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태화의 기면증이 시작된 건 열두 살 무렵이었다. 끝난 건 열여덟 살이었다. 6년간 태화를 끈질기게 괴롭히던 기면증은 열여덟, 땀 냄새와 오줌 냄새, 살려 달라고 비는 듣기 싫은 여자 목소리와 약에 취해 낄낄거리기만 하는 또 다른 여자의 째지는 음성이 가득한 지하 창고에서 감쪽같이 고쳐졌다.
그 순간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빨간색 매니큐어를 바른 조악한 손톱이었다. 관리하지 않아 군데군데 갈라지고 모나게 찢어진 손톱이 눈앞으로 쑤욱 다가온 순간 태화는 헉!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하아, 하……. 후……. 씹…….”
숨을 짧게 나눠 쉬어 가며 달랬다. 기면증으로 깜빡 자다 일어날 땐 항상 좆같았다. 그래도 이렇게 꿈을 꾼 적은 없었는데 여러모로 거지 같은 상황이었다. 몇 번 더 숨을 고르며 눈을 끔뻑이다 문득 네모난 천장이 낯설다는 걸 깨달았다. 제 방 사이즈라기에는 너무 작았다.
술을 진탕 마시고 취해 잠들었다 일어난 것처럼 깨질 듯한 머리를 감싸며 몸을 일으켰다. 촌스러운 물방울 자수가 잔뜩 들어간 솜이불과 시장 좌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초록 바탕의 꽃무늬 베개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옆에는 검은색 우비가 단정하게 개켜 있었다. 그제야 태화는 주변을 돌아봤다.
이발 용품이 쌓인 트롤리와 이발소 의자, 분홍색 면 보자기까지……. 꽃다방의 면도방이었다.
“씨발.”
일이 틀어져도 한참 틀어졌다는 생각에 아예 이불 밖으로 나와서 일어섰다. 손바닥만 한 창밖은 아직 어두웠다. 하루를 꼬빡 자고 다시 밤이 된 건가 싶어 시계를 봤더니 오전 4시 37분이었다. 디지털시계라 날짜도 표시됐는데, 다행히 꽃다방에 발을 들인 다음 날짜였다. 전날 오후 11시가 조금 넘어 왔으니 얼마 자지 않고 일어난 것이었다.
한숨을 옅게 쉬고 있는데 밖에서 찰박거리는 물소리가 들렸다. 사람의 발걸음 소리까지 들은 태화는 우비를 주워 밖으로 나갔다. 홀까지 나오자마자 헛웃음이 쏟아졌다.
“너 뭐 하냐?”
툭 던진 말에 크리스마스트리 옆에 서 있던 선우가 파드득 놀라며 두리번거렸다. 태화를 발견하고는 눈을 반짝 뜨기도 했다. 티가 날 정도로 낯빛이 밝아졌다. 커다랗게 뜬 눈을 이리저리 굴리던 선우는 태화를 슬며시 쳐다보며 작게 웃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수줍은 목소리였다. 선우는 뺨까지 발그레하게 붉히고 다시 시선을 내리깔았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속눈썹이 팔랑팔랑 날갯짓했다. 태화는 입꼬리를 씰룩이며 웃는 선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얼굴도 예쁜 게 저런 말을 하니 참 곱게 들렸는데, 문제는 상황이 영 곱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진짜 어디 나사 하나가 빠진 놈 같았다.
게다가 크리스마스는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었다.
“메리 크리스마스는 개뿔.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보네.”
태화가 작게 중얼거렸다. 선우는 목소리에 반응하듯 고개를 바짝 들어 올렸다. 바닥을 쓱쓱 밀던 대걸레를 다시 구정물이 담긴 빨간 대야에 넣고 태화를 마주 봤다.
“아, 죄송해요. 방으로 옮겨서 편히 주무시게 하고 싶었는데, 너무 무거워서……. 그래서 그냥 베개랑 이불만이라도 가져…….”
“아니. 너 지금 뭐 하냐고.”
하고픈 말을 다다다다 쏟아 내는 걸 끊고 태화가 물었다. 선우는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보면 모르냐는 얼굴이었다. 태화는 눈을 말똥말똥 뜨는 선우를 빤히 쳐다봤다.
얼굴은 어제보다도 더 엉망이었다. 멀건 얼굴일 땐 그래도 봐줄 만하다고 생각했던 게 지금은 붉으락푸르락 아주 그냥 꽃밭이었다. 살성이 어지간히 약한지, 기억으로 영환에게 고작 귀싸대기 몇 대 맞고, 물 주먹 같은 걸로 얼굴 좀 터진 게 전부였는데 여기저기 멍이 안 든 곳이 없었다. 한쪽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볼썽사나운 낯짝을 가만히 들여다보기만 하자 선우는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청소……. 하고 있었는데.”
“이 새벽에?”
선우와 태화는 서로를 마주 보고 서서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둘 다 상대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어제 사람 죽였잖아요.”
여상한 음성만큼 선우의 표정도 무던했다. 태화가 왜 저런 얼굴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어제 태화는 사람을 죽였고, 선우는 그걸 도왔다. 물론 실질적으로는 걸리적거리기만 했던 것 같지만 어쨌든 선우는 태화와 무언가를 함께했다는 사실에 새벽 내내 너른 꽃다방을 청소하면서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어젯밤 라디오에서 처음으로 들었던 노래까지 아무렇게나 흥얼거리며 걸레질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태화는 그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만 지으니 자신이 뭘 잘못한 건가 싶었다. 약간 구겨진 눈매 안에 든 다갈색 눈동자는 선우의 그런 생각을 전부 읽어 내려갔다.
“그래서 뭐, 증거 인멸, 그런 거 하고 있는 거야?”
태화가 묻자 선우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발을 하기는 하는지, 목덜미까지 기다랗게 늘어진 머리카락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오랜만에 기면증을 앓고 일어나서 그런가, 태화는 온몸의 감각이 예민해져 있는 게 느껴졌다. 거의 다섯 걸음이나 떨어져 있는데 선우에게서 묘한 냄새가 났다. 잠들기 직전에 맡았던 그 냄새였다.
본능적으로 숨을 깊게 들이켜던 태화는 이내 쯧 혀를 차고 주변을 둘러봤다. 어찌나 깔끔하게 했는지 온 바닥에서 번쩍번쩍 빛이 났다. 문제는 그게 안 보였다.
시체.
“시체는 어쨌는데?”
홀에는 없는 것 같고, 잠들었던 면도방에서도 시체는 보지 못했다. 살아 있는 놈을 옮기는 것도 힘들 텐데, 죽어 늘어진 시체를 선우가 어디로 어떻게 옮겼는지 감도 안 잡혔다.
시체 처리 방법도 제대로 모를 텐데.
“삶고 갈아서 변기통에 버렸어요.”
“뭐?”
그냥 어디에다 던져 놨겠지, 생각하던 태화는 눈을 크게 뜨고 선우를 봤다. 너무 제대로 알고 있어서 조금 놀란 참이었다. 두 눈을 번뜩이며 쳐다보는 시선에 선우는 아……. 소리를 내며 눈치를 보더니, 입술을 우물거렸다.
“……그러려고 했는데 도저히 못 하겠어서 화장실에 치워 놨어요.”
미친 새끼.
태화는 욕이 나가려던 걸 참고 미간을 구겼다. 지금 저를 가지고 노는 건가 싶어 빤히 쳐다봤으나 전혀 그런 의도는 없어 보였다. 오히려 겁에 약간 질린 눈이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상한 놈에게 걸려도 단단히 걸렸다는 생각이 점점 짙어졌다.
금방이라도 죄송하다는 말이 튀어나올 만큼 잔뜩 주눅 든 낯을 보고 있자니 속이 답답해져서 짧게 한숨을 내쉬고 곁으로 다가갔다.
“어디야.”
“네?”
“넌 씨발 한 번 말하면 좀 알아들어라. 화장실 어디냐고?”
거칠게 으르는 말에 선우는 쭈뼛거리며 앞장섰다. 태화는 고작 제 턱 정도에 오는 동그란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뒤따랐다. 어제와 같은 냄새인 줄 알았는데, 찬찬히 숨을 들이켜자 햇볕에 바짝 말린 행주 냄새가 났다. 걸음을 뗄 때마다 새카만 머리카락이 나풀거리면 향이 코끝을 톡 치고 들어왔다. 싸구려 냄새인 게 확실한데 어째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다.
“여기요.”
조촘조촘 걷는 걸음을 따라 도착한 화장실은 의외로 넓었다. 어울리지 않게 샤워기도 있는 걸 보면 다방이 비단 커피만 파는 곳은 아닌 모양이었다.
뭐, 어젯밤에 남의 좆을 빠는 최선우를 본 걸로 이미 증명되긴 했지만…….
너른 욕실을 위에서부터 찬찬히 훑어 내려오던 태화는 바닥에 있는 걸 보고 살짝 웃었다.
“허…….”
한숨 비스름한 웃음소리까지 내며 선우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차가운 타일 바닥에는 옷이 싹 다 벗겨져 널브러진 지영환이 있었다.
정확하게는 지영환이었던 고깃덩어리.
이미 입에서 녹갈색 물을 질질 흘리는 시체는 이제 악취마저 풍겼다. 정육점을 하며, 또 이 일을 하며 시체 썩은 내는 숱하게 맡아 온 태화였지만 이 냄새는 영 적응되지 않았다.
코끝을 살짝 구기며 시체를 살폈다. 케이블 타이가 어디 갔나 했더니 시체의 두 손발이 꽉 묶여 있었다.
“손이랑 발은 왜 묶어 놓은 거야?”
“혹시라도 살아 있을까 봐…….”
태화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슬슬 저었다. 철두철미하다고 해야 할지,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감이 잘 안 잡혔다. 일 처리를 꽤 깔끔하게 해 놓은 걸 보면 마냥 머저리는 아닌 거 같은데, 맥 한 번만 짚어 보면 뒈졌는지 살았는지 알 것 같다가 무작정 손발부터 묶어 놓은 꼴을 보니 또 그저 맹추 같았다.
시체를 앞에 두고도 나만 보는 걸 보면 그냥 싸이코이고.
태화는 피식 웃으며 주머니에서 잭나이프를 꺼내 손목에 감긴 케이블 타이를 툭 끊었다. 발목도 끊으려다가 어차피 다시 묶어야 한다는 생각에 놔뒀다. 다시 상체를 일으켜 꼿꼿이 서서는 욕실을 한 바퀴 휙 둘러봤다. 마침 방범용 창살이 달린 작은 창문 하나가 있었다. 창문을 열어 창살을 쥐고 몇 번 흔들어 봤다. 이만하면 쓸 만하겠다 싶었다.
“뭐 하세요?”
“이제 삶고 갈아서 변기통에 버리려고.”
어느새 옆으로 바짝 다가온 선우의 물음에 태화는 별스럽지 않게 대꾸했다. 손을 탁탁 털며 선우를 보는데 놀란 얼굴이었다. 제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준 것뿐이었는데 댕그랗게 커진 눈을 보니 제법 놀릴 맛이 났다.
“왜? 이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걸 알고 말한 줄 알았는데?”
선우는 태화를 올려다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창밖은 컴컴했는데, 화장실 전등 빛을 받아서 그런지 태화의 낯이 세상 환했다.
“그리고 그냥 무작정 널어놓으면 냄새나.”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던 태화는 선우에게서 시선을 떼더니 갑자기 허공을 이리저리 쫓았다.
“핏물을 빼야지.”
탁!
태화는 말끝으로 화장실 벽을 힘껏 때렸다. 그 바람에 화들짝 놀란 선우는 어깨를 파드득 떨며 뒤로 주춤 물러나기까지 했다. 하마터면 넘어질 뻔해서 태화가 팔뚝을 붙들어 세웠다. 선우의 눈앞으로 커다란 손이 불쑥 다가왔다. 버릇처럼 눈을 질끈 감는데 팔뚝을 잡던 손이 이번에는 눈 아래를 쿡쿡 찔러 댔다.
“봐 봐.”
선우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너른 손바닥 안으로 콩알 같은 게 뭉그러져 있었다.
“벌써 파리 꼬이잖아.”
방금 막 터져 죽은 파리였다. 이유 없이 너무 많이 맞고 산 탓에 절로 잔뜩 긴장했던 근육이 슥 풀렸다. 미간을 약하게 찡그리자 태화는 뭐가 우스운지 씨익 웃더니 세면대로 가 손을 씻었다.
“내 가방 얻다 치웠어.”
“네? 아, 홀에요.”
무의식적으로 또다시 되묻던 선우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태화는 거울을 통해 재빠르게 움직이는 뒷모습을 보며 또 한번 픽 웃음을 흘렸다. 그러다 거울 속 웃고 있는 저와 눈이 마주쳤을 때는 웃음기를 싸악 거둬 냈다. 이상한 놈이랑 같이 있으려니 본인까지 이상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닌가. 나도 원래 이상한 놈인가.
태화가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다시 웃는 동안 선우는 어젯밤 그가 홀에 올려 뒀던 더플백을 들었다. 그 밑에 김장 김치 통처럼 보이는 것도 있었는데, 그가 찾은 건 가방이니 가방만 들고 갈까 하다 혹시 몰라 커다란 통도 챙겼다. 갈색 김치 통 위에 가방을 얹어 들고 가자 태화는 잘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 들었다.
“나가 있어.”
태화가 말했지만, 선우는 뒤로 두어 발자국 물러나기만 했다.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태화는 선우를 힐긋 보며 다시 나가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이제부터 꽤 역겨운 일이 벌어질 텐데, 안 나가면 선우만 손해였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선우는 화장실 문턱 앞에 다소곳이 서서 태화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태화는 가방을 열어 우비와 같은 재질의 비닐과 청 테이프를 꺼냈다. 샤워기가 있는 쪽 바닥에 비닐을 너르게 깔고 주변 벽에도 꼼꼼하게 붙였다. 다시 시체 앞으로 와서는 가방에서 꺼낸 산악용 로프를 발목에 묶인 케이블 타이에 단단히 고정하더니 시체를 번쩍 들어 조금 전 열어 둔 창문 앞으로 가져갔다.
선우는 새삼 태화의 힘에 감탄했다. 몇 시간 전 태화가 까무룩 잠들었을 때 영환의 시체를 화장실까지 혼자 옮기던 선우는 바닥에 엉덩방아를 몇 번이나 찧었는지 몰랐다. 두 다리를 각각 옆구리에 끼고 질질 끌다가 힘이 빠져 넘어지길 여러 차례였다.
저는 간신히 옮긴 걸 태화는 별 힘든 기색 없이 쉽게 들어 옮겼다. 우비를 입었을 때도 몸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검은색 목 폴라 티셔츠만 입고 있는 지금은 위협적으로 굼실거리는 근육이 그대로 드러났다.
“거기 있을 거면 쳐다만 보지 말고 그 통이라도 좀 가져오든지.”
입 안에 고인 침을 꼴깍 삼키고 있는데 갑자기 태화가 말을 걸자 선우는 끅! 소리를 냈다. 난데없이 튀어나온 이상한 소리에 태화는 시체 다리에 묶은 로프를 방범용 창살에 둘둘 감아 고정하다가 뒤를 돌아봤다. 선우는 눈동자를 떼구루루 굴리다가 얼른 김치 통을 들고 옆으로 갔다. 태화가 발끝으로 탁탁 치댄 곳에 통을 놓고, 뒤로 물러나 있으라는 턱짓에 제자리로 쪼르르 돌아왔다.
태화는 김치 통을 발로 조금 더 옮기더니 손에 쥐고 있던 로프를 훅 끌어당겼다. 영환의 시체가 위로 스윽 올라갔다. 다리부터 대롱대롱 매달린 게 꼭 타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매달린 남자’ 그림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선우가 그런 감상을 하는 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 저절로 벌어진 시체의 입에서 검은 물이 와르르 쏟아졌다. 이전까지는 은은하게 맴돌던 악취가 맹렬히 뻗쳤다. 선우는 다급히 코와 입을 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태화도 마찬가지로 미간을 좁게 구긴 채 김치 통 위치를 다시 한번 맞췄다. 시체에서 나온 물이 그대로 통 속으로 후드득 떨어졌다. 태화는 가방에서 과도 크기의 작은 칼을 꺼내다가 선우를 슬쩍 쳐다봤다.
“계속 거기 있을 거지?”
“네.”
“그럼 토하지 마.”
선우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안 그래도 진동하는 썩은 내 때문에 속이 울렁거리던 참이었는데 태화 곁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아 입을 꾸욱 다물고 침만 꼴딱꼴딱 삼켰다.
태화는 한숨을 쉬더니 시체 앞으로 다가갔다. 칼날이 시체의 목을 긋고 피가 쏟아져 나오기까지 고작 5초도 걸리지 않았다. 현실은 영화와 많이 달랐다. 목을 그으면 피가 분수처럼 솟을 줄 알았는데 시체라 그런지 벌어진 살점에서 나온 핏물은 넙데데한 얼굴을 따라 쫄쫄 흘러 김치 통 안으로 떨어졌다.
선우는 영환의 정수리를 타고 흐르는 피를 빤히 쳐다봤다. 입에서 검은 물이 흘렀을 땐 마냥 역겨웠는데 저 모습은 뭐랄까, 그냥 신기했다. 태화는 시체에서 핏물 빠지는 걸 신기하다는 눈으로 쳐다보는 선우를 보고 알게 모르게 입꼬리를 싱긋 올렸다가 내렸다.
“한 30분은 저러고 있어야 해.”
태화는 칼을 그대로 비닐에 싸서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 선우 옆으로 와 화장실 문지방 위에 털썩 걸터앉았다. 옆에 오도카니 서 있던 선우는 눈치를 보다가 제자리에 쪼그려 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시체를 구경했다.
태화는 이 시간이 가장 지루했다. 핏물이 주룩주룩 떨어지는 소리와 제 숨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시간.
