려 하는 것도 자극적인데 좆까지 맞닿아 있으니 더 열이 올랐다. 온몸이 흥분감으로 휩싸였다.

불과 몇 분 전에 거하게 사정한 자지가 파르르 떨렸다.

“아, 아아! 나, 읏, 나……!”

싼다고 말할 틈도 없이 선우의 좆에서 정액이 와르르 쏟아졌다. 조금 전보다는 힘이 약해서 용암처럼 뭉근하게 흐르는 모양새였다. 태화는 손가락 사이사이가 정액으로 젖어 드는데도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고 계속 손을 움직였다. 찌걱찌걱 소리가 커질수록 선우가 난리를 쳤다.

“안 돼, 아! 그만, 그만요……! 흣, 제발……!”

선우는 급기야 태화의 목덜미를 깨물었다. 아프게 짓씹어 잇자국을 내고 결국 피를 봤다. 태화는 따끔거리는 통증을 느끼면서도 멈추지 않다가 선우가 울음소리를 낼 즈음에서야 좆구멍을 꾹 문질러 누르며 마무리했다.

“흐……. 윽…….”

“뭘 울어. 누가 때렸어? 너 어디 뭐 맞았냐?”

“너무, 흐……. 너무 좋아서…….”

선우는 이 순간에도 태화를 꼭 껴안고 웅얼거렸다. 태화는 으레 헛웃음을 치다가 선우의 머리채를 성글게 잡아 꺾어 눈을 맞췄다. 선우는 침까지 흘리고 있었다. 영 못난 모습에 태화가 미간을 구기자 선우는 알아서 침을 벅벅 닦았다. 아래를 슬쩍 내려다봤다. 두 번이나 사정한 제 자지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푹 쪼그라들어 있는데 태화의 것은 아직도 팅팅 부어 있었다.

“아저씨는 못 싸서 어떡해요?”

태화가 미간을 구겼다.

“계속 아저씨라고 할 거야?”

“형이라고 하지 말래서…….”

“그렇다고 아저씨?”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도 싫어요?”

선우는 아저씨마저도 싫다면 이제는 뭐라고 불러야 하나 고민했다. 형도 좀 아닌 것 같다고 했으니 마땅히 부를 만한 호칭이 없었다. ‘야’라고 할 수도 없었고, ‘태화 씨’는 조금 이상했다. 매번 ‘저기요’라고만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 머리를 팽팽 굴리고 있는데 앞에서 짧은 숨이 쏟아졌다.

“네 맘대로 해라. 네가 언제 내 말 듣기나 했냐.”

태화는 성가시다는 듯 말하며 자지를 바지 속으로 집어넣었다. 볼일을 다 본 양 선우를 바닥으로 내려놨다. 태화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선우가 그를 붙들었다.

“그럼……!”

다급한 외침에 태화는 엉거주춤하게 허리를 굽힌 채로 선우를 내려다봤다. 선우는 무언가 큰 결심이라도 하듯 침을 꼴딱 삼키고 태화를 바라봤다.

“그럼 저랑 섹스해요.”

결국 말해 버리고 말았다. 선우는 본인이 말해 놓고 얼굴을 홍당무처럼 물들였다. 어찌나 붉어졌는지 손으로 톡 건드리면 펑 터질 것만 같았다. 태화도 같은 생각인지 선우의 볼을 검지로 톡 쳤다. 선우는 그 사소한 손길에도 몸을 부르르 떨었다. 태화는 이제 더 놀랍지도 않다는 듯 멀뚱거리는 눈으로 쳐다보며 제 팔뚝을 잡은 선우의 손을 떼어 냈다.

“뜬금없이?”

“마음대로 하라면서요…….”

“그래서 섹스를 하자고.”

“아저씨는 아직 못 싸기도 했고.”

“허…….”

태화는 선우 때문에 평생 터뜨릴 헛웃음을 최근에 전부 터뜨리고 있었다. 선우는 제 이마를 간지럽히는 웃음소리에 괜스레 이마를 문질렀다. 시선은 태화의 앞섶에 가 있었다. 아직 팽팽하게 발기해 대형 텐트를 치고 있는 아랫도리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손님에게는 한 번도 먼저 하자고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왜인지 태화를 보면 몸이 달았다. 해 본 적 없는 섹스가 하고 싶어졌다. 잔뜩 기가 죽어 있던 아랫도리가 또다시 저릿해지는 게 느껴졌다.

자신도 모르게 아랫도리를 주물럭거렸다. 한 번 더 쌀 수 있을진 모르지만 태화의 손길이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갓난아이 딸랑이처럼 쪼그라든 걸 만져 대자 그가 한 번 더 픽 소리를 내며 웃었다. 태화는 선우를 빤하게 내려다보다가 저를 향해 있는 몸을 지나쳐 뒤에 있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선우도 따라서 뒤를 돌아봤다.

“박히고 싶으면 박고 싶게 만들어야지.”

“어떻게요?”

“재주껏.”

태화는 말을 마치고 씩 웃었다. 부드럽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홀린 듯 바라보던 선우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엉금엉금 기어와 태화의 무릎 사이에 몸을 끼워 넣었다. 중심부로 드러난 굵은 윤곽을 손으로 만지다가 바지를 끌어 내렸다. 드로어즈까지 내리자 아직 사정하지 못해 아파 보일 만큼 부푼 좆이 드러났다. 선우가 고개 숙여 다가가자 태화가 이마를 밀쳤다.

“누가 빨래?”

나직이 떨어진 말에 선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펠라티오가 싫은 건가?

태화의 의중을 알기 어려웠다. 빨아 주기 전에 먼저 만져 주길 원하는가 싶어 손을 대려 하자 이번에는 두 손목을 잡아채 벌이라도 주듯 머리 위로 높이 올렸다.

“누가 손대래?”

사냥꾼에게 잡힌 토끼처럼 태화에게 꼼짝없이 잡힌 선우는 이번엔 반대쪽으로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뭘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빨지도 말라, 손도 대지 말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밖으로 나온 좆은 빨리 어떻게 좀 해 달라는 듯이 움칠움칠 떨고 난리인데 태화는 세상 여유로웠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고…….”

“혼자 스트립쇼라도 해 봐. 누가 알아? 그 뻣뻣한 몸에 동해서 박아 줄지.”

태화는 말을 마치고 선우의 손목을 놔줬다. 선우는 태화의 말을 곱씹었다. 스트립쇼를 하라는 말보다도 ‘뻣뻣한 몸’이라는 말이 뇌리에 더 깊게 박혔다. 태화는 말을 좀 못되게 하는 버릇이 있었다. 콧잔등을 찡긋거리다가 입을 야무지게 다물었다. 부러 도발하는 줄은 새카맣게 모르고 괜스레 오기가 발동했다. 태화의 얼굴과 성기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뒤로 조금 물러났다.

태화에게 엉덩이를 보인 채로 무릎을 꿇어 네 발로 엎드렸다. 슬쩍 뒤를 쳐다보자 그가 피식 웃는 게 보였다. 선우는 샤워하며 몇 번이고 연습했던 것처럼 손가락을 쪽쪽 빨아 적셨다. 손가락 사이까지 촉촉하게 젖은 걸로 사타구니 사이를 가르고 들어가 구멍을 벌렸다.

“따로 준비했어?”

태화가 묻는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맨날, 흐, 준비해 뒀었어요…….”

“왜.”

“아저씨랑 할지도 모르니까.”

태화 쪽에서 씹……. 하는 소리가 들렸다. 선우는 다시금 뒤를 돌아봤다. 태화도 어느새 자지를 쥐어 문지르고 있었다. 선우는 뭔지 모를 만족감을 느끼며 엉덩이를 조금 더 높게 치들었다. 뒷구멍이 발랑발랑 열렸다 닫히는 게 느껴졌다. 중지 하나를 집어넣었다. 이물감이 느껴지긴 했으나 문제없이 들어갔다. 연습한 보람이 있었다.

선우는 그동안 자지를 이용한 자위뿐만 아니라 후장 자위도 해 왔었다. 물론 한 번도 뒷구멍만으로 사정한 적은 없었다. 그래도 태화가 쓰라고 준 노트북으로 후장 섹스나 후장 자위에 대해 부단히도 검색했고, 모은 정보를 제 몸에 적용해 봤다. 언제든지 태화와 할 수 있도록 매일 준비해 두기도 했다. 그간의 노력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선우는 중지를 밀어 넣다가 좀 뻑뻑한 감이 드는지 옆에 있는 협탁에서 로션을 꺼내 손가락에 쭉 짜고는 다시 뒷구멍으로 가져갔다. 이번에는 중지에 이어 약지까지 쑤셔 넣었다.

“읏…….”

좀 뻐근했다. 항상 손가락 두 개가 한계였다. 게다가 태화 앞이라 긴장한 탓도 있어서 연습할 때보다도 더 빡빡했다. 그래도 잘만 하면 그와 섹스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열심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평소에는 두 번째 마디까지만 넣었다면 지금은 손가락을 끝까지 집어넣었다.

“아, 흐으……. 아으…….”

처음으로 깊게 찔러 넣자 아랫배로 더욱 힘이 들어갔다. 아직까진 좋은 느낌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고개를 깊게 숙여 사타구니 사이로 태화를 봤다. 제 몸에 가려져 태화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굵다랗게 발기한 자지를 턱턱 치대는 손은 보였다.

덕분에 몸이 뜨거워진 선우는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로션 때문에 찔걱찔걱 소리가 났다. 뭔가 둔한 자극은 오는데 확실한 느낌은 없었다. 결국 선우는 바닥에 낯을 처박고 남는 손으로는 좆을 문질렀다. 뒤를 쑤셔 대며 앞을 흔들었다.

“아아……! 흣, 하으…….”

저도 자지 달린 남자라 이건지 확실히 앞을 만지자 자극이 왔다. 좆을 흔드는 손이 빨라지는 만큼 뒤를 쑤시는 속도도 빨라졌다. 선우는 바닥을 향해 더운 신음을 내뱉으며 허리를 들썩였다. 반쯤 뜬 눈으로 겨우 뒤를 돌아봤다. 태화의 가슴이 크게 씨근대는 게 보였다.

선우는 눈웃음을 샐쭉 지으며 엉덩이를 움찔 떨었다. 태화의 손도 빨라지고 있었다. 턱턱 좆을 치대는 소리와 뒷구멍을 쑤시는 젖은 소리, 두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신음, 온갖 음란한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워 갔다. 절정이 발끝부터 차오르기 시작한 선우는 참지 못하고 두 손으로 자지를 쥐어흔들었다.

“아으! 아!”

세 번째 사정이 이어졌다. 정액은 힘 있게 발사되지 못하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색도 옅고 양도 적었다. 사정하려 힘을 줄 때마다 뒷구멍이 빠끔거렸다. 남은 정액을 다 쏟아 낸 선우는 그만 풀썩 엎어졌다. 옷이 정액으로 더러워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너무 힘들어서 숨을 쌕쌕 쉬었다.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온몸이 흠칫거렸다.

겨우겨우 숨을 고르고 몸을 돌려 천장을 보고 누웠다. 고개를 옆으로 꺾어 태화를 봤다. 태화는 아직도 사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섹스, 할 수 있어요……?”