하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저보다 조금 앞선 곳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선우에게서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박물관으로 견학하러 온 초등학생처럼 시체에 집중하고 있는 작달막한 뒤통수를 봤다. 그 아래로 드러난 희멀건 목덜미와 오늘도 입은 낡아 빠진 카디건, 불룩 올라온 날갯죽지, 전체적으로 마르고 볼품없는 몸.
거기까지 눈길이 간 태화가 본능적으로 손을 뻗은 순간 선우가 갑자기 뒤를 돌아봤다. 잠깐 손을 멈춘 태화는 이내 아무렇지 않게 선우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쥐어 귀 뒤로 넘겨 줬다. 당황은 도리어 선우의 몫이었다. 뭐 이렇게 투명한지, 선우는 순식간에 귀 끝까지 벌겋게 물들이며 괜히 귀 뒤로 잘만 넘어간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왜 돌아봤어?”
“아…….”
“뭐 말하려던 거 아니야?”
“커피, 드릴까요?”
생각지도 못한 말에 태화는 입을 반쯤 벌리다가 더는 참지 못하고 너털웃음을 흘렸다.
눈앞에 거꾸로 매달린 시체를 버젓이 두고 뜬금없이 커피?
살면서 이런 놈은 본 적이 없었다.
“너 미친놈이야?”
“……모르겠어요.”
솔직하기도 존나게 솔직하고.
태화는 꼬랑지를 추욱 늘어뜨린 개새끼처럼 풀이 죽어 웅얼거리는 선우를 보며 피식 소리를 냈다.
“미친놈 맞네.”
보통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바락 성을 내든지, 그게 아니면 적어도 기분 나쁜 티라도 내기 망정인데 선우는 그저 시선만 아래로 내리깔았다.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커피는 됐고, 콜라 있어?”
선우 못지않게 미친놈인 태화는 시체 앞에서 콜라를 찾았다. 속눈썹을 처연히 늘어뜨리던 선우는 순간 반짝 눈을 떴다.
“잠시만요……!”
선우는 벌떡 일어나 화장실을 나갔다. 태화를 위해 무언가를 해 줄 수 있다는 게 어찌나 기쁜지, 주방으로 가는 발걸음이 세상 가벼웠다. 손님들에게 내주다 남은 콜라 대신 새 걸로 열고 컵도 그저 그런 머그잔이 아닌 보기에 좋은 유리컵을 꺼냈다. 컵에 콜라를 쫄쫄쫄 따랐다.
쫄쫄쫄, 어째 조금 전까지도 지영환의 목에서 나온 검은 피가 떠올랐으나 훅 올라왔다가 훅 꺼지는 콜라 거품처럼 쓸데없는 생각도 금방 꺼졌다. 선우는 원래 콜라보다는 주스를 더 좋아했지만, 태화와 같은 걸 마시고 싶어서 콜라 두 잔을 들고 다시 화장실로 돌아갔다. 태화는 잭나이프를 가지고 짤깍 열었다가 짤깍 닫으며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여기요.”
선우는 태화에게 유리컵을 내밀고 잠시 고민하다가 그를 따라 문지방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았다. 태화는 구태여 제 옆에 앉는 선우 때문에 한숨을 쉬며 옆으로 살짝 물러났다. 워낙에 작은 문인 데다가 태화의 덩치가 있어 선우마저 문지방에 앉자 두 사람의 어깨가 찰싹 맞붙었다.
선우는 그저 작게 미소를 짓는데 태화는 씨발, 욕을 내뱉더니 조금 전 선우가 앉아 있던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선우가 아쉬워하며 쳐다보자 입 모양으로 뭐? 하며 대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시간이 얼추 지나자 핏물이 떨어지는 속도가 확실히 느려졌다. 줄줄 흐르던 게 이제는 똑똑똑 떨어졌다.
“빚은 왜 진 건데?”
태화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물었다. 선우는 넋을 놓고 그의 잘생긴 귀를 쳐다보다가 갑자기 질문이 던져지자 어째 시선이 들킨 것만 같아 잠깐 숨을 삼켰다. 태화가 돌아봤고, 왜 또 지랄이냐는 듯한 시선에 그제야 입술을 달싹였다.
“아버지가 진 빚이에요.”
“좆같겠네.”
“그래도 아버지는 좋은 분이셨어요. 때리지도 않았고, 어릴 적에 엄마가 집을 나갔는데도 저 안 버리고 키워 주시고…….”
“그게 원래 아버지들이 하는 일이야.”
태화는 뭔 병신 같은 소리냐는 눈빛으로 선우를 봤다.
“너희 아버지가 특별히 좋은 인간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당연한 일을 한 거라고.”
선우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런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늘 가난하게 살았으나 때리지 않는 부친과 함께여서 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었고, 모친도 버린 저를 끝까지 버리지 않아 줘서 고마웠다. 거액의 빚을 떠안게 되었을 때도 장기 털리는 게 무서웠지, 부친에 대한 원망은 없었다.
아니, 정말 없었나……?
사실 선우도 본인의 마음은 잘 알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하면 다른 생각을 전혀 못 했다. 지영환에게 붙들려 갔을 때는 살고 싶다는 생각만 해서 억울함도, 미움도 느낄 새가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어쩌면 선우는 부친을 미워한 것도 같았다.
내 인생을 시궁창으로 처박은 사람.
문득 지영환 뒤로 부친의 낯이 어른거렸다. 그걸 깨달은 순간 선우는 서둘러 도리질 치며 생각에서 벗어났다.
“그래도…….”
그래도 우리 아빠는 좋은 아빠라고.
선우는 부친을 대신해 변명하려 했으나 태화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타이밍을 놓쳤다. 이제 피는 똑똑똑똑, 이 아니라 똑……똑……똑……. 흐르고 있었다. 얼추 피가 다 빠져서 태화는 김치 통 뚜껑을 닫아 잘 밀봉하고, 시체를 바닥으로 내렸다. 확실히 무게가 많이 줄어든 게 느껴졌다.
“캐리어.”
태화가 짧게 말한 걸 용케 알아듣고 선우는 밖으로 나가 캐리어를 가져왔다. 태화는 제 옆에 서서 칭찬해 주기만을 기다리는 선우를 무시하고 시체를 챙겼다. 영환의 덩치를 생각해 이민용 캐리어를 챙겨 왔는데 막상 핏물을 빼고 몸을 꾸깃꾸깃 접어 넣으니 공간이 남았다. 벌써 뻣뻣해져 잘 접히지 않는 관절은 발로 우득우득 밟아 가며 구겼다.
캐리어를 닫고 미리 깔고 붙여 놓은 비닐까지 야무지게 접어 다시 가방에 넣은 후 어깨에 둘러멨다. 핏물이 울렁출렁 든 김치 통과 캐리어까지 챙겨 홀로 나왔다. 테이블 위에 뒀던 우비까지 가방에 걸쳤다.
“이제 돌아가는 거예요?”
선우는 태화의 뒤를 쭐레쭐레 따르며 물었다.
“가야지, 그럼. 여기서 살까?”
태화가 넌지시 돌아보며 하는 말에 선우는 그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꽃다방에 태화가 머물면 더할 나위 없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태화는 무거운 짐을 세 개나 들고도 힘든 기색 하나 없이 계단을 내려갔다. 이제 해가 뜨기 시작하는지 골목 저 끝에서부터 어슴푸레한 빛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골목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밤에는 눈이 부실 만큼 화려한 거리가 지금은 휑하기만 했다. 쥐 새끼도 한 마리 없을 것처럼 조용한 길에서 선우와 태화만이 걸음 소리를 냈다.
승합차는 지영환을 감시할 때마다 세워 뒀던 곳에 서 있었다. 태화는 승합차에 시동부터 걸어 두고 트렁크를 열었다. 선우는 그때까지도 태화의 곁을 서성였다.
“저도 데려가요.”
“싫어.”
예상했던 말인지 태화는 틈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선우의 미간이 찡긋 좁아졌다. 태화를 방해하기 위해 캐리어를 옆으로 슬쩍 감춰 봤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져와 차에 실었다.
“제발요……!”
“싫어.”
태화는 같은 대답을 한 뒤 마지막으로 김치 통까지 싣고 트렁크를 닫았다. 제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선우를 가볍게 무시하고 지나쳤다. 가방은 뒷좌석에 실으려고 문을 여는데 선우가 턱 막아섰다. 태화는 그제야 선우를 봤다.
선우는 처음 봤을 때보다는 부기가 조금 빠진 눈을 똑바로 뜨고서 올려다보고 있었다. 딴에는 독살 맞은 척을 좀 하는 것 같은데 태화 눈에는 그저 우스울 따름이었다. 여기서 소리라도 왁! 지르면 악! 하며 벌벌 떨 놈이 배짱도 좋았다.
“비켜.”
굳이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 버티고 선 몸을 옆으로 가볍게 밀자 선우가 두 손으로 팔뚝을 붙들어 왔다.
“부영 시장에 있는 태화 정육점……!”
답지 않게 빠른 말이 튀어나왔다. 팔에 붙은 선우를 떼어 내려던 태화는 불현듯 눈을 번뜩 뜨고 선우를 내려다봤다. 선우는 제법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거기 사장님이시죠?”
“날 알아?”
“본 적 있어요.”
“언제?”
“그냥 지나다가.”
호기롭게 소리쳐 놓고 또 정작 몇 마디 주고받자 목소리가 작아졌다.
부영 시장에 있는 태화 정육점.
태화는 자신이 일하는 곳을 정확하게 아는 선우를 보며 다방 안에서 죽였어야 했나 잠깐 생각했다. 선우가 시선을 내리까는 걸 보고는 눈을 고쳐 떴다. 안광이 깃들 뻔했던 눈이 느른하게 뜨여 선우를 훑었다.
“그런데 어떻게 내 가게까지 알지?”
묻자 선우는 좀 더 안절부절못하며 얄따란 손가락을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지난번에 저한테 친절하게 대해 주셨잖아요. 명함도 주시고.”
“내가?”
“네. 그래서……. 한번 찾아갔었어요.”
태화는 고개를 삐뚜름히 기울였다. 언제를 말하는 건지 몰랐다. 지금 누굴 놀리나 싶어서 삐딱하게 쳐다보는데 정말 그 이유 때문이라는 듯 선우는 태화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대충 둘러댄 말이 아니었다. 사실이었다. 선우는 몇 달 전 커피 출장을 가는 아가씨들의 짐꾼 역할로 따라나섰다가 부영 시장에서 태화를 처음 봤다. 손님들과 아가씨들이 하하 호호 웃고 떠드는 동안 밖에 나와 시장 구경을 하다가 누군가와 부딪혀 넘어졌고, 그게 태화였다.
엄청나게 크고, 또 크다.
그게 선우가 태화를 처음 봤을 때 한 생각이었다. 엉덩방아를 찧은 궁둥이가 아파 문지르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문짝만 한 사람이 앞에 서 있었다.
‘미안합니다. 그, 제가 지금 좀 바빠서 그런데. 여기.’
태화는 대뜸 명함부터 내밀었다.
‘저기, 시장 중간에 태화 정육이라고 있습니다. 병원에서 오래 치료받아야 한다고 하면 거기로 와요.’
거기까지 말한 태화는 아, 소리를 내더니 손을 내밀었다. 커다란 손이 선우 앞으로 불쑥 다가왔다. 손바닥 군데군데 굳은살이 잔뜩 박인 손이었다.
선우는 제 앞에 내민 손을 선뜻 잡지 못했다. 누군가가 넘어진 제게 손을 내미는 게 어색해서 그랬다. 머뭇거리고 있자 태화가 직접 어깨를 잡아 일으켜 줬다. 한 번 더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정말 바쁜 일이 있는지 잰걸음을 떼며 사라졌다. 그때 처음 태화에게서 은은한 머스크 향을 느꼈다.
선우는 연신 엉덩이를 문지르면서도 태화의 뒷모습을 쫓았다. 중년 이상의 사람들이 많은 시장에서 세상 건강하게 생긴 태화가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시야에서 태화가 사라졌을 때는 손에 쥔 명함을 내려다봤다. 명함은 깔끔했다. 굵고 반듯한 글씨로 적힌 ‘태화 정육’이라는 상호 밑에 가게 전화번호가 전부였다. 이름도 적혀 있지 않았다.
[02 394 7776]
선우는 아직도 가게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었다.
이후 다시 한번 아가씨들과 부영 시장으로 커피 출장 갈 일이 생겼을 때 자연스레 태화 정육으로 향했다. 자각하지도 못하고 걸음이 저절로 그리로 향했다. 어느 정도 걷다 보니 지금 제가 무슨 짓을 하는 건가 싶었다. 찾아가면 뭐 어쩌려고, 대책도 없이 무작정 걸었다.
찾아오라던 건 그냥 인사치레로 한 말일 텐데, 정말 찾아가면 놀라려나? 병원에 다녀왔냐고 물으면 뭐라고 하지? 날 기억이나 할까?
이런저런 생각 끝에 ‘태화 정육’ 앞에 도착했다.
‘태화 정육…….’
선우는 새빨간 조명이 켜진 정육점의 상호를 입 안으로 읊조렸다. 태화는 검은색 앞치마를 맨 채 손님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에게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무어라 말하는 중이었다. 차마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밖을 내다보는 태화와 눈이 마주치고서야 급히 뒤돌아섰다. 여기까지 왔으면서 도저히 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왜 여기까지 왔는지, 제 마음조차도 알지 못한 채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게 정확히 석 달 전, 9월 들어 태양이 가장 뜨거운 날이었다.
선우는 태화가 당연히 자신을 알아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태화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주차하면 안 된다고 허튼소리를 했을 때도 선우는 약간 기대했으나 헛수고였다. 지금도 보면 태화는 아무것도 모르는 눈빛이었다. 부영 시장에서 부딪혔던 당시 손버릇 나쁜 손님에게 맞아 온 낯이 퉁퉁 부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나 못 알아볼 수 있나 싶었다.
“너 뭐 게이, 그런 거야?”
태화가 물었고 선우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태화는 항상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만 던졌다. 선우는 딱히 제가 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자에게 끌리는 것도 아니었고, 굳이 따지자면 무성욕자에 가까운 인간이었는데 난데없이 태화가 불쑥 나타나서는 선우를 뒤흔들었다. 교복 입을 때도 안 했던 몽정을, 태화를 만나고서 스무 살의 나이로 처음 했으니 말 다 한 것이었다.
선우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고민했으나 딱 떨어지는 답이 없어 입술만 달싹였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태화는 골목 끄트머리를 한번 보더니 더 묻지 않고 선우를 팔에서 떼어 냈다. 벌써 해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 이상 시간을 지체해 봤자 좋을 게 하나 없었다. 다시 뒷문을 열려는데 선우가 또 팔을 붙들었다. 어째 선우는 지치는 법이 없었다.
“어쨌든 저도 데리고 가요……!”
“안 데리고 가면?”
“시, 신고할 거예요!”
정말이지 타격감 하나 없는 협박이었다. 잔뜩 겁먹은 표정을 하고 말해 봤자 우습기만 했다. 태화는 귀찮다는 듯이 숨을 길게 내쉬며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럼 난 너도 공범이라고 할 거야. 이 새끼한테 맨날 따먹히고 사는 게 좆같아서 네가 나 고용했다고.”
“개새끼…….”
나직이 나온 욕에 태화는 한숨을 마저 쉬었다. 씨발 새끼도 아니고 고작 한다는 욕이 개새끼였다.
개새끼는 무슨, 지 꼴이 꼭 비 맞은 개새끼구먼.
태화의 생각처럼 선우는 두 주먹을 꼭 쥐고 파르르 떨었다. 퍽 처량한 꼴이었다.
“네가 할 줄 아는 게 뭔데?”
선심 쓰듯 한번 묻자 선우가 고개를 휙 들어 쳐다봤다. 금세 눈물이라도 고였는지 새붉어진 눈 밑이 반드르르 빛났다.
“좆 빠는 거……?”
“씨발.”
역시 말이 통할 놈이 아니었다. 태화는 괜히 물어봤다고 생각하며 뒷문을 드르륵 열었다. 대충 시트 위에 가방을 던지듯 놓고 문을 닫아 운전석으로 향했다. 선우가 다시금 팔을 잡았을 땐 말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짙은 시선으로 바라보자 선우는 알아서 손을 스륵 놨다.
하여간에 겁은 많지.
태화는 혀를 쯧 차고 운전석 문을 열었다.
“저만 남으면 제가 의심받잖아요……!”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대수롭지 않게 말하기는 했으나 태화는 사실 그걸 노리기도 했다.
지영환을 죽일 공간은 많았다. 채무자인 척 사무실로 불러낼 수도 있었고, 으슥한 주차장 한가운데에서 죽여도 되었다. 사실 가장 간편하고 좋은 건 영환의 집이었다. 그런데도 태화가 굳이 꽃다방에서 영환을 죽이고 상또라이 최선우를 목격자로 세운 건, 전부 그 이유였다.
나 대신 네가 의심받으라고.
태화는 그 말을 속으로 삼키고 선우를 봤다. 만약 최선우가 조금만 정상적이어서 그를 보자마자 신고했다면 일을 그르칠 수 있었다. 도박과도 같은 짓거리였으나 태화는 묘한 확신이 있었다. 선우는 죽어 가는 지영환을 보며 좆을 세웠으면 세웠지, 경찰서에 신고할 생각은 못 할 놈이었다.
뭐, 실제로 그러기도 했고.
“뭐든 다 할게요! 시키는 건 다 할게요, 진짜!”
근데 제 앞에서 바들바들 떨며 매달리는 선우를 보자니 차라리 깔끔하게 지영환을 집에서 죽일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귀찮다기보다는 뭐랄까…….
“……요리 잘해?”
태화는 잠깐 미간을 구긴 채 선우를 보다가 물었다. 너무도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선우는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눈을 느리게 끔뻑였다.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머리를 굴리는 게 다 보였다.
“됐다. 말을 말자.”
“요리는 못해도 다른 집안일은 다 잘해요! 청소, 빨래, 설거지. 못하는 게 없어요. 특히 청소는 보셨잖아요, 깔끔하게 하는 거! 요리도 배우라면 배울게요……!”
태화가 고개를 슬슬 젓자 선우는 다급히 말을 와다다다 내뱉었다. 팔을 잡으려다가 태화가 구깃구깃하게 접은 눈으로 보는 시선에 손을 내리고 주먹만 꽉 쥐었다. 태화는 열어 뒀던 운전석 문을 턱 닫으며 선우 앞에 삐뚜름히 섰다. 짝다리를 짚은 채로 선우의 위아래를 훑었다.
“넌 내가 안 무섭냐?”
“여기 남아서 남창 짓 하는 게 더 무서워요.”
“나랑 가도 남창 짓 해야 할 수도 있어. 날 뭘 믿고 따라와.”
“저 잘해요. 자지도 잘 빨고, 허리도 잘 돌려요.”
기다렸다는 듯 터진 한숨이 선우의 이마를 간질였다. 선우는 괜스레 이마를 슥슥 쓸며 태화를 올려다봤다. 사실 허리를 잘 돌린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면도방에서 하루에 적게는 한둘, 많게는 대여섯까지 손님을 받았지만, 매번 입만 썼지, 다른 쪽은 전혀 사용해 보지 않았다.
동시에 다른 아가씨와 들어가면 벽을 타고 옆방 소리가 넘어왔는데, 아가씨들은 아무래도 다른 것까지 하는 거 같았지만 선우는 정말 펠라티오가 전부였다. 가끔 돈을 더 찔러 주며 다른 것도 해 보자고 꼬시는 손님도 있었고, 무작정 뺨부터 때리고 올라타려던 놈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선우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저항했다.
맞아 얼굴이 퉁퉁 부어도 뒤를 대 주는 짓까진 하지 않았다. 이미 밑바닥인 인생이었으나 뒷구멍까지 따여 버리면 정말 돌아갈 수 없는 수렁으로 빠지는 기분일까 봐 그랬다. 이미 닳을 대로 닳았다는 걸 아는데도 끝까지 지켜 낸 신념이었다.
“진짜예요.”
태화가 영 믿지 않는 것 같자 선우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누가 들어도 진짜라고 믿기 힘들 만큼 자신감 없는 목소리였다. 허리를 잘 돌린다느니 하는 건 아무래도 자신 없었으나 그래도 상대가 태화라면 잘한다는 말이 진짜가 될 때까지 노력할 수 있었다. 결연하기까지 한 눈빛을 보던 태화는 아랫입술을 축였다.
“겁만 없는 줄 알았더니 수치심도 없네.”
“섹스 잘하는 게 수치스러운 일이에…….”
순간 커다란 손이 선우의 입을 텁 막았다. 워낙 태화의 손이 크고 선우의 낯이 작아 입을 막았다기보다는 그냥 얼굴 전체를 감싼 모양새였다.
“안 그래 보이는데 쨍알쨍알 말도 엄청 많고.”
태화는 짜증스레 말하며 미간을 구겼다. 손으로 코와 입을 동시에 막아 버려 선우는 숨이 턱 막혔다. 겨우겨우 있는 틈으로 어렵사리 공기를 들이마시다가 돌연 무슨 생각인지 두 손으로 태화의 손등을 감싸 쥐었다. 순간 태화의 눈이 반짝 커졌다가 가라앉았다. 손바닥으로 축축하고 뜨거운 게 닿았다. 선우가 입을 벌려 혀로 손바닥을 핥고 있었다.
선우는 혀끝을 세워 손금 주름 사이사이를 샅샅이 핥으며 시선을 위로 올려 태화를 응시했다. 무슨 생각인지 입을 쪽 맞추기도 했고, 너르게 펼쳐진 혀로 질척하게 핥기도 했다. 꼭, 어젯밤 영환의 자지를 빨 때처럼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며 혀를 놀렸다.
태화는 선뜻 손을 치우지 않았다. 선우가 두 손으로 잡고 있더라도 뿌리치려면 얼마든지 뿌리칠 수 있었지만, 가만히 하는 꼴을 지켜볼 뿐이었다.
선우는 자신을 지긋이 내려다보는 태화에게서 시선을 떼고 속눈썹을 내리깔았다. 가지런하게 늘어진 속눈썹이 눈 옆에 머물던 태화의 엄지를 간질였다. 손 틈으로 뜨거운 숨이 뿜어지고, 약간 질척한 소리가 날 때쯤 선우는 태화의 손을 천천히 끌어 내렸다. 이전까지는 힘을 주던 손이 쉽게 끌려 내려갔다.
“이 정도면 잘하는 거 아니에요……?”
짙은 숨이 가득 섞인 목소리에 태화는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였다. 잔뜩 기죽은 얼굴을 하고 맹랑한 말을 내뱉는 것보다도 침이 잔뜩 묻어 반질반질 윤이 나는 붉은 입술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엄지로 오동통한 입술을 꾹 눌러 문지르다 영환에게 맞아 생긴 입가의 딱지를 손톱으로 아프게 긁었다.
“아!”
아파 얼굴을 찡그리던 선우는 곧바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태화에게 손목이 붙들려 끌려갔다. 선우를 거칠게 끌고 차를 반 바퀴 빙 돈 태화는 뒷좌석 문을 열고 안으로 선우를 밀어 넣었다.
떠밀리듯 차에 탄 선우는 시트 아래로 무릎을 꿇어 주저앉았다가 고개를 휙 들었다. 검은 그림자가 얼굴 위로 쏟아졌다. 태화가 뒷문을 꽉 막아서서는 청바지 단추를 풀고 있었다. 직, 지퍼가 내려가고 바지와 드로어즈를 한꺼번에 내린 그는 반쯤 고개를 쳐든 좆을 쥐고 선우의 머리채를 잡아끌어 왔다.
“아으……!”
두피가 뜯어질 듯 억센 손길에 선우는 두 손으로 태화의 손목을 붙들었다가 눈앞에 드러난 자지를 보고 숨을 헙 삼켰다.
“해 봐.”
“네……?”
“또 두 번 말하게 하네. 자지 잘 빤다며, 해 보라고.”
태화는 벌겋게 달아오른 좆을 선우의 뺨에 툭툭 치댔다. 천박한 소리가 났다. 선우가 놀란 눈을 뜨며 쳐다보기만 하자 귀두로 눈가를 비볐다.
“못하는데 잘한다고 입 턴 거야?”
이전보다 낮아진 음성이 선우를 을렀다. 선우는 눈알 점막까지 비비며 들어오는 살덩이에 두 눈을 질끈 감고 침을 꼴깍 삼켰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기지는 맞았지만, 선우는 그간 정말 여러 손님에게서 잘 빤다는 칭찬을 들었다. 입바른 말일 수도 있었으나 어쨌거나 처음 펠라티오를 했을 때보다는 실력이 많이 늘기도 했다.
긴장감에 바짝 마른 아랫입술을 축이던 선우는 곧 눈을 뜨고 제 속눈썹을 간질이는 좆을 손에 쥐었다. 손에 잡히는 크기가 지금까지 빨아 왔던 그 어떤 좆보다도 훨씬 굵고 커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고 해도 걱정되는 건 별수 없었다.
“잘 빨면, 데려갈 거예요……?”
선우가 자지를 문지르며 묻자 태화는 눈썹을 들썩였다.
“너 하는 거 봐서.”
“잘할게요. 잘할 수 있어요.”
“말만 하지 말고. 어?”
태화는 엄지를 선우의 입 안으로 넣어 옆으로 비죽이 벌렸다. 이제 입에 좀 물어 보라는 눈빛에 선우는 태화의 손가락을 빨다 입을 열어 좆을 물었다. 엄지와 함께 물기에는 벅찬 크기였다. 맞아 찢어진 입가가 아려 미간에 힘을 주자 태화는 인심 쓰는 척 엄지를 뺐다. 입가에 살짝 비치는 피를 엄지로 뭉그러뜨리듯 훔치고 햇볕 냄새가 나는 머리카락 사이로 손을 성글게 얽었다.
“흐, 으…….”
선우는 숨을 고르게 골라 가며 좆을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문제는 아무리 깊숙이 삼켜도 자지의 반의반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반발기 상태에서도 크다고 느껴졌던 좆은 점점 더 열이 오르고 단단해지자 선우의 손목보다도 더 굵어졌다. 겨우 귀두 뒷부분까지 삼켰을 뿐인데 입 안이 꽉 차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큰 건 빨아 본 적이 없어 약간 고전하는 중에 눈동자를 도록 올려 태화를 쳐다봤다. 그늘이 져서 그런가, 남들보다 반 톤 정도 밝은 그의 눈동자가 지금, 이 순간엔 그렇게 어두워 보일 수가 없었다.
“이게 잘하는 거야?”
“하아……. 잠깐…….”
“누가 빼래?”
선우가 뭐라고 항변이라도 하려 뒤로 물러난 순간 태화는 살살 매만지던 머리카락을 콱 잡아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다시금 입 안으로 자지가 쳐들어오자 선우는 잠깐 당황하더니 곧 눈을 힘주어 떴다. 태화의 허벅지에 얹어 놓은 두 손을 들어 채 입 안으로 들어오지 않은 좆기둥을 감싸 쥐었다.
혀로 귀두 뒤쪽을 감싸 핥으며 고개를 앞뒤로 움직이자 머리 위로 낮은 신음이 툭 떨어졌다. 좆도 더 빳빳해졌고 그만큼 더 커지기도 했다. 갈라진 선단 끝을 혀끝으로 핥고 볼 쪽의 무른 살로 귀두를 비볐다.
척척해지기 시작한 입 안으로 침과는 또 다른 액체가 섞여 들었다. 좆 크기만큼 뻐끔하게 구멍이 뚫린 요도구에서 좆물이 질질 샜다. 선우는 짭짤한 맛을 음미하며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쭙쭙 소리까지 냈다. 입 밖으로 비어져 나가는 침을 쓰읍 빨아들이고 뒤로 한번 물러나 자지와 눈을 마주쳤다. 침인지 뭔지 모를 투명한 게 선단 끝에 매달려 있다가 선우의 허벅지 위로 똑 떨어졌다.
“하아…….”
선우는 짙은 숨을 내쉬며 질질 흐르기 시작한 좆물을 손에 묻혀 좆을 쥐고 흔들었다. 펠라티오를 받는 건 태화인데 왜 이렇게 제 몸이 달아오르는지 몰랐다. 찌걱이는 소리가 나고, 티셔츠 아래로 살짝 드러난 복근이 느릿하게 죄였다가 풀어지는 것까지 본 선우는 참지 못하고 가랑이 사이로 손을 넣어 주물럭거렸다.
위에서 헛웃음이 터졌다. 선우가 눈을 사락 말아 올려 쳐다보자 태화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마주 봤다.
“한가하게 지금 네 자지나 세울 때야?”
“하으……. 너무, 좋아서요.”
방금까지 웃던 태화는 선우의 대답을 듣고 씨발, 읊조리더니 고개를 들어 승합차 천장만 쳐다봤다. 선우는 왜인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서 살짝 웃다가 다시 눈앞의 자지에 집중했다.
이전에 손님들에게 해 줬을 때 반응이 좋았던 걸 기억하고 고개를 숙여 아래로 탐스럽게 매달린 고환을 핥았다. 입 안에 알을 넣고 이리저리 굴려 가며 빨다 혀끝에 힘을 주고 고환부터 뻐끔거리는 선단 끝까지 한 번에 주욱 핥고 올라왔다. 이쯤 하면 손님들은 대부분 앓는 소리를 내며 쌌던지라 선우는 태화 역시 그럴 거라 생각하며 자지 끝을 바라봤다.
“어?”
약간 맹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좆물은 여전히 물처럼 줄줄 흘러나오는데 쌀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의아하단 얼굴을 하고 손으로 자지를 계속 문질러 봤으나 마찬가지였다.
긴장해서 평소보다 못했나……?
선우는 다시 천천히 자지를 입에 넣고 왕복 운동을 했다. 다소 무리한다 싶을 만큼 귀두를 목구멍에 닿을 때까지 턱턱 집어넣기도 하고, 남는 기둥을 쥔 손 역시 쉬지 않았다. 좆물은 어느새 마찰열로 뿌연 색을 띠며 좆기둥과 선우의 입술 여기저기 엉겨 붙었는데 아무리 해도 태화는 사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물고 빨수록 더 커지는 것 같았다.
이제는 한계까지 벌어진 입가가 아팠고, 턱도 뻐근하게 질렸다. 숨이 부족해서 잠깐 뒤로 물러나려는데 태화가 차 문을 짚고 있던 손까지 가져와 두 손으로 선우의 머리통을 잡았다.
“존나게 못하네, 진짜.”
한숨 섞인 목소리였다. 선우는 자지를 입에 문 채 겨우 두 눈을 치떠 태화를 봤다. 그는 목덜미가 약간 붉어졌을 뿐 별 감흥이 없는 얼굴이었다. 어떻게 이만큼이나 빨았는데도 멀쩡한지 이해가 안 되었다.
성감에 문제가 있나?
선우는 눈살을 찡그리며 고개를 뒤로 빼려 했으나 머리통이 잡혀 제자리걸음이었다.
“잘한다며?”
선우는 억울하다는 듯 눈썹을 축 늘어뜨렸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못하는 게 아니라 태화의 자지가 무식하게 큰 게 문제였다. 게다가 긴장까지 한 탓에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 한 것도 아쉬웠다. 더 잘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 안 가득 좆이 들어차 있어 그것마저도 불가능했다.
“지금까지 어떤 새끼들을 상대해 왔는진 모르겠는데 나는 이딴 식으로 하면 한 시간이 지나도 못 싸거든. 제대로 하자.”
뺨을 툭툭 치며 하는 말에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려던 선우는 순간 컥! 소리를 내며 몸을 크게 움츠렸다. 태화가 뒤통수를 강하게 끌어당긴 탓에 귀두가 저 안쪽까지 들어차 숨구멍을 틀어막았다. 반 정도도 채 들어가지 않던 좆은 어느새 뿌리 끝까지 모습을 감춰 선우의 입 안으로 들어찼다. 이 정도로 목구멍 깊숙이 자지가 들어온 적이 없어서 선우는 헐떡거리며 본능적으로 태화의 허벅지를 밀어 냈다.
괜한 고생이었다. 어느 건물의 기둥 같은 허벅지는 아무리 밀어도 밀리지 않았고, 태화는 그걸로도 부족하다는 듯 허리를 좀 더 치대며 좁다란 안쪽을 가르고 들어갔다. 안 그래도 불룩 솟은 귀두 갓이 예민한 곳을 긁으며 들어가자 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았다.
“욱……. 우읍……!”
“후으……. 목구멍 조여.”
태화는 젖은 목소리를 내더니 곧 선우의 머리를 앞뒤로 마구 흔들었다. 마치 싸구려 자위 기구라도 되는 양 작은 입 안을 사용했다. 귀두 끄트머리까지 쭈욱 빠져나왔던 자지를 빠른 속도로 단번에 틈 없이 밀어 넣고, 다시 빠졌다가 쑤셔 넣길 반복했다.
선우는 인상을 찌푸리지도 못하고 놀란 눈을 뜨고서 두 팔을 버둥댔다. 목구멍이 아파도 너무 아팠다. 마치 입 안을 쳐들어온 주먹이 목 안쪽 울대를 퍽퍽 강타하는 것만 같았다.
흉흉하게 선 핏줄이 전부 느껴졌고, 식도로 꽉 들어찬 좆 때문에 딱 달라붙게 된 기도에서는 공기가 전혀 통하지 못했다. 흡 소리를 내며 코로 숨을 들이마셔 봤으나 코 안에서 맴돌다가 되돌아 나가기 바빴다. 이러다가는 자지를 빨다가 죽을 수도 있을 것만 같은 공포에 선우는 눈을 발갛게 치뜨며 태화를 올려다봤다. 생리적인 눈물이 줄줄 흐르는 눈은 다시 통통하게 붓기 시작했다. 태화는 살성이 약해 아프게 짓무른 선우의 눈가를 엄지로 꾹꾹 눌러 가며 더운 숨을 토해 냈다.
“하아……. 씹…….”
허리를 터는 속도가 빨라졌다. 선우가 자꾸 허벅지를 때리고 할퀴어 대자 태화는 아예 선우의 두 손목을 잡아 정수리 위에 포개어 놓고 한 손으로 꽉 고정했다. 옅게 찌푸린 눈을 내려 선우를 봤다. 정확하게는 제 자지가 들락거리고 있는 입을 봤고, 그 아래로 쭉 뻗은 목덜미를 봤다. 좆을 안으로 꾹 밀어 넣을 때마다 작은 목젖 아래가 불룩불룩 솟아오르는 게 보였다.
손을 내려 더듬더듬 그 부위를 만져 보던 태화는 자지를 깊숙이 처넣는 동시에 불룩 올라온 목젖 아래를 강하게 압박했다. 두 손이 잡힌 선우가 펄떡 뛰었다. 놓아 달라는 듯 버둥거리는 걸 무시하고 손에 힘을 더욱 줬다. 안 그래도 좁은 곳에 콱 처넣어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데 외부에서 주는 압력까지 더해지니 정말 좆이 잘려 나갈 것 같았다. 태화는 그 상태로 허리를 좀 더 묻더니 곧 이를 까득 물었다.
“윽……!”
짧은 탄식 끝에 입 안에 든 자지가 부르르 떨렸다. 입을 거치지 않고 목구멍 바로 아래로 끈적한 정액이 죽죽 쏟아졌다. 더운 기운으로 몸이 뜨겁게 덥히는 느낌에 선우는 자신도 모르게 꼴깍꼴깍 소리를 내며 목구멍을 죄였다 풀었다. 태화는 잘도 좆을 쥐어짜 내는 선우를 짙게 내려다보며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잡고 있던 머리와 손목을 놔줬다.
“헉……! 어흑, 하아……. 하…….”
선우는 다시 붙잡힐까 봐 빠르게 뒤로 물러나서는 목을 쥐고 캑캑거렸다. 숨을 쉴 때마다 목 안쪽이 화끈거렸다. 살갗이 까진 것도 같았고, 아예 인두로 지져진 느낌도 들었다.