묻자 태화가 쯧 혀를 찼다. 조금 전부터 발기만 하고 있는 좆을 다시 바지 속으로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 박아 줄 정도는 아니다.”

태화는 씩 웃으며 말하곤 방을 나섰다. 선우가 잡을 틈도 없이 빠른 걸음이었다. 방 안에 혼자 남은 선우는 미간을 짙게 찌푸렸다.

“나빴어, 진짜.”

또 속은 기분이었다. 태화의 시험 앞에서 자신은 매번 최선을 다하는데 그는 매번 만족스럽지 않다고 했다. 애초부터 만족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은 사람처럼 그랬다. 선우는 서러움에 입술을 우물거리며 코를 킁 먹었다.

일단 더러워진 바닥부터 닦으려고 비척비척 몸을 일으키는데 태화가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선우는 눈을 크게 떴다. 기대감에 가득 찬 눈으로 쳐다봤지만, 태화는 오만 원짜리 한 장을 선우의 팬티 위로 올려놨다.

“쇼값.”

웃는 얼굴로 말했다. 선우는 이제 완전히 찡그린 눈으로 태화를 올려다봤다.

“너무해요……!”

답지 않게 목소리를 높이자 방을 나서려던 태화가 돌아봤다. 잠깐 당황하는 척하더니 이내 다시 씨익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주 사람을 가지고 놀았다.

태화가 친절히 문까지 닫고 나가자 선우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차마 욕은 못 하고 방문을 향해 눈만 흘겼다. 그게 최대의 반항이었다. 선우는 한참을 씩씩대다가 팬티 위에 얹어진 오만 원을 손에 쥐었다.

“쓸 데도 없는데 뭐 하러 주냐?”

들을 사람 없는 말을 해 가며 툴툴거렸다. 그래도 오만 원을 곱게 접어 협탁 서랍에 넣었다. 지금은 집에만 있지만, 언젠가 밖에 나갈 수 있게 되면 태화에게 멋진 셔츠 한 벌 사 주고 싶었다. 오만 원으로 살 수 있는 셔츠라야 죄 싸구려뿐이겠지만 그래도 태화를 위해 뭐라도 해 주고픈 마음이었다.

“고자는 아니었는데…….”

선우는 습관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바닥을 닦았다. 네 발로 기어 다니며 닦다가 허벅지가 미끈거리는 게 느껴져 바닥을 닦던 휴지로 몸도 닦았다. 고개를 계속 갸웃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태화가 왜 빼는지 몰랐다. 차에서 펠라티오 해 줬을 때나 손으로 해 줬을 때를 생각하면 분명 잘만 쌌었다. 게다가 먼저 펠라티오를 해 달라던 걸 보면 무성욕자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나랑 안 하냐고.”

선우는 뺨을 불퉁하게 부풀리고 옷을 벗었다. 정액이 묻은 옷은 자기 전에 팬티와 함께 손빨래해야 할 성싶었다.

태화는 샤워기 밑에서 낮은 신음을 흘렸다. 조금 전부터 발기해 있던 좆을 아프도록 부여잡고 흔들었다. 위아래로 문지를 때마다 껍질이 귀두를 덮었다 걷히길 반복했다.

“후으, 씨발.”

더운 숨이 터져 나갔다. 제 앞에서 벌름거리며 어서 박아 달라고 재촉하던 뒷구멍이 떠올랐다. 눈을 떠도, 감아도 온통 최선우가 어른거렸다. 야들야들하게 생긴 것처럼 뒷구멍도 예뻤다. 잘 익은 복숭아를 닮아 연분홍색으로 물들어서 꽉 닫혀 있던 구멍은 사람을 군침 돌게 했다.

그 아래 하트 모양으로 매달려 있던 고환이나 빳빳하게 선 작은 좆마저도 전부 맛있어 보였다. 자신과 똑같이 먹고 싸는 인간인 걸 아는데도 최선우는 한입 베어 물면 달큼한 과즙이 터질 것만 같았다.

“윽……! 아!”

세차게 솟구친 정액이 벽으로 튀었다. 사정하고도 몇 번 더 치대자 남아 있던 것들이 질질 흘렀다. 태화는 물을 맞으며 제 자지를 내려다봤다.

“하마터면 그 새끼 앞에서 쌀 뻔했네.”

한 번 싸고도 모자랐는지 자지는 꺼떡꺼떡 난리를 쳤다. 어디 쑤셔 넣지 않으면 진정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최선우에게 돌아가 박아 넣고 싶진 않았다.

우습게도 그 어린 놈을 애태우는 게 퍽 재밌었다. 돈을 들고 방에 다시 들어갔을 때 한껏 기대하며 반짝이던 눈이 잊히지 않았다. 픽 웃음을 흘린 태화는 기어이 한 번 더 자위하고서야 제대로 씻을 수 있었다.

다 씻고 이제 몸을 헹구려는데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옆집까지 들릴 만큼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불 났을 때의 경보음과 비슷한 소리에 태화의 눈이 번뜩 뜨였다. 태화는 거품을 대충 헹구고 물기도 닦지 못한 채 밖으로 나왔다. 성큼성큼 걸어 서재로 향했다.

컴퓨터 모니터를 켜자 아홉 개로 나뉜 CCTV 화면이 나왔다. 그중 한 곳에 태화의 시선이 머물렀다. 가게 앞에서 누가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때 문밖에서 기척이 들렸다. 돌아보자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하고 밖에서 서성이는 선우가 보였다. 새벽에 제 방에는 멋대로 잘만 들어오면서 지금은 또 말 잘 듣는 똥개 같은 모습이었다. 태화는 구기고 있던 미간을 말갛게 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우가 쪼르르 다가왔다.

“이거 무슨 소리예요?”

선우는 겁이라도 먹은 듯 잔뜩 움츠러들어서는 태화의 손을 잡았다. 태화는 머리에 걸치고 나온 수건으로 물기를 되는대로 털어 가며 선우를 내려다봤다. 문득, 이래서 사람들이 개를 키우는가 싶었다. 선우의 새카만 눈동자 속에는 오롯이 저만 담겨 있었다.

* * *

동열은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톡톡톡 두드렸다. 앞에는 부영 시장이 보였다. 그냥 앉아 있는 것처럼 보여도 부영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을 전부 눈에 담았다.

최근 5년간 전국 각지에서 일정한 패턴의 실종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다. 실종이야 한 해에도 몇만 건이 일어났으나 비슷한 성격을 띠는 사건이 경찰 당국의 눈에 들어왔다. 이러한 실종 사건의 주기는 대략 5~6개월 정도로 5년 새에 도합 열두 명이 사라졌다. 실종자 간에 공통점이 없어 단순 실종으로 치부되었으나 모두 CCTV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곳에서 일어났으며 사회에서 생각보다 잘나가던 사람들이 실종되었다는 공통된 특이점을 최근에서야 알아냈다.

동열이 근무하는 용지서에서도 같은 양상의 실종 신고가 들어왔었다.

지영환.

우림동에서 사채 사무실과 불법 성매매 업소를 운영하며 남의 등골을 쏙쏙 빼먹던 놈이 사라졌다는 신고였다. 한동열은 조금 전까지도 읽고 온 영환의 사건 파일을 떠올렸다. 하지만 동열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따로 있었다.

“최선우…….”

동열은 선우의 이름을 나직이 발음하며 차에서 내렸다. 꽃다방에서 일하고 생활하던 최선우가 사라진 지도 벌써 보름을 넘어서고 있었다. 꽃다방의 권 마담이 신고했는데, 집창촌에 빚으로 묶여 있던 사람이 사라지는 일은 왕왕 있어서 실종이 아닌 단순 가출로 처리되었다. 신고한 당사자인 권 마담도 가출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사라지기 전날 빚쟁이들이 찾아와 폭행하는 걸 봤다는 목격자도 있어서 서 내의 동료들도 다들 돈 갚기 싫어 도망간 게 아니냐고 했으나 동열은 생각이 달랐다. 왜인지 촉이 그랬다. 단순 가출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동열이 최선우 역시 실종이 아니냐고 말을 꺼냈더니 다들 귀찮은 기색을 내비쳤다. 팀장이라는 탁성모부터 귀찮아했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가출한 창놈까지 조사할 여력이 어딨냐는 말로 대차게 까였고, 더는 말도 꺼내지 못할 분위기를 만들었다.

‘너도 뭐 걔한테 빠졌냐?’

그때 탁성모가 한 말은 떠올릴 때마다 동열의 기분을 잡치게 했다.

“내가 지 같은 줄 아나.”

한동열은 쯧 혀를 차며 시장 안으로 들어섰다. 탁성모가 개소리를 한다고 해서 포기하진 않았다. 한동열은 독자적으로 선우의 행적을 좇았다. 우림동은 요즘 시대에 이럴 수가 있나 싶을 만큼 CCTV가 적었으나 주변을 뒤져 겨우 최선우가 사라진 날의 행적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동열은 부영 시장으로 왔다.

“들어간 영상은 있는데 나오는 영상이 없단 말야.”

동열은 CCTV 영상 속 선우를 떠올렸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우산도 없이 터덜터덜 걸어가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아무리 흐릿한 화면이어도 선우가 맨발인 건 알아볼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최선우는 맨발로 우림동부터 부영 시장까지 장장 한 시간 삼십 분을 걸어갔다. 느린 걸음으로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걷는 뒷모습까지 기억난 동열은 낮게 앓았다. 선우만 생각하면 영 속이 시끄러웠다.

“어디 있냐, 선우야.”

친하지도 않으면서 친근한 척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차에서 내렸다.

부영 시장을 탐문했다. 정식 수사가 아니어서 혼자 발품을 팔아야 했다. 아직 실종인지 가출인지도 모르는지라 상인들에게 멋대로 선우의 사진을 들이밀며 본 적 있냐고 물을 수도 없었다. 그저 수상한 사람이 있나 없나 점포를 기웃거리며 상인들과 몇 마디 주고받는 게 전부였다.

한참 걷다 보니 불 꺼진 가게가 보였다. 아직 5시라 장사가 한창일 때인데 한 곳만 불이 컴컴하게 꺼져 있었다.

“태화 정육?”

정육점 사장 이름이 태화인 모양이었다. 동열은 가게 앞으로 다가갔다. 굳게 닫힌 가게 문 앞에는 A4 용지가 붙어 있었다.

[714 ~ 715

개인 사정으로 이틀간 쉽니다

716부터 정상 영업 합니다

죄송합니다

- 태화 정육 -]

한동열은 성의 없이 테이프로 귀퉁이가 붙여진 안내문을 읽고도 쉽사리 걸음을 돌리지 않았다. 안쪽을 기웃거렸다. 환한 바깥에 비해 안쪽이 너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벽에 딱 붙어 손 갓까지 만들어 들여다보자 얼추 보였다. 안에는 정육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진열대와 포스기, 손님을 위한 의자 두 개가 있었다. 보편적인 정육점처럼 내부가 그다지 넓지는 않았고, 가장 안쪽에 창고로 보이는 문이 하나 있었다. 그때 안쪽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생각지도 못한 등장에 동열은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이내 가게 문이 열렸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안에서 나온 사람은 남자였다. 한동열도 키가 큰 편이었지만 남자는 더 컸다. 사뭇 위협적으로 보일 만큼 덩치도 컸고, 인상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아니, 남이 보면 잘났다고 할 낯짝이었지만 한동열의 눈에는 묘하게 비틀려 보였다.

“어떻게 오셨냐고요.”

“아, 서에서 나왔습니다.”

“경찰이세요?”

한동열은 그렇다고 대답하며 주머니에서 경찰증을 꺼내 내밀었다.

“용지서면 옆 동네 아닙니까?”

남자는 표정 변화가 없었지만, 한동열은 그에게서 경계심을 느꼈다. 보통은 경찰증을 내밀면 그렇구나 하고 마는데 남자는 동열의 소속이 용지서라는 것까지 단번에 파악했다.

“맞습니다. 저희 쪽 주민분이 사라졌는데 마지막 행적이 여기 부영 시장이라서요.”

한동열은 정공법으로 나가기로 했다. 방문의 목적을 꾸며 내면 저쪽에서 바로 알아챌 것 같았다.

“아, 예.”

“여기 사장님이세요?”

“예. 제가 여기 사장입니다.”

“성함이 태화인가 봐요.”

“아……. 서태화요.”

서태화…….

동열은 입 안으로 태화의 이름을 몇 번 굴려 봤다. 서에서 주요 관찰 인물로 분류된 이들 중에 서태화란 이름은 없었다.

“여기에는 오늘까지 쉰다고 나와 있는데 안에 계셨네요. 가게 불도 다 꺼 놓으시고.”

동열의 말에 태화는 아직 물기가 남은 머리카락을 대충 털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2층이 제 집입니다.”

“그러시구나.”

“뭐 더 여쭤볼 거 있으십니까.”

태화의 말투는 정중했지만 동열에게는 약간 날 선 것처럼 들렸다. 어지간한 사람들은 경찰이라고 밝히면 반응이 둘 중 하나였다.

과하게 친절해지거나, 눈에 보일 만큼 겁을 먹거나.

하지만 태화는 둘 다 아니었다. 오히려 약간 귀찮은 듯 굴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가게 좀 살펴봐도 될까요?”

동열은 불 꺼진 가게 안을 기웃거리며 물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수많은 점포를 들르면서도 안을 확인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왜인지 이곳은 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다. 공무 중인 척 멀끔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가만 시선을 던지던 태화가 씩 웃었다.

“그럼요. 들어오세요.”

태화는 흔쾌히 옆으로 비켜섰다. 한동열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자 불까지 켜 줬다.

“앞에 써 놓은 거 보니까 정기 휴일은 아닌 거 같던데, 무슨 일 있으셨나 봐요?”

별거 없는 가게 안을 휙 둘러보며 시답잖은 투로 묻자 태화가 옆을 어슬렁어슬렁 따라붙었다.

“아버지가 혼자 지내셔서요. 정기적으로 찾아뵙지는 않지만, 가끔 먼저 오라실 때 찾아뵙고 있습니다.”

“아…….”

“근데 보통 경찰분들은 2인 1조로 움직이시던데, 파트너분은 어디에…….”

“아, 옆 가게 보고 계십니다.”

“신발 가게요?”

동열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태화도 알았다는 듯이 마주 끄덕였다. 언뜻 입꼬리가 옅게 올라가는 것도 같았다. 동열은 자꾸만 안 좋은 기분을 느끼며 정육점 안을 둘러봤다.

별다를 게 없었다. 밖에서 본 것과 동일했다.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에는 ‘이달의 세일!’이라는 제목 밑으로 품목과 가격, 몇 퍼센트가 할인됐는지 적혀 있었고, 반대쪽 벽에는 달력이 있었다. 은행에서 나눠 주는, 흔히 볼 수 있는 달력이었다. 별다른 표시도 되어 있지 않았다. 의심할 건더기 없이 너무도 평범한 내부였는데 동열은 그놈의 촉이 뭐라고 자꾸만 시선이 안쪽 문으로 향했다.

“2층에 집도 좀 봐도 될까요?”

동열은 결국 제 촉을 믿기로 했다. 한동열의 물음에 태화는 눈을 느리게 끔뻑이더니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러시죠.”

태화가 앞장섰다. 안쪽 문을 열고 들어가자 오른쪽에는 냉동 창고로 보이는 문이, 왼쪽에는 계단이 하나 있었다. 안쪽에는 연육기 두 대가 나란히 서 있는 게 보였다.

태화가 계단으로 올라가려는데 한동열은 제멋대로 냉동 창고 문을 열었다. 뒤에서 한숨 소리가 들렸지만, 한동열은 못 들은 척 냉동 창고 안을 들여다봤다. 아직 정육되지 않은 돼지고기와 소고기가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사람이라도 매달려 있을 거란 과한 상상을 했지만 특별할 건 없었다.

뒤를 돌아보자 태화가 멀거니 쳐다보고 있었다. 짜증이라도 낼 줄 알았는데 그는 빤히 쳐다보기만 하다가 먼저 계단을 올랐다. 동열은 머쓱한 표정으로 냉동 창고 문을 닫고 태화를 따라 올라갔다.

“밖에서 보는 것보다 집이 넓네요.”

동열은 태화의 집이 생각보다 넓어서 좀 놀랐다. 정육점은 아담한데 2층은 양 옆집을 다 터서 사용하는 것처럼 쾌적하고 넓었다. 신발장에서 긴 복도를 따라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서재로 보이는 방이 하나 있었고, 조금 더 들어가면 왼쪽으로 거실과 주방이 트여 있었다. 정면으로 침실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옷방과 화장실, 작은 방이 차례대로 딸려 있었다.

그중 동열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작은 방이었다. 작은 방에는 침대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손님방으로 쓰이는 듯했다. 집을 한 바퀴 휙 돌아보고 화장실까지 들어가 봤다. 특별할 건 없었다. 성인 남성 한 명이 사는 평범한 집이었다. 물론 평범하다기엔 집이 다소 넓었으나 재력이 돼 넓은 집에 사는 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다른 가게도 이렇게 꼼꼼히 조사하셨습니까.”

적절한 거리를 두고 한동열을 따라다니던 태화가 물었다. 동열은 태화를 바라봤다.

“어……. 그럴 예정입니다.”

“저희 집이 처음이라는 것처럼 들리네요.”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동열이 정중하게 사과하자 태화가 작게 웃었다. 이제 더 볼 것도 없어서 나가려는데 태화는 동열을 붙들었다.

“오신 김에 과일이라도 갈아 드릴까요? 냉장고에 망고 사 놓은 게 있어서 매일 아침마다 갈아 먹거든요.”

한동열은 뒤를 돌아봤다. 태화가 믹서기를 들고 서 있었다. 정말 매일 아침 갈아 먹는 모양이었다.

“아닙니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예, 그럼.”

“실례가 많았습니다.”

동열은 꾸뻑 인사하고 집을 나섰다. 계단을 내려와 가게로 나오는 동안 태화도 뒤를 따랐다. 동열이 가게 문을 열고 나가자 태화가 근데……. 하고 말을 걸었다. 동열은 마지막 인사를 하려다가 그를 봤다.

“누가 사라졌길래 용지서분이 여기까지 와서 찾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실종자 인적 사항은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아, 누가 사라졌다길래 당연히 사진이라도 보여 주실 줄 알았는데. 제가 곤란한 질문을 한 모양이네요. 그럼 수고하십시오.”

이번에는 태화가 먼저 인사했다. 한동열은 마주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다. 뒤로 다시 철컥 문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걸음을 느릿하게 떼던 한동열의 얼굴이 굳어졌다. 태화 정육의 양옆 집은 떡집과 청과물 가게였다. 신발 가게는 한참 옆에 있었다.

당했다는 생각에 미간이 구겨졌다. 거짓말은 이쪽에서 먼저 했으나 태화가 왜 자신을 떠본 건지 이해되질 않았다. 가게도, 집도 평범하다 못해 지루할 정도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한동열은 언짢은 기분을 숨길 수가 없었다.

서태화는 확실히 기분 나쁜 부류였다.

태화는 불 꺼진 가게에 우두커니 서서 100을 셌다. 천천히, 급하지 않게 속으로 숫자를 세다가 100을 완성하자마자 두 눈을 크게 뜨고 빠르게 움직였다. 거의 뛰다시피 해서 안쪽 문을 열고 들어가 냉동 창고 앞에 섰다. 여기까진 급하게 왔으면서 정작 냉동 창고 문을 잡고는 숨을 크게 골랐다.

문을 열자 안에서 냉기가 흘러나왔다.

“나와.”

나직이 외쳤지만, 저쪽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태화는 미간을 엷게 구겼다. 시체처럼 매달린 고깃덩어리들 사이 어느 한 곳을 응시했다. 플라스틱 상자가 쌓여 있는 곳이었다.

“최우선. 나오라고.”

이름까지 불러 봤으나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그새 집으로 들어갔나 싶었다. 어차피 냉동 창고에서 나와서 갈 곳이라고는 가게와 집, 그리고 후문뿐이었다.

키워 달라고 애원하며 집 안에 들어앉은 놈이 후문으로 내뺐을 리는 없었다. 태화는 고개를 뒤로 쭉 빼 계단을 올려다보다가 쯧 혀를 차고 냉동 창고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방해되는 고기들을 한쪽으로 밀어 가며 깊이 걸음을 옮겼다.

“최우선.”

괜히 이름 앞뒤를 바꿔 부르며 플라스틱 상자 뒤를 봤다. 이미 구겨져 있던 미간으로 좀 더 깊은 골이 팼다. 선우는 웅크린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너무 추워서 정신을 잃은 건지, 깜빡 잠이 든 건지 구분이 안 되었다. 태화는 씨발, 하고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선우에게 다가갔다.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가뜩이나 여름이라고 반소매 티셔츠에 반바지만 걸치고 있어 체온 유지가 더 어려웠을 터였다.

“야, 최우선!”

놀란 얼굴로 선우의 몸을 여기저기 더듬던 태화는 돌연 헛웃음을 터뜨렸다. 입맛을 쩝쩝 다시며 제 손에 뺨을 비비는 모습은 누가 봐도 그냥 잠든 것이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숨을 제대로 쉬나 싶어 코 아래에 손을 대 보는데 뜨거운 숨이 잘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머저리가 여기서 잠들면 어쩌자는 거야.”

태화는 아까보다는 멀끔해진 얼굴로 몇 번 더 허허롭게 웃다가 선우를 번쩍 안아 들었다. 선우의 손에 칫솔이 들려 있는 걸 보고는 참지 못하고 크게 웃었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 왜 화장실을 들렀다 나왔나 했더니 본인이 쓰는 칫솔을 챙겨 나온 모양이었다. 역시나 쓸데없이 철두철미했다. 덕분에 경찰 나부랭이에게 꼬투리를 잡히지 않았다.

태화는 거짓말을 좆도 할 줄 모르던 경찰을 떠올리며 콧잔등을 찡긋거렸다. 한동열이라던 경사는 분명히 저를 의심하고 있었다.

“쯧.”

귀찮은 놈이 들러붙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잡쳤다. 아마 한동열이 말한 실종됐다던 사람은 최선우일 터였다. CCTV를 확인하고 들어온 것까지는 봤는데 나가는 걸 못 봐서 시장 안에 있다고 생각할 게 분명했다.