잔기침하자 입 안에 머물던 좆물과 침이 차 시트 위로 툭툭 튀었다. 입술을 타고 흐른 체액들로 턱마저 엉망으로 젖었다. 깜빡 지옥문을 경험하고 돌아온 선우는 숨을 크게 몰아쉬며 여태 살아 있음을 느끼다가 문득 허연 것들이 튄 시트가 눈에 들어와 꾸물거리며 카디건 소매 끝으로 슥 문질러 닦았다.
“뭐 하냐?”
태화는 어느새 자지를 바지 속으로 집어넣어 단추까지 채운 상태였다. 한 번 사정했음에도 발기가 완전히 풀리지 않아 앞섶이 팽팽하게 늘어져 있었다. 선우는 훌쩍거리며 태화를 올려다봤다.
“제가, 더럽, 윽……. 더럽게 해서.”
목이 아픈 건지, 턱관절이 아픈 건지, 선우는 짧은 문장도 한 번에 이어 말하지 못했다. 아예 마비된 듯 또 칠칠찮게 침을 주룩 흘리더니 제가 더 화들짝 놀라 턱을 닦고 바닥도 문질러 닦았다. 잘 참았는데, 목구멍이 터질 것만 같은 고통도 참고 잘 빨았는데 차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태화가 데려가지 않겠다고 할까 봐 눈치가 보였다. 잔뜩 기가 죽은 얼굴로 태화를 쳐다보는데 그는 어째 화가 난 듯한 눈빛이었다.
역시 차를 더럽혀서 그런 걸까?
선우는 더 침을 흘리지 않기 위해 입술을 앙다물었다. 턱이 덜덜 떨렸으나 그래도 버텼다. 순간 태화가 손을 쭈욱 뻗었을 땐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뺨을 때릴 줄 알았는데 손이 닿은 곳은 입술이었다.
선우는 눈을 살며시 뜨고 태화를 봤다. 입술을 문지르는 얼굴은 무표정했다. 쓰다듬어 주는 건지 도리어 아프게 하는 건지 모를 만큼 힘이 실려 선우는 아! 소리를 냈고, 태화는 그 틈에 선우의 입 안으로 엄지를 쑥 집어넣었다. 말랑한 혓바닥을 몇 번 꾹꾹 누르다가 손을 빼고 뒤로 물러났다.
선우는 피가 살짝 비치는 입술을 소매로 벅벅 문질러 닦고 태화를 올려다봤다.
“저 데리고 갈 거예요……?”
“아니.”
태화는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선우는 입을 반쯤 벌리다가 돌연 얼굴을 찌푸렸다.
“왜……!”
억울한 듯 소리치는데 태화는 더 상종할 가치도 없다는 듯 뒤로 물러나 차를 짚고 섰다.
“내려.”
태화가 말했지만, 선우는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내리면 진짜 끝이라는 걸 알았다. 다시 저 꽃다방으로 돌아가 골방에서 자는 것도 싫었고, 또 면도방에서 다른 남자들을 받는 것도 싫었다. 차라리 화장실에서 자고 조금 전처럼 죽을 것만 같던 펠라티오를 하루에도 몇십 번 하더라도 태화와 함께 가고 싶었다.
꿈쩍도 하지 않고 도리질만 치자 태화는 두 손으로 차 지붕을 짚고 선우를 마주 보고 섰다.
“너 남창 짓 하는 것만큼이나 맞는 거 무서워하지? 죽는 것도 싫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나한테 맞으면 너 죽어. 그러니까 한 번 말할 때 들어.”
감정이 전혀 들어 있지 않은 어투에 선우는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무감한 눈빛은 정말 저를 죽일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실제로 태화는 사람을 죽이기도 했다. 선우는 그 사건의 목격자였다.
그런데도 선우는 망부석처럼 무릎을 꿇은 채로 가만히 있기만 했다.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데 목이 메서 그런지, 거친 펠라티오의 여파 때문인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쉭쉭거리는 숨소리만 내며 쳐다봤다. 눈싸움이라도 하듯 한참을 대치하던 두 사람 중 먼저 움직인 건 태화였다.
“내려, 씨발.”
태화는 한숨을 푹 쉬더니 직접 선우의 팔뚝을 잡아 밖으로 끌어냈다. 우악스러운 힘에 선우는 질질 끌려가다가 앞으로 푹 고꾸라질 것 같아서 겨우 다리에 힘을 주고 섰다. 차 안으로 처박혔던 순간처럼 순식간에 밖으로 끌려 나온 선우가 크게 휘청였으나 태화는 관심도 두지 않고 차 뒷문을 닫았다. 결국 선우는 몇 번 비틀거리다가 바닥으로 풀썩 주저앉았다. 일어나려고 해도 다리에 영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넘어지길 반복했다.
태화는 그 꼴을 넌지시 내려다보다가 말없이 운전석으로 가 차에 올랐다.
“흑…….”
울음이 터져 버린 선우는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조수석 문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선팅이 진하게 돼 있어 안이 보이지 않았다. 열어 달라는 듯 쿵쿵쿵 두드리자 창문이 슥 내려갔다.
“나 좀 데리고…….”
“어제 오늘 일 말하고 싶으면 말해. 네 새끼 말을 믿어 줄 인간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저 잘할게요……!”
“나랑 다신 마주치는 일 없어야 할 거야. 다시 만나면 손부터 올릴 거고.”
태화는 선우의 말을 끊고 제 할 말만 하더니 차를 출발했다. 사이드 미러로 보자 선우가 비틀거리면서도 쫓아오는 게 보였다. 그러다 다시 풀썩 넘어지는 걸 봤을 때는 더 시선을 주지 않고 앞만 봤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바닥을 쳤다. 짜증이 난 적은 많아도 더러운 기분을 느끼는 건 꽤 오랜만이었다.
작고 좁은 입 안으로 좆을 물렸을 때보다도 온갖 눈치를 다 보며 제가 흘린 침을 닦던 최선우의 청승을 볼 때 더 흥분한 게 기분이 더러웠고, 물기 어린 눈으로 저 좀 데려가라며 사정하는 미련함을 보고 잠깐 데려갈까 고민했던 저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좆같네.”
태화는 여전히 빠듯하게 피가 몰린 아랫도리를 느끼며 쯧 혀를 찼다.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남는 손으로 사타구니를 주물럭거렸다. 진정하길 바라며 만졌지만, 손을 대면 댈수록 자지가 무지근하게 아렸다. 다시금 욕지거리를 내뱉고 핸들을 콱 쳤다.
짐승이 된 것 같았다.
아니, 이미 짐승이었나?
태화는 숨을 느른하게 내쉬며 크게 씨근대는 가슴 근육을 풀었다. 신호에 걸려 잠깐 멈춰 섰을 때 습관처럼 손가락 끝으로 핸들을 톡톡톡 치는데 옅은 통증이 찌릿 올라왔다. 어제부터 애를 먹였던 상처가 잔뜩 벌어져 있었다. 쭉 갈라져 벌건 속살을 드러낸 상처에서는 이제 진물까지 나왔다. 미간을 구깃구깃하게 접은 채로 상처를 가볍게 쓸어 보던 태화는 돌연 눈을 반짝 떴다.
“밴드.”
면도방에 떨어뜨리고 온 반창고가 기억났다. 당시에는 경황이 없어서 챙기지 못했는데 만에 하나 냄새를 맡은 경찰이 들이닥쳤다가 발견이라도 한다면 낭패였다. 다년간의 업무 속에서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놓치는 법이 없었는데 이게 전부 그 희멀건 놈 하나 때문이었다.
“최선우…….”
태화는 선우의 이름을 작게 중얼거리다가 신호가 바뀌어 다시 액셀을 밟았다. 반창고는 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증거 인멸을 위해 자진해서 청소까지 하던 놈인데, 아무렴 반창고를 놓쳤을까 싶었다.
어딘가에서 캐럴이 들렸다. 새벽 나절부터 문을 연 빵집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빵집 앞에는 대형 크리스마스트리도 있었고, 옆에 산타 복장을 하고 선 할아버지 동상도 있었다. 문득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외치던 차랑차랑한 목소리가 기억났다.
“메리 크리스마스는. 씨팔.”
욕을 매달면서도 입매는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징글 벨을 징그럽게 찾아 대는 캐럴이 귓가를 맴맴 돌았다.
*** ㄹㅂㅌㄹ 공금임 ***
헌 해가 가고 새해가 왔다. 1월 1일에는 꽃다방도 쉬는 터라 선우는 혼자서 새해를 맞이했다. 다들 챙겨 먹는 떡국도 먹지 못했다. 한 살 더 먹지 않아서 좋다는 핑계로 스스로를 위로했으나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외로움은 어쩔 수 없었다.
보일러도 제대로 되지 않는 꽃다방 골방에 들어앉아, 선우는 회색 라디에이터 앞에서 혼자 신정을 지냈다. 태화를 못 본 지 보름이 지났다. 태화 정육을 언급했을 때의 반응을 보아하니 이름은 태화가 맞는 것 같은데 성도 묻지 못했다. 그날 펠라티오를 하다 찢어진 입가는 얼추 나아 가는 참이었다.
다음 날 꽃다방으로 출근한 권 마담과 아가씨들은 멍이 내려앉아 여기저기 검게 물든 선우를 보며 무슨 일이냐고 호들갑이었으나 정작 선우는 지영환에게 맞은 광대보다 피딱지가 앉은 입가가 더 아팠다. 지금 생각해도 태화의 자지는 커도 너무 컸다. 입 안이 꽉 차다 못해 낄 정도로 굵고, 화상이라도 입을 만치 뜨겁고, 사정한 것만큼 좆물을 질질 흘리던 자지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났다. 할 땐 고문 같았는데, 혼자 떠올리면 그렇게 흥분될 수 없었다.
“하…….”
선우는 신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숨을 푹 내쉬며 끌어안은 무릎 위로 턱을 괬다. 어제 새벽에도 태화를 그리며 자위했는데 또 아랫배가 꼼질꼼질거렸다. 미친 것만 같았는데 원래 미쳐 있다는 걸 알아서 별스럽지 않았다.
파르르 떨리는 자지를 무시하고 앞을 봤다. 바로 앞에는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가 있었다. 손을 뻗어 의자 위에 동글동글 뭉쳐 있는 걸 검지로 쓰다듬듯 톡톡 두드렸다. 태화의 손에서 떨어져 나온 반창고였다. 태화가 영환의 목을 조르는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엉금엉금 기어가 챙겨 놨었다.
“가지고 있는 거 알면 죽이겠지?”
선우는 픽 웃었다.
그날 밤을 떠올렸다. 벌써 보름이나 지났는데 불과 10분 전에 일어났던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났다. 태화의 목장갑 끝에 번진 피가 비치는 것도, 지영환이 그의 손등을 긁어 네 줄의 상처를 낸 것도, 핏물을 받던 김치 통의 색깔과 검은색 캐리어 오른쪽 중앙에 적혀 있던 빨간색 브랜드 로고도. 마치 누가 눈앞에 그날 녹화한 영상을 재생해 놓은 것처럼 선명했다.
태화가 느닷없이 그렇게 쓰러질 거라곤 상상도 못 했었다. 짜증을 잘만 내던 사람이 한순간에 쿵 쓰러져 선우는 태화가 무슨 풍이라도 온 줄 알았다. 나중에 보니 기절한 것도, 죽은 것도 아니라 단순히 잠든 것이라는 걸 알고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못해도 190센티미터는 넘는 데다가 근육이 덕지덕지 붙은 몸이라 똑바로 눕히기도 쉽지 않았다. 거구에 깔려 숨이 넘어가기 직전, 선우는 겨우겨우 태화를 옆으로 밀어 눕혔다.
잠든 모습은 누구나 천사 같다고 하던데, 태화는 잘 때도 미간을 구기고 잤다. 선우는 저도 모르게 태화의 미간을 슥 쓸어 펴 주고 혼자 흠칫 놀라다가 방에서 자신이 쓰는 베개와 이불을 가져와 편한 자리를 만들어 줬다. 잠든 그를 한참 관찰하다 지영환을 옮긴 건, 시체에서 은근한 악취가 풍기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나중에 권 마담의 노트북을 몰래 켜 검색해서 태화가 그날 쓰러진 이유가 ‘기면증’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기면증이라니, 그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질환이었다. 하긴, 그렇게 철두철미한 사람이 고작 손가락 상처 때문에 일을 그르칠 뻔한 것도 어울리지 않긴 했다.
“약 안 바르면 덧날 텐데.”
이젠 갈색이 돼 버린 반창고의 핏자국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사실 나흘 전까지만 해도 태화가 미웠다. 숨이 막히는 공포도 참고 좆도 빨아 줬는데 자신을 두고 매정하게 가 버리는 모습을 보고 저주도 했었다. 심한 건 아니었고, 저녁 먹고 배탈이나 나 버리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발라 주고 싶다.”
하지만 선우는 태화를 결국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지옥으로 끌고 간 저승사자 놈을 죽여 줬는데 싫어할 수 없었다. 미워할 순 있어도 태화를 싫어하는 방법은 몰랐다. 선우는 여전히 꽃다방이었고 오늘만 해도 벌써 손님을 셋이나 받았다. 지영환이 죽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나 그래도 한결 나은 삶이었다.
“선우야, 나와 봐!”
태화를 이제는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껏 우울해하고 있는데 밖에서 권 마담이 불렀다. 이미 손님 셋을 받았는데 또 손님인가 싶었다. 버릇처럼 미간을 찡긋거리다 감정이 빠진 얼굴로 돌아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워 돌돌 돌리던 반창고는 다시 플라스틱 의자 위로 올려 뒀다.
홀 쪽으로 나가는데 무슨 일인지 늘 한 개쯤은 문이 닫혀 있던 면도방이 전부 활짝 열려 있었다.
오늘은 장사가 안 되나……?
두 눈을 끔뻑이며 나가자 권 마담과 아가씨들이 다 모여 서 있었다. 그 앞에는 남자 두 명이 있었다. 한 명은 낯이 익고, 한 명은 처음 보는 남자였다.
“손님이에요?”
선우가 묻자 권 마담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그때 처음 보는 남자가 선우에게 경찰증을 내밀었다.
“용지 경찰서 강력 1팀에서 나왔습니다. 저는 한동열 경사고, 이쪽은…….”
“어, 선우. 잘 지냈어?”
자신을 경사라고 소개한 동열이 옆에 있는 남자를 소개하려는데 남자가 먼저 선우에게 아는 척을 했다. 탁성모였다. 동열과 마찬가지로 용지서에서 근무하는 경위였고, 선우의 단골이기도 했다. 선우는 제게 반갑게 알은체하는 탁성모를 보며 고개를 꾸뻑 숙여 인사했다.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던 한동열만 이상한 표정을 짓다가 경찰증을 주머니에 넣었다.
“뭐 좀 여쭤보려고 하는데요.”
“네.”
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멍하게 뜨였던 눈이 맑아졌다.
“지영환 씨 아시죠?”
“지 사장님이요……?”
“예. 지영환 씨가 사라졌다는 제보가 들어와서요.”
역시 예상했던 대로였다. 이미 한참 전부터 경찰의 관리에서 벗어난 집창촌 구역으로 경찰 두 명이 들어선 이유라야 지영환의 실종뿐이 없을 터였다. 선우는 이 순간이 꽤 늦게 왔다고 생각했다.
태화가 돌아가고 꽃다방으로 돌아온 선우는 영환의 시체가 매달려 있던 화장실 벽을 쳐다보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경찰이 찾아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날아올 질문을 예상하고 적절한 답변을 정해 두었다. 작은 머리통으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선우는 머릿속으로 수십 번 시뮬레이션을 돌린 것처럼 영환의 실종 소식은 처음 듣는다는 듯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맞아, 지 사장님 실종됐대. 그래서 요새 안 온 건가 봐. 선우, 너 만나러 왔을 때 뭐 이상한 거 없었어?”
“아직 실종인지는 모르고요. 그냥 조사 차원에서 나왔습니다. 요즘 전국적으로 실종 사건이 많아서요.”
권 마담이 무섭다는 듯이 몸을 부르르 떨며 선우에게 묻자 한동열이 내용을 정정해 줬다. 선우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열의 말이 맞았다. 이건 실종 사건이 아니었다. 살인 사건이지. 그나저나 전국적으로 실종 사건이 많다니, 그것들이 전부 태화와 관련이 있나 싶었다. 그때 그가 ‘네가 청부했냐?’라고 물었었는데 그렇다면 그는 살인을 업으로 삼는다는 뜻이었다. 전국에서 일어나는 실종 사건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태화의 소행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분 말로는 2주 전에 여기 들렀었다는데.”
“2주 전이요?”
“크리스마스이브 전날이요. 이상한 점 없었습니까?”
“이상한 점…….”
선우는 기분 좋게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을 느끼며 연기를 시작했다. 곰곰이 생각하는 척 시선을 내리깔아 한동열의 운동화 앞코를 내려다봤다. 형사라더니 정말 이리저리 뛰어다니는지 흙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다. 옷은 깔끔한데 신발까지는 신경 쓰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애인이 없나? 있으면 잘 보이고 싶어서라도 저렇게 다니진 않을 텐데.
선우는 영양가 없는 생각만 줄줄이 하다가 고개를 들고 도리질을 쳤다.
“딱히……. 그냥 평소랑 똑같았어요.”
“최선우 씨 만나러 매주 화요일, 금요일마다 왔다고 들었는데요. 매번 오던 날에 안 왔을 때 연락할 생각은 못 하셨어요?”
“제가 왜요?”
“예?”
“제가 지 사장님한테 왜 연락해요?”
선우는 동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동열이 고개를 아주 살짝 기울였다.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봐서 선우는 그제야 아차 하고 정신을 차렸다. 지영환에게 왜 연락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하듯 묻는 말에 본능적으로 반발심이 뛰쳐나가 버렸다. 동열이 눈을 가늘게 뜨고 선우를 살피는데 옆에 있던 권 마담이 불쑥 끼어들었다.