대외적으로는 선우와 아무런 접점이 없던 제집에 선우가 산다고 하면 지영환과 관련된 일로 의심받을 확률이 높아 그동안 선우에게 바깥출입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되면 더욱 꼭꼭 숨겨 둬야 할 판이었다.

“근데 한동열 혼자 움직인다…….”

태화는 픽 웃었다. 한동열이란 놈은 정식 수사권도 없으면서 주먹구구식으로 혼자 움직이는 티를 너무 냈다. 영 머저리 같은 놈이라는 생각에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제 품에 코알라처럼 매달린 선우를 바짝 끌어안고 냉동 창고를 나섰다. 춥긴 추웠던 모양이었다. 자는 와중에도 몸이 파들파들 떨렸다. 계단을 천천히 오르고 있는데 잠에서 설핏 깼는지 선우가 낮게 앓는 소리를 냈다. 어깨에 뺨을 마구 비비는 게 느껴졌다.

“갔어요……?”

“어.”

“괜찮은 거예요……?”

“어.”

“다행이다.”

그 말을 끝으로 뭔가가 툭 떨어졌다. 계단을 따라 통통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슬쩍 내려다보자 저 밑에서 칫솔이 나뒹굴고 있었다. 노란색 칫솔을 본 태화는 소리 없이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너, 나랑 더 오래 살아야겠다.”

선우가 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렸다. 품에 안긴 몸이 서서히 따뜻해지는 게 느껴졌다.

* * *

하루 종일 비가 왔다. 선우는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 때문에 선잠을 자다가 천둥소리를 듣고 깼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 창문으로 번쩍하는 빛이 쳐 들어왔다. 곧이어 다시금 천둥이 크게 쳤다.

선우는 천둥·번개가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했다. 내내 땡볕이 이어지다가 오랜만에 내리는 비가 반가워 침대에서 내려와 창가로 다가갔다. 비가 오면 꽃다방 손님도 줄었다. 맑을 때보다 또라이들이 더 많이 찾아오긴 했으나 어차피 면도방을 찾는 사람 중에 정상인은 없었기에 차라리 손님이라도 적은 쪽이 더 나았다. 게다가 빗소리를 들으면 혼자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서 묘한 안정감도 느껴졌다.

이런저런 이유로 비를 좋아하는 선우는 창문까지 열어, 내리는 비를 구경했다. 밖으로 팔을 뻗어 빗물을 느끼다 안으로 비가 들이치자 그제야 창문을 닫았다. 젖은 손을 대충 바지에 문질러 닦고 당연하다는 듯 방을 나섰다. 태화의 방으로 가려는데 늘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웬일인지 활짝 열려 있었다. 안에 보이는 침대에는 그가 없었다.

“어디로 갔지?”

고개를 갸웃거리다 바닥을 어른어른 적시는 빛을 발견했다. 빛은 서재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태화가 저기에 있나 싶어 살금살금 깨금발을 떼 가며 서재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빛이 더 짙어졌다. 반쯤 열린 문으로 고개를 쑥 들이밀고 살피자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태화가 보였다. 불을 켜지 않아 캄캄한 방에서 모니터 불빛에만 의존해 있는 뒷모습은 참 거대했다.

이 야밤에 잠은 안 자고 저기서 뭐 하나 생각하던 선우는 불현듯 눈을 반짝 떴다. 신체 건장한 남자가 어두운 방에 들어앉아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는 이유가 뭔지 어렴풋이 짐작됐다. 어느새 양 뺨이 약간 상기된 선우는 숨소리마저 죽이며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갔다.

서양 쪽을 좋아할지, 아니면 일본산이 취향일지, 그것도 아니라면 한국의 B급 에로 영화를 좋아할는지. 태화의 취향이 과연 어느 쪽일까 상상하며 천천히 다가갔다.

“뭐 하냐?”

“으악!”

“뭔…….”

갑자기 튀어나온 목소리에 선우는 비명까지 지르며 뒤로 발라당 나자빠졌다. 너무 놀라서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아주 난리를 치는 모습에 뒤를 돌아본 태화가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선우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겨우 달래다가 모니터 화면을 봤다.

“어?”

모니터에는 선우가 상상한 포르노 대신 지뢰 찾기 게임이 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선우의 눈이 더 커졌다.

“왜. 내가 야동이라도 보는 줄 알았어?”

태화는 모니터를 볼 때면 늘 착용하는 안경을 벗으며 물었다. 그제야 긴장이 풀린 선우는 엉덩이를 슥슥 문질렀다. 엉덩방아를 찧은 곳이 아팠다.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며 일어나자 태화가 한숨을 옅게 쉬었다.

“잠이나 자지 왜 또 기어 나와서는 귀찮게 해.”

“그냥 화장실 가다가 불빛이 보이길래.”

“네 방에서 화장실은 오른쪽이잖아. 여긴 왼쪽이고.”

선우는 할 말이 없었다. 한 번쯤은 모르는 척해 줄 만도 하건만 태화는 늘 사람을 민망하게 만들었다. 거짓말이 들켜 아무 말도 못 하고 우물쭈물하다가 태화를 바라봤다. 지뢰 찾기를 몇 시간 동안 했는지 눈이 시뻘겠다. 태화는 평소와 똑같이 삐뚜름한 시선을 보냈지만, 선우의 눈에는 어쩐지 좀 다르게 보였다. 마치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 같았다.

“잠이 안 와요?”

그 말에 태화는 성가시다는 듯 표정을 구겼다. 정곡을 찔린 모양이었다. 선우는 눈을 깜빡깜빡 뜨며 태화를 바라봤다. 기면증을 앓는 사람이 불면증까지 앓는 게 가능한지 몰랐다. 다만 오늘 하루 종일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기는 했다.

태화와 함께 산 지 근 한 달 가까이 된 선우는 계속 집에만 있는 게 지루해질 때면 계단을 내려가기도 했다. 가게 쪽으로 난 문에 귀를 대고 손님이 있는지 없는지부터 확인했다. 저쪽에서 아무 말소리도 들리지 않으면 문을 빼꼼 열어 가게 안을 들여다봤다.

그럴 때면 태화는 뒤통수에도 눈이 달렸는지 까불지 말고 올라가라고 했지만 선우가 말을 들을 리는 없었다. 선우는 딱 손가락 두 마디 정도로 열린 틈을 통해 태화를 관찰했다. 한번 경고를 마친 그는 그 뒤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선우가 보고 있는 걸 알면서도 하던 일을 계속했다. 대부분은 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포장했고, 가끔 포스기로 오늘의 매출을 확인하기도 했으며, 지뢰 찾기 게임도 하고, 가만 앉아 책을 읽기도 했다.

그러다 손님이라도 들어오면 선우는 알아서 문을 닫았다. 계단에 오도카니 앉아 기다리다 조용해지면 다시 문을 열고 관찰하는 게 일과였다. 그런데 오늘은 태화의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은 게 여실히 느껴졌다. 책을 읽긴 읽는데 두통이 느껴지는지 자꾸만 낮게 앓는 소리를 냈고, 손님 응대도 평소와는 달리 약간 무뚝뚝했다.

선우 입장에서는 태화가 남에게 친절하지 않은 게 기분 좋았으나 어쨌거나 평소와 다른 모습의 그가 걱정되긴 했다. 비가 오면 컨디션 난조를 보이는 사람이 많던데 태화도 그 부류인가 싶었다.

“어디 안 좋으세요?”

한 번 더 묻자 태화가 쯧 혀를 찼다. 지뢰를 거의 다 찾아 놓은 걸 아까워하지도 않고 툭 껐다. 컴퓨터 전원을 아예 꺼 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멀뚱거리며 서 있는 선우를 지나치려 하자 선우가 으레 팔뚝을 잡았다. 인상까지 구기며 내려다보는 태화의 시선에 금방 기가 죽어 팔을 놓고 대신 옷자락을 꾸욱 말아 쥐었다.

“저는 그냥 걱정돼서.”

“네가 상관할 거 아니야.”

“섹스, 할래요……?”

선우의 목소리는 작았다. 너무 작아서 때마침 친 천둥소리에 묻혔지만, 태화는 똑똑히 들었는가 보았다. 야밤에 뭔 개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하고 나면 잠 잘 올 텐데.”

선우는 결국 뒷말까지 이었다. 퍽 부끄러운 말이었으나 수치심은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태화와 하고 싶었다. 이 집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그랬다. 별 볼 일 없는 몸뚱이로라도 그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구태여 그런 천박한 이유를 붙이지 않더라도 태화만 보면 몸이 달았다. 선우도 좆 달린 남자인데 매일 자위만으로 만족하기 어려웠다. 섹스하고 싶었다.

서태화와 하는 섹스.

물론 박히고 싶다는 게 좀 특별한 사항이었지만 어쨌거나 스물한 살 한창때 청년의 들끓는 성욕을 주체할 수 없었다. 겨우 참고 참고 또 참아 오다가 오늘에서야 터진 것이었다. 이대로 태화를 보내면 정말 후회할 것 같아서 손안에 들어온 옷가지를 더욱 꼬옥 쥐었다.

“너 나 감당이나 할 수 있겠냐?”

“할 수 있어요. 노력할게요!”

“노력한다고 될 일이 아닐 건데.”

선우는 그래도 노력하겠다고 말하려다 아윽! 소리만 냈다. 태화가 머리채를 잡아 꺾은 탓이었다. 본능적으로 몸이 파르르 떨렸다. 또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났다.

동시에 서럽기도 했다. 고작 섹스 좀 하자 그랬다고 사람을 때리나 싶었다. 잡힌 머리채도 아프고 서럽기도 해서 눈물이 차오르는데 태화가 이번에는 손을 끌어 본인의 아랫도리로 가져갔다. 눈물을 쏟아 내려고 일그러져 있던 선우의 눈이 커졌다. 손바닥 가득 좆이 들어찼다.

“이런 걸로 쑤실 건데 정말 감당할 수 있겠어?”

선우는 나직한 목소리를 듣고 침을 꼴깍 삼켰다. 겁을 잔뜩 먹은 주제에 손을 더듬더듬 움직여 태화의 앞섶을 만졌다. 반쯤 발기한 크기인데도 한 손으로 잡기 벅찰 만큼 굵었다. 길이도 길어서 벌써 바지 고무 위로 대가리를 내밀고 있었다. 흉기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선우는 그 아래에 달린 고환까지 꼼꼼하게 만지며 침을 꼴깍 삼켰다.

“해 볼게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태화에게 입술이 집어삼켜졌다. 말 그대로 태화는 선우의 윗입술이며 아랫입술이며 불친절하게 빨아 댔다. 한입에 가둬 쭙쭙 빨다가 놀라서 벌어진 입술 사이를 파고들었다. 선우는 입 안으로 쑥 들어온 혓바닥을 느끼며 어깨를 움칠거렸다. 두툼한 혀가 들어오자 입 안이 꽉 차는 느낌이었다. 성급하게 혀를 얽고 여린 살갗들을 핥아 대는 혓바닥은 흉포하기 그지없었다.