“아유, 우리 선우가 지 사장님한테 많이 맞아서 그래요. 여기, 입술. 이거 보이죠? 이것도 지 사장이 낸 상처라니까요. 애가 원래 착한데 지 사장 그 양반이 우리 선우를 어지간히 괴롭혔어야지. 그리고 선우는 연락할래도 못 해요. 휴대폰이 없거든요.”
권 마담은 선우 입가에 거의 옅어진 상처 자국 좀 보라며 선우의 턱을 잡아 동열 앞으로 끌었다. 선우는 얼결에 끌려가 동열과 가까이 마주 보게 됐다. 물론 이 상처는 지영환 때문에 난 상처는 아니었지만, 별달리 정정해 주진 않았다. 어쨌든 영환이 그간 저를 줄기차게 괴롭혀 온 건 사실이었으니까.
동열은 제 앞으로 다가온 선우를 들여다봤다. 여기 오기 전 선우가 지영환에게 큰 빚을 졌다는 건 이미 알았다. 영환이 관리하는 이쪽 골목에서 영환에게 빚을 지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액수의 차이다 뿐이지 모두 다만 얼마라도 빌렸다. 빚이 없는 게 오히려 더 수상한 이 거리에서 선우가 동열의 눈에 들어온 건 다른 이유였다.
보통 남자 빚쟁이는 업소 가드를 뛰거나 호스트바에서 외로운 여성들의 돈을 뽑아 먹는 제비 짓을 하는데 선우는 고작 이런 다 낡은 다방의 종업원이라고 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생긴 것만 봐선 얼굴마담이라고 해도 손색없었으나 다방에서 남자가 얼굴마담이라니, 말이 안 되었다.
게다가 요즘 시대에 폰 없는 인간이 어딨어?
동열은 선우의 새카만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며 생각하다 먼저 뒤로 물러났다. 알겠다며 손을 휘휘 젓자 권 마담은 그제야 선우의 턱을 놨다.
“그럼 그날 지영환 씨랑 만나서 뭐 했습니까?”
매주 화요일, 금요일마다 찾아온다니 분명 두 사람이 정기적으로 하는 게 있을 터였다. 동열은 그게 뭔지 궁금해 물었고, 선우는 대답 대신 옆에 선 성모를 봤다.
“말해도 돼요?”
선우가 묻자 탁성모는 쯧 혀를 차며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선우는 다시 한동열을 봤다.
“자지 빨아 줬는데요.”
“야, 야. 넌 애가 무슨 부끄러운 것도 없이, 쯧.”
동열이 인상을 찌푸리며 되묻기도 전에 탁성모가 나서서 손사래를 쳤다. 선우는 뭐가 문제인지 몰랐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했을 뿐이었다.
아, 면도방을 운영하는 게 비밀이었나……?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얼굴은 너무 말끄름했다. 노골적인 언사가 문제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성모와 마찬가지로 권 마담이 안절부절못하는 사이 한동열은 구겨진 눈으로 다시금 꽃다방을 스윽 둘러봤다. 한동열은 용지서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꽃다방이 비단 커피만 파는 곳이 아니라는 걸 몰랐다. 아니, 몰랐는데 지금 알게 됐다.
“팀장님, 여기 퇴폐…….”
“아, 우리 바빠. 빨랑 끝내고 가자, 쫌.”
성모는 동열의 말을 끊고 팔을 잡아끌었다. 이걸로 대답은 충분했다. 성매매 업소가 즐비한 거리에 유일하게 있는 다방이라 뭐가 다르겠지, 생각했던 한동열은 다 똑같다는 걸 알고 한숨을 푹 쉬었다. 자꾸 밖으로 나가려는 탁성모의 손을 떼고 주름진 재킷을 툭툭 털었다.
“그럼 안쪽 한 번만 둘러보고 가요.”
“둘러볼 것도 없어.”
“팀장님.”
동열은 말은 팀장님이라고 부르면서 정작 탁성모를 제 아랫사람 대하듯 했다. 목소리를 내리깔고 말하자 성모는 알았어, 알았어, 하며 귀찮은 표정을 지었다. 권 마담이 어떻게 좀 해 보라고 성모에게 눈치를 줬지만, 성모는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한동열은 선우를 지나쳐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잠시 안쪽 좀 봐도 괜찮겠습니까?”
“그럼요. 보세요. 실컷 둘러보세요.”
이미 보고 있으면서 뒤늦게 묻는 동열에게 권 마담도 이제는 모르겠다는 식으로 대충 대답했다. 어차피 이 일대가 다 불법 성매매 업소인데 저들만 따로 처벌받을까 싶기도 했고, 탁성모를 보는 눈빛에서 믿는 구석이 있는 것도 같았다. 동열은 아무것도 모르고 다방 주방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둘러보며 점점 안쪽으로 들어갔다. 면도 의자가 놓인, 똑같이 생긴 네 개의 면도방을 살피는 눈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선우는 남들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홀 쪽에서부터 세 번째 방. 태화가 영환을 죽인 방이었다. 뭘 보기라도 했는지 그 앞에 잠깐 멈춰 선 동열은 곧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다. 선우는 옅은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긴장을 풀기엔 아직 일렀다. 동열은 면도방 맞은편 구석에 있는 화장실을 발견하고 이번에는 안에 들어가 보기까지 했다. 면도방은 그냥 지나치더니 화장실은 중앙에 서서 한 바퀴 빙 둘러보고 나왔다.
선우는 점점 애가 탔다. 한동열이 쪽방 안으로 불쑥 들어갔을 때는 참지 못하고 뒤따라 들어갔다.
“여기 누가 삽니까?”
“제 방인데요.”
한동열이 방을 들여다보며 묻자 선우가 대답했다. 바로 뒤에서 들려온 음성에 한동열은 곧장 뒤를 돌아봤다. 선우는 뭐 문제 있냐는 듯 커다란 눈을 또랑또랑 뜨며 쳐다봤다. 사뭇 방 주인의 허락도 없이 함부로 들어온 것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것도 같은 얼굴이었다. 동열은 큼큼 헛기침하면서도 관찰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TV도 없는 방, 옷장 대신 빼빼 마른 행거만 있고, 소리가 날까 의심되는 낡은 라디오……. 천천히 옮겨지던 시선은 달력에 머물렀다.
“달력에 이 표시는 뭡니까?”
선우는 플라스틱 의자 쪽으로 자리를 옮기고 동열이 가리키는 달력을 봤다. 달력에는 빨간색 사인펜으로 영환이 죽기 전 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태화가 오지 않은 날을 표시해 둔 것이었다.
“좋아하는 손님이 안 온 날이요.”
선우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딱히 거짓말도 아니었다. 태화가 ‘손님’은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맞았다. 어떤 의미로 좋아하는진 선우도 아직 헷갈렸으나 태화를 보면 가슴부터 뛰었으니 당당하게 좋아하는 손님이라고 말했다.
영환을 감시하기 위해 왔던 거라 하필이면 딱 화요일, 금요일에 표시가 돼 있어서 동열은 잠깐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냈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아, 그만큼 봤으면 됐지! 그만하고 나와, 자식아!”
홀에서 권 마담과 수다를 떨던 탁성모가 소리쳤다. 한동열도 여기서 더 얻을 게 없다고 생각됐는지 미련 없이 걸음을 돌렸다. 방문턱을 넘는데 갑자기 뒤를 휙 돌아봤다. 고개가 옆으로 살짝 기울어졌다.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 위에 콩알만 한 뭔가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 보니 아무것도 올려져 있지 않았다.
잘못 봤나?
한동열은 눈썹을 들썩이며 나갔고, 선우는 그 뒤를 따랐다. 주먹을 꼭 쥔 손안에는 태화의 반창고가 들어 있었다.
“그럼 나중에라도 뭐 생각나는 거 있으면 바로 연락 주십시오.”
“네, 네.”
“그쪽도요.”
선우는 저를 보고 말하는 동열을 향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탁성모와 한동열이 돌아가고 문이 닫힐 때까지도 웃음을 잃지 않던 권 마담은 문이 닫히자마자 재수가 없다며 구시렁거렸다. 아가씨들도 오랜만에 경찰을 봐서 그런지 다들 긴장했던 몸을 이리저리 풀며 말을 얹었다.
선우만 방으로 후다닥 들어가 창문 너머를 빼꼼 내다봤다. 건물 입구에서 탁성모와 한동열이 나오는 게 보였다. 둘은 바로 차에 타지 않고 건물 앞에 서서 담배를 태웠다. 선우는 낯을 반쪽만 내밀어 한쪽 눈으로만 한동열을 관찰했다. 성모에게 뭐라 뭐라 짜증 내는 것 같았다. 꽃다방이 불법 퇴폐업소라는 걸 알았느냐고 추궁하는 중일 터였다.
“탁성모가 내 단골인데. 병신.”
선우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한동열이 고개를 들어 올리려 할 때 바로 숨었다. 빠르게 움직여서 눈은 마주치지 않았다.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다가 스르륵 주저앉은 선우는 여태껏 꼭 쥐고 있던 주먹을 풀었다. 꼬깃꼬깃하게 접힌 반창고를 다시 플라스틱 의자 위에 올려 뒀다.
태화가 보고 싶었다. 뭘 얼마나 안다고, 보고 싶니 마니 하는 게 우스운 일이라는 걸 알았지만 보고 싶은 건 보고 싶은 것이었다. 남의 자지나 빠는 걸 역겹게 보는 게 아니라 흥미로운 얼굴로 보던 것도 좋았고, 지영환에게 맞는 저를 보며 미간을 구기던 것도 좋았다. 콜라를 가져다줬을 때 픽 웃던 얼굴은 더할 나위 없었다.
가만히 보면 이 모든 게 그 잘난 얼굴 때문인 것 같았지만 만약 태화가 온 낯에 화상을 입어 피부가 다 녹아들었더라도 좋을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그게 더 좋았다. 그러면 태화를 좋아할 사람이 저밖에 없을 테니까.
“언제 올 거예요.”
깊은 한숨을 내쉬고 바닥으로 벌렁 드러누웠다. 곰팡이가 슨 천장 귀퉁이가 눈에 들어왔다. 쓸모도 없는 게 생명력은 강해서 볼 때마다 커져 있었다. 꼭 저를 보는 것만 같았다.
“나 기다리기 힘들어…….”
혼잣말 끝에 눈을 감았다. 반창고를 쥐고 있던 손을 펼쳐 입술에 댔다. 그럴 리가 없는 걸 아는데도 손바닥에서 태화의 피 냄새가 느껴졌다.
* * *
교도소 벽 쪽문이 열리고 몇 명의 남자가 비척비척 나왔다. 표정이 하나같이 다 달랐다. 누구는 환희에 찬 표정으로 쏟아지는 햇빛을 맞았고, 누구는 눈물을 글썽이며 앞에서 기다리던 사람들과 포옹을 나눴다. 무심하게 혼자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고, 교도관에게 깍듯이 인사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중 가장 마지막으로 나온 남자는 이미 안에서부터 끼고 나온 선글라스를 아래로 비죽이 내려 주변을 휙 둘러보다가 아는 얼굴을 발견하고는 쩝 입맛을 다셨다.
“형님!”
초상집이라도 온 듯 검은색 정장을 입은 떡대 일곱이 일제히 남자를 향해 90도로 인사했다. 남자는 일부러 교도소 벽에 가래침을 툭 갈기고 떡대들에게 다가갔다.
고작 일곱. 조촐해도 너무 조촐한 숫자였다.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에는 70명에 육박하는 놈들을 거느렸는데 5년을 살고 나오자 고작 일곱 명으로 줄어 있었다. 남자는 눈썹을 짜증스럽게 구기고 건들거리며 걸었다. 5년 사이에 유행이 바뀌어 남자가 입은 정장은 좀 촌스러웠다. 본인도 그걸 느끼는지 괜히 옷깃을 툭툭 털다 아랫놈이 내미는 검정 봉지를 보고 쯧 혀를 찼다. 안에는 하얀 두부가 들어 있었다.
“촌스럽게 두부가 뭐야, 두부가.”
“그럼 따로 드시고 싶은 거라도 있으십니까?”
“너는 방금 막 출소한 새끼가 뭐 먹고 싶은 거 말할 정신머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냐?”
“죄송합니다…….”
아랫놈이 기가 죽어 고개를 숙이자 그게 또 꼴 보기가 싫어 마지못해 두부 귀퉁이를 뚝 떼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하다못해 삶은 것도 아니고 생두부였다. 하여튼 센스는 밥 말아 먹은 아랫놈들 때문에 남자는 교도소에서 나온 이 좋은 날에 짜증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그래도 저 하나만 보고 5년을 기다린 놈들인데 차마 보자마자 쌍욕을 퍼부을 수 없어서 욕 대신 한숨만 푹 쉬고 남자들을 지나쳐 걸어갔다.
“치킨 먹으러 가자. 싸제 치킨 존나 땡긴다.”
남자는 콩 비린 맛이 남은 입 안을 쩝쩝거리며 말했다. 남자 뒤로 떡대 일곱이 우르르 따라붙었다. 앞에는 5년 전 좋다며 뽑았던 외제 차가 서 있었는데, 이젠 저것마저 고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생각이 있는 놈 하나가 빠르게 달려가 남자를 위해 뒷좌석 문을 열고 대기했다. 하지만 남자는 그 문을 발로 차서 텅 닫아 버리고 직접 운전석에 앉았다. 떡대들은 운전석 옆으로 횡대로 죽 서서 조금 전처럼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했다. 운전석 차창이 슥 내려갔다.
“신포동에 그 닭집 아직도 하냐?”
“예? 아, 예! 아직도 장사합니다.”
“거기로 와라.”
“예!”
남자는 고개를 대충 끄덕이고 핸들을 잡았다. 차창이 다시 올라갔다.
“아, 참.”
올라가던 차창이 도로 지잉 내려가며 그 사이로 남자가 고개를 비죽이 내밀었다. 선글라스를 내려 코끝에 걸쳐 둔 남자는 가장 가운데에 서 있는 아랫놈을 봤다.
“영감은 아직 살아 있디?”
앞뒤 다 잘라먹은 말이었으나 아랫놈은 바로 알아들었는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는 씨발, 하고 작게 읊조렸다.
“그 양반 명줄 한번 존나게 질기네, 진짜.”
남자는 혀까지 끌끌 차고 비로소 차를 출발했다. 못나게 구겨져 있던 미간이 천천히 펴지고 곧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영감이 죽지 않은 건 좆같은 일이었으나 좋아하던 치킨집에 가서 시원한 생맥주와 치킨 닭 다리를 뜯을 생각을 하니 벌써 군침이 돌았다.
5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 서재화였다.
* * *
선우는 결국 해선 안 될 짓을 했다. 다신 마주치지 말자던 태화의 마지막 말을 무시하고 부영 시장까지 와 버린 것이었다.
권 마담에게는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좀 다녀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나왔다. 방금 막 선우 앞으로 온 예약 전화를 받은 권 마담은 조금 있으면 오는 손님 하나만 받고 가라고 했지만, 선우는 될 수 있는 한 최대로 아픈 척을 했다. 워낙 비실비실하게 생기다 보니 조금만 비틀거려도 그럴싸했다.
진짜 못 견디겠다고 말했더니 권 마담은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손님 하나를 놓치는 건 아깝지만 이러다 선우가 정말 픽 쓰러져 며칠 동안 손님을 못 받으면 그게 더 손해라 할 수 없이 병원에 다녀오라며 허락해 줬다. 선우는 혹여나 권 마담이 창문으로 내려다볼까 봐 병원이 있는 쪽으로 걷다가 길을 빙 도는 수고까지 하며 버스를 타고 부영 시장으로 왔다. 여기까지 왔으면서 시장 입구에서 들어가도 되나 갈팡질팡하길 몇 분이었다.
입구에서 태화 정육은 꽤 거리가 있어서 자세히 봐야만 보였다. 태화는 워낙에 가게 안에서만 손님을 응대하는 편이라 선우는 쉽사리 그를 볼 수 없었다. 괜스레 뻥튀기 가게를 구경하는 척 서성이고 있는데 별안간 태화 정육 간판의 불이 꺼졌다.
“어?”
마감 시간도 아니고 아직 훤한 대낮인데도 그랬다. 선우는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크게 뜨고 정육점을 지켜봤다. 순간 가게에서 태화가 나왔다. 이렇게 갑자기 등장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해서 선우는 놀란 탓에 어깨를 크게 떨었다. 행여나 시선이라도 마주칠까 봐 딴청을 피우다가 다시 저쪽을 힐끔 쳐다봤다.
태화는 가게 문을 잠그고 있었다. 문을 다 잠그고 문고리를 잡아 잘 잠겼는지 확인까지 하더니 옆에 있던 떡집 사장과 몇 마디를 주고받는 게 보였다. 며칠 전 사람을 죽인 살인마라고는 누구도 짐작하지 못할 만큼 서글서글한 미소를 띤 채였다.
처음부터 저 미소에 끌렸던 선우는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다가 불현듯 태화가 입은 옷이 눈에 들어왔다. 검정 정장이었다. 셔츠까지 검은색으로 맞춰 입은 태화는 넥타이를 하는 대신 단추를 두 개 풀어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기성복이라기에는 저 큰 몸에 꼭 들어맞는 게, 마치 어디에서 비싸게 맞춘 정장 같았다. 꽉 찬 가슴 근육이 잘 드러나는 옷태에 선우는 침을 꼴깍 삼켰다.
“저렇게 입고 어딜 가는 거야?”
본인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린 선우는 태화가 반대쪽으로 걸어가는 걸 보고 자연스레 뒤를 따라 걸었다.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 사이를 파헤치는 동안에도 시선은 태화에게만 꽂혀 있었다. 태화는 자신을 알은체하며 어쩜 이렇게 잘났냐고 칭찬을 퍼붓는 시장 상인들 한 명 한 명에게 친절하게 웃어 줬다.
선우는 저 미소가 제게도 닿길 바라면서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다. 온통 검은색으로 점철된 태화만 보면 이곳이 시장이 아니라 어느 고급 호텔의 라운지, 혹은 런웨이처럼 느껴졌다. 그만큼이나 태화가 풍기는 분위기는 도떼기시장인 주변을 압도했다.