아직 아래는 뚫리지도 않았는데 벌써 태화에게 범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태화가 고개를 깊게 숙이자 선우의 허리가 점점 휘어졌다. 태화가 말했던 것처럼 뻣뻣한 몸으로 그의 키스를 받아 내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흐읍, 읏……! 흡!”

틈 없이 맞닿은 입술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어 가슴을 퍽퍽 치자 태화가 머리채를 놓고 대신 두 손목을 잡아챘다. 뒷짐을 지게 만들어 고정하고는 허리를 바짝 끌어와 안았다. 선우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배꼽 위로 태화의 발기한 자지가 느껴졌다. 꼭 삽입하면 여기까지 쳐들어올 것 같아서 저절로 긴장되었다.

옴짝달싹 못 하게끔 묶인 채로 태화와 키스하던 선우는 결국 기침하기 시작했다. 콜록대며 입 안으로 숨을 툭툭 뱉자 그가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태화는 봐준다는 식으로 뒤로 물러나 콜록거리는 선우를 내려다봤다.

“자지도 못 빨아, 키스도 못해. 이래서야 뒤로 받는 건 진짜 잘할 수 있겠어?”

놀리는 식으로 묻자 선우는 몇 번 더 캑캑거리다 태화를 올려다봤다. 딴에는 쏘아본다고 보는 것 같은데 기침하느라 붉어진 눈으로 쏘아봐 봤자 별 위협이 안 되었다. 다만 태화는 눈물이 성글게 맺힌 눈으로 선우가 올려다보자 미간을 찡긋거렸다.

“씹…….”

욕을 갈기고 선우를 끌어와 책상 위로 앉혔다. 순식간에 눈높이가 달라졌다. 선우는 태화를 내려다보며 눈두덩이를 비볐다. 찔끔 맺힌 눈물을 닦고 먼저 그의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잘할 수 있어요…….”

선우는 결전의 날이라도 앞둔 사람처럼 말했다. 그 바람에 태화의 인상이 좀 더 구겨졌다. 이제 그의 구겨진 얼굴은 위협적이지 않았다. 흥분해서 그렇다는 걸 알았다. 서둘러 태화의 허리춤에 달린 끈을 풀고 바지를 끌어 내렸다. 선우가 바쁘게 움직이는 사이 태화도 제 티셔츠를 벗고 선우의 옷도 벗겼다. 둘은 순식간에 나신이 되었다.

“빨리요…….”

“씨발, 보채지 좀 마. 나도 급하니까.”

“빨리.”

선우는 일부러 한 번 더 칭얼거렸다. 태화의 다급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태화가 책상 서랍을 열어 젤과 콘돔을 꺼냈다. 순간 기분 좋게 웃던 선우의 입꼬리가 내려갔다. 태화의 집에는 어느 곳에나 콘돔과 젤이 있었다. 태화 방 협탁에도 있었고, 선우가 머무는 방에도 있었다. 심지어 거실 한쪽에 있는 서랍장에도 있었다. 그렇다는 건 여기서 다른 사람들과 즐긴 적이 적어도 한 번 이상은 된다는 뜻이었다. 적게 잡아 한 번이었지 사실 수십 번은 됐을 거라고 생각했다.

선우는 괜스레 태화의 어깨를 콱 깨물었다. 되는대로 세게 깨물어서 그가 아아……! 소리를 냈다.

“왜 지랄이야?”

“창놈.”

“뭐?”

“나한테 창놈이라더니 아저씨도 창놈이잖아요.”

“대가리에 구멍 뚫렸나. 갑자기 뭔 개소리야?”

태화가 짜증스럽게 말하자 선우는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잘할게요. 그러니까 이제 나랑만 해요. 네?”

선우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애원했다. 태화가 다른 사람이랑 했다는 상상만으로 화가 나는데 앞으로도 한다면 그때는 참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조금 전에 물어뜯은 곳에서 피가 살짝 비치는 걸 보고는 얼른 살살 핥아 줬다.

태화는 욕을 갈기려다 말고 허허롭게 웃었다. 뭔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씨불이더니 갑자기 저랑만 하자고 하질 않나, 이젠 또 본인이 내 놓은 상처를 핥아 주질 않나. 도무지 최선우 이 새끼 머리통에는 뭐가 들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지랄 말고, 가랑이나 벌려.”

태화가 때리면 맞을 각오를 하며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던 선우는 눈을 슬며시 뜨고 그를 봤다. 얼른 벌리라는 듯이 눈썹을 들썩이는 걸 보고는 천천히 다리를 벌렸다. 태화는 손에 푹 짠 젤을 선우의 뒷구멍에 치덕치덕 묻혔다. 갑자기 차가운 게 닿자 선우는 파드득 놀라며 태화를 끌어안았다. 뒷구멍이 확 오므라드는 게 느껴졌다. 순간 태화의 고개가 갸웃 기울어졌다. 뭔가 이상하다는 듯 낮은 숨을 쉬며 중지를 쑥 집어넣었다.

“아……!”

이제 겨우 손가락 하나 들어왔을 뿐인데 선우는 옅게 신음했다. 오늘도 역시나 태화와 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뒷구멍을 풀어 놓긴 했으나 생경한 감각에 몸이 뒤틀렸다. 게다가 태화는 손가락도 굵어서 이물감이 심했다. 한 번 더 고개를 갸웃거리던 태화가 약지까지 집어넣었을 때 선우는 아예 몸을 옹송그리며 파르르 떨었다. 제 손가락 두 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굵었다.

“하, 읏……!”

태화가 손가락을 가위 모양으로 벌리고, 안을 깊숙이 파고들 때마다 신음이 쏟아졌다. 흥분감에 절은 신음이 아니라 고통에 의한 신음이었다. 태화의 손길이라면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꽉 닫힌 구멍을 억지로 열고 들어와 쑤셔 대는 탓에 선우는 결국 눈물을 한 방울 도록 흘리며 태화에게 안겼다. 젤을 계속 보충해 가며 씹질하던 태화도 움직임을 뚝 멈췄다. 선우의 이마에 제 이마를 맞대 눈을 맞췄다.

“여기 써 본 거 맞아?”

“네……?”

“뒷구멍 진짜 써 봤냐고.”

선우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말하면 거짓말하는 게 돼 버렸고, 아니라고 말하자니 태화가 믿어 줄까 싶었다. 누가 봐도 서툰 반응에 뒷구멍은 한 번도 쓴 적 없는 것처럼 꽉 다물려 있으니 경험이 있다고 한들 믿지 않을 게 당연했다.

“너 아다야?”

한 번 더 묻는 말에 선우는 아랫입술로 윗입술을 꾸욱 눌러 다물었다. 차마 말로 할 순 없어서 고개만 작게 끄덕였다. 이대로 그만둔다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선우는 시무룩한 얼굴로 태화의 입술만 바라봤다. 헛웃음이 터져 나올 줄 알았던 입술은 별 반응이 없었다.

“윗입은 닳았는데 아랫입은 새 거라고…….”

민망한 말만 중얼거릴 뿐이었다. 선우는 태화와 맞닿은 이마를 떼고 고개를 들었다. 태화는 비웃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저 뒷구멍에 박혀 있는 손가락을 짤깍짤깍 움직였다. 선우가 힉 떨며 태화의 팔뚝을 붙들었다.

“아다 따먹으면 좆 되는 건데, 쯧.”

마지막으로 혀를 찬 태화는 뒷구멍에서 손가락을 뺐다. 선우는 역시 저와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라고 넘겨짚고 입꼬리를 끌어 내렸다. 그때 태화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뭐, 하세요……?”

“처음이라며. 확실하게 풀어야 할 거 아니야.”

“근데 왜 무릎을 꿇……. 읏……!”

선우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태화의 혓바닥이 뒷구멍을 파고들었다. 잘 열리지 않아서 엄지로 구멍을 비죽이 벌려 드러난 붉은 속살을 핥았다.

“하……. 으응, 흐…….”

손가락이 들어왔을 때는 아파서 신음이 나왔지만, 혀가 침범하자 뜨거워서 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거기, 흣, 더러운데……. 아아……!”

“오늘도 준비했을 거 아니야.”

“응, 그래도…….”

“냄새 좋은데.”

“입 떼고 말해요, 흣……. 간지러워.”

태화는 입을 떼고 말하랬더니 아예 입술을 붙이고 키들키들 웃었다. 옅은 콧바람이 고환 밑 두덩살을 스치자 선우의 발끝이 곱아들었다. 선우는 태화의 머리통을 잡고 버텼다. 뒷구멍에서부터 시작된 열기가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게 느껴졌다.

아래를 슬쩍 내려다보니 태화의 온 낯이 젤 범벅이었다. 태화는 뒷구멍을 핥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선우는 태화의 뺨을 부여잡다가 두툼한 혓바닥이 안쪽을 쑥 파고들었을 땐 힉 소리를 냈다. 제가 들어도 안 예쁜 소리에 입을 막자 그가 금세 알아채고 손을 끌어 내렸다. 대신 깍지를 꼈다.

“아흐, 뜨거워…….”

선우는 태화의 손을 꼭 맞잡고 파르르 떨었다. 태화가 제 구멍을 빨고 있었다. 그 거대하던 서태화가 제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너무 좋아서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춥춥 빠는 소리 뒤로 찌걱이는 소리가 났다. 아래를 슬쩍 내려다보니 태화는 남는 손으로 자지를 쥐고 문지르는 중이었다. 뒷구멍을 빨며 자위하는 변태 때문에 선우의 자지도 점점 힘을 얻었다. 아무래도 변태의 짝으로는 변태가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자 작게 웃음도 나왔다.

신음하랴, 웃음 흘리랴, 정신없는 와중에 태화의 손가락마저 뒷구멍으로 들어오자 힘을 얻기 시작하던 자지에서 말간 물이 솟아 나왔다.

“아! 읏……!”

“이제는 안 아파? 예쁜 소리 내네.”

“네, 흐, 안 아파요……. 좋아요, 좋, 아……!”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태화는 두덩살에 입을 맞추고 파들파들 떨리는 허벅지에도 쪽 소리를 냈다. 젤과 침이 섞여 좀 더 미끈거리는 내벽으로 손가락이 쉼 없이 들락거렸다. 안쪽을 쿡쿡 파고드는 감각을 느끼던 선우는 돌연 눈을 번쩍 떴다. 손가락이 어느 부분을 스쳐 지나가자 아랫배가 저릿해지는 게 느껴졌다.

“아아, 흣!”

이전과는 다른 신음에 태화는 씩 웃었다. 같은 곳을 공략하며 좆도 만져 줬다. 좆기둥을 빠르게 치대는 박자에 맞게 내벽의 어딘가를 쑤셔 댔다. 선우는 젖은 신음을 뱉으며 천장을 바라봤다. 가만히 있던 천장이 빙글빙글 돌았다. 이상한 감각이었다. 자지를 만져 주는 것보다도 뒤를 쑤셔 주는 손길에 더 달아올랐다. 이제는 온 감각이 중심으로 몰려 사정할 것 같은데 태화의 손이 모두 떨어져 나갔다.

“흐으, 쌀 거 같았는데.”

“지금 싸는 것보다 이거에 박히면서 싸는 게 더 좋을걸.”

“읏…….”