시장 끝 큰길까지 나간 태화는 무슨 일인지 잠깐 멈춰 섰다가 곧 다시 걸음을 뗐다. 그가 향한 곳은 대로변에 주차된 하얀색 트럭 앞이었다. 선우는 단번에 저게 태화의 트럭이라는 걸 알아봤다. 그는 그 멋진 옷을 입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작은 트럭에 올라탔다.
시동이 드릉 걸리며 차가 달달 떨리는 게 보여서 선우는 다급히 택시를 잡았다. 다행히 택시가 곧바로 잡혔다. 선우는 뒷좌석에 빠르게 올라타며 앞을 봤다. 태화가 탄 트럭은 이미 슬슬 움직이고 있었다.
“앞에 트럭 따라가 주세요!”
마음이 급해서 음성이 갈라져 나왔다. 남은 마음이 급해 죽겠는데 택시는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왜 안 가나 싶어 택시 기사를 쳐다보자 기사는 룸 미러로 선우를 보고 있었다. 영 수상쩍은 사람을 보는 눈초리였다.
선우는 지금 제 꼴을 돌아봤다. 무릎이 다 늘어난 면바지에 맨날 입고 다니는 회색 카디건, 그 안에 입은 하얀 티셔츠는 목이 많이 늘어져 있었다. 한겨울에 이런 꼴을 하고 앞에 차를 따라가 달라고 말하니 이상하게 보는 것도 당연했다.
택시 기사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했지만 선우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이미 태화의 차는 저 앞을 내달리는 중이었다. 이대로는 놓칠 것만 같아서 서둘러 주머니를 뒤져 돈을 꺼냈다. 꼬깃꼬깃하게 접혀 있는 건 오만 원짜리 두 장이었다.
“저 돈 있어요.”
한 장은 어제 마지막 손님에게 권 마담 몰래 받은 팁이었고, 한 장은 그날 죽기 직전의 영환에게서 받은 돈이었다. 돈을 보고도 기사는 의심을 거두지 않은 것 같았지만 어쨌거나 기름값을 떼먹을 놈은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차가 출발했다. 다행히 하얀 트럭은 사거리의 긴 신호에 걸려 서 있었다. 그때부터 선우만 알고 있는 추격전이 시작됐다. 사실 추격전이랄 것도 없이, 연식이 꽤 있는 트럭은 빠르게 달리질 못해서 따라가기 수월했다.
어느덧 차는 서울을 빠져나와 경기도 외곽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몇 분 전부터는 도로 주변으로 건물보다도 논밭이 더 많이 보였다. 고속도로도 아니고 국도로만 달려서 평일 대낮의 도로에는 차가 별로 많지 않았다.
선우는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으며 저 앞에서 달리고 있는 태화의 트럭만 쳐다봤다. 문득 룸 미러로 택시 기사가 계속 힐긋대는 게 느껴졌다. 왜 그러나 싶었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이제 도로에 차라고는 태화가 탄 하얀 트럭과 선우가 탄 택시뿐이었다. 앞뒤로도 오가는 차 한 대가 없었다.
“계속 따라가요?”
택시 기사가 눈치를 보며 물었다. 선우는 잠깐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만두기 아까웠다. 어차피 돈도 넉넉했고, 갈 데까지 가 보자는 심정으로 계속 가 달라고 하는데 택시는 얼마 못 가 멈춰 서야만 했다. 도로 한복판에 태화의 트럭이 멈춘 것이었다. 선우도 기사도 당황해서 서로를 쳐다봤다.
“이제 어떡해요?”
“어…….”
선우가 머리를 굴리기도 전에 트럭 문이 열렸다. 역시나 태화가 차에서 내렸다. 태화는 여전히 무미건조한 표정을 지은 채 택시로 다가왔다.
선우와 기사가 서로 눈빛을 어지럽게 교환하는 중에 택시 조수석 옆에 선 태화가 창문을 똑똑똑 두드렸다. 택시 기사가 창문을 내리려고 하자 선우가 펄쩍 뛰었다.
“열어 주지 마세요! 절대 열면 안 돼요……!”
호기롭게 따라왔으면서 또 막상 일이 이렇게 되자 선우는 겁을 먹고 손사래를 쳤다. 지영환의 목을 조르던 것보다도 제 목을 틀어쥐고 협박을 술술 뱉던 태화가 떠올랐다. 그때 조금만 늦었더라면 산소 부족으로 죽을 뻔했었다. 머리채를 아프게 틀어쥐던 악력도 기억났고, 제게 맞으면 죽을 거라던 태화의 여상한 음성도 기억났다. 선우는 맞고 싶지 않았다. 죽는 건 더더욱 싫었다.
안 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선우를 본 기사는 위험한 일에 말렸다는 기분에 덩달아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야 할 것 같아서 기어를 후진으로 두고 핸들을 잡으려는 순간 창문으로 쾅! 소리가 났다. 택시 기사와 선우의 시선이 일제히 조수석 창문으로 향했고, 그 순간 태화는 한 번 더 손바닥으로 창문을 쾅! 내리쳤다. 주먹도 아니고 겨우 손바닥이었는데 몇 번만 더 치면 창문이 와장창 깨질 것처럼 어마어마한 진동이었다.
기사는 이제 덜덜 떨며 선우를 봤다. 선우가 다시금 고개를 저었지만 이미 창문은 슥 내려가고 있었다. 겨우 반 정도가 내려갔는데 손이 불쑥 들어오더니 조수석 시트 위로 오만 원짜리 몇 장을 후드득 떨어뜨렸다. 못해도 열 장은 되어 보였다.
“남는 건 가지세요.”
창문 너머로 태화의 음성이 들렸다. 화가 났는지 짐작도 안 될 정도로 차분한 어투였다. 택시 기사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태화는 뒷좌석으로 와 문을 벌컥 열었다. 선우가 빠르게 문고리를 쥐어 봤으나 소용없었다. 문고리를 쥘 게 아니라 문을 잠갔어야 했다는 걸, 태화의 낯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내려.”
태화는 열린 차 문에서 두 걸음 떨어진 채 말했다. 선우는 가만히 앉아 고개만 내밀어 태화를 올려다봤다. 주름 하나 지지 않은 멀끄름한 얼굴이었으나 짜증이 한가득 담긴 게 느껴졌다. 선우가 침만 꼴딱꼴딱 삼키며 움직이지 않자 태화는 숨을 툭 내쉬더니 한쪽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짝다리를 짚었다.
“맞고 내릴…….”
“내릴게요……! 내린다고요…….”
저 말이 끝나면 곧바로 손찌검이 날아들 것 같아서 선우는 눈을 질끈 감고 대답했다. 눈을 다시 슬며시 뜨자 태화가 가만히 기다려 주는 게 보였다. 선우는 숨을 한번 흡 들이마시고 차에서 천천히 내렸다. 차 문이 닫히자마자 택시는 기다렸다는 듯 유턴해서 쌩하니 가 버렸다.
택시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태화는 제 앞에 서서 눈도 못 마주치는 선우를 빤히 내려다봤다. 여전히 구질구질한 꼴. 근 한 달 만에 다시 만난 선우에 대한 짧은 감상평을 마치고 마른 손목을 아프게 잡아끌었다. 선우는 종이 인형처럼 팔랑팔랑 끌려가다 트럭 조수석 문에 등을 세게 부딪치고 아픈 신음을 냈다.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거야, 뭐야?”
역시 태화는 짜증이 나 있었다. 표정이 무감해서 혹시나 했는데 묻는 말에는 짜증이 철철 묻어났다. 선우는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고개를 숙여 태화의 구두 앞코만 봤다. 지난번에 봤던 이름도 기억 안 나는 형사 나부랭이와는 달리 깨끗하게 닦여 무광임에도 반질반질 윤이 나는 것처럼 보이는 구두였다.
태화의 이런 사소한 모습마저 좋다고, 아주 잠깐 생각이 딴 데로 새려는데 커다란 손이 돌연 턱을 쥐어 올렸다. 다행히 아픈 손길은 아니었다.
“다신 마주치지 말자고 했잖아. 근데 왜 자꾸 쫓아다녀?”
“그, 그냥……. 정장 입은 걸 처음 봐서…….”
“시장까진 왜 온 건데?”
시장에서부터 따라온 걸 아는 모양이었다. 선우는 짝사랑하는 상대의 집 앞을 서성거리던 걸 당사자에게 들킨 기분이 들어 얼굴을 붉혔다. 우물거리며 말을 하지 않자 태화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불편한 심기가 여실히 느껴졌다.
“협박이라도 하려고?”
“아니요, 아뇨.”
선우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이유는 절대 아니었다. 협박은 무슨, 도리어 지난번부터 협박하는 쪽은 태화였다. 저 같은 건 태화에게 협박을 할 주제가 못 되었다. 그저 고맙다고 하며 큰절을 해도 모자랐다.
태화를 보러 시장까지 갔던 건 순전히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차마 그 이유를 말하기 민망해 시선만 살짝 들어 올려 쳐다보자 그가 참지 못하고 한 발자국 더 다가왔다.
“보, 보고 싶어서요.”
금방이라도 주먹이 날아올까 봐 내지르듯 말했다. 일단 말을 하긴 했는데 너무 낯부끄러워서 고개가 절로 아래로 숙여졌다. 앞으로 모아 쥔 손을 꿈지럭거리며 아랫입술을 질끈 물었다. 정수리로 쏟아지는 시선이 전부 느껴졌다. 선우는 지금 목덜미가 달아오르는 게, 부끄러워서 그런 건지 태화의 시선이 너무 뜨거워서 그런 건지 구분이 안 되었다.
태화는 제 앞에서 죄인처럼 고개를 들지 못하는 선우를 멀거니 내려다봤다. 기가 차서 웃음이 나올 만큼 어처구니없는 이유였는데 지금 그의 눈에는 다른 게 더 들어왔다.
뭘 했다고 또 혼자 붉어진 목덜미, 다 낡아 빠져서 목이 늘어난 티셔츠, 그 안에 빼꼼히 보이는 잘 익은 유두. 그새 손버릇 나쁜 손님에게 또 맞았는지 왼쪽 턱 밑으로 이제 거의 색이 빠져 가는 멍이 있었고, 울지 않아도 늘 불그죽죽한 눈가와 앙다문 도톰한 입술까지 시선을 줬다. 마지막으로 다시 잔뜩 굽어진 목덜미로 눈길을 내린 태화는 손을 뻗어 손가락 끝으로 도드라지게 툭 올라온 목뼈를 쓰다듬었다.
선우가 흠칫 몸을 움츠리다가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 겁을 먹은 것도 같고, 약간의 기대감이 차오른 것도 같은 눈빛이었다. 태화는 흠……. 짧게 숨을 내쉬었다.
“일단 좀 맞자.”
태화는 목덜미를 만지던 손으로 선우의 머리채를 틀어잡아 뺨부터 갈겼다.
“헉!”
겨우 뺨 한 대 맞았을 뿐이었지만 선우는 악 소리도 나오지 않고 그저 숨만 허겁지겁 삼켰다. 뇌가 진동하는 느낌이었다. 지체하지 않고 같은 오른쪽 뺨으로 손찌검이 한 번 더 날아왔고, 선우는 이번엔 억 소리를 내며 비틀거렸다.
마음대로 쓰러지지도 못했다. 다리가 풀려 휘청이면 태화가 머리채를 더욱 견고하게 잡았다. 기분 나쁜 마찰음이 반복될 때마다 이러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선우를 야금야금 집어삼켰다. 시궁창 바닥에서 구르며 숱하게 맞아 왔지만, 태화의 폭력은 차원이 달랐다. 손바닥으로 때리는데 바위로 머리통이 쿵쿵 찧어지는 기분이었다.
“헉, 아, 아윽!”
선우가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태화의 팔뚝을 붙들었지만, 그는 가볍게 털어 내고 다시 뺨을 후려쳤다. 계속 오른쪽 뺨이었다. 지난번엔 영환에게 맞아 왼쪽 뺨이 퉁퉁 부었던 걸 기억하고 딴에는 봐준답시고 잘 쓰지도 않는 왼손으로 오른쪽만 때리는 것이었는데 선우 입장에서는 전혀 배려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오른쪽 귀 고막이 터지진 않을까 무서웠다.
입에서는 이미 핏물이 죽 흘러나오고 있었고, 얼마 못 가 코피도 툭 터졌다. 피가 재킷에 튀자 태화는 쯧 혀를 차고 선우의 머리채를 놨다. 다행히 검은색이라 핏물이 보이진 않았지만 대충 문질러 보니 손에 피가 묻어나왔다. 돌아가면 바로 드라이를 맡겨야 할 듯했다.
귀찮은 일이 생겨 미간을 구기고 있는데 밑에서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려다보니 선우가 손등으로 피가 나는 코를 슥슥 문질러 닦고 있었다. 숨죽인 채 흘러나온 눈물과 코피가 섞여 온 낯이 벌겋게 물들었다. 태화는 그 모습을 빤하게 내려다보다가 차를 한 손으로 짚고 발로 선우의 배를 걷어찼다.
“허억! 끅……!”
선우는 몸을 새우처럼 말아 두 팔로 배를 감싸 안고 끅끅거렸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지 낯이 새파랗게 질려 갔다. 뻘겋고 퍼렇고 아주 난리였다. 태화가 다시 다리를 들어 올렸을 땐 허둥지둥 일어나 그의 다리를 껴안다시피 붙들었다.
“아으……. 아파, 아파요……. 흑……. 너무 아파요, 죽을 거 같아, 무서워…….”
“아프고 무서워야지, 그럼. 그러라고 때리는 건데.”
“흐으……. 다신 안 따라다닐게요. 네? 아파요, 진짜…….”
“얼씨구? 갑자기 말 잘 듣는 척?”
“아니야, 진짜야……! 진짜라……. 악!”
태화는 선우를 발로 차는 대신 다시 머리채를 잡아 일으켜 세웠다. 선우는 윽 소리를 내며 딸려 올라갔다. 머리카락을 잡은 힘으로만 일어나려니 두피가 뜯어질 것 같았다. 고개가 뒤로 바짝 젖혀진 선우는 제 이마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저보다 한참 큰 태화와 시선이 마주쳤다.
“다신 나 미행하지도 말고, 나에 대해 알려고도 들지 마. 한 번만 더 나 미행했다간 두 발목을 잘라 버릴 줄 알아.”
“나 안 죽인다고, 흑……. 했었잖아요…….”
“발목 자른댔지 누가 죽인댔어?”
귀찮아서 저를 죽이지 않겠다던 태화의 말을 상기한 선우가 훌쩍이며 말하자 태화는 말도 안 되는 말을 논리적인 척 말했다. 선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처럼 약한 몸은 두 발목을 자르면 쇼크사든, 과다 출혈로 죽든 어떻게든 죽을 게 뻔했다. 그러니까 다음에 다시 만나면 태화는 자신을 죽이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었다. 본인은 그게 살인 예고라는 인지가 전혀 없는 눈치였지만.
선우는 겁을 먹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두피가 아팠지만 대답하지 않았다고 더 맞을까 봐 참고 팔랑팔랑 고갯짓했다. 우는 것 가지고도 뭐라 할까 봐 다급히 눈물을 훔쳤고, 하나 있는 겨울 외투인 회색 카디건을 끌어 올려 코피도 벅벅 닦았다. 아픈 신음을 내지 않으려고 입술마저 앙다물자 분주하게 움직이는 선우를 말없이 바라보던 태화는 또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미간을 짙게 구겼다.
“씹…….”
거칠게 튀어나온 욕설에 선우가 움칠 떨었다. 태화는 선우의 머리채를 놓고 비틀대는 몸을 차에 기대 세우고는 달달 떨리는 손을 끌어와 제 바지 앞섶 위로 얹었다. 선우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맹한 얼굴을 하다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바지 앞섶이 두툼해져 있었다.
“우는 거 보니까 섰거든. 어떻게 할래?”
“형도 변태예요……?”
“우선 더 맞을래?”
조금 전까지 덜덜 떨었으면서 선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겁 없이 질문을 던졌다. 물론 태화가 다시금 손 올리는 시늉을 했을 때는 다급하게 그의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선우가 까치발을 들었으나 워낙 키 차이가 있어 태화의 상체가 살짝 숙여졌다.
뭐 하자는 거야?
태화가 뒤로 물러나려는데 선우는 좀 더 힘주어 안더니 너른 어깨에 눈두덩이를 비볐다. 뒤이어 나직이 흘러나온 말에 태화는 목덜미로 핏줄이 쫙 서는 걸 느꼈다.
“빨래…….”
귓속이 선뜻하게 달아오르자 태화는 눈을 번뜩이며 선우를 조수석으로 무작정 밀어 넣었다. 조수석 문을 닫고 운전석으로 가는 발걸음에 조급함이 묻어났다.
운전석에 올라탄 태화는 문을 닫자마자 바지 버클을 내려 좆을 꺼냈다. 지난번에는 반만 발기되어 있던 게 지금은 거의 완전히 발기가 돼 위협적으로 꺼떡였다. 태화가 먼저 좆을 쥐고 슥슥 문지르자 눈치만 보던 선우가 다가왔다. 몸을 숙여 다짜고짜 좆기둥을 입에 넣으려고 하기에 태화가 선우의 이마를 밀어 내고 글로브 박스에서 물티슈를 꺼냈다.
“피 좀 닦고 와라.”
선우는 아차 싶어 서둘러 물티슈로 얼굴을 닦았다. 아까는 또 맞을까 봐 아픈 것도 모르고 되는대로 세게 문질렀는데 지금은 정신이 좀 있다고 물티슈가 닿자마자 앓는 소리가 나왔다. 그래도 지체할 수 없어서 태화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얼굴에 묻은 피를 꼼꼼히 닦았다.
그동안 태화는 선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좆을 문질렀다. 프리컴이 나오기 시작한 선단 끝을 엄지로 꾹 누르며 살살 달래고 있는데 얼추 피를 다 닦은 선우가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제가 할게요…….”
태화는 아무 말 없이 자지에서 손을 떼고 선우에게 맡겼다. 선우는 두 손으로 태화의 자지를 쥐어흔들다가 침을 꼴깍 삼키고 고개를 숙였다. 줄기차게 맞은 오른쪽 뺨이 퉁퉁 부어올라 입을 벌리기 쉽지 않았으나 최대한 크게 벌렸다. 그래야지만 태화의 자지가 입에 들어왔다.
자지 끄트머리를 문 선우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흠칫 떨었다. 익숙한 맛과 향이 느껴졌다. 프리컴은 짭조름했고, 다른 놈들과는 다르게 자지도 신경 써서 씻는지 자지에서도 머스크 향이 진하게 올라왔다. 죽도록 처맞은 게 불과 10분도 지나지 않은 일이었는데 선우는 고작 자지 하나 빨고 있다고 아랫배가 뭉근하게 뭉치는 기분이 들었다.
흥분감이었다. 물론 맞은 데가 아파서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그보다도 태화의 자지가 너무 맛있게 느껴졌다.
“하아…….”
혀끝으로 갈라진 요도구를 살살 핥자 태화는 짙은 숨을 내쉬며 선우의 머리카락 사이로 손을 얽었다. 쓰다듬는 손길이 마치 더 해 보라고 부추기는 것도 같았고,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 주는 것 같기도 했다. 이러다 머리채가 잡혀 딥쓰롯을 당한 적이 있어서 선우는 마냥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억지로 쑤셔지기 전에 먼저 목구멍을 열고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자지를 삼켰다. 여러 갈래로 솟은 핏줄을 혓바닥으로 문지르며 자극했다.
두피를 간질이는 태화의 손길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 목덜미를 지나서 옷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마른 날갯죽지를 쓰다듬고 알알이 동글동글한 척추뼈를 하나하나 매만졌다. 태화는 슬쩍 아래를 내려다봤다. 선우는 낑낑거리면서도 참 열심히 했다. 아마 맞지 않으려고 그러거나, 목구멍에 처박히지 않으려고 그러는 거 같은데 그게 꽤나 기특해 보였다.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선우를 세심하게 살폈다. 남의 좆을 빨면서 붉어진 귀 끝과 고갯짓을 할 때마다 하늘하늘하게 흔들리는 머리카락, 가늘게 이어진 허리선을 보다가 다시 얼굴을 봤다. 제게 맞아 탱탱 부은 뺨이 눈에 들어왔다. 핏줄이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가서 벌써 붉은 피멍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런 상태로도 선우는 쭙쭙 소리까지 내며 좆을 빨았다.
태화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마음 같아서는 지난번처럼 추삽질하듯 깊숙이 쑤셔 넣고 싶은데 꼴이 하도 처량하니 오늘은 이쯤에서 조금 봐줄까 싶었다. 한창 혀를 굴리는 선우의 머리채를 아프지 않게 잡아 뒤로 물렸다.
“하……. 왜, 왜요……? 저, 잘 못했어요? 더 잘할 수 있어요……!”
“…….”
“진짠데…….”
태화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하자 선우는 긴장한 듯 말꼬리를 흐렸다. 아마 또 때릴 거라고 예상한 모양이었다.
“목구멍 잘 열게요. 더 깊이 넣을게요. 때리지만 말아 주세요…….”
말간 얼굴은 못 하는 말 없이 노골적인 말을 술술 내뱉었다. 태화는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가 다시 뜨고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너대로 하다가는 내가 약속에 늦을 거 같거든.”
“지, 진짜 잘할 수 있……!”
또다시 딥쓰롯을 시킬 건가 싶어 선우가 펄쩍 뛰는데 태화는 그저 선우의 손을 잡아끌어 제 자지를 쥐게 했다.
“꽉 쥐어.”
말하더니 선우의 손 위로 제 손을 겹쳐 쥐고 좆을 흔들기 시작했다. 선우의 침과 프리컴이 섞여 문지르기 수월했다. 미끈거리는 자지는 문지를 때마다 찌걱찌걱 소리가 났다. 마치 어디 박아 넣기라도 하듯 음습한 소리였다.
졸지에 펠라티오에서 대딸로 할 일이 바뀐 선우는 놀란 눈을 뜨다가 곧 시선을 내리깔고 남는 손을 펴 손바닥으로 선단 끝을 마구 둥글렸다. 이러면 열에 열은 신호가 왔다.
“아윽, 씹……!”
태화도 마찬가지로 가슴을 크게 씨근덕거리며 신음했다. 역시 어지간한 악력으로는 잘 싸지 못하는지 선우는 태화에게 잡힌 손이 찌그러지는 것처럼 느꼈다. 자지와 맞닿은 손바닥은 델 듯 뜨거웠고, 손등에 닿은 그의 손은 거칠거칠했다. 은실이 찍찍 늘어나는 선단 끝을 가지고 놀기라도 하듯 손바닥으로 뭉개다가 손톱으로 긁기도 하고 굳이 고개 숙여 혀끝으로 톡톡 두드리기도 했다. 그래도 긴 시간이 지나서야 좆기둥이 꿀렁거렸다.
사정감이 느껴지는지 태화는 자위하는 속도를 더욱 높였다. 탁탁탁 치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태화가 이를 악물었고, 빠끔거리던 요도구에서 정액이 푹 솟아올랐다. 분수처럼 튀어나온 정액은 선우의 눈두덩이로 날아가 찰싹 달라붙었다.
“후……. 하아…….”
태화는 큰 숨을 고르며 손에 힘을 풀었다. 손이 자유로워진 선우가 뒤로 살짝 물러나 앉았다. 얼추 호흡을 고르게 갈무리한 태화는 조금 전 꺼내 놓은 물티슈를 뽑아 좆을 닦고 드로어즈 속으로 집어넣었다. 바지 지퍼를 올리고 손을 마저 닦으며 선우를 보는데 선우는 여전히 정액을 매단 얼굴 그대로였다.
“닦아.”
태화가 물티슈를 건네며 말했지만, 선우는 눈을 깜빡일 때마다 쩍쩍 늘어나는 정액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제 뺨까지 죽 흘러내린 걸 손끝으로 훔쳐 입에 쏙 집어넣었다. 태화의 미간이 엷게 구겨졌다.
“뭐 하냐?”
“이러면 다들 좋아하시던데.”
경험에서 우러나온 대답이었다. 당연히 태화 역시 제 정액을 쪽 빨아 먹는 선우를 보며 다시 욕정을 느꼈지만 어째 기분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닦으라니까 왜 처먹고 앉았어, 쯧.”
태화는 혀를 짧게 차고 대신 물티슈를 들어 선우의 뺨을 닦았다. 거친 손길에 선우가 아픈 소리를 내자 조금 유해졌다. 속눈썹 사이사이에 낀 정액까지 말끔하게 닦아 주고서야 태화는 뒤로 물러났다. 선우는 눈동자를 빙그르르 굴리다가 돌연 배시시 웃었다. 태화가 자신을 챙겨 줬다는 생각에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고작 얼굴 한번 닦아 준 걸로 경계심을 풀어 버리는 선우를 보며 태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시계를 다시 보더니 뭔가 생각하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손 잡이야?”
태화는 별안간 그런 걸 물었다.
“오른손이요.”
“그럼 왼손 줘 봐.”
선우는 고개를 갸웃 기울이다 의심 없이 왼손을 내밀었다. 태화는 자연스레 손을 끌어왔다. 생긴 것처럼 길고 가느다란 손이었다. 조금 전 넘어졌을 때 바닥을 세게 짚었는지 손바닥이 약간 까져 있었다. 마디마디마다 분홍빛으로 물든 손을 관찰이라도 하듯 찬찬히 살피던 태화는 손등 뼈를 하나하나 만져 봤다. 엄지, 검지, 중지, 약지, 새끼, 다시 약지. 약지와 이어진 손등 뼈를 엄지로 부드럽게 둥글리다가 돌연 힘을 주어 뒤로 세게 밀었다. 뚜두둑, 소리가 났다.
“아악!”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선우는 반 박자 늦게 비명을 터뜨렸다. 진짜 너무 아팠다. 제자리에 있어야 할 손등 뼈가 뒤로 1센티미터 정도 밀려 있었다.
태화가 손을 놓자 선우는 멀쩡한 손으로 다친 손을 감싸고 몸을 바짝 웅크렸다. 눈물은 흐르는데 울음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손을 다시 내려다봤다가 기괴하게 비틀린 뼈를 보고는 소리를 지르고 손을 감쌌다. 태화를 홱 째려봤다.
“왜, 왜……! 빨아 줬잖아……! 흑……. 기분 좋게 해 줬는데 왜 아프게 하고, 윽…….”
“빨아 준 건 서로 즐긴 거고. 이건 벌.”
선우는 서러움을 넘어서 이제는 억울하기까지 했다.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 태연하게 말하는 낯짝이 미워도 너무 미웠다.
약지가 힘을 쓰지 못하고 덜렁거렸다. 나머지 손가락들도 파르르 떨리며 제 기능을 못 했다. 정말 불구가 돼 버린 것 같았다. 이대로 있다간 손가락을 영영 못 쓸 것 같아서 겁이 났다. 병원을 가야 하는데 태화는 병원에 데려다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선우는 핏발이 선 눈으로 태화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화는 어깨를 으쓱이기만 했다.
“나쁜 새끼…….”
“지난번엔 개새끼더니 오늘은 나쁜 새끼? 그새 발전했네. 그럼 조금만 더 나쁜 새끼 할게.”
싱긋 웃으며 하는 말에 선우는 잔뜩 긴장했다. 조금 더 나쁜 놈을 하겠다니, 태화는 분명 웃고 있었는데 선우는 머리털이 쭈뼛 서는 공포를 느꼈다.
이번에는 어딜 또 부러뜨릴 심산일까? 또다시 손가락을 부러뜨릴까……? 아니야, 아예 팔을 부러뜨릴 수도 있어.
선우는 다음 표적이 될 부위를 걱정하며 덜덜 떨었다. 잔뜩 겁에 질린 선우를 가만히 쳐다보던 태화는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선우는 본능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대로 정신을 잃는 건 한순간이었다. 태화가 선우의 뒤통수를 강타한 것이었다.
“제대로 기절했나?”
태화는 까무룩 정신을 잃은 선우에게로 낯을 스윽 들이밀어 살폈다. 숨을 쌕쌕거리는 걸 보니 죽은 것 같지는 않았고, 방금까지 아프다고 꽥꽥 소리 지르던 놈이 한순간에 조용해진 걸 보면 제대로 기절한 듯싶었다. 죽이지 않고 기절시키는 건 오랜만이라 힘 조절을 못 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선우는 살아 있었다.
조수석 의자를 한껏 젖혀 선우가 편하게 누울 수 있도록 조정해 줬다. 벨트까지 매 주고 선우를 조용히 내려다봤다. 촘촘하게 늘어진 속눈썹 사이로 물기가 한가득 엉겨 있었다. 기절한 주제에 여전히 눈물은 줄줄 흘려서 손등으로 슥슥 문질러 닦아 줬다.
저한테 맞아 부은 뺨을 조심스레 쓰다듬어 보다가 여태 붙들고 있는 손으로 시선을 내렸다. 조금 전 뼈를 어긋나게 만든 손을 들어 이리저리 돌려 봤다. 이 정도로 깔끔하게 어긋났으면 회복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겠다 싶었다. 손등 뼈를 한번 톡 건드리자 선우는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낑낑 앓는 소리를 냈다.
개새끼 같았다. 욕으로써의 의미가 아니라 진짜 개의 새끼. 작고, 유약하고, 뭐만 하면 낑낑대는.
“생긴 것도 꼭 개새끼고.”
혼잣말을 중얼거린 태화는 선우의 입으로 엄지를 집어넣어 개처럼 제 자지를 핥던 혓바닥을 꾹꾹 눌러 봤다. 뜨끈뜨끈하게 열이 오른 점막을 훑다가 손을 뺐다. 곧이어 안전벨트를 매고 차를 출발했다. 시간이 꽤 지체되었다. 한적한 곳으로 선우를 유인하려고 길을 돌아온 것도 있어서 빨리 달려야 했다.
액셀을 지그시 밟으며 오전에 받았던 전화를 떠올렸다. 영감님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이었다. 훤한 대낮부터 아가씨가 있는 곳으로 마사지받으러 가는 길이었다는데, 그 소식을 듣자마자 태화는 늙은이가 징글징글하게 힘이 좋다는 생각부터 했다. 다음으로 이어진 생각은 약간의 의심이었다.
“누가 장난질 친 거 같은데…….”
물론 단순 사고일 확률이 더 높겠지만 태화의 촉은 조금 다른 쪽을 향해 있었다. 사고 사진을 보내 보라는 말에 받은 건 정확하게 영감님이 탄 오른쪽 뒷좌석 부분만 심하게 찌그러져 있는 사진이었다. 운전자는 뺑소니로 달아났다는데 아무리 봐도 교묘하게 영감님을 노린 것처럼 보였다.
워낙에 인생을 거지같이 산 사람이라 영감님의 목숨을 노리는 놈들은 많았다. 문제는 대낮에 일을 벌일 미친놈은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태화는 그런 미친놈을 하나 알고 있었다. 순간 방지 턱이 있는 걸 못 보고 속도를 줄이지 못해 차가 크게 덜컹거렸다.
“으…….”
선우가 앓는 소리를 냈다. 벌써 깼나 싶어 봤더니 아직 정신은 없어 보이는데 고개가 삐뚤어져 있었다. 태화는 선우의 머리를 제자리로 돌려놓고 속도를 약간 줄였다.
하여튼 손이 많이 가는 놈이었다.
병원은 예상했던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다.
선우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낑낑거리며 아파하는 신음도 여전했고, 악몽을 꾸는 건지 아파서 그러는 건지 미간도 짙게 찌푸린 채였다. 그런 선우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차에서 내렸다. 중간에 깨면 골치가 꽤 아프겠지만, 열쇠 없이는 트럭을 몰고 갈 수 없을 거고, 저만치 작은 간땡이면 애초에 도망갈 생각 자체를 못 할 터였다.
집 지키는 개새끼처럼 커다란 눈동자나 이리저리 굴리고 있겠지…….
태화는 차 문을 닫고 재킷 단추를 잠갔다. 연락받은 병실은 VIP들만 입원 가능하다는 층에 있었다. 그중에서도 VVIP 병실에 들어앉아 있다는 말에 태화는 코웃음을 쳤다. 뭐 중요한 사람이라고 거기에 있는지 몰랐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영감님 이름을 대자 간호사가 자동문 옆에 보안 키를 대고 문을 열어 줬다. 내부 복도에는 이미 시커먼 남자들이 우글우글했다.
“어, 태화 왔냐?”
그중 한 명이 태화에게 아는 척을 하며 손을 흔들었다. 남자의 말에 주변 모두 그를 돌아봤다. 어째 하나같이 반기는 눈빛은 아니었다. 제가 꼴 보기 싫을 그네들의 마음을 모르지 않아서 태화는 별스럽지 않게 고개만 까딱 숙여 인사하고 다가갔다. 몇몇이 싸가지 없는 새끼라고 했으나 딱히 대꾸하지 않았다. 말마따나 싸가지 없는 새끼가 맞으니까.
“요즘 통 얼굴을 못 봐.”
“일하느라 바빴습니다.”
“뭐? 아, 그 돼지고기 써는 거?”
태화에게 가장 먼저 인사한 남자가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영감님이 들어앉아 있을 병실 문을 힐끗 쳐다보던 태화는 시비 거는 게 분명한 남자를 보고 싱긋 웃었다.
“가끔은 사람도 썰어요. 마지막 놈이 딱 형님만 한 덩치였네요.”
태화는 남자를 위아래로 훑으며 말했다.
“아닌가, 형님이 좀 더 두껍나.”
중얼거리듯 뒷말이 따라붙었다. 사람을 두고 몸집이 더 크다, 왜소하다가 아닌 두껍다는 표현을 한 태화는 마치 방금 도축된 고깃덩어리를 보는 것처럼 신중한 눈을 했다.
“협박하냐?”
“제가 뭣 하러요.”
“회장님 저렇게 되시고 이사들이 너한테 붙을 거 같아서 막 자신감이 생기고 그래?”
“그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형님. 나 조직에 관심 없는 거 아시잖아요. 이미 지원도 다 끊긴 거 알면서.”
태화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만약 이사들이 제게 붙는다고 해도 이쪽에서 사절이었다.
영감님의 것은 무엇도 가지고 싶지 않아 뛰쳐나온 지 이제 근 6년째였다. 조직 일에서 손을 떼고 개인적으로 의뢰를 받아 작업하면서도 간간이 영감님을 만나 오긴 했다. 그때마다 영감님은 태화에게 제가 죽으면 조직을 이어받을 사람은 너뿐이라고, 다 놀았으면 인제 그만 돌아오라고 했지만, 태화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코웃음을 쳤다.
그때 일이 떠올라 픽 웃음소리를 내자 남자는 쩝 입맛을 다시고 표정을 풀었다.
“하긴, 너 조직 나간다고 했을 때 회장님이 너 안 죽인 게 다행이었지. 내가 나갔어 봐. 난 그날 그 자리에서 바로 죽었을 거야.”
남자는 어깨를 부르르 떨며 말했다. 영감님이 그렇게 늙었어도 이들에겐 아직 두려운 존재인 모양이었다. 하기야 조금만 수틀리면 제 입맛에 맞게 가지고 놀다가 돼지 멱따듯 가차 없이 죽여 버리니 그럴 만도 했다.
그래 봤자 이젠 다 늙어 빠진 노친네였다. 한때는 태화도 영감님이 영원히 두려운 존재로 남을 줄 알았는데 나이를 먹고, 머리가 커지자 영감님도 남들과 똑같이 늙는다는 걸 깨달았다. 또, 영감님이 다른 무엇보다도 노화를 가장 두려워한다는 걸 가장 먼저, 그리고 유일하게 알아차린 사람도 태화였다.