선우가 히뜩히뜩 떠는 사이 태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전부터 위협적으로 부풀어 있던 좆을 쥐어 선우의 허벅지에 툭툭 치댔다. 좆물이 얼마나 나왔는지 허벅지가 금세 번들번들 젖어 들었다. 커다란 태화의 손으로도 한 번에 쥐기 버거울 정도로 거대하게 발기한 자지가 눈앞에서 꺼떡였다. 선우는 입에 고인 침을 꼴깍 삼켰다.

“안 아프게요. 아픈 거 싫어요…….”

“처음이면 안 아플 수가 없는데.”

“그래도 싫어.”

“대신 존나 좋게 해 줄게.”

“응…….”

선우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화의 목덜미를 끌어안아 어깨에 뺨을 비볐다. 귓가로 태화가 낮게 앓는 소리가 들렸다. 태화는 이로 콘돔 포장지를 뜯어 좆에 씌웠다. 능숙한 동작이었다. 선우는 그것마저도 마음에 안 들었지만, 잠자코 태화의 뺨에 뽀뽀했다. 뒤이어 뒷구멍으로 뭉툭한 게 닿았다. 태화의 귀두라는 걸 깨달은 선우는 긴장감에 몸을 웅크렸다.

“힘 풀어 봐.”

태화가 등을 살살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렇게 풀어 줬는데도 어떻게 바로 다물리냐.”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기도 했다. 선우는 태화의 말을 듣고 심호흡을 훅훅 내뱉으며 힘을 풀려고 노력했다. 이윽고 구멍이 벌어지며 좆이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아랫입술을 질근 짓씹으며 참아 봤으나 아팠다. 정말 너무 아파서 눈물이 쏙 빠질 정도였다. 손가락 두 개와는 차원이 다른 굵기가 내벽을 긁어 대듯이 들어오자 몸이 반으로 쪼개지는 것만 같았다.

태화도 진입이 녹록지 않은지 연신 짐승처럼 그르렁거렸다. 선우의 귀를 한입에 삼켜 우물거려 가며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흐윽…….”

선우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섹스 중에 꼴사납게 우는 짓은 하지 말아야지, 다짐한 게 하등 소용없었다. 아프고, 무서웠다.

내벽이 찢어지지는 않을까 걱정되었고, 제자리에 잘만 있던 장기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느낌에 겁이 났다. 이런 걸 왜 하려고 했는지 저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태화가 눈가에 입을 맞춰 주고 뺨을 타고 내려와 입술을 지그시 물며 빨아 줄 땐 그래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제 손목보다도 굵은 게 안을 끊임없이 뚫고 들어오는 감각에 눈물은 하염없이 흘렀다.

“진짜 잘 우네.”

“읏, 무섭고, 흑, 아픈데……. 어떡해요, 그럼. 아저씨 좆, 너무, 흐윽, 너무 커…….”

“그 큰 게 다 들어갔어. 윽……. 씨발, 그만 조이고 봐 봐.”

태화가 다시 이마를 꿍 찧으며 아래쪽으로 눈짓했다. 선우는 태화의 말에 덜덜 떨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정말이었다. 그 큰 자지가 전부 모습을 감춘 상태였다. 틈도 보이지 않게 맞닿은 접합부를 내려다보던 선우는 뭔가 가슴속이 간질거리는 것 같아서 태화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씨익 웃어 줬다. 거친 손이 선우의 뱃가죽을 살살 쓰다듬었다.

“근데 너 되게 말랐다.”

“아닌, 읏, 아닌데……. 나 살쪘는데…….”

“찌긴 뭘 쪄.”

태화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하지만 진짜였다. 선우는 태화의 집에서 산지 일주일 만에 2킬로그램이 불었다. 그 이후로는 체중계 위에 올라가 보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체감상 5킬로그램은 늘어난 것 같았다. 꽃다방에서 하도 못 먹고 살다 여기 와서 삼시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으니 살이 찌는 건 당연했다. 게다가 태화와 마주 앉아 먹는 밥은 꿀맛이라 원래 양보다 더 많이 먹게 됐다.

선우는 거울을 볼 때마다 확실히 이전보다 살이 올랐다고 생각했으나 태화의 눈에는 영 아닌 모양이었다. 혹시 태화가 글래머 타입을 좋아하는가 싶어서 걱정되었다.

“흐……. 그래서, 으응……. 그래서 싫어요……?”

“아니. 좋아. 마른 만큼 안도 존나 좁고.”

“더, 조일 수도 있어요……. 읏…….”

선우가 아랫배에 힘을 바짝 주자 태화가 미간을 무섭게 일그러뜨렸다.

“씹…….”

태화는 욕을 짓씹다가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으, 잠, 잠깐만……!”

쳐올리는 속도가 빨랐다. 지금까지 이성을 잘 붙들고 있던 사람이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눈이 돌았는지, 선우가 악 소리를 내는데도 태화는 아랑곳하지 않고 허리를 쳐올렸다.

“후으, 씹팔, 너 진짜, 하…….”

태화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입을 열면 욕이 나왔고, 그 뒤로 굵은 신음이 쏟아졌다. 처음이라 봐준다는 듯 굴던 서태화는 온데간데없었다. 선우는 하늘하늘한 종이 인형이라도 된 듯 태화의 움직임에 맞춰 사지를 팔랑거렸다.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가려 하자 태화가 서둘러 허리를 바짝 끌어안았다.

“아! 아, 아……! 흑…….”

선우는 하염없이 울었다. 저릿저릿한 쾌감은 느껴지는데 고통이 더 컸다. 뒷구멍이 한계까지 벌어지는 느낌이었다. 들어오면 안 될 곳을 마구 짓이겨 대는 감각은 낯설기만 했고, 벌을 받는 기분마저 들었다.

“악, 아파, 흐윽, 아파요……. 천천히…….”

“하……. 너도 힘 좀, 윽, 풀어 봐. 좆 끊어 먹겠어, 아!”

“나 처음인데, 하으, 제발요……. 살살, 아파.”

연신 아프다며 우는 소리를 내는 선우 때문에 태화는 결국 속도를 늦췄다. 천천히 박아 넣었다 빼내며 젤이 쩍쩍 늘어나는 소리를 들었다. 어찌나 조여 대는지 뒤로 빠질 때마다 발간 속살이 같이 딸려 나왔다가 쏙 모습을 감췄다.

명기도 이런 명기가 없다는 생각에 태화가 헛웃음을 짓는 사이 선우는 몸을 파들파들 떨며 그에게 안겼다. 단단한 몸에 매달려 엉엉 울었다. 태화와 섹스하면 마냥 기분 좋을 줄만 알았는데 지금은 그저 버겁기만 했다. 배 속으로 열기가 꽉 뭉치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뿐이었다. 조금 전 태화가 뒷구멍을 핥아 줄 때 바짝 섰던 좆도 말랑해져서 딸랑딸랑 흔들렸다.

“하아, 환장하겠네. 씹.”

태화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울기만 하는 선우를 바라봤다. 온 낯짝이 눈물범벅이었다.

“누가 보면 씨발 내가 너 억지로 따먹는 줄 알겠다. 아, 윽……. 실상 내가 따먹히는 거 아니냐?”

“흑……. 몰라요…….”

“그렇게 아파?”

묻는 말에 선우는 할 수 있는 대로 가장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팔랑팔랑 소리가 날 정도였다. 태화는 한 번 더 욕을 내뱉다가 통통하게 부어오른 선우의 눈가에 입을 맞추고 마른 몸을 훌쩍 들어 올렸다.

“아! 잠, 깐, 떨어져, 무서워……!”

“그러니까 꽉 잡아야지. 아니, 씹, 꽉 잡으라니까. 꽉 조이지 말고.”

“내려 줘요, 안 돼……. 아, 아!”

선우가 도리질 치는데도 태화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선우를 번쩍 안아 들고 허리를 쳐올렸다. 선우는 겁을 잔뜩 먹고 태화를 꼭 끌어안았다. 의외로 안정적인 자세였으나 덕분에 태화의 자지가 더 깊숙이 쳐들어왔다. 순간 선우는 고개를 휙 젖히고 악 소리를 질렀다.

“아으, 이거, 흣……! 아, 이상해…….”

굵다란 귀두 갓이 내벽 어딘가를 문지르자 눈앞이 핑핑 돌았다. 고통이 쾌락으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었다. 아픈 신음 대신 젖은 신음을 내지르자 태화는 똑같은 곳을 계속 비벼 댔다. 찌걱찌걱 소리를 내며 허리를 잘게 쳐올렸다.

바짝 맞붙은 몸 사이에 낀 선우의 자지도 다시 대가리를 쳐들었다. 선우는 이게 무슨 감각인지 알지 못했다. 자위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쾌감이었다. 허리가 달달 떨렸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태화의 자지가 내벽을 계속 찔러 주기만을 바랐다. 신음하느라 벌어진 입술은 다물어지지 않았고, 침마저 질질 흘렀다.

“아윽, 씨팔……!”

태화 역시 신음과 욕을 마구 내질렀다. 맞닿은 아래에서 철퍽이는 소리가 끊임없이 났다. 선우는 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섹스인가 싶었다. 이 정도의 쾌감이라면 손님들이 왜 그렇게 한 번만 대 달라고 했는지 이해되었다. 매일 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할 수만 있다면 온종일 태화와 붙어먹고 싶었다. 태화라서 좋았다. 이 사람은 자지도 뭐 이렇게 큰지, 한번 자극받기 시작하니 이젠 그가 찔러 줄 때마다 내벽이 좋다고 자지러지는 게 느껴졌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감각 앞에서 선우는 칠칠치 못한 모습으로 침뿐만 아니라 눈물 콧물을 죄 쏟아 내며 신음했다. 여자들이 내는 소리 못지않게 높은 교성이었다. 이런 소리가 제 입에서 나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선우는 입술을 꾹 말아 물었지만 소용없었다. 태화가 안을 파고들 때마다 저절로 입이 열리고 야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엉덩이도, 읏, 존나게 작아서는. 아까 넘어질 때 안 아팠어?”

“아팠어, 아팠어요. 아, 근데 지금은 안 아파, 흐윽, 좋아요……!”

“좋으면 싸. 나도, 하아, 쌀 거야.”

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화의 복근에 마구 비벼지던 좆이 움칠 떨리는 게 느껴졌다. 말갛게 솟아오르던 좆물은 어느새 탁하게 변해 있었다. 태화가 헉헉거리는 소리와 선우가 힉힉 떠는 소리가 합쳐졌다. 땀에 젖은 몸뚱어리끼리 마찰하는 소리도 났고, 질퍽이며 좆이 드나드는 소리도 났다.

“아아! 흣, 아……!”

선우는 정신없이 사정했다. 튀어 오른 정액이 태화의 가슴골에 달라붙었다가 주룩 흘러내렸다. 사정이 이어질수록 내벽도 요동쳤다. 태화는 선우의 입술을 찾아 물었다가 고개를 더 숙여 희멀건 목덜미를 세게 짓씹었다. 선우는 아픈 줄도 몰랐다. 머리를 치고 올라온 절정에 덜덜 떨며 남은 정액을 쏟아 냈다.

“씹할……!”

태화가 허리를 강하게 쳐올리자 선우는 악 소리 질렀다. 엉덩이 근육까지 쥐어짜 내 가며 깊이 처박힌 귀두가 들어오면 안 될 곳까지 찌르는 게 느껴졌다. 장기가 곧게 펴지는 감각이었다. 선우의 입에서 비명 같은 신음이 나오는 동안 태화도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어느 부분이 귀두를 꽉 조여 매는 느낌이었다. 찌걱대며 몇 번 더 같은 지점을 드나드는데 그때마다 귀두가 압박되었다.

“아, 안 돼……! 거기, 아아……!”

선우는 이 감각이 뭔지 몰랐으나 더 쳐들어오면 안 될 것 같았다. 얇은 뱃가죽이 불룩불룩 올라왔다.

“아윽!”

태화는 신음을 쏟아 내며 사정했다. 거칠었던 움직임이 뚝 끊기자 선우는 그만 무너지듯 태화의 어깨로 낯을 묻었다. 얼마나 많이 싸는지 자지가 계속 꿀렁이는 게 느껴졌다. 오줌이라도 싸는 것 같았다.

사정하고도 몇 번 더 허리를 쳐올리던 태화는 선우가 훌쩍이는 소리를 듣고서야 추삽질을 멈췄다. 많이 힘들었는지 선우의 몸에서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온몸이 감전된 것처럼 파들거렸다.

다시 책상 위로 내려온 선우는 겨우 고개를 들어 태화를 봤다. 그렇게나 여유 있던 사람이 땀을 뚝뚝 흘리며 옅게 신음하고 있었다. 선우는 희미하게 웃었다.

“나……. 하아, 나 잘했어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물었다. 아직도 눈물이 줄줄 흐르는 게 느껴졌지만, 태화를 보자마자 웃음만 나왔다. 뒷구멍에서 자지를 빼내던 태화는 씹, 욕을 갈기더니 결국 한 번 더 뿌리 끝까지 콱 쑤셔 넣었다. 선우가 펄쩍 뛰자 피식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 어찌나 많이 쌌는지 콘돔 밖으로 정액이 비어져 나오고 있었다.

태화는 좆에서 콘돔을 빼내고 바닥으로 대충 던졌다. 새어 나온 정액이 묻어 끈적이는 손으로 선우의 엉덩이를 톡톡 두드렸다.

“어. 존나게 잘했어.”

“흐으……. 아저씨도 잘했어요. 진짜 좋았어요, 읏…….”

“넌 진짜.”

태화가 한숨을 푹 쉬었다. 선우는 또 말을 잘못했나 싶어 입을 꾸욱 다물었다. 한 번만 봐 달라는 식으로 태화의 목덜미를 슬며시 끌어안았다. 한숨을 쉬던 그가 돌연 씨익 웃었다.

“난놈이다.”

눈웃음 진 눈이 선우를 응시했다. 선우는 옅은 다갈색 눈동자를 빤히 바라봤다. 반들반들한 눈동자 속에 제 모습이 비쳤다. 아직도 여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젖은 숨을 내쉬는 최선우가 보였다.

선우는 똑같이 눈웃음치며 태화에게 쪽 뽀뽀했다. 완벽한 첫 경험이었다.

“으응…….”

선우는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한 번에 떠지지 않아서 몇 번 끔뻑여야만 했다.

간신히 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12시 6분이었다. 이상했다. 어제 분명 새벽에 태화와 섹스했는데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 있었다.

연신 이상하다, 이상하다, 생각하던 선우는 창문으로 환한 빛이 들어오는 걸 보고서야 밤이 아니라 낮이라는 걸 깨달았다. 정오가 넘을 때까지 늦잠을 자 본 게 오래라 놀란 눈을 뜨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아윽……!”

하지만 그대로 다시 푹 고꾸라졌다. 허리가 너무 아팠다. 허리만 아프면 다행이지 허벅지 안쪽도 따끔거렸고, 엉덩이 골 사이는 무지근하게 저렸다. 온몸의 근육이 아우성치는 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던 선우는 비로소 잠들기 전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태화와 섹스를 했다. 한 번이면 족할 줄 알았는데, 그는 장장 세 번이나 쌌다.

서재에서 한 번, 나머지 두 번은 태화의 방으로 옮겨 와서 했다. 그는 세 번이었지만 선우는 좆물이 더는 안 나온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정도로 많이 쌌다. 마지막엔 정말 더는 못 하겠다고 사정사정을 해서 길었던 섹스가 끝날 수 있었다. 물론 태화는 만족하지 못한 얼굴로 자지를 슥슥 문지르며 눈치를 줬었다.

선우는 끙 앓는 소리를 내며 허리를 툭툭 두드렸다. 처음이라고 말했건만 태화는 그래서 뭐 어쩌라는 식으로 거칠게 몰아붙였다. 허리가 남아날 리 없었다. 새삼 운동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그래도 엄청 좋았지…….”

지난밤을 회상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처음 하는 데다가 태화의 자지가 기함할 정도로 커서 초반에는 엉엉 울 만큼 아팠지만 어쨌거나 선우는 뒤로 느끼는 법을 확실히 배웠다. 뒤로 가는 건 자위하는 것보다도 더 큰 쾌감이었다. 구태여 그런 쾌감이 아니더라도 태화와의 섹스는 너무 좋았다. 몸이 맞닿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제 작은 엉덩이가 귀엽다고 말해 주던 태화의 목소리가 여태 선명하게 기억났다. 선우는 혼자 키득키득 웃다가 옅은 진동에 가랑이 사이가 너무 아파 웃음을 뚝 그쳤다.

문득 밖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부터 맛있는 냄새가 났다. 원래 점심 당번은 선우였지만 태화가 대신 밥을 차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선우는 조용히 미소만 지으며 태화의 이불 속으로 낯을 파묻었다. 그가 항상 풍기는 머스크 향이 이불에서도 느껴졌다. 어떻게 체향마저도 좋은지 몰랐다.

“최우선. 밥 먹어.”

태화가 대뜸 불렀다. 선우는 고개를 퍼뜩 들고 문 쪽을 쳐다봤다.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최우선!”

한 번 더 부르는 소리에는 아예 눈살을 찡그리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최우선이라니. 어떻게 아직도 이름을 헷갈리지?”

선우는 혼잣말로 툴툴거렸다. 태화는 종종 선우의 이름을 틀리게 불렀다. 최선우라고 제대로 부를 때도 있었으나 지금처럼 최우선이라고 부를 때도 있었다.

선우는 제 이름 석 자 하나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태화가 야속했다. 다른 때 같으면 그냥 넘겼을 수 있었지만, 배까지 맞춘 사이에 이름을 틀려 버리니 마음이 꽁했다. 선우는 아무 말도 못 들은 척 눈을 꼬옥 감았다. 순간 방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불이 홱 걷혔다.

“내 말 안 들려?”

“…….”

“야!”

태화가 호통치듯 부르자 선우는 또 곧바로 눈을 떴다. 그가 침대 앞에 서 있었다. 또 뭔 바람이 불어서 지랄이냐는 표정이었다. 지난 새벽 제 젖꼭지를 빨며 장난스레 웃던 사람이 맞나 싶었다.

“내 이름은 최선우예요. 최우선이 아니라.”

“뭐?”

“전에도 틀리고…….”

선우는 뒷말을 웅얼거리며 시선을 돌렸다. 막상 말하기는 했는데 괜스레 눈치가 보였다. 섹스 한번 했다고 태화가 안 때릴 것 같지는 않았다. 태화에게 맞았던 기억이 너무 강렬하게 남은 나머지 시도 때도 없이 몸을 사리게 되었다. 시트를 꾹 말아 쥐며 눈동자를 도록도록 굴리다가 다시 그를 올려다봤다. 태화는 무감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와서 밥 먹으라고. 응? 최선우.”

태화의 입에서 제대로 된 이름이 나오자 선우는 순식간에 환한 웃음을 피워 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문제는 허리였다. 허리 근육이 결리는 느낌에 아야야……. 소리를 내자 태화가 쯧 혀를 차고 나갔다. 선우는 허리를 통통 두드리다가 겨우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둘은 마주 앉아서 점심을 먹었다. 새벽에 힘을 써서 그런지 밥이 잘 들어갔다. 태화는 이미 두 그릇을 거의 다 비우고 한 그릇을 더 가져와 선우에게 반을 덜어 줬다. 선우도 한 그릇 반을 다 먹었다.

태화가 차렸으니 치우는 건 선우의 몫이었다. 선우가 설거지하는 사이 태화는 서재에 들어가 남은 점심시간 동안 책을 읽었다. 설거지를 다 마친 선우도 서재로 쪼르르 갔다. 문 앞에 서서 쭈뼛거리자 태화가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와도 된다는 허락의 몸짓에 선우는 배시시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서재를 한번 둘러봤다. 새벽에 여기서 있었던 일들이 믿기지 않았다. 두 사람의 체액으로 흥건하게 젖었던 책상은 말끔해져 있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콘돔도 안 보였다.

“정신 사납게 할 거면 나가든가.”

태화가 작게 말했다. 빨빨거리며 서재를 둘러보던 선우는 그제야 눈치를 보고 남는 의자에 앉아 책 읽는 태화를 구경했다. 태화는 독서가 취미인 듯했다. 아침에도 서재에서 책 몇 권을 챙겨 정육점으로 내려가 손님이 없는 틈틈이 읽었고, 점심시간에는 밥을 먹고 나면 아예 서재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활자와 영 친하지 않은 선우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책이 재밌어요?”

“어.”

고민도 없이 대답이 나왔다. 선우는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또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태화가 책장 넘기는 소리만 일정하게 울려 퍼졌다.

선우는 그 앞에서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태화를 기웃거렸다. 태화가 눈길도 주지 않아서 의자를 끌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태화가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 성가시게 굴지 말라는 표정이었다. 선우는 그 표정을 다 읽었으면서도 모른 척 태화에게 바짝 붙었다.

“저한테 어울리는 책 추천해 주세요.”

“어울리는 책이 어디 있어. 책은 읽는 거야, 장식이 아니라.”

태화는 짧게 대답하고 다시 책에 집중했다. 선우는 태화를 한참 바라보다 고개를 푹 숙였다. 발끝을 보며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달라진 게 없었다. 하기야 배 좀 맞췄다고 연인이 되는 건 아니었다. 우림동에서 지내며 숱하게 봐 왔다. 우림동을 찾는 남자들은 좆물을 빼기 전에는 세기의 사랑이라도 하는 것처럼 굴다가 볼일 다 보고 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갔다. 가끔 주기적으로 같은 아가씨를 찾는 남자들도 있었으나 목적은 전부 같았다. 그네들은 업소 여자들과 연애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정액을 배출하는 용도로만 생각했다. 선우도 그 용도로 쓰여 봐서 잘 알았다.

그래도 태화는 좀 다를 줄 알았는데 역시 착각이었나 보았다. 주책맞게 또 눈물이 차올라서 맺혀 떨어지기 전에 먼저 문질렀다. 어찌나 세게 문지르는지 벅벅 소리가 날 정도였다. 얇은 살갗이 벗겨져라 문지르고 있는데 태화가 손목을 잡아챘다.

“청승 그만 떨고.”

선우는 고개를 들어 태화를 봤다. 그는 턱짓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태화의 시선을 따라가자 책장이 보였다. 뭐, 책장 앞에 가서 벌이라도 서라는 건가 싶어서 선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위에서 세 번째 칸, 왼쪽에서 다섯 번째 책.”