“하여간에 이번 일로 이사들 대부분이 승계에 대해 한 번씩은 생각하는 거 같더라.”
“나는 관심 없으니까 빼 주세요. 여차하면 형님이 물려받으시든가요.”
“나? 야, 괜한 말 만들지 말어.”
남자는 손사래를 치면서도 으하하하 웃었다. 태화는 작게 마주 웃어 줬다. 그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였다.
영감님이 되도록 오래도록 사는 것. 최대한 늙고, 늙고, 늙고, 또 늙어서 죽는 것.
자잘한 병에 걸려도 좋고, 암 덩이를 달고 있어도 좋았다.
그러니 이번 사고 소식은 태화에게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하마터면 영감님이 사고로 죽을 뻔했으니까. 그때 병실 문이 드륵 열리며 비서가 나왔다.
“회장님 깨어나셨습니다.”
웅성거리던 소리가 단번에 멈췄다. 저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던 남자들은 비서를 쳐다보며 눈을 번들거렸다. 깨어난 것도 중요했으나 멀쩡히 깼는지가 더 중요했다. 태화도 그게 궁금하던 참이었다. 듣기로는 가벼운 뇌진탕만 오고 잠깐 기절한 것뿐이라고 했지만 혹시 또 몰랐다. 반병신이 되었더라도 정신만 똑바로 박혀 있길 바랐다.
“회장님께서 서 이사님만 들어오시랍니다.”
태화는 쯧 혀를 짧게 찼다.
이사직 버린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서 이사님이야…….
실상 까 보면 그저 그런 깡패 나부랭이들이면서 이사니, 회장이니 하는 직함을 달고 있는 것도 우스웠다.
태화만 찾는 영감님의 호출에 다른 남자들은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저마다 욕을 짓씹다가 다시 저들끼리 이야기를 나눴다. 태화는 병실로 들어갔다. VVIP 병실이라더니, 아파트 한 채를 통째로 옮겨 놓은 듯한 방이었다. 병상에 누워서도 이런 호사를 누리는 게 우스워 또 한번 픽 웃음이 나왔다. 비서를 따라 깊숙이 들어간 곳에 영감님이 누워 있었다.
서태화의 양부, 서원식이었다.
“어떻게, 몸은 좀 괜찮아요?”
비서가 자리를 비켜 주는 사이 태화는 옆에 의자가 있는데도 굳이 서서 안부를 물었다. 원식의 꼴이 제법 볼만했다. 숨이 죽은 쪽파처럼 비실비실한 게, 누가 봐도 늙어 가는 노인이었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짱짱하던 양반이었는데 역시 나이는 못 속이는가 보았다.
올해로 일흔하나 들었나……?
워낙 신경 쓰지 않고 살다 보니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서원식은 이제 막 깨어나서 목이 칼칼한지 몇 번 헛기침하다 태화에게 조금 더 다가오라며 손짓했다. 태화는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아가.”
“제 나이가 이제 서른셋입니다. 아가는 무슨.”
“그래도 넌 나에게 언제나 어린애지.”
“징그러운 말 그만하시고. 살아 있는 거 봤으니 갑니다.”
단 몇 초도 더 있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확실하게 전달하고 돌아서려는데 서원식이 몸을 일으켜 앉았다. 오전에 교통사고를 당하고 지금까지 기절해 있다가 갑자기 움직여서 그런지 끙 앓는 소리가 나왔지만, 태화는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다. 그저 귀찮다는 얼굴로 미간을 설핏 구길 뿐이었다.
침대 헤드에 기대앉은 서원식은 태화를 올려다봤다.
“태화야.”
태화는 표정을 좀 더 짙게 일그러뜨리다 이내 아무렇지도 않게 폈다. 매번 징그럽게 아가 타령만 하는 서원식이 제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 이유는 단 하나, 무언가를 명령하기 위함이었다. 순간 태화는 꿉꿉한 지하 창고에서 제 이름을 부르던 원식의 목소리가 떠올라 알게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또 뭔 되도 않는 일을 시키려고요.”
“너한테 내가 의뢰를 넣어도 되겠니?”
“하…….”
태화는 한숨 섞인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세상 기분 좋은 미소를 걸친 태화는 처음으로 침대 가까이 다가가 원식을 내려다봤다.
“뒈지고 싶으면 알아서 혼자, 깔끔하게 뒈지세요. 나한테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신 거잖아요. 자기 일은 스스로 하자.”
어릴 적 서원식 손에 자라며 숱하게 들어 온 말이었다. 감당할 수 있는 일을 벌이고, 수습은 혼자서 하는 거라고. 너 같은 놈이 저지른 일을 수습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던 말을 고대로 되돌려 주는 아들의 무례함 앞에서도 서원식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아무리 늙었다고 해도 아직 서원식은 서원식이었다. 태화는 자신을 가만히 올려다보는 원식을 향해 눈웃음까지 이지러지게 지어 보였다.
“자살. 추천드릴게요.”
친절한 미소를 띠며 말하기엔 제법 살벌한 말이었다. 서원식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이 태화는 고개만 까딱 숙여 인사하고 뒤를 돌았다. 죽여 달라니 뭐니 해도 저래 봤자 혼자서는 죽을 깜냥조차 없는 사람이 바로 서원식이었다.
하여간에 겁만 많은 노친네…….
싱글싱글 웃던 얼굴은 원식에게서 멀어질 때마다 입꼬리를 뚝뚝 끌어 내렸다. 병실 문 앞에 서 있던 비서가 정중히 인사하는 걸 가볍게 무시하고 문을 열고 나왔다. 태화의 등장으로 또 한번 복도가 고요해졌고, 곧 그를 가장 먼저 알은체했던 남자가 다가왔다.
“회장님이 뭐라시디?”
“당신 좀 죽여 달라시던데요.”
“새끼, 농담은. 진짜 별말 없으셨냐?”
사실을 말해 줘도 믿지 않는 남자를 향해 태화는 어깨만 으쓱였다. 원식과 태화가 나눈 대화가 궁금해서 집중하고 있던 다른 남자들 사이로 혀끝을 차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태화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대로 말해 줘도 들어 처먹지를 않으니 피곤할 뿐이었다.
“갑니다.”
“벌써 가냐?”
“오래 있어서 뭐 합니까.”
“하여튼 싸가지 없는 새끼, 쯧.”
태화는 남자를 지나쳐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아, 맞다.”
뒤에서 남자가 과장되게 소리쳤으나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재화 출소했다더라.”
태화가 VIP 병동 자동 출입문을 나서는 순간 들려온 말이었다. 문은 그대로 스르륵 닫혔다. 태화는 쩝 입맛을 다시다 스테이션에 앉아 있는 간호사들에게 눈인사하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서재화가 출소했다고…….”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러나 싶었다. 하기야 자신이 조직을 나온 지 5년이 넘었으니 재화의 출소 시기도 이쯤일 것이라고 예상은 했었다. 제 인생에 있어서 그다지 중요한 인간도 아니어서 깜빡 잊고 있었더니 이렇듯 출소 소식이 들려왔다.
태화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서재화가 등장했다면 원식의 교통사고는 단순 사고가 아닐 확률이 더 높아졌다. 아니, 태화는 확신했다. 제 형이 저들의 양부를 죽이려고 이번 일을 벌인 게 분명했다.
태화는 곧바로 차에 올라탔다. 차 안은 냉동 창고나 다름없었다. 한겨울에 히터도 틀지 않고 방치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선우는 여전히 죽은 듯이 자고 있었다. 기절해서는 정신을 못 차렸다. 그래도 추위는 느껴지는지 마른 어깨가 움칠거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가지가지 하네.”
태화는 짜증스레 말을 내뱉으면서도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선우에게 덮어 줬다. 히터를 최대한 세게 틀었다. 워낙 오래된 차라 그래 봤자 미적지근한 바람만 나왔지만 그래도 한기가 도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히터 방향을 전부 선우에게로 돌려 주다가 불현듯 이런 제 모습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태화는 누군가를 배려하며 살아온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하는 건 누가 봐도 선우를 향한 배려였다.
사람이 이리도 쉽게 변할 수가 있나?
태화는 헛웃음을 지었다. 콩알만 한 놈 하나 때문에 되지도 않게 착한 사람 노릇을 하려니 뒷덜미로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어쨌든 선우에게로 히터 방향을 맞춰 두고 작달막한 얼굴을 들여다봤다.
자신이 때리긴 했지만, 얼굴이 좀 많이 엉망이었다. 예쁘장한 얼굴이 못난이로 변해 있었다. 입가가 찢어진 게 눈에 들어왔다. 입을 때린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어쩌다 난 상처인가 생각하다 제 자지를 빠느라 찢어진 상처라는 걸 깨달았다.
“제대로 빨지도 못하는 게 잘한다고 허세는…….”
쯧 혀를 차며 입가를 만져 봤다. 따가운지 감은 두 눈두덩이가 엷게 찌푸려졌다. 하지만 태화는 아랑곳하지 않고 입가를 문질렀다. 입 안으로 침이 고이는 게 느껴졌다. 착각인 것도 같았다. 자는 놈을 건드리는 취미는 없었지만, 지금은 왜인지 그러고 싶기도 했다. 뭐랄까, 최선우는 괴롭히고 울리는 맛이 있었다. 생긴 게 그랬다.
“그러니까 인생이 고달프지.”
조용히 읊조리며 손을 뗐다. 마찬가지로 운전석 의자를 최대한 젖히고 몸을 파묻었다. 차 안으로 훈기가 돌았다. 히터가 오랜만에 제대로 작동한다고 생각하며 셔츠 단추를 하나 더 풀었다.
희한하게 잠이 쏟아졌다.
선우는 손가락이 너무 아파서 잠에서 깼다.
“으응…….”
앓는 소리를 내며 정신이 깼지만, 눈도 제대로 뜨이지 않아 꽤 고생했다. 부은 눈을 겨우 뜨자 익숙하면서도 낯선 차 내부가 보였다. 여기가 어딘지 몇 번 더 눈을 끔뻑이던 선우는 순간 손가락에서 올라오는 무지근한 통증에 인상을 찌푸렸다. 아픈 듯 낑낑거리며 내려다본 왼손은 시뻘게져선 퉁퉁 부어 있었다.
손가락을 억지로 움직여 보다가 다시 악 소리를 냈다. 그제야 기절하기 직전에 있었던 일이 전부 떠올랐다. 태화가 제 손가락뼈를 망가뜨리고, 그의 좆을 빨아 주고, 그의 정액을 먹고, 그가 제 눈두덩이에 묻은 정액을 닦아 주고……. 거기까지 떠올린 선우는 뭐가 좋은지 작게 웃다가 입가가 아파 금세 입꼬리를 내렸다. 불현듯 옆을 돌아봤다.
태화가 자고 있었다. 볼일이 있다더니 일은 다 보고 온 건지 그새 셔츠 단추가 하나 더 풀려 있었다. 선우는 침을 꼴깍 삼켰다. 눈물이 쏙 빠지도록 제 손을 아프게 만든 건 다 잊은 것처럼 태화를 바라보는 두 눈이 반짝였다.
“운동을 따로 하는 건가?”
셔츠 사이로 보이는 가슴 근육이 참 단단해 보였다. 조금만 더 봤으면 싶은데 아무리 고개를 돌려봐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태화의 몸을 감상하던 선우는 문득 히터 바람이 제게로만 쏟아진다는 걸 깨닫고 그가 있는 쪽으로 모조리 돌려 줬다. 그러고 보니 그가 입고 있던 재킷도 제 무릎에 올려져 있었다. 선우는 태화가 자신을 챙겨 줬다는 생각에 배시시 웃으며 재킷을 품에 안았다. 태화에게서 늘 나는 향기가 느껴졌다.
재킷에 코를 묻고 숨을 깊게 쉬며 태화를 바라봤다. 참 잘난 얼굴이었다. 쌍꺼풀이 없는 눈매는 느른해 보였고, 코는 크고 오뚝했다. 잘 웃는 것 같지도 않은데 얄따란 입술은 끝이 항상 올라가 있었다. 어깨는 넓었고, 가슴은…….
“너야말로 변태 아니야?”
다시 한번 태화의 가슴 근육을 감상하던 선우는 갑자기 튀어나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몸을 떨었다.
“자는 사람을 왜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봐.”
태화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자다 일어나서 잔뜩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셔츠 단추를 하나 채우며 눈을 떴다. 태화와 눈이 마주친 선우는 급기야 딸꾹질하기 시작했다. 몸을 크게 떨다 재킷을 바닥으로 떨어뜨렸고, 그걸 줍겠다고 정신없이 몸을 숙이다가 대시 보드에 이마를 부딪쳤다. 이마를 문지르며 손을 들다가는 아픈 왼손을 또 부딪쳐 낑낑 앓았다. 아주 혼자 난리 블루스를 췄다.
선우는 왼손을 감싸며 태화를 올려다봤다. 한심하다는 눈길이 이어졌다. 한숨까지 푹 쉬는 모습에 괜스레 시무룩해져서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안전벨트.”
태화가 말했고, 선우는 또 빠릿빠릿 움직여 안전벨트를 쥐었다. 하지만 왼손이 성치 않아 잘 안 되었다. 오른손으로 하려다가 자꾸 삐끗거려서 왼손으로 해 보려니 정말 너무 아팠다. 이를 악물고 참아 봤지만 결국 안전벨트를 놓쳤다. 그 바람에 한 번 더 큰소리가 나자 옆에서 쯧 혀 차는 소리도 들렸다.
“지랄을 해요, 그냥.”
태화가 다가왔다. 선우는 또 맞는 줄 알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지레 겁을 먹어 어깨까지 잔뜩 움츠렸으나 예상했던 폭력은 이어지지 않았다. 달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떠 보니 안전벨트가 매져 있었다. 선우는 이어 안전벨트를 매고 시동 거는 태화를 힐끔 쳐다봤다. 못된 말을 하고 때리고 아프게 해도 어쨌거나 그는 친절했다.
“그만 좀 쳐다봐라.”
“이젠 쳐다보는 것도 안 돼요?”
“어.”
“네…….”
매몰찬 대답에 선우는 실망한 듯 고개를 숙이고 부어오른 왼손만 내려다봤다. 차는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승차감이 좋지 않은 트럭이라 방지 턱이 있을 때마다 몸이 심하게 흔들렸고, 선우는 맞은 데가 아파 인상을 엷게 찌푸렸다. 온몸이 욱신거렸지만, 혹시나 태화가 싫어할까 봐 아픈 소리는 꾹 참았다.
조용히 있는데 갑자기 차가 멈춰 섰다. 벌써 다 왔나 싶어 밖을 내다보니 낯선 곳이었다.
“여기 어디예요?”
선우가 물었지만, 태화는 대답 대신 지갑에서 오만 원권을 여러 장 꺼내 선우의 허벅지 위로 툭 던졌다.
“뭐예요……?”
“깽값.”
선우는 습관처럼 눈동자를 굴려 돈을 훑었다. 딱 봐도 열 장은 넘어 보였다. 원래 없이 사는 놈이 돈은 더 빨리 세는 법이라 금방 계산이 나왔다. 50만 원도 넘는 돈이 허벅지 위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걸 본 선우는 입술을 꾹 눌러 다물었다. 깽값이라기엔 너무 많은 돈이었다. 만약 빨아 준 값까지 함께 쳤다고 치면 그나마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화대까지 포함되었다면 받고 싶지 않았다.
“아. 깽값에 택시비까지 얹은 거야.”
태화는 선우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뒷말을 덧붙였다. 선우는 화대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다행이라고 생각하다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때 달칵 하고 문의 잠금 쇠가 풀리는 소리가 났다.
“내려.”
툭 튀어나온 말에 태화를 쳐다봤다.
“네……?”
“넌 그 제대로 들었으면서 다시 묻는 건 버릇이야? 내리라고.”
“같이 안 가요?”
“창놈이랑 시장까지 같이 갔다가 더러운 소문 날 일 있어? 택시 타고 와.”
선우는 입술을 우물거렸다. 창놈이라는 단어가 가슴을 후벼 팠다. 저도 제가 창놈이라는 걸 알았다. 면도방을 찾는 손님 중 말버릇 나쁜 손님에게서도 종종 들어 온 말이었지만 태화의 입을 통해 들으니 많이 속상했다.
굳이 그렇게 일러 주지 않아도 되는데…….
시무룩해져서는 고개를 숙이는데 태화가 선우의 안전벨트를 툭 풀어 줬다. 선우는 서둘러 안전벨트를 꾹 말아 쥐었다.
“같이 가고 싶은데…….”
선우는 태화의 눈치를 보면서도 할 말은 다 했다. 이대로 태화의 옆자리에 조금 더 앉아 있고 싶었다.
“안 내리지?”
“내려요……!”
태화의 음성이 좀 낮아진 걸 느끼자마자 얼른 안전벨트를 놨다. 이대로 있다간 또 맞겠다 싶어서 차에서 후다닥 내렸다. 돈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자신이 내리기만을 기다리는 사람 앞에서 돈을 챙기기란 자존심이 많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선우는 꿋꿋했다. 자존심은 있는 사람이나 챙기는 것이었다. 선우는 제 자존심보다 돈이 더 중요했다. 게다가 태화가 준 돈이기도 했다.
선우가 차에서 내리자 구태여 조수석까지 넘어온 태화가 직접 문을 닫았다. 곧바로 시동이 걸리고 트럭이 멀어지기까지 한순간이었다. 선우는 저 멀리 점점이 작아지는 하얀 트럭을 끝까지 바라봤다.
“택시비도 챙겨 줬어.”
손에 든 돈을 꽈악 쥐며 중얼거렸다. 남이 보면 찬바람이 쌩쌩 불 정도로 매정하다고 하겠지만 선우는 마냥 좋은 쪽으로만 생각했다. 한겨울인데 길에 저를 내버린 걸 생각하면 조금 야속했으나 아무래도 좋았다.
자신도 태화가 왜 이렇게 좋은지 알 수 없었다. 영환을 죽여 줘서 좋아한다기엔 그 전부터 좋아했으니 말이 안 되었다. 그저 태화만 보면 설렜다.