태화는 그렇게만 말하고 손목을 놨다. 선우는 한 번 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곧 눈을 크게 떴다. 한달음에 책장 앞으로 갔다.

“위에서 세 번째, 왼쪽에서 다섯 번째.”

태화의 말을 따라 중얼거리며 책장을 살폈다. 선우의 눈이 반짝였다. 태화가 말한 자리에는 <이방인>이라는 제목의 책이 꽂혀 있었다. 단번에 책을 꺼내 들었다. 제목도 그렇고, 표지도 그렇고 그다지 재밌는 책은 아닌 것 같았지만 그래도 마냥 좋았다. 책을 들고 다시 태화 옆에 앉았다.

“책 위치를 다 외워요?”

“어느 정도는.”

태화는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선우는 태화를 빤하게 쳐다봤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조금 전까지는 그렇게 야속할 수 없더니 지금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설렜다. 자신이 이상한 건지, 서태화가 이상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선우는 태화 곁에 있으면 감정이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널을 뛰었다.

“왜. 또 뭐.”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는지 태화가 고개를 들어 눈을 맞췄다. 선우는 자신을 향한 시선을 오롯이 받아 내며 활짝 웃었다.

“섹시해서요.”

여과 없이 튀어나온 말에 태화의 미간이 구겨졌다. 읽던 책을 덮고 그대로 선우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평소와 달라진 것 없이 강한 힘이었다.

“까불지 말고 책이나 읽어라.”

그렇게 말한 태화는 다시 책을 펼쳐 읽던 부분부터 읽어 내려갔다. 선우는 괜스레 정수리를 문지르다 그를 따라 책을 펼쳤다. 모친이 오늘 죽었는지 어제 죽었는지 모르겠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책은 별로 재미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독서는 선우의 흥미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선우는 1시가 될 때까지 태화의 옆에 꼭 붙어 앉아 책을 읽었다. 읽는 척 태화를 힐끔거렸다. 가끔 그가 집중 안 하냐며 타박했고, 그럴 때마다 선우는 파드득 떨며 다시 책에 집중하는 척했다. 척만 해서 페이지가 영 넘어가지 않았다.

창문을 통해 햇빛이 차르르 들었다. 새벽 내내 내리던 장대비가 그치고 해가 떴다. 태풍이라도 오는 줄 알았더니 지나가는 비였나 보았다.

선우는 제 발끝을 적시는 햇빛을 내려다보며 엷게 웃었다.

* * *

선우는 씻는 것에 민감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가난한 사람이 가난의 때를 벗길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깨끗하게 씻는 것이라는 부친의 가르침이 있었다. 몸에서 좋은 향기가 나면 상대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고도 했다.

덕분에 학창 시절 선우는 좋은 향이 난다는 말을 심심찮게 들어왔으나 그것도 오래 가지 못했다. 스무 살에 우림동으로 오고서부턴 늘 옅은 비린내와 함께 생활했다. 그건 살갗이 벗겨질 정도로 벅벅 문지르고, 아무리 오래 씻어도 벗겨지지 않는 냄새였다.

선우는 제 몸에서 나는 비린내를 맡을 때마다 제 삶은 딱 이 정도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비린내가 옅게 부유하는 정도.

“아니야…….”

선우는 혼잣말을 웅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뭐 한다고 꽃다방에서 지내던 시절을 떠올리는지 몰랐다. 지금 선우의 몸에는 비린내 대신 은은한 머스크 향이 났다. 태화의 몸에서 나는 것과 같은 향기였다.

태화가 쓰는 바디 워시로 씻으면 기분이 금세 좋아졌다. 원래 이쪽 계열 향을 좋아하는지 샴푸에서도 비슷한 향기가 났다. 금세 기운을 되찾은 선우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거품을 헹궜다. 가사를 잘 알지는 못했는데, 가끔 태화가 틀어 놓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이었다.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도 이런 여유를 누리지 못하고 살았을 터였다. 태화는 키워 준다는 표현을 썼지만, 선우는 여전히 구원이라고 생각했다.

비 오던 날 새벽 가게 앞에서도, 지영환을 죽이던 날에도, 삶에 불쑥 끼어들었던 첫 만남 역시도. 선우에게 있어 그 모든 순간은 구원이었다. 그러니 서태화는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다 씻고 밖으로 나오자 이번에도 서재 쪽에 불이 켜진 게 보였다.

“또 지뢰 찾기 하나?”

선우는 먼저 서재로 갈까 하다가 또 한 소리 들을까 봐 옷부터 입고 나왔다. 태화의 옷이라서 조금 컸다. 여기 온 지도 시간이 꽤 지났는데 아직 옷 한 벌 사지 못했다. 당연했다. 선우는 돈이 없었다. 그렇다고 태화에게 옷을 사 달라고 말할 깜냥도 없었다. 게다가 태화의 옷을 입는 게 마냥 나쁘지만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고무줄 바지여도 커서 자꾸만 흘러내리는 게 유일한 흠이기는 한데 아무렴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골반에 걸려 있는 바지를 추켜올리며 서재로 향했다. 태화는 예상한 대로 지뢰 찾기를 하는 중이었다. 다른 재밌는 게임도 많은데 왜 맨날 저걸 하는 걸까 궁금했다. 선우는 눈치를 보다가 서재 안으로 들어갔다. 제가 왔다는 걸 분명히 알 텐데도 태화는 별 반응 없이 지뢰 찾기에만 집중했다. 선우도 딱히 서운해하지 않고 의자를 끌어 태화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태화가 마우스를 움직이는 동안 선우는 그를 빤히 쳐다봤다.

“얼굴 뚫어지겠다.”

태화가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태화는 뒤통수뿐만 아니라 관자놀이에도 눈이 달린 게 분명했다. 선우는 제 시선이 들킨 것 같아서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때까지도 태화는 모니터만 바라보며 마우스를 달칵달칵 클릭하고 있었다. 컴퓨터를 할 때면 항상 끼는 안경을 낀 채였다.

“눈이 많이 나빠요?”

선우가 묻자 태화는 그제야 옆을 돌아봤다.

“아니, 정상.”

“근데 왜 안경을 써요?”

“블루 라이트 차단.”

“아.”

선우는 작게 웃었다. 그 바람에 태화의 눈썹이 들썩였다.

“왜 웃는데?”

“그거 효과 별로 없어요.”

“뭐?”

“예전에 손님으로 자주 오던 안경사가 말해 줬는데 블루 라이트 차단, 이런 거 다 상술이래요. 뭐, 도움이 조금은 된다고 하는데 렌즈값에 비하면 별로라고.”

“에이, 씨팔.”

태화는 쥐고 있던 마우스를 대충 내려놨다. 속았다는 기분이 드는지 미간이 구겨졌다. 인상은 안 좋은데 화난 것 같지는 않아서 선우는 태화를 보며 조금 더 짙게 웃었다. 아무래도 비싼 돈을 주고 맞춘 안경인가 보았다. 쯧, 혀를 차는 태화를 가만 바라보다 손을 뻗었다.

“그리고 안경 안 쓴 게 더 잘생겼는데.”

선우는 주저하지 않고 태화의 안경을 벗겼다. 확실히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민얼굴이 가장 잘생겨 보였다. 요즘은 남자들도 귀를 많이 뚫는데 태화는 귀도 깨끗했다. 귀 뚫은 흔적 하나 없이 매끄러운 귓불을 보는 눈이 반짝였다.

“야.”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태화를 찬찬히 뜯어보던 선우는 한순간에 정신이 번뜩 돌아왔다. 그는 조금 전보다도 더 미간을 짙게 구기고 있었다. 선우는 본능적으로 이를 악물었다. 뺨을 맞더라도 혀를 깨물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태화는 손을 올리는 대신 짜증스레 뜬 눈으로 선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뚫어진다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할 것 같았다. 선우는 긴장감 때문에 모인 침을 꼴깍 삼켰다. 태화가 화가 난 건지 아닌지 헷갈렸다. 저를 쳐다보는 눈동자에 든 게 분노인지, 애욕인지, 다른 무엇인지 알기 힘들었다. 뭐가 됐든 첫 번째는 아니길 바라며 연신 침만 꼴딱꼴딱 삼켜 댔다.

한참 만에 미간 주름을 편 태화는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넌 뭐 어디서 그런 거 연구해?”

“어떤 거요?”

선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물었더니 태화는 한 번 더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는 조금 길었다. 약간 일그러진 눈이 선우를 찬찬히 훑었다. 방금 막 씻고 나와서 촉촉하게 젖은 머리카락과 발그레하게 상기된 뺨, 아직도 습기를 머금은 입술을 차례차례 봤다. 그러더니 태화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도 없이 서재를 나갔다.

졸지에 홀로 남겨진 선우는 태화가 앉았던 의자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반대쪽으로 갸우뚱 기울였다. 그때 멀어지던 걸음 소리가 다시 가까워졌다. 쿵쿵쿵, 유난히 힘이 실린 소리였다. 선우가 돌아보기도 전에 태화가 먼저 선우의 턱을 잡아끌었다.

“입 벌려.”

낮은 목소리를 들으며 선우는 눈을 꼬옥 감았다. 단단한 살덩이가 목구멍까지 박혀 들어올 거란 예상과는 달리 말캉한 혓바닥이 들어왔다. 선우는 금방 눈을 떴다. 너무 가까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눈앞으로 태화가 바짝 붙어 있었다.

“아……!”

아랫입술을 세게 빨아들이는 힘에 절로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태화가 입 안으로 또 한번 욕을 뇌까렸다. 선우는 입 안을 가득 채우는 열기를 느끼며 태화의 목덜미를 껴안았다. 의자에 앉아 있는 제게 키스하느라 그 큰 몸을 굽혀 다가온 태화가 좋았다. 너른 등을 더듬거리자 태화도 더는 못 참겠던지 선우를 번쩍 안아 들었다. 순식간에 눈높이가 바뀌었다. 위에서 태화에게 키스를 퍼붓게 된 선우는 그의 반들반들한 귓불을 만지며 엷게 웃었다.

“하……. 또 할 수 있겠어?”

태화가 잠깐 입술을 떼며 묻는 말에 선우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질척한 키스에 혼이 다 빠져 뭘 묻는 건지 몰랐으나 그냥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또 아프다고 징징거릴 거야?”

“아니, 안 그래요. 그냥 좋다고만 할 거예요.”

“진짜?”

선우가 계속 고개를 팔랑팔랑 끄덕이자 태화도 더 묻지 않고 선우에게 입술을 쭉 내밀었다. 선우는 장난치듯 뒤로 물러났다가 태화가 아래로 떨어뜨리려는 듯이 몸을 훅 끌어 내리는 바람에 악 소리를 내며 바짝 매달렸다. 그가 씨익 웃었다.

장난이라는 걸 깨달은 선우는 눈을 밉지 않게 흘겼다. 태화의 입꼬리에 쪽쪽 입을 맞추다가 다시 그의 입 안으로 느릿하게 혀를 밀어 넣었다. 좋은 향기가 났다. 매일 맡던 지긋지긋한 비린내가 아니라, 정말 좋은 향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